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달빛이 진서준과 한보영을 비추고 있었다.진서준의 품에 안겨 있는 한보영은 묵묵히 진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한보영은 넋을 잃고 달빛에 비친 진서준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 있었다.진서준이 한보영을 안고 한서강의 앞에 갈 때까지 그녀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한서강은 한보영의 안위가 걱정되어 진서준과 한보영의 야릇한 자세를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그는 심지어 한보영이 진서준과 함께 있기를 원했다.그렇게 되면 한씨 가문은 앞으로 완전히 안심할 수 있었다.“보영아, 괜찮아?”한서강의 말을 듣자 한보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진서준의 품을 떠났다.한보영은 얼굴이 뜨거워졌고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괜찮아요. 방금 저 사람들은 저에게 손을 대지 않았어요.”“그러면 됐어. 잘됐네.”한서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진서준에 의해 한쪽 팔이 잘린 강지환은 바닥에 누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갑자기 한쪽 팔이 잘리자 나머지 사람들은 소름이 끼쳤다.비록 강지환은 무인일지라도 이런 심한 고통은 참을 수가 없었다.푸른 잔디밭은 이미 강지환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오강훈과 나머지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자 등골이 오싹해졌다.‘이 녀석은 괴물이야. 우리가 모두 반응하지 않았을 때 강지환의 한쪽 팔을 잘라 버리다니. 강지환은 인의방에서 65위의 강자인데 말이야.’비록 50위 안에 들지 못했지만 그의 실력은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이제 인질이 없으니 너희는 어떻게 될 것 같아?”손에 천문검을 든 진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 다섯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비록 강지환은 이미 겁에 질려 더 이상 진서준을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바닥 위에서 끊임없이 울부짖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나머지 사람들도 어쩔 줄 몰라 했다.“진 마스터님, 이 일은 우리가 잘못했어요. 우리에게 살길을 준다면 이 큰 은혜는 우리가 나중에 꼭 갚겠어요.”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강훈은 즉시 용서를 빌었다.차라리 지금 잘못을 인정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그래요.
진서준이 걸어오자, 그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방금 그런 말을 했던 이유는 단지 진서준이 그들을 놓아주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들은 떠난 후에 어쩌면 사람을 불러 복수할 생각도 있었는데 바로 진서준을 도와서 일한다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진 마스터님... 우리에게 뭘 시키려는 거죠?”진서준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자 오강훈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보아하니, 오늘 이곳을 떠나기 어려운 것 같네.’“사실 별거 아니야. 보름 뒤에 나랑 강남에 가서 결혼식장에서 신부님을 빼앗아 오면 돼.”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네? 강남에 가서 신부님을 빼앗아 온다고요?”진서준의 말을 들은 그들은 갑자기 멍해졌다.“누구 집안의 신부님을 빼앗아 오려는 거죠?”오강훈이 또 물었다.“강남 김씨 가문이지. 너희들도 들어봤을 거야.”진서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김씨 가문의 이름을 밝혔다.‘헐! 이럴 수가.’다섯 사람은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강지환은 심지어 잘려 나간 팔 때문에 어깨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조차도 잊은 것 같았다.‘김씨 가문의 신부님을 빼앗아 온다고? 미친 거 아니야?’김씨 가문은 강남에서 두 번째로 으뜸가는 큰 가문이었다.그들 다섯 명이 일하고 있는 가문을 전부 합쳐도 김씨 가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진 마스터님... 우리가 잘못 들은 거 맞죠?”한참이 지나서야 오강훈은 정신이 돌아왔다.“잘못 들은 게 아니야. 바로 강남의 김씨 가문이지. 가주는 이름이 김형섭이고.”진서준은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오강훈과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진 마스터님, 우리더러 김씨 가문의 신부님을 납치해 오라는 건 죽으라고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김씨 가문은 강남에서 두 번째로 실력이 강한 가문이죠. 김씨 가문에는 심지어 세 명의 선천 대종사가 있고 게다가 그들 모두가 지의방에 적혀 있는 고수라고요! 우리가 김씨 가문에 가서 신부를 빼앗아 오는 건 정말
