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 일행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광의 아버지는 전화를 받고 즉시 진광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왜 내 아들이 너희 가게에서 기절했을까?”진광 아버지 진명철이 매니저를 향해 호통쳤다.매니저도 어쩔 수 없어서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진명철의 안색이 갑자기 돌변했다.“내 아들이 다른 사람의 협박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당시 소룡 도련님도 자리에 계셨습니다. 나중에 세 명의 여자가 더 왔는데 모두 지역 가문의 사람이었고 소룡 도련님도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으셨습니다.”진명철이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비록 아들의 잘못도 있지만, 상대방도 너무 했어!”이들은 체면을 제일 신경 쓰고 있었다.이 일이 밖에 퍼진다면 진씨 가문 사람들은 틀림없이 다른 가문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었다.“그 청년 이름이 뭐라고?”진명철은 체면을 되찾기로 결심했다.“제가 알아요. 진서준이라고 합니다. 남주성 사람이에요.”오인혁이 얼른 답했다.그는 진씨 가문이 가만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진명철을 따라 병원으로 왔다.상대방도 진씨라는 말에 진명철은 미간을 찌푸렸다.“남주성? 설마...”예전에 중부 삼성의 소년 진 마스터에 대해 진명철도 들은 적이 있었다.그래서 진명처은 자기 아들을 때린 사람이 진 마스터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그 사람이라면 봉호전에서 볼 수 있겠지.”진명철은 봉호전에서 체면을 찾을 생각이었다.그때면 대한민국의 천교가 거의 다 모일 것이다.마침 체면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였다.유지수는 내내 진서준에게 들러붙으며 진서준 일행을 따라 임씨 가문에서 제공해 준 숙소로 향했다.“와, 어전 별장이라니... 진서준아, 진서준. 정말 부자구나?”유지수가 별장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유지수가 별장의 이름을 바로 부르자, 진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진서준은 갑자기 유지수에게 다가가 그녀를 죽일 듯이 주시했다.깜짝 놀란 유지수가
자주 가던 식당은 시간이 아무리 오래 지났더라도 기억에 남는 법이었다.설마 정말 유지수가 아니란 말인가?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그녀는 또 누구일 것인가.“잊었어? 그럼 네 목뒤에 있던 그 모반은? 수술해서 지운 거야?”진서준이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잠시 침묵을 지킨 유지수가 이내 싱글벙글 웃으며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언제 내가 가짜라는 걸 안 거야?”유지수가 바로 인정하자 허사연 일행도 넋이 나갔다.“정말 유지수가 아니라고? 그럼 왜 똑같이 생긴 거야?”“친동생이니까.”유지수가 웃으며 답했다.“진서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언제부터 내가 유지수가 아니라고 의심한 거야?”그녀는 자신이 시종일관 유지수를 잘 연기해 왔다고 생각했다.유지수를 완벽하게 따라 하기 위해 그녀는 많은 공을 들였다.“고양시에서 만나 네가 세 가지 임무를 주겠다고 했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비록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유지수 특유의 분위기와는 아직 거리가 먼 것 같네. 유지수는 평범한 사람이었어. 이지성에게 시집갔다 해도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 하지만 너는 일거수일투족에 상류층 사람이 풍길 법한 분위기를 풍겼지. 이건 오랜 세월 동안 겪어야만 가질 수 있는 분위기야.”진서준이 유지수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대학 시절 유지수와 3년을 함께 했는데 그녀의 습성은 내가 너보다 더 잘 알아. 정말 유씨 가문 가주의 딸이라고 해도, 한순간 백조로 탈바꿈할 수는 없어. 하지만 너는? 사연이랑 김연아랑도 조금의 불편함도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렸지. 그리고 별장의 이름을 바로 말할 때는 더 이상했어.”진서준의 설명을 들은 유지수가 어깨를 으쓱했다.“하... 역시 완벽한 복제는 불가능하네.”진서준이 캐물었다.“유지수는? 어디 갔어?”진서준은 유지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유씨 가문에서 또 어떤 망신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눈앞에 있는 이 유지수는 틈만 나면 진서준을 꼬셨다.만에 하나라도 진서준이 참
유연비는 유지수보다 더 대담했다.유지수는 지난 시간 동안 진서준과 재결합하고 싶어도 이렇게까지 대담한 말은 한 적이 없었다.“역시 친자매네. 하나같이 낯이 두꺼워.”허윤진이 진서준을 자기 뒤로 끌어당기며 유연비가 닿지 못하도록 막았다.“그래? 대체 누가 뻔뻔하단 거야? 너랑 허사연은 친자매 아니야? 하지만 같은 남자를 좋아하고 심지어 그 사람을 함께 섬길 계획을 하고 있지 않아?”유연비는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 말에 서지은도 깜짝 놀랐다.‘허윤진도 진서준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진서준과 허사연이 커플인데... 허윤진은 허사연의 친동생이고... 이게...’보수적인 사상을 지닌 서지은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무슨 헛소리야!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면 네 입을 갈기갈기 찢을 거야.”화가 난 허윤진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이를 갈았다.이런 일은 모두가 마음속으로 알고만 있으면 되었다.직접 말하기에는 조금 수치스러웠다.“내가 헛소리하는 건지 아닌지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잘 알겠지.”유연비가 웃으며 답했다.“됐어. 너희랑 싸우기도 싫네. 간다.”“잠깐만. 이번 달 약 줘야지!”진서준이 얼른 유연비를 불러 세웠다.곧 월말인데 유연비는 아직 진서라의 약을 주지 않았다.“약을 원해? 그럼 애원해 봐.”유연비가 고개를 돌려 장난스럽게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안 줄 거면 오늘 여기서 나갈 생각하지 마.”허윤진이 바로 협박을 가했다.그녀는 유연비에게 인내심이 없었다.‘저 여자... 정말 가증스럽네.’“좋네. 어차피 죽는 것도 두렵지 않고, 가는 길에 진서라 같은 미인도 있으니 나야 좋지 뭐.”유연비가 생글생글 웃으며 받아쳤다.주먹을 불끈 쥔 진서준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솟구쳤다.한 여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느낌은 너무 괴로웠다.“정말 나쁜 년이네.”“칭찬 고마워.”유연비의 낯은 여간 두꺼운 게 아니었다.그녀는 허윤진의 욕설에 면역되었다시피 있었다.“내가 진서준 대신 빌게. 서라 약 좀
