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니 한보영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보영아, 지금 어디 있어? 진 마스터님이 말씀하시기를 아까 이미 병원을 떠났다고 했는데 왜 아직도 집에 안 오는 거야?”한서강이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딸이었기에 한서강은 한보영에게 사고가 생길까 봐 걱정했다.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신이 한보영의 아버지죠?”한서강은 그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누구세요?”“제가 누구인지는 도착하면 알게 될 거예요. 당장 그 진서준이라는 놈을 데리고 남쪽에 있는 주림원으로 오세요. 정확히 딱 30분만 드릴 테니 단 1분이라도 넘기면 따님의 손가락 하나 잘라버리겠어요. 손가락을 다 자르면 그다음에는 귀, 그다음에는 입술이 될 거예요.”그 사람의 말을 듣자 한서강은 가슴이 섬뜩해졌고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알겠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 기다리세요. 제 딸을 절대 해치지 마세요.”말을 마치자 한서강은 전화를 끊었다.“큰일이 났어요. 진 마스터님, 제 딸이 지금 납치당했어요. 지금 우리보고 남쪽에 있는 주림원으로 오라고 해요.”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저도 들었어요.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지금 빨리 갑시다.”“저도 함께 갈게요.”한제성은 즉시 차를 몰고 진서준과 한서강을 데리고 주림원으로 갔다.진서준은 인승민과 다른 사람들을 부르지 않았다.진서준마저 상대방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면 인승민과 다른 사람들이 가봤자 죽으러 가는 것뿐이었다.가는 길에 진서준이 물었다.“가주님, 한씨 가문에 무슨 원수가 있어요?”“그런 건 아닐 겁니다. 원수라고 해봐야 조씨 가문과 황씨 가문이겠죠. 하지만 두 가문의 사람들은 이미 전부 죽었으니 원수는 없을 겁니다.”한서강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말했다.그러자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었다.“일단 도착하면 그 자식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제성은 차를 몰고 주림원에 도착했다.주림원은 남쪽에 있는 공원이었고 안에는 대나무가 가득했다.공원 안쪽에 가장
“우리를 자극하지 마. 우리는 이따위 수작에 넘어가지 않아.”한 대머리 남자가 번쩍번쩍 윤기가 나는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우리 사부님을 죽일 수 있다는 건 네놈이 실력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이니 우리도 조심해야 할 거야.”그들 다섯 사람은 모두 탁현수의 제자들이었다.탁현수가 종사의 경지였을 때 그들은 탁현수의 문하에 들어갔다.그들이 내공의 경지에 도달하자 전부 고양시를 떠나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에서 단련하기 시작했다.지금 그들은 모두 유명한 대가문에 있었다.사부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다시 고양시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이 다섯 명은 모두 대성 종사였고 게다가 모두 인의방에 오른 사람들이었다.방금 말한 중년 남자의 이름은 오강훈이었고 인의방의 제63위의 인물이었다.대머리 남자는 강지환이라 불렀고 인의방 제65위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나머지 세 사람도 인의방 제70위, 72위, 74위의 고수들이었다.만약에 그들 다섯이 힘을 합쳐 중부의 3개 도시의 한 가문을 상대한다면 아마 한씨 가문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내가 이미 이곳에 도착했으니 빨리 보영 씨를 풀어줘.”“우리는 바보가 아니야. 이 여자를 풀어주면 우리는 비장의 카드를 잃는 셈이지.”강지환이 차갑게 웃었다.탁현수를 죽였다는 건 진서준의 실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말해준다.그들은 진서준이 이렇게 젊어 보이는 건 분명히 이상한 공법을 수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들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진서준에게서 그 공법을 얻으려고 했다.“서준 씨, 저를 상관하지 마세요. 빨리 이 자식들을 혼내줘요.”한보영이 소리쳤다.“닥쳐!”강지환은 한보영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 나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이 자식아, 네 여자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기 싶지 않다면 즉시 스스로 단전을 없애!”강지환이 한보영을 진서준의 여자라고 말하자 한보영은 얼굴을 붉혔다.“난 서준 씨의 여자가 아니야. 너희들은 날 이용해서 서준 씨를 절대 위협할 수 없
