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님, 조심하세요!”왕우림은 서둘러 외쳤다.“전 괜찮으니까 우리 동생 좀 지켜주세요!”진서준이 말했다.“네!”왕우림은 황급히 진서라의 앞으로 달려가서 그녀를 지켰다.안개가 아주 자욱해서 50cm 밖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진서준이 영기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반경 3m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다.주위가 아주 고요해졌을 때 갑자기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가 안개 속에서 들려왔다.그리고 몇 초 뒤 진서준의 앞에 있던 흰색 안개가 넘실대기 시작했다. 무언가 그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았다.진서준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체내의 영기를 조금씩 사용했다.다음 순간,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진서준의 앞에 나타나서 20cm는 될 법한 치아를 드러내며 진서준을 덮쳤다.“같잖은 수작질이네.”진서준은 경멸에 찬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의 멸시를 느낀 건지 호랑이는 크게 울부짖었다.소리가 아주 쩌렁쩌렁해서 근처의 흰 안개가 흩어질 정도였다.“파괴!”자줏빛 번개가 진서준의 손바닥에서 쏘아져서 호랑이를 공격했다.호랑이는 번개에 공격당하는 순간 몸이 갈기갈기 찢기더니 허공에서 사라졌다.몸을 숨기고 있던 원재경은 그 광경에 동공이 떨렸다.“이 자식, 꽤 실력이 있네. 하지만 네가 아무리 실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오늘은 여기서 죽어야 해!”말을 마치자마자 원재경은 체내의 진기를 모두 발산했다.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총 8마리의 맹수가 원재경의 앞에 나타났다.곧 8명의 맹수는 진서준을 노리고 그를 향해 돌진했다.순간 땅이 은근히 흔들렸다.“당신만 소환할 줄 알아?”장청의 힘과 혈기가 진서준의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저번에 탁현수와 싸울 때 푸른색과 붉은색의 거대한 용이 진서준의 앞에 나타났었다.용의 울부짖음과 함께 사원을 뒤덮었던 흰 안개가 순식간에 사라졌다.“크릉!”귀청을 찢는 듯한 용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진서준을 향해 달려들던 8마리의 맹수는 허공에 떠 있는 용을 보더니 뒷걸음질 쳤다. 맹수들은 겁에 질린 듯 보였다.“용
원재경의 말을 들은 진서준은 당황했다.인의방 1위면 실력이 완전히 다른 차원일 것이다.전에 제마 법왕은 실력으로 진서준을 압도했었다. 그런 그조차도 겨우 인의방 3위였고 1위와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만약 정말로 원재경을 죽인다면 원재경의 아버지가 복수하러 찾아올지도 몰랐다.그렇게 되면 국안부조차 진서준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자식을 죽인 원한은 그 어떤 원한보다도 컸기 때문이다.진서준이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자 원재경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점점 더 기고만장해졌다.‘난 널 이길 수 없지만 내게는 아버지가 있어!’“이 자식, 지금 당장 비켜.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아버지에게 이를 줄 알아!”원재경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감히 인의방 1위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지의방에서 거꾸로 10위 안에 드는 사람들도 감히 원재경의 아버지를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소문에 따르면 원재경의 아버지가 지의방에 들지 않은 이유는 그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일 때문에 원재경의 아버지는 직접 국안부에 찾아가기까지 했었다.그래서 많은 무인들이 원재경의 아버지를 인의방의 수문장이라고 불렀다.“내가 정말로 당신을 어쩌지 못할 것 같아?”진서준은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원재경을 바라보았다.원재경은 그의 눈빛에 겁을 먹고 연달아 다섯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는 당장이라도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이 순간, 그는 얼음 동굴에 갇힌 듯 몸이 서늘했고,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진서준은 마치 눈동자에 칼날을 숨겨 놓고 있는 듯했고, 그 칼날이 그의 목을 겨냥하고 있는 것 같았다.“지금 당장 꺼져.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 줄 알아.”진서준은 차갑게 말했다.원재경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조금 전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된 것처럼 말이다.‘저놈 눈빛에 겁을 먹은 건가?’원재경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셋!”진서준은 이미 카운트를 시작했다.원재경은 정신을 차린 뒤 화를 냈다.“날 위협하려고? 그럴 실력