강남의 서씨 가문은 가장 실력이 강한 가문이다.그리고 강남의 김씨 가문은 두 번째로 실력이 강한 가문이었다.김씨 가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떨리게 했다.지금 진서준이 빼앗아 오려는 신부는 심지어 이 두 가문의 결혼식장에 있는 신부였다.‘정말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군.’오강훈은 진서준에게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진 마스터님, 저에게 살길을 마련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애도 키워야 해요. 정말 죽고 싶지 않다고요.”동시에 강남의 두 개의 최고 가문을 상대한다는 건 아마도 십급 대종사만이 그럴 용기가 있을 것이다.하지만 십기 대종사라고 해도 동시에 김씨 가문과 서씨 가문에게 시비를 걸 정도로 날뛰지는 않을 것이다.다른 세 사람도 진서준에게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살려달라고 부탁했다.그들을 보자 진서준은 마음이 더욱 불편해졌다.“단지 김씨 가문과 서씨 가문뿐이잖아. 그게 그렇게 무서운 거야? 너희들은 나를 따라오면 돼. 아무 일 없을 거야.”‘아무 일 없다고? 누가 그 말을 믿어? 너도 죽을 수 있다고!’오강훈과 다른 사람들은 절대 진서준의 말을 믿지 않았다.“3초 동안 생각할 시간을 줄게. 지금 꺼지고 보름 뒤에 나와 함께 강남으로 갈 건지, 아니면 오늘 밤 이곳에서 목숨을 잃을 건지 잘 생각해 봐.”진서준은 차갑게 그들을 바라보았다.“진 마스터님, 보름 뒤에 찾아뵙겠습니다.”“전화번호 알려 줘. 내가 가기 전에 미리 알려줄게. 그때 가서 너희들이 오지 않으면 날 탓하지 마.”진서준은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네...”오강훈과 다른 사람 세 명은 강지환을 부축하며 주림원을 떠났다.그들이 떠나자 한씨 가문 사람 세 명이 진서준에게로 다가왔다.“서준 씨, 정말 가서 신부님을 빼앗아 오려는 거예요?”한보영은 근심 어린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면서 물었다.“네. 연아는 제 가장 친한 친구인데 그녀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진서준은 힘껏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서준
한보영은 진서준의 귓가에 엎드린 채 그들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습하고 뜨거운 입김이 진서준의 귓가에 맴돌자 진서준은 깜짝 놀랐다.진서준이 말을 하기도 전에 한보영은 이미 머리를 진서준의 어깨에 비스듬히 기대어 눈을 감고 잠들었다.한보영은 몸의 대부분을 진서준의 몸에 기대고 있었다.진서준과 한보영은 모두 얇은 옷을 입었기에 진서준은 한보영의 날씬한 몸매와 부드러운 살결을 느낄 수 있었다.가장 어이없었던 건 한보영의 몸매는 정말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풍만한 가슴은 차의 흔들림을 따라 진서준의 팔에서 위아래로 파도를 타고 있었다.육체적인 감각 외에 한보영의 몸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뿜어져 나와 진서준을 에워싸고 있었다.이렇게 유혹적인 모습 때문에 진서준은 매우 괴로웠다.하지만 진서준은 혹시나 앞에 앉아 있는 한서강과 한제성이 볼 까봐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잠시 후 한씨 가문에 도착했고 한보영은 이미 잠들었다.1박 2일 동안 눈 한 번 붙이지 못한 한보영은 정말 피곤해 보였다. 그녀는 줄곧 허윤진의 곁을 지키며 허윤진을 돌봤다.진서준은 차마 한보영을 깨우기 싫어서 한제성에게 속삭였다.“제성 씨, 보영 씨가 이미 잠들었으니 제가 안고 방까지 모실게요.”한제성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기쁜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었다.“네. 좋아요.”진서준은 한제성의 표정도 신경 쓰지 않고 한보영을 자신의 품에 눕힌 뒤 곧바로 그녀를 안고 한씨 별장으로 향했다.한제성이 앞에서 진서준에게 길을 안내했고 곧 한보영의 방 문 앞에 도착했다.“서준 씨, 몸 건강을 잘 챙기세요.”한제성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고 바로 돌아서 떠났다.“뭐지? 뜬금없이.”진서준은 한제성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중얼거렸다.진서준은 방문을 열고 한보영을 침대에 내려놓았다.진서준은 한보영의 외투를 벗기고 한보영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떠났을 뿐 전혀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그가 거실에 돌아오자 한제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서준은 밤새 자지 않고 어떻게 김연아를 구할 생각만 했다.