진서준이 허사연의 손을 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서준 씨랑 서라만 괜찮다면 된 거죠.”이때, 허윤진은 그녀와 허사연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그녀가 진서준에 대한 사랑은 이기적인 감정이었다.하지만 허사연이 진서준에 대한 사랑은 사심 없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었다.진서준이 기쁘면 허사연도 기쁜 것이었다.이 차이는 허윤진이 오랜 시간을 거쳐서야 메울 수 있을 것이었다.늦은 밤, 허사연은 진서준에게 오랜 시간 시달렸다.허사연이 용서를 빌 때에야 진서준은 멈췄다.“오늘 웬일이에요? 약 먹은 것 같은데요? 저녁에 있었던 일 때문에 그래요? 마음에 두지 마요. 서준 씨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거예요.”허사연이 진서준의 품에 안겨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사연아, 너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진서준이 허사연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저도요.”봉호전 시작 하루 전이 되자 경성으로 입성하는 사람은 갈수록 많아졌고 모든 특급 호텔은 이미 꽉 차 있었다.일부 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기차역 근처 작은 모텔에서 묵어야 했다.국안부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30명의 호국사를 파견했다.심지어 명주를 지키고 있던 현천진군마저 달려왔다.특급 식당 안,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다.“정란아, 함부로 보지 마.”식탁에 정란이 한 젊은이와 한 노인과 앉아 있었다.지난번 정란 가족이 진서준 가족과 밥을 먹었을 때 그녀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그 후 정란은 그녀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진서준보다 더 강한 사람을 찾아 진서준에게 타격을 줘야겠다고 다짐했다.한 번의 타격을 겪은 후, 정란은 현재의 남자 친구를 만났다.이 남자 친구가 정란에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줬고 그녀에게 이 세상에 무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평지 씨, 이 사람들은 전부 무인이에요?”정란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보며 호기심에 겨워 물었다.“맞아. 모두 강한 실력을 지닌 무인들이야.”임평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평소에는 무인을 보기
“진서준이 왜 여기 있지.”정란은 원래 구정이 지나면 임평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진서준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돈 많은 여자 친구 찾은 게 뭔 대수인가? 무인인 평지 씨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할 거면서. 서울시에서 내놓으라 하는 사람들도 우리 평지 씨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데.’임평지가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왜? 아는 사람이야?”“네. 사촌 오빠인데 옥살이하고 나와서 돈 많은 아줌마 만나고 나서는 우리 가문을 무시하기 시작하더라고요.”정란이 차갑게 웃었다.“돈 때문에 자존심까지 내려놓는 남자라면 옥살이해도 싸지.”임평지도 한마디 거들었다. 임평지는 진서준이 돈 때문에 뚱뚱하고 못생긴 아줌마와 붙어먹었고 그런 사람은 남자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지가 멀쩡한데 왜 스스로 노력할 생각은 않고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내가 가서 데려올게요.”정란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문 쪽으로 걸어갔다.진서준은 허사연, 그리고 다른 일행과 자리를 뜨려고 하던 참이었다. 밥 먹으러 왔는데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진서준.”진서준이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정란이었다.진짜 신분을 알게 된 후로 진서준은 정란 일가가 그와 친척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그해 진서준의 어머니 임수련이 서울시로 도망 왔을 때 우연히 진짜 조희선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때 조희선은 거의 얼어 죽기 일보 직전이었고 임수련은 조희선이 자기와 외모가 퍽 닮은 걸 보고 조희선으로 위장했다.그때는 주민등록증이 생기기 전이었고 제대로 된 사진조차 없었다. 게다가 정란 일가는 조희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에 임수련이 조희선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이다.친척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지금 진서준도 더는 정란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아부밖에 모르는 친척은 둘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경성에는 왜 올라온 거야?”정란이 거들먹거리며 진서준을 쳐다봤다. 진서준이 못 올 데라도 온 것처럼 말이다.진서준도 정란의 말뜻
