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사람들은 진서준이 죽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또 다른 사람들은 반드시 처단할 것으로 생각했다.이전에는 이지성과 강성준이 도망가게 두었지만 다시 만난 이상 진서준은 절대 그들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었다.진서준은 그들의 스승 또한 봐줄 생각이 없었다.이전의 원수를 해결한 후 진서준은 링 아래에 있던 류재훈에게 물었다.“류 종사님, 저 아직 몇 경기 남았나요?”진서준의 질문에 류재훈은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아... 아직 여섯 경기 남아 있습니다.”하지만 곧 류재훈의 얼굴이 변하며 급히 말을 바꾸었다.“진 마스터님, 남은 여섯 경기는 더 이상 안 하셔도 됩니다. 이쪽에서 힘 측정만 하시면 됩니다.”“그건 규칙에 어긋나지 않나요?”진서준이 미간을 약간 찡그리며 말했다.그때 높은 자리에 앉아 있던 진서훈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규칙은 죽은 것이고 사람은 살아 있는 법이지. 누군가 불만이 있으면 직접 나를 찾아오라고 해라!”호국장군 진서훈이 진서준을 옹호하는 말을 하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 뜻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더군다나 진서준의 실력은 너무도 압도적이었다.그가 남은 여섯 경기를 모두 예정대로 치러 봉호를 얻는다고 해도 아무도 불만을 품지 않을 것이었다.문호동 같은 대종사조차 진서준의 상대가 되지 않았는데 누가 감히 나서서 치욕을 자초하겠는가?6급 대종사가 링 위에 오른다?그렇다면 위에 있는 세 명의 호국장군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었다.아무리 경지를 초월하며 겨룬다고 해도 상한선이 있었다.진서준은 진서훈을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는 그들의 진씨 일가의 태조였다.진서훈이 있는 한 진씨 일가는 사대 가문의 자리를 절대 잃지 않을 것이었다.“너무 잘됐어요! 서준 씨.”진서준이 링에서 내려오자, 허사연은 바로 달려가 그를 꽉 껴안았다.아까 진서준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허사연은 심장이 터질 뻔했다.하지만 이제 진서준이 무사하니 허사연도 안심할 수 있었다.“가자. 힘 측정하러 가야지.”진서준이 미소를 지으
이어서 검을 멘 중년 남자가 측력계 쪽으로 다가갔다.“검존? 이미 칭호를 가졌다고?”진서준이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류재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비슷합니다. 대한민국의 검수는 정말 드뭅니다. 조기강은 올해 45세인데, 이미 검의 뜻을 완성하고 4품 대종사 정점 경지에 올라섰습니다. 동북의 조씨 일가에서 나온 절세 천교지요! 그는 국경에서 혼자서 두 명의 해외 강자를 처치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검존이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지요.”류재훈의 설명을 들은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45세에 이미 4품 정점 대종사이며 검의를 크게 깨친 그는 확실히 절세 천교라고 칭할 만했다.“쳇, 우리 서준 씨는 20대인데 저 사람보다 더 강해.”허사연이 불만스럽게 말했다.진서준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선술을 수련하고 있어 무인들이 수련하는 무도와는 달랐다.만약 선술이 100% 순수한 물이라면 무인들이 수련하는 무도는 60% 이상의 혼탁한 이물을 포함한 혼합물이었다.그중의 차이는 조금만 비교해 봐도 알 수 있었다.선술 수련은 천부와 영약에 대한 요구가 극히 높았다.“그는 천교고 진 마스터님은 괴물이니까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죠!” 류재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때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그러고는 쥐 죽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모든 사람은 움푹 팬 측력계를 바라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내가 환각을 보고 있는 건가? 3만 6천 근?” ‘이게 도대체 사람인가? 괴물인가!’‘조기강은 검도만 잘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공포스러운 몸을 가지고 있는 거지?’사람들은 조기강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 전의 왕 노인도 얼굴이 하얘졌다.“역시 조씨 일가의 첫 번째 천교다.”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음속의 자신감은 이미 사라졌다.3만 6천 근, 너무도 무시무시한 숫자였다.코끼리조차도 이 주먹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었다.이후 몇 명이 다시 측정하러 나섰지만 조기강을 넘어서는 사람은
