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같은 사람들에게 여자는 그저 한낱 노리개에 불과했다.진광이 이번에 자리를 만들며 배수정을 부른 것은 배수정이 적극적으로 협력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그렇게 된다면 더 많은 자세를 시도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만약 배수정을 억지로 취하려고 했다면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자리를 만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아무 종사나 찾아 배수정을 납치해 오면 될 일이었다.“저 사람들한테 애원할 필요 없어요. 조금 있으면 저 사람들이 우리한테 애원할 거예요. 저한테 맡기시고 먼저 누워서 쉬세요.”진서준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배수정에게 마음 놓고 쉬라고 했다.하지만 지금 이 판국에 배수정이 마음 편히 쉴 수 있을 리 만무했다.진서준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임소룡이 데려온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삼급 무도 대종사임과 동시에 횡련 종사였다.경성의 무인은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분위기가 삽시간에 활시위를 잡아당긴 듯 팽팽해졌다.중년 남자가 손을 쓰려고 할 때, 룸 입구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만해!”‘누가 이렇게 겁을 상실했을까? 감히 임씨 가문 도련님의 일에 끼어들다니...’모두들 같은 생각을 하며 호기심에 고개를 돌렸다.용모도, 몸매도 배수정에게 밀리지 않는 여자가 걸어 들어왔다.여자의 뒤에는 백방의 동안 노인이 있었다.룸에 들어선 사람을 본 진서준이 놀랐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진서준이 의로 맺은 동생인 유정이었다.“오빠!”유정이 기뻐하며 진서준의 옆으로 왔다.“경성에는 어쩐 일이야?”진서준이 호기심에 물었다.지금은 경성이 제일 복잡할 때라는 것을 유기명이 모를 리는 없었건만, 어떻게 이런 시국에 유정을 경성으로 보냈을지 의문이었다.“제가 오겠다고 했어요.”유정이 말을 이었다.“이 기회를 빌려 세상을 제대로 보고 싶었어요. 제 안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할아버지가 따라오셨거든요.”유정의 안전을 염려한 유기명은 서산객을 유정과 함께 경성으로 보냈다.서산객은 서남 제일의 6급 정점에 있는 대종사였다.서산객이 있는 한
진광도 이어 협박했다.“유정 씨, 유씨 가문의 세력이 작지는 않지만 여기는 경성입니다. 진씨 가문이 몰락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여전히 4대 가문 중 하나입니다. 유씨 가문에서 두 가문을 동시에 상대할 실력을 갖추고 있나요?”이 시간 동안 유정도 유씨 가문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그녀도 평범한 사람에서 무인으로 변했다.대한민국 세력의 분포에 대해서는 유정이 진서준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실력으로 따지면 유씨 가문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제일 가는 가문도 경성의 4대 가문과 비교할 수 없었다.재력으로 따진다면 명주의 마씨 가문 왕씨 가문만이 4대 가문에 비견할 수 있었다.어느 가문도 감히 경성의 4대 가문에 속해 있는 두 가문을 동시에 건드릴 수는 없었다.하지만 유정 마음속에서 진서준의 지위는 보통이 아니었다.유정은 절대 다른 사람이 진서준을 다치게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그녀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진서준을 보호하려 했다.“그럼 우리 서씨 가문까지 합세하면?”서지은이 갑자기 걸어 들어왔다.임소룡과 진광은 서지은을 바라보며 낯이 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서씨 가문? 설마 강남 서씨 가문 사람이에요?”임소룡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래요. 서광문의 딸, 서지은입니다.”서지은이 진서준 곁으로 다가오며 그를 살폈다.“서준 씨, 안 다쳤죠?”“괜찮아. 피라미 같은 새끼들이 나를 다치게 할 리가.”진서준이 담담히 웃었다.그의 말을 들은 임소룡과 진광의 안색이 변했다.‘저 새끼는 어떻게 강남의 서씨 가문이랑도 인연이 있는 거야!’서지은과 유정이 진서준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모두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설마 기생오라비인가? 여자들한테 빌붙어 산다고 해도 이건 너무 스케일이 큰 거 아닌가?’동시에 서씨 가문과 유씨 가문의 여자를 꼬셔 비호를 받는다는 것도 능력이었다.“서씨 가문도 이 일에 끼어들게요?”임소룡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진서준은 제 남자예요. 그의 일이 곧 제 일이죠.”서지은은 가감 없이 그녀와 진서준의 관계를 단도직입
너무 힘들었다.임소룡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강남, 서남, 서북에 있는 제일 가는 가문들이 진서준을 위해 나섰다.임씨 가문이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세 가문의 체면을 세워줘야 했다.나아가 지의방 30위에 있는 서산객도 이 자리에 있었다.임소룡이 진서준을 놓아주고 싶지 않아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하지만 이렇게 진서준을 보내면 임씨 가문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아마 임씨 가문이 지방 가문들을 두려워한다는 소문이 퍼질지도 몰랐다.임서준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진서준이 천천히 말했다.“임씨 가문 넷째 어르신의 체면을 봐서 한마디 해줄게. 이 일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겠다.”임소룡이 멈칫하고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우리 할아버지를 알아?”“말도 안 돼, 쟤가 어떻게 임씨 가문 넷째 어르신을 알아! 틀림없는 헛소리야.”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진광이 소리를 질렀다.임소룡이 이 자리를 떠난다면 오늘 밤, 진광은 편치 않을 것이었다.“아는지 모르는지, 전화 한번 해보면 알 수 있겠지.”진서준이 차분히 말했다.