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교한 달빛이 커튼을 넘어 허사연의 백옥같이 하얀 피부를 밝히고 있었다.검은색 레이스 잠옷을 입은 허사연이 얇은 이불로 대충 몸을 가리고 있어 절반 이상의 피부가 밖에 드러나 있었다.진서준이 그 자리에 선 채로 10초가량 지켜보다 정신을 차리니 몸속으로 뜨거운 것이 솟구치면서 아랫배가 찌릿찌릿했다.허사연이 깰까 봐 조심조심 침대로 다가가니 옅은 소녀 향이 풍겨왔다.시각과 후각의 이중 충격으로 하여 진서준의 체내 혈액이 빠르게 흐르면서 아랫배가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아까부터 반응이 있었던 진서준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허사연이 깨기만을 기다렸다.“사연아...”진서준이 허리를 굽혀 허사연의 귓가에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어...”허사연이 낮게 신음하며 몸을 뒤척이더니 가까스로 눈을 떴다.“서준 씨, 왔어요?”허사연이 몽롱한 표정으로 물었다.“어. 왜 갑자기 내 방에서 자? 그리고 이 잠옷은 뭐야?”진서준이 침대에 걸쳐 앉더니 허사연을 품에 안으며 물었다.잠이 확 깬 허사연이 진서준인 것을 보고 반항하지 않고 편한 자세를 찾아 고쳐 누웠다.“서준 씨를 위해서죠.”허사연이 고개를 숙이더니 진서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마치 술 취한 모습이었고 품에 안은 허사연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나를 위해서?”진서준은 호흡이 턱 막히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이건 무슨 뜻일까? 오늘 밤 내가 드디어 진정한 남자가 된 단말인가?’진서준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진작에 욕망으로 꿈틀거리던 진서준은 손을 뻗어 허사연의 쇄골로부터 시작해 서서히 아래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진서준의 손길이 닿자 워낙 콩닥거리던 가슴이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우리가 이렇게 오래 사귀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여자 친구의 책임을 다 못한 거 같아요. 혹시 날 원망하는 건 아니죠?”허사연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당연하지. 내 여자 친구가 되어달라는 건 그 일 때문이 아니야.”진서준이 진지하게 말했다.스킨십보다는
허사연이 자기를 위해 대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네가 부끄럼타는 모습이 제일 예뻐.”진서준이 허사연의 아래턱을 잡고 얼굴을 들어 올리자 잘 익은 복숭아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저도 모르게 깨물어버렸다.진서준이 깊이 숨을 들이쉬면서 말했다.“너무 예쁘다.”사랑에 빠진 여자는 남자 친구의 칭찬에 약했고 허사연도 마찬가지였다.허사연의 눈썹이 반달처럼 되더니 호호 웃으며 물었다.“얼마나 예뻐요?”“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보다 더 예뻐.”“그런데 20년이 지나서 늙어버리면 내가 싫어지겠죠?”허사연이 속상한 듯 말했다.“남자들은 다 똑같아요. 항상 18살짜리 소녀만 좋아하잖아요.”진서준이 그 말을 듣고 큰소리로 웃었다.“왜 웃어요?”허사연이 진서준의 허리를 꼬집으며 말했다.“만일 내가 늙었다고 버리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아니야. 넌 영원히 늙지 않을 거야. 난 너와 한평생 함께하고 싶어.”진서준이 허허 웃으며 은영과를 꺼내자 이내 허사연의 눈빛을 사로잡았다.은영과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가 허사연의 코를 자극했다.“이게 뭐예요?”“널 영원히 젊게 해줄 수 있는 맛있는 과일이야. 이걸 먹으면 너도 윤진이처럼 아기 피부가 될 수 있고 한평생 늙지 않아.”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짜예요?”허사연이 놀라면서 물었다.“당연하지. 그리고 이걸 먹으면 너도 진정한 수련자가 될 수 있어.”“너무 좋아요. 이젠 나도 서준 씨를 도울 수 있어요.”허사연이 기쁜 나머지 눈물이 맺힌 얼굴로 진서준에게 키스하자 진서준이 침대에 누우면서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허사연이 숨을 쉬지 못해 발버둥을 쳐서야 진서준은 입을 뗐다.고개를 들어 허사연을 보니 상반신이 눈앞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서준 씨...”허사연의 얼굴이 빨갛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고 마치 전기충격을 받은 듯 온몸이 찌릿찌릿했다.특히 진서준의 다른 한 손이 계속 허사연의 아래쪽을 파고들었다.“안 돼요.”“왜?”“오늘...생리가...”허사연이