류재훈과 다른 호국사들도 깜짝 놀랐다. 16만 근의 힘은 6품 횡련 대종사만이 도달할 수 있는 힘의 기준이었다.그런데 문제는 진서준의 나이였다.“뭐야... 16만밖에 안 돼? 망가뜨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진서준은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만약 영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진서준은 전력을 다하지 않고도 측력계를 망가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주변 사람들은 진서준의 말을 듣고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망가뜨리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너를 인정할 거야!’류재훈은 정신을 차리고 진서준을 다음 테스트로 안내했다.주변의 종사와 대종사들도 함께 따라갔다.이어진 항목의 테스트에서도 진서준은 대종사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몇몇 대종사는 손을 저으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그들은 50~60년을 수련해서 지금의 실력을 쌓았지만 진서준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련했다고 해도 겨우 20년 남짓이었다.사람들은 마음속으로 허탈함을 느꼈다.하지만 허탈함을 느껴도 어찌할 수는 없었다.실력이 강한 건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모든 테스트가 끝난 후 류재훈이 진서준에게 말했다.“진 마스터님, 칭호는 3일 후 무도 포럼에 발표될 겁니다. 용존 칭호는 떼놓은 당상일 것입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진 마스터님, 현천진군이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류재훈이 진서훈이 전에 했던 말을 떠올리며 서둘러 말했다.진서준은 허사연과 일행에게 돌아서서 말했다.“사연아, 너희는 밖에서 잠시 기다려 줘. 금방 돌아올게.”“알겠어요. 밖에서 기다릴게요.” 권해철이 옆에 있는 한 진서준은 허사연과 그녀들의 안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이후 진서준은 류재훈을 따라 군사 기지의 내부로 들어갔다.“현천진군, 진 마스터님께서 오셨습니다.”류재훈이 문을 두드리며 매우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들어오세요.”진서훈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진서준과 류재훈이 들어서자 진서훈은 웃으며 말했다.“앞으로는 그를 진 마스터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용존이라고 부르세요.”
그 모든 것은 진서준을 위해서 그리고 진요한을 구하기 위해서였다.이 세상에서 진요한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오직 진서준뿐이었다.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에게 선술을 가르치는 것도 예전 진씨 일가에게 진 빚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지금 그 빚은 다 갚았다.진요한을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두 진서준에게 달려 있었다.“얘야, 너희 가족이 고생이 많다.”진서훈이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말했다.“아버지를 구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 고생은 괜찮습니다.”진서준이 담담히 웃으며 답했다.“내년 3월 신농회에서 제자를 모집할 예정이야.”“알고 있습니다. 그때 그곳에 숨어들 거예요.”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방법이 신농에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진서준이 힘으로 밀고 들어가려고 한다면 죽음밖에 없을 터였다.“얘야, 너는 네 아버지가 너무 닮았어. 가기 전에 인피 가면이 필요할 거야.”진서훈이 진지하게 말했다.진요한을 본 적 있는 사람들은 진서준을 진요한으로 오인할 것이다.오늘의 봉호전 이후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진서준과 진요한의 관계를 추측할 것이다.“인피 가면이요?”진서준은 그 이름에 소름이 돋았다.진서훈은 진서준의 반응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진짜 사람의 피부가 아니라 사람 피부와 비슷한 것인데 얼굴에 붙이면 우리 같은 노인네들도 네가 인피 가면을 썼는지 구별할 수 없을 거야.”진서준이 물었다.“그런 건 어디에서 구해야 하나요?”“네가 직접 구할 필요는 없어. 내가 사람을 보내서 받을게. 너는 이제 신분을 숨기고 편안한 곳에서 수련하다가 3월에 인피 가면을 쓰고 신농산에 가면 돼.”진서훈이 말했다.“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금운에 있는 운대산으로 가서 수련을 계속하겠습니다.”진서준도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그는 마지막 두 달 동안 자신의 실력을 조금이라도 더 키우고 싶었다.“서준아, 반드시 힘의 한계를 알아야 해!”진서훈이 진서준의 어깨를 두드렸다.진요한을 구하는 이 임무를 진서준에게 맡기는 것은 확실
진서준이 떠난 후 봉호전 참가자들의 열정은 더욱 높아졌다.진서준 덕분에 그들은 젊은이도 오래된 대종사를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젊은 무인들이 경지를 뛰어넘는 싸움에 도전했지만 대다수는 얼굴에 멍이 들고 피를 흘린 채 패배했다.하지만 몇몇 특별한 예외도 있었다.동북 조씨 일가의 조기강은 올해로 마흔다섯 살이었지만 무도계에서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속했다.마흔다섯 살의 나이에 사급 대종사에 오르는 것은 무도계에서 매우 드문 일이었다.조기강은 검술을 수련하고 있어 내공 종사보다 더 어려운 길을 걷고 있었다.오늘 봉호전에서 그는 7연승을 거두었다.마지막 상대는 매우 유명한 대종사였다.