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다 무인이었다. 그중 임진우 무도 대종사였다.진서준은 그제야 정란이 왜 밥을 사주겠다며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 작정하고 면박을 주려는 것이었다.“당연하죠. 식당을 통으로 예약한다 해도 끄떡없습니다.”임평지가 꽤 열정적으로 대꾸했다.정란도 예쁘게 생겼지만 허사연 그리고 그 일행과 비기면 천지 차이였다. 임평지는 그들의 외모에 이미 마음을 완전히 뺏겨버린 상태였다.“평지 씨, 지금 뭐 보는 거예요?”임평지는 정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허사연과 그 일행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에 정란은 기분이 매우 잡쳤다.임평지는 정란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허사연에게 말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임평지라고 합니다. 내공경 무인입니다.”“아, 네.”임평지의 이글이글한 눈빛에 허사연은 몸에 소름이 돋아 역겹다는 표정으로 단답형으로 말했다.임평지는 허사연의 반응을 예상했다. 일반인은 무인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기에 이따가 강력한 실력만 보여주면 무조건 반해서 먼저 다가올 것이라고 믿었다.“내공경의 무인이 뭔지 모르죠?”“이렇게 설명하면 쉬우려나? 앞에 보이는 이 벽을 주먹 한 방에 구멍 낼 수 있다고 보면 돼요.”오만한 임평지의 말에 허사연이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그녀가 내공경을 모른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내공경이라면 그녀와 비슷한 경지였다.남자가 돼서 실력이 비슷한 것도 모자라 그걸로 우쭐대고 있으니 정말 우스웠다.허사연도 만만한 성격은 아니었기에 바로 이렇게 쏘아붙였다.“그러면 나와 비슷하네요.”“네?”임평지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비슷하다고요? 무슨 그런 농담을.”허윤진이 콧방귀를 꼈다.“우리 언니 농담한 거 아니거든요. 그쪽은 우리 언니 상대도 못 돼요.”‘뭐야? 둘이 자매였어? 정란과는 비교도 안 되게 너무 예쁜데?’임평지는 침을 질질 흘릴 지경이었다.옆에 선 정란의 표정이 점점 굳었다. 원래는 임평지에게 진서준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달라고 할 참이었다.하지만 임평지는 오히려 그녀를
순간 구경하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자를 꼬시려고 한 거야?”“아가씨, 오빠가 저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보다 훨씬 세니까 오빠랑 갈래?”“아가씨들, 오늘 저녁에 같이 재미 좀 볼래?”다른 테이블에 앉은 무인들도 이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자들이 무도를 수련하는 건 다 돈과 여자를 위해서였다.허사연 같은 미녀를 앞에 두고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임평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봤으니 더 무시했다.“다들 저리 안 꺼져? 우리 사부님에게 혼쭐나고 싶지 않으면 그만해라.”임평지가 목청을 높였지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제자가 이 모양인데 스승이라고 별반 다를 바 없을 것 같았다.“얼마든지 불러. 사부님도 찍소리 못하고 도망가게 해줄 테니까.”내공 정점에 다다른 무인이 하찮다는 듯 말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젓가락 하나가 갑자기 날아왔다.푹.젓가락은 그 사람의 귀를 아예 뚫어버렸고 그대로 귀가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피를 보고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빠졌다.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랐는지 허사연의 어여쁜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진서준의 손을 꼭 잡았다.이 자리에서 임진우가 어떻게 공격했는지 똑똑히 본 사람은 진서준 밖에 없었다. 임진우의 실력은 일급 대종사였다.“사부님을 모욕하는 사람은 다 이렇게 만들어줄게.”임평지가 우쭐거리며 말했다.사람들의 시선이 임진우에게로 쏠렸다. 아까는 눈에 띄지 않아 몰랐는데 이제 보니 노인네가 숨겨진 강자 같았다.“어떻게 공격했는지 보지도 못했어. 아마 종사의 경지는 된 것 같은데.”“사부님이 종사니까 저렇게 나대는 거겠지.”“종사는 무슨. 저 사람 대종사야. 얼른 가자.”한 종사가 임진우의 실력을 알아보고는 잽싸게 몸을 돌렸다.오지성이 대종사라는 말에 사람들이 안색을 굳히더니 얼른 뒷걸음질 쳤다. 젓가락에 귀가 잘린 내공경 무인은 너무 놀란 나머지 바닥에 꿇어앉아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었다.“선생님, 죄송합니