다음날 날이 밝기도 전에 진서준은 침대에서 일어났다.“오빠,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거실에 앉아 있던 진서라가 진서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일어서서 다가갔다.“난 매일 일찍 일어나. 그런데 넌 왜 이렇게 빨리 일어난 거야? 요 며칠 동안 제대로 자지도 못했을 텐데. 푹 늦잠이나 잘 거지.”진서준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진서라를 바라보았다.“요 며칠 푹 잘 쉬었어.”진서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아니면 산책하러 갈래?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지.”진서준이 제안했다.“좋아.”진서준과 진서라는 한씨 별장을 나와 주변을 한가롭게 거닐었다.“오빠, 유지수 씨가 날 잡아갈 때 오빠에게 뭐라고 했어?”진서라가 갑자기 물었다.“아니야. 단지 그녀를 위해 세 가지 일을 도와달라고 했을 뿐 다른 말은 안 했어. 왜?”진서준은 고개를 내저으며 진서라를 바라보았다.“혹시 그녀가 너에게 뭐라고 한 거야?”“아니야...”진서라의 눈에는 우울함이 스쳐 지나갔지만 잘 숨겼기 때문에 진서준은 알아차리지 못했다.“서라야, 유지수가 그날에 어떻게 널 잡아갔는지 나한테 알려 줘.”어제 진서준은 미처 물어보지 못했는데 지금 산책하고 있으니 마침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그날 집에서 엄마에게 밥상을 차려드리고 있는데 유지수 씨로부터 오빠가 위험하다며 빨리 오라는 전화를 받았어. 그 당시 오빠가 걱정돼서 전화까지 했는데 아무도 안 받았어.”그때 진서준은 보운산에 있었기 때문에 신호가 안 터졌기에 당연히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오빠가 위험할까 봐 유지수 씨가 말한 곳으로 갔더니 그녀가 보낸 사람에게 그대로 끌려갔어. 그 후에 처음 며칠 동안에는 별장에서 지내다가 나중에는 그 산으로 가게 된 거야.”진서라는 요 며칠 동안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진서라에게 말했다.“서라야, 넌 유지수의 신분을 알고 있어?”“뭐?”진서라는 깜짝 놀랐다.“그녀는 지금 부모님이 낳
사랑하는 사람이 생명의 위험에 직면했을 때 그를 위해 용감하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심지어 수십 년을 함께 보낸 노부부도 반드시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깜짝 놀랐어.”진서준은 감개무량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은 그날 밤에 일어난 일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특히 제마 법왕이라는 이놈은 반드시 직접 죽여서 허윤진을 위해 복수할 것이다.하지만 뜻밖으로 그날 밤 이후로 제마 법왕은 마치 세상에서 증발해 버린 것처럼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진서준은 제마 법왕이 다음날이 아니면 그날 밤에 다시 습격하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까지도 제마 법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진서준은 제마 법왕이 자신을 이렇게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사실 제마 법왕은 확실히 그날 한밤중에 진서준을 습격하려고 했다.하지만 전화 한 통 때문에 제마 법왕은 중부를 떠나 서남쪽으로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그는 전화에서 국안부의 한 호국 장군이 서남으로 갔다고 들었다. 아마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호국 장군은 천의방에 들 수 있는 고수였기에 반드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상대해야 했다.제마 법왕이 먼저 돌아간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는 호국 장군이 서남으로 간 건 자기 뒷길을 막을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진서준은 진서라를 데리고 병실로 왔고 허윤진은 지금 이미 정상적으로 일어나 머리맡에 기댈 수 있었다.“윤진 씨, 회복이 정말 빠르군요.”진서준은 깜짝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물론이죠. 전 그럴 실력이 있죠!”허윤진은 고개를 들고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사실 허윤진은 자신도 깜짝 놀랐다.그녀도 자신이 이렇게 빨리 회복될 줄은 몰랐다.지금까지도 허윤진은 자기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을 생생히 기억했다. 하지만 3일도 되지 않아 구멍은 사라졌고 몸도 거의 회복되었다.별일 없으면 내일 바로 퇴원할 수 있었다.허윤진이 예전의 활력을
