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살펴본 서지은은 진서준의 오른팔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오른팔 전체가 힘없이 축 늘어져 있고, 뼈는 다 부러진 것 같았다.“오른팔은 왜 이래요?”서지은이 진서준의 오른팔을 덥석 잡았다.잡고 나서 보니 진서준의 오른팔 뼈가 정말 다 부러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아빠!”서지은이 분노에 휩싸인 눈빛으로 서광문을 노려보았다.“내가 때린 게 아니야, 이한석이 때린 거지.”서광문이 얼른 해명했다.“그래도 아빠가 내린 명령이잖아요.”서지은은 화를 감출 수 없었다.“정말 서준 씨를 죽일 셈이에요? 좋아요. 죽일 거면 저까지 같이 죽이세요.”서지은이 두 팔을 벌려 진서준의 몸을 빈틈없이 감쌌다.비록 서진은이 진서준과 정식적인 관계를 맺지는 않았지만, 서지은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을 수 없었다.서지은이 마음먹은 일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었다.“너... 너 이 녀석! 아버지 말 한 번만 들어줄 수 없겠니? 저 자식이 뭐가 좋다고 그래! 아까 저 녀석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너를 첩으로 삼겠대!”서광문이 마음 아픈 표정으로 서지은을 바라보았다.그는 진서준이 도대체 자기 딸에게 어떤 약을 먹였기에 서지은이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진서준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고 있었다.서광문의 말에 멈칫한 서지은이 이내 이를 악물며 말했다.“첩이라도 좋아요!”“너... 너 정말 나를 기막혀 죽일 셈이야?”서광문은 통탄했다.강남에서 제일로 가는 가문의 아가씨가 보잘것없는 가난뱅이에게로 가서 첩이 되겠다고 하니 말문이 막혔다.이 사실이 밖으로 전해진다면 서광문은 낯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아빠, 저는 서준 씨를 따르기로 했어요. 아빠가 봐주지 않으면, 정말 아빠 앞에서 죽겠어요.”서지은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어쨌든 서지은은 진서준을 지키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진지한 서지은의 모습을 보며 서광문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었다.“어릴 때는 나랑 네 엄마 말을 잘 듣더니 이제 와서 어찌 이리도 반항하는
진서준은 단순히 서지은 때문에 이 내기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그도 대한민국에 천교가 얼마나 있는지 보고 싶었다.또한 자신이 이 천교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지 궁금했다.그 누구도 남의 밑에 머무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2000년 전의 노예조차도 대장부가 태어나서 어찌 오랫동안 다른 사람 밑에서 살 수 있느냐고 말한 적이 있었다.하물며 진서준이라고 다를까.“저는 반대예요! 아빠, 이건 서준 씨를 불구덩이에 밀어 넣는 거랑 뭐가 달라요?”서지은이 분노하며 말했다.진서준은 지금 한쪽 팔이 부러져서 장애인이 되었다.그러한 상태에서 서광문이 진서준에게 봉호전에서 장원을 하라고 제안하고 있었다.이건 진서준에게 죽으라는 것이랑 다름없었다.진서준은 팔이 부러지지 않았어도 봉호전에서 연승하기 어려웠다.제일 중요한 사실은 높은 경지의 대종사들도 진서준과 싸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일반적으로 실력 좋은 대종사는 체면 때문에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하지만 진서준이 연승 행진을 계속하면 강자들의 시선을 끌기 마련이었다.“지은아, 이게 내 마지노선이야. 진서준이 너를 데려가려면 그만한 실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해.”서광문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지은이를 데려가 첩으로 삼으려면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용기와 실력이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 딸을 보내?’“지은 씨, 더 말할 필요 없어. 이 내기는 받아들였어.”진서준이 서지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아빠랑 돌아가. 연말에 경성에 같이 놀러 가자.”“응?”놀란 서지은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오후까지 나한테 떠나라고 하더니 왜 눈 깜짝할 사이에 생각이 바뀌었지?’“나를 위해 목숨까지 희생하는 여자는 네가 네 번째야. 허사연도 내 옆에 너희들이 있는 것을 개의치 않는데, 내가 나를 속여서 뭐 하겠어.”조금 전, 서지은이 자기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보고 진서준은 가슴이 뭉클했다.한평생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상대를 보호해 주는 사람을 몇이나 만날 수
