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는 대종사 레벨의 호국사 네 명과 실탄을 장전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여기가 원래 경성의 군사기지였나 봐요.”“봉호전이 시작되면서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산에서 내보냈대요.”임준의 설명에 진서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신분을 증명할 서류를 보여주고 진서준은 일행과 함께 산 중턱으로 향했다.산 중턱의 공터는 진서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고 축구장 3개 정도는 될 것 같았다.셀 수 없이 많은 불빛이 공터를 환하게 비춰줬다. 이 공터에는 합금으로 이루어진 링이 13개 세워져 있었고 링 하나당 10만 킬로그램의 힘을 이겨낼 수 있었다.대종사 6단계라고 해도 링을 부수기엔 무리일 것 같았다.“봉호전은 3일간 열릴 거예요. 오늘 바로 시작할 생각이에요?”임준이 진서준에게 물었다.“네. 빨리 시작해서 빨리 끝내고 얼른 돌아가서 더 수련해야죠.”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옆을 스쳐 지나가는 무인들을 관찰했다.종사만 백 명이 넘었고 대종사는 서른 이상인 것 같았다. 그 외 진서준은 두 갈래의 강력한 기운을 느꼈다.그 기운은 접때 강남에서 마주쳤던 왕안석보다 훨씬 섬뜩했다.“어르신, 호국 장군도 오신 거 아니에요?”진서준이 물었다.“맞아요. 봉호전이 열릴 때마다 호국 장군 한 분은 꼭 참석하곤 했죠.”임준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이번에는 한 분 더 오신 것 같네요.”임준이 낮은 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진씨 가문 사람인 걸로 알고 있어요.”진서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씨 가문에 호국 장군이 있을 줄은 몰랐다.“진서훈 씨. 촌수로 따지면 아마 진서준 씨의 작은 증조할아버지일 거예요.”임준이 설명했다.진서훈은 진혁의 작은 아버지였고 100세 고령이 다 된 나이었다. 한국의 크고 작은 전쟁에도 다 참여한 적이 있었다.“제 신분은 알고 있나요?”진서준이 물었다.“서준 씨 사진을 본다면 무조건 알아볼 거예요.”임준이 말했다.나이가 든 사람들은 진서준을 보면 거의 진요한으로 생각했다. 진광이 진서준을 알아보지 못한 건
‘저 사람이 진 마스터님이라고?’임평지는 넋을 잃고 말았다.어제 레스토랑에서 진서준에게 진 마스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떠들어댔던 게 떠올라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허사연에게 진 것보다 오히려 더 쪽팔렸다.“임평지 씨, 왜 그러세요?”스태프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임평지를 보고 툭 건드렸다.“괜찮아요... 전 괜찮아요...”임평지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이젠 진서준을 쳐다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봉호전 불참해도 되나요?”임평지가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진서준이 진 마스터라는 걸 알았다면 절대 허사연을 희롱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사부님도 진 마스터의 상대가 못 되는데 고작 내공경 무인인 그는 어림도 없을 게 뻔했다.“임평지 씨, 신청서에 이름을 적었으니 반드시 참여해야 합니다.”스태프가 말했다.진서준은 그런 임평지를 경멸햇다.“나를 때려죽이겠다던 기세는 어디 가고 이제 와서 깨갱거리는 거예요?”“링에서는 사람을 죽여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요.”이 말에 임평지는 더 큰 불안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진서준은 분명 그를 죽일 생각으로 신청서를 작성했을 것이다.옆에 선 호국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진 마스터님, 이 사람은 누구예요? 설마 이 사람도 어린 나이에 대종사의 경지까지 달성한 거예요?”대종사만큼의 실력도 없이 진서준에게 덤빈 거라면 자살 행위에 불과했기에 호국사도 임평지의 신분과 실력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진 마스터님, 제가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나댔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세요.”임평지가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울먹였다.“어제 분명 기회를 줬는데 걷어찼잖아요.”진서준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표정에서는 그 어떤 연민도 보이지 않았다. 이 모든 건 다 임평지가 자초한 일이었다.“사부님, 사부님. 살려주세요.”임평지가 얼른 임진우 뒤로 달려갔다.임진우는 남자가 돼서 울먹거리는 임평지를 보고 차가운 표정으로 훈계했다.“남자가 어찌 눈물을 함부로 보여? 부끄럽지도 않아?”임평지
“저 젊은이는 누구지? 죽고 싶어서 환장하지 않은 이상 어떻게 임진우와 붙을 생각을 해?”“저 노인네가 임진우야? 나도 이름은 들어봤어. 실력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대종사가 내공경 무인을 괴롭히는 건데 볼 필요도 없겠네.”구경꾼들이 진서준에게 야유의 눈길을 보냈다.방금 그들을 안내하던 호국사가 웃음을 터트렸다.“지금 링 위에서 선 분이 누군지 알기나 해요?”“누군데요?”“남주성의 진 마스터님이에요.”이 말에 진서준을 비웃던 사람들의 웃음이 그대로 굳어버렸다.남주성에서 진 마스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젊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저... 저 사람이 진 마스터님이라고? 호국사가 농담한 거 아니야?”“아니야. 진 마스터님이 저렇게 젊을 리가 없잖아.”“정말 진 마스터님인 것 같은데? 전에 무도 커뮤니티에서 진 마스터님의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저 사람과 아주 닮은 것 같아.”호국사가 웃으며 말했다.“농담이 아니에요. 곧 알게 될 거예요.”그 시각, 링.임진우는 정신이 온통 진서준에게 쏠려 있어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임진우도 진서준이 진 마스터라는 걸 알았다면 아마 임평지처럼 바로 사과했을 것이다.