신연우가 매화 마을에서 채집한 데이터를 메일로 보내주었기에 유월영은 다음 날부터 노트북으로 데이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다친 손도 이제는 움직일 수 있어서 속도가 났다. 한바탕 일을 마친 뒤, 수액도 끝나고 간호사가 와서 링거를 거두어 갔다.유월영은 수액 병에 쓰인 약명이 이틀 전이랑 다른 것을 보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신연우에게서는 점심에 못 올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그는 배달을 따로 시켜준다고 했지만 유월영은 간만에 내려가서 먹겠다고 하며 거절했다.점심 때가 되자 유월영은 기지개를 펴며 침대를 내려 외투를 챙겼다.연재준이 노트북에서 눈을 떼고 말했다.“내 것도 포장해 줘. 그 보답으로 오후에 재미난 거 보여줄게.”“깜빡할 것 같으니까 그냥 하 비서 시켜요.”유월영은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한 뒤 밖으로 나가버렸다.연재준은 침대에 등을 기댄 채, 바깥의 화창한 날씨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병원을 나온 유월영은 근처 칼국수 집으로 들어가서 칼국수를 주문했다.식사를 기다리는 동안에 그녀는 아까 찍어둔 약명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갑자기 입원 날짜가 이틀이나 늘어난 게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그리고 그녀의 그런 추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약명을 검색한 결과 일반 비타민 주사였다.의료진이 당장 퇴원해도 되는 환자에게 영양제를 더 투여했을 리는 없었다.누군가 권력을 이용해서 의사와 짜고 행한 일이 틀림없었다.그리고 누군지는 안 봐도 뻔했다.핸드폰을 내려놓은 유월영은 대충 식사를 마친 후에 싸늘한 얼굴을 하고 병원으로 돌아갔다.‘연재준! 대체 이 변태 같은 통제욕을 언제면 그만둘 거야!’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자 연재준이 정장을 갈아입고 앉아 있었다.그녀가 밥을 먹고 오는 사이에 그는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환자에서 다시 냉철하고 철두철미한 연 대표로 돌아가 있었다.유월영이 당황해서 잠시 주저하는 사이,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안 사준다더니 진짜 아무것도 안 사왔네.”유월영이 물었다.“제 입원날짜 연기하게 시킨
신연우의 비싼 구두가 주영문의 머리를 짓밟고 있었고 주영문은 얼굴이 진흙탕에 처박힌 채로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개 같은 자식! 차라리 여기서 날 죽여! 안 그러면 나중에 나도 네 놈의 다리를 분질러버릴 테니까!”신연우는 태연한 표정으로 다리에 힘을 주었고 주영문의 얼굴은 점점 깊은 진흙탕으로 빠지고 있었다.데이터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구석진 곳에서 주영문이 기습해 왔다.하지만 이미 다리가 골절된 주영문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신연우는 아주 손쉽게 주영문을 발 밑에 놓고 짓밟을 수 있었다.평소였다면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이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는 현재 굉장히 짜증이 난 상태였다.어젯밤 연재준과 유월영의 대화를 들은 뒤로 안 그래도 저기압인데 주영문이 마침 나타났던 것이다. 그날 밤에 주영문이 유월영을 납치하고 약을 먹이지만 않았어도 그 뒤에 일련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하루종일 부아가 치밀었다.“그건 다 네가 자초한 거잖아.”신연우는 쭈그려 앉아 주영문의 귓가에 대고 부드럽게 말했다.“널 죽여서 뭐해? 차라리 살려두고 천천히 괴롭히는 게 더 재밌지.”차와는 거리가 있었기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유월영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딘가 광기 어린 저 표정을 보았을 때 평소에 그녀가 알던 신연우와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다.그녀는 갑자기 주영문의 다리를 누가 부러뜨렸냐고 묻던 연재준의 얼굴이 떠올랐다.“설마 주영문 다리를 부러뜨린 사람이….”재미난 구경을 보여준다고 안 간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나온 것 치고는 연재준의 표정은 시큰둥했다.“신연우가 한 거야.”그는 처음 만날 때부터 신연우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주영문 다리 사건을 보고 받았을 때 본능적으로 가장 먼저 신연우와 현시우를 떠올렸다.그래서 이쪽 전문가인 노현재에게 부탁해서 이미 도망간 주영문을 붙잡아다가 매화 마을에 풀어놓았던 것이다.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속았