지금의 진서준은 국안부의 상경이었다.만약 정말 생명이 위험하다면 호국장군의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비록 소문이 나면 창피하지만 적어도 목숨을 건질 수는 있었다.살아 있는 한 기회는 있는 법이다. 체면을 잃는다고 해도 다시 찾아오면 그만이다.하지만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각주님, 제가 가서 죽었는지 보고 올게요.”왕우림이 말했다.“볼 필요가 없어요. 무조건 아직 살아 있을 거예요. 방금 한방에는 단지 그의 오른팔을 부러뜨렸을 뿐이죠.”진서준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구급차를 불러줘요. 서라를 데리고 먼저 갈게요.”“네!”왕우림은 다급히 휴대 전화를 꺼내 구급차를 불렀다.“서라야, 가자!”진서라는 즉시 진서준을 따라 산 아래로 향해 걸어갔다.산에서 내려올 때 진서준이 물었다.“방금 많이 놀랐지?”“아니야.”진서라가 고개를 내저었다.“서라야, 내가 어떻게 이런 강한 힘을 얻었는지 궁금하지 않아?”진서준이 물었다.아까부터 지금까지 진서라는 조금 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줄곧 평온한 표정이었다.진서준은 심지어 진서라에게 어떻게 말할지 이미 다 생각했다.예전에 진서준은 진서라에게 이런 장면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좀 궁금해. 하지만 오빠가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도 이유가 있겠지.”진서라가 얌전한 표정으로 말했다.진서준은 진서라의 말에 감동했고 손을 내밀어 진서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너 같은 동생이 있다는 게 나의 행운이야.”“그건 나도 그래.”진서라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참. 엄마는 어떻게 되셨어?”진서라는 갑자기 조희선이 생각났다.지금 진서준이 돌아왔으니 아마 조희선의 다리는 이미 나았을지도 몰랐다.“어머니는 이미 일어나셨어. 며칠 뒤에 어머니를 뵈러 집으로 가자.”지금 바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허윤진이 아직도 병상에 누워 있기 때문이었다.진서준은 허윤진의 건강에 문제가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진서라를 데리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알겠어.”진서라는 여전히
진서준은 한제성이 진서라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한제성은 인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전에 자기 누나를 구하기 위해 보운산에 직접 사람을 이끌고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영약을 찾으러 갔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다.한제성을 잘 다듬어 주기만 한다면 앞으로 반드시 독보적인 큰 인물이 될 것이다.한제성의 유일한 단점은 바로 실력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진서준이 충분히 그를 도와줄 수 있었다.앞으로 한제성이 진서라의 곁을 지키더라도 진서준은 안심할 수 있었다.“서준 씨가 산 위에서 진서라 씨를 구한 거예요?”한제성은 운전하며 가끔 룸미러 쪽으로 눈을 흘기며 진서라를 훔쳐보았다.“그렇죠. 서라가 요 며칠은 산에서 보냈고 산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어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그렇군요. 진서라 씨... 그 나쁜 자식들이 서라 씨를 괴롭히지 않았어요?”한제성은 용기를 내어 진서라를 바라보면서 물었다.“아니요. 누구도 저를 괴롭히지 않았어요.”진서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저를 편하게 불러 주세요. 한제성 씨와 제 오빠는 친구 사이니, 나중에 우리도 친구가 될 거예요.”한제성은 그 말을 듣고 너무 흥분해서 기절할 뻔했고 핸들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끼익!차가 왼쪽으로 심하게 휘어져 하나터면 옆으로 넘어질 뻔했다.“운전 열심히 하고 딴생각하지 마세요.”진서준은 한제성의 머리를 가볍게 내리쳤다.“네. 열심히 운전할게요.”한제성은 그제야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운전에만 집중했다.한씨 저택에 거의 도착했을 때야 한제성은 긴장이 풀렸다.“서준 씨, 서라랑 언제 돌아갈 계획이에요?”“며칠 후에 윤진 씨의 몸 상태가 좋아지면 돌아가려고요.”진서준이 말했다.진서준의 집은 서울시에 있었고 조희선도 진서준과 진서라를 기다리고 있었다.허윤진이 아니라면 진서준은 오늘 밤에 바로 진서라를 데리고 집에 갔을 것이다.며칠 후면 진서준이 떠난다는 말에 한제성의 얼굴에는 서