“진서준 씨, 혹시 뭐 유언 같은 거 남길 거 없어요?”임진우가 차갑게 물었다.“내가 시간이 별로 없어서 후딱 끝내죠?”진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연속으로 13승을 거두려면 시간이 부족하긴 했다.눈에 뵈는 게 없는 진서준의 태도에 임진우가 불같이 화를 내더니 총알처럼 진서준을 향해 질주했다.대종사의 실력은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임진우의 발이 닿을 때마다 마치 누군가 큰 쇠망치로 링 바닥을 크게 두드리는 것처럼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강기가 임진우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칼처럼 앞에 있는 공기를 사정없이 휘저었다.구경꾼들은 진서준이 어떻게 맞서나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호국사가 비록 진서준이 진 마스터라고는 했지만 사람들은 아직 잘 믿지 못했다.진서준은 말이 안 될 정도
“당... 당신이 진 마스터님이라고요?”임진우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눈을 부릅뜬 채 진서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그게 중요한가요? 어찌 됐든 당신은 내 상대가 못 돼요.”진서준은 임진우를 힐끔 쳐다보더니 더는 상대하지 않고 아까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을 돌아봤다.구경꾼의 시선도 따라서 그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늙은이가 하얀 도포를 입고 서 있었는데 아우라가 남달랐다.그러다 한 중년 남자가 얼굴 근육을 파르르 떨며 감탄을 내뱉었다.“원현성 마스터님이잖아.”젊은이들은 원현성이 누군지 모르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60대 이상의 늙은이들은 일제히 황송한 표정으로 한걸음 물러섰다.“저 사람이 도대체 누군데요?”누군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원현성은 인의방 일 순위에 오른 사람이야. 지의방의 수호자기도 하지. 지의방에 들어가려면 일단 원현성과 두수 이상은 겨뤄보고 원현성이 오케이 해야 지의방에 들어갈 수 있어.”“하지만 원현성은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이런 장소에 잘 나타나지 않지.”칠십은 넘어 보이는 백발의 늙은이가 이렇게 설명했다.“아까 진 마스터님을 부르지 않았나요? 진 마스터 님을 데리로 온 것 같은데요?”“아마 진 마스터에게 복수하려고 일부러 찾아온 것 같은데?”“그러면 진 마스터님 위험한 거 아니에요? 인의방 일 순위를 어떻게 이겨요?”아래에서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연신 감탄을 뱉어냈다.비록 원현성은 인의방 일 순위였지만 실력으로 따지면 지의방 톱 팔십 안에는 무조건 들 수 있었다.진서준은 최근에 소문이 자자하긴 했지만 아직 너무 어렸다. 승패는 이미 정해진 것 같았다.링 가장자리로 걸어간 원현성은 고작 20대인 진서준을 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진 마스터님, 드디어 뵙네요.”진서준은 전에 원현성 아들의 단전을 망가트려 반병신으로 만들어 놓았다. 원현성은 어떻게든 이 원수를 갚고 싶었다.진서준은 링 밖에 서 있는 호국사를 보며 이렇게 물었다.“첫 번째 라운드는 승패가 이미 갈린 것 아닌가요? 선포
“저... 저분 현천 진군인 것 같은데?”누군가의 감탄에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그쪽으로 쏠렸다.백발이지만 동안인 늙은이가 천천히 안으로 입장하자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세상에.”진서훈 뒤로 또 한 명의 늙은이가 보였는데 그 늙은이는 호국 장군이자 청연 진군인 최현우였다.두 호국 장군의 등장에 사람들이 숙연한 표정으로 존경심을 드러냈다.이 두 사람은 천의방에 오른 거물이었다. 25년 전 무도의 난을 겪은 사람들이기도 했다.두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한국이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게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봉호전은 예전부터 호국 장군이 관리하고 있었지만 현장에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늘 한꺼번에 두 명이나 참석한 것도 모자라 같이 등장하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걸음도 참 빠르시네요. 저 좀 기다려주세요.”이 목소리에 구경꾼들이 다시 넋을 잃고 말았다. 아우라가 남다른 늙은이가 잰걸음으로 두 호국 장군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대박. 천자 진군까지 오셨어... 오늘 도대체 무슨 날이야? 한꺼번에 세 명의 호국 장군이 한자리에 모인 거 아니야...”현장에 있는 여러 대종사, 그리고 원현성까지도 표정이 어두워졌다.‘설마 진서준 때문인가?’진서준이 국안부 상경인 건 원현성도 알고 있었다.이렇게 젊은 사람이 국안부의 상경이 되었다는 건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소리였다.국안부는 지금 한국의 자랑이면서 보물이기도 했다.만약 이 세 사람이 진서준을 지키려 한다면 원현성은 복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진서준의 시선도 세 명의 호국 장군에게 향해 있었다.세 사람 다 기운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래도 진서준은 그들 체내에 있는 무서운 힘을 느낄 수 있었다.만 년 전에 있었던 천고 괴물처럼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했다.마침 고개를 든 진서훈은 진서준과 시선이 마주치자 가볍게 웃어 보였다. 진서훈이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진서준은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봉호를 따내면 얘기 좀 하자.”진서훈은 선천의 힘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고 있었다
