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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무가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01-30 16:24:56
“그 파렴치한 년과 결혼을 안 했으니 망정이지!”

진서준이 싸늘한 눈길로 말을 내뱉었다.

“안 그러면 당신들 같은 집구석에 걸려들었을 거잖아. 생각만 해도 끔찍해! 꿈에 나올까 봐 두렵네.”

유건우는 바닥에서 일어났는데 입이 삐뚤어 바보 꼴이 되었다.

“감히 날 때려? 매형에게 이를 거야. 너 또 감방에 처넣을 거라고!”

그는 화가 나서 두 눈이 벌게졌다.

진서준의 눈 밑에 차가운 한기가 감돌았다.

“어디 한번 해보시던가! 내가 이미 나왔으니 이지성과의 원한은 반드시 결판을 낼 거야!”

말을 마친 진서준은 몸을 홱 돌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이제 막 오션 호텔로 출발하려 할 때 주머니 속의 옛날 폰이 갑자기 울렸다.

전화를 받자 허사연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서준 씨, 얼른 병원으로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빠가 위급해요!”

“또 위독해지셨어요?”

진서준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

그는 청하13침 중의 전 일곱 침으로 허성태의 병세를 안정시켰고 은침을 뽑지 않아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

지금 위급하다는 건 누군가가 허성태의 은침을 건드렸다는 뜻이다.

“지금 어느 병원이죠?”

진서준이 물었다.

“서울 병원에 있어요. 얼른 와보세요, 얼른요!”

전화를 끊은 후 허사연은 병실로 돌아가 낯빛이 창백한 아빠를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허윤진의 예쁘장한 얼굴도 사색이 되었고 두 눈에 두려움으로 휩싸였다.

허성태가 이렇게 된 건 오롯이 허윤진이 설쳐댔기 때문이다.

병원에 도착한 후 허사연은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녀가 화장실로 간 틈을 타 허윤진이 아빠의 몸에 꽂은 은침을 보더니 또다시 진서준의 당부와 그 거만한 자태가 떠올라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그녀는 몰래 은침 한 개를 뺐는데 아빠의 상태가 급격히 저하됐다.

허윤진은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병원 의사들도 이 상황을 보더니 전부 속수무책이었다.

허사연 자매가 착잡해하고 있을 때 진서준이 병실로 들어왔다.

“서준 씨!”

허사연이 재빨리 앞으로 마중 가며 진서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차가운 섬섬옥수에 따스한 온기가 담겨 있었다.

“얼른 우리 아빠 좀 봐주세요!”

그녀는 의사들에게 길을 비키라고 하며 진서준과 함께 아빠 앞으로 다가갔다.

진서준은 쭉 훑어보더니 곧바로 은침 한 개가 적어진 걸 발견했다.

“누가 은침 뺐어요?!”

진서준이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

병실 안의 의사들은 전부 머리를 내저었다. 그들이 들어왔을 때 허성태의 몸엔 은침 여섯 개만 꽂혀 있었다.

의사들은 진서준의 태도가 썩 탐탁지 않았다.

“내가 뺐어요.”

허윤진이 머리를 푹 숙이고 감히 진서준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너!”

허사연은 가슴을 들썩거리더니 손을 번쩍 들어 동생의 뺨을 치고 싶었지만 결국 참았다.

진서준도 싸늘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 놓네요!”

진서준의 야유에 허윤진은 아무런 반박도 못 했다. 이번엔 자신이 얼마나 엄중한 잘못을 저질렀는지 잘 아니까.

“서준 씨, 제발 우리 아빠 살려주세요. 아빠를 살려주신다면 서준 씨와 결혼하겠습니다. 절대 번복하는 일 없어요!”

허사연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결혼은 됐어요. 전에 받은 20억 원으로 아버님 치료 비용을 대신하면 됩니다.”

말을 마친 진서준이 곧장 치료에 나서려 했는데 이때 마침 누군가가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 이어서 고아한 풍채를 지닌 한 어르신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르신은 동안 외모에 씩씩한 발걸음으로 걸어왔는데 딱 봐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이때 허윤진이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신의님, 얼른 우리 아빠 좀 살려주세요! 아빠가 위독해요.”

다른 의사들도 부영권을 보더니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덕질하는 팬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본 것처럼 기쁨에 겨워 있었다.

부영권은 한의학계에서 만인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강남의 모든 부자가 그의 은혜를 입었다.

위급한 상황에 부영권은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허윤진은 냉큼 진서준을 밀치며 부영권에게 길을 내주었다.