두 사람은 다 무인이었다. 그중 임진우 무도 대종사였다.진서준은 그제야 정란이 왜 밥을 사주겠다며 불렀는지 알 것 같았다. 작정하고 면박을 주려는 것이었다.“당연하죠. 식당을 통으로 예약한다 해도 끄떡없습니다.”임평지가 꽤 열정적으로 대꾸했다.정란도 예쁘게 생겼지만 허사연 그리고 그 일행과 비기면 천지 차이였다. 임평지는 그들의 외모에 이미 마음을 완전히 뺏겨버린 상태였다.“평지 씨, 지금 뭐 보는 거예요?”임평지는 정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허사연과 그 일행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에 정란은 기분이 매우 잡쳤다.임평지는 정란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허사연에게 말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임평지라고 합니다. 내공경 무인입니다.”“아, 네.”임평지의 이글이글한 눈빛에 허사연은 몸에 소름이 돋아 역겹다는 표정으로 단답형으로 말했다.임평지는 허사연의 반응을 예상했다. 일반인은 무인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기에 이따가 강력한 실력만 보여주면 무조건 반해서 먼저 다가올 것이라고 믿었다.“내공경의 무인이 뭔지 모르죠?”“이렇게 설명하면 쉬우려나? 앞에 보이는 이 벽을 주먹 한 방에 구멍 낼 수 있다고 보면 돼요.”오만한 임평지의 말에 허사연이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그녀가 내공경을 모른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내공경이라면 그녀와 비슷한 경지였다.남자가 돼서 실력이 비슷한 것도 모자라 그걸로 우쭐대고 있으니 정말 우스웠다.허사연도 만만한 성격은 아니었기에 바로 이렇게 쏘아붙였다.“그러면 나와 비슷하네요.”“네?”임평지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비슷하다고요? 무슨 그런 농담을.”허윤진이 콧방귀를 꼈다.“우리 언니 농담한 거 아니거든요. 그쪽은 우리 언니 상대도 못 돼요.”‘뭐야? 둘이 자매였어? 정란과는 비교도 안 되게 너무 예쁜데?’임평지는 침을 질질 흘릴 지경이었다.옆에 선 정란의 표정이 점점 굳었다. 원래는 임평지에게 진서준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달라고 할 참이었다.하지만 임평지는 오히려 그녀를
순간 구경하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자를 꼬시려고 한 거야?”“아가씨, 오빠가 저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보다 훨씬 세니까 오빠랑 갈래?”“아가씨들, 오늘 저녁에 같이 재미 좀 볼래?”다른 테이블에 앉은 무인들도 이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자들이 무도를 수련하는 건 다 돈과 여자를 위해서였다.허사연 같은 미녀를 앞에 두고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임평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봤으니 더 무시했다.“다들 저리 안 꺼져? 우리 사부님에게 혼쭐나고 싶지 않으면 그만해라.”임평지가 목청을 높였지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제자가 이 모양인데 스승이라고 별반 다를 바 없을 것 같았다.“얼마든지 불러. 사부님도 찍소리 못하고 도망가게 해줄 테니까.”내공 정점에 다다른 무인이 하찮다는 듯 말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젓가락 하나가 갑자기 날아왔다.푹.젓가락은 그 사람의 귀를 아예 뚫어버렸고 그대로 귀가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피를 보고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빠졌다.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랐는지 허사연의 어여쁜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진서준의 손을 꼭 잡았다.이 자리에서 임진우가 어떻게 공격했는지 똑똑히 본 사람은 진서준 밖에 없었다. 임진우의 실력은 일급 대종사였다.“사부님을 모욕하는 사람은 다 이렇게 만들어줄게.”임평지가 우쭐거리며 말했다.사람들의 시선이 임진우에게로 쏠렸다. 아까는 눈에 띄지 않아 몰랐는데 이제 보니 노인네가 숨겨진 강자 같았다.“어떻게 공격했는지 보지도 못했어. 아마 종사의 경지는 된 것 같은데.”“사부님이 종사니까 저렇게 나대는 거겠지.”“종사는 무슨. 저 사람 대종사야. 얼른 가자.”한 종사가 임진우의 실력을 알아보고는 잽싸게 몸을 돌렸다.오지성이 대종사라는 말에 사람들이 안색을 굳히더니 얼른 뒷걸음질 쳤다. 젓가락에 귀가 잘린 내공경 무인은 너무 놀란 나머지 바닥에 꿇어앉아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었다.“선생님, 죄송합니
정란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지만 뭐라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란이 임평지를 우러러보면서 빌붙은 거라 그럴 처지가 못 되었다.진서준은 시종일관 옆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허사연이 내공경 무인을 이길 수 있는지 보고 싶었다.전에 운대산에 있을 때 진서준이 여러 번 허사연 자매를 바로잡아줬기에 내공경 무인과 상대해도 이길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허사연이 임평지를 이기지 못한다 해도 진서준은 허사연이 다치지 않게 관건적인 순간에 손을 내밀어 보호해 줄 생각이었다.진서준은 허사연이 보내온 눈길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그래요. 겨루자고 하면 내가 무서워서 도망이라도 갈 줄 알았어요?”허사연이 코웃음 쳤다.이내 지켜보던 사람들이 홀에 있는 탁자와 의자를 구석으로 옮겨 최대한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언니. 저 변태 같은 놈 잘 좀 손봐줘요. 아예 남자구실 못 하게 만들어요.”허윤진이 큰 소리로 말했다.임평지가 차갑게 웃었다. 오늘 밤 허사연 자매를 길들일 생각에 들떠 있었다.“약속대로 저는 한 손만 쓸게요. 시작하죠.”임평지는 폼을 잡고 허사연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였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허사연이 땅을 살짝 밟더니 화살처럼 임평지를 향해 달려갔다.“대박. 이 여자 속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내공 중기의 실력은 되는 것 같은데.”“저 남자 너무 오버한 거 같은데. 한 손이 아니라 두 손으로 해도 저 여자의 상대가 될지 의문이야.”