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연회에 참석한 하객들은 전부 상류층의 유명 인사들이라 진서준처럼 평범한 옷차림의 일반인은 제지당하기 마련이다. 문 앞의 경호원은 이런 옷차림의 하객을 처음 본지라 바로 차단했다.“손님, 초대장 보여주시죠!”경호원이 진서준을 가로막으며 말했다.진서준은 차분하게 대답했다.“초대장 없어요.”“초대장 없으면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경호원이 야유 조로 말을 이었다.“밥 한 끼 얻어먹을 생각이라면 밖에 나가 우회전하시면 작은 식당이 하나 있거든요.”진서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경호원을 노려봤다.“나 이지성 찾으러 왔어. 들어가서 진서준 왔다고 전해. 바로 알아들을 거야!”경호원은 여전히 듣는 척도 않고 진서준을 내쫓으려 했는데 칼날같이 예리한 그의 눈빛과 마주한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알았어요... 지금 바로 가서 전할게요!”경호원은 종종걸음으로 이지성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이고 나지막이 말했다.“도련님, 진서준이라는 분이 도련님 찾으러 왔습니다.”경호원의 말을 들은 이지성은 눈을 가늘게 떴다.백일잔치가 끝나거든 그를 찾아가려 했는데 집 앞까지 먼저 찾아올 줄이야.연회장의 뭇사람들을 보며 이지성이 변우재에게 손짓했다.“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진서준 이 새끼가 지금 왔대. 이따가 들어오거든 너 애들 거느리고 그 자식 잘 감시해!”이지성의 눈가에 야유가 가득 찼다.“내가 오늘 이 새끼 서울시에서 이름 날리게 해 주겠어!”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있다.진서준이 만약 여기서 창피를 당한다면 앞으로 서울시에서 취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가장 중요한 건 연회가 끝난 후 이지성은 진서준도 제 엄마처럼 똑같이 장애인으로 만들어 종일 모욕을 당하게 할 생각이다!“네, 도련님!”변우재가 흥분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마치 진서준이 겪을 처참한 결말을 미리 보는 것만 같았다.문밖에서 진서준이 5분 정도 기다린 후 대문이 벌컥 열리고 변우재가 열댓 명의 건달들을 거느리고 그를 싸늘하게 쳐다봤다.“야 이 새끼야, 네가
그의 명령에 열댓 명의 경호원이 진서준을 둘러쌌다.덩치 큰 체구의 경호원들이 왜소한 체구의 진서준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주위를 둘러싼 하객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지켜볼 뿐 경찰에 신고하거나 앞장서서 말리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다들 진서준이란 젊은이가 조만간 죽을 거라고 여겼으니까.진서준이 한 걸음 내딛자 더킹 룸 전체가 뒤흔들렸다.그는 곧이어 경호원들에게 몸을 돌리고 가차 없이 돌진했다.퍼퍼퍽...고작 몇 개의 동작에 열댓 명의 덩치 큰 사나이들이 죽은 개처럼 바닥에 축 처졌다.이 광경을 본 모든 이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들 못 믿겠다는 눈길로 진서준을 쳐다봤다.바닥에 쓰러진 변우재는 발밑에 한기가 차오르고 떨리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이 자식 사람 맞아?’메인 석에 앉아있던 한 중년 남성이 이 장면을 지켜보더니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그가 바로 이지성의 아버지인 이혁진이자 이씨 일가의 세대주이다.그는 무인이라 진서준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적어도 그조차도 진서준의 상대가 될 수 없다.긴 단상 위에서 이지성은 부하들이 일격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에 욕설을 퍼부었다.“이런 쓰레기 같은 것들, 감방 다녀온 새끼 하나 못 제압해?!”진서준은 이지성을 쳐다보며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뭐... 뭐 하려는 거야?”이지성은 발끝에서부터 한기가 차올랐고 두 눈에 공포가 휩싸였다.“네가 우리 엄마 두 다리를 부러뜨렸지? 오늘 너도 똑같이 해준다!”엄마의 처참한 모습을 떠올리니 진서준의 눈가에 스친 살의가 더 짙어졌다.그는 한걸음에 이지성의 앞으로 돌진해왔다.이지성이 미처 정신 차리기도 전에 진서준이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이혁진이 말리려고 했으나 진서준의 속도가 너무 빨라 두 눈 뜨고 아들이 두 다리가 잘리는 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철컥철컥!”뼈가 부러지는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지성이 순간 바닥에 주저앉았다. 두 다리는 마치 꼭두각시처럼 전혀 통제되지 않았다.“으악...”처참한