잠시 생각하던 임소룡이 핸드폰을 꺼내 임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임소룡이 물었다.“할아버지, 혹시 진서준이라는 젊은이를 아세요?”“왜? 설마 진서준이랑 마찰을 빚은 거야?”임준의 말투가 엄숙해졌다.그러자 임소룡은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몇 년 동안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이런 말투로 말하는 걸 들어봤다.“마찰은 아니고요... 진서준이 덕안정에서 진광과 갈등을 빚어 싸우기도 했는데...”임소룡이 얼른 해명했다.“그들이 알아서 하라고 해. 사람만 안 죽으면 되니까 넌 끼지 마.”임준바로 임소룡에게 그 일에 끼지 말라고 했다.전화를 끊은 임소룡의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그는 지금 진서준의 정체에 대해 매우 궁금했다.지방에 있는 큰 가문의 여자들이 그를 쫓아다닐 뿐만 아니라 임준도 진서준의 편을 들고 있었으니 말이다.“진광아, 미안하지만 이 일은 할아버지도 끼어들지 말라고 하시네. 네가 알아서 해
진서준 일행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광의 아버지는 전화를 받고 즉시 진광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왜 내 아들이 너희 가게에서 기절했을까?”진광 아버지 진명철이 매니저를 향해 호통쳤다.매니저도 어쩔 수 없어서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진명철의 안색이 갑자기 돌변했다.“내 아들이 다른 사람의 협박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당시 소룡 도련님도 자리에 계셨습니다. 나중에 세 명의 여자가 더 왔는데 모두 지역 가문의 사람이었고 소룡 도련님도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으셨습니다.”진명철이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비록 아들의 잘못도 있지만, 상대방도 너무 했어!”이들은 체면을 제일 신경 쓰고 있었다.이 일이 밖에 퍼진다면 진씨 가문 사람들은 틀림없이 다른 가문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었다.“그 청년 이름이 뭐라고?”진명철은 체면을 되찾기로 결심했다.“제가 알아요. 진서준이라고 합니다. 남주성 사람이에요.”오인혁이 얼른 답했다.그는 진씨 가문이 가만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진명철을 따라 병원으로 왔다.상대방도 진씨라는 말에 진명철은 미간을 찌푸렸다.“남주성? 설마...”예전에 중부 삼성의 소년 진 마스터에 대해 진명철도 들은 적이 있었다.그래서 진명처은 자기 아들을 때린 사람이 진 마스터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그 사람이라면 봉호전에서 볼 수 있겠지.”진명철은 봉호전에서 체면을 찾을 생각이었다.그때면 대한민국의 천교가 거의 다 모일 것이다.마침 체면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였다.유지수는 내내 진서준에게 들러붙으며 진서준 일행을 따라 임씨 가문에서 제공해 준 숙소로 향했다.“와, 어전 별장이라니... 진서준아, 진서준. 정말 부자구나?”유지수가 별장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유지수가 별장의 이름을 바로 부르자, 진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진서준은 갑자기 유지수에게 다가가 그녀를 죽일 듯이 주시했다.깜짝 놀란 유지수가
자주 가던 식당은 시간이 아무리 오래 지났더라도 기억에 남는 법이었다.설마 정말 유지수가 아니란 말인가?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그녀는 또 누구일 것인가.“잊었어? 그럼 네 목뒤에 있던 그 모반은? 수술해서 지운 거야?”진서준이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잠시 침묵을 지킨 유지수가 이내 싱글벙글 웃으며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언제 내가 가짜라는 걸 안 거야?”유지수가 바로 인정하자 허사연 일행도 넋이 나갔다.“정말 유지수가 아니라고? 그럼 왜 똑같이 생긴 거야?”“친동생이니까.”유지수가 웃으며 답했다.“진서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언제부터 내가 유지수가 아니라고 의심한 거야?”그녀는 자신이 시종일관 유지수를 잘 연기해 왔다고 생각했다.유지수를 완벽하게 따라 하기 위해 그녀는 많은 공을 들였다.“고양시에서 만나 네가 세 가지 임무를 주겠다고 했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비록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유지수 특유의 분위기와는 아직 거리가 먼 것 같네. 유지수는 평범한 사람이었어. 이지성에게 시집갔다 해도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 하지만 너는 일거수일투족에 상류층 사람이 풍길 법한 분위기를 풍겼지. 이건 오랜 세월 동안 겪어야만 가질 수 있는 분위기야.”진서준이 유지수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대학 시절 유지수와 3년을 함께 했는데 그녀의 습성은 내가 너보다 더 잘 알아. 정말 유씨 가문 가주의 딸이라고 해도, 한순간 백조로 탈바꿈할 수는 없어. 하지만 너는? 사연이랑 김연아랑도 조금의 불편함도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렸지. 그리고 별장의 이름을 바로 말할 때는 더 이상했어.”진서준의 설명을 들은 유지수가 어깨를 으쓱했다.“하... 역시 완벽한 복제는 불가능하네.”진서준이 캐물었다.“유지수는? 어디 갔어?”진서준은 유지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유씨 가문에서 또 어떤 망신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눈앞에 있는 이 유지수는 틈만 나면 진서준을 꼬셨다.만에 하나라도 진서준이 참