어젯밤 진서준이 집으로 돌아올 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까 봐 걱정되어 다들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문소리가 들리자 허윤진은 진서준이 온 줄 알고 다치지 않았는지 확인하려고 방 앞까지 왔다가 방안에서 들려오는 야릇한 소리를 들어버린 것이다.확인하지 않아도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기에 그녀들은 두 사람을 귀찮게 하지 않았고 장난기 많은 허윤진도 문을 벌컥 열어 진서준을 놀라게 하지 않았다.사실 어젯밤 두 사람이 정식으로 일을 치른 건 아니고 허사연이 입으로 진서준을 위해 고통을 덜어줬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극락을 맛보고 말았다.“언니, 어젯밤 좋았어?”진서준이 나가자 허윤진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그러자 김연아 몇몇도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다들 첫 경험을 못 겪어봤기에 허사연을 통해 알고 싶어했다.“무슨 헛소리야?”허윤진의 물음에 허사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내가 다 들었어. 어젯밤 언니가 형부 방에 있었잖아.”허윤진이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물었다.“나도 알아야 준비할 수 있을 거 아니야. 전에 내 친구가 그러는데 처음 할 때는 무척 아프대.”허윤진의 말을 듣고 허사연은 오해가 깊어졌음을 느꼈다.“너 헛소리 하지 마. 그런 거 아니야.”허사연이 급히 부인했다.“뭐가 아니야. 어젯밤 다 같이 들었어.”허윤진이 방문에 귀를 대고 엿듣고 있을 때 김연아가 조용히 다가왔고 그 뒤로 한보영이 왔으며 심지어 변희영도 다가와 엿들었다.진서라만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창피해서 어떡해.”허사연은 허윤진이 혼자서 엿들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귀뿌리까지 빨개져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다.항상 맏언니 노릇만 해오던 허사연의 위엄이 순간 와르르 무너져버렸다.“언니 걱정하지 마. 우리는 가족이잖아.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을게”허윤진이 가슴을 치며 맹세하자 허사연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그만하라고 했어. 이제 남자 친구가 생기면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어. 난 다 먹었으니까 방에 가서 쉴래.”말하고 나서 허사연은 그
진서준과 유기태는 사장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성약곡으로 향했다.성약곡은 강주의 평양산에 있었다.평양산은 평범한 산이 아니었고 영맥이 숨어있어 여러 가지 귀중한 약재를 키워내고 있었다.성약당의 역사가 백여 년이 되었기에 기반이 탄탄했고 진서준이 찾고 있는 약재를 이곳에서 거의 다 구할 수 있었다.한 시간가량 운전해 산기슭에 도착하자 사장로가 말했다.“이제부터 걸어가야 해요.”“그럼 내려서 걷죠.”진서준과 유기태도 차에서 내려 사장로의 뒤를 따랐다.산기슭에 한 갈래의 인공 오솔길이 산속으로 뻗어 있었고 이 오솔길은 귀족 가문에서 성약당을 위해 만들어준 것이다.돈 있는 귀족 가문에서 매번 가족이 아플 때마다 성약당에 사람을 보내 약을 지어가곤 했다.성약당이 있은 지 백여 년이 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고 명성이 장난이 아니었다. 당주가 여행을 가면서 자리를 비운 것이 아니면 성약당으로 병 보러 오는 사람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산속의 경치는 아름다웠고 공기도 신선해 둘러보며 걷다 보니 진서준의 마음도 따라서 안정되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도시의 콘크리트 건물과 비교하니 대자연이 더 가깝고 친절하게 느껴졌다. 산 중턱을 하나 넘자 사장로가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여기를 지나면 바로 성약당이에요.”사장로의 손끝을 따라 바라보니 앞쪽에 넓은 약재 밭이 보였다.돌길을 따라 앞으로 가니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보였고 이건 이곳에 오는 행인들에 대한 경고이다.사실 평양산은 강주 사람들에게는 금지구역과 마찬가지였고 소수의 귀족만 성약당에 들어가 전설과 같은 신의를 만나볼 수 있었다.“멈춰.”세 사람이 앞으로 가려 할 때 갑자기 앞에서 호통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들어보니 멋을 잔뜩 부린 청년이 쌀쌀맞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무슨 사람이야? 성약곡으로 입장할 수 있는 초청장이 있어?”청년의 오만방자한 태도는 몸에 밴 듯싶었다.“버르장머리 없는 놈. 나를 몰라?”사장로가 앞으로 한걸음 나서면서 매서운 목소