이혁진은 허사연을 보자 활짝 웃으며 재빨리 그녀를 마중 갔다.“허사연 씨,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허사연이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누군가가 여기서 소란을 피운다고 들어 직접 확인하려고 찾아왔어요.”“일개 건달일 뿐이에요. 저희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으니 사연 씨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요.”이혁진이 손을 비비며 웃었다.“오늘 밤 호텔 내의 모든 손실은 전부 저희 가문에서 배상하겠습니다.”이혁재가 이토록 겸손하게 말하니 허사연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배상은 필요 없고 우리 호텔에서 허술하게 관리한 탓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으니 다 우리 쪽 책임입니다. 소란을 피운 자가 누구인지 얼른 확인해야겠네요.”이혁진이 앞에서 길을 안내했다.“네,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주변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또다시 쉬쉬거렸다. 진서준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연민과 야유가 가득 담겨 있었다.이씨 일가와 허씨 일가는 아예 같은 레벨이 아니다. 허씨 일가에서 손을 한 번 휘두르면 서울시 전체에 감당할 자가 몇 가문이 안 된다.이지성은 이리로 걸어오는 허사연을 보자 냉큼 눈물로 호소했다.“사연 씨, 저 새끼가 제 다리를 분질렀어요!”허사연은 그의 말을 듣더니 미간을 확 찌푸렸다.그녀가 오늘 이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허씨 일가는 서울시에서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걱정 마세요. 우리 가문에서 오늘 반드시 지성 씨 일을 원만하게 해결해드리겠습니다!”허사연이 엄숙하게 말했다.이 말을 들은 이지성은 기분이 째질 것만 같았다.그녀는 곧바로 시선을 돌려 한 무리 사람들을 훑어봤다.“대체 누가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운 건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요...”그녀는 말을 채 잇지도 못한 채 문득 입을 다물었다. 마치 누군가가 손으로 자신의 목을 꽉 잡는 것만 같았다.허사연은 진서준에게 시선이 꽂히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이지성은 그녀의 표정을 관찰하지 못하고 허리를 곧게 펴며 진서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진서준, 이 세상 물정도 모르는 건
강성철의 명성은 너무 큰지라 허씨 집안마저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진서준은 사연의 고려를 눈치챈 후 말했다.“허사연 씨, 사람을 데리고 돌아가세요. 이 일은 제가 처리하면 됩니다.”“당신이 직접 처리한다고?”이혁진은 비웃었다.“강성철 어르신께서 오시기만 하면 그쪽은 죽은 거나 다름없어!”사연은 어금니를 꼭 깨물고는 서준을 보며 말했는데 그녀의 시선은 아주 굳건했다.“진서준 씨, 당신은 저희 허씨 집안의 은인이세요. 그러니 저희는 절대 서준 씨를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사연의 이런 단호한 태도는 서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래. 당신이 정 허씨 집안을 이 구렁텅이에 빠뜨리게 하고 싶다면 내가 힘을 보태주지!”혁진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이를 갈았다. 그는 직접 성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래 성철이 그에게 진 신세를 써버리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소중한 기횐데 이런 작은 일에 사용하기엔 너무 아까웠다.그런데 만약 이씨 집안이 사연이 서준을 데려가는 것을 눈 뜨고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분명 상류사회의 비웃음을 자아낼 것이다.이후, 또 누가 이 씨네 와 비즈니스 합작을 하려 할 것인가!전화를 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호텔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오면서 뒤이어 소란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사람들은 호기심에 유리창 너머로 밖을 보았는데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래에는 사람들로 뒤덮여 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칼을 들었다. 호텔은 삽시에 이들에 의해 막혔다. 대략 세어보니 적어서 백 명이나 되었다.사연은 이 장면을 보자 간신히 갖고 있던 희망이 재가 되는 것을 느꼈다.그녀도 비록 경호원을 데리고 오긴 했지만 이십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십 명이 백명과 싸운다면 질 게 뻔했다. 더욱이 상대방은 무기도 들고 있었다.비록 강성철이 그녀를 어떻게 하진 못하지만 진서준은 분명 죽을 것이다.끼익...연회장의 문이 열리면서 스무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두 줄로 들어와서 일자로 늘어섰다. 그들은 전부 키가 백구십 정도였고 검은색 양복을 입고