유연비는 유지수보다 더 대담했다.유지수는 지난 시간 동안 진서준과 재결합하고 싶어도 이렇게까지 대담한 말은 한 적이 없었다.“역시 친자매네. 하나같이 낯이 두꺼워.”허윤진이 진서준을 자기 뒤로 끌어당기며 유연비가 닿지 못하도록 막았다.“그래? 대체 누가 뻔뻔하단 거야? 너랑 허사연은 친자매 아니야? 하지만 같은 남자를 좋아하고 심지어 그 사람을 함께 섬길 계획을 하고 있지 않아?”유연비는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 말에 서지은도 깜짝 놀랐다.‘허윤진도 진서준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진서준과 허사연이 커플인데... 허윤진은 허사연의 친동생이고... 이게...’보수적인 사상을 지닌 서지은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무슨 헛소리야!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면 네 입을 갈기갈기 찢을 거야.”화가 난 허윤진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이를 갈았다.이런 일은 모두가 마음속으로 알고만 있으면 되었다.직접 말하기에는 조금 수치스러웠다.“내가 헛소리하는 건지 아닌지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잘 알겠지.”유연비가 웃으며 답했다.“됐어. 너희랑 싸우기도 싫네. 간다.”“잠깐만. 이번 달 약 줘야지!”진서준이 얼른 유연비를 불러 세웠다.곧 월말인데 유연비는 아직 진서라의 약을 주지 않았다.“약을 원해? 그럼 애원해 봐.”유연비가 고개를 돌려 장난스럽게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안 줄 거면 오늘 여기서 나갈 생각하지 마.”허윤진이 바로 협박을 가했다.그녀는 유연비에게 인내심이 없었다.‘저 여자... 정말 가증스럽네.’“좋네. 어차피 죽는 것도 두렵지 않고, 가는 길에 진서라 같은 미인도 있으니 나야 좋지 뭐.”유연비가 생글생글 웃으며 받아쳤다.주먹을 불끈 쥔 진서준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솟구쳤다.한 여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느낌은 너무 괴로웠다.“정말 나쁜 년이네.”“칭찬 고마워.”유연비의 낯은 여간 두꺼운 게 아니었다.그녀는 허윤진의 욕설에 면역되었다시피 있었다.“내가 진서준 대신 빌게. 서라 약 좀
진서준이 허사연의 손을 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서준 씨랑 서라만 괜찮다면 된 거죠.”이때, 허윤진은 그녀와 허사연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그녀가 진서준에 대한 사랑은 이기적인 감정이었다.하지만 허사연이 진서준에 대한 사랑은 사심 없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었다.진서준이 기쁘면 허사연도 기쁜 것이었다.이 차이는 허윤진이 오랜 시간을 거쳐서야 메울 수 있을 것이었다.늦은 밤, 허사연은 진서준에게 오랜 시간 시달렸다.허사연이 용서를 빌 때에야 진서준은 멈췄다.“오늘 웬일이에요? 약 먹은 것 같은데요? 저녁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래요? 마음에 두지 마요. 서준 씨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거예요.”허사연이 진서준의 품에 안겨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사연아, 너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진서준이 허사연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저도요.”봉호전 시작 하루 전이 되자 경성으로 입성하는 사람은 갈수록 많아졌고 모든 특급 호텔은 이미 꽉 차 있었다.일부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기차역 근처 작은 모텔에서 묵어야 했다.국안부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30명의 호국사를 파견했다.심지어 명주를 지키고 있던 현천진군마저 달려왔다.특급 식당 안,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다.“정란아, 함부로 보지 마.”식탁에 정란이 한 젊은이와 한 노인과 앉아 있었다.지난번 정란 가족이 진서준 가족과 밥을 먹었을 때 그녀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그 후 정란은 그녀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진서준보다 더 강한 사람을 찾아 진서준에게 타격을 줘야겠다고 다짐했다.한 번의 타격을 겪은 후, 정란은 현재의 남자 친구를 만났다.이 남자 친구가 정란에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줬고 그녀에게 이 세상에 무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평지 씨, 이 사람들은 전부 무인이에요?”정란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보며 호기심에 겨워 물었다.“맞아. 모두 강한 실력을 지닌 무인들이야.”임평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평소에는 무인을 보기
“진서준이 왜 여기 있지.”정란은 원래 구정이 지나면 임평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진서준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돈 많은 여자 친구 찾은 게 뭔 대수인가? 무인인 평지 씨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할 거면서. 서울시에서 내놓으라 하는 사람들도 우리 평지 씨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데.’임평지가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왜? 아는 사람이야?”“네. 사촌 오빠인데 옥살이하고 나와서 돈 많은 아줌마 만나고 나서는 우리 가문을 무시하기 시작하더라고요.”정란이 차갑게 웃었다.“돈 때문에 자존심까지 내려놓는 남자라면 옥살이해도 싸지.”임평지도 한마디 거들었다. 임평지는 진서준이 돈 때문에 뚱뚱하고 못생긴 아줌마와 붙어먹었고 그런 사람은 남자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지가 멀쩡한데 왜 스스로 노력할 생각은 않고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내가 가서 데려올게요.”정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문 쪽으로 걸어갔다.진서준은 허사연, 그리고 다른 일행과 자리를 뜨려고 하던 참이었다. 밥 먹으러 왔는데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진서준.”진서준이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정란이었다.진짜 신분을 알게 된 후로 진서준은 정란 일가가 그와 친척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그해 진서준의 어머니 임수련이 서울시로 도망 왔을 때 우연히 진짜 조희선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때 조희선은 거의 얼어 죽기 일보 직전이었고 임수련은 조희선이 자기와 외모가 퍽 닮은 걸 보고 조희선으로 위장했다.