“아가씨, 저 남자 고자로 만들어버려요. 다시는 여자에게 치근덕대지 못하게요.”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며 허사연에게 힘을 북돋아 줬다.임평지는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허사연의 속도가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다. 임쳥지가 반응하기도 전에 허사연은 이미 임평지에게로 바짝 다가간 상태였다.임평지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으로 공격을 막았다.펑.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히면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임평지는 큰 충격을 받고 뒤로 대여섯 걸음 물러섰지만 허사연은 끄떡하지 않고 임평지가 손 쓸 새도 없이 다시 공격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
아침, 설표 특전대 기지.단잠에 빠져 있던 소정태와 고인권 등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군부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회의실에 집합했다.“어젯밤, 묘강에서 폭동이 발생했어. 그러나 배논국 군부가 폭동을 단숨에 진압하며 묘강은 다시 배논국의 영토로 돌아갔어.”상부의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여덟 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소정태 일행은 서남 국경에서 묘강의 사수들과 적지 않게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다들 묘강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미친놈일 뿐만 아니라 주술과 독충술까지 능숙히 다루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자기들만의 군대와 탱크와 같은 대형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배논국 군부가 강제로 공격했다간 양측 모두 피바다가 될 게 뻔했다.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묘강이 평정되다니 너무나 기묘한 일이었다.“혹시... 진 교관이 한 일이 아닐까?”고인권이 불쑥 입을 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여덟 사령관은 진서준이 묘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어마어마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설, 설마 그랬겠어? 진 교관님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묘강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잖아?”누군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그건 너무 황당한 얘기야. 게다가 진 교관이 대체 어떻게 묘강에 갔단 말이야? 그곳은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어서 전신전 병사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봐.”소정태가 갑자기 말했다.“너희들 기억하지? 예전에 너희가 설표 특전대가 최고 특전대로 올라설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근데 진 교관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어, 그것도 한 달도 안 걸려서 말이야. 지금도 난 똑같이 믿어. 진 교관님은 묘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소정태는 진서준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소정태는 그야말로 진서준의 열렬한 팬이었다.“그럼, 진 교관님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적기가 포착됐고 곧이어 포탄이 몇 발 날아왔다.조종사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다.쾅!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튕기며 대낮처럼 환해졌다.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오스프리 전투기 두 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문기는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유문기가 두려워하는 건 오스프리 전투기가 아니라 바로 그 괴물 같은 존재, 진서준이었다.묘왕은 자기 비장 카드인 오스프리 전투기가 파괴된 것을 보며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누가 한 짓이야? 어떤 미친놈이 감히 내 전투기를 부쉈어?”그 순간, 배논국 군대 로고가 새겨진 전투기 수십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이 광경에 묘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아까 상황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걸...’전투기 편대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대규모 부대가 들이닥쳤다.지도자를 잃은 묘강은 머리를 잃은 파리 떼처럼 혼란에 빠졌다.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진서준은 더 이상 이들과 놀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잡고 단 일격으로 묘왕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눈을 뜬 채 죽은 묘왕의 눈에는 끝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묘왕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을 수 없었다.“날 죽여.”이때의 유기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유기철이 본인이 아무리 애원해도 진서준이 살려주지 않을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넌 네 친조카까지 해쳤어. 널 만 번 죽여도 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야.”