성철의 부하가 움직인 것을 보자 겁이 많은 사람들은 눈을 막으면서 이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감히 보지 못했다.성철은 부하를 막지 않았다. 자신이 죽을 거라고 계속 말하던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보고 싶었다.하지만 시퍼런 칼이 서준의 팔에 닿으려 할 때 그는 움직였다.서준은 손을 내밀어 두 손가락으로 칼을 잡았는데 아주 안정적이었다.성철의 부하는 덩치도 컸고 키도 190이 넘었다. 몸엔 근육이 단단히 잡혀있었는데 마치 큰 돌덩이 같았다. 그러니 그의 힘은 비리비리한 서준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하지만 지금 서준은 두 손가락으로 그의 목숨을 앗아갈 뻔한 칼을 허공에 멈추게 했다.다들 입을 크게 벌렸고 성철도 제법 놀란 듯했다.젊었을 적 성철이라 해도 두 손가락으로 칼을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감히 나한테 칼을 휘두르다니, 죽지 못해서 안달이네요.”서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가락을 세게 튕겼다.펑!큰 소리 후 칼은 절반으로 갈라졌다.성철의 그 부하는 연이어 뒤로 물러서면서 탁자에 부딪혔다. 그때야 간신히 힘을 빼고 제대로 섰다.그때 그는 자신의 손이 찢기면서 선홍색 피가 용솟는 것을 발견했다.성철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서늘하게 말했다.“좀 배운 놈이구나. 그러니까 이렇게 날뛰는군.”“하지만 넌 상대를 잘 못 골랐어!”성철이 손을 쓸 거라고 생각한 찰나, 그의 머리 위에 달려 있던 샹들리에가 예고 없이 떨어졌다.이 위기의 순간에 성철의 부하 한 명이 힘껏 그를 밀어냈다.결국 이 부하는 성철 대신 떨어지는 샹들리에에 맞아 핏덩이로 되었다.서준도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순간 아직 경악 속에서 헤매고 있던 사연을 안고 새처럼 뒤로 몸을 날렸다.성철은 이 장면을 보자 심장이 미세하게 떨렸고 눈동자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만약 부하가 목숨으로 그를 구하지 않는다면 죽는 건 아마 그였을 거다.원래 성철은 이게 단순히 우연일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금 있다가 벌어지는 일은 그로 하여금 아까 서준이 했던 말을 믿게 하였다.
성철은 강인한 남자였다. 스스로 팔을 부러뜨리면서 아픈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손에 들고 있던 막대기를 버린 후 성철은 몸을 돌려 서준을 보았다.“선생님, 마음에 드십니까?”“음, 나쁘지 않군요.”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의 부하더러 붓, 주사 그리고 노란 종이를 가져오라고 해요.”곧 성철은 서준이 원하는 모든 물건들을 가져오게 했다.그는 종이를 탁자에 놓고 붓을 들어 주사를 먹으로 삼고 손을 휘저으며 재난을 막는 부적을 그렸다.“이걸 갖고 다니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성철은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얻는 것처럼 부적을 옷 주머니에 넣었다.예전엔 성철은 이런 풍수지리를 믿지 않았다. 미신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 그는 서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서준은 성철이 이 부적을 손에 넣은 후 그에게 해를 가하는 게 두렵지 않았다. 상대방을 살릴 수 있으면 당연히 그를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재난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선생님, 제가 뭘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말만 하시면 오늘 이씨 부자의 목숨을 끊을 수 있습니다.”이 말이 끝나자마자 이씨 부자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지면서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연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놀란 얼굴을 했다.“이렇게 죽이기엔 너무 아까워요. 가끔은 빈털터리로 사는 것도 죽음보다 잔인할 때가 있거든요.”홀의 기온은 서준이 이 말을 한 후 물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게 변했다.지수는 눈앞의 서준을 보았다. 정말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자신이 마음대로 괴롭히던 서준이 이렇게 변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녀는 서준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사람을 구하면서 세상을 어진 마음으로 대하는 의사,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악마.도대체 뭐가 진정한 너야?’“이지성, 얼마 남지 않은 즐거운 시간을 잘 보내길 바라.”말을 마친 후, 서준은 몸을 돌려 호텔 밖으로 나갔다.서준이 간 후, 성철은 혁진을 차갑게 쏘