링.진서준은 위협적인 원현성 앞에서도 꽤 덤덤했다. 파란 진기가 진서준을 에워싸고 원현성의 공격을 막아주고 있었다.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대치하고 있다가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젊은 무인들은 두 사람의 그림자만 얼핏 보였고 이따금 들리는 굉음은 누군가 귓가에 폭탄을 던진 것처럼 컸다.나이가 든 종사들은 두 사람의 움직임 정도는 보아냈지만 어떤 무술을 쓴 건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4급 이상의 대종사만이 그 무술을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었다.“대박. 저건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야.”“속도와 힘으로만 봐도 진 마스터님은 이미 대종사의 경지에 오른 것 같은데?”“더 소름인 게 뭔지 알아? 원 마스터님은 원래 술법을 쓰는 영선이지 무도를 전문적으로 수련한 사람이 아니야.”이 말에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술법 영선이 이렇게나 빠른 속도와 힘을 가지고 있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무도 실력이 1급 대종사밖에 안 되는 원현성이 이런 실력을 뽐낼 수 있었던 건 진기를 발바닥과 손바닥에 집중시켰기 때문이었다.원현성은 매번 움직일 때마다 몸이 바람처럼 가벼웠고 진서준에게 주먹을 날릴 때도 강기가 아닌 진기를 사용했다.경기 시작 3분 만에 두 사람은 이미 백번 남짓하게 겨뤘고 그때마다 생겨난 여파는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송경식의 선천의 힘으로 보호하지 않았다면 젊은 무인들이 많이 다쳤을지도 모른다.“언니, 서준 오빠 링으로 올라갔어요?”유정이 서산객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했다.“응. 상대는 원현성이야. 들어보니 실력이 무시무시하다던데.”허사연이 걱정스레 말했다.“네? 원현성이요? 너무한데?”유정이 화들짝 놀랐다.예전에 서남에 있을 때 유기명이 말해서 들은 적이 있었다.인의방에서만 일 순위지만 실력은 무섭기 그지없다고 했다.“어르신, 진서준이 원현성에게 진다면 구해주실 수 있나요?”유정이 서산객에게 물었다.“아가씨, 링에 오르고 나서는 생사를 운명에 맡겨야 해요.”“게다가 호국 장군도 세 명이나 계시니
진서준은 원현성이 진기로 만들어낸 용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내가 이번에 신청한 봉호가 뭔지 아직 모르죠?”진서준이 앞으로 한걸음 성큼 다가섰다.순간 검의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검도를 수련하는 무인들의 등과 허리춤에 찬 장검이 전율했다.“세상에 용이 많다 한들 나를 보면 머리를 조아려야 합니다.”“제가 신청한 봉호는 용존입니다.”정말 오만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용에게 머리를 조아리라고 한 건 진서준이 처음이었다.관전하던 세 명의 호국 장군들도 진서준의 호탕한 기세에 놀라고 말았다.“진 장군님, 진서준 씨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요.”송경식이 웃으며 말했다.“아버지만 봐도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죠.”진서훈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진서준의 재능이 아직 아버지 진요한을 따라잡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오만한 건 똑같았다.그런 진서준을 바라보는 허사연의 눈빛은 흠모와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여자라면 누구든 자기 남자가 능력 좋고 대단한 사람이길 바랄 것이다.“이번 경기의 승자는 나에요.”짧은 한마디였지만 예리한 검과도 같이 위협적이었다. 진서준은 이 말과 함께 다시 자취를 감췄다.종사들의 눈에는 서슬 퍼런 진서준의 검밖에 보이지 않았다. 진서준이 언제 검을 휘둘렀는지 알아채기도 굉음이 들렸다.금속으로 만든 링은 수십만 킬로그램이 넘는 물건으로 부순 것처럼 절반이 날아간 상태였다.원현성이 만든 용은 두 발로 진서준의 검을 꽉 잡고 있었다.검은 가벼워 보였지만 힘이 무시무시했다. 원현성의 용은 마치 등에 집채같은 산이라도 업은 것처럼 힘들어 보였고 원현성의 얼굴도 점점 빨갛게 달아올랐다.원현성이 두 손으로 주문을 읊자 용의 몸집이 점점 더 선명해지기 시작했다.진서준은 원현성을 힐끔 쳐다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한방에 용을 없애줄게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진서준은 다시 자취를 감췄다.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났을 때 진서준의 빛은 은하수처럼 눈 부신 빛을 내며 하늘에서 떨어졌다.허공에서 반짝이는 진서준의 검을 보고 사람들은
“다음.”현장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진서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경기가 시작되기 전 사람들은 진서준이 무조건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야 진서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알아챘다.지구전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서준은 단 두 방에 원현성을 때려눕혔다.너무나도 무서운 실력이었다. 어떻게 저런 경지까지 올라가게 된 건지 의문이었다.“대박. 형부가 이겼어. 형부가 이겼다고.”허윤진의 함성에 적막이 깨졌다.서산객도 눈이 휘둥그레졌다.“아가씨, 아가씨가 찾은 이 남자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요.”유정은 지금 매우 흥분한 상태라 서산객이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진서준의 동생이라는 명목으로 같이 다니고 있지만 진서준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허사연도 잘 알고 있었기에 누구도 서산객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정말 의외네.”관전하던 진서준이 감탄했다.진서준의 마지막 한 방은 5급의 정점을 찍은 대종사와 맞먹는 실력이었다.5급 대종사여도 진서준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격으로 진서준은 체내의 영해가 거덜 난 상태였다.다행히 진서준은 영기를 회복하는 단약을 미리 준비했다.아까 차에서 임준도 진서준에게 단약을 건네줬다.진서준은 임씨 가문과 혈연관계가 있었기에 임준도 진서준이 잘못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이만 내려가요. 목숨은 살려줄게요.”진서준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원현성에게 덤덤하게 말했다.해외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용의 안식 계획을 들은 뒤로 진서준은 국내의 무인들에게 조금 인자해졌다. 무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무도에 대한 인자함도 있었다.내년 4월 해외의 강자들이 대한민국의 무인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일 예정이라고 들었기에 원수를 지지만 않으면 진서준도 절대 죽일 생각은 없었다.“왜 나를 풀어주는 거죠?”원현성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의아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 진서준도 분명 원현성이 그를 죽이려 했다는 걸 알 텐데 말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