은은한 달빛이 진서준과 한보영을 비추고 있었다.진서준의 품에 안겨 있는 한보영은 묵묵히 진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한보영은 넋을 잃고 달빛에 비친 진서준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 있었다.진서준이 한보영을 안고 한서강의 앞에 갈 때까지 그녀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한서강은 한보영의 안위가 걱정되어 진서준과 한보영의 야릇한 자세를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그는 심지어 한보영이 진서준과 함께 있기를 원했다.그렇게 되면 한씨 가문은 앞으로 완전히 안심할 수 있었다.“보영아, 괜찮아?”한서강의 말을 듣자 한보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진서준의 품을 떠났다.한보영은 얼굴이 뜨거워졌고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괜찮아요. 방금 저 사람들은 저에게 손을 대지 않았어요.”“그러면 됐어. 잘됐네.”한서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진서준에 의해 한쪽 팔이 잘린 강지환은 바닥에 누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갑자기 한쪽 팔이 잘리자 나머지 사람들은 소름이 끼쳤다.비록 강지환은 무인일지라도 이런 심한 고통은 참을 수가 없었다.푸른 잔디밭은 이미 강지환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오강훈과 나머지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자 등골이 오싹해졌다.‘이 녀석은 괴물이야. 우리가 모두 반응하지 않았을 때 강지환의 한쪽 팔을 잘라 버리다니. 강지환은 인의방에서 65위의 강자인데 말이야.’비록 50위 안에 들지 못했지만 그의 실력은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이제 인질이 없으니 너희는 어떻게 될 것 같아?”손에 천문검을 든 진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 다섯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비록 강지환은 이미 겁에 질려 더 이상 진서준을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바닥 위에서 끊임없이 울부짖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나머지 사람들도 어쩔 줄 몰라 했다.“진 마스터님, 이 일은 우리가 잘못했어요. 우리에게 살길을 준다면 이 큰 은혜는 우리가 나중에 꼭 갚겠어요.”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강훈은 즉시 용서를 빌었다.차라리 지금 잘못을 인정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그래요.
진서준이 걸어오자, 그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방금 그런 말을 했던 이유는 단지 진서준이 그들을 놓아주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들은 떠난 후에 어쩌면 사람을 불러 복수할 생각도 있었는데 바로 진서준을 도와서 일한다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진 마스터님... 우리에게 뭘 시키려는 거죠?”진서준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자 오강훈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보아하니, 오늘 이곳을 떠나기 어려운 것 같네.’“사실 별거 아니야. 보름 뒤에 나랑 강남에 가서 결혼식장에서 신부님을 빼앗아 오면 돼.”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네? 강남에 가서 신부님을 빼앗아 온다고요?”진서준의 말을 들은 그들은 갑자기 멍해졌다.“누구 집안의 신부님을 빼앗아 오려는 거죠?”오강훈이 또 물었다.“강남 김씨 가문이지. 너희들도 들어봤을 거야.”진서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김씨 가문의 이름을 밝혔다.‘헐! 이럴 수가.’다섯 사람은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강지환은 심지어 잘려 나간 팔 때문에 어깨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조차도 잊은 것 같았다.‘김씨 가문의 신부님을 빼앗아 온다고? 미친 거 아니야?’김씨 가문은 강남에서 두 번째로 으뜸가는 큰 가문이었다.그들 다섯 명이 일하고 있는 가문을 전부 합쳐도 김씨 가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진 마스터님... 우리가 잘못 들은 거 맞죠?”한참이 지나서야 오강훈은 정신이 돌아왔다.“잘못 들은 게 아니야. 바로 강남의 김씨 가문이지. 가주는 이름이 김형섭이고.”진서준은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오강훈과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진 마스터님, 우리더러 김씨 가문의 신부님을 납치해 오라는 건 죽으라고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김씨 가문은 강남에서 두 번째로 실력이 강한 가문이죠. 김씨 가문에는 심지어 세 명의 선천 대종사가 있고 게다가 그들 모두가 지의방에 적혀 있는 고수라고요! 우리가 김씨 가문에 가서 신부를 빼앗아 오는 건 정말