희선의 말을 듣자, 서준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제가 전화해 볼게요.”서준은 핸드폰을 꺼내 서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두세 번이 지나도록 받는 사람이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점점 더 강해졌다.“어머니, 서라가 어디에서 출근해요? 제가 찾으러 갈게요.”“서라는 요즘 명성 호텔에서 출근해. 이 길 따라 남쪽으로 한 3킬로미터 정도 가면 돼.”희선은 창문 밖의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서라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서준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았다. 오분도 되지 않았을 때 그는 호텔 입구에 도착했다.이건 사성급 호텔이었는데 아까 서준이 갔던 오션 호텔과 비교할 수 없었다.그렇더라도 일반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서준은 빠른 걸음으로 호텔 안에 걸어갔다.호텔 로비에 서 있던 두 직원은 서준을 보자 얼굴에 경멸스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여기에서 일 년간 일하면서 서준처럼 두꺼운 낯짝으로 들어오는 가난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안녕하세요.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진서라가 여기서 일합니까?”서준은 직원 한 명 앞에서 예의 있게 물었다.하지만 직원은 불쾌하다는 듯 코를 막으면서 뒤로 반걸음 물러섰다.“조금 떨어져요. 본인 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는 줄도 몰라요?”오전 동안 바쁘게 다니다 보니까 몸에선 확실히 땀 냄새가 났다. 그러나 심하진 않았다.상대방이 자신을 깔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원하는 게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안합니다. 진서라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서준이 서라를 물어보는 것을 듣자 여직원의 두 눈엔 경멸로 가득했다.“진서라 취향도 참 독특하다니까. 이런 남자도 눈에 들어오나 보지?”다른 여직원이 이 말을 들은 후 함께 비웃었다.“전엔 그렇게 청순한 척하더니 지금은 자기를 갖고 논 남자가 이렇게 일하는 데까지 찾아오고 말이야.”두 사람이 자신의 동생을 모욕하는 것을 듣자 서준은 순간 화가 났다.가족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였다. 감히 함
십 분 전, 명성 호텔 매니저 사무실 안.“황 매니저님, 절 찾으셨어요?”서라는 긴장된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는 중년 남자를 보았다.중년 남자는 황고석, 바로 명성 호텔의 매니저였다.비록 마흔 살 초반이었지만 탈모가 너무 심한 나머지 머리카락이 얼마 붙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신장에 좋다는 보약을 많이 먹어서 평소에 몇 걸음 걷지 않아도 숨을 헐떡인다.하지만 그런 몸 상태를 갖고 있어도 그는 저질적인 눈빛으로 호텔 안의 여직원을 훑고 다녔다.소문에 의하면 호텔 안 얼굴이 반반하게 생긴 여직원들과 다 잤다고 한다.서라는 전부터 황고석의 암시를 받았지만 엄숙하게 거절했다.그 후, 고석은 서라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월급을 깎았다.만약 집에 진 빚만 아니었어도 일찍이 사직하고 그만뒀을 것이다.오늘 퇴근하기 전, 그는 서라를 사무실에 불렀다.“서라 씨, 최근 서라 씨에 대한 컴플레인이 들어왔어요.”고석은 음탕한 눈빛으로 서라를 훑으며 시도 때도 없이 입술을 핥았다. 서라는 이 장면을 보자 구역질이 났다.“컴플레인이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저는 호텔 룰에 따라 일했을 뿐이에요.”서라는 불쾌한 듯 말했다.“그건 전 모르죠. 아무튼 전 컴플레인을 받았어요.”고석은 시선을 거두고 한 쪽 다리를 탁자에 올려놓았다.“손님 한 분이 서라 씨를 곧 사퇴하라고 하던데, 어떡할까요?”서라는 순간 당황했다. 그녀는 얼른 고석에게 빌었다.“매니저님, 제발 절 사퇴하지 말아주세요. 집에 진 빚을 다 갚지 못했단 말이에요.”돈을 갚기 위해 서라는 하루에 알바 세 개를 뛰었다.아침에 일찍 일어나 국밥집에서 일했고 점심 때엔 명성 호텔에 갔다. 저녁에 퇴근한 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노래방에서 일하면서 하루에 6시간도 되지 않는 수면시간을 가졌다.그녀도 좋은 일자리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고졸이어서 웨이터 외 다른 직업은 그녀를 원하지 않았다.명성 호텔에서 잘린다면 단시간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건 괜찮지만 빚을 갚는 시간을 넘어서는 안 됐다.서라가 이
“좋아요, 번거롭게 해드려 미안하네요.”밤이 완전히 내려앉은 후, 소정태는 곧바로 사람을 시켜 진서준과 허사연 일행에게 방 세 개를 준비했다.방은 별로 화려하지 않고 심플하고 깔끔했고 필요한 물건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저녁 식사를 마친 뒤, 진서준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조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벨이 오래 울렸음에도 아무도 받지 않자 진서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진서준이 전화를 몇 번 더 걸어봤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조민영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지난번 양씨 가문에서 조민영은 자기 목숨을 걸고 진서준 앞을 막아섰다.그 용기 하나만으로도 진서준은 조민영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진서준의 마음속에서 조민영은 이미 친동생과도 같은 존재였다.“모레쯤 조씨 가문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봐야겠어...”