“아빠, 서준 씨는 또 어디로 가는 거죠?”한제성은 진서준이 차를 몰고 떠나는 것을 보고 서둘러 물었다.“진 마스터는 병원에 있는 허윤진 씨를 보러 갔어. 진 마스터의 여동생이 우리 집에 잠시 묵고 있으니 넌 진서라 씨를 잘 대접해야 해. 함부로 했다가는 내가 네 다리를 부러뜨릴 것이야.”한서강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알겠어요. 명심할게요. 절대로 서라 씨를 홀대하지 않을게요.”한제성은 감격에 찬 어조로 말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진서준은 차를 몰고 병원에 도착했다.“윤진 씨, 윤진 씨!”진서준은 거의 문을 부술 정도로 열고 병실로 들어갔다.“진서준...”허윤진은 진서준이 나타나자 앵두 같은 입술을 조금 벌리고 진서준의 이름을 불렀다.하지만 허윤진은 몸이 너무 허약해서 목소리가 낮은 나머지 옆에 서 있는 한보영도 허윤진의 말을 미처 듣지 못했다.진서준은 빠른 걸음으로 허윤진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꼭 잡고 맥을 짚었다.허윤진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고 정신도 흐리멍덩해 보였지만 목숨에는 이미 지장이 없는 것 같았다.진서준은 허윤진의 체내에 약간의 영기를 주입한 후 눈시울을 붉혔다.“바보 같은 윤진 씨, 왜 그날에 갑자기 달려들었던 거예요. 그 사람은 절 죽이지 못했을 텐데 말이죠. 만약 은영과가 없었다면 윤진 씨는 어쩌면 정말... 윤진 씨가 죽으면 제가 무슨 체면으로 사연 씨와 아버님을 볼 수 있겠어요? 저도 무슨 용기로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겠어요?”진서준은 손을 뻗어 허윤진의 창백한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매번 허윤진의 창백한 모습을 볼 때마다 진서준의 마음은 칼에 베인 듯 아팠다.“저도... 형부가... 죽은 꼴을 보지 못해요. 제가 죽으면... 형부는 언니가 있겠지만... 형부가 죽으면... 나와 언니는... 살 수가 없어요...”허윤진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고 진서준은 매우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지만 대략적인 것만 들을 수 있었다.“바보 같은 계집애!”진서준의 눈동자에 눈물이 핑 돌았다.처음에 허
허윤진이 의식을 잃었을 때부터 깨어날 때까지 그동안 그녀는 화장실을 가본 적이 없었다.깨어난 후 진서준을 보자 허윤진은 온몸에 긴장감이 풀렸다.그 결과는 공교롭게도 오줌을 누고 싶은 느낌이 들었지만 입을 열기가 부끄러웠다.“가서 간호사를 부를게요.”진서준은 몸을 돌려서 간호사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지금 허윤진의 몸 상태로는 절대 혼자서 화장실에 갈 수 없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안고 있어야 했다.진서준은 남자였기에 당연히 허윤진을 안고 화장실까지 갈 수 없었다.“안 돼요...”허윤진은 진서준의 손을 잡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저는... 다른 사람이 보는 게... 싫어요.”그 말을 들은 진서준은 깜짝 놀라서 멍해졌다.“설마 저보고 도와달라는 건 아니겠죠?”허윤진은 머리를 이불 속으로 움츠린 채 한참이 지나서야 한 마디를 내뱉었다.“네...”진서준은 어이가 없었다.그들이 만약 연인 사이라면 그럴 수는 있었다.한 걸음 더 물러서서 친한 친구 사이라고 해도 진서준은 도와줄 수 있었다.하지만 문제는 허윤진은 허사연의 친동생이었고 앞으로 진서준의 처제였다.이런 사이라면 상황은 정말 많이 달랐다.“빨리요... 못 참겠어요...”허윤진은 고개를 내밀자 빨갛게 변한 예쁜 얼굴이 보였다.진서준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 허윤진을 안아 올렸다.“제가 화장실까지 안고 갈 테니 들어가서는 혼자 알아서 하세요.”“그런데... 제가 서 있을 수가 없는데...”“설마 아기처럼 안고 있으라는 건 아니겠죠?”진서준은 멍해졌다.그 동작은 정말 너무 수치스러웠다.허윤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은 빨개진 나머지 귀밑까지 빨갛게 되었다.이건 분명히 허윤진도 그 동작을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였다.‘윤진 씨는 내 처제일 뿐이야. 내 처제라고...’진서준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허윤진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바지도 벗겨 드려요?”진서준이 물었다.“네...”허윤진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서준은 한 손으로 허윤진을 안고 한 손