사장로가 간 뒤 유기태가 걱정스럽게 말했다.“성약당 사람들이 대가님이 요구하는 약재를 순순히 내어줄까요?”방금 오면서 보니 성약곡에 종사가 여러 명 있었고 심지어 대종사도 몇 명 보였다.비록 그들이 성약당 인원이 아니지만 그들의 은혜를 입었을지도 모르기에 만일 장로들과 충돌이라도 일어나는 날이면 달려와 도울 게 뻔하다.진서준이 그 말을 듣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안 내어줘도 오늘 반드시 약재를 가져갈 거예요.”진서준이 이번에 강주로 온 목적이 바로 성약당의 귀중한 약재를 얻어가기 위해서이다.약재만 있으면 실력을 빨리 제고할 수 있기에 신농산으로 출발할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진서준은 마음이 조급해졌다.지금의 진서준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을 위해 살고 있었다.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죽기라도 하는 날이면 모순이 있었던 세가에서 진서라 등을 어떻게 대할지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했다....“다섯째야, 독탕이 잘 되어가고 있어?”사장로가 대청에서 나오자마자 뒷마당에 있는 탕전실로 향했다.어젯밤 오장로가 성약곡으로 돌아오자마자 독탕을 조제해 달이기 시작했다.그건 바로 오늘 진서준을 죽이기 위해서이다.“다 돼가요.”오장로가 흉악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자식이 단장탕을 마시기만 하면 오장육부가 싹 물러지면서 실력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양처럼 고분고분해질 거예요.”“알았어.”사장로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오장로가 말한 단장탕은 묘족 마을에서 배워온 13가지 극독물로 이루어진 탕약으로 한 가지 극독물을 제련하는 데만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단장탕을 마시면 장이 녹아 물러지면서 끊어질 뿐만 아니라 체내의 오장육부가 썩기 시작하면서 죽어야만 고통이 멈출 수 있다.당주를 죽이려고 준비했던 단장탕을 진서준의 실력이 하도 막강해 비장의 무기로 꺼낼 수밖에 없었다.“그 자식이 요구하는 약재는 다 준비했어?”사장로가 다시 물었다.“아니요. 당장 죽을 놈한테 그걸 왜 준비해요?”오장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오장로는 진서준이
탕약에서 향긋한 약재 향이 나면서 모르는 사람은 오장로한테 속아 마셨을지도 모른다.이때 유기태가 진서준에게 말했다.“대가님, 먼저 뒷밭에 가죠. 탕약은 돌아와서 마셔도 늦지 않아요.”유기태의 말에 오장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귀뺨을 날리고 싶었다.‘쓸데없이 웬 참견이야? 나중에 내가 널 단단히 손 봐야겠어.”진서준이 탕약을 힐끗 쳐다보더니 오묘한 표정으로 오장로를 보면서 말했다.“탕약에 독이 들어있는 건 아니지?”오장로가 살짝 당황했지만 진정하고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저와 사형의 목숨이 대가님 손에 달렸는데 제가 어떻게 감히 독을 타겠어요?”“맞아요. 대가님이 생각만으로도 우리를 죽일 수 있는데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 해도 감히 못 그러죠.”사장로도 오장로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두 사람의 간절한 태도에 진서준이 말했다.“좋아. 너희 성의를 봐서 내가 마실 거야.”말하고나서 그릇에 담긴 탕약을 단숨에 들이켰다.진서준이 통쾌하게 마셔버리자 두 장로는 너무 기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이 자식은 이젠 꼼짝 못 하고 죽었어.’“진서준, 너 너무 자만한 거 아니야? 감히 우리가 준 탕약을 마셔?”“네가 탕약을 마시지 않으면 뒷밭에 있는 진법으로 널 죽이려 했는데 잘 됐어. 너 이제 오장육부가 물러지면서 한 토막씩 끊어지는 걸 느끼게 될 거야.”두 장로가 드디어 분풀이라도 한 듯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유기태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급히 물었다.“진 대가님한테 대체 뭘 준 거야?”“뭐겠어. 극독물이 가득 들어있는 단장탕이야.”오장로의 입꼬리가 귀에 걸리면서 득의양양해 말했다.“이건 묘족 마을 촌장이 우리한테 가르쳐준 건데 신선이 마셔도 살아남지 못해.”유기태가 순간 폭발했다.“쓰레기 같은 자식들, 역시 묘족 마을과 연관이 있었어.”“그러면 어떡할 건데 자기 목숨도 지키지 못한 주제에.”사장로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이 죽은 다음 바로 네 차례야. 유씨 가문에 너와 진서준이 약재를 다투다 맞아 죽었다고 말하
오장로가 합세하면서 우세를 차지하던 유기태가 차츰 밀리기 시작했다.유기태가 두 장로의 주먹을 몇 대 맞더니 입가로 피가 주르륵 흐르면서 곤경에 처했다.진서준은 두 눈을 꼭 감고 주위에 아무 일도 없는 듯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30초가량 지나 진서준이 천천히 눈을 뜨더니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장청결이 아주 대단해. 독약도 연화할 수 있어.”진서준이 수련한 장청결은 영기를 연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들이마신 살기마저 영기로 바꿔줄 수 있었다.그리고 심지어 극독물인 단장탕도 장청결로 연화할 수 있었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유기태가 사장로의 발길에 채워 바닥에 떨어졌다.