강남의 서씨 가문은 가장 실력이 강한 가문이다.그리고 강남의 김씨 가문은 두 번째로 실력이 강한 가문이었다.김씨 가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떨리게 했다.지금 진서준이 빼앗아 오려는 신부는 심지어 이 두 가문의 결혼식장에 있는 신부였다.‘정말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군.’오강훈은 진서준에게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진 마스터님, 저에게 살길을 마련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애도 키워야 해요. 정말 죽고 싶지 않다고요.”동시에 강남의 두 개의 최고 가문을 상대한다는 건 아마도 십급 대종사만이 그럴 용기가 있을 것이다.하지만 십기 대종사라고 해도 동시에 김씨 가문과 서씨 가문에게 시비를 걸 정도로 날뛰지는 않을 것이다.다른 세 사람도 진서준에게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살려달라고 부탁했다.그들을 보자 진서준은 마음이 더욱 불편해졌다.“단지 김씨 가문과 서씨 가문뿐이잖아. 그게 그렇게 무서운 거야? 너희들은 나를 따라오면 돼. 아무 일 없을 거야.”‘아무 일 없다고? 누가 그 말을 믿어? 너도 죽을 수 있다고!’오강훈과 다른 사람들은 절대 진서준의 말을 믿지 않았다.“3초 동안 생각할 시간을 줄게. 지금 꺼지고 보름 뒤에 나와 함께 강남으로 갈 건지, 아니면 오늘 밤 이곳에서 목숨을 잃을 건지 잘 생각해 봐.”진서준은 차갑게 그들을 바라보았다.“진 마스터님, 보름 뒤에 찾아뵙겠습니다.”“전화번호 알려 줘. 내가 가기 전에 미리 알려줄게. 그때 가서 너희들이 오지 않으면 날 탓하지 마.”진서준은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네...”오강훈과 다른 사람 세 명은 강지환을 부축하며 주림원을 떠났다.그들이 떠나자 한씨 가문 사람 세 명이 진서준에게로 다가왔다.“서준 씨, 정말 가서 신부님을 빼앗아 오려는 거예요?”한보영은 근심 어린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면서 물었다.“네. 연아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인데 그녀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진서준은 힘껏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서준
한보영은 진서준의 귓가에 엎드린 채 그들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습하고 뜨거운 입김이 진서준의 귓가에 맴돌자 진서준은 깜짝 놀랐다.진서준이 말을 하기도 전에 한보영은 이미 머리를 진서준의 어깨에 비스듬히 기대어 눈을 감고 잠들었다.한보영은 몸의 대부분을 진서준의 몸에 기대고 있었다.진서준과 한보영은 모두 얇은 옷을 입었기에 진서준은 한보영의 날씬한 몸매와 부드러운 살결을 느낄 수 있었다.가장 어이없었던 건 한보영의 몸매는 정말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풍만한 가슴은 차의 흔들림을 따라 진서준의 팔에서 위아래로 파도를 타고 있었다.육체적인 감각 외에 한보영의 몸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뿜어져 나와 진서준을 에워싸고 있었다.이렇게 유혹적인 모습 때문에 진서준은 매우 괴로웠다.하지만 진서준은 혹시나 앞에 앉아 있는 한서강과 한제성이 볼 까봐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잠시 후 한씨 가문에 도착했고 한보영은 이미 잠들었다.1박 2일 동안 눈 한 번 붙이지 못한 한보영은 정말 피곤해 보였다. 그녀는 줄곧 허윤진의 곁을 지키며 허윤진을 돌봤다.진서준은 차마 한보영을 깨우기 싫어서 한제성에게 속삭였다.“제성 씨, 보영 씨가 이미 잠들었으니 제가 안고 방까지 모실게요.”한제성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기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었다.“네. 좋아요.”진서준은 한제성의 표정도 신경 쓰지 않고 한보영을 자신의 품에 눕힌 뒤 곧바로 그녀를 안고 한씨 별장으로 향했다.한제성이 앞에서 진서준에게 길을 안내했고 곧 한보영의 방 문 앞에 도착했다.“서준 씨, 몸 건강을 잘 챙기세요.”한제성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고 바로 돌아서 떠났다.“뭐지? 뜬금없이.”진서준은 한제성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중얼거렸다.진서준은 방문을 열고 한보영을 침대에 내려놓았다.진서준은 한보영의 외투를 벗기고 한보영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떠났을 뿐 전혀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그가 거실에 돌아오자 한제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서준은 밤새 자지 않고 어떻게 김연아를 구할 생각만 했다.다음날 날이 밝기도 전에 진서준은 침대에서 일어났다.“오빠,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거실에 앉아 있던 진서라가 진서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일어서서 다가갔다.“난 매일 일찍 일어나. 그런데 넌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난 거야? 요 며칠 동안 제대로 자지도 못했을 텐데. 푹 늦잠이나 잘 거지.”진서준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진서라를 바라보았다.“요 며칠 푹 잘 쉬었어.”진서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아니면 산책하러 갈래?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지.”진서준이 제안했다.“좋아.”진서준과 진서라는 한씨 별장을 나와 주변을 한가롭게 거닐었다.“오빠, 유지수 씨가 날 잡아갈 때 오빠에게 뭐라고 했어?”진서라가 갑자기 물었다.“아니야. 단지 그녀를 위해 세 가지 일을 도와달라고 했을 뿐 다른 말은 안 했어. 왜?”진서준은 고개를 내저으며 진서라를 바라보았다.“혹시 그녀가 너에게 뭐라고 한 거야?”“아니야...”진서라의 눈에는 우울함이 스쳐 지나갔지만 잘 숨겼기 때문에 진서준은 알아차리지 못했다.“서라야, 유지수가 그날에 어떻게 널 잡아갔는지 나한테 알려 줘.”어제 진서준은 미처 물어보지 못했는데 지금 산책하고 있으니 마침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그날 집에서 엄마에게 밥상을 차려드리고 있는데 유지수 씨로부터 오빠가 위험하다며 빨리 오라는 전화를 받았어. 그 당시 오빠가 걱정돼서 전화까지 했는데 아무도 안 받았어.”그때 진서준은 보운산에 있었기 때문에 신호가 안 터졌기에 당연히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오빠가 위험할까 봐 유지수 씨가 말한 곳으로 갔더니 그녀가 보낸 사람에게 그대로 끌려갔어. 그 후에 처음 며칠 동안에는 별장에서 지내다가 나중에는 그 산으로 가게 된 거야.”진서라는 요 며칠 동안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진서라에게 말했다.“서라야, 넌 유지수의 신분을 알고 있어?”“뭐?”진서라는 깜짝 놀랐다.“그녀는 지금 부모님이 낳