그 대종사 역시 4급이었는데 오래된 대종사여서 같은 경지에서는 적수가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더군다나 조기강은 연속으로 일곱 번 싸운 뒤 체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였다.모두가 조기강이 패배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단 세 번의 검으로 그는 오래된 대종사를 이겼다.이후 국안부에서도 조기강을 더 이상 참가시키지 않고 바로 귀가하게 했다.하루 동안 진서훈과 그 일행은 적지 않은 유망한 인재들을 발견했다.그러나 그 유망한 인재들에게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유명한 가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강남의 서씨 가문, 남서의 유씨 가문, 북서의 유씨 가문, 동북의 조씨 가문.경성의 사대 가문에서도 많은 강자들이 등장했다.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남주성의 진서준이었다.표면적인 경력만 보면 진서준은 신분이 가장 낮은 편이었다.특히 진서준이 감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모두가 더욱 놀랐다.“이게 전설의 삼십 년 하동, 삼십 년 하서, 젊은이를 얕보지 말라는 말인가?”“진 마스터님은 당연히 절세의 천교지!”“이제 호칭을 바꿔야지. 앞으로 진 마스터님 말고 용존 이라고 불러야 해!”일부 천교들은 진서준의 소식을 듣고 그를 가볍게 여기며 과장된 것으로 생각했다. 또 어떤 이들은 진서준과 겨뤄보고 싶어 했다.진서준이 정말 그렇
“그렇게 신신당부해도 듣지 않더니 이제야 급해진 거지?”은기훈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은씨 일가에서 은범이 가장 쓸모없었다.동갑내기 중에서는 이미 종사가 된 사람들도 있었는데 은범은 이제 겨우 암경에 도달한 상태였다.“문 종사가 이렇게 다쳤는데 나도 더 이상 방법없다. 살고 싶다면 그놈이 말한 대로 해라.”은기훈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아버지! 그건 은씨 일가의 체면을 완전히 잃게 하는 거잖아요!”은범은 망연자실했다.만약 그가 정말 진서준에게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다면 은씨 일가는 완전히 체면을 잃게 될 것이었다.“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할아버지에게 칠급 대종사를 요청할 거냐?”은기훈이 은범을 노려보며 질책했다.“네 할아버지가 문 종사가 이렇게 심각하게 다쳤다는 걸 알게 되면 네 가죽을 벗겨내도 시원치 않아 하실 거다!”은기훈이 자기 할아버지를 언급하자 은범은 무서워서 머리를 급히 움츠렸다.늙은 세대 사람들은 생사의 전투를 경험한 사람들로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들이었다.그들은 보통 엄격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자손들에 대한 요구도 엄했다.은범은 두 세대를 거친 인물이었고 가문도 번성하다 보니 모든 일을 하나씩 철저히 가르칠 수는 없었다.은기훈 혼자서도 세 아들과 딸 하나가 있었다.그중에서 은범이 가장 걱정되는 존재였다.“지금까지 너는 온실 속 화초였다. 이제는 비바람도 겪어봐야 해.”은기훈이 엄숙하게 말했다.“대장부는 굽혀야 할 때 굽힐 줄 알아야 한다. 네가 나중에 강해져서 진서준에게 무릎을 꿇게 하면 될 것 아니냐!”은범이 한 마디 덧붙였다.“남자는 무릎을 함부로 꿇으면 안 되잖아요.”“그럼 죽을 때까지 기다려라!”은기훈이 은범을 싸늘하게 노려보고는 바로 돌아섰다.아버지가 정말로 자신을 신경 쓰지 않자 은범은 고민하기 시작했다.한참을 생각한 끝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젠장, 무릎을 꿇는 게 뭐 대수야? 나도 할 수 있어! 나중에 기회를 잡으면 죽여버릴 거야.”밤이 깊어졌다.허사연과
진서준이 예약한 7성급 호텔에 도착했을 때 주차장은 거의 만차였다.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 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나왔기 때문에 자연히 인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또한 주차장에 있는 차들은 모두 수억 원 이상의 고급 차들이었다.심지어는 몇십억 급의 한정판 스포츠카도 몇 대 보였다.“역시 대한민국에서 잘나가는 장소여서 그런지 부자들이 많네.”진서준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이런 생활은 예전에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이제는 그의 일상이 되었고 정말 꿈만 같았다.“사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유한 장소는 경성이 아니라 명주시예요.”허사연이 수정했다.“처음 알았네.”진서준이 고개를 저었다.그는 경성에 부자들이 가장 많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을 들어본 적 없나 보네요. 경성은 대한민국의 경성이지만 명주는 전 세계적인 명주라고 했어요.”허사연이 웃으며 말했다.“비록 네티즌들의 농담이었지만 사실이기도 해요.”현재 명주는 국제적인 대도시가 되었다.해외의 뉴욕이나 런던 같은 대도시에 비길 수 있을 정도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유한 두 가문도 모두 명주에 있었다.마씨 일가와 왕씨 일가였다.두 가문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모두 익숙한 가문이었다.경성 4대 가문도 부유했지만 그들은 모두 비교적 조용하게 활동하며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게다가 경성 4대 가문은 주로 무도 쪽을 수련했기에 마씨 일가와 왕씨 일가와는 결이달랐다.마씨 가문과 왕씨 가문은 철저한 상인으로 오직 돈만을 추구했다.하지만 이 두 집안에서 후원하는 대종사도 많다.돈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마련이었고 믿을 만한 대종사를 찾아서 자신을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었다.허사연의 설명을 들은 진서준은 웃으며 말했다.“사연아, 네 덕분에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네.”허사연이 말해주지 않는다면 진서준은 언제까지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진서준 일행이 호텔 로비에 도착하자 곧바로 직원이 다가와 맞이했다.“예약했어요.”