정란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지만 뭐라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란이 임평지를 우러러보면서 빌붙은 거라 그럴 처지가 못 되었다.진서준은 시종일관 옆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허사연이 내공경 무인을 이길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전에 운대산에 있을 때 진서준이 여러 번 허사연 자매를 바로잡아줬기에 내공경 무인과 상대해도 이길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허사연이 임평지를 이기지 못한다 해도 진서준은 허사연이 다치지 않게 관건적인 순간에 손을 내밀어 보호해 줄 생각이었다.진서준은 허사연이 보내온 눈길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그래요. 겨루자고 하면 내가 무서워서 도망이라도 갈 줄 알았어요?”허사연이 코웃음 쳤다.이내 지켜보던 사람들이 홀에 있는 탁자와 의자를 구석으로 옮겨 최대한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언니. 저 변태 같은 놈 잘 좀 손봐줘요. 아예 남자구실 못 하게 만들어요.”허윤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임평지가 차갑게 웃었다. 오늘 밤 허사연 자매를 길들일 생각에 들떠 있었다.“약속대로 저는 한 손만 쓸게요. 시작하죠.”임평지는 폼을 잡고 허사연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였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허사연이 땅을 살짝 밟더니 화살처럼 임평지를 향해 달려갔다.“대박. 이 여자 속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내공 중기의 실력은 되는 것 같은데.”“저 남자 너무 오버한 거 같은데. 한 손이 아니라 두 손으로 해도 저 여자의 상대가 될지 의문이야.”“아가씨, 저 남자 고자로 만들어버려요. 다시는 여자에게 치근덕대지 못하게요.”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며 허사연에게 힘을 북돋아 줬다.임평지는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허사연의 속도가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다. 임쳥지가 반응하기도 전에 허사연은 이미 임평지에게로 바짝 다가간 상태였다.임평지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으로 공격을 막았다.펑.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히면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임평지는 큰 충격을 받고 뒤로 대여섯 걸음 물러섰지만 허사연은 끄떡하지 않고 임평지가 손 쓸 새도 없이 다시 공격
“진서준 씨, 모범수로 조기 석방되었습니다.”높은 담장 밖엔 잡초가 무성하고 쓸쓸한 바람이 불었다.진서준은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먼 곳을 바라봤다. 두 눈엔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감옥에 있는 3년 동안 엄마랑 서라는 잘 있나 모르겠네.”감옥에 갇힌 3년 동안 엄마와 여동생은 단 한 번도 그를 면회하러 오지 않았다. 이에 진서준은 걱정이 스치기 마련이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진서준은 헝겊을 가득 꿰맨 가방에서 편지 한 통 꺼냈다.편지봉투를 열자 안에는 쪽지와 ‘천기각’이라고 새겨진 옥패 한 개가 들어 있었다.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옥패는 유난히 아름다웠다. 아마 가장 좋은 화씨 옥으로 조각한 듯싶다.진서준은 옥패를 허리춤에 차고 쪽지를 펼쳐보았는데 단 두 문장만 적혀 있었다.「서준아, 넌 앞으로 천기각의 주인이고 이 옥패가 바로 그 증표야.」「내년 3월 꽃 필 무렵에 옥패를 가지고 신농산에 가면 모든 걸 알게 될 거다.」이건 진서준이 출소 전에 감방 동기 구창욱 어르신께 받은 편지이다.구창욱 어르신은 종일 신경질적이어서 감방에 아무도 그와 얘기 나누려는 자가 없다. 오직 진서준만 별일 없을 때 어르신을 찾아와 얘기를 나눈다.어르신은 매일 자신이 천기각 주인이라고 허풍을 치셨다. 천문학과 지리학을 꿰뚫고 의술도 뛰어나다고 하셨다.진서준은 애초에 어르신이 자신을 속이는 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어르신을 따라 무술을 연마하고 온갖 기이한 것들을 배우면서 조금씩 어르신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3년 동안 진서준은 많은 재능을 습득했다.이젠 그의 두 손으로 사람을 구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감옥에 들어온 이유는 바야흐로 3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3년 전 진서준은 여자 친구 유지수와 함께 갓 졸업하고 같은 회사에 들어갔다.어느 한 비즈니스 미팅에서 이지성이라는 바이어가 유지수를 탐내면서 그녀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고 제안했다.진서준은 한창 젊고 패기가 넘쳐 술병을 번쩍 들더니 이지성의 얼굴에 가차 없이 내리쳤다.결국...
