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철의 얼굴색이 더욱 음침해졌다.800억이 유기철에게 큰돈은 아니지만 헛되이 날리긴 아까웠다.특히 자기 적수가 던진 미끼에 걸려 날렸으니 기분이 더욱 울적했다.진서준이 몸을 돌려 태연하게 경매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따라붙어. 이 자식을 도망치게 하면 안 돼.”사장로 등이 진서준이 도망갈까 봐 바로 뒤쫓아나갔다.경매장 밖으로 나가니 유기태가 두 명의 호국사와 함께 진서준을 기다리고 있었다.“진 대가님, 성약당의 장로는요?”“뒤에 있어요. 금방 나올 거예요.”진서준이 주위에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했다.“여기서 손을 쓰면 안 될 것 같아요. 장소를 바꿔야겠어요.”“그래요.”유기태도 진서준과 같은 생각이었다.일반인은 무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거니와 국안부에 일반인 앞에서 무예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다.“저 자식이 도망가는 거 아니야?”진서준이 유기태와 함께 차를 타고 떠나려고 하자 사장로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제기랄 자식이 아까까지도 세상 높은 줄 모르고 나대더니 입만 살아있는 쓰레기잖아”“무슨 헛소리가 그리 많아? 빨리 차 타고 쫓아.”제마 법왕이 귀찮다는 듯 소리 질렀다.“네네...”사장로가 바로 차를 타고 진서준의 뒤를 쫓았고 그 뒤에는 유기철과 부하를 태운 차가 쫓고 있었다.세 대의 승용차가 교외를 향해 달리다 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해 멈췄다.사장로 등은 그들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진서준을 호시탐탐 노리더니 눈빛에 살기가 점점 짙어졌다.유기철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진서준과 유기태가 죽은 뒤에 내리려고 마음먹었다.“유기태, 이건 나와 저 자식의 사적인 원한이니 너희 세 명은 끼어들지 마.”사장로가 유기태를 향해 차갑게 경고했다.“안 돼.”유기태가 바로 거절했다.“진 대가님은 우리 국안부 인원인데 너희가 진 대가님한테 함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유기태는 진작부터 성약당을 처단하려고 했으나 강주 쪽 호국사의 실력이 너무나도 부족해 엄두를 내지 못했다.진서준이 강주에
달빛이 처량했다.제법 마왕을 바라보는 진서준의 두 눈은 깊은 우물과도 같이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내 친구를 다치게 한 대가를 네 목숨으로 받아야겠어.” “하하하, 한 달 못 본 사이에 허풍이 더 심해졌어. 이 한 달 동안 너만 실력을 키우고 있었는지 알아? 내가 변경에 있으면서 너희 나라 여자들을 많이 죽였어.”말하면서 제법 마왕은 피로 물든 주머니를 꺼내 진서준에게 보여주자 그 속에서는 여러 가지 모양의 귀가 들어있었고 어떤 귀에는 여성 이어링도 달려있었다.주머니에 귀가 한가득 담겨있었다.제법 마왕이 습관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여성을 살해할 때마다 그녀의 한쪽 귀를 잘라내 소장하는 것이다.이 귀가 바로 제법 마왕의 훈장 같은 것이다.마교의 4대 법왕 중 이 자식만 병적인 것이 아니라 나머지 세 법왕도 똑같은 버릇이 있었다.매년 연말이 되면 이들은 모여 앉아 자신의 전리품의 숫자를 세어보고 했는데 극악무도하기에 짝이 없다.주머니에 담긴 귀를 본 진서준은 깊은 곳으로부터 화가 솟구쳐 올랐다.“쳐 죽일 자식.”말이 끝나기 바쁘게 진서준이 가뭇없이 사라졌고 그 속도가 하도 빨라 음속을 꿰뚫는 것 같았다.땅거미가 지면서 진서준은 거의 암흑과 일체가 되어버려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어디 갔어?”제법 마왕이 눈을 가늘게 뜨고 시선을 모아 자신을 향해 죽기 내기로 덤벼오는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이 자식의 실력이 어떻게 갑자기 늘었지?’진서준은 한 달 전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네가 강해지면 뭐 해? 넌 오늘 밤 반드시 내 손에 죽을 거야.”한 가닥의 사악한 기운이 제법 마왕의 단전에서부터 솟구치더니 검은 안개가 제법 마왕을 둘러쌌다.이때 진서준도 제법 마왕의 앞에 도착했다.혈기와 영기로 응집된 좌우 두 주먹이 제법 마왕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 안개에 부딪히자 하늘이 떠나갈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우르릉 쾅...제법 마왕의 검은 안개는 이품 대종사의 회심의 일격을 거뜬히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견고했지만 진서준의 두 주먹 앞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불과 한 달밖에 안 지났는데 내가 이 자식을 당해낼 수 없단 말이야?’