허사연이 초조한 마음으로 물었다.“별일 아니야.”진서준이 웃으며 답했다.“오른팔이 부러졌는데 어떻게 별일 아닐 수 있어요!”허윤진은 진서준의 늘어진 오른팔을 보고 순간 눈시울을 붉혔다.“뭐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라 얼른 진서준의 오른팔을 잡았다.잡고 나서 보니 허사연도 진서준의 오른팔이 완전히 부러진 것을 알았다.“서준 씨, 이게 무슨 일이에요? 오른팔은 왜 이래요?”진서준이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진 허사연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팔이 부러진 사람이 오히려 자신이었으면 했다.“부러진 건 맞지만 걱정하지 마. 내일 아침이면 회복할 거야.”진서준이 웃으며 위로했다.“거짓말하는 거 아니죠?”허사연은 부러진 뼈가 다음날 자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당연히 아니지. 일부러 이한석이 부러뜨리게 한 거야. 부서뜨린 후 재조립. 이제 내 몸은 극에 달했어. 더 강해지려면 영약, 영과를 먹든지 아니면 이런 방법을 쓰든지 해야 해.”진서준이 설명했다.“됐어. 수련하러 가자. 못 믿겠으면 내일 아침에 다시 봐봐.”지금의 진서준에게 시간은 금이었다.연말 봉호전에서 그는 전국 각지의 천교를 만날 것이었다.비록 선술을 수련한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실력으로 13연승을 할 수는 없었다.진서준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허사연 자매는 더 이상 팔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평곡으로 돌아온 진서준은 가부좌를 틀고 성약곡에서 제련한 단약을 꺼냈다.“사연아, 윤진 씨, 이리 와봐.”“왜요?”진서준 앞으로 온 허사연 자매가 그의 손에 들린 단약을 발견했다.“이건 성약곡에서 제련한 단약인데 두 사람은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많이 먹으면 안 되고 차근차근 천천히 섭취해야 해.”진서준이 말했다.“네. 알아요!”실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강력한 단약을 복용하면 몸이 견디지 못하고 심지어 터질 수도 있었다.진서준도 허사연 자매의 실력을 빨리 끌어올리고 싶었지만 절대 서두르면 안 됐다.“두 알 줄 테니 한 알은 오늘 밤에 복용하고 수련 시작해. 다른
남조, 박씨 가문.박만년은 그날 밤, 죽지 않았지만, 목숨을 반쯤 잃은 거랑 다름없었다.진서준의 혈용권이 그의 두 팔을 부러뜨렸고 단전에도 매우 큰 손상을 입었다.살려고 하는 강한 의지만 아니었다면 박만년은 정말 그곳에서 죽었을 것이었다.박씨 가문에 돌아온 후, 박만년은 스무 살은 더 늙어 보였다.생기를 잃은 박만년은 마치 곧 흙에 묻힐 노인 같았다.“시윤이는 아직 안 왔어?”“어르신, 오는 길에 있다고 하셨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서두르라고 해. 난 이제 시일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박만년은 죽을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았다.오늘을 못 버틸 수도 있었다.“어르신, 별일 없으실 겁니다. 백 살까지 장수하실 수 있으십니다.”집사는 박만년의 말에 놀랐다.“됐어. 내 몸은 내가 잘 알아.”박만년이 한숨 쉬며 말했다.며칠 전, 박만년은 정말 죽을 것 같아 바로 사람을 시켜 박시윤을 집으로 호출했다.박시윤은 박만년이 20여 년 전에 입양한 의손자였다.무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는데 박만년조차도 자신의 재능을 부끄러워할 정도였다.열여섯 살 때, 박만년은 박시윤을 북미 초아국의 한 조직에 보내 공부시켰다.몇 년 동안 두 조손은 전화 통화만 했을 뿐이었다.이번에도 박만년이 자신이 죽을 것 같지 않았으면 박시윤을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었다.날이 어두워져서야 집사가 두 사람을 데리고 왔다.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매우 젊어 보였고 다른 한 사람은 서구적인 얼굴을 지녔는데 마흔 살쯤 되어 보였다.젊은 사람이 박만년이 입양한 의손자, 박시윤이었다.다른 서양 중년 남자는 박시윤과 함께 온 일행이었다.“어르신, 시윤 도련님 오셨습니다.”박만년이 눈을 떠보니 아래에 서 있는 박시윤이 보였다.“할아버지.”박시윤이 공손히 불렀다.“시윤아, 이리 와봐. 할아버지가 할 말이 있어.”박만년이 손짓하며 박시윤을 불렀다.박시윤이 얼른 박만년 앞으로 갔다.“널 부른 이유는 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들도 손자도 모두 대한민국의