진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다.“난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널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게 해주지.”그 말과 함께 진서준은 손바닥으로 유기철의 가슴을 내리쳤다.유기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기철은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는 건 두렵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유문기 일행은 순간 얼어붙었다.유문기와 묘왕은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그들의 공동의 적이었다.진서준이 살아있다면 그들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유문기와 묘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묘왕과 유기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두 사람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너 폭탄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야?”유문기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방금 폭탄이 터진 후, 묘왕 혼자만 폭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유문기는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유문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문기의 예측은 현실을 완전히 빗나갔다.“네 생각에 그 포탄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네 눈엔 내가 저 늙은 영감탱이만도 못해 보이나?”영감탱이는 당연히 묘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진서준, 네가 묘왕을 죽여준다면 내가 묘강의 재산 절반을 네게 주마. 어때?”진서준과 맞설 수 없음을 깨달은 유문기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바로 진서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진서준을 자기편으로 영입하면 진서준이 자기를 건드릴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묘강의 재산은 거의 배논국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배논국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였기에 그 재산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하지만 진서준에게 이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진서준이 이번에 온 이유는 단 두 개, 유문기를 죽이고 묘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진서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더군다나 묘강의 돈은 대부분 불법적인 경로에서 온 더러운 돈이었다.그런 돈은 진서준이 원하지 않았다.유문기가 진서준을 설득하려는 걸 본 묘왕은 즉시 눈을 굴리며 외쳤다.“이봐 청년, 네가 저놈을 죽인다면 내가 묘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어. 사실 너와 나 사이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어. 유씨
묘왕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옷은 다 찢어졌으며 고약한 타는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묘왕의 옷 속에 숨어 있던 독충들이 조금 전의 고온에 의해 증발한 냄새였다.지금의 묘왕은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 같았고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소리쳤다.“아버지, 저놈을 죽여요! 저놈을 죽이면 우리는 묘강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유기철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내가 묘왕을 공격하라고?”유기철의 단전도 파괴되어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제 단전도 저 진서준이란 자에게 쥐어박혀서 망가졌어요. 제가 공격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버지를 시키겠어요?”유문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문기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묘왕을 죽이고 싶었다.그동안 유문기는 묘왕에게 개처럼 부려지며 살아왔다.때때로 독을 시험하는 일도 겪었는데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몇 년째 묘왕을 죽이고 싶었던 유문기는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방금 진서준에게 단전이 파괴되어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내 단전도 파괴된 거 잊었어?”유기철의 말에 유문기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이걸 드시면 일시적으로 예전의 힘을 조금 되찾을 수 있습니다.”유기철은 약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이거 부작용 없겠지?”부작용이 없다면 유문기는 자기가 먼저 먹었을 것이다.“부작용 있습니다. 먹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폐인이 됩니다.”유문기는 솔직하게 부작용을 실토했다.“아버지. 지금 이게 우리 유일한 기회예요. 저놈을 죽이고 제가 묘왕이 되면 뼈가 다 부서져도 제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놈 손에 죽을 겁니다.”유문기의 분석을 듣자 유미철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묘왕의 손에 죽거나 이 기회에 한 번 싸워보고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기철은 더 이상 망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