절세 천교라고 해도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이 정도 실력에 도달할 수 없다.“제기랄, 그날 너를 살려두는 게 아니었어.”제법 마왕은 그날 고양에서 진서준을 죽여버렸더라면 오늘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내 후회했다.“오늘은 절대 나를 못 죽여.”“법왕의 저력을 너 같은 애송이가 알 수 있어?”말이 끝나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창을 던지자 진서준이 살짝 몸을 비켜 피하면서 제법 마왕에게 숨 쉴 틈을 주었다.그틈을 타 제법 마왕이 옷섶에서 검은색 알약을 몇 알 꺼내더니 바로 삼켜버렸다.“약을 먹어?”진서준이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너한테만 단약이 있는 줄 알아?”진서준이 손바닥을 뒤집자 단약 한 알이 그의 손바닥 위에 놓여있었다.단약이 배속으로 들어가자 영기가 썰물처럼 배속으로 밀려오더니 거의 바닥이 나려던 영해를 재빨리 채웠다. 촤락...진서준의 근육이 타이어처럼 탱탱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겉옷이 풍선 터지듯 산산조각이 났다.고동색의 피부가 달빛에 반짝이면서 마치 산바위마냥 견고해 보였다.진서준은 자기가 연제한 단약 중 최고로 강력한 단약으로 미치광이같은 제법 마왕을 죽이기 위해 온몸을 불살랐다.“당장 죽어버려.”제법 마왕이 사자후를 토해내며 산발을 한 모양이 인간 악마와 다름이 없었다.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검은 안개가 뭉게구름처럼 하늘을 가리더니 제법 마왕과 진서준을 반경 5미터가 안 되는 울타리에 가둬버렸다.심지어 달빛도 제법 마왕이 뿜어낸 검은 안개를 뚫지 못해 싸우는 모습은 안 보이고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만 연속 들려왔다.“죽어! 죽어버려...”제법 마왕이 악을 쓰고 고함을 질러대자 실핏줄이 터지면서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지금의 제법 마왕은 미치광이와 다름없었고 머릿속에는 진서준을 죽이려는 일념밖에 없었다.처음에는 진서준이 버티는가 싶더니 제법 마왕의 공세가 점점 강해지면서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진서준은 줄곧 선법을 수련했기에 주특기가 법술이고 검도가 아니다.제법 마왕과 두 번 겨루면서 두 번 모두 천문검을 사용했기에 진서준이 검수인 줄 착각하는 모양이다.“난 또 뭐라고, 나는 뇌용이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제법 마왕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안하던 마음을 진정하면서 체내의 모든 음살 기운을 불러일으켰다.이 자식의 주먹에 한 대만 맞아도 바로 죽음이다.“죽일 수 있는지 없는지는 바로 알게 될 거야.”진서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뇌용이 귀청이 떨어질 듯이 포효하자 한창 격전 중이던 유기태 등이 손을 멈추고 저도 모르게 진서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진서준이 천둥을 지배할 수 있다고? 검수 아니었어?”사장로가 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였다.“진 대가님이 검수일 뿐만 아니라 무도 대종사이고 술법 영선이기도 해.”유기태가 흥분해서 말했다.“그럴 리 없어! 이제 몇 살이나 됐다고!”사장로가 극력 부인했고 다른 두명의 장로도 유기태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앞으로 5백 년을 거슬러도 이런 요물이 나타난 적이 없었다.이들이 말하는 사이에 뇌용이 훌쩍 몸을 솟구치더니 제법 마왕을 향해 돌진했다.“이깟 천둥의 힘으로 날 대처할 수 있겠어?”제법 마왕이 고함을 지르자 손에 해골이 두 개 나타났고 뇌용과 해골이 부딪히니 삽시간에 하늘이 노래졌다.반경 1키로 미터 내에 있던 사람들은 거대한 종이 부딪히는 굉음을 들었고 바람이 사면팔방에서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제법 마왕이 서 있던 바닥에 50미터 가까이 되는 균열이 생기면서 마치 거인이 도끼로 지면을 내리찍은 것만 같았다.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으며 번쩍이는 번개 아래 서 있는 제법 마왕의 얼굴이 유난히 창백해 보였다.그는 이 공포스러운 천둥에 내포된 힘을 느낄 수 있었고 아무리 극악무도한 제법 마왕이라고 해도 등골이 서늘해졌다.바로 이때 진서준이 몸을 솟구치자 그림자가 보이기도 전에 청색 검망이 제법 마왕을 향해 내리찍었다.진서준은 오늘
