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 오빠 오랜만이에요.”한 달이 지나 다시 진서준을 보게 되어 유정은 매우 기뻤다.하지만 유정의 신분은 이미 천지개벽의 변화가 생겼다.아빠가 없는 아이로부터 서남 제일 세가 유기명의 외동딸이 되었다.이제부터 그녀는 엄청난 부귀영화와 존경을 누릴 수 있다.유정을 바라보는 진서준의 눈빛은 복잡했다.유정이 바로 유기명이 그때 낳은 딸이라는 사실을 진서준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유정아...오랜만이야. 한 달 못 봤는데 많이 야위었어.”진서준이 다가가면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누가 널 괴롭힌 거 아니지? 있으면 오빠한테 말해. 오빠가 가서 때려줄게.”유정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그저 여기 생활이 적응이 안 돼요.”20여 년 동안 엄마와 단둘이서 힘겹게 살아오다가 갑자기 재벌 집 자식이 되니 습관 되지 않을 법도 했다.“서준 씨...”고한영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진서준을 향해 걸어왔다.전에 고한영이 서남에 대단한 가문이 있는데 유정에게 무예를 가르쳐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그때 유기명은 이미 유정이 딸인 걸 알았지만 직접 말하지 않고 먼저 고한영에게 아무 이유나 대고 유정을 속여서 서남으로 데려오라고 했다.유정이 서남에 도착해서야 두 부녀는 서로 신분을 확인했고 유정의 어머니까지 가문으로 데려와 지금 장원 내의 별장에서 함께 살고 있다.“유정이가 유기명의 딸인 거 일찍부터 알고 있었어요?”진서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아니에요. 저도 한 달 전에야 알았어요.”고한영이 연신 고개를 저었다.고한영이 유정을 서남으로 데려오라는 유기명의 부탁을 들어준 것도 사실 진서준을 돕기 위해서였다.고한영은 진서준에 대한 유정의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유씨 가문으로 돌아가 유정이 외동딸의 신분으로 유기명에게 진서준을 도와주라고 부탁한다면 절대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서준 씨 미안해요. 그때 사실을 말하지 못했어요...”고한영이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지나간 건 더 말하지 말아요.”진서준이 손을 흔들며 더
“곁에서 잘 지켜보고 있어요.”사장로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너같이 어린놈이 의술이 있다면 얼마나 있겠어?”진서준이 사장로를 힐끗 보면서 말했다.“조금 전 대결하기 전에도 그렇게 말했는데 결과는요?”진서준이 조롱하자 사장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그건 네가 무인으로서 수련 재능이 있을 뿐이지 의술과 무술은 확연히 다른 거야.”사장로가 얼굴이 뻘게지면서 반박했다.“그건 당신 같은 바보에게 적용되는 말이에요.”진서준이 조용히 말했다.“나에게는 둘 다 똑같아요.”말하고 나서 진서준은 더는 사장로와 입씨름하지 않고 옆 테이블에서 은침 한 통을 가져왔다.은침은 이미 소독했기에 진서준은 그 중에서 10개를 꺼내 유기명의 머리에 천천히 꽂았다.“미련한 놈, 가주님이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감히 침부터 꽂아?”사장로가 기회다 싶어 옆에서 비웃었다.“4진 중의 2진만 해도 무슨 병인지 알 수 있어요.”진서준이 담담하게 답하자 사장로의 얼굴색이 더 무섭게 변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장로는 유기명의 맥을 짚으며 허세를 잔뜩 피웠는데 이 말 한마디로 자기 의술이 사장로보다 높다는 것을 과시했다.‘이 자식이! 유기명을 못 구해내면 내가 널 어떻게 처리할지 두고 봐.’사장로가 화가 잔뜩 나서 생각했다.은침 10대를 유기명의 머리에 꽂고 나서 진서준은 체내의 장청결을 움직이자 영기가 은침을 따라 서서히 유기명의 체내로 수송되었다.바로 이때 침대 곁에 놓인 각종 기기에서 경고음이 들려왔다.띠띠띠...그러자 유기철과 사장로는 미친 듯이 기뻤다.“이 자식이 대체 뭐 하는 거야?”하지만 유기철은 화 난 듯 진서준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큰형을 죽였어?”‘하늘이 나를 돕는구려.’사장로는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유기태와 유씨 가족들도 표정이 변했다.“진 대가님, 이게 무슨 일인가요?”유기태가 급히 다가가며 물었다.“무슨 일이겠어? 이 자식이 큰형을 죽였어.”유기명이 고래고래 악을 썼다.“당황할 거 없어