진서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변했다. 허사연이 태도만 친절하지 않았어도 그는 진작 병실을 내팽개치고 떠났을 것이다.

부영권은 허성태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 호흡이 매우 미약했다.

그리고 몸에 은침이 여섯 개 꽂혀 있었는데 이를 본 부영권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이건... 청하13침 중의 전 여섯 침이잖아!”

부영권이 흥분 조로 외쳤다.

그는 돌연 미간을 구기며 머리를 내저었다.

“아니야, 이 여섯 침은 틀렸어. 첫 번째 침의 혈 자리가 여기가 아니지!”

부영권의 말을 들은 허윤진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신의님, 그 침은 제가 빼버렸어요.”

부영권의 미간이 더 구겨졌다. 그는 허윤진을 쳐다보더니 머리를 내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어휴, 네가 아빠를 해쳤어! 청하13침은 나도 앞 여섯 침밖에 몰라! 이 침을 놓은 사람을 찾기 전까지 아빠를 살리기 힘들 거야.”

부영권의 말에 허윤진은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재빨리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는데 그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한없이 차가워졌다.

살벌한 한기가 허윤진의 발끝에서 차올라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진서준의 앞으로 다가가 연신 사과했다.

“진서준 씨, 아까는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우리 아빠 좀 살려주세요!”

“이제야 머리 숙이는 겁니까? 방금 날 밀치고 모욕하던 기세는 다 어디 갔죠? 멀리 내다보는 법이라곤 없군요!”

진서준이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이렇게 무릎 꿇을게요!”

철퍼덕!

허씨 일가의 둘째 따님이 뭇사람들 앞에서 진서준에게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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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 2024-01-30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화

    성철은 강인한 남자였다. 스스로 팔을 부러뜨리면서 아픈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손에 들고 있던 막대기를 버린 후 성철은 몸을 돌려 서준을 보았다.“선생님, 마음에 드십니까?”“음, 나쁘지 않군요.”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의 부하더러 붓, 주사 그리고 노란 종이를 가져오라고 해요.”곧 성철은 서준이 원하는 모든 물건들을 가져오게 했다.그는 종이를 탁자에 놓고 붓을 들어 주사를 먹으로 삼고 손을 휘저으며 재난을 막는 부적을 그렸다.“이걸 갖고 다니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성철은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얻는 것처럼 부적을 옷 주머니에 넣었다.예전엔 성철은 이런 풍수지리를 믿지 않았다. 미신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 그는 서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서준은 성철이 이 부적을 손에 넣은 후 그에게 해를 가하는 게 두렵지 않았다. 상대방을 살릴 수 있으면 당연히 그를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재난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선생님, 제가 뭘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말만 하시면 오늘 이씨 부자의 목숨을 끊을 수 있습니다.”이 말이 끝나자마자 이씨 부자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지면서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연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놀란 얼굴을 했다.“이렇게 죽이기엔 너무 아까워요. 가끔은 빈털터리로 사는 것도 죽음보다 잔인할 때가 있거든요.”홀의 기온은 서준이 이 말을 한 후 물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게 변했다.지수는 눈앞의 서준을 보았다. 정말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자신이 마음대로 괴롭히던 서준이 이렇게 변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녀는 서준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사람을 구하면서 세상을 어진 마음으로 대하는 의사,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악마.도대체 뭐가 진정한 너야?’“이지성, 얼마 남지 않은 즐거운 시간을 잘 보내길 바라.”말을 마친 후, 서준은 몸을 돌려 호텔 밖으로 나갔다.서준이 간 후, 성철은 혁진을 차갑게 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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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02화