“어르신!”노집사는 무릎을 꿇고 목 놓아 울었다.박시윤은 별다른 슬픔도 없이 노집사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할아버지 장례 준비하고 박씨 일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와서 할아버지께 상복을 입히세요.”“네!”노집사가 눈물을 닦고 즉시 박씨 가문 다른 사람들에게 부고 사실을 알렸다.그날 밤, 박씨 가문의 직계가 모두 한곳에 모였다.“할아버지께서 임종 전, 박씨 가문을 저한테 맡기셨습니다.”박시윤이 박씨 가문 일가 사람들에게 말했다.“너한테 맡겼다고? 말도 안 돼. 네 신분은 모두가 다 알고 있어.”박만년의 동생 박천년이 말했다.모두가 박시윤은 박만년이 주워 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박씨 가문을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박씨 가문 가주의 자리는 절대 너에게 줄 수 없다.”박백년도 나서서 박시윤을 반대했다.“반대하셔도 소용없습니다. 할아버지 명입니다.”박시윤의 태도가 강경했다.“웃기지 마! 네가 우리를 속이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 형님은 내가 아는데 이런 결정을 내리실 분이 아니야! 형님이 살아생전 너를 아꼈으니 그걸 봐서라도 헛소리는 더 책망하지 않겠다. 당장 네 물건 챙겨서 나가!”“어서 꺼져라!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도 모르는 놈이 가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박천년 형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박시윤이 가주가 되는 것에 동의할 리가 없었다.가주가 되는 사람은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박시윤은 굴러먹다 온 놈이라는 말을 들은 후, 안색이 싸늘해졌고 이내 사람은 자리에서 사라졌다.다시 나타난 곳은 박시윤을 굴러먹다 온 놈이라고 욕한 젊은 사람 앞이었는데 박시윤은 한 손으로 그 사람의 목을 조르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감히 손을 대? 반란이냐! 여기는 박씨 가문이다.”다른 사람들은 상황을 보고 분노했다.박시윤이 손에 잡은 사람을 그대로 내동댕이쳤다. 벽에 부딪힌 사람은 벽에 큰 구멍을 냈다.“뭘 멍하니 서 있어? 얼른 이 짐승 같은 놈을 때려죽여라!”박천
보름 동안의 수련을 거쳐 진서준의 실력은 완전히 달라졌다.축기경까지 정말 마지막 걸음만 남았다.12개의 단약은 아직 3개가 남았는데 진서준이 축기경을 돌파하기에 충분했다.“응? 허사연과 허윤진은 어디 갔지?”진서준은 허사연과 허윤진을 지도해주려 했지만 두 사람은 자리에 없었다.봉호대전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진서준이 축기경을 돌파하는 데는 열흘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시간이 여유로운 진서준은 두 사람을 충분히 지도할 수 있었다.진서준이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지만 허사연 자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영맥을 감지한 그는 그제야 허사연 자매가 목욕하러 갔다는 것을 알았다.10일 넘게 수련했더니 진서준도 몸이 찌뿌둥해 났다.하지만 허사연 두 자매가 있으니 진서준은 지금 갈 용기는 없었다.허사연 혼자 노천탕에 있었으면 진서준은 무조건 갔을 것이었다.다른 한편, 노천탕에서 허사연과 허윤진은 목욕하고 있었다.“언니, 너무 개운하다.”허윤진이 즐거운 표정으로 탕에 누워 있었다.두 자매도 진서준과 마찬가지로 10여 일 동안 수련했다.오늘 실력을 돌파한 두 사람은 그제야 목욕하러 온 것이었다.열흘 넘게 목욕하지 않아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두 자매는 온몸이 근질근질했다.그런 상태에서 탕에 들어오자 개운함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었다.“서준 씨가 아직 수련 중만 아니었으면 아니면 같이 오자고 했을 텐데.”허사연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응? 같이 온다고?”허윤진이 멈칫했다.“응. 앞으로 너도 서준 씨 사람이니 이제 봐도 괜찮잖아.”허사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서지은도 거부하지 않았는데 허윤진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안 돼. 안 돼! 난 아직 처녀란 말이야. 그리고 언니도 아직 여기 있는데...”허윤진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미래의 어느 날, 진서준과 끝까지 갔다면 허사연의 말대로 함께 목욕도 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허윤진과 진서준은 시작에 불과했다.허윤진은 산에서 진서준과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었다.하
“얼른 죽여!”허사연이 말했다.“응, 알았어.”허윤진이 손에 힘을 세게 주자 흑백으로 뒤섞은 뱀은 순식간에 생기를 잃었다.자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탕 주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두 사람이 무엇에서 나는 소리인지 궁금해하기도 전에 공포스러운 장면이 펼쳐졌다.사면팔방에서 작은 뱀들이 그녀들을 향해 몰려오는 것이었다.그 장면을 보고 두 사람은 놀라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어... 얼른 뛰어!”먼저 정신 차린 허사연이 허윤진에게 소리쳤다.두 사람은 옷도 입지 않고 곧바로 평곡 쪽으로 달려갔다.두 사람은 도망쳤고 뱀들은 쫓아갔다.다행히 허사연 두 자매가 수련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뱀들에게 잡힐번했다.두 사람은 뛰면서 진서준을 불렀다.“진서준! 진서준! 