유기태의 온몸은 상처투성이었고 갈비뼈도 부러졌다.진서준은 유기태를 보고 나서 다시 고개를 돌려 두 장로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야? 네가 왜 아직 살아있어?”진서준은 전혀 중독된 기색이 없이 태연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단장탕을 마시면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데 이 자식은 극독물로도 죽이지 못 한단 말인가?‘아니야. 그럴 수 없어. 이건 사람이지 괴물이 아니야.’“단장탕은 나한테 소용없어.”진서준이 평온하게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 묘족 마을의 촌장이 우리한테 직접 가르쳐준 거야.”사장로가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그는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만일 단장탕으로도 진서준을 죽이지 못한다면 이젠 아무 방법도 없었다.“묘족 마을의 촌장도 별거 아니란 뜻이야.”진서준이 뒷짐을 쥐고 천천히 두 장로를 향해 걸어갔다.“오지 마. 다가오지 마.”두 장로는 겁이 나 연신 뒷걸음쳤다.어제 진서준이 삼장로를 어떻게 죽였는지 기억이 생생했다.부들부들 떨고 있는 두 장로를 보면서 진서준이 가소로운 듯 말했다.“이 주제에 감히 나한테 독을 타? 가서 너희 대장로와 이장로를 불러와. 한꺼번에 정리할게.”진서준이 말하자 사장로는 처음에는 멍하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네 입으로 말했어. 후회하지 마.”“사제, 넌 이곳에서 기다려. 금방 다녀올게.”말하고 나서
그러더니 하얀 도포를 입은 노인 두 명이 걸어 나왔다.하얀 도포에는 ‘성약’이라는 두 글자가 휘장처럼 수 놓여있었다.“큰형님, 둘째 형님.”두 노인이 나타나자 사장로가 흥분하며 말했다.“왜 이렇게 떠들어? 주책머리 없이.”대장로가 불쾌한 듯 꾸짖었다.거의 한 달 동안 폐관 수련해 삼품 대종사가 눈앞까지 다가왔고 삼품 대종사가 되면 지방 랭킹 순위가 껑충 뛰어오를 수 있었다.“큰형님,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사장로가 울상이 되어 설명했다.“여섯째를 죽인 그 자식이 왔어요. 그리고 이틀 전에 우리의 계획을 다 망쳐놓고 유기태를 구해갔어요. 그리고 또 어젯밤 셋째 형님이 그 자식의 손에 죽었어요...”사장로는 요 며칠 발생한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사형에게 설명했다.대장로와 이장로는 들으면 들을수록 눈이 점점 휘둥그레졌다.“그 자식한테 단장탕도 안 먹힌단 말이야?”대장로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맞아요.”사장로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그 자식이 단장탕을 마시는 걸 제가 직접 봤는데 아무 일도 없이 사지가 멀쩡해요. 너무 신기해요.”대장로가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그 자식하고 강하게 대립하면 안 돼. 그 자식이 성약당의 약재를 요구한다면 줄 수도 있는데 그전에 우리의 대진을 깨트릴 수 있는지 두고 봐야겠어.”성약곡의 뒷밭에는 대진이 진수하고 있었다.안전하게 출입하려면 대진 도장이 있어야 했고 성약당의 몇 장로만 가지고 있었다.만일 외부인이 함부로 진입하면 한 가닥의 연기로 변해버릴 수 있다.“그 자식이 아무리 대단해도 우리 선조가 남겨준 대진을 깨트릴 수 없어.”대장로가 신심이 가득 차 말했다.전에 대장로가 대진을 테스트하려다 하마터면 뒷밭에 갇혀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좋아요. 그럼 큰형님 말대로 해요.”세 사람은 상의한 뒤 함께 대청으로 왔다.“진 대가님.”아까 전의 사장로의 오만방자함이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진서준이 그의 뒤를 따르는 두 노자를 평온한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두 장로는 속으
진서라는 재빨리 움직여 유정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고마워, 서라야.”유정은 물컵을 받아 들고 천천히 마셨다.“몸은 어때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진서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이제 괜찮아.”유정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참 다행이네요.”진서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진서준 오빠는 어디 있어? 왜 안 보이지?”유정이 문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유정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진서준이었다.진서라는 급히 둘러대기 시작했다.“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어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나갔다고? 혹시 묘강으로 간 건 아니겠지?”