아침, 설표 특전대 기지.단잠에 빠져 있던 소정태와 고인권 등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군부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회의실에 집합했다.“어젯밤, 묘강에서 폭동이 발생했어. 그러나 배논국 군부가 폭동을 단숨에 진압하며 묘강은 다시 배논국의 영토로 돌아갔어.”상부의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여덟 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소정태 일행은 서남 국경에서 묘강의 사수들과 적지 않게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다들 묘강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미친놈일 뿐만 아니라 주술과 독충술까지 능숙히 다루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자기들만의 군대와 탱크와 같은 대형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배논국 군부가 강제로 공격했다간 양측 모두 피바다가 될 게 뻔했다.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묘강이 평정되다니 너무나 기묘한 일이었다.“혹시... 진 교관이 한 일이 아닐까?”고인권이 불쑥 입을 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여덟 사령관은 진서준이 묘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어마어마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설, 설마 그랬겠어? 진 교관님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묘강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잖아?”누군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그건 너무 황당한 얘기야. 게다가 진 교관이 대체 어떻게 묘강에 갔단 말이야? 그곳은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어서 전신전 병사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봐.”소정태가 갑자기 말했다.“너희들 기억하지? 예전에 너희가 설표 특전대가 최고 특전대로 올라설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근데 진 교관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어, 그것도 한 달도 안 걸려서 말이야. 지금도 난 똑같이 믿어. 진 교관님은 묘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소정태는 진서준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소정태는 그야말로 진서준의 열렬한 팬이었다.“그럼, 진 교관님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적기가 포착됐고 곧이어 포탄이 몇 발 날아왔다.조종사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다.쾅!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튕기며 대낮처럼 환해졌다.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오스프리 전투기 두 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문기는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유문기가 두려워하는 건 오스프리 전투기가 아니라 바로 그 괴물 같은 존재, 진서준이었다.묘왕은 자기 비장 카드인 오스프리 전투기가 파괴된 것을 보며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누가 한 짓이야? 어떤 미친놈이 감히 내 전투기를 부쉈어?”그 순간, 배논국 군대 로고가 새겨진 전투기 수십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이 광경에 묘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아까 상황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걸...’전투기 편대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대규모 부대가 들이닥쳤다.지도자를 잃은 묘강은 머리를 잃은 파리 떼처럼 혼란에 빠졌다.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진서준은 더 이상 이들과 놀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잡고 단 일격으로 묘왕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눈을 뜬 채 죽은 묘왕의 눈에는 끝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묘왕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을 수 없었다.“날 죽여.”이때의 유기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유기철이 본인이 아무리 애원해도 진서준이 살려주지 않을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넌 네 친조카까지 해쳤어. 널 만 번 죽여도 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야.”진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다.