진서준 수련 그만해! 큰일 났어! 우리가 뱀 우리를 찔렀나 봐.”놀란 두 자매는 안색마저 변했다.진서준도 어렴풋이 허사연의 목소리를 듣고 안색이 바뀌더니 두 사람이 오는 방향으로 돌진해 갔다.이내 세 사람은 만나게 되었다.허사연 자매의 온몸이 젖어있는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뱀 떼에 놀란 두 자매는 그들이 현재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서준 씨! 안에 뱀이 너무 많아요! 곧 올 거예요! 빨리 방법 좀 생각해 봐요.”두 자매는 진서준 뒤에 숨어 벌벌 떨며 말했다.진서준이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빽빽한 뱀 떼가 시야에 들어왔다.진서준조차도 그 광경을 보고 머리가 쭈뼛했다.진서준은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속이 좋지 않은 것뿐이었다.“다 태워버리지 뭐.”진서준의 손바닥에서 불길이 치솟았다.강렬한 불길에 주위의 공기가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공기 중 수분이 순식간에 증발했다.“업화장!”불길이 솟구치며 백 미터의 불바다를 형성하며 뱀들 속으로 떨어졌다.업화는 모든 생명을 삼켜버렸고, 설령 3급 대종사라고 해도 업화에 물들면 강기로도 끄기 어려울 것이었다.평범한 뱀 떼들이 업화를 만났으니
한참이 지나서야 진서준과 허사연은 평곡으로 돌아왔다.허윤진은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그녀도 어린애가 아니다 보니 진서준과 허사연이 뭘 했을지 다 알고 있었다.다만 마음이 조금 불편할 뿐이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함께 있는 장면을 생각하면 마음이 울렁거렸다.“두 사람 먼저 대련해 봐. 실력이 어떤지 봐야지.”진서준이 허사연과 허윤진에게 말했다.“힘을 남기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싸워.”“알았어요.”자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겨루기 시작했다.허사연은 허윤진보다 한 달 더 늦게 수련을 시작했다.하지만 실력은 허윤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두 사람은 서로 주고받으며 싸웠다.무인의 실력으로 보면 두 사람 모두 내경 초기의 무인이었다.다만 실전 경험이 적어 더 많은 연습을 해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자매는 땀투성이가 되었지만 멈추지 않고 겨뤘다.진서준이 멈추라고 하지 않으면 그녀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됐어. 그만해.”진서준이 외쳤다.“아직 싸울 힘이 남았어.”허사연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녀는 진서준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처참한 부상을 당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허사연은 강해져서 진서준을 돕고 싶었다. 절대로 발목을 잡는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허윤진의 생각도 허사연과 같았다.영기가 강한 운대산에 있는 시간을 이용하여 수련하지 않으면 진서준이 목숨 바쳐 보호해 주는 목숨에 가치가 없을 것이었다.두 사람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진서준의 가슴이 뭉클해졌다.진서준은 두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지 알고 있었다.‘이런 사람을 아내로 삼을 수 있다니... 정말 지난 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네.’진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허사연 자매의 기력이 다했을 때 둘에게 다가갔다.“좋아. 수련한 지 두 달 정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이렇게 발전했네. 당시 창욱 스승님이랑 감옥에서 배울 때 정말 참담하게 혼났어.”진서준이 웃으며 두 자매를 칭찬하는 한편, 자매의 등에 손을 얹어 영기로 피로를
진서라는 재빨리 움직여 유정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고마워, 서라야.”유정은 물컵을 받아 들고 천천히 마셨다.“몸은 어때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진서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이제 괜찮아.”유정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참 다행이네요.”진서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진서준 오빠는 어디 있어? 왜 안 보이지?”유정이 문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유정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진서준이었다.진서라는 급히 둘러대기 시작했다.“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어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나갔다고? 