하정은은 조용히 뒷좌석 가림막을 올렸다.유월영은 그와 가림막 사이에 갇힌 자세가 되었다.공간이 비좁아서 도망갈 수도 없었다.유월영은 울먹이며 그를 밀어냈다.“왜 이래요! 놔요!”연재준은 한 손으로 그녀를 받치고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움켜잡은 채, 눈을 직시했다.“신연우를 위해서는 되지도 않은 핑계까지 갖다 붙이며 널 속인 것조차 용서하고, 나한테는 온갖 있지도 않은 죄명을 같아 붙이다니. 유월영 너 참 대단하다.”남자의 얼음장 같은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감싸며 도망가지 못하게 그녀를 옥죄었다.“소은혜가 나 때문에 너를 수림에 갖다 버렸다고 했지? 하지만 우린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왜 그걸 해명을 하고 있지?유월영은 웃음이 나왔다.“둘이 어떤 관계인지 나는 관심 없어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죠?”유월영은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리며 그의 손을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 억세게 그녀를 압박했다.“넌 항상 소문만 듣고 너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나를 천하에 악인으로 만들었어. 내가 그랬지. 네가 보는 게 다가 아니라고. 선박에서 내가 언제 너를 내주는 조건으로 프로젝트를 손에 넣겠다고 말한 적 있어?”그의 강압적인 태도에 유월영도 화가 치밀었다.“그런 얘기 하셨잖아요!”“내가 양보한다고 한 건 가면 무도회 파트너를 이야기한 거야.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으면 뭘 어떻게 말해야 하지?”“결국 난 양보도 하지 않았잖아. 처음부터 너한테 왼쪽으로 가라고 했지? 그런데 너는 어땠지?”“그건!”유월영은 이를 갈고 울먹이며 말했다.“증거도 없고 시간도 많이 흘렀으니 거짓말을 해도 아는 사람이 없겠죠. 물론 핑계를 댈 거면 그냥 대세요. 어차피 지금은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으니까요. 이거나 빨리 풀어줘요.”연재준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네가 신경 안 써도 내가 신경 쓰여. 네가 뭔데 날 원망해?”유월영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결국 그녀는 속에서 참았던 말을 입밖으로 뱉고 말았다.“3년 동안 저는 대
유월영은 본능적으로 그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공격했다.하지만 이미 한번 당했던 연재준이 두 번 기회를 줄 리 없었다.그는 그녀의 손목을 벽에 꽉 붙이고 다리를 들자 그래도 그녀의 다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유월영도 그가 많이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물론 그는 화를 안 내고 있을 때가 더 드물었다.그는 원망을 쏟아내듯이 거칠게 그녀의 숨결을 탐했다.‘왜 나를 이토록 미워하지?’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문이 열리자 연재준은 재빨리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너무 물 흐르듯이 진행되어서 유월영은 미처 반항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꼭두각시처럼 끌려 다니는 자신의 처지에 화가 났다.“왜 이래요? 이거 놓으라고요!”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연재준은 더 이상 정욕을 숨기지 않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절대 안 놔줘.”그 말에 유월영은 소름이 돋았다.“하! 처음부터 이러려고 모든 걸 꾸민 거였죠?”연재준이 웃으며 답했다.“응. 안고 싶은지 한참 됐거든.”유월영은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소리쳤다.“내가 싫다고 하면요? 또 사진 따위로 날 협박할 건가요!”방 안은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그는 어둠 속에서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매만지며 말했다.“어차피 넌 나한테 호응할 수밖에 없어.”굳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연재준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가지고 싶은 건 수단 방법 다 동원해서 가지는 거.유월영은 감정에 벅차 씩씩거리며 손으로 그의 가슴을 쳤다.연재준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녀를 빤히 내려다 보고만 있었다.결국 반항하다 지친 그녀가 먼저 힘을 풀었다. 그리고 자포자기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사진 지워요.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사진 얘기 내 앞에서 꺼내지 말아요.”이가 갈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방 안에 싸늘하게 울려퍼졌다.연재준은 그녀를 안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어차피 상처에는 방수 밴드를 붙였기에 샤워가 가능