허사연은 조희선이 혼자 살면 위험할까봐 걱정되어서 계속 허씨 집안의 별장에 머물게 했다!진서준과 진서라는 집에 가지 않고 곧장 허씨 집안로 왔다.“어머니!”“엄마!”“서라야, 서준아!”가족들이 다시 만나 서로를 꼭 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옆에 서 있던 허윤진도 눈시울이 붉어져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허윤진과 허사연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안 계셨다.그래서 허사연은 언니이자 엄마 역할을 하며 허윤진을 돌봤다!이 순간, 허윤진은 전에 내렸던 결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허사연이 자신에게 그렇게 잘해줬는데, 만약 그런 일을 저지른다면 허사연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아닐까?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허윤진도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과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허윤진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진서준 가족 셋도 서로 떨어졌다.“엄마, 정말 다리가 나으셨네요!”진서라가 이제야 조희선이 일어서 있는 것을 알아챘다!“응, 이제 다 나았어. 지난번에 서준이가 와서 엄마 다리를 치료해줬단다!”조희선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사연 언니는요?”진서준이 허사연이 집에 없는 것을 보고 물었다.“사연이는 아침 일찍 회사에 갔어.”조희선이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사연이 그 아이가 벌써 며칠째 아주 일찍 회사에 가고 있어. 돈 벌려고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진서준은 이 말을 듣고 즉시 말했다. “제가 지금 가서 사연 씨를 데려올게요. 좀 쉬게 해야겠어요!”지금은 중부 3성의 명문가들이 모두 진서준을 우러러보고 있었다.매달 허씨 집안과 한씨 집안에서 그들의 가문 수익 중 일부를 진서준에게 보내고 있다!진서준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매달 수천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그러니 허사연은 돈을 위해 목숨 걸고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진서준은 전에 조성우가 선물한 고급 외제차를 타고 허사연의 회사 앞에 도착했다.회사에 들어간 진서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사장실로 올라갔다!사무실 안에서.허사
장도윤이 냉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허사연의 예쁜 얼굴을 만지려 했다.쾅...잠겨 있던 문이 누군가에 의해 한 발에 걷어차여 열렸다.거대한 소음에 장도윤은 크게 놀라 황급히 고개를 돌려 문을 찬 사람을 바라보았다!“이 자식, 죽고 싶어?”오는 사람이 젊은 남자인 것을 보고 장도윤은 더욱 분노했다.절망에 빠져 있던 허사연은 갑자기 무척 흥분된 표정을 지었다.“서준 씨!”방금 장도윤이 했던 오만한 말들을 진서준은 모두 귀에 담아두었다!진서준은 장도윤을 노려보며 눈에서 차가운 광채가 번쩍였고, 방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감히 자신의 여자를 협박하다니, 정말 죽고 싶은 모양이군!“오? 이 사람이 네 남자친구구나!”허사연의 흥분된 모습을 보고 장도윤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흥.” 장도윤이 차갑게 비웃었다.“때마침 잘 왔군. 지금 내가 명령하겠다. 당장 허사연과 헤어지고 방에서 나가.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지.”강남에서 횡포를 부리던 장도윤은 자신에게 큰 화가 미칠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진서준은 말없이 장도윤을 향해 걸어갔다.“내 말 못 들었어? 당장 꺼지라고!”장도윤은 진서준이 말을 듣지 않자 얼굴색이 순식간에 변했다.진서준이 장도윤 앞에 다가왔을 때, 장도윤은 갑자기 탁자 위의 컵을 집어 들어 진서준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팡...유리가 진서준과 20센티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갑자기 산산조각 났고, 바닥에 흩어졌다!“악--!”장도윤의 손바닥이 유리 파편에 찔려 관통되었다!선혈이 시냇물처럼 장도윤의 손에서 떨어져 내렸고, 피 냄새가 곧 방 안을 가득 채웠다!“내 여자를 협박하다니, 목숨이 몇 개나 되는 거야?”진서준은 장도윤의 목을 움켜쥐고 차갑게 그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은 칼날 같았다!장도윤은 너무 놀라 손바닥의 고통조차 잊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는 진서준이 정말로 자신에게 손을 댈 거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그는 장씨 집안의 도련님이자 가문의 큰아들이었다!
