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사람들은 진서준이 죽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또 다른 사람들은 반드시 처단할 것으로 생각했다.이전에는 이지성과 강성준이 도망가게 두었지만 다시 만난 이상 진서준은 절대 그들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었다.진서준은 그들의 스승 또한 봐줄 생각이 없었다.이전의 원수를 해결한 후 진서준은 링 아래에 있던 류재훈에게 물었다.“류 종사님, 저 아직 몇 경기 남았나요?”진서준의 질문에 류재훈은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아... 아직 여섯 경기 남아 있습니다.”하지만 곧 류재훈의 얼굴이 변하며 급히 말을 바꾸었다.“진 마스터님, 남은 여섯 경기는 더 이상 안 하셔도 됩니다. 이쪽에서 힘 측정만 하시면 됩니다.”“그건 규칙에 어긋나지 않나요?”진서준이 미간을 약간 찡그리며 말했다.그때 높은 자리에 앉아 있던 진서훈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규칙은 죽은 것이고 사람은 살아 있는 법이지. 누군가 불만이 있으면 직접 나를 찾아오라고 해라!”호국장군 진서훈이 진서준을 옹호하는 말을 하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 뜻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더군다나 진서준의 실력은 너무도 압도적이었다.그가 남은 여섯 경기를 모두 예정대로 치러 봉호를 얻는다고 해도 아무도 불만을 품지 않을 것이었다.문호동 같은 대종사조차 진서준의 상대가 되지 않았는데 누가 감히 나서서 치욕을 자초하겠는가?6급 대종사가 링 위에 오른다?그렇다면 위에 있는 세 명의 호국장군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었다.아무리 경지를 초월하며 겨룬다고 해도 상한선이 있었다.진서준은 진서훈을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는 그들의 진씨 일가의 태조였다.진서훈이 있는 한 진씨 일가는 사대 가문의 자리를 절대 잃지 않을 것이었다.“너무 잘됐어요! 서준 씨.”진서준이 링에서 내려오자, 허사연은 바로 달려가 그를 꽉 껴안았다.아까 진서준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허사연은 심장이 터질 뻔했다.하지만 이제 진서준이 무사하니 허사연도 안심할 수 있었다.“가자. 힘 측정하러 가야지.”진서준이 미소를 지으
이어서 검을 멘 중년 남자가 측력계 쪽으로 다가갔다.“검존? 이미 칭호를 가졌다고?”진서준이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류재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비슷합니다. 대한민국의 검수는 정말 드뭅니다. 조기강은 올해 45세인데, 이미 검의 뜻을 완성하고 4품 대종사 정점 경지에 올라섰습니다. 동북의 조씨 일가에서 나온 절세 천교지요! 그는 국경에서 혼자서 두 명의 해외 강자를 처치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검존이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지요.”류재훈의 설명을 들은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45세에 이미 4품 정점 대종사이며 검의를 크게 깨친 그는 확실히 절세 천교라고 칭할 만했다.“쳇, 우리 서준 씨는 20대인데 저 사람보다 더 강해.”허사연이 불만스럽게 말했다.진서준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선술을 수련하고 있어 무인들이 수련하는 무도와는 달랐다.만약 선술이 100% 순수한 물이라면 무인들이 수련하는 무도는 60% 이상의 혼탁한 이물을 포함한 혼합물이었다.그중의 차이는 조금만 비교해 봐도 알 수 있었다.선술 수련은 천부와 영약에 대한 요구가 극히 높았다.“그는 천교고 진 마스터님은 괴물이니까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죠!” 류재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때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그러고는 쥐 죽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모든 사람은 움푹 팬 측력계를 바라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내가 환각을 보고 있는 건가? 3만 6천 근?” ‘이게 도대체 사람인가? 괴물인가!’‘조기강은 검도만 잘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공포스러운 몸을 가지고 있는 거지?’사람들은 조기강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 전의 왕 노인도 얼굴이 하얘졌다.“역시 조씨 일가의 첫 번째 천교다.”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음속의 자신감은 이미 사라졌다.3만 6천 근, 너무도 무시무시한 숫자였다.코끼리조차도 이 주먹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었다.이후 몇 명이 다시 측정하러 나섰지만 조기강을 넘어서는 사람은