하늘에서 마지막 한줄기 빛마저 사라지고 실내에는 무거운 어둠이 뒤덮였다.오후 다섯 시가 좀 지났는데 벌써 하늘은 시커멓게 어두워졌다.유월영은 피로를 느끼며 이불로 몸을 돌돌 말았다.눈가는 뻘겋게 부었고 얼굴에는 마르지 않는 눈물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연재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찡그린 미간을 펴주었다. 너무 피곤해서 그가 자신을 만지는데도 전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연재준은 그녀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만족감이었다. 수억에 달하는 계약서에 사인했을 때도 가질 수 없었던 만족감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유월영이 퇴사한 후로 성격이 완전히 변하고 그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면서 없던 정복 욕구가 생긴 것 같았다.자신의 앞에서 무너지는 그녀를 보면서 그는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담배를 다 피우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이 깜빡거렸다.그는 벨이 울리기 전에 다가가서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꿔버렸다.발신자는 신연우였다.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통화버튼을 눌렀다.수화기 너머로 신연우의 온화한 목소리가 전해졌다.“월영 씨, 병실에 갔는데 자리에 없어서요. 혹시 주변에 산책 나갔어요?”연재준은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아니. 유월영 지금 자고 있어.”잠시 긴 침묵이 흘렀고 연재준의 입꼬리가 괴이하게 올라갔다.수화기 너머로 신연우의 분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연재준, 유월영 씨 너 아니라도 힘든 사람이야. 대체 왜 잡고 놓아주지 않는 거지? 왜 그렇게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 거야? 너 주변에 여자들 많잖아. 혼자 조용히 지내고 싶은 사람을 가만히 놔두면 안 돼?”연재준이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그래서 걔가 원하는 조용한 삶을 너는 줄 수 있어?”“너만 가만히 놔두면 스스로 안정적인 삶을 찾아갈 거야!”“그랬군. 그래서 유월영 모르게 주영문을 처리해 버린 거군.”연재준의 목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싸늘했다.“의도는 좋지만 넌 유월영에 대해서 몰라. 개는 잔혹한 진실보다 거품
유월영은 이가 갈리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렀다.연재준은 차라리 이런 모습의 그녀가 예전의 싸늘하고 차분한 모습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머금었다.“애기야, 가만히 있어.”그의 입술에서 알싸한 담배 향기가 풍기면서 유월영은 정신이 아득해졌다.하지만 거짓이라는 것을 알기에 속지 말자고 이를 갈면서 차갑게 말했다.“그렇게 부르지 마! 역겨워!”연재준은 이 상황에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이 계속 울려대며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유월영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신연우라면 연재준과 같이 있는 것을 알고 한번 안 받으면 더 이상 통화 시도를 할 리가 없었다.그가 전화를 걸어댈수록 연재준을 자극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가 그런 판단을 했을 리 없었다.그녀는 불안한 얼굴로 바둥거렸다.“연재준! 비켜! 누구 전화인지 확인은 해야 할 것 아니야?”그는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노려보았다.멀리서도 발신자가 똑똑히 보였다.“이승연 변호사.”그 말을 들은 그녀는 급하게 그를 밀쳐냈다.이번에 연재준은 그녀를 막지 않았다. 낯익은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이혁재 아내라는 것이 떠올랐다.이승연이 유월영 아버지 사건을 맡았던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유월영은 재빨리 몸에 가운을 걸치고 바닥에 주저앉아 통화버튼을 눌렀다.“이 변호사님….”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그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이승연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월영 씨, 아버님이 사고를 당하셨어요.”유월영은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머리가 어지러웠다.이승연이 간단한 상황을 설명했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지금 영안에 있어요.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전화를 끊은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밖으로 향했다.옆에 있던 연재준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어디 가?”유월영은 거칠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내 몸에 손대지 마!”연재준은 그녀를 빤히 보며 말했다.“말 안 하면 못 나가.”유월영은 창
