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구경하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자를 꼬시려고 한 거야?”“아가씨, 오빠가 저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보다 훨씬 세니까 오빠랑 갈래?”“아가씨들, 오늘 저녁에 같이 재미 좀 볼래?”다른 테이블에 앉은 무인들도 이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자들이 무도를 수련하는 건 다 돈과 여자를 위해서였다.허사연 같은 미녀를 앞에 두고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임평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봤으니 더 무시했다.“다들 저리 안 꺼져? 우리 사부님에게 혼쭐나고 싶지 않으면 그만해라.”임평지가 목청을 높였지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제자가 이 모양인데 스승이라고 별반 다를 바 없을 것 같았다.“얼마든지 불러. 사부님도 찍소리 못하고 도망가게 해줄 테니까.”내공 정점에 다다른 무인이 하찮다는 듯 말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젓가락 하나가 갑자기 날아왔다.푹.젓가락은 그 사람의 귀를 아예 뚫어버렸고 그대로 귀가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피를 보고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빠졌다.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랐는지 허사연의 어여쁜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진서준의 손을 꼭 잡았다.이 자리에서 임진우가 어떻게 공격했는지 똑똑히 본 사람은 진서준 밖에 없었다. 임진우의 실력은 일급 대종사였다.“사부님을 모욕하는 사람은 다 이렇게 만들어줄게.”임평지가 우쭐거리며 말했다.사람들의 시선이 임진우에게로 쏠렸다. 아까는 눈에 띄지 않아 몰랐는데 이제 보니 노인네가 숨겨진 강자 같았다.“어떻게 공격했는지 보지도 못했어. 아마 종사의 경지는 된 것 같은데.”“사부님이 종사니까 저렇게 나대는 거겠지.”“종사는 무슨. 저 사람 대종사야. 얼른 가자.”한 종사가 임진우의 실력을 알아보고는 잽싸게 몸을 돌렸다.오지성이 대종사라는 말에 사람들이 안색을 굳히더니 얼른 뒷걸음질 쳤다. 젓가락에 귀가 잘린 내공경 무인은 너무 놀란 나머지 바닥에 꿇어앉아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었다.“선생님, 죄송합니
정란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지만 뭐라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란이 임평지를 우러러보면서 빌붙은 거라 그럴 처지가 못 되었다.진서준은 시종일관 옆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허사연이 내공경 무인을 이길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전에 운대산에 있을 때 진서준이 여러 번 허사연 자매를 바로잡아줬기에 내공경 무인과 상대해도 이길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허사연이 임평지를 이기지 못한다 해도 진서준은 허사연이 다치지 않게 관건적인 순간에 손을 내밀어 보호해 줄 생각이었다.진서준은 허사연이 보내온 눈길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그래요. 겨루자고 하면 내가 무서워서 도망이라도 갈 줄 알았어요?”허사연이 코웃음 쳤다.이내 지켜보던 사람들이 홀에 있는 탁자와 의자를 구석으로 옮겨 최대한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언니. 저 변태 같은 놈 잘 좀 손봐줘요. 아예 남자구실 못 하게 만들어요.”허윤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임평지가 차갑게 웃었다. 오늘 밤 허사연 자매를 길들일 생각에 들떠 있었다.“약속대로 저는 한 손만 쓸게요. 시작하죠.”임평지는 폼을 잡고 허사연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였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허사연이 땅을 살짝 밟더니 화살처럼 임평지를 향해 달려갔다.“대박. 이 여자 속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내공 중기의 실력은 되는 것 같은데.”“저 남자 너무 오버한 거 같은데. 한 손이 아니라 두 손으로 해도 저 여자의 상대가 될지 의문이야.”“아가씨, 저 남자 고자로 만들어버려요. 다시는 여자에게 치근덕대지 못하게요.”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며 허사연에게 힘을 북돋아 줬다.임평지는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허사연의 속도가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다. 임쳥지가 반응하기도 전에 허사연은 이미 임평지에게로 바짝 다가간 상태였다.임평지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으로 공격을 막았다.펑.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히면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임평지는 큰 충격을 받고 뒤로 대여섯 걸음 물러섰지만 허사연은 끄떡하지 않고 임평지가 손 쓸 새도 없이 다시 공격