유씨 가족들이 경악을 지르더니 눈빛에는 공포감으로 가득했다.그들은 10센티미터나 되는 지네가 인류의 콧구멍에서 기어 나오는 것을 처음 봤다.만일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라면 유씨 가족들은 누구도 믿기 어려웠다.사장로와 유기철 두 사람의 얼굴색도 삽시에 변하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진서준은 줄곧 유기철과 사장로의 표정을 지켜보고 있었다.두 사람의 표정 변화를 본 진서준은 유기명 체내의 고충은 이 두 사람이 한 짓이라고 단정했다.유기철이 사장로를 노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에 질문이 가득 차 있었다.마치 “방금 이 자식이 못 구한다고 확신했잖아?”라고 묻는듯 싶었다.사장로도 침울하기 마찬가지였다.홍갈 지네가 스스로 기어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주인이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스스로 기어 나왔지? 유기명이 진짜로 죽은 걸까?’인체에 기생하는 고충은 생체 징후가 없으면 죽었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먹이를 찾아 기어 나온다. 안 기어 나오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가주님이 갑자기 쓰러진 게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진서준이 말하면서 다가가더니 기를 불어 넣은 손가락으로 홍갈 지네를 눌러 죽였다.이런 물건은 절대 살아남게 해서는 안 된다.큰 사형이 오랫동안 키운 고충이 죽어버리자 사장로는 안타까워 가슴이 아팠다.말 잘 듣는 고충 한 마리를 양성하기가 종사 한 명 양성하기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서준 오빠, 이게 뭐예요?”유정이 다가오면서 물었다.“고충이야.”진서준이 말하면서 유기명의 머리에 꽂은 은침에 손을 갖다 댔다.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았기에 다시 유기명을 깨워야 했다.유정은 고충을 모르지만 다른 유씨 가족들은 이 독물을 알고 있었다.“고충이라고요? 묘족 그쪽에서 키우는 거 아닌가요? 그게 왜 여기에 나타나요?”“너무 징그러워. 그렇다면 유씨 가문이 그들의 표적이 됐단 말인가요?”유기철이 이때 나서면서 말했다.“당황하지 마요. 묘족 마을의 고충이 비록 대단하기는
유기태의 얼굴색이 차가워지면서 대충 누가 한 짓인지 짐작이 갔다.유정이가 비록 유기명을 미워한다고 해도 죽일 마음까지는 없을 것이다.그리고 몇 해 동안 줄곧 남주에서 생활한 유정이 묘족 마을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다.하여 유일하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유기철뿐이다.“기억이 안 나요.”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유기명이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날 리가 없었다.“그럼 엄마 모시고 와.”유기철이 말했다.“무슨 뜻이에요? 내가 독을 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유정은 화가 나면서도 억울했다.“비록 미워한다고는 하지만 친아버지를 살해할 정도는 아니에요.”유기철이 그 말을 듣고 냉랭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사람 마음은 아무도 몰라. 네가 오기 전에는 큰형이 건강했는데 네가 오고 얼마 안 돼서 누가 고충을 심어놨잖아.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 않아?”다른 유씨 가족들도 고개를 끄덕였다.“기철이 말이 맞아. 네가 와서 가주가 앓아누웠어.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겠어?”“결백하면 엄마 데려와서 얼굴 보면서 얘기하자고 해.”“사람은 겉만 봐서는 몰라. 이렇게 예쁜 여자가 어떻게 이런 악랄한 짓을 할 수 있어?”병실에 있는 유씨 가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마디씩 했다.이때 진서준이 유기명의 머리에 꽂은 은침을 뽑아내고는 고개를 돌려 유씨 가족을 냉랭하게 쏘아보았다.우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진서준이 한 가닥의 굵은 기세를 뿜어내니 유씨 가문은 압력에 눌려 숨을 쉴 수가 없어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이 자식이 감히 여기서 손을 써?”유기철의 눈 밑으로 음흉한 웃음이 한 가닥 스쳐 지나갔다.진서준을 없애기 위해 유기철은 그가 이곳에서 한바탕 난동이라도 부리기를 간절히 바라던 바이다.진서준만 해결하면 다음에 또 고충을 심어도 누구도 살려내지 못할 것이다.“젊은이. 여긴 네가 함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백발노인이 병실로 걸어들어오면서 말했다.순간 진서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기세가 가뭇없이 사라졌다.진서준이 눈빛을 모아
유기명 부녀의 가슴 따뜻한 모습에 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만일 김형섭도 유기명과 같이 잘못을 뉘우쳤다면 진서준이 결혼식에서 신부를 빼앗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비록 서씨 가문이 압력을 가한다고 해도 김형섭이 강경하게 거절하면 서씨 가문도 김씨 가문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하지만 김형섭의 마음속에 가족은 이익보다 중요하지 않았다.유씨 가족들이 낮은 소리로 속삭이며 말했다.“능청스러운 것 좀 봐. 전에는 왜 저런 모습을 못 봤지?”“셋째가 한 말에 찔려서 연기를 하는 거지 뭐.”“시간 있을 때 꼭 가주님한테 말해야겠어. 절대 저 모녀들한테 속지 말라고.”