    변철주는 그 말을 듣고 조태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아이가 한 말이 사실인가?”“사실입니다.”조태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인하지 않았다.“그렇다면 이번 일은 너희 조씨 가문 잘못이 맞아. 하지만 혼약을 파기한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니야.”변철주는 갑자기 화제를 돌리며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연회에 참석한 다른 세가 권력자들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선언했다.“여러분, 오늘 우리 변씨 가문이 연회를 개최한 이유는 여러분께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드디어 오늘 연회의 진짜 목적이 나왔다.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변철주의 다음 발언을 기다렸다.“우리 변씨 가문은 심씨 가문과 혼인 동맹을 맺을 겁니다.”이 한마디는 거대한 폭탄처럼 연회장을 순식간에 뒤흔들었다.“진짜였구나. 난 단순한 소문인 줄 알았어.”“조씨 가문은 이제 끝났군. 앞으로 동북에선 조씨 가문이 사라지겠어.”“앞으로가 아니라 오늘 밤이라고 봐야지. 흑권왕 같은 살인마가 나서면 조태희 일행은 오늘 살아서 나가기 어려울걸.”사람들은 조태희 일행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처음엔 조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손잡고 변씨 가문을 무너뜨리는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조씨 가문이 함정에 빠진 꼴이었다.조태희와 조기강의 얼굴은 이미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역시나 예상이 틀리지 않았어...’심민경은 상황이 뜻대로 돌아가자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조 가주, 당신 딸이 우리 동생에게 무릎 꿇고 빌면 우리가 당신 가문을 살려줄 수도 있어요.”조민영은 그 말을 듣고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정말입니까?”조민영의 말에 심민경은 더욱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사실입니다.”물론 사실일 리 없었다.심씨 가문과 변씨 가문은 오늘 밤 조씨 가문을 절대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오늘 밤 이 세 사람은 절대 살아서 변씨 가문의 장원을 나가지 못할 것이다.“민영아, 저 개수작에 속지 마!”조태희는 서둘러 조민영을 뒤로 끌어들이며 변철주를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변 어르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01화

    심민경이 내놓은 6조 원 배상금과 조민영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요구는 누가 봐도 도를 넘은 요구였다.조태희는 물론, 구경하던 사람들도 심민경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게 분명했다.하지만 사람들은 심민경이 이렇게 뻔뻔하게 요구한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속으로 곰곰이 생각했다.무언가 깨달은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고 그들의 시선은 변씨 가문의 저택으로 향했다.심씨 가문이 조씨 가문과 이렇게 공개적으로 맞설 수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변씨 가문과 손을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조씨 가문의 상황은 정말 암울해질 수밖에 없었다.심민경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조태희는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거절했다.“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그러자 심민경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그럼 우리 가문에 어떤 배상을 하시겠다는 겁니까?”조태희는 얼굴을 굳히며 강경한 태도로 대응했다.“배상 같은 건 없습니다. 혼약은 이미 끝났고 사과도 없을 겁니다. 심씨 가문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정면으로 대결해 보죠.”결단을 내려야 하는 밤인 만큼, 조태희도 물러서지 않고 단호한 태도로 맞섰다.조태희가 갑작스럽게 강단을 보이자 심씨 가문의 세 사람은 모두 놀란 기색을 보였다.‘무슨 상황이지? 설마 조씨 가문이 외부 지원을 받은 건가?’놀라움도 잠시일 뿐, 심국강의 얼굴엔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분노가 스쳤다.“조태희,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어?”“당연하지. 혼약은 우리가 이미 파기했고 절대 사과하지 않을 거야. 너희 가문이 불만이라면 지금이라도 한번 손대봐.”조태희는 거침없이 선언했다.그 얘기를 들은 주변에 모인 유명 인사들은 재빨리 물러났다. 혹시라도 싸움에 휘말리기라도 할까 봐 우려했기 때문이다.심국강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좋아, 아주 좋아. 조씨 가문 태도가 정 그렇다면 우리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두 가문이 곧 서로에게 달려들 태세로 긴장을 끌어올릴 무렵, 위엄 넘치는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00화

    심국강은 전형적으로 각진 네모난 얼굴에 표정만으로도 압도적인 위엄을 뿜어내는 사람이었다.심국강은 군 출신으로,20년간 군대에서 복무하며 강인한 카리스마를 길러왔다.조태희가 주동적으로 말문을 열었다.“심 가주!”심국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조 가주, 제가 드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그래요? 공교롭게도 저도 드릴 말씀이 있네요.”조태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먼저 말씀하시죠.”심국강은 여유로운 태도로 응답했다.“제 딸이 심도준과 결혼하는 건 없던 일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조태희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요즘은 자유 결혼이 유행이라고 하더라고요. 제 딸에게 조씨 가문의 운명을 맡기자니 저도 내키지 않더군요. 제 딸만 믿으면 우리 조씨 가문 남자들이 너무 무능해 보일 테니까요.”조태희의 말에 심국강 옆에 있던 젊은 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그게 무슨 말이죠? 조씨 가문에서 파혼하겠다는 말씀인가요? 파혼하려면 우리 심씨 가문에서 먼저 해야지 당신들 조씨 가문이 뭔데 그렇게 굴어요?”심민경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꾸짖으며 조태희의 체면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심민경의 언성이 너무 높아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자연스레 이쪽으로 집중되었다.“민경아, 조 가주와 그런 말투로 말하면 돼? 얼른 사과드려.”심국강이 훈계하듯 말했지만 말투는 한없이 가벼웠고 전혀 진심으로 나무라는 기색이 없었다.조태희는 조씨 가문 가주로서 심민경 같은 후배에게 공개적으로 비난을 당하자 얼굴에 불쾌함이 스쳤다.“신 가주, 따님을 그렇게 가르치셨습니까?”조태희는 굳은 얼굴로 차갑게 물었다.“제 딸 교육 문제는 조 가주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심국강은 조태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우리 심씨 가문과의 혼인은 조 가주가 제안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파혼을 먼저 꺼내는 것도 조 가주님이네요. 조 가주 눈에 우리 심씨 가문은 그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인가 봅니다?”심국강이 내뿜는 강렬한 기세는 주변 공기를 압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299화