“김평안 씨는 내가 엄청난 공을 들여서 모셔 온 분입니다.”유기명이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진서준을 자랑하기 시작했다.“겉보기엔 40대 초반처럼 보이지만, 그 실력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어마어마하다고? 그럼 나랑 한번 붙어볼래?”은청준이 비웃으며 말했다.은청준은 스물여섯 살에 이미 사급 대종사가 되었는데 반면 이 경호원은 체내에 강기가 거의 없었다.아무래도 겨우 종사의 문턱을 밟은 무인인 것 같은데 이런 쓰레기가 세속에서는 강자로 불리는 건가?유기명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은청준 씨와는 비교할 수 없죠. 하지만 김평안 씨 검술은 누구나 다 알아주는 실력입니다.”“마침 나도 검술이 특기인데, 한 번 겨뤄볼까?”은청준이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청준아,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무도는 남과 다투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이장로가 차분하게 말하자 은청준은 곧바로 태도를 고쳐잡고 공손하게 말했다.“이장로님, 저는 그냥 세속 무인과 가볍게 한 수 겨뤄볼 생각이었습니다.”이장로는 은청준을 흘긋 보았으나 그의 속마음을 굳이 들춰내지는 않았다.은청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같은 종문 사람이니 체면은 세워줘야 했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진서준이 다시 강조하자 은청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쏘아봤다.이 녀석 왜 이렇게 말이 많지? 혹시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가?“은범은 내 사촌 동생이야. 네가 그 못난 동생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은청준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신농산에서 만난 적이 있어.”“뭐라고? 걔가 신농산에 갔다고?”이 말에 은청준은 흥미가 동했다.“그 녀석 실력으로는 신농산 테스트를 통과하기 힘들 텐데?”은청준은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은범이 어떤 인물인지 은청준은 잘 알고 있었다.애매한 실력과 어중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은범이 은씨 가문에서 빛을 볼 일은 없었다.은청준과 은범의 격차는 눈에 보일 정도로 컸다.“그 녀석은 테
진서준은 아버지 진요한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이렇게 닮은 꼴로 곤륜 사람들을 만나면 곤륜 장로가 진서준을 알아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진서준은 곤륜에 관해 잘 알지 못했기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인피면구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목소리까지 완전히 변해버린 진서준을 보고 유정은 깜짝 놀랐다.하지만 진서준이 자기를 해칠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진서준이 하는 말이라면 당연히 따라야 했다.“알겠어요, 진서준 오빠.”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름 잘못 불렀어. 지금 난 김평안이야.”진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강조했다.“그냥 김평안이라고 부르면 돼.”“알았어요.”그렇게 진서준은 유정과 함께 거실로 향했다.인피면구를 쓴 진서준을 본 유기명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지만 진서준이 슬쩍 보낸 눈짓을 보고 유기명은 즉시 이 사람이 진서준이란 걸 깨달았다.“유정아, 이리 와 앉아. 네게 소개할 사람이 있어.”유기명이 유정을 옆에 앉히며 말했다.이때, 곤륜의 이장로가 진서준을 흘끗 보더니 별다른 반응 없이 바로 유정에게 시선을 돌렸다.“가주님, 따님 건강이 막 회복된 것 같은데, 맞나요?”이장로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네? 이장로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유기명은 깜짝 놀랐다.유기명은 아직 딸의 병에 관해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이장로가 그냥 보는 것만으로 큰 병을 앓았다는 걸 눈치챘다.이건 거의 신의 영역 아닌가?“따님께서는 겉보기에 건강해 보이지만 눈에 피곤한 기운이 남아 있고 걸음걸이도 미세하게 불안정합니다.”이장로가 천천히 해명했다.“역시 곤륜 장로님이십니다.”유기명은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제 딸은 최근 큰 병에서 막 회복된 참입니다.”“따님을 치료한 의사는 보통 인물이 아닐 것 같네요.”이장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큰 병인데도 이 정도로 빠르게 완치하다니, 의술이 보통이 아닐 텐데... 혹시 성약당 장로가 아닙니까?”유기명은 순간 멈칫하더니 곁눈질로 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젓는 것을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도 겨우 서른을 갓 넘긴 정도였다.“가주님, 이번에 찾아온 건 부탁할 일이 따로 있어서입니다.”이장로가 용건을 말하자 유기명이 시원하게 대답했다.