허사연과 그녀들을 데리고 나온 것은 신나게 즐기기 위해서였다.“네... 진 선생님, 예약하신 룸은 다른 사람에게 점유 당했습니다.”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칠성급 호텔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다.일개 매니저로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만약 진서준이 화를 낸다면 그는 직장을 잃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진서준의 룸을 뺏은 사람은 그가 더 건드리기 힘든 존재였다.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그러니까 지금 우리더러 다른 식당에 가라는 건가?”매니저는 연신 머리를 저었다.“아니요. 아닙니다. 만약 급하지 않으시다면...”“엄청 급해.”진서준은 매니저의 말을 가로채며 냉정하게 말했다.“나는 지금 당장 내가 예약한 룸으로 가야겠어.”‘예약한 룸을 뺏겼는데 그 사람들이 다 먹고 나갈 때까지 기다리라는 건가? 내가 정말 자존심도 없어 보이는 건가?’매니저는 진서준이 화가 난 것을 보고 급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진 선생님, 룸을 뺏은 사람은 매우 부유한 사람이라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당신은 왜 내가 돈이 없다고 생각하죠?”진서준이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진 선생님도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사람은 상류층에 속해 있습니다. 사대 가문들과 비슷한 수준입니다!”매니저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당신이 말하는 그 사람은 사대 가문 사람은 아니죠?”“아닙니다. 그분은 명주에서 온 사람인데 왕씨 일가에 대해 아시죠? 그 가문의 도련님입니다.”매니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진서준은 미소를 지었다.허사연이 마침 명주시의 두 가문을 소개해 주었는데 이렇게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외부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현지 세력을 짓누를 수 있을까.진서준은 왕씨 일가의 아들이 얼마나 거만한지 보고 싶었다.“얘기는 이쯤하고 안내하세요.”진서준이 말했다.“그...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매니저가 울상을 했다.진서준은 매니저를 바라보며 차갑게
이제 황씨 가문엔 황현호 같은 멍청이만 남았으니 황씨 가문을 손에 넣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박씨 가문과 황씨 가문은 오래전부터 경쟁 관계였고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였다.그런데도 머리가 비어 있는 황현호는 자기가 박진강과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박진강은 황현호의 곁에 앉아 위로하기 시작했다.“너무 초조해하지 마. 너희 누나가 누군가에게 구조되었다고 했잖아? 그렇다면 그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야.”“그런데 왜 전화를 받지 않지? 밤새도록 전화를 걸었는데도 말이야.”황현호는 초조하게 말을 이어갔다.“황씨 가문의 모든 직원이 우리 누나를 찾으러 나갔지만 밤새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황현호가 아무리 생각해도 누나는 죽었거나 누군가에게 잡혀 감금당했을 가능성이 큰 것 같았다.어느 쪽이든 황현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지금 황씨 가문의 회사는 뱃사공이 없어 산으로 가는 중이었다. 황예은이 빨리 나타나지 않는다면 회사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 뻔했다.“너무 초조해하지 마. 산에 이르면 길이 있는 법이잖아.”박진강이 또 황현호를 달랬다.그때 황현호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황현호는 누나가 전화한 줄 알고 급히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하지만 발신자를 확인한 순간 황현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전화 건 사람은 회사 이사회 멤버 중 한 명인 동식 삼촌이었다.“동식 삼촌, 무슨 일이시죠?”“네 누나는 찾았어?”“아직 못 찾았습니다.”황현호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럼 일단 회사로 와.”전화 너머에서 동식 삼촌이 말했다.동식 삼촌은 황경영과 오랜 친구였고 회사 설립 초기부터 몸담아 온 원로급 인물이었다.일부 사람들은 황씨 가문에 유능한 사람이 없다면 황씨 가문의 회사는 동식 삼촌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지금 황씨 가문의 유능한 사람인 황예은이 갑자기 생사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남은 건 황현호라는 무능한 인물뿐이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사회 사람들은 슬슬 견디기 힘들어지고 있었다.“누