류재훈과 다른 호국사들도 깜짝 놀랐다. 16만 근의 힘은 6품 횡련 대종사만이 도달할 수 있는 힘의 기준이었다.그런데 문제는 진서준의 나이였다.“뭐야... 16만밖에 안 돼? 망가뜨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진서준은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만약 영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진서준은 전력을 다하지 않고도 측력계를 망가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주변 사람들은 진서준의 말을 듣고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망가뜨리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너를 인정할 거야!’류재훈은 정신을 차리고 진서준을 다음 테스트로 안내했다.주변의 종사와 대종사들도 함께 따라갔다.이어진 항목의 테스트에서도 진서준은 대종사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몇몇 대종사는 손을 저으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그들은 50~60년을 수련해서 지금의 실력을 쌓았지만 진서준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련했다고 해도 겨우 20년 남짓이었다.사람들은 마음속으로 허탈함을 느꼈다.하지만 허탈함을 느껴도 어찌할 수는 없었다.실력이 강한 건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모든 테스트가 끝난 후 류재훈이 진서준에게 말했다.“진 마스터님, 칭호는 3일 후 무도 포럼에 발표될 겁니다. 용존 칭호는 떼놓은 당상일 것입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진 마스터님, 현천진군이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류재훈이 진서훈이 전에 했던 말을 떠올리며 서둘러 말했다.진서준은 허사연과 일행에게 돌아서서 말했다.“사연아, 너희는 밖에서 잠시 기다려 줘. 금방 돌아올게.”“알겠어요. 밖에서 기다릴게요.” 권해철이 옆에 있는 한 진서준은 허사연과 그녀들의 안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이후 진서준은 류재훈을 따라 군사 기지의 내부로 들어갔다.“현천진군, 진 마스터님께서 오셨습니다.”류재훈이 문을 두드리며 매우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들어오세요.”진서훈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진서준과 류재훈이 들어서자 진서훈은 웃으며 말했다.“앞으로는 그를 진 마스터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용존이라고 부르세요.”
그 모든 것은 진서준을 위해서 그리고 진요한을 구하기 위해서였다.이 세상에서 진요한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오직 진서준뿐이었다.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에게 선술을 가르치는 것도 예전 진씨 일가에게 진 빚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지금 그 빚은 다 갚았다.진요한을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두 진서준에게 달려 있었다.“얘야, 너희 가족이 고생이 많다.”진서훈이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말했다.“아버지를 구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 고생은 괜찮습니다.”진서준이 담담히 웃으며 답했다.“내년 3월 신농회에서 제자를 모집할 예정이야.”“알고 있습니다. 그때 그곳에 숨어들 거예요.”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 방법이 신농에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진서준이 힘으로 밀고 들어가려고 한다면 죽음밖에 없을 터였다.“얘야, 너는 네 아버지가 너무 닮았어. 가기 전에 인피 가면이 필요할 거야.”진서훈이 진지하게 말했다.진요한을 본 적 있는 사람들은 진서준을 진요한으로 오인할 것이다.오늘의 봉호전 이후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진서준과 진요한의 관계를 추측할 것이다.“인피 가면이요?”진서준은 그 이름에 소름이 돋았다.진서훈은 진서준의 반응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진짜 사람의 피부가 아니라 사람 피부와 비슷한 것인데 얼굴에 붙이면 우리 같은 노인네들도 네가 인피 가면을 썼는지 구별할 수 없을 거야.”진서준이 물었다.“그런 건 어디에서 구해야 하나요?”“네가 직접 구할 필요는 없어. 내가 사람을 보내서 받을게. 너는 이제 신분을 숨기고 편안한 곳에서 수련하다가 3월에 인피 가면을 쓰고 신농산에 가면 돼.”진서훈이 말했다.“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금운에 있는 운대산으로 가서 수련을 계속하겠습니다.”진서준도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그는 마지막 두 달 동안 자신의 실력을 조금이라도 더 키우고 싶었다.“서준아, 반드시 힘의 한계를 알아야 해!”진서훈이 진서준의 어깨를 두드렸다.진요한을 구하는 이 임무를 진서준에게 맡기는 것은 확실
진서준이 떠난 후 봉호전 참가자들의 열정은 더욱 높아졌다.진서준 덕분에 그들은 젊은이도 오래된 대종사를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젊은 무인들이 경지를 뛰어넘는 싸움에 도전했지만 대다수는 얼굴에 멍이 들고 피를 흘린 채 패배했다.하지만 몇몇 특별한 예외도 있었다.동북 조씨 일가의 조기강은 올해로 마흔다섯 살이었지만 무도계에서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속했다.마흔다섯 살의 나이에 사급 대종사에 오르는 것은 무도계에서 매우 드문 일이었다.조기강은 검술을 수련하고 있어 내공 종사보다 더 어려운 길을 걷고 있었다.오늘 봉호전에서 그는 7연승을 거두었다.마지막 상대는 매우 유명한 대종사였다.그 대종사 역시 4급이었는데 오래된 대종사여서 같은 경지에서는 적수가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더군다나 조기강은 연속으로 일곱 번 싸운 뒤 체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였다.모두가 조기강이 패배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단 세 번의 검으로 그는 오래된 대종사를 이겼다.이후 국안부에서도 조기강을 더 이상 참가시키지 않고 바로 귀가하게 했다.