“말씀만 하십시오. 우리 유씨 가문은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곤륜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다면 그건 곧 곤륜이 유씨 가문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강 종문 중 하나였다.곤륜이 유씨 가문에 빚을 진다면 훗날 유씨 가문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우리 종주님 따님도 이번에 곤륜에서 내려왔습니다.”이장로가 말문을 열었다.“네? 조슬기 아가씨도 왔습니까? 근데 아가씨는 어디에...”유기명이 멈칫하더니 이장로가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단번에 깨달았다.“어제 하산할 때 슬기와 경호원 두 사람이 따로 움직였고 밤에 저희와 다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군요. 나중에 수소문해 봤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가주님께서 슬기를 찾아주신다면 이 늙은 몸이 신세를 지는 셈 치겠습니다.”이장로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이장로님, 과한 말씀입니다. 제가 즉시 서남 지역 전체에 조슬기 아가씨를 찾으라고 명령하겠습니다.”유기명은 망설일 틈도 없이 즉시 지시를 내렸다.서남에서 유씨 가문은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명령이 내려가자 서남의 크고 작은 도시, 심지어 작은 마을까지도 조슬기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모두가 조슬기를 찾기 위해 분주한 사이, 진서준이 유씨 가문으로 돌아왔다.“오빠!”진서준을 보자마자 유정이 반갑게 소리쳤다.“유정아, 몸은 좀 어때?”진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많이 좋아졌어요.”유정은 대답하며 진서준을 위아래로 살폈고 다행히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걸 보고서야 안심했다.혹시라도 진서준이 자기를 위해 묘강에 가서 복수라도 했던 게 아닌지 걱정했던 것이다.진서준이 앞으로 다가가 유정의 맥을 짚었다.“확실히 거의 다 나았네. 이틀만 더 쉬면 원래 상태로 돌
“가주님! 대문 앞에 중요한 손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유씨 가문의 집사가 황급히 유기명을 찾아 소리쳤다.“중요한 손님이라고?”유기명이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서남 지역에서 유씨 가문을 찾아 올 만한 중요한 손님이라면 꽤 오랜만이었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씨 가문에서 중요한 손님으로 인정할 만한 인물 자체가 거의 없었다.설령 그것이 경성의 4대 가문이라고 해도 가주가 직접 방문해야만 중요한 손님이라고 할 수 있었다.“누가 왔어?”유기명이 물었다.“곤륜의 이장로입니다.”그 말을 듣자마자 유기명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뭘 꾸물거리고 있어? 어서 안으로 모셔 와야지!”유기명은 집사를 따라 급히 장원 입구로 향했다.그곳에는 이미 열댓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그들은 모두 흰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사극에서 튀어나온 듯한 복장이었고 등에는 검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풍기는 기운도 비범했다.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느 극단에서 뛰쳐나온 배우들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다.“이장로님, 이 유씨 가문이란 곳,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어떻게 우리를 대문 앞에서 기다리게 할 수 있습니까?”무리의 맨 앞에 선 잘생긴 청년이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다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우리 곤륜이 오랫동안 여기를 찾지 않은 건 맞지만 이런 대우는 너무한 거 아닙니까? 우리를 전혀 존중하지 않잖아요.”그들의 표정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이전에도 곤륜산에서 내려와 세속의 여러 가문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그들은 어디를 가든 귀빈처럼 모시며 극진한 대우를 받았었다.하지만 유씨 가문이 이들을 이렇게 문 앞에 세워두고 있다니, 그 격차가 너무 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다 떠들었으면 이제 조용히 해.”그 순간, 백발의 이장로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이장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순간적으로 모든 이가 입을 다물었다.“종주님의 따님이 사라졌는데 너희는 지금 대접 타령이나 하고 있어? 이번에도 슬기를 못