“진서준을 경호원으로 쓰겠다고요?”서지은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이번에 진서준이 명주시에 온 건 아주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진서준이 황예은의 경호원을 맡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다.“언니 곁에는 항상 죽청 어르신 두 분이 계셨잖아요. 근데 오늘 밤엔 그분들이 왜 따라오지 않았어요?”서지은이 문득 황예은 곁을 지키던 육급 정점 대종사 두 명을 떠올리며 물었다.“그 두 분은 요즘 칠급 대종사 경지에 오르려고 폐관 수련 중이야.”황예은이 답했다.신농산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청 어르신은 황예은을 찾아와 폐관 수련에 들어가겠다고 알렸다.이 두 사람이 동시에 칠급 대종사로 올라선다면 황예은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은 자기 실력을 몇 번이나 재고 또 재야 할 것이다.그러나 뜻밖에도 누군가가 이 두 사람의 폐관 시기를 노리고 황예은을 공격한 것이다.황씨 가문에는 죽청 어르신 외에도 팔급 대종사 한 마스터가 있었다.하지만 한 마스터는 황경영을 따라 해외에 나가 있어 지금 명주시에 없었다.그 외의 대종사들은 실력이 평범했고 진서준처럼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사람은 없었다.게다가 진서준은 의술까지 겸비하고 있어 설령 독에 걸린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내일 아침 일어나면 진서준한테 직접 물어봐요.”서지은은 진서준을 대신해 결정을 내릴 권리가 없었다.사실 서지은은 마음속으로 이 제안을 반대했다.겨우 진서준과 단둘이 있을 기회가 생겼는데 황예은 때문에 깨져버린 것도 모자라 이젠 경호원까지 맡으라고 한다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황예은은 명주시에서 외모와 몸매가 모두 최상급으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서지은은 언젠가 진서준이 황예은의 유혹에 넘어가 버릴까 봐 내심 걱정되었다.허사연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서울시에서 급히 달려올 게 뻔했다.“일단 오늘 밤은 여기서 묵고 가세요.”서지은이 대화를 마무리했다.그날 밤, 황예은은 아주 달콤하게 잠들었지만 그녀의 동생 황현호는 급한 마음에 미칠 뻔했다.시장은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누구나 범인일 수 있었다.박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황씨 가문의 적도 수없이 많았다.“그럼 오늘 저녁은 누구랑 먹었어요?”서지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우리 동생이랑 먹었어.”서지은은 그 대답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동공이 흔들리며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명문대가에서는 혈육 사이에 관계가 틀어져서 원수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황씨 가문이 대한민국 최고 재벌 가문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황현호가 자기 누나를 질투해 이런 일을 벌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황예은은 서지은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우리 동생은 권력이나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동생이 그런 것에 환장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황씨 가문을 이끌 기회는 없었을 거야. 다만 내가 가장 우려하는 건 우리 동생이 멍청하게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거야. 내 부하들이 말하길, 요즘 들어 황현호가 박서명 아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하더라.”황예은과 황현호 남매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황현호에게 있어서 황예은은 누나인 동시에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황경영이 황현호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황예은은 그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다.황현호가 황예은을 해치려고 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단, 황현호가 누군가에게 이용당하지 않았다면 말이다.“현호 씨 바보 아니에요? 황씨 가문이랑 박씨 가문 사이가 어떤지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죠?”서지은이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강남 서씨 가문 아가씨인 서지은조차도 황씨 가문과 박씨 가문 사이의 악연을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 황씨 가문의 직계인 황현호는 더더욱 이를 모를 리 없었다.“지난번에 내가 현호를 신농산에서 데리고 온 후로 그 애는 무도에 심취해서 그 김평안이라는 남자를 직접 쓰러뜨리고 싶다고 했어. 그 뒤로 현호는 무도 수련에 미쳐버린 것처럼 보였어.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 같았지. 박서명 아들 중 한 명이 엄청난 수련법을 얻었다고 하더라고. 우리 그 멍청한 동생은 그