하루 동안 진서훈과 그 일행은 적지 않은 유망한 인재들을 발견했다.그러나 그 유망한 인재들에게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유명한 가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강남의 서씨 가문, 남서의 유씨 가문, 북서의 유씨 가문, 동북의 조씨 가문.경성의 사대 가문에서도 많은 강자들이 등장했다.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남주성의 진서준이었다.표면적인 경력만 보면 진서준은 신분이 가장 낮은 편이었다.특히 진서준이 감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모두가 더욱 놀랐다.“이게 전설의 삼십 년 하동, 삼십 년 하서, 젊은이를 얕보지 말라는 말인가?”“진 마스터님은 당연히 절세의 천교지!”“이제 호칭을 바꿔야지. 앞으로 진 마스터님 말고 용존 이라고 불러야 해!”일부 천교들은 진서준의 소식을 듣고 그를 가볍게 여기며 과장된 것으로 생각했다. 또 어떤 이들은 진서준과 겨뤄보고 싶어 했다.진서준이 정말 그렇
“그렇게 신신당부해도 듣지 않더니 이제야 급해진 거지?”은기훈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은씨 일가에서 은범이 가장 쓸모없었다.동갑내기 중에서는 이미 종사가 된 사람들도 있었는데 은범은 이제 겨우 암경에 도달한 상태였다.“문 종사가 이렇게 다쳤는데 나도 더 이상 방법없다. 살고 싶다면 그놈이 말한 대로 해라.”은기훈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아버지! 그건 은씨 일가의 체면을 완전히 잃게 하는 거잖아요!”은범은 망연자실했다.만약 그가 정말 진서준에게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다면 은씨 일가는 완전히 체면을 잃게 될 것이었다.“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할아버지에게 칠급 대종사를 요청할 거냐?”은기훈이 은범을 노려보며 질책했다.“네 할아버지가 문 종사가 이렇게 심각하게 다쳤다는 걸 알게 되면 네 가죽을 벗겨내도 시원치 않아 하실 거다!”은기훈이 자기 할아버지를 언급하자 은범은 무서워서 머리를 급히 움츠렸다.늙은 세대 사람들은 생사의 전투를 경험한 사람들로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들이었다.그들은 보통 엄격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자손들에 대한 요구도 엄했다.은범은 두 세대를 거친 인물이었고 가문도 번성하다 보니 모든 일을 하나씩 철저히 가르칠 수는 없었다.은기훈 혼자서도 세 아들과 딸 하나가 있었다.그중에서 은범이 가장 걱정되는 존재였다.“지금까지 너는 온실 속 화초였다. 이제는 비바람도 겪어봐야 해.”은기훈이 엄숙하게 말했다.“대장부는 굽혀야 할 때 굽힐 줄 알아야 한다. 네가 나중에 강해져서 진서준에게 무릎을 꿇게 하면 될 것 아니냐!”은범이 한 마디 덧붙였다.“남자는 무릎을 함부로 꿇으면 안 되잖아요.”“그럼 죽을 때까지 기다려라!”은기훈이 은범을 싸늘하게 노려보고는 바로 돌아섰다.아버지가 정말로 자신을 신경 쓰지 않자 은범은 고민하기 시작했다.한참을 생각한 끝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젠장, 무릎을 꿇는 게 뭐 대수야? 나도 할 수 있어! 나중에 기회를 잡으면 죽여버릴 거야.”밤이 깊어졌다.허사연과
진서준이 예약한 7성급 호텔에 도착했을 때 주차장은 거의 만차였다.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 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나왔기 때문에 자연히 인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또한 주차장에 있는 차들은 모두 수억 원 이상의 고급 차들이었다.심지어는 몇십억 급의 한정판 스포츠카도 몇 대 보였다.“역시 대한민국에서 잘나가는 장소여서 그런지 부자들이 많네.”진서준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이런 생활은 예전에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이제는 그의 일상이 되었고 정말 꿈만 같았다.“사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유한 장소는 경성이 아니라 명주시예요.”허사연이 수정했다.“처음 알았네.”진서준이 고개를 저었다.그는 경성에 부자들이 가장 많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말을 들어본 적 없나 보네요. 경성은 대한민국의 경성이지만 명주는 전 세계적인 명주라고 했어요.”허사연이 웃으며 말했다.“비록 네티즌들의 농담이었지만 사실이기도 해요.”현재 명주는 국제적인 대도시가 되었다.해외의 뉴욕이나 런던 같은 대도시에 비길 수 있을 정도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유한 두 가문도 모두 명주에 있었다.마씨 일가와 왕씨 일가였다.두 가문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모두 익숙한 가문이었다.경성 4대 가문도 부유했지만 그들은 모두 비교적 조용하게 활동하며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게다가 경성 4대 가문은 주로 무도 쪽을 수련했기에 마씨 일가와 왕씨 일가와는 결이달랐다.마씨 가문과 왕씨 가문은 철저한 상인으로 오직 돈만을 추구했다.하지만 이 두 집안에서 후원하는 대종사도 많다.돈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마련이었고 믿을 만한 대종사를 찾아서 자신을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었다.허사연의 설명을 들은 진서준은 웃으며 말했다.“사연아, 네 덕분에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네.”허사연이 말해주지 않는다면 진서준은 언제까지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진서준 일행이 호텔 로비에 도착하자 곧바로 직원이 다가와 맞이했다.“예약했어요.”