사랑하는 사람이 생명의 위험에 직면했을 때 그를 위해 용감하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심지어 수십 년을 함께 보낸 노부부도 반드시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깜짝 놀랐어.”진서준은 감개무량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은 그날 밤에 일어난 일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특히 제마 법왕이라는 이놈은 반드시 직접 죽여서 허윤진을 위해 복수할 것이다.하지만 뜻밖으로 그날 밤 이후로 제마 법왕은 마치 세상에서 증발해 버린 것처럼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진서준은 제마 법왕이 다음날이 아니면 그날 밤에 다시 습격하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까지도 제마 법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진서준은 제마 법왕이 자신을 이렇게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사실 제마 법왕은 확실히 그날 한밤중에 진서준을 습격하려고 했다.하지만 전화 한 통 때문에 제마 법왕은 중부를 떠나 서남쪽으로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그는 전화에서 국안부의 한 호국 장군이 서남으로 갔다고 들었다. 아마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호국 장군은 천의방에 들 수 있는 고수였기에 반드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상대해야 했다.제마 법왕이 먼저 돌아간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는 호국 장군이 서남으로 간 건 자기 뒷길을 막을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진서준은 진서라를 데리고 병실로 왔고 허윤진은 지금 이미 정상적으로 일어나 머리맡에 기댈 수 있었다.“윤진 씨, 회복이 정말 빠르군요.”진서준은 깜짝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물론이죠. 전 그럴 실력이 있죠!”허윤진은 고개를 들고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사실 허윤진은 자신도 깜짝 놀랐다.그녀도 자신이 이렇게 빨리 회복될 줄은 몰랐다.지금까지도 허윤진은 자기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을 생생히 기억했다. 하지만 3일도 되지 않아 구멍은 사라졌고 몸도 거의 회복되었다.별일 없으면 내일 바로 퇴원할 수 있었다.허윤진이 예전의 활력을
장조인은 그 말에 심기가 불편했다.“진 선생님, 당시 제가 반드시 도와드리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우리가 협력 관계인 건 맞지만 저도 우리 장씨 가문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움직여야 했습니다.”장조인의 말투가 미묘하게 바뀐 걸 눈치채자 신민준과 우진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둘은 장조인 앞에 서서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진서준을 쳐다봤다.어제 진서준이 참격 하나로 고성운과 육위준을 베었다는 소식은 이미 두 사람도 알고 있었다.두 사람의 실력으로 진서준을 막는 건 어림없는 일임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조인에게 그들이 장씨 가문에 대한 충성을 보여줘야 했다.진서준은 장조인의 해명을 못 들은 듯, 권해철의 등을 만지던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치료가 끝났습니다. 이제 권 마스터님은 정상인처럼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권해철도 자기 몸에 일어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권해철의 심각하게 부러진 뼈들이 기적처럼 모두 이어진 것이다.“진 상경님,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권해철은 흥분한 나머지 병상에서 벌떡 일어서 옷도 챙기지 않고 진서준에게 무릎을 꿇으려 했다.진서준은 그 모습을 보고 얼른 손을 내밀어 허공에서 권해철을 붙들어 무릎을 꿇지 못하게 했다.“권 마스터님, 이럴 필요 없습니다. 권 마스터님이 구지범에게 당한 것도 저 때문이니 말입니다.”진서준은 권해철을 일으켜 세우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권 마스터님, 일단 옷을 갈아입으세요. 저는 저 사람들과 밖에서 좀 더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네...”권해철은 그제야 자기가 알몸이란 걸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진서준은 돌아서서 장조인을 힐끗 보고는 병실을 떠났다.장조인은 지금 진서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하지만 진서준이 무슨 생각을 하든, 장조인은 지금 진서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병실을 나선 진서준은 공원 뒤쪽 정원으로 걸어갔다.정원에는 작은 화원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이미 많은 환자와 가족