    변지오는 허윤진과 허사연이 이미 자기와 심도준의 노리개나 다름없다고 확신했다.여기는 동북지역 변씨 가문 세력 범위 내에 있는 수은 장원이었다.허사연 자매가 아무리 하늘을 찌르는 능력이 있다 한들, 변지오의 손바닥 안에서 빠져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북의 3대 가문은 2대 가문으로 축소될 터였다.변씨 가문이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변지오는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며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변지오가 거만하게 웃는 꼴을 본 허사연 자매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그때, 얼음처럼 차가운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네 유언은 그걸로 끝이야?”변지오가 그 말에 멈칫하더니 눈에서 섬뜩한 빛이 번뜩였다.“너 따위가 뭔데 감히 내 앞에서 짖어대? 아까 낮에 허씨 집안에서 널 때리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까 내가 가마니로 보이지?”말이 끝나자 변지오의 몸에서 강력한 무인의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이 기세를 보니 내공 절정이 틀림없었다.스물 남짓한 나이에 내공 절정까지 수련했다면 확실히 탁월한 천재라고 할 만했다.대도시는 몰라도 적어도 지방에서는 변지오가 큰소리를 떵떵 치며 다닐 수 있었다.비록 종사 아래는 전부 개미와 같은 수준이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봐도 종사급 무인은 손꼽힐 정도로 적었다.더구나 최근 대한민국 무도계는 큰 재난을 겪어 해외의 이족들과 맞서 싸우다 수많은 종사급과 대종사급 강자가 전사해 호국사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충성을 다해 국가를 지킬 종사급 강자를 다시 육성하려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이런 큰 배경 때문에 변지오는 진서준을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내공 절정인 자기와 맞서 싸우려면 종사급 무인이 나타나지 않는 한 대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런데 보잘것없는 평범한 인간이 감히 무인인 자기를 도발하다니, 변지오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됐어, 그만하자. 연회 중에 변씨 가문 도련님이 평범한 인간이랑 시비 붙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면 체면이 구겨지지 않겠어?”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298화

    그리고 조민영을 데려가지 않은 이유는 딸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는 의도였다.“민영 씨,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진서준도 조태희를 거들었다.“아니요, 저도 같이 가요.”하지만 조민영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럴 건가요? 그럼 아빠랑 함께 가요.”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겠습니다.”진서준의 말이 떨어지자 조태희는 더 이상 실랑이하지 않고 조민영을 데리고 심씨 가문 사람들 쪽으로 향했다.조태희 부녀가 떠난 후, 허사연이 말문을 열었다.“서준아, 정말 민영 씨를 심씨 가문에 시집보낼 생각이야?”“모든 건 조민영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야. 조민영이 원하면 시집보내는 거지.” 진서준은 차분하게 대답했다.조민영이든, 진서라든, 다들 스스로 결혼을 원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진서준은 절대로 방해하지 않으려고 결심했다.결혼하든, 하지 않든, 모든 건 그녀들이 선택한 삶일 뿐, 다른 누군가가 대신 결정을 내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진서준의 생각이었다.“조민영은 심씨 가문에 시집가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아.”허윤진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단지 자기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결혼을 선택하려는 거야.”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청년이 진서준 일행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응? 저 세 명은 어떻게 들어왔지?”멋진 옷차림을 한 변지오는 차가운 눈빛으로 진서준 일행을 바라보았다.“지오야, 저 사람들 네가 아는 사람이야?”변지오와 비슷한 나이대의 또 다른 청년이 물었다.“알지. 오후에 허씨 가문 집안 어르신이 내게 존예를 소개한다고 했잖아. 바로 저 여자야.”변지오는 허윤진을 가리키며 말했다.“대박, 저렇게 예쁜 자매는 처음 봐.”그 청년은 부러워 입을 쩝쩝 다시며 말했다.“나도 아쉽긴 해. 내가 네 여동생과 결혼하지 않으면 저 두 여자를 너랑 나랑 하나씩 나눠 가졌을 텐데.”그 말을 듣자 변지오는 웃음을 터뜨렸다.“도준아, 네가 내 동생과 결혼한 게 대수야? 어차피 결혼해도 넌 따먹을 여자 다 따먹잖아.”“좋아, 나중에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297화