진서라는 재빨리 움직여 유정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고마워, 서라야.”유정은 물컵을 받아 들고 천천히 마셨다.“몸은 어때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진서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이제 괜찮아.”유정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참 다행이네요.”진서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진서준 오빠는 어디 있어? 왜 안 보이지?”유정이 문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유정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진서준이었다.진서라는 급히 둘러대기 시작했다.“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어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나갔다고? 혹시 묘강으로 간 건 아니겠지?”유정도 바보는 아닌지라 진서라의 표정을 보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다.“아, 아니에요. 묘강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우리 오빠도 그렇게 무모하진 않아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서라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초조했다.벌써 하루가 지나도록 진서준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었다.점심때 국제 뉴스를 본 진서라는 배논국의 묘강 지역에서 큰 소란이 있어 배논국이 결국 묘강 지역을 접수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하지만 진서준의 소식은 단 한 줄도 없었다.그러니 자연스레 진서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유기명이 방으로 들어왔다.딸이 깨어난 걸 보자 유기명은 눈물을 글썽이며 격동한 말투로 말했다.“유정아, 드디어 깨어났구나!”“죄송해요, 아버지. 걱정 끼쳐드려서...”유정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절반이 희끗희끗해졌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바보 같은 소리 마. 사과할 사람은 나야.”유기명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때 내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그 자식을 죽였더라면 네가 중독될 일도 없었을 거야.”“이미 지난 일이에요. 이제 그 얘긴 그만하세요.”진서라가 서둘러 다독였다.“그래,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이야. 더 이상 골치
조슬기의 피부 온도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지만 몸속은 한기로 가득했다.조슬기의 오장육부는 이미 일반인의 체온을 한창 밑돌고 있었다.옥패가 어느 정도 억제하는 기능이 있긴 했지만 효과가 너무 미미했다.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조슬기 몸속에 쌓인 한기가 완전히 폭발할 것이다.그 순간이 오면, 조슬기의 목숨도 위험해질 것이다.“이봐, 헛소리하지 마. 너야말로 정신 상태가 안 좋은 거 아냐?”신수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고 심지어 조슬기 본인도 몰랐다.조슬기가 알면 괜히 걱정할까 봐 일부러 숨겨왔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이 녀석이 대놓고 말해버리다니,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은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사실을 알아챈 신수란이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누구도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다.“란 언니, 오빠를 탓하지 마. 사실 오빠가 말 안 해도 난 대충 짐작하고 있었어.”조슬기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기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건 결국 자신이었다.진서준이 말한 대로 조슬기의 상태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사실 진서준이 어느 정도 에둘러 말해서 그렇지 지금의 상태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신수란은 진서준을 매섭게 노려본 뒤, 급히 조슬기를 달랬다.“아가씨,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종주님과 장로님들이 반드시 치료법을 찾으실 거예요. 게다가 전 대한민국에 용존이라는 천재 소년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천재는 실력도 강하지만 의술 또한 모든 사람을 압도한다고 해요. 그런 인재라면 분명 아가씨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진서준은 듣자마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용존이라니, 그건 진서준이 아닌가?“뭐야, 그 표정은?”신수란이 진서준의 표정을 눈치채고 불쾌한 얼굴을 했다.“아, 별거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너희는 용존에 대해 어디서 들었어?”“우릴 뭐로 보는 거야? 우리가 원시인인 줄 알아? 우리도 휴대폰 쓸 줄 알아.”신수란이 불쾌한 표정으로 받아치