임진우에게 귀싸대기를 맞은 임평지도 차분해지기 시작했다.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구경꾼들도 각지에서 모여들었을 테니 오늘 일은 무조건 소문날 것이다.“하지만 사부님, 이걸 어떻게 참아요?”임평지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평소에 수련을 게을리했으니 여자 하나 이기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지.”임진우가 차가운 말투로 호통쳤다.“죽은 너희 아버지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나도 손 놓았어.”“더 쪽팔리기 전에 얼른 가자.”허사연에게 얻어터져서 도망가는 임평지를 보고 허윤진은 찢어질 듯이 기뻤다.“고작 그 실력으로 나와서 우쭐댄 거예요?”허윤진이 우쭐대며 비웃었다.“그쪽 사부님만 없었으면 여기서 제 발로 걸어 나가지도 못했을 거예요.”임평지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인데 두고 봐요.”이때 진서준이 임평지를 막아섰다.“아까 약속했잖아요. 지면 내 여자 친구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기로.”“홀에 있는 사람 모두가 그쪽이 한 말을 증명할 수 있어요.”진서준이 덤덤한 표정으로 임평지를 바라봤다.“맞아요. 아까 우리도 다 들었어요. 이 아가씨에게 지면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하겠다고요.”“남아일언 중천금인데 지켜야죠. 아니면 남자가 아니라고 인정하든지요.”“하얗고 깔끔하게 생긴 게 정말 그쪽일지도 몰라요.”사람들은 구경거리라도 났다는 듯이 임평지를 놀려대기 시작했다.임평지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진서준을 바라봤다.“가끔은 여지를 남기는 게 좋을 때도 있는데.”“그쪽이 뭐라고 내가 여지를 남겨요?”진서준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내 여자 친구를 희롱하고도 이 세상에 멀쩡히 살아있는게 나의 제일 큰 은혜에요.”허사연의 실력을 검증할 생각만 아니었다면 아까 바로 임평지를 손봐줬을 것이다.고작 내공 무인밖에 안 되면서 어디서 난 용기로 이렇게 우쭐대는지 살짝 궁금하기도 했다.진서준이 싸울 준비를 하자 구경꾼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까부터 실력을 숨기고 가만히 서
“남주성의 진 마스터님처럼 요물이면 모를까. 대종사에게 함부로 덤비면 끝은 죽음밖에 없어.”진 마스터 얘기가 나오자 허사연과 그 일행이 웃음을 터트렸다.“웃긴 뭘 웃어요? 같은 진씨면 다 마스터가 될 수 있을 줄 알아요?”임평지가 비아냥댔다.“진 마스터님은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에요. 종사 단계에서 대종사와 대적해 이긴 사람이라고요.”“그쪽처럼 별 볼 일 없는 쓰레기는 진 마스터님 시중들기도 벅찰걸요?”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남주성에서 진 마스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종사 단계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대종사와 대적한 것도 모자라 검으로 한방에 일곱 명의 종사를 무찔렀다.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실력은 정말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했다.“우습기 짝이 없네요. 진 마스터님을 우러러본다는 사람이 형부가 진 마스터라는 걸 모르잖아요.”허윤진이 낮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진 마스터를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기는커녕 진서준을 비웃고 있으니 그 꼴이 너무 우스웠다.진서준도 웃음을 터트렸다.“의외로 세상에는 이처럼 무식한 사람이 많아요.”이 말에 임평지는 안색이 변하더니 차갑게 말했다.“지금 누가 누구를 무식하다고 하는 거예요? 정말 무식한 사람은 그쪽이에요.”“한 번만 더 앞을 막는다면 사부님이 한 방에 쓰러트릴 수도 있어요.”이때 레스토랑 사장이 잽싸게 달려와 진서준과 임평지 사이를 막아섰다.“두 분 다 진정하세요. 사소한 일로 얼굴을 붉히지는 말자고요.”“레스토랑의 사장이 저이긴 하지만 진짜 주인은 임씨 가문이니 임씨 가문을 봐서라도 그만하세요.”레스토랑이 임씨 가문 소유라는 말에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임씨 가문이 경성 4대 가문인 건 다들 알고 있었다.누군가 임시 가문의 체면을 구긴다면 남은 건 죽음밖에 없을 것이다.임진우가 바로 이렇게 대꾸했다.“떠나려던 참이었는데 이자들이 앞길을 막고 못 가게 한 거예요.”사장이 진서준에게 말했다.“고객님, 임씨 가문의 체면을 봐서라도 먼저 보내주