진서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장주호와 신민준은 이 청년이 왜 그런 허세 가득한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즉시 깨달았다.진서준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지금 진서준은 강남 서열 3위 가문 따위가 안 중에 있을 수 없었다.왜냐하면 진서준 한 사람만으로도 장씨 가문 내 모든 사람을 무릎 꿇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장조인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머릿속에서 말을 정리하고 나서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진 선생님, 제가 우리 장씨 가문 사람을 대신해 사과드립니다.”피범벅이 된 채 쓰러져 있던 장문주는 그 모습에 넋을 잃었다.자기 시력에 문제가 생겨 헛것을 본 걸까, 아니면 아직 잠이 덜 깬 채 꿈을 꾸고 있는 걸까?.장씨 가문 가주가 한 청년에게 머리를 숙이며 사과하다니, 이보다 더 황당한 일은 있을 수 없었다.더 끔찍한 건 장문주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장조인이 진서준에게 사과한 걸 보고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들의 눈에는 장조인의 사과가 당연한 일처럼 보였다.이미 숨이 끊어질 듯했던 장문주는 이 충격에 다시 한번 타격을 입고 결국 고개를 떨군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허나 장문주의 죽음은 방 안의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그들의 눈에 장문주는 있으나 마나 한 하찮은 존재였기 때문이다.고귀한 신분의 사람이 개미 한 마리의 생사를 신경 쓸 리가 없었다.장조인의 사과에도 진서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진서준은 고개를 푹 숙인 장조인을 차갑게 쓱 훑어본 뒤, 더 이상 장조인을 신경 쓰지 않고 권해철의 치료에만 집중했다.장조인은 허리를 굽힌 채, 진서준이 대꾸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한참 동안 기다려도 진서준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장조인은 내심 의아해졌다.결국 장조인이 고개를 들어보니 진서준은 자기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권해철의 치료에만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장조인의 마음속에는 순간 분노가 피어올랐다.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본인은 당당한 장씨 가문의 가주 장조인이었다.진서준이 아무리
칼처럼 날카로운 그 기운이 순식간에 신민준의 강기를 찢어버렸다.이어 그 기운이 신민준을 지나쳐 장주호의 오른쪽 귀를 스쳐 지나갔다.푹!장주호의 한 쪽 귀가 시뻘건 피를 튀기며 하늘로 날아올랐다.파도가 일어날 때의 물보라처럼 대량의 피가 장주호의 귀에서 쏟아져 나왔다.병실의 하얀 벽은 순간 섬뜩한 빨간색으로 물들었다.“아악!”장주호의 입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신민준은 뒤에서 들리는 비명에 즉시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한쪽 귀밖에 남지 않은 장주호의 모습을 발견했다.난생처음 보는 광경은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무서웠다.자기 강기가 이 청년 앞에서 힘없는 종이처럼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넌 도대체 누구야? 왜 우리 장씨 가문을 이 정도로 물고 늘어지는 거야?”상황 파악이 빠른 신민준은 즉시 이 청년이 자기가 도무지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란 걸 깨달았다.오직 장씨 가문 내 지의방에 오른 높은 인물만이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아까 분명 말했지? 장조인을 부르라고.”진서준은 아무런 감정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대응했다.신민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바로 가주에게 알리겠어. 기다려 봐.”바닥에 누워있는 장문주 역시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해졌다.장주호와 신민준이 자기를 도와 복수해 줄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복수는커녕 장주호가 오히려 한쪽 귀를 잃게 되었다.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장씨 가문 가주가 직접 오게 된다니, 상황은 이미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이 청년의 정체가 점점 더 궁금해졌다.신민준은 장주호를 데리고 병실에서 나가 의사를 불러 상처를 치료하게 하고는 이내 장조인에게 전화해 장씨 가문의 대종사도 데려오라고 요청했다.장조인은 이 일을 듣고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그 사람이 국안부 사람은 아닐까? 혹시 국안부가 우리 계획을 눈치챈 건가?”신민준은 머리를 저으며 대답했다.“잘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우리 장씨 가문 계획을 모르는 것 같