비록 소곤거리는 소리가 낮았지만 병실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무인이라 그대로 귀속으로 전해왔다.유기태가 듣더니 화를 버럭 내면서 말했다.“여기 있지 말고 가서 할 일이나 해.”유기태가 화를 내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뿔뿔히 흩어졌다.“잠깐만.”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다른 일이 또 있어?”사장로가 진서준을 매섭게 노려봤다.이 자식이 오늘 그들의 계획을 다 망쳐버렸다.“성약당에 소식을 전해요. 며칠 뒤에 내가 성약당에 찾아갈 거예요. 몇몇 장로보고 목을 깨끗이 씻고 기다리라고 해요.”진서준이 차갑게 말했다.사장로가 흠칫하더니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좋아. 용기가 있으면 얼마든지 와. 오는 건 네 마음이지만 가는 건 그렇지 않을 거야.”사장로가 웃음을 거두더니 음흉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유기철과 함께 떠났다.유기명이 진서준의 말을 듣고 호기심에 찬 얼굴로 유정에게 물었다.“정아, 이 사람은 누구야? 전에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진서준이에요. 저의 양어머니의 아들이에요. 몸에 심어놓은 고충도 서준 오빠가 기어 나오게 했어요.”그러더니 유정이 이내 이어서 말했다.“서준 오빠를 만났을 망정이지 아니면 저와 엄마를 다시는 볼 수 없을뻔했어요.”이 기회에 유정은 진서준을 한바탕 추켜세웠다.그래야만 진서준에 대한 인상을 깊게 남길 수 있다.서남
단지 유기명은 가문에 첩자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그럼 일찍 대비하지 않고 뭐 했어?”유기태가 이해되지 않아 물었다.“대처할 수 없었어, 그들이 묘족 마을과 연관이 있어. 묘족 마을의 고충을 너도 알다시피 너무 무서운 존재야.”유기명이 허허 웃더니 얼굴에 살기가 휙 하고 스쳐 갔다.누가 고충을 심었는지 유기명은 마음속에 짐작이 갔다.“그럼 내가 괜한 걱정을 했어.”유기태가 웃으며 말했다.“가주님이 무탈하시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진서준이 말했다.이번에 유씨 가문에 도움을 요청하러 왔지만 유기태가 말했다시피 성약당의 몇몇 장로들을 섬멸하려면 자기와 몇몇 호국사만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유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이 진서준을 도와주지 못한다면 이곳에 남아있을 의미가 없었다.“서준 오빠 잠깐만 기다려요. 당장 점심시간인데 제가 점심 살게요.”유정이 급히 다가가면서 진서준의 손을 잡으며 기대에 찬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어렵게 만났는데 진서준이 이렇게 부랴부랴 돌아간다니 유정은 못내 아쉬웠다.“아버님 돌봐드려야 하지 않겠어?”진서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괜찮아요. 정아와 함께 나가요.”유기명이 연신 손을 저으며 말했다.“주차장에 있는 차를 마음대로 골라서 타. 그리고 저녁에 안 들어와도 돼.”유기명의 마지막 한마디에 유정의 예쁜 얼굴이 삽시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진서준도 허사연 일행에게 유정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서울에 있을 때 그녀들은 사이가 아주 좋았다.“그럼 먼저 갈게요. 저녁에 유정이를 무사히 집까지 바래줄게요.”진서준이 말하고 나서 유정과 몸을 돌려 나왔다.두 사람이 병실에서 나간 뒤 유기명 얼굴에 있던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강렬한 냉기가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사람 파견해서 기철이 잘 감시하게 해. 증거만 확실하면 당장에서 격살해도 좋아...”처음 보는 유기명의 잔인한 모습에 유기태가 흠칫 놀랐다.“알았어. 지금 사람 보낼게”유기명이 고개를 끄덕였다.“딸, 내가 숨이 붙어있는 한 절
변희영이 통으로 빌린 룸은 100평 정도 되었다. 밥 먹는 큰 테이블 외에도 다양한 오락 시설들이 있었다. 이렇게 호화로운 룸을 예약하려면 최소 400만이 필요하다.강주는 대도시이기에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부자들이 많았다.“서준 씨가 20분 뒤에 온다고 했으니 이따가 오면 주문합시다.”허사연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일행들에게 말했다.“그래요.”다들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허윤진은 진서라의 손을 잡고 당구대 앞으로 갔다.“서라 언니, 당구 칠 줄 알아요?”“아니요.”진서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릴 적 그녀의 집은 매우 가난해서 이런 오락 게임을 한 돈이 없었다. 비록 나중에 돈이 생겼지만 절약하는 습관은 이미 뼛속 깊이 배어있었다.“안 쳐봤어요? 그럼 제가 가르쳐줄게요. 저는 고수거든요.”허윤진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그럼 좋죠. 하지만 제가 배우는 게 좀 느려요. 이따 가르칠 때 화내지 마세요.”