진중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두 재벌 집 도련님은 지금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었던 다 한 사람 때문이었다.그 사람은 바로 진서준이었다. 진서준이 두 사람의 인생을 바꾼 것이다.진서준의 인생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진서준과 유지수가 이지성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진서준은 다른 일로 감옥에 들어갔을 것이다.“사부님, 저는 이 친구와 잠깐 얘기 좀 나누고 올게요. 오래 안 걸려요.”이지성이 곽기린에게 말했다.“그래. 사고만 치지 마. 경성에는 보는 눈이 많아.”곽기린이 당부했다. 사급 대종사인 그도 어떤 사람은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네, 새겨들을게요.”이지성은 강성준과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해 룸을 잡고 옛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다 무인이었고 똑같은 종사 단계였다.하지만 한 사람은 무도 종사였고 한 사람은 횡련 종사였다.강성준은 이지성이 조금 부러웠다.“이지성 씨, 정말 대단하네요. 어떻게 반년 사이에 횡련 종사가 된 거예요?”“다 진서준 덕분이죠. 진서준이 우리 가족을 몰살하지만 않았다면 이렇게 노력할 일도 없었을 거예요.”진서준 얘기만 나오면 이지성은 온몸으로 살기를 뿜어냈다. 봉호전만 끝나면 남주성으로 건너가 진서준을 죽이고 그 앞에서 허사연과 허윤진을 더럽힐 생각이었다. 진서준이 자기 가족에게 손댄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주고 싶었다.“저도 같아요. 때가 되면 같이 복수해요.”강성준의 눈빛도 살기로 가득했다.반년간 강성준도 혈운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대종사를 따라 수련했고 수련의 강도는 예전보다 수십 배는 더 강했다. 불굴의 의지가 없었다면 아마 수련하는 도중에 죽었을지도 모른다.“그래요. 같이 복수하고 허사연과 허윤진 자매를 사이좋게 나눠서 갖고 노는 걸로 하죠.”이지성이 이렇게 말하더니 술을 한 모금 크게 들이마셨다.“아참, 손승호 씨는 어디 갔어요? 허윤진에게 관심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이지성이 물었다.“그건 저도 모르겠어요.”강성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입구에는 대종사 레벨의 호국사 네 명과 실탄을 장전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여기가 원래 경성의 군사기지였나 봐요.”“봉호전이 시작되면서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산에서 내보냈대요.”임준의 설명에 진서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신분을 증명할 서류를 보여주고 진서준은 일행과 함께 산 중턱으로 향했다.산 중턱의 공터는 진서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고 축구장 3개 정도는 될 것 같았다.셀 수 없이 많은 불빛이 공터를 환하게 비춰줬다. 이 공터에는 합금으로 이루어진 링이 13개 세워져 있었고 링 하나당 10만 킬로그램의 힘을 이겨낼 수 있었다.대종사 6단계라고 해도 링을 부수기엔 무리일 것 같았다.“봉호전은 3일간 열릴 거예요. 오늘 바로 시작할 생각이에요?”임준이 진서준에게 물었다.“네. 빨리 시작해서 빨리 끝내고 얼른 돌아가서 더 수련해야죠.”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옆을 스쳐 지나가는 무인들을 관찰했다.종사만 백 명이 넘었고 대종사는 서른 이상인 것 같았다. 그 외 진서준은 두 갈래의 강력한 기운을 느꼈다.그 기운은 접때 강남에서 마주쳤던 왕안석보다 훨씬 섬뜩했다.“어르신, 호국 장군도 오신 거 아니에요?”진서준이 물었다.“맞아요. 봉호전이 열릴 때마다 호국 장군 한 분은 꼭 참석하곤 했죠.”임준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이번에는 한 분 더 오신 것 같네요.”임준이 낮은 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진씨 가문 사람인 걸로 알고 있어요.”진서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씨 가문에 호국 장군이 있을 줄은 몰랐다.“진서훈 씨. 촌수로 따지면 아마 진서준 씨의 작은 증조할아버지일 거예요.”임준이 설명했다.진서훈은 진혁의 작은 아버지였고 100세 고령이 다 된 나이었다. 한국의 크고 작은 전쟁에도 다 참여한 적이 있었다.“제 신분은 알고 있나요?”진서준이 물었다.“서준 씨 사진을 본다면 무조건 알아볼 거예요.”임준이 말했다.나이가 든 사람들은 진서준을 보면 거의 진요한으로 생각했다. 진광이 진서준을 알아보지 못한 건