“황예은 씨가 몸에 흉터를 남기고 싶으면 다른 사람한테 맡기세요.”진서준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황예은의 몸에는 몇 군데나 총상이 남아 있었고 그 흔적은 꽤나 눈에 띄었다.완벽주의자인 황예은에게 있어서 가장 참기 힘든 것은 몸에 흉터가 남는 것이었다.만약 흉터를 없애지 못한다면 황예은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잠에서 깨어날 게 분명했다.잠시 고민하던 황예은은 이를 악물고 결정을 내렸다.“좋아요, 이번에도 진서준 씨가 마음대로 해보세요.”어차피 이 남자는 이미 볼 것도 다 봤고 만질 것도 다 만진 남자였다.이런 사소한 것에 연연해 몸에 흉터가 남는다면 평생 후회할 게 뻔했다.진서준은 황예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불만스럽게 말했다.“황예은 씨 몸에 있는 흉터를 없애주는 게 어떻게 내가 제멋대로 하는 겁니까? 제가 뭐 황예은 씨 몸을 좀 본다고 해서 황예은 씨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요.”“하지만 진서준 씨는 본 것만이 아니라 만지기까지 했잖아요.”황예은이 억울하다는 듯 반박했다.“그건 다 황예은 씨를 살리려고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진서준은 진심으로 화나기 시작했다.“황예은 씨가 이런 사람인 줄 알았다면 그때 구하지 말 걸 그랬네요.”지금까지 진서준이 구해준 사람들은 전부 감사의 인사를 연발했는데 황예은처럼 은혜를 원망으로 갚는 사람은 처음이었다.황예은도 사실 진서준이 자기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자기가 지금까지 지켜온 순결이 훼손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됐어, 서준아. 너 어젯밤 내내 고생했으니까 이제 가서 좀 쉬어.”서지은이 진서준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예은 언니, 잠시만 기다려요. 먼저 서준을 방으로 데려다줄게요.”진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지은을 따라 방으로 갔다.방으로 돌아오자 서지은이 조용히 말했다.“서준아, 예은 언니한테 조금만 양보해 줘. 언니는 성격이 워낙 강해서 그래. 그래도 내가 보기엔 네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어.”서지은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
별장에서 황예은은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다만 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옷이 거의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상반신에는 레이스가 달린 검은 속옷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이 속옷은 서지은이 가져온 속옷이었고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이었다.그리고 하반신에는 아까 진서준이 마사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두 여자는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를 보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황예은의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지금 심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황예은은 자기 알몸을 보고 있는 이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사실 이번이 진서준에게 두 번째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순간이란 걸 몰랐다.“서준아, 왜 노크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어...”서지은이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서지은은 진서준이 약왕 이용진과 저녁 식사를 오래 하고 밤늦게나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진서준이 너무 일찍 돌아온 것이다.“언제까지 더 볼 생각이야?”황예은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코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린 뒤 말했다.“먼저 나가 있을게. 옷을 다 갈아입었으면 날 불러.”진서준이 나간 뒤, 황예은은 서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누구야?”“진서준이에요. 제 남자친구거든요.”서지은이 솔직하게 대답하며 한마디 보탰다.“예은 언니, 사실 언니 목숨도 진서준이 구한 거예요.”그 말을 듣자 황예은의 눈에서 뿜어나오던 냉기가 다소 누그러졌다.어쨌든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너무 차가운 태도로 대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황예은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내 옷은 네가 벗긴 거야?”서지은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서준이 언니를 치료할 때 상황이 너무 위급해서 먼저 언니를 여기 데려온 거예요. 나도 여기 들어와 치료 과정을 볼 때 서준이 언니를 추행하는 줄 알았어