“네...”허윤진은 고개를 끄덕이었고 곧 붉어진 얼굴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진서준은 침대 머리를 허윤진이 침대에 기대어 앉을 수 있게끔 높게 조절했다.허윤진이 몸을 좀 일으키자 진서준은 작은 숟가락을 들고 허윤진에게 음식을 먹여 주기 시작했다.입쌀 죽 외에 삶은 계란과 장아찌가 있었다.“뜨거워요?”진서준이 죽을 한 입 먹여주면서 물었다.“조금요.”“그러면 제가 식혀드리죠.”진서준은 먼저 숟가락의 죽을 불어서 식힌 다음 허윤진에게 먹였다.허윤진이 다 먹고 난 후에 진서준은 다시 침대 높이를 조절하고 혼자 밥을 먹기 시작했다.“형부, 제가... 언제쯤이면 완전히 회복될 수 있죠?”“완전히 회복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모레쯤이면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을 거예요.”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게 빨리요?”허윤진의 눈에는 약간의 서운함이 스쳤다.혀윤진은 만약 자기가 줄곧 병상에 누워있는다면 진서준은 매일 자신에게 음식을 먹여 주겠다고 생각했다.“그래요. 윤진 씨는 은영과를 복용했기 때문에 체질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르죠. 윤진 씨의 상처가 완전히 나으면 제가 축기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게요. 잘 연습하면 나중에 윤진 씨도 저처럼 강해질 수 있죠.”진서준이 말했다.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은 진서준에게 많은 축기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진서준은 그중에서 장청결을 선택했고 다른 공법들은 머릿속에 미리 기억해 두었다.지금이 바로 다른 공법을 사용할 때가 된 것이다.“정말이에요? 그러면 제가... 형부를 지켜드릴 수도 있겠네요...”허윤진의 눈에는 빛이 반짝거렸다.허윤진은 항상 진서준의 보호만 받고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반대로 진서준을 지켜주고 싶었다.“물론 정말이죠. 제가 어떻게 윤진 씨를 속일 수 있겠어요.”진서준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방금 말한... 은영과는 형부에게 있어서 소중한 물건이 아닌가요?”뭔가 짐작한 허윤진이 갑자기 물었다.“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윤진 씨 목숨보
“김씨 가문!”진서준의 눈에는 살의가 가득했다.예전에 배수정이 김연가가 김씨 가문에 끌려갔다고 말했을 때부터 진서준은 가서 그녀를 구해줄 생각이 있었다.다만 그때는 진서라를 구해야 했기에 정말 시간이 없었다.지금은 진서라를 이미 구해냈으니 진서준도 김연아를 찾아서 구해낼 시간이 생겼다.“서준 씨, 왜요? 무슨 일이 있어요?”허윤진은 진서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 때문에 깜짝 놀라 얼른 물었다.“아니에요. 빨리 푹 쉬세요. 일단 먼저 가볼게요.”진서준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똑똑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바보는 아니라고요. 날 속이지 말고 빨리 말해요.”허윤진은 입을 삐죽 내밀며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진서준은 껄껄 웃으며 얼른 화제를 돌렸다.“윤진 씨가 지금 말도 똑바로 하는 걸 봐서는 몸 상태가 많이 나았는가 봐요. 이럴 줄 알았다면 아까 좀 더 기다렸다가 화장실로 데리고 갔어야 했는데...”진서준이 또 방금 전의 일을 말하는 것을 보고 허윤진의 예쁜 얼굴은 순식간에 빨갛게 변했다.“그만해요!”허윤진은 얼른 이불 속에 머리를 묻었다.“알겠어요. 먼저 가볼게요. 무슨 일이 있으면 간호사를 부르거나 저한테 전화 주세요.”진서준은 그렇게 말하고 바로 떠났다.병실을 나온 후 진서준은 더 이상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어서 주먹으로 벽을 힘껏 쳤다.쿵...진서준의 주먹에 맞은 자리에는 순식간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겼고 사방으로 퍼졌다.진서준의 몸에서 강한 살의가 뿜어져 나왔다.오가던 간호사와 환자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이 사람은 제정신이 아닌가 봐.”진서준은 어두운 얼굴로 병원을 떠났다.병원을 떠난 후 진서준은 즉시 한 씨 저택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진서준은 점차 마음을 가라앉혔다.어떻게 김연아를 구해낼지가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였다.김씨 가문은 강남에서 두 번째로 큰 가문이었기에 그 실력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었다.세 명의 선천 대종사만으로도 많은 고수를 물리칠 수 있었다
“김평안 씨는 내가 엄청난 공을 들여서 모셔 온 분입니다.”유기명이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진서준을 자랑하기 시작했다.“겉보기엔 40대 초반처럼 보이지만, 그 실력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어마어마하다고? 그럼 나랑 한번 붙어볼래?”은청준이 비웃으며 말했다.은청준은 스물여섯 살에 이미 사급 대종사가 되었는데 반면 이 경호원은 체내에 강기가 거의 없었다.아무래도 겨우 종사의 문턱을 밟은 무인인 것 같은데 이런 쓰레기가 세속에서는 강자로 불리는 건가?유기명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은청준 씨와는 비교할 수 없죠. 하지만 김평안 씨 검술은 누구나 다 알아주는 실력입니다.”“마침 나도 검술이 특기인데, 한 번 겨뤄볼까?”