‘저 사람이 진 마스터님이라고?’임평지는 넋을 잃고 말았다.어제 레스토랑에서 진서준에게 진 마스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떠들어댔던 게 떠올라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허사연에게 진 것보다 오히려 더 쪽팔렸다.“임평지 씨, 왜 그러세요?”스태프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임평지를 보고 툭 건드렸다.“괜찮아요... 전 괜찮아요...”임평지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이젠 진서준을 쳐다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봉호전 불참해도 되나요?”임평지가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진서준이 진 마스터라는 걸 알았다면 절대 허사연을 희롱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사부님도 진 마스터의 상대가 못 되는데 고작 내공경 무인인 그는 어림도 없을 게 뻔했다.“임평지 씨, 신청서에 이름을 적었으니 반드시 참여해야 합니다.”스태프가 말했다.진서준은 그런 임평지를 경멸햇다.“나를 때려죽이겠다던 기세는 어디 가고 이제 와서 깨갱거리는 거예요?”“링에서는 사람을 죽여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요.”이 말에 임평지는 더 큰 불안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진서준은 분명 그를 죽일 생각으로 신청서를 작성했을 것이다.옆에 선 호국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진 마스터님, 이 사람은 누구예요? 설마 이 사람도 어린 나이에 대종사의 경지까지 달성한 거예요?”대종사만큼의 실력도 없이 진서준에게 덤빈 거라면 자살 행위에 불과했기에 호국사도 임평지의 신분과 실력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진 마스터님, 제가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나댔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세요.”임평지가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울먹였다.“어제 분명 기회를 줬는데 걷어찼잖아요.”진서준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표정에서는 그 어떤 연민도 보이지 않았다. 이 모든 건 다 임평지가 자초한 일이었다.“사부님, 사부님. 살려주세요.”임평지가 얼른 임진우 뒤로 달려갔다.임진우는 남자가 돼서 울먹거리는 임평지를 보고 차가운 표정으로 훈계했다.“남자가 어찌 눈물을 함부로 보여? 부끄럽지도 않아?”임평지
“저 젊은이는 누구지? 죽고 싶어서 환장하지 않은 이상 어떻게 임진우와 붙을 생각을 해?”“저 노인네가 임진우야? 나도 이름은 들어봤어. 실력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대종사가 내공경 무인을 괴롭히는 건데 볼 필요도 없겠네.”구경꾼들이 진서준에게 야유의 눈길을 보냈다.방금 그들을 안내하던 호국사가 웃음을 터트렸다.“지금 링 위에서 선 분이 누군지 알기나 해요?”“누군데요?”“남주성의 진 마스터님이에요.”이 말에 진서준을 비웃던 사람들의 웃음이 그대로 굳어버렸다.남주성에서 진 마스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젊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저... 저 사람이 진 마스터님이라고? 호국사가 농담한 거 아니야?”“아니야. 진 마스터님이 저렇게 젊을 리가 없잖아.”“정말 진 마스터님인 것 같은데? 전에 무도 커뮤니티에서 진 마스터님의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저 사람과 아주 닮은 것 같아.”호국사가 웃으며 말했다.“농담이 아니에요. 곧 알게 될 거예요.”그 시각, 링.임진우는 정신이 온통 진서준에게 쏠려 있어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임진우도 진서준이 진 마스터라는 걸 알았다면 아마 임평지처럼 바로 사과했을 것이다.“진서준 씨, 혹시 뭐 유언 같은 거 남길 거 없어요?”임진우가 차갑게 물었다.“내가 시간이 별로 없어서 후딱 끝내죠?”진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연속으로 13승을 거두려면 시간이 부족하긴 했다.눈에 뵈는 게 없는 진서준의 태도에 임진우가 불같이 화를 내더니 총알처럼 진서준을 향해 질주했다.대종사의 실력은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임진우의 발이 닿을 때마다 마치 누군가 큰 쇠망치로 링 바닥을 크게 두드리는 것처럼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강기가 임진우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칼처럼 앞에 있는 공기를 사정없이 휘저었다.구경꾼들은 진서준이 어떻게 맞서나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호국사가 비록 진서준이 진 마스터라고는 했지만 사람들은 아직 잘 믿지 못했다.진서준은 말이 안 될 정도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