혹시 묘강으로 간 건 아니겠지?”유정도 바보는 아닌지라 진서라의 표정을 보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다.“아, 아니에요. 묘강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우리 오빠도 그렇게 무모하진 않아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서라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초조했다.벌써 하루가 지나도록 진서준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었다.점심때 국제 뉴스를 본 진서라는 배논국의 묘강 지역에서 큰 소란이 있어 배논국이 결국 묘강 지역을 접수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하지만 진서준의 소식은 단 한 줄도 없었다.그러니 자연스레 진서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유기명이 방으로 들어왔다.딸이 깨어난 걸 보자 유기명은 눈물을 글썽이며 격동한 말투로 말했다.“유정아, 드디어 깨어났구나!”“죄송해요, 아버지. 걱정 끼쳐드려서...”유정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절반이 희끗희끗해졌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바보 같은 소리 마. 사과할 사람은 나야.”유기명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때 내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그 자식을 죽였더라면 네가 중독될 일도 없었을 거야.”“이미 지난 일이에요. 이제 그 얘긴 그만하세요.”진서라가 서둘러 다독였다.“그래,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이야. 더 이상 골치
조슬기의 피부 온도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지만 몸속은 한기로 가득했다.조슬기의 오장육부는 이미 일반인의 체온을 한창 밑돌고 있었다.옥패가 어느 정도 억제하는 기능이 있긴 했지만 효과가 너무 미미했다.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조슬기 몸속에 쌓인 한기가 완전히 폭발할 것이다.그 순간이 오면, 조슬기의 목숨도 위험해질 것이다.“이봐, 헛소리하지 마. 너야말로 정신 상태가 안 좋은 거 아냐?”신수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고 심지어 조슬기 본인도 몰랐다.조슬기가 알면 괜히 걱정할까 봐 일부러 숨겨왔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이 녀석이 대놓고 말해버리다니,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은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사실을 알아챈 신수란이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누구도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다.“란 언니, 오빠를 탓하지 마. 사실 오빠가 말 안 해도 난 대충 짐작하고 있었어.”조슬기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기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건 결국 자신이었다.진서준이 말한 대로 조슬기의 상태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사실 진서준이 어느 정도 에둘러 말해서 그렇지 지금의 상태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신수란은 진서준을 매섭게 노려본 뒤, 급히 조슬기를 달랬다.“아가씨,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종주님과 장로님들이 반드시 치료법을 찾으실 거예요. 게다가 전 대한민국에 용존이라는 천재 소년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천재는 실력도 강하지만 의술 또한 모든 사람을 압도한다고 해요. 그런 인재라면 분명 아가씨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진서준은 듣자마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용존이라니, 그건 진서준이 아닌가?“뭐야, 그 표정은?”신수란이 진서준의 표정을 눈치채고 불쾌한 얼굴을 했다.“아, 별거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너희는 용존에 대해 어디서 들었어?”“우릴 뭐로 보는 거야? 우리가 원시인인 줄 알아? 우리도 휴대폰 쓸 줄 알아.”신수란이 불쾌한 표정으로 받아치