허사연과 그녀들을 데리고 나온 것은 신나게 즐기기 위해서였다.“네... 진 선생님, 예약하신 룸은 다른 사람에게 점유 당했습니다.”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칠성급 호텔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다.일개 매니저로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만약 진서준이 화를 낸다면 그는 직장을 잃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진서준의 룸을 뺏은 사람은 그가 더 건드리기 힘든 존재였다.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그러니까 지금 우리더러 다른 식당에 가라는 건가?”매니저는 연신 머리를 저었다.“아니요. 아닙니다. 만약 급하지 않으시다면...”“엄청 급해.”진서준은 매니저의 말을 가로채며 냉정하게 말했다.“나는 지금 당장 내가 예약한 룸으로 가야겠어.”‘예약한 룸을 뺏겼는데 그 사람들이 다 먹고 나갈 때까지 기다리라는 건가? 내가 정말 자존심도 없어 보이는 건가?’매니저는 진서준이 화가 난 것을 보고 급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진 선생님, 룸을 뺏은 사람은 매우 부유한 사람이라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당신은 왜 내가 돈이 없다고 생각하죠?”진서준이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진 선생님도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사람은 상류층에 속해 있습니다. 사대 가문들과 비슷한 수준입니다!”매니저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당신이 말하는 그 사람은 사대 가문 사람은 아니죠?”“아닙니다. 그분은 명주에서 온 사람인데 왕씨 일가에 대해 아시죠? 그 가문의 도련님입니다.”매니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진서준은 미소를 지었다.허사연이 마침 명주시의 두 가문을 소개해 주었는데 이렇게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외부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현지 세력을 짓누를 수 있을까.진서준은 왕씨 일가의 아들이 얼마나 거만한지 보고 싶었다.“얘기는 이쯤하고 안내하세요.”진서준이 말했다.“그...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매니저가 울상을 했다.진서준은 매니저를 바라보며 차갑게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
아침, 설표 특전대 기지.단잠에 빠져 있던 소정태와 고인권 등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군부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회의실에 집합했다.“어젯밤, 묘강에서 폭동이 발생했어. 그러나 배논국 군부가 폭동을 단숨에 진압하며 묘강은 다시 배논국의 영토로 돌아갔어.”상부의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여덟 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소정태 일행은 서남 국경에서 묘강의 사수들과 적지 않게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다들 묘강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미친놈일 뿐만 아니라 주술과 독충술까지 능숙히 다루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자기들만의 군대와 탱크와 같은 대형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배논국 군부가 강제로 공격했다간 양측 모두 피바다가 될 게 뻔했다.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묘강이 평정되다니 너무나 기묘한 일이었다.“혹시... 진 교관이 한 일이 아닐까?”고인권이 불쑥 입을 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여덟 사령관은 진서준이 묘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어마어마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설, 설마 그랬겠어? 진 교관님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묘강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잖아?”누군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그건 너무 황당한 얘기야. 게다가 진 교관이 대체 어떻게 묘강에 갔단 말이야? 그곳은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어서 전신전 병사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봐.”소정태가 갑자기 말했다.“너희들 기억하지? 예전에 너희가 설표 특전대가 최고 특전대로 올라설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근데 진 교관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어, 그것도 한 달도 안 걸려서 말이야. 지금도 난 똑같이 믿어. 진 교관님은 묘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소정태는 진서준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소정태는 그야말로 진서준의 열렬한 팬이었다.“그럼, 진 교관님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적기가 포착됐고 곧이어 포탄이 몇 발 날아왔다.조종사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다.쾅!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튕기며 대낮처럼 환해졌다.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오스프리 전투기 두 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문기는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유문기가 두려워하는 건 오스프리 전투기가 아니라 바로 그 괴물 같은 존재, 진서준이었다.묘왕은 자기 비장 카드인 오스프리 전투기가 파괴된 것을 보며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누가 한 짓이야? 어떤 미친놈이 감히 내 전투기를 부쉈어?”그 순간, 배논국 군대 로고가 새겨진 전투기 수십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이 광경에 묘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아까 상황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걸...’전투기 편대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대규모 부대가 들이닥쳤다.지도자를 잃은 묘강은 머리를 잃은 파리 떼처럼 혼란에 빠졌다.