“난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널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게 해주지.”그 말과 함께 진서준은 손바닥으로 유기철의 가슴을 내리쳤다.유기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기철은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는 건 두렵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유문기 일행은 순간 얼어붙었다.유문기와 묘왕은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그들의 공동의 적이었다.진서준이 살아있다면 그들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유문기와 묘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묘왕과 유기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두 사람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너 폭탄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야?”유문기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방금 폭탄이 터진 후, 묘왕 혼자만 폭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유문기는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유문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문기의 예측은 현실을 완전히 빗나갔다.“네 생각에 그 포탄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네 눈엔 내가 저 늙은 영감탱이만도 못해 보이나?”영감탱이는 당연히 묘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진서준, 네가 묘왕을 죽여준다면 내가 묘강의 재산 절반을 네게 주마. 어때?”진서준과 맞설 수 없음을 깨달은 유문기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바로 진서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진서준을 자기편으로 영입하면 진서준이 자기를 건드릴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묘강의 재산은 거의 배논국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배논국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였기에 그 재산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하지만 진서준에게 이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진서준이 이번에 온 이유는 단 두 개, 유문기를 죽이고 묘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진서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더군다나 묘강의 돈은 대부분 불법적인 경로에서 온 더러운 돈이었다.그런 돈은 진서준이 원하지 않았다.유문기가 진서준을 설득하려는 걸 본 묘왕은 즉시 눈을 굴리며 외쳤다.“이봐 청년, 네가 저놈을 죽인다면 내가 묘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어. 사실 너와 나 사이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어. 유씨
묘왕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옷은 다 찢어졌으며 고약한 타는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묘왕의 옷 속에 숨어 있던 독충들이 조금 전의 고온에 의해 증발한 냄새였다.지금의 묘왕은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 같았고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소리쳤다.“아버지, 저놈을 죽여요! 저놈을 죽이면 우리는 묘강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유기철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내가 묘왕을 공격하라고?”유기철의 단전도 파괴되어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제 단전도 저 진서준이란 자에게 쥐어박혀서 망가졌어요. 제가 공격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버지를 시키겠어요?”유문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문기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묘왕을 죽이고 싶었다.그동안 유문기는 묘왕에게 개처럼 부려지며 살아왔다.때때로 독을 시험하는 일도 겪었는데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몇 년째 묘왕을 죽이고 싶었던 유문기는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방금 진서준에게 단전이 파괴되어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내 단전도 파괴된 거 잊었어?”유기철의 말에 유문기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이걸 드시면 일시적으로 예전의 힘을 조금 되찾을 수 있습니다.”유기철은 약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이거 부작용 없겠지?”부작용이 없다면 유문기는 자기가 먼저 먹었을 것이다.“부작용 있습니다. 먹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폐인이 됩니다.”유문기는 솔직하게 부작용을 실토했다.“아버지. 지금 이게 우리 유일한 기회예요. 저놈을 죽이고 제가 묘왕이 되면 뼈가 다 부서져도 제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놈 손에 죽을 겁니다.”유문기의 분석을 듣자 유미철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묘왕의 손에 죽거나 이 기회에 한 번 싸워보고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기철은 더 이상 망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