은청준이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청준아,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무도는 남과 다투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이장로가 차분하게 말하자 은청준은 곧바로 태도를 고쳐잡고 공손하게 말했다.“이장로님, 저는 그냥 세속 무인과 가볍게 한 수 겨뤄볼 생각이었습니다.”이장로는 은청준을 흘긋 보았으나 그의 속마음을 굳이 들춰내지는 않았다.은청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같은 종문 사람이니 체면은 세워줘야 했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진서준이 다시 강조하자 은청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쏘아봤다.이 녀석 왜 이렇게 말이 많지? 혹시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가?“은범은 내 사촌 동생이야. 네가 그 못난 동생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은청준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신농산에서 만난 적이 있어.”“뭐라고? 걔가 신농산에 갔다고?”이 말에 은청준은 흥미가 동했다.“그 녀석 실력으로는 신농산 테스트를 통과하기 힘들 텐데?”은청준은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은범이 어떤 인물인지 은청준은 잘 알고 있었다.애매한 실력과 어중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은범이 은씨 가문에서 빛을 볼 일은 없었다.은청준과 은범의 격차는 눈에 보일 정도로 컸다.“그 녀석은 테
진서준은 아버지 진요한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이렇게 닮은 꼴로 곤륜 사람들을 만나면 곤륜 장로가 진서준을 알아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진서준은 곤륜에 관해 잘 알지 못했기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인피면구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목소리까지 완전히 변해버린 진서준을 보고 유정은 깜짝 놀랐다.하지만 진서준이 자기를 해칠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진서준이 하는 말이라면 당연히 따라야 했다.“알겠어요, 진서준 오빠.”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름 잘못 불렀어. 지금 난 김평안이야.”진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강조했다.“그냥 김평안이라고 부르면 돼.”“알았어요.”그렇게 진서준은 유정과 함께 거실로 향했다.인피면구를 쓴 진서준을 본 유기명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지만 진서준이 슬쩍 보낸 눈짓을 보고 유기명은 즉시 이 사람이 진서준이란 걸 깨달았다.“유정아, 이리 와 앉아. 네게 소개할 사람이 있어.”유기명이 유정을 옆에 앉히며 말했다.이때, 곤륜의 이장로가 진서준을 흘끗 보더니 별다른 반응 없이 바로 유정에게 시선을 돌렸다.“가주님, 따님 건강이 막 회복된 것 같은데, 맞나요?”이장로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네? 이장로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유기명은 깜짝 놀랐다.유기명은 아직 딸의 병에 관해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이장로가 그냥 보는 것만으로 큰 병을 앓았다는 걸 눈치챘다.이건 거의 신의 영역 아닌가?“따님께서는 겉보기에 건강해 보이지만 눈에 피곤한 기운이 남아 있고 걸음걸이도 미세하게 불안정합니다.”이장로가 천천히 해명했다.“역시 곤륜 장로님이십니다.”유기명은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제 딸은 최근 큰 병에서 막 회복된 참입니다.”“따님을 치료한 의사는 보통 인물이 아닐 것 같네요.”이장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큰 병인데도 이 정도로 빠르게 완치하다니, 의술이 보통이 아닐 텐데... 혹시 성약당 장로가 아닙니까?”유기명은 순간 멈칫하더니 곁눈질로 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젓는 것을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도 겨우 서른을 갓 넘긴 정도였다.“가주님, 이번에 찾아온 건 부탁할 일이 따로 있어서입니다.”이장로가 용건을 말하자 유기명이 시원하게 대답했다.“말씀만 하십시오. 우리 유씨 가문은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곤륜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다면 그건 곧 곤륜이 유씨 가문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강 종문 중 하나였다.곤륜이 유씨 가문에 빚을 진다면 훗날 유씨 가문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우리 종주님 따님도 이번에 곤륜에서 내려왔습니다.”이장로가 말문을 열었다.“네? 조슬기 아가씨도 왔습니까? 