    조민영은 심씨 가문에 시집가기 전에 꼭 다시 한번 김평안과 만나고 싶었다.조민영은 김평안에게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고 이후 다시는 그를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김평안에게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김평안에 대한 감정이 단순히 남녀 사이의 호감인지, 아니면 오빠에게 기대고 싶은 감정인지 심지어 조민영 자신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그저 김평안이 옆에 있으면 조민영은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만 확신할 수 있었다.진서준은 순수한 얼굴을 한 조민영을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 사람은 지금 수련 중이에요. 어디서 수련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이번에 봉천시에 온 것도 김평안이 부탁해서 온 거예요.”자신의 소원이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만 조민영은 그 말을 듣고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실망감에 빠져 고개를 푹 숙인 조민영을 보며 진서준은 격려의 말을 건넸다.“괜찮아요, 나중에 또 만날 기회가 있을 거예요.”“아니에요...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거예요.”조민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조태희는 그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진서준이 멀리서까지 와서 조민영의 병을 치료해 준 건 전부 김평안 덕분이었다.조태희는 김평안에 대해 좋지 않았던 인상이 지금 완전히 사라졌다.“민영아, 걱정 마. 이 진 마스터님이 우리가 지금 겪는 모든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 줄 거야.”조태희가 조민영을 안심시키며 말했다.“아니요, 저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저 때문에 피를 흘리게 하고 싶지 않아요.” 조민영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아빠, 저 한 사람으로 우리 조씨 가문 장래가 밝아지게 할 수 있다면 저는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조민영의 결연한 태도를 본 허사연과 허윤진은 즉시 그녀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진서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 아이는 진서라와 정말 닮아 있었다.진서준은 여전히 차분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었고 조민영의 결정을 두고 다른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296화

    “민영아, 이제 심씨 가문 도련님과 결혼하지 않아도 돼. 오늘 연회에 참석하는 것도 심씨 가문과 변씨 가문 앞에서 우리 조씨 가문 미래는 네가 짊어질 필요가 없다고 선언하기 위해서 가는 거야.”“네?”조민영은 그 말에 그대로 얼어붙었다.이전에 조민영이 심씨 가문 도련님과 결혼해야 할지 망설이던 그때, 조태희가 얼마나 입이 아프게 자기를 설득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조민영이 병으로 쓰러지자마자 아버지가 이렇게 태도를 180도로 바꿀 줄은 몰랐다.조민영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의아한 눈빛으로 조태희를 바라봤다.“아빠, 저한테 장난치는 거 아니죠?”“당연히 아니지. 아빠가 이제 결혼 안 해도 된다고 했으면 정말 안 해도 되는 거야.”“그래도...”조민영은 그 말에 오히려 더 초조해졌다.조민영은 이 사회의 더러운 풍파 속에서도 순진무구함을 유지해 온 사람이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민영이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순진한 바보는 아니었다.조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혼인이란 특별한 관계로 손을 잡지 않으면 심씨 가문이 변씨 가문과 동맹을 맺을 게 뻔했다.그렇게 되면 조씨 가문은 동북 지역에서 떠나든가 아니면 완전히 사라지는 길만 남을 것이다.“민영아, 사실 아빠가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우리 조씨 가문에 귀인이 찾아왔기 때문이야.”조태희가 웃으며 설명했다.“귀인이라고요? 어떤 귀인이죠?”조민영은 여전히 의문투성이였다.“이건 내가 너한테 묻고 싶은 말인데?”조태희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너 대체 언제부터 진 마스터랑 친구가 된 거야?”이 질문을 들은 조민영은 어안이 벙벙했다.진 마스터라니, 조민영이 아는 사람 중에 진씨 성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아빠,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 진씨 성을 가진 사람은 모르는데요?”조민영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되물었다.“그럴 리가 있겠어? 네 병을 고쳐준 사람이 바로 진 마스터야.”조태희는 딸이 부끄러워서 그러는 줄 알고 웃으며 말했다.“민영아, 너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남자친구를 사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295화