‘이 자식은 인간이 아니야.’그들은 제법 마왕이 진서준을 죽여주기를 진심을 다해 기도했다.아니면 세 사람이 오늘 진서준의 손에 죽을 게 뻔했다.천둥이 썰물처럼 밀려오면서 제법 마왕을 천둥 바다에 빠트려 뜨리자 눈에 보이는 건 죄다 청색이다.우르릉 쾅...제법 마왕의 온몸이 불에 타버려 성한 곳이 없었다.진서준은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서서 두 손에 힘을 모으니 천둥 빛이 끝없이 손바닥에서 번쩍이면서 뼈까지 환히 보였다.마치 구름을 타고 다니는 신선이 제법 마왕을 향해 신벌을 내리는 것만 같았다.“아직도 살아있어?”“최후의 발악일 뿐이에요.”천둥이 물러가자 제법 마왕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온몸에 불에 그을린 자국이 수두룩했으며 검은 연기마저 뭉게뭉게 피어오르니 마치 금방 불바다에서 뛰쳐나온 것만 같았다.“죽이지...죽이지만 말아줘. 다시는 너한테 덤비지 않을게.”제법 마왕의 목소리가 꽉 잠겨있어 마치 죽음이 임박한 노인과도 같았다.진서준이 발을 들어 천천히 다가갔다.“윤진이가 다치는 그 순간 내가 맹세했어. 하늘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진서준은 가족에게 상처 준 범인을 절대 용서할 수없었다.제법 마왕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끝없는 후회와 원한이 가슴속에서 솟구쳤다.“날 죽이면 마교에서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제법 마왕은 마교로 진서준을 협박했다.“4대 법왕 중의 한 명이 죽으면 나머지 세 명은 죽을 때까지 범인을 찾아다닐 거야. 솔직하게 말해서 그 세 사람의 실력이 나보다 훨씬 강해.”진서준이 제법 마왕의 앞으로 다가가 이미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말 다했어? 다 했으면 이젠 지옥으로 가.”진서준이 자기를 봐주려는 기미가 안 보이자 제법 마왕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마지막으로 한번 겨뤄보기로 결심하고 두 손바닥을 부딪히자 폭파음이 터져 나오면서 청색 불빛이 먹통 같은 어둠을 잠깐 밝히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천지가 고요하더니 제법 마왕이 잔뜩 한을 품고 뒤로 넘어졌다.
차에 앉아 있던 유기철은 사장로와 오장로가 진서준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모습에 온몸이 식은땀에 젖었다.“운전해. 빨리 도망가. 절대 잡히면 안 돼.”유기철이 기사를 향해 고함을 지르자 기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시동을 걸고 도망가려 했다.시동 소리를 들은 진서준이 고개를 돌려 힐끗 보면서 말했다.“이미 왔으니 도망갈 생각하지 마.”천문검이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쏜살같이 날아와 바로 차 앞에 내리꽂히자 기사가 겁을 먹고 바삐 브레이크를 밟았다.“브레이크를 왜 밟아? 빨리 운전해. 그깟 검으로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어.”유기철이 목청이 터지라고 소리 질렀다.오늘 밤 만일 진서준에게 잡히는 날이면 절대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기사가 다시 엑셀을 밟자 공포스러운 광경이 발생했다.천문검의 검신에서 한줄기 청색 빛이 뿜어나오더니 검기가 톱처럼 변하면서 이천만짜리 승용차를 반으로 잘라버렸다.쾅 하는 소리가 귀청을 때리자 세 장로는 동시에 머리를 부둥켜안았다.혹시라도 진서준의 칼이 자기를 향해 날아올까 봐 무서워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유기태와 두 명의 호국사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이게...이게 바로 진 대가님의 실력이에요?”“너무 공포스럽지 않아요? 이건 단순히 검기만 이용한 거지 검신도 아니에요...”이렇게 어린 나이에 국안부의 상경이 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이 정도 실력이라면 은세 대종의 핵심 제자도 진서준을 상대하기 어려웠다.“켁켁켁...”유기철이 반동강이 난 차에서 부랴부랴 내려 차를 보니 머리카락이 쭈뼛해졌다.만일 방금 검이 가로질러 날아왔더라면 유기철은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지 오래다.“은영과 어떻게 했어?”진서준이 유기철을 향해 느릿느릿 물었다.“날 살려주면 은영과 줄게.”유기철이 고개를 돌려 진서준과 흥정을 시도했다.“너는 조건을 제시할 자격이 없어.”진서준이 손을 내밀자 천문검이 철컥하고 손에 쥐어졌다.그걸 본 유기철은