진서라는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허윤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진서라는 진서준의 여동생이기 때문에 허윤진은 절대 그녀에게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당구를 치고 허사연과 김연아는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에요?”허사연은 차를 내리면서 차분하게 물었다.”잠잠해지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서 대표님 놀이 해야죠.”김연아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이전의 생활이 그리웠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언제든지 볼 수 있고 허사연과 친구들 같이 쇼핑도 하고 밥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그녀는 다시 강남 김씨 가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마치 감방처럼 사람을 숨 막히게 했다.“그것도 좋을 것 같네요. 가족들 싸움에 휘말려 들지도 않고 좋네요.”허사연은 웃으며 말했다.“보영 씨는요?”“저도 돌아가야죠.”한보영도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서울에 남고 싶었지만 허사연의 불만을 살까 봐 두려웠다.허사연이야말로 진서준의 진짜 여자 친구이니 말이다.“그래요. 서울도 멀지 않으
“이쁜이들, 안녕!”선두에 선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러자 변희영은 차갑게 말했다.“무슨 일인데요?”“그냥 친구 하고 싶어서.”그 남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이쁜이들 곁에 남자도 없고 우리 곁에 여자도 없는데. 함께 노는 건 어때?”허사연 등은 이때 남자들을 향해 걸어왔다.“필요 없어요. 나가 주세요.”변희영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남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꿰뚫고 있었다. 남자는 하체부터 반응하는 생물체라는 말이 역시 틀리지 않았다.100% 남자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95%는 그렇다.예쁜 여자 보고 어떤 남자가 야릇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보통 사람들은 그럴 용기가 없지만 만약 권력이 있고 돈이 있다면 그런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마련이다.그리고 이런 일들은 자주 일어나고 있다. 권력으로 기사를 막고 있어 공개되지 않았을 뿐이다.얼마 전 전국을 뒤흔든 술집 사건도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뭘 그렇게 급하게 거절해?”남자는 손으로 문을 누르며 변희영이 문을 닫지 못하게 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자기소개부터 할게. 내 이름은 유씨 가문 셋째 아들 유문기야.”유문기는 자기가 이렇게 소개하면 변희영이 와락 그를 안을 줄 알았다.유씨 가문은 제일 가문이기 때문에 유문기와 어떻게든 엮이려고 하는 여자들이 많았다.그의 신분을 모를 때는 도도하다가도 유문기가 유씨 가문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모두 주동적으로 그에게 달라붙었다.이게 바로 돈과 권력의 위력이다.유문기가 유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변희영도 역시 깜짝 놀랐다.하지만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당신이 누구든 당장 나가주세요.”그러자 유문기의 안색은 갑자기 어두워졌다.이렇게 체면을 안 세워준다고?이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짓인데 말이다.유문기 뒤에 있던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어이, 예쁜이. 감히 우리 도련님을 거절하다니. 유씨 가문도 안중에 없다는 거야? 죽고 싶어? 우리 도련님 한마디만 네
진서라는 재빨리 움직여 유정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고마워, 서라야.”유정은 물컵을 받아 들고 천천히 마셨다.“몸은 어때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진서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이제 괜찮아.”유정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참 다행이네요.”진서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진서준 오빠는 어디 있어? 왜 안 보이지?”유정이 문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유정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진서준이었다.진서라는 급히 둘러대기 시작했다.“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어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나갔다고? 