그때는 주민등록증이 생기기 전이었고 제대로 된 사진조차 없었다. 게다가 정란 일가는 조희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에 임수련이 조희선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이다.친척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지금 진서준도 더는 정란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아부밖에 모르는 친척은 둘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경성에는 왜 올라온 거야?”정란이 거들먹거리며 진서준을 쳐다봤다. 진서준이 못 올 데라도 온 것처럼 말이다.진서준도 정란의 말뜻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
아침, 설표 특전대 기지.단잠에 빠져 있던 소정태와 고인권 등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군부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회의실에 집합했다.“어젯밤, 묘강에서 폭동이 발생했어. 그러나 배논국 군부가 폭동을 단숨에 진압하며 묘강은 다시 배논국의 영토로 돌아갔어.”상부의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여덟 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소정태 일행은 서남 국경에서 묘강의 사수들과 적지 않게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다들 묘강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미친놈일 뿐만 아니라 주술과 독충술까지 능숙히 다루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자기들만의 군대와 탱크와 같은 대형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배논국 군부가 강제로 공격했다간 양측 모두 피바다가 될 게 뻔했다.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묘강이 평정되다니 너무나 기묘한 일이었다.“혹시... 진 교관이 한 일이 아닐까?”고인권이 불쑥 입을 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여덟 사령관은 진서준이 묘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어마어마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설, 설마 그랬겠어? 진 교관님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묘강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잖아?”누군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그건 너무 황당한 얘기야. 게다가 진 교관이 대체 어떻게 묘강에 갔단 말이야? 그곳은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어서 전신전 병사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봐.”소정태가 갑자기 말했다.“너희들 기억하지? 예전에 너희가 설표 특전대가 최고 특전대로 올라설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근데 진 교관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어, 그것도 한 달도 안 걸려서 말이야. 지금도 난 똑같이 믿어. 진 교관님은 묘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소정태는 진서준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소정태는 그야말로 진서준의 열렬한 팬이었다.“그럼, 진 교관님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적기가 포착됐고 곧이어 포탄이 몇 발 날아왔다.조종사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다.쾅!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튕기며 대낮처럼 환해졌다.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오스프리 전투기 두 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문기는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유문기가 두려워하는 건 오스프리 전투기가 아니라 바로 그 괴물 같은 존재, 진서준이었다.묘왕은 자기 비장 카드인 오스프리 전투기가 파괴된 것을 보며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누가 한 짓이야? 어떤 미친놈이 감히 내 전투기를 부쉈어?”그 순간, 배논국 군대 로고가 새겨진 전투기 수십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이 광경에 묘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아까 상황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걸...’전투기 편대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대규모 부대가 들이닥쳤다.지도자를 잃은 묘강은 머리를 잃은 파리 떼처럼 혼란에 빠졌다.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진서준은 더 이상 이들과 놀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잡고 단 일격으로 묘왕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눈을 뜬 채 죽은 묘왕의 눈에는 끝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묘왕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을 수 없었다.“날 죽여.”이때의 유기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유기철이 본인이 아무리 애원해도 진서준이 살려주지 않을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넌 네 친조카까지 해쳤어. 널 만 번 죽여도 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야.”