    허씨 가문을 떠날 때야 허윤진은 진서준과 함께 온 하얀이를 알아챘다.“진서준, 이 원숭이는 어디서 샀어?”허윤진은 하얀이를 원숭이로 착각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하얀이는 그 말에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왜 다들 날 원숭이 취급하는 거지? 정말 원숭이처럼 생긴 건가?’진서준은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이건 원숭이가 아니라 천산의 괴물 설괴야.”“설괴라고?”허윤진은 생전 처음 듣는 단어에 눈을 반짝였다.“그래. 내가 천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만난 녀석이야. 쉽게 말하면 누렁이 친구라고 생각하면 돼.”진서준의 말에 허윤진은 금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누렁이한테 친구 만들어주려는 거야?”허윤진이 웃으며 물었다.“그런 셈이지. 게다가 하얀이는 누렁이보다 훨씬 강해. 집에서 누렁이랑 함께 있으면 어머니랑 서라 걱정을 덜어도 될 거야.”그때 허사연이 뜬금없이 물었다.“서준아, 그럼 변씨 가문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거야?”아까 허순재가 말했던 것처럼 변지오는 변씨 가문 가주의 장남이었다.게다가 변씨 가문은 동북 지역에서 손꼽히는 명문대가였으니 잘못 건드렸다가는 세 사람이 곤란해질 게 뻔했다.진서준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오늘 저녁에 열리는 변씨 가문 연회에 같이 가자.”“응? 근데 우린 초대도 안 받았잖아?”허윤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설마 우리가 강제로 들어가겠다는 건 아니겠지?”“변씨 가문이 우리를 초대하진 않았지만 조씨 가문은 초대받았잖아.”진서준이 조씨 가문을 언급하자 허윤진은 질투 어린 눈길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아차, 깜빡했네. 네 귀여운 애인이 조씨 가문의 금지옥엽이었구나.”진서준은 그 말에 난감한 표정으로 웃었다.“무슨 소리야? 민영이는 내 마음속에서 그냥 여동생 같은 존재야.”조민영은 진서준의 마음속에서 아무런 연애 감정도 없는 단순한 가족 같은 존재였다.조민영은 진서라처럼 진서준이 보호해 주고 싶은 대상일 뿐이었다.“흥, 너희 남자들 속은 뻔히 보인다고.”허윤진은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294화

    지금 허순재가 진서준과 말다툼을 벌이는 상황에서 허사연이 진서준을 편들지 않을 리 없었다.“작은할아버지, 제 남자 친구 문제는 이제 그만 신경 쓰세요. 그리고 윤진 남자친구 문제도요. 이런 건 작은할아버지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에요.”허순재의 동공이 흔들리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이를 꽉 악물었다.불효녀들이 오늘 여기서 대역죄를 저지르는 판이었다.옆에 있던 변지오는 상황을 대충 이해하고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허 어르신, 보아하니 허씨 가문 젊은이들이 당신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것 같군요. 사실 오늘 밤 우리 범씨 가문 저택에서 여는 연회에 허씨 가문을 초대하려 했는데, 이제 보니 그럴 필요가 없겠네요.”변지오는 허순재가 만류하려는 것도 무시하고 곧장 허씨 가문 저택을 떠났다.허순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허사연과 허윤진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외쳤다.“너희 둘, 정말 날 화병으로 죽이려는 거야?”진서준의 눈빛은 싸늘했다.“당신이 사연과 조금이라도 혈연이 있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당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겁니다.”이 말은 허순재에게 겁주려고 위협하는 말이 아니었다.진서준은 이미 조씨 가문에서 조민영이 가문 사이 결혼을 강요당한 일을 듣고 내심 불쾌한 상태였다.그런데 허순재가 이번에는 허씨 가문을 위해 허윤진을 변지오에게 넘기려 하다니, 이건 진서준의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진서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하려는 자는 죽어 마땅했다.그런데 뜻밖에도 허순재는 피식 웃으며 진서준을 비꼬았다.“나도 한때 너처럼 젊고 겁 없던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곧 너희가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거야. 변씨 가문의 압도적인 실력은 너희처럼 세상 물정을 모르는 자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야.”허순재의 뻔뻔한 모습에 허사연은 역겨워 구역질이 났다.왜 지금까지 이 노인이 온순한 양의 가면을 쓴 늑대라는 걸 몰랐을까?“가자, 서준아. 여기 더 있을 필요 없어.”허사연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너희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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