유월영은 부랴부랴 옷을 입고 그대로 밖으로 달려 나갔다.그녀는 어두운 길가에서 택시를 기다리며 핸드폰으로 항공편을 검색했다.가장 빠른 탑승이라고 해도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여기서 공항까지 가는 것도 한 시간이 걸렸다.유월영은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항공편을 예약한 뒤 콜택시를 불렀다.하필이면 퇴근 시간이라 콜택시도 안 잡히고 길에 오가는 택시도 없었다.그녀는 낯선 도시의 길가에 홀로 서서 반짝이는 등불들을 바라보며 절망감을 느꼈다.그러던 순간 외제차 한 대가 그녀의 앞에 멈추었다.“타.”연재준이었다.찬밥 가릴 신세가 아니었기에 유월영은 재빨리 차에 올랐다.차는 곧장 공항으로 질주했다.연재준은 덜덜 떨고 있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유월영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아무 말도 하지 마!”운전 중이던 하정은은 저도 모르게 백미러로 뒷좌석 눈치를 살폈다.연재준은 그녀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그가 옆에 다가와서 앉을 때도 유월영은 그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세 시간 뒤, 비행기가 신주 공항에 착륙했다. 유월영은 출구를 나오자 마자 택시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연재준이 다가와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내 차 타고 가. 이 시간에 택시 잡기 힘든 거 알잖아.”유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차에 오르자 하정은이 물었다.“어디로 갈까요?”“승형 로펌이요.”잠시 후, 그들을 태운 차가 로펌에 도착했다. 유월영은 차가 멈추자마자 밖으로 튀어나갔다.연재준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유월영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좀 알아봐.”“네, 대표님.”다 퇴근한 로펌 사무실에 이승연만 남아서 유월영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유월영을 보고는 따뜻한 우유를 건넸다.“일단 진정하고 이거부터 마셔요.”유월영은 우유컵을 두 손으로 붙잡고 온기를 느끼며 물었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조금 전 통화에서 이승연은
유월영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집이 여기서 안 멀어요. 택시 타면 30분 정도면 도착해요.”“최근에 계속 출장 가 있었다면서요? 서희 씨도 고향에 돌아갔으니 장기간 비어 있었던 집인데 불편해서 안 돼요.”이승연이 말했다.“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같이 병원에 가요.”유월영은 부부가 사는 집에 가기가 난감했다.이승연도 그녀의 우려를 눈치챈 건지 솔직하게 말했다.“최근에 남편이랑 싸워서 집에 안 가고 내 명의로 된 오피스텔에 혼자 있어요.”그렇다면 유월영은 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둘은 가치 로펌을 떠나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유월영은 샤워를 마친 뒤에 이승연의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웠다.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무거운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숨이 막히고 제대로 잠이 들 수 없었다.결국 그녀는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아침이 되자 접견 신청을 마친 이승연이 그녀의 방으로 와서 말했다.“이제 출발해도 돼요.”유월영은 그녀와 함께 길을 나섰다.수감자 신분이라 유현석은 일인 실에 수갑에 묶인 채로 누워 있었다.유월영은 안색이 퍼렇게 질리고 흰 머리가 부쩍 많아진 아버지를 보고 눈물이 나왔다.“월영아!”그녀를 본 유현석이 몸을 일으키려다가 고통스럽게 신음했다.유월영은 다급히 다가가서 그를 부축했다.“움직이지 마.”옆에 있던 교도관이 경고를 주었다.“마음 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유현석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교도관님!”유월영은 울먹이며 아버지를 부축해서 침대에 앉혔다.유현석은 미안해서 고개도 들지 못했다.“월영아, 네 엄마는 이 일 모르지?”“엄마는 아직 몰라. 알려서도 안 되고.”의자에 앉은 유월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물었다.“그런데 어쩌다가 수감자랑 싸움이 난 야? 이러다 추가건으로 형기가 연장될 수도 있어. 며칠만 참으면 집에 올 수 있었는데 왜 그랬어?”“나… 난 먼저 싸움을 걸지 않았어.”유현석이 다급히 말했다.“성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