근데 아가씨는 어디에...”유기명이 멈칫하더니 이장로가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단번에 깨달았다.“어제 하산할 때 슬기와 경호원 두 사람이 따로 움직였고 밤에 저희와 다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더군요. 나중에 수소문해 봤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가주님께서 슬기를 찾아주신다면 이 늙은 몸이 신세를 지는 셈 치겠습니다.”이장로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이장로님, 과한 말씀입니다. 제가 즉시 서남 지역 전체에 조슬기 아가씨를 찾으라고 명령하겠습니다.”유기명은 망설일 틈도 없이 즉시 지시를 내렸다.서남에서 유씨 가문은 막강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었다.명령이 내려가자 서남의 크고 작은 도시, 심지어 작은 마을까지도 조슬기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모두가 조슬기를 찾기 위해 분주한 사이, 진서준이 유씨 가문으로 돌아왔다.“오빠!”진서준을 보자마자 유정이 반갑게 소리쳤다.“유정아, 몸은 좀 어때?”진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많이 좋아졌어요.”유정은 대답하며 진서준을 위아래로 살폈고 다행히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걸 보고서야 안심했다.혹시라도 진서준이 자기를 위해 묘강에 가서 복수라도 했던 게 아닌지 걱정했던 것이다.진서준이 앞으로 다가가 유정의 맥을 짚었다.“확실히 거의 다 나았네. 이틀만 더 쉬면 원래 상태로 돌
“가주님! 대문 앞에 중요한 손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유씨 가문의 집사가 황급히 유기명을 찾아 소리쳤다.“중요한 손님이라고?”유기명이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서남 지역에서 유씨 가문을 찾아 올 만한 중요한 손님이라면 꽤 오랜만이었다.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씨 가문에서 중요한 손님으로 인정할 만한 인물 자체가 거의 없었다.설령 그것이 경성의 4대 가문이라고 해도 가주가 직접 방문해야만 중요한 손님이라고 할 수 있었다.“누가 왔어?”유기명이 물었다.“곤륜의 이장로입니다.”그 말을 듣자마자 유기명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뭘 꾸물거리고 있어? 어서 안으로 모셔 와야지!”유기명은 집사를 따라 급히 장원 입구로 향했다.그곳에는 이미 열댓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그들은 모두 흰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사극에서 튀어나온 듯한 복장이었고 등에는 검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풍기는 기운도 비범했다.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느 극단에서 뛰쳐나온 배우들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다.“이장로님, 이 유씨 가문이란 곳,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어떻게 우리를 대문 앞에서 기다리게 할 수 있습니까?”무리의 맨 앞에 선 잘생긴 청년이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다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우리 곤륜이 오랫동안 여기를 찾지 않은 건 맞지만 이런 대우는 너무한 거 아닙니까? 우리를 전혀 존중하지 않잖아요.”그들의 표정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이전에도 곤륜산에서 내려와 세속의 여러 가문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그들은 어디를 가든 귀빈처럼 모시며 극진한 대우를 받았었다.하지만 유씨 가문이 이들을 이렇게 문 앞에 세워두고 있다니, 그 격차가 너무 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다 떠들었으면 이제 조용히 해.”그 순간, 백발의 이장로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이장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순간적으로 모든 이가 입을 다물었다.“종주님의 따님이 사라졌는데 너희는 지금 대접 타령이나 하고 있어? 이번에도 슬기를 못