유정도 바보는 아닌지라 진서라의 표정을 보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다.“아, 아니에요. 묘강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우리 오빠도 그렇게 무모하진 않아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서라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초조했다.벌써 하루가 지나도록 진서준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었다.점심때 국제 뉴스를 본 진서라는 배논국의 묘강 지역에서 큰 소란이 있어 배논국이 결국 묘강 지역을 접수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하지만 진서준의 소식은 단 한 줄도 없었다.그러니 자연스레 진서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유기명이 방으로 들어왔다.딸이 깨어난 걸 보자 유기명은 눈물을 글썽이며 격동한 말투로 말했다.“유정아, 드디어 깨어났구나!”“죄송해요, 아버지. 걱정 끼쳐드려서...”유정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절반이 희끗희끗해졌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바보 같은 소리 마. 사과할 사람은 나야.”유기명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때 내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그 자식을 죽였더라면 네가 중독될 일도 없었을 거야.”“이미 지난 일이에요. 이제 그 얘긴 그만하세요.”진서라가 서둘러 다독였다.“그래,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이야. 더 이상 골치
조슬기의 피부 온도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지만 몸속은 한기로 가득했다.조슬기의 오장육부는 이미 일반인의 체온을 한창 밑돌고 있었다.옥패가 어느 정도 억제하는 기능이 있긴 했지만 효과가 너무 미미했다.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조슬기 몸속에 쌓인 한기가 완전히 폭발할 것이다.그 순간이 오면, 조슬기의 목숨도 위험해질 것이다.“이봐, 헛소리하지 마. 너야말로 정신 상태가 안 좋은 거 아냐?”신수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고 심지어 조슬기 본인도 몰랐다.조슬기가 알면 괜히 걱정할까 봐 일부러 숨겨왔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이 녀석이 대놓고 말해버리다니,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은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사실을 알아챈 신수란이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누구도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다.“란 언니, 오빠를 탓하지 마. 사실 오빠가 말 안 해도 난 대충 짐작하고 있었어.”조슬기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기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건 결국 자신이었다.진서준이 말한 대로 조슬기의 상태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사실 진서준이 어느 정도 에둘러 말해서 그렇지 지금의 상태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신수란은 진서준을 매섭게 노려본 뒤, 급히 조슬기를 달랬다.“아가씨,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종주님과 장로님들이 반드시 치료법을 찾으실 거예요. 게다가 전 대한민국에 용존이라는 천재 소년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천재는 실력도 강하지만 의술 또한 모든 사람을 압도한다고 해요. 그런 인재라면 분명 아가씨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진서준은 듣자마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용존이라니, 그건 진서준이 아닌가?“뭐야, 그 표정은?”신수란이 진서준의 표정을 눈치채고 불쾌한 얼굴을 했다.“아, 별거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너희는 용존에 대해 어디서 들었어?”“우릴 뭐로 보는 거야? 우리가 원시인인 줄 알아? 우리도 휴대폰 쓸 줄 알아.”신수란이 불쾌한 표정으로 받아치