어떻든 간에 두 사람은 친형제이고 함께 40여 년을 살아왔다.“진 대가님...한 가지만 부탁드릴게요.”마지못해 유기태가 진서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살려달라고요?”진서준이 담담하게 물었다.“네. 비록 사람 구실을 못 하는 등신이지만 그래도 저와 친형제잖아요. 만일 걱정되신다면 오늘부터 유씨 가문 족보에서 파버리고 죽든 살든 내버려둘게요.”유기태가 다급히 덧붙여 말했다.유기철이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유씨 가문은 절대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가문에서 쫓아내는 것이 제일 좋은 징벌 방법이다.유씨 가문의 그늘이 없다면 유기철이 제아무리 복수하고 싶어도 힘든 일이기에 진서준에게 위협도 안 될 것이다.“그래요. 호국사님 말대로 해요.”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유씨 가문 가정사에 참여하지 않았다.유기철의 얼굴이 회색빛이 되어 비록 목숨을 부지하기는 했지만 유씨 가문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초상집의 개와 다름없었다.그리고 유기철의 막내 아들 유문기가 사지가 부러져 아직 병원에서 응급을 받고 있었다.“진 대가님이 요구한 물건을 드리고 당장 꺼져.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유기태가 싸늘하게 말했다.“알겠어. 둘째 형 잘 있어.”유기철이 은영과를 꺼내 놓고는 까마득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성약당에 은영과가 아직 몇 그루나 있어?”진서준이 사장로를 향해 물었다.“아직 두 그루가 있습니다. 하지만 두 그루 모두 성약곡의 내전에 있어 들어가려면 열쇠가 있어야 해요.”사장로가 고분고분 대답했다.“누가 열쇠를 가지고 있어?”“큰 장로님이 갖고 계시는데 아직 수련 중이세요.”“내일 성약곡으로 함께 가. 너희 큰장로가 출관하기까지 못 기다려.”진서준이 냉랭하게 말했다.진서준에게 낭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하루 빨리 엄마의 행방을 찾아야 했고 명년 3월이면 신농산에도 가야 했다.“네네. 내일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사장로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 밑으로 옅은 희열이 휙하고 스쳐 지나갔다.진서준이 내일 그들과 함께 성약곡으로 가
간교한 달빛이 커튼을 넘어 허사연의 백옥같이 하얀 피부를 밝히고 있었다.검은색 레이스 잠옷을 입은 허사연이 얇은 이불로 대충 몸을 가리고 있어 절반 이상의 피부가 밖에 드러나 있었다.진서준이 그 자리에 선 채로 10초가량 지켜보다 정신을 차리니 몸속으로 뜨거운 것이 솟구치면서 아랫배가 찌릿찌릿했다.허사연이 깰까 봐 조심조심 침대로 다가가니 옅은 소녀 향이 풍겨왔다.시각과 후각의 이중 충격으로 하여 진서준의 체내 혈액이 빠르게 흐르면서 아랫배가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아까부터 반응이 있었던 진서준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허사연이 깨기만을 기다렸다.“사연아...”진서준이 허리를 굽혀 허사연의 귓가에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어...”허사연이 낮게 신음하며 몸을 뒤척이더니 가까스로 눈을 떴다.“서준 씨, 왔어요?”허사연이 몽롱한 표정으로 물었다.“어. 왜 갑자기 내 방에서 자? 그리고 이 잠옷은 뭐야?”진서준이 침대에 걸쳐 앉더니 허사연을 품에 안으며 물었다.잠이 확 깬 허사연이 진서준인 것을 보고 반항하지 않고 편한 자세를 찾아 고쳐 누웠다.“서준 씨를 위해서죠.”허사연이 고개를 숙이더니 진서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마치 술 취한 모습이었고 품에 안은 허사연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나를 위해서?”진서준은 호흡이 턱 막히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이건 무슨 뜻일까? 오늘 밤 내가 드디어 진정한 남자가 된 단말인가?’진서준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진작에 욕망으로 꿈틀거리던 진서준은 손을 뻗어 허사연의 쇄골로부터 시작해 서서히 아래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진서준의 손길이 닿자 워낙 콩닥거리던 가슴이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우리가 이렇게 오래 사귀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여자 친구의 책임을 다 못한 거 같아요. 혹시 날 원망하는 건 아니죠?”허사연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당연하지. 내 여자 친구가 되어달라는 건 그 일 때문이 아니야.”진서준이 진지하게 말했다.스킨십보다는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