진서준은 이 주제에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이 녀석은 알아서 수습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고마움을 표하고는 신수란을 바라봤다.신수란은 속에 쌓인 화를 주체하지 못해 단검을 뽑아 장강훈의 목에 겨누며 말했다.“말해! 누가 너희를 보낸 거야? 그리고 우리가 미리 산에서 내려온 걸 어떻게 알았어?”“돈 받은 만큼 일할 뿐이야. 우린 돈만 받으면 그만이고,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는 모른다니까.”장강훈은 이를 악물며 사실을 털어놨다.“말 안 하겠다 이거지?”신수란은 냉소를 지으며 더 이상 긴말하지 않고 바로 장강훈의 다리 힘줄을 단칼에 끊어버렸다.“아악!”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장강훈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정말 몰라! 나도 온라인에서 의뢰를 받았을 뿐, 누군지는 몰라.”“이래도 고집을 부려? 말 안 하면 내가 널 고자로 만들어버릴 줄 알아.”말을 마치며 신수란은 단검을 장강훈의 아래쪽에 갖다 댔다.그러자 장강훈은 순간 몸을 덜덜 떨며 깜짝 놀라 눈물까지 찔끔 날 뻔했다.“말할게, 말할게!”머리가 잘리거나 피가 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그 부위만큼은 절대 잃을 수 없었다.“우리에게 조 아가씨를 납치하라고 시킨 사람은...”그 순간, 장강훈은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검은 피를 뿜어내고 그대로 푹 쓰러졌다.“죽은 척하지 마!”신수란은 앞으로 다가가 장강훈을 툭 밀었다.하지만 장강훈은 이미 숨통이 끊어져 완전히 사망한 상태였다.“진짜 죽었네.”신수란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했다.분명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죽은 걸까?그 광경을 본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묘왕은 죽었지만 묘강의 사수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진서준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장강훈의 머리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그 모습은 마치 머릿속에 뭔가가 있는 듯했다.신수란이 앞으로 다가가 확인하려는 순간, 장강훈의 귀에서 새까만 지네들이 한 마리씩 기어 나오기
갑자기 쓰러진 장강훈을 바라보며 현장 사람들은 전부 멍해졌다.이게 무슨 상황이지?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저 건방지고 거만한 청년이 장강훈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마지막엔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그런데 저 극악무도한 악당 장강훈이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다니,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모두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얼이 빠져 있었다.심지어 신수란조차도 미간을 찌푸리며 이 장면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네놈이 감히 암기로 날 공격해?”장강훈은 고통에 찬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봤다.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진서준을 산 채로 잡아먹을 기세였다.“내가 말했지? 넌 나와 겨룰 자격이 없다고.”진서준은 여전히 평온하게 말했다.“암기라니? 너도 저놈들처럼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구나.”신수란이 콧방귀를 끼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신수란 복부의 상처는 바로 암기의 공격으로 다친 것이었다.그리고 방금도 장강훈이 신수란을 비겁하게 기습하려 했다.그래서 신수란은 이런 비열한 수법을 쓰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느꼈다.진서준은 신수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고 대신 속으로 이 여자가 멍청하긴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이 두 여자를 구하려고 선뜻 나섰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같은 인간쓰레기 취급을 당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어서 저놈을 해치워! 암기든 뭐든 다 부숴버려! 내 무기와 똑같은 걸 쓸 자격이 있기나 해?”장강훈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장강훈은 진서준이 자기와 같은 종류의 암기를 사용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그러나 진서준이 사용한 건 단순한 은침 두 개였을 뿐이고 다만 그것이 일반 은침보다 좀 더 단단했을 뿐이었다.남아있던 부하들은 우르르 진서준에게 몰려들었다.개미도 많이 모이면 코끼리를 잡는다고 했다.하지만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리 개미가 많아도 결국 희생될 뿐이었다.진서준이 발을 내딛자마자 서 있던 바닥이 산산조각이 났다.이어지는 진서준의 움직임은 유령처럼 사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