유지수가 이지성에게 시집갔다고?본인은 그녈 위해 감방에서 그 고생을 했는데 정작 유지수는 원수 놈에게 시집갔단 말인가?진서준의 두 손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고 눈가에 살의가 굳었다.조희선은 손으로 가볍게 얼굴의 흉터를 어루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돈을 모으기 위해 그녀는 유지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그녀는 집에 돈이 없다는 핑계로 일전 한 푼 내놓지 않았고 심지어 조희선에게 고액 연봉의 일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그 당시 조희선은 그녀에게 엄청 고마워하기까지 했다!하지만 정작 유지수가 소개한 직장에 와 보니 그녀를 기다리는 건 배불뚝이가 된 몇몇 중년 남성들이었다.조희선은 일이 점점 더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눈치채고 재빨리 도망치려 했지만 상대가 그녀를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다.절망의 끝자락에 다다른 조희선은 깨진 유리 조각으로 제 얼굴을 그었다.그녀의 얼굴에 난 험상궂은 긴 흉터에 놈들은 분노가 차올라 그녀의 양쪽 다리를 부러뜨리고 길바닥에 내던졌다.진서라가 퇴근하고 마침 그 길을 지나며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조희선은 일찌감치 죽었을 것이다!“이런 짐승만도 못한 것들. 내가 조만간 아작을 내고 말겠어. 죽지 못해 사는 고통이 뭔지 보여줄게!”진서준은 이마에 핏줄이 튀어 오르고 주먹으로 양철 벽에 구멍을 냈다.조희선은 연신 머리를 내저으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서준아, 이제 막 나왔는데 또 싸워서 들어가면 어떡해! 일자리 구해서 열심히 일해. 더는 사고 치지 말고.”진서준은 손등에 핏줄이 튀어 오르고 온몸의 뼈마디가 으스러질 것처럼 울화가 치밀었다.“그래도 이건 도저히 못 참겠어요!”이때 거친 목소리가 집 밖에서 들려왔다.“할망구, 돈 갚아야지!”순간 조희선의 수척해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극도로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진서준이 미간을 구기고 나가려 하자 조희선이 재빨리 그를 잡아당겼다.“서준아, 너 여기서 꼼짝 마. 엄마가 알아서 할게.”조희선의 애원하는 눈빛에 진서준은 걸음을 멈췄다.그녀는
진서준은 엄마를 보더니 몸에 스친 살의가 일찌감치 사라졌다.“엄마, 내가 감방에서 아주 대단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이 내게 무술과 의술을 가르쳐줬어요. 엄마 얼굴에 난 상처랑 부러진 다리까지 전부 치료해 드릴게요.”가슴이 움찔거렸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네가 이런 마음을 지닌 건 고맙지만 엄마는 네가 참 걱정이구나! 절대 두 번 다시 사고 치지 말아. 일자리 찾아서 이씨 일가에 진 빚을 다 갚고 우리 열심히 살아보자꾸나.”진서준이 엄마를 다독이며 대답했다.“네, 엄마 말 들을게요. 지금 바로 나가서 일자리 찾아볼게요.”“그래, 일찍 돌아오너라. 이따가 서라한테 전화해서 퇴근하고 올 때 너 먹일 영양제 좀 사 오라고 해야겠어.”조희선은 마음속에 어렴풋이 희망이 생겨났다.집을 나선 진서준은 깊은 눈동자 속에 서늘한 한기가 스쳤다.‘지난날의 피맺힌 원한을 오늘 반드시 백 배로 갚게 해 줄 거야!’...“아빠, 조금만 버텨요. 병원 거의 다 왔어요! 언니, 좀 더 빨리 몰아!”창백한 얼굴에 겨우 숨을 몰아쉬는 아빠를 보며 허윤진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울지 마, 윤진아. 아빠 괜찮아.”허성태가 간신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콰당!전력 질주하던 마이바흐가 갑자기 급정거했고 뒤에 앉은 허성태 부녀가 화들짝 놀랐다.허윤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언니, 왜 갑자기 급정거해?”운전하던 허사연이 안전벨트를 풀고 허둥지둥 차 문을 열었다.“나 사람 쳤어!”“뭐?”허 씨네 세 부녀가 함께 차에서 내렸다.진서준은 안 그래도 화가 나 있었는데 차에 부딪히기까지 하니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운전 어떻게 하는 거야? 똑바로 못 해?!”그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죄송합니다, 사장님. 제가 병원 모시고 가서 검사시켜 드릴까요?”허사연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녀의 진심 어린 태도에 진서준은 분노가 많이 가라앉았다.한편 뒤에 서 있는 허윤진은 팔짱을 끼고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언니, 이딴 사람에게 왜