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진서준은 더 이상 이들과 놀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잡고 단 일격으로 묘왕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눈을 뜬 채 죽은 묘왕의 눈에는 끝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묘왕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을 수 없었다.“날 죽여.”이때의 유기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유기철이 본인이 아무리 애원해도 진서준이 살려주지 않을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넌 네 친조카까지 해쳤어. 널 만 번 죽여도 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야.”진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다.“난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널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게 해주지.”그 말과 함께 진서준은 손바닥으로 유기철의 가슴을 내리쳤다.유기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기철은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는 건 두렵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유문기 일행은 순간 얼어붙었다.유문기와 묘왕은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그들의 공동의 적이었다.진서준이 살아있다면 그들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유문기와 묘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묘왕과 유기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두 사람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너 폭탄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야?”유문기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방금 폭탄이 터진 후, 묘왕 혼자만 폭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유문기는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유문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문기의 예측은 현실을 완전히 빗나갔다.“네 생각에 그 포탄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네 눈엔 내가 저 늙은 영감탱이만도 못해 보이나?”영감탱이는 당연히 묘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진서준, 네가 묘왕을 죽여준다면 내가 묘강의 재산 절반을 네게 주마. 어때?”진서준과 맞설 수 없음을 깨달은 유문기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바로 진서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진서준을 자기편으로 영입하면 진서준이 자기를 건드릴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묘강의 재산은 거의 배논국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배논국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였기에 그 재산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하지만 진서준에게 이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진서준이 이번에 온 이유는 단 두 개, 유문기를 죽이고 묘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진서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더군다나 묘강의 돈은 대부분 불법적인 경로에서 온 더러운 돈이었다.그런 돈은 진서준이 원하지 않았다.유문기가 진서준을 설득하려는 걸 본 묘왕은 즉시 눈을 굴리며 외쳤다.“이봐 청년, 네가 저놈을 죽인다면 내가 묘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어. 사실 너와 나 사이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어. 유씨
묘왕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옷은 다 찢어졌으며 고약한 타는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묘왕의 옷 속에 숨어 있던 독충들이 조금 전의 고온에 의해 증발한 냄새였다.지금의 묘왕은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 같았고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소리쳤다.“아버지, 저놈을 죽여요! 저놈을 죽이면 우리는 묘강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유기철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내가 묘왕을 공격하라고?”유기철의 단전도 파괴되어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제 단전도 저 진서준이란 자에게 쥐어박혀서 망가졌어요. 제가 공격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버지를 시키겠어요?”유문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문기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묘왕을 죽이고 싶었다.그동안 유문기는 묘왕에게 개처럼 부려지며 살아왔다.때때로 독을 시험하는 일도 겪었는데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몇 년째 묘왕을 죽이고 싶었던 유문기는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방금 진서준에게 단전이 파괴되어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내 단전도 파괴된 거 잊었어?”유기철의 말에 유문기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이걸 드시면 일시적으로 예전의 힘을 조금 되찾을 수 있습니다.”유기철은 약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이거 부작용 없겠지?”부작용이 없다면 유문기는 자기가 먼저 먹었을 것이다.“부작용 있습니다. 먹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폐인이 됩니다.”유문기는 솔직하게 부작용을 실토했다.“아버지. 지금 이게 우리 유일한 기회예요. 저놈을 죽이고 제가 묘왕이 되면 뼈가 다 부서져도 제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놈 손에 죽을 겁니다.”유문기의 분석을 듣자 유미철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묘왕의 손에 죽거나 이 기회에 한 번 싸워보고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기철은 더 이상 망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