장주호는 진서준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 사람의 복장으로 보아 청년인 것 같았다.요즘 청년들은 언제부터 장씨 가문을 하찮게 여길 정도로 이렇게 대담해진 건가?이제 장씨 가문의 강남 내 위치를 반드시 높여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최근 형님이 연락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장주호의 눈에는 한 줄기 빛이 스쳤다.그 사람들과 협력해 작전에 성공한다면 장씨 가문은 서씨 가문을 제치고 강남에서 으뜸가는 가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길 리스크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장주호는 머리에 떠오르는 오만가지 생각을 접고 진서준을 바라보며 살짝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네가 우리 장씨 가문 사람을 죽인 건가?”진서준은 권해철의 치료를 도와주고 있어 장주호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게다가 진서준은 장주호가 이 일을 해결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이 대답하지 않자 장주호는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버럭 냈다.“내 말 들리지 않아? 귀먹었어?”장주호의 고함이 떨어지자 방 안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언성 높여 시끄럽게 떠들 거면 당장 꺼져.”진서준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냉랭한 말투로 대꾸했다.감히 장주호가 너무 시끄럽다고 하다니, 장주호는 그 말에 멈칫하다가 곧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는 거야? 감히 내게 시끄럽다고 호통쳐? 오늘 네가 우리 장씨 가문을 건드린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제대로 알게 될 거야.”이 청년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건방졌다.장주호는 여태껏 장씨 가문을 이토록 이렇게 무시하는 청년을 만난 적이 없었다.옆에 있던 신민준은 이 청년의 목소리가 다소 익숙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들으면 들을수록 이 목소리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고 이상하게도 친숙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민준아, 네가 먼저 저놈 좀 혼내고 와.”장주호는 신민준에게 명령하며 이미 죽은 사람을 보는 것 같은 싸늘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신민준은 즉시 체내의 강기를 손가락 끝에 모으고 가볍게 튕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젊은 종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종사는 함부로 모욕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이 여자는 내 여동생이고 우리는 장씨 가문 사람이야. 너희가 정말 이런 사소한 일로 우리 장씨 가문과 적대할 작정이야? 나중에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잃지나 말라고!”장문주는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냉정하게 말했다.종사는 모욕할 수 없다는 말을 장문주는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본인이 장씨 가문 사람인 이상, 종사라고 해서 그들을 쉽게 건드릴 수는 없었다.심지어 대종사라고 해도 장씨 가문과 정면으로 부딪치기를 꺼렸다.“그렇다면 네 여동생이 여기서 죽는 모습을 지켜보면 돼.”진서준은 눈을 살짝 감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사과하지 않으면 죽는 길밖에 없었다.진서준의 말은 언제나 실행에 옮겨졌다.“오빠... 제발 날 살려줘...”장문주의 여동생은 말할 기력조차 거의 다해 두 눈이 금방이라도 감길 듯했다.“조금만 버텨, 주호가 곧 올 거야!”장문주는 이제 말로 여동생을 격려하며 억지로 버티게 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간호사의 통통했던 얼굴이 공기가 빠진 농구공처럼 말라버렸다.여동생이 무언가를 말하려다 갑자기 눈을 감았고 입을 살짝 벌렸으나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영자야! 눈 떠 봐!”그 모습을 본 장문주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급히 이름을 외쳤다.아무 반응도 없는 여동생을 보자 이미 숨을 거뒀음을 알 수 있었다.“이 망할 놈아! 감히 내 여동생을 죽여? 네 피로 이 빚을 갚아야 할 거야!”장문주는 머리를 들고 광기에 찬 맹견처럼 머리카락을 곤두세우고 진서준을 쏘아보며 울부짖었다.하지만 진서준은 눈조차 뜨지 않고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푹!순식간에 장문주도 여동생처럼 바닥에 쓰러졌고 그의 허벅지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구멍이 생겼다.“아까 분명 경고했지? 종사는 모욕할 수 없다고.”진서준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천천히 말했다.장문주는 온몸을 떨며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인 눈빛을 보였다.