혹시 묘강으로 간 건 아니겠지?”유정도 바보는 아닌지라 진서라의 표정을 보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다.“아, 아니에요. 묘강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우리 오빠도 그렇게 무모하진 않아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서라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초조했다.벌써 하루가 지나도록 진서준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었다.점심때 국제 뉴스를 본 진서라는 배논국의 묘강 지역에서 큰 소란이 있어 배논국이 결국 묘강 지역을 접수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하지만 진서준의 소식은 단 한 줄도 없었다.그러니 자연스레 진서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유기명이 방으로 들어왔다.딸이 깨어난 걸 보자 유기명은 눈물을 글썽이며 격동한 말투로 말했다.“유정아, 드디어 깨어났구나!”“죄송해요, 아버지. 걱정 끼쳐드려서...”유정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절반이 희끗희끗해졌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바보 같은 소리 마. 사과할 사람은 나야.”유기명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때 내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그 자식을 죽였더라면 네가 중독될 일도 없었을 거야.”“이미 지난 일이에요. 이제 그 얘긴 그만하세요.”진서라가 서둘러 다독였다.“그래,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이야. 더 이상 골치
조슬기의 피부 온도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지만 몸속은 한기로 가득했다.조슬기의 오장육부는 이미 일반인의 체온을 한창 밑돌고 있었다.옥패가 어느 정도 억제하는 기능이 있긴 했지만 효과가 너무 미미했다.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조슬기 몸속에 쌓인 한기가 완전히 폭발할 것이다.그 순간이 오면, 조슬기의 목숨도 위험해질 것이다.“이봐, 헛소리하지 마. 너야말로 정신 상태가 안 좋은 거 아냐?”신수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고 심지어 조슬기 본인도 몰랐다.조슬기가 알면 괜히 걱정할까 봐 일부러 숨겨왔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이 녀석이 대놓고 말해버리다니,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은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사실을 알아챈 신수란이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누구도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다.“란 언니, 오빠를 탓하지 마. 사실 오빠가 말 안 해도 난 대충 짐작하고 있었어.”조슬기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기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건 결국 자신이었다.진서준이 말한 대로 조슬기의 상태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사실 진서준이 어느 정도 에둘러 말해서 그렇지 지금의 상태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신수란은 진서준을 매섭게 노려본 뒤, 급히 조슬기를 달랬다.“아가씨,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종주님과 장로님들이 반드시 치료법을 찾으실 거예요. 게다가 전 대한민국에 용존이라는 천재 소년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천재는 실력도 강하지만 의술 또한 모든 사람을 압도한다고 해요. 그런 인재라면 분명 아가씨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진서준은 듣자마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용존이라니, 그건 진서준이 아닌가?“뭐야, 그 표정은?”신수란이 진서준의 표정을 눈치채고 불쾌한 얼굴을 했다.“아, 별거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너희는 용존에 대해 어디서 들었어?”“우릴 뭐로 보는 거야? 우리가 원시인인 줄 알아? 우리도 휴대폰 쓸 줄 알아.”신수란이 불쾌한 표정으로 받아치