진서준은 이 주제에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이 녀석은 알아서 수습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고마움을 표하고는 신수란을 바라봤다.신수란은 속에 쌓인 화를 주체하지 못해 단검을 뽑아 장강훈의 목에 겨누며 말했다.“말해! 누가 너희를 보낸 거야? 그리고 우리가 미리 산에서 내려온 걸 어떻게 알았어?”“돈 받은 만큼 일할 뿐이야. 우린 돈만 받으면 그만이고,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는 모른다니까.”장강훈은 이를 악물며 사실을 털어놨다.“말 안 하겠다 이거지?”신수란은 냉소를 지으며 더 이상 긴말하지 않고 바로 장강훈의 다리 힘줄을 단칼에 끊어버렸다.“아악!”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장강훈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정말 몰라! 나도 온라인에서 의뢰를 받았을 뿐, 누군지는 몰라.”“이래도 고집을 부려? 말 안 하면 내가 널 고자로 만들어버릴 줄 알아.”말을 마치며 신수란은 단검을 장강훈의 아래쪽에 갖다 댔다.그러자 장강훈은 순간 몸을 덜덜 떨며 깜짝 놀라 눈물까지 찔끔 날 뻔했다.“말할게, 말할게!”머리가 잘리거나 피가 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그 부위만큼은 절대 잃을 수 없었다.“우리에게 조 아가씨를 납치하라고 시킨 사람은...”그 순간, 장강훈은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검은 피를 뿜어내고 그대로 푹 쓰러졌다.“죽은 척하지 마!”신수란은 앞으로 다가가 장강훈을 툭 밀었다.하지만 장강훈은 이미 숨통이 끊어져 완전히 사망한 상태였다.“진짜 죽었네.”신수란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했다.분명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죽은 걸까?그 광경을 본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묘왕은 죽었지만 묘강의 사수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진서준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장강훈의 머리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그 모습은 마치 머릿속에 뭔가가 있는 듯했다.신수란이 앞으로 다가가 확인하려는 순간, 장강훈의 귀에서 새까만 지네들이 한 마리씩 기어 나오기
갑자기 쓰러진 장강훈을 바라보며 현장 사람들은 전부 멍해졌다.이게 무슨 상황이지?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저 건방지고 거만한 청년이 장강훈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마지막엔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그런데 저 극악무도한 악당 장강훈이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다니,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모두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얼이 빠져 있었다.심지어 신수란조차도 미간을 찌푸리며 이 장면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네놈이 감히 암기로 날 공격해?”장강훈은 고통에 찬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봤다.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진서준을 산 채로 잡아먹을 기세였다.“내가 말했지? 넌 나와 겨룰 자격이 없다고.”진서준은 여전히 평온하게 말했다.“암기라니? 너도 저놈들처럼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구나.”신수란이 콧방귀를 끼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신수란 복부의 상처는 바로 암기의 공격으로 다친 것이었다.그리고 방금도 장강훈이 신수란을 비겁하게 기습하려 했다.그래서 신수란은 이런 비열한 수법을 쓰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느꼈다.진서준은 신수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고 대신 속으로 이 여자가 멍청하긴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이 두 여자를 구하려고 선뜻 나섰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같은 인간쓰레기 취급을 당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어서 저놈을 해치워! 암기든 뭐든 다 부숴버려! 내 무기와 똑같은 걸 쓸 자격이 있기나 해?”장강훈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장강훈은 진서준이 자기와 같은 종류의 암기를 사용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그러나 진서준이 사용한 건 단순한 은침 두 개였을 뿐이고 다만 그것이 일반 은침보다 좀 더 단단했을 뿐이었다.남아있던 부하들은 우르르 진서준에게 몰려들었다.개미도 많이 모이면 코끼리를 잡는다고 했다.하지만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리 개미가 많아도 결국 희생될 뿐이었다.진서준이 발을 내딛자마자 서 있던 바닥이 산산조각이 났다.이어지는 진서준의 움직임은 유령처럼 사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