진서준은 배신과 약속을 어긴 사람들을 누구보다도 증오했다.그동안 바빠서 장씨 가문에 대한 복수를 미뤘지만 공교롭게도 그들이 제 발로 진서준을 찾아왔다.이번 기회에 장씨 가문과 그때 일을 철저히 결산할 작정이었다.“네가 장씨 가문 사람이었어? 참 잘됐네. 너희 가주 장조인을 여기로 당장 불러.”진서준의 냉담한 목소리에 장문주는 순간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다시 문지르고 믿기 힘들다는 듯 진서준을 바라봤다.“뭐라고? 우리 가주를 여기로 부르라고?”장문주는 이 녀석이 무슨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하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장씨 가문은 비록 강남에서 세 번째로 영향력 있는 가문이었지만 서씨 가문과 진씨 가문을 제외하고는 어느 세력도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다.그런데 이 애송이가 감히 그런 오만한 말을 내뱉다니, 장씨 가문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 같았다.“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진서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장문주를 향한 눈빛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그 시선에 장문주는 소름이 끼쳐 심장이 멎을 뻔했다.이렇게 살기를 띤 눈빛은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것 같았다...“좋아! 네가 죽고 싶다면 내가 기꺼이 들어주지.”장문주는 즉시 휴대폰을 꺼내 장씨 가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장문주는 장씨 가문의 외척일 뿐, 직계가 아니었다.장문주의 신분과 지위로는 장조인에게 직접 연락할 수 없었지만 장씨 가문의 다른 사람에게 연락해 무인을 데려올 수는 있었다.곧이어 장문주는 휴대폰에 대고 병실 내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차갑게 세 글자를 던졌다.“기다려!”전화를 끊은 후, 장문주는 진서준을 향해 오만한 눈빛을 보냈다.“곧 우리 장씨 가문 사람들이 올 거야. 네 놈이 어떻게 비참하게 끝장날지 두고 보겠어.”장조인이 아닌 다른 장씨 가문 사람이라는 말에 진서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 자식이 멍청해서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 건지 의심스러웠다.장씨 가문에서 진서준과 마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직
다음 순간, 진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눈빛으로 수간호사를 바라보았다.“1분 줄 테니 얼른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가족에게 네 장례 준비하라고 전화해야 할 거야.”장례 준비라니, 수간호사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단지 이 영감에게 몇 마디 욕설을 날렸을 뿐인데 장례 준비하라고 하다니, 이 남자는 너무 뻔뻔했다.수간호사 오빠를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는 건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과연 누가 장례 준비를 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야. 우리 오빠가 곧 올 거야. 네가 끝장나는 건 시간문제야.”수간호사의 눈빛은 독기를 품고 있었고 그녀는 머릿속으로 이따가 진서준을 어떻게 괴롭힐지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수간호사가 자기 말을 믿지 않자 진서준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수간호사가 부른 사람을 기다렸다.약 30초 후, 병실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수간호사와 살짝 닮은 중년 남자가 병실로 들어왔다.여동생의 참담한 모습을 본 남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오빠, 드디어 왔어?”중년 남자를 본 수간호사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수간호사는 병원 교수인 오빠가 자기를 위해 복수해 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장문주는 바닥에 흥건히 고인 피와 피가 멈추지 않는 여동생의 다리를 보다가 마침내 시선을 진서준에게 고정했다.병실 안에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앉아 있는 이 청년뿐이었다.“이 사람이 병원 경호원을 때려 다치게 했고 그것도 모자라 무슨 수를 써서 내 다리를 이렇게 뚫었어. 오빠, 얼른 복수해 줘.”장문주가 침묵을 지키자 수간호사는 또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다들 영자를 옆방으로 옮겨서 상처를 먼저 지혈해.”장문주는 뒤에 있는 경호원들에게 지시했다.경호원들이 수간호사를 들고 나갈 때, 그녀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다.“아직 사과를 안 했어. 못 나가.”그때, 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고 그 평온한 목소