진서준은 이 주제에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이 녀석은 알아서 수습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고마움을 표하고는 신수란을 바라봤다.신수란은 속에 쌓인 화를 주체하지 못해 단검을 뽑아 장강훈의 목에 겨누며 말했다.“말해! 누가 너희를 보낸 거야? 그리고 우리가 미리 산에서 내려온 걸 어떻게 알았어?”“돈 받은 만큼 일할 뿐이야. 우린 돈만 받으면 그만이고,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는 모른다니까.”장강훈은 이를 악물며 사실을 털어놨다.“말 안 하겠다 이거지?”신수란은 냉소를 지으며 더 이상 긴말하지 않고 바로 장강훈의 다리 힘줄을 단칼에 끊어버렸다.“아악!”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장강훈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정말 몰라! 나도 온라인에서 의뢰를 받았을 뿐, 누군지는 몰라.”“이래도 고집을 부려? 말 안 하면 내가 널 고자로 만들어버릴 줄 알아.”말을 마치며 신수란은 단검을 장강훈의 아래쪽에 갖다 댔다.그러자 장강훈은 순간 몸을 덜덜 떨며 깜짝 놀라 눈물까지 찔끔 날 뻔했다.“말할게, 말할게!”머리가 잘리거나 피가 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그 부위만큼은 절대 잃을 수 없었다.“우리에게 조 아가씨를 납치하라고 시킨 사람은...”그 순간, 장강훈은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검은 피를 뿜어내고 그대로 푹 쓰러졌다.“죽은 척하지 마!”신수란은 앞으로 다가가 장강훈을 툭 밀었다.하지만 장강훈은 이미 숨통이 끊어져 완전히 사망한 상태였다.“진짜 죽었네.”신수란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했다.분명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죽은 걸까?그 광경을 본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묘왕은 죽었지만 묘강의 사수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진서준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장강훈의 머리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그 모습은 마치 머릿속에 뭔가가 있는 듯했다.신수란이 앞으로 다가가 확인하려는 순간, 장강훈의 귀에서 새까만 지네들이 한 마리씩 기어 나오기
갑자기 쓰러진 장강훈을 바라보며 현장 사람들은 전부 멍해졌다.이게 무슨 상황이지?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저 건방지고 거만한 청년이 장강훈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마지막엔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그런데 저 극악무도한 악당 장강훈이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다니,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모두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얼이 빠져 있었다.심지어 신수란조차도 미간을 찌푸리며 이 장면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네놈이 감히 암기로 날 공격해?”장강훈은 고통에 찬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봤다.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진서준을 산 채로 잡아먹을 기세였다.“내가 말했지? 넌 나와 겨룰 자격이 없다고.”진서준은 여전히 평온하게 말했다.“암기라니? 너도 저놈들처럼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구나.”신수란이 콧방귀를 끼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신수란 복부의 상처는 바로 암기의 공격으로 다친 것이었다.그리고 방금도 장강훈이 신수란을 비겁하게 기습하려 했다.그래서 신수란은 이런 비열한 수법을 쓰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느꼈다.진서준은 신수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고 대신 속으로 이 여자가 멍청하긴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이 두 여자를 구하려고 선뜻 나섰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같은 인간쓰레기 취급을 당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어서 저놈을 해치워! 암기든 뭐든 다 부숴버려! 내 무기와 똑같은 걸 쓸 자격이 있기나 해?”장강훈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장강훈은 진서준이 자기와 같은 종류의 암기를 사용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그러나 진서준이 사용한 건 단순한 은침 두 개였을 뿐이고 다만 그것이 일반 은침보다 좀 더 단단했을 뿐이었다.남아있던 부하들은 우르르 진서준에게 몰려들었다.개미도 많이 모이면 코끼리를 잡는다고 했다.하지만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리 개미가 많아도 결국 희생될 뿐이었다.진서준이 발을 내딛자마자 서 있던 바닥이 산산조각이 났다.이어지는 진서준의 움직임은 유령처럼 사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