진서준은 이 주제에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이 녀석은 알아서 수습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고마움을 표하고는 신수란을 바라봤다.신수란은 속에 쌓인 화를 주체하지 못해 단검을 뽑아 장강훈의 목에 겨누며 말했다.“말해! 누가 너희를 보낸 거야? 그리고 우리가 미리 산에서 내려온 걸 어떻게 알았어?”“돈 받은 만큼 일할 뿐이야. 우린 돈만 받으면 그만이고,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는 모른다니까.”장강훈은 이를 악물며 사실을 털어놨다.“말 안 하겠다 이거지?”신수란은 냉소를 지으며 더 이상 긴말하지 않고 바로 장강훈의 다리 힘줄을 단칼에 끊어버렸다.“아악!”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장강훈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정말 몰라! 나도 온라인에서 의뢰를 받았을 뿐, 누군지는 몰라.”“이래도 고집을 부려? 말 안 하면 내가 널 고자로 만들어버릴 줄 알아.”말을 마치며 신수란은 단검을 장강훈의 아래쪽에 갖다 댔다.그러자 장강훈은 순간 몸을 덜덜 떨며 깜짝 놀라 눈물까지 찔끔 날 뻔했다.“말할게, 말할게!”머리가 잘리거나 피가 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그 부위만큼은 절대 잃을 수 없었다.“우리에게 조 아가씨를 납치하라고 시킨 사람은...”그 순간, 장강훈은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검은 피를 뿜어내고 그대로 푹 쓰러졌다.“죽은 척하지 마!”신수란은 앞으로 다가가 장강훈을 툭 밀었다.하지만 장강훈은 이미 숨통이 끊어져 완전히 사망한 상태였다.“진짜 죽었네.”신수란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했다.분명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죽은 걸까?그 광경을 본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묘왕은 죽었지만 묘강의 사수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진서준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장강훈의 머리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그 모습은 마치 머릿속에 뭔가가 있는 듯했다.신수란이 앞으로 다가가 확인하려는 순간, 장강훈의 귀에서 새까만 지네들이 한 마리씩 기어 나오기
갑자기 쓰러진 장강훈을 바라보며 현장 사람들은 전부 멍해졌다.이게 무슨 상황이지?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저 건방지고 거만한 청년이 장강훈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마지막엔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그런데 저 극악무도한 악당 장강훈이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다니,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모두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얼이 빠져 있었다.심지어 신수란조차도 미간을 찌푸리며 이 장면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네놈이 감히 암기로 날 공격해?”장강훈은 고통에 찬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봤다.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진서준을 산 채로 잡아먹을 기세였다.“내가 말했지? 넌 나와 겨룰 자격이 없다고.”진서준은 여전히 평온하게 말했다.“암기라니? 너도 저놈들처럼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구나.”신수란이 콧방귀를 끼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신수란 복부의 상처는 바로 암기의 공격으로 다친 것이었다.그리고 방금도 장강훈이 신수란을 비겁하게 기습하려 했다.그래서 신수란은 이런 비열한 수법을 쓰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느꼈다.진서준은 신수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고 대신 속으로 이 여자가 멍청하긴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이 두 여자를 구하려고 선뜻 나섰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같은 인간쓰레기 취급을 당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어서 저놈을 해치워! 암기든 뭐든 다 부숴버려! 내 무기와 똑같은 걸 쓸 자격이 있기나 해?”장강훈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장강훈은 진서준이 자기와 같은 종류의 암기를 사용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그러나 진서준이 사용한 건 단순한 은침 두 개였을 뿐이고 다만 그것이 일반 은침보다 좀 더 단단했을 뿐이었다.남아있던 부하들은 우르르 진서준에게 몰려들었다.개미도 많이 모이면 코끼리를 잡는다고 했다.하지만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리 개미가 많아도 결국 희생될 뿐이었다.진서준이 발을 내딛자마자 서 있던 바닥이 산산조각이 났다.이어지는 진서준의 움직임은 유령처럼 사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