진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다.“난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널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게 해주지.”그 말과 함께 진서준은 손바닥으로 유기철의 가슴을 내리쳤다.유기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기철은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는 건 두렵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유문기 일행은 순간 얼어붙었다.유문기와 묘왕은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그들의 공동의 적이었다.진서준이 살아있다면 그들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유문기와 묘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묘왕과 유기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두 사람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너 폭탄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야?”유문기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방금 폭탄이 터진 후, 묘왕 혼자만 폭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유문기는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유문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문기의 예측은 현실을 완전히 빗나갔다.“네 생각에 그 포탄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네 눈엔 내가 저 늙은 영감탱이만도 못해 보이나?”영감탱이는 당연히 묘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진서준, 네가 묘왕을 죽여준다면 내가 묘강의 재산 절반을 네게 주마. 어때?”진서준과 맞설 수 없음을 깨달은 유문기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바로 진서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진서준을 자기편으로 영입하면 진서준이 자기를 건드릴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묘강의 재산은 거의 배논국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배논국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였기에 그 재산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하지만 진서준에게 이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진서준이 이번에 온 이유는 단 두 개, 유문기를 죽이고 묘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진서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더군다나 묘강의 돈은 대부분 불법적인 경로에서 온 더러운 돈이었다.그런 돈은 진서준이 원하지 않았다.유문기가 진서준을 설득하려는 걸 본 묘왕은 즉시 눈을 굴리며 외쳤다.“이봐 청년, 네가 저놈을 죽인다면 내가 묘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어. 사실 너와 나 사이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어. 유씨
묘왕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옷은 다 찢어졌으며 고약한 타는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묘왕의 옷 속에 숨어 있던 독충들이 조금 전의 고온에 의해 증발한 냄새였다.지금의 묘왕은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 같았고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소리쳤다.“아버지, 저놈을 죽여요! 저놈을 죽이면 우리는 묘강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유기철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내가 묘왕을 공격하라고?”유기철의 단전도 파괴되어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제 단전도 저 진서준이란 자에게 쥐어박혀서 망가졌어요. 제가 공격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버지를 시키겠어요?”유문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문기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묘왕을 죽이고 싶었다.그동안 유문기는 묘왕에게 개처럼 부려지며 살아왔다.때때로 독을 시험하는 일도 겪었는데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몇 년째 묘왕을 죽이고 싶었던 유문기는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방금 진서준에게 단전이 파괴되어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내 단전도 파괴된 거 잊었어?”유기철의 말에 유문기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이걸 드시면 일시적으로 예전의 힘을 조금 되찾을 수 있습니다.”유기철은 약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이거 부작용 없겠지?”부작용이 없다면 유문기는 자기가 먼저 먹었을 것이다.“부작용 있습니다. 먹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폐인이 됩니다.”유문기는 솔직하게 부작용을 실토했다.“아버지. 지금 이게 우리 유일한 기회예요. 저놈을 죽이고 제가 묘왕이 되면 뼈가 다 부서져도 제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놈 손에 죽을 겁니다.”유문기의 분석을 듣자 유미철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묘왕의 손에 죽거나 이 기회에 한 번 싸워보고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기철은 더 이상 망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