지금까지도 진서준은 박씨 가문의 의도가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박씨 가문의 일은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진서준의 우선순위는 약재를 구하고 모든 정력을 간첩을 잡는 데 쏟아부어야 했다.호텔을 떠난 진서준은 이용진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30여 분을 달린 끝에 진서준 일행은 마침내 이용진의 장원에 도착했다.이용진의 장원 면적은 서씨 가문 것만큼 크지 않았지만 화려함만큼은 서씨 가문을 능가할 기세였다.각종 명인의 고화와 진귀한 보물들이 온 사방에 진열되어 있었다.이 모든 보물은 하나하나가 최소 10억 이상의 진품이었고 적어도 진서준이 자세히 살펴본 결과 위조품은 하나도 없었다.이 보물들만 해도 자산 가치가 조 단위를 뛰어넘을 될 터였다.“용존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만 하세요.”이용진이 호탕한 어조로 말했다.“난 이런 것들에는 관심 없습니다.”진서준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군요...”이용진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돈을 통해 진서준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 만들고자 했던 이용진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진서준과 친분이 두터워지면 나중에 치료를 부탁하기도 훨씬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이용진의 속셈을 꿰뚫어 본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약왕님 체내 내상이 다 나으면 매주 두 번씩 무도를 연마하고 한 달에 다른 사람과 한 번 실력을 겨루는 수준으로 수련하면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약왕님 무도 실력도 늘어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앞으로 꼭 용존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이용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수많은 별장을 지나 진서준은 이용진을 따라 규모가 어마어마한 냉장실로 들어갔다.냉장실 안에는 사람 키 절반 정도 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각 기둥 위에는 희귀한 약재들이 놓여 있었고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었다.진서준이 자세히 둘러보니 여기에 진열된 약재는 성약당의 것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희귀성만큼은 성약당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 사람은 바로 어제 서울시에서 체포되었던 박운기였다.진서준 역시 이렇게 빨리 박운기를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다.“운기야, 저 사람 알아?”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박운기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바로 저놈이 사람들을 이끌고 내 계획을 망쳤습니다.”박운기가 이를 갈며 말했다.만약 진서준이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박운기의 계획은 이미 성공했을 것이다.그랬다면 박씨 가문으로 돌아갈 때는 차가운 시선 대신 온갖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이번에 서울시에서의 임무를 맡기 위해 박운기는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경쟁했다.모두가 보기에 이 임무는 그야말로 공을 세우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쉬운 임무를 박운기가 망쳐버렸다.망친 것도 모자라 박씨 가문은 관계를 동원해 박운기를 구출해야만 했다.공을 세워야 할 장사가 완전히 손해만 본 장사로 탈바꿈한 것이다.박씨 가문의 계획을 망친 장본인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자 중년 남자는 진서준을 쓱 훑어보고는 냉랭하게 비웃었다.“전설 속의 용존님,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하시는군요.”진서준은 그 남자를 힐끗 보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중년 남자의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잠깐 스쳤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약왕님은 언제부터 용존님과 친구가 되셨습니까?”중년 남자는 이용진을 발견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박재명, 분명히 말해두지. 용존님 일은 바로 내 일이야. 감히 용존님에게 시비를 걸려고 한다면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용진이 싸늘하게 대응했다.박재명은 박씨 가문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아니었다.그는 단지 박서명의 넷째 동생일 뿐이었다.그래서 이용진은 굳이 박재명을 깍듯하게 모시며 아부할 필요가 없었다.이용진의 말에 박재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약왕님, 굳이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박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이용진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