진서라는 재빨리 움직여 유정에게 물을 떠다 주었다.“고마워, 서라야.”유정은 물컵을 받아 들고 천천히 마셨다.“몸은 어때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진서라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이제 괜찮아.”유정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참 다행이네요.”진서라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진서준 오빠는 어디 있어? 왜 안 보이지?”유정이 문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지금 유정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은 진서준이었다.진서라는 급히 둘러대기 시작했다.“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어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나갔다고? 혹시 묘강으로 간 건 아니겠지?”유정도 바보는 아닌지라 진서라의 표정을 보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것이다.“아, 아니에요. 묘강은 워낙 위험한 곳이라 우리 오빠도 그렇게 무모하진 않아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서라의 마음은 누구보다 더 초조했다.벌써 하루가 지나도록 진서준에게서 아무 소식도 없었다.점심때 국제 뉴스를 본 진서라는 배논국의 묘강 지역에서 큰 소란이 있어 배논국이 결국 묘강 지역을 접수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하지만 진서준의 소식은 단 한 줄도 없었다.그러니 자연스레 진서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때 유기명이 방으로 들어왔다.딸이 깨어난 걸 보자 유기명은 눈물을 글썽이며 격동한 말투로 말했다.“유정아, 드디어 깨어났구나!”“죄송해요, 아버지. 걱정 끼쳐드려서...”유정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절반이 희끗희끗해졌고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바보 같은 소리 마. 사과할 사람은 나야.”유기명은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그때 내가 진서준의 말을 듣고 그 자식을 죽였더라면 네가 중독될 일도 없었을 거야.”“이미 지난 일이에요. 이제 그 얘긴 그만하세요.”진서라가 서둘러 다독였다.“그래, 그래. 이미 지나간 일이야. 더 이상 골치
조슬기의 피부 온도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지만 몸속은 한기로 가득했다.조슬기의 오장육부는 이미 일반인의 체온을 한창 밑돌고 있었다.옥패가 어느 정도 억제하는 기능이 있긴 했지만 효과가 너무 미미했다.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조슬기 몸속에 쌓인 한기가 완전히 폭발할 것이다.그 순간이 오면, 조슬기의 목숨도 위험해질 것이다.“이봐, 헛소리하지 마. 너야말로 정신 상태가 안 좋은 거 아냐?”신수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고 심지어 조슬기 본인도 몰랐다.조슬기가 알면 괜히 걱정할까 봐 일부러 숨겨왔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이 녀석이 대놓고 말해버리다니,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은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사실을 알아챈 신수란이 충격을 받아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면 누구도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었다.“란 언니, 오빠를 탓하지 마. 사실 오빠가 말 안 해도 난 대충 짐작하고 있었어.”조슬기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기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건 결국 자신이었다.진서준이 말한 대로 조슬기의 상태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사실 진서준이 어느 정도 에둘러 말해서 그렇지 지금의 상태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신수란은 진서준을 매섭게 노려본 뒤, 급히 조슬기를 달랬다.“아가씨,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종주님과 장로님들이 반드시 치료법을 찾으실 거예요. 게다가 전 대한민국에 용존이라는 천재 소년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천재는 실력도 강하지만 의술 또한 모든 사람을 압도한다고 해요. 그런 인재라면 분명 아가씨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진서준은 듣자마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용존이라니, 그건 진서준이 아닌가?“뭐야, 그 표정은?”신수란이 진서준의 표정을 눈치채고 불쾌한 얼굴을 했다.“아, 별거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너희는 용존에 대해 어디서 들었어?”“우릴 뭐로 보는 거야? 우리가 원시인인 줄 알아? 우리도 휴대폰 쓸 줄 알아.”신수란이 불쾌한 표정으로 받아치