두 자매가 아무리 의술을 몰라도 아빠의 혈색으로 보아 확실히 병세를 진정시켜 주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눈앞의 이 미쳐 날뛴 소년이 구해주었다!허성태가 비스듬히 눈을 떴다. 가슴에 꽉 막혔던 그 기운도 말끔히 사라졌다.“아빠, 괜찮으세요?”허윤진이 감격에 겨워하며 물었다.“괜찮아. 아까보다 몸이 훨씬 개운해진 것 같구나.”허성태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꼼꼼한 허사연은 아빠 몸에 꽂은 은침을 아직 빼내지 않았다는 걸 바로 발견했다.그녀가 막 빼내려 할 때 진서준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움직이지 말아요! 지금 잠시 아버님 병세를 진정시켜 드렸을 뿐이에요. 침은 아직 빼면 안 돼요.”일곱 개의 은침은 북두칠성 모양으로 허성태의 몸에 꽂혀 있었다.이것은 청하13침 중의 일곱 번째 침, 이름하여 연명침이다!허성태가 두 딸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감격에 겨운 눈길로 진서준을 쳐다봤다.“살려줘서 고맙네 젊은이!”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따님께서 제 부탁을 들어줘서 아버님을 구해드린 겁니다.”허사연과 허윤진은 진서준이 방금 말한 그 일이 떠올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두 사람 중 한 명만 진서준과 결혼하면 그녀들도 받아들일 수 있겠는데 뜻밖에도 둘 다 시집가게 생겼으니 차오르는 수치심은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 무슨 부탁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허성태가 의아한 듯 물었다.그는 방금 혼미 상태에 빠져있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다.“아버님을 구해드리면 제게 20억을 주겠다고 했습니다.”진서준이 말했다.이건 허윤진이 방금 꺼낸 얘기이다.두 자매가 동시에 그와 결혼하는 건 단지 오만한 허윤진을 처벌하기 위한 진서준의 장난일 뿐이다.설사 결혼한다고 해도 허사연처럼 온화하고 착한 언니와 결혼하겠지.진서준이 두 자매가 동시에 그와 결혼해야 한다는 일을 언급하지 않자 그제야 허사연 자매도 본인들이 놀림을 당했다는 걸 알아챘다.안도의 한숨을 돌린 것도 잠시, 허윤진은 또다시 울화가 치밀었다.‘우리 두 자매가 설마
“그 파렴치한 년과 결혼을 안 했으니 망정이지!”진서준이 싸늘한 눈길로 말을 내뱉었다.“안 그러면 당신들 같은 집구석에 걸려들었을 거잖아. 생각만 해도 끔찍해! 꿈에 나올까 봐 두렵네.”유건우는 바닥에서 일어났는데 입이 삐뚤어 바보 꼴이 되었다.“감히 날 때려? 매형에게 이를 거야. 너 또 감방에 처넣을 거라고!”그는 화가 나서 두 눈이 벌게졌다.진서준의 눈 밑에 차가운 한기가 감돌았다.“어디 한번 해보시던가! 내가 이미 나왔으니 이지성과의 원한은 반드시 결판을 낼 거야!”말을 마친 진서준은 몸을 홱 돌리고 계단을 내려갔다.이제 막 오션 호텔로 출발하려 할 때 주머니 속의 옛날 폰이 갑자기 울렸다.전화를 받자 허사연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서준 씨, 얼른 병원으로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빠가 위급해요!”“또 위독해지셨어요?”진서준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그는 청하13침 중의 전 일곱 침으로 허성태의 병세를 안정시켰고 은침을 뽑지 않아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지금 위급하다는 건 누군가가 허성태의 은침을 건드렸다는 뜻이다.“지금 어느 병원이죠?”진서준이 물었다.“서울 병원에 있어요. 얼른 와보세요, 얼른요!”전화를 끊은 후 허사연은 병실로 돌아가 낯빛이 창백한 아빠를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허윤진의 예쁘장한 얼굴도 사색이 되었고 두 눈에 두려움으로 휩싸였다.허성태가 이렇게 된 건 오롯이 허윤진이 설쳐댔기 때문이다.병원에 도착한 후 허사연은 화장실에 다녀왔다.그녀가 화장실로 간 틈을 타 허윤진이 아빠의 몸에 꽂은 은침을 보더니 또다시 진서준의 당부와 그 거만한 자태가 떠올라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그녀는 몰래 은침 한 개를 뺐는데 아빠의 상태가 급격히 저하됐다.허윤진은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병원 의사들도 이 상황을 보더니 전부 속수무책이었다.허사연 자매가 착잡해하고 있을 때 진서준이 병실로 들어왔다.“서준 씨!”허사연이 재빨리 앞으로 마중 가며 진서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차가운 섬섬옥수에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