경호원 대장은 말하면서 고무 막대기로 진서준의 머리를 톡톡 치려고 했다.그러나 대장의 고무 막대기가 진서준의 머리에 닿기도 전에, 갑자기 대장의 배에서 엄청난 힘이 전해졌다.다음 순간, 경호원 대장은 고속으로 달리는 화물차에 부딪힌 것처럼 뒤로 날아갔다.쿵!둔탁한 소리와 함께 경호원 대장의 몸은 병실 벽에 박혀버렸다.대장은 이미 기절한 상태였고 온몸의 뼈 역시 모두 부러졌다.수간호사와 나머지 경호원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남자가 정말 사람이 맞은가?단 한 번의 발차기로 100킬로그램이 넘는 거구를 저렇게 쉽게 날려버리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진서준과 권해철은 이 상황에 익숙한 사람처럼 아무런 동요 없이 담담하게 치료를 계속했다.모두가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방 안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10초 안에 내 눈앞에서 사라져.”진서준은 권해철에게 약을 바르면서 경호원들에게 경고했다.진서준의 말을 듣고서야 경호원들은 정신을 차렸다.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몇몇 경호원은 곧바로 대장을 들어 올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겁지겁 병실을 나갔다.순식간에 병실에 남겨진 건 멍하니 서 있는 수간호사뿐이었다.수간호사는 오랫동안 멍해 있다가 겨우 공포를 이겨내고 이성을 되찾았다.“건방진 이유가 바로 이거였어? 무도 쪽 사람인가 보네?”수간호사는 이를 악물고 흉측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이건 마지막 경고야, 얼른 사과해.”진서준은 수간호사를 바라보지도 않고 차갑게 말했다.“사과하라고? 꿈 깨. 이따가 너희 둘 다 무릎 꿇고 내게 사과해야 할 거야.”수간호사는 돌아서서 다시 사람을 부르려고 했다.하지만 이번엔 진서준이 기회를 주지 않았다.조금 전 진서준은 이미 수간호사에게 기회를 줬지만 수간호사는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진서준이 손가락을 튕기자 보이지 않는 기운이 수간호사의 허벅지에 닿았고 한순간에 수간호사의 허리보다 더 두툼한 허
철썩!중년 여자는 따귀를 맞고 제자리에서 거의 여덟 바퀴 돌았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그리고 동시에 입안의 이가 시뻘건 피와 함께 입 밖으로 튕겨 나갔다.진서준의 이 귀싸대기는 중년 여자를 어안이 벙벙하게 했다.여자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한 눈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이 병원에서 여자에게 대들거나 소리친 사람은 한 번도 없었고 여자의 얼굴에 손을 대는 사람은 더욱 있을 수 없었다.“감히 날 때려? 오늘 넌 이 폐인이랑 함께 끝장날 거야!”중년 여자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고 미친 사자처럼 화를 버럭 내며 고함을 질렀다.하지만 진서준은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쌀쌀한 눈빛으로 여자를 쳐다보며 한 번 더 강조했다.“사과해.”“죽어도 안 할 거야.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지금 당장 사람을 부르러 갈 거니까.”중년 여자는 말을 마치고 돌아서 병실을 나갔다.진서준은 그 여자를 제지하지 않았다. 작은 수간호사가 과연 어떤 엄청난 배경이 있는지 지켜보려고 했다.“진 상경님,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사실 저 여자가 말한 것도 틀린 건 아니에요. 전 죽음을 앞둔 사람이에요...”눈에 서글픈 감정이 넘쳐나는 권해철은 자기 인생을 한탄하며 한숨을 내쉬웠다.여태껏 유명세를 누리며 살아온 자기 인생이 이렇게 비참하게 끝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런 우울한 말 하지 마세요. 오늘 점심 식사 전에 권 마스터님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모습으로 치료해 드릴게요. 그리고 권 마스터님의 끊어진 경맥과 단전도 제가 해결해 드릴 방법을 찾아낼 거예요.”경맥과 단전은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진서준이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수간호사가 오지 않자 진서준은 간호사 스테이션에 가서 나이 많은 간호사 두 명에게 권해철의 옷을 벗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권해철이 노인이란 사실을 알고 두 중년 간호사는 별다른 생각이 없이 권해철의 옷을 벗겨주었다.권해철의 옷이 벗겨진 후, 진서준은 어젯밤에 서씨 가문에서 준비한 고약을 꺼냈다.이 검은색 고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