진서준은 이 주제에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이 녀석은 알아서 수습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고마움을 표하고는 신수란을 바라봤다.신수란은 속에 쌓인 화를 주체하지 못해 단검을 뽑아 장강훈의 목에 겨누며 말했다.“말해! 누가 너희를 보낸 거야? 그리고 우리가 미리 산에서 내려온 걸 어떻게 알았어?”“돈 받은 만큼 일할 뿐이야. 우린 돈만 받으면 그만이고,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는 모른다니까.”장강훈은 이를 악물며 사실을 털어놨다.“말 안 하겠다 이거지?”신수란은 냉소를 지으며 더 이상 긴말하지 않고 바로 장강훈의 다리 힘줄을 단칼에 끊어버렸다.“아악!”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장강훈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정말 몰라! 나도 온라인에서 의뢰를 받았을 뿐, 누군지는 몰라.”“이래도 고집을 부려? 말 안 하면 내가 널 고자로 만들어버릴 줄 알아.”말을 마치며 신수란은 단검을 장강훈의 아래쪽에 갖다 댔다.그러자 장강훈은 순간 몸을 덜덜 떨며 깜짝 놀라 눈물까지 찔끔 날 뻔했다.“말할게, 말할게!”머리가 잘리거나 피가 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그 부위만큼은 절대 잃을 수 없었다.“우리에게 조 아가씨를 납치하라고 시킨 사람은...”그 순간, 장강훈은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검은 피를 뿜어내고 그대로 푹 쓰러졌다.“죽은 척하지 마!”신수란은 앞으로 다가가 장강훈을 툭 밀었다.하지만 장강훈은 이미 숨통이 끊어져 완전히 사망한 상태였다.“진짜 죽었네.”신수란은 생각지 못한 상황에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했다.분명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죽은 걸까?그 광경을 본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묘왕은 죽었지만 묘강의 사수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진서준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장강훈의 머리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그 모습은 마치 머릿속에 뭔가가 있는 듯했다.신수란이 앞으로 다가가 확인하려는 순간, 장강훈의 귀에서 새까만 지네들이 한 마리씩 기어 나오기
갑자기 쓰러진 장강훈을 바라보며 현장 사람들은 전부 멍해졌다.이게 무슨 상황이지?본래 시나리오대로라면 저 건방지고 거만한 청년이 장강훈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마지막엔 처참하게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그런데 저 극악무도한 악당 장강훈이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다니,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모두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얼이 빠져 있었다.심지어 신수란조차도 미간을 찌푸리며 이 장면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네놈이 감히 암기로 날 공격해?”장강훈은 고통에 찬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봤다.그 눈빛은 당장이라도 진서준을 산 채로 잡아먹을 기세였다.“내가 말했지? 넌 나와 겨룰 자격이 없다고.”진서준은 여전히 평온하게 말했다.“암기라니? 너도 저놈들처럼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구나.”신수란이 콧방귀를 끼며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신수란 복부의 상처는 바로 암기의 공격으로 다친 것이었다.그리고 방금도 장강훈이 신수란을 비겁하게 기습하려 했다.그래서 신수란은 이런 비열한 수법을 쓰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느꼈다.진서준은 신수란의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추켜세웠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고 대신 속으로 이 여자가 멍청하긴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이 두 여자를 구하려고 선뜻 나섰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같은 인간쓰레기 취급을 당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어서 저놈을 해치워! 암기든 뭐든 다 부숴버려! 내 무기와 똑같은 걸 쓸 자격이 있기나 해?”장강훈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장강훈은 진서준이 자기와 같은 종류의 암기를 사용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그러나 진서준이 사용한 건 단순한 은침 두 개였을 뿐이고 다만 그것이 일반 은침보다 좀 더 단단했을 뿐이었다.남아있던 부하들은 우르르 진서준에게 몰려들었다.개미도 많이 모이면 코끼리를 잡는다고 했다.하지만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아무리 개미가 많아도 결국 희생될 뿐이었다.진서준이 발을 내딛자마자 서 있던 바닥이 산산조각이 났다.이어지는 진서준의 움직임은 유령처럼 사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