봉천시.조씨 가문 저택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조씨 가문의 개인 병원 병실 내 조민영이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조민영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숨결이 미약했으며 기운은 극도로 쇠약했다.조민영 곁에는 조태희와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의 대머리 남성이 서 있었다.“장 의사님, 제 딸 상태가 어떻습니까?”조태희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장 의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가주님, 따님께서 단순히 병에 걸린 것이면 다행이었겠지만 문제는 병이 아니라 중독된 겁니다.”딸이 중독되었다는 말을 듣자 조태희의 얼굴이 굳어졌다.‘중독이라고? 언제 중독된 거지? 내가 왜 몰랐지?’“무슨 독에 중독된 겁니까?”지금 범인을 찾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선은 딸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였다.딸을 살린 후에 범인을 찾아도 늦지 않았다.“민영 아가씨 상태를 보아하니 칠채지독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이 독은 오독의 독액에 빙정과 천산설련을 섞어 만든 무색무취의 독입니다.”장 의사가 자세하게 독에 관해 설명했다.설명을 들은 조태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빙정과 천산설련은 매우 희귀한 약재로 천지산 근처에서만 발견될 수
뜨거운 김이 피어나는 욕조를 보며 소정태는 머리를 돌려 진서준에게 물었다.“진 교관님, 이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그래요, 근데 처음에는 좀 아플 거니까 꾹 참아야 해요.”진서준이 한마디 일러두었다.소정태는 이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소정태가 횡련 대종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여러 전장에서 생존한 덕분이었다.몸에는 칼자국과 총상투성이였고 아무리 강렬한 고통이라도 소정태는 견뎌낼 자신이 있었다.소정태는 옷을 단숨에 벗어 던지고 욕조로 뛰어들었다.그 순간, 소정태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고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강렬한 약효가 소정태의 근육과 뼈대를 자극하며 우두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결국 소정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괴로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진서준이 작성한 처방전은 단번에 효과를 발휘했다.잠깐 사이에 소정태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소정태의 고통스러운 비명은 무려 30분간 이어졌다.30분 후, 욕조 안의 약효는 완전히 사라졌고 피처럼 붉었던 욕조 물은 다시 맑고 투명해졌다.소정태를 다시 보니 온몸에서 이전보다 더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고 난 소정태는 드디어 경지를 돌파하게 된 것이었다.소정태는 일급 대종사의 절정 단계에서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다.평생 이급 대종사에 이르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진서준이 작성한 처방전 덕분에 단숨에 이급으로 돌파한 것이다.가슴 속에서 밀려오는 기쁨과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욕조에서 나온 소정태는 급히 옷을 입고 무릎을 꿇어 진서준에게 머리를 숙였다.“진 교관님, 당신은 제게 새 생명을 주신 분이나 다름없습니다.”진서준이 없었다면 소정태는 평생 이급 대종사라는 경지의 문턱에도 오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서준 덕분에 소정태는 단 30분 만에 평생 넘지 못할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진서준은 소정태를 일으키며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사령관님이 돌파할 수 있었던 건 사령관님이 이전부터 쌓아온
이때 병사들이 몰려와 허윤진에게 칭찬과 존경을 연신 쏟아냈다.“사모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젊으신데 벌써 종사라뇨.”“이런 대단한 사모님이 계시니 저희도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주변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사모님이라 부르자 허윤진은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허윤진은 허사연을 힐끗 쳐다보고는 서둘러 사람들을 정정했다.“저는 사모님이 아니에요. 저분이 사모님이고 저는 저분 동생이에요.”처제를 사모님으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다들 아부하려다 큰 실수를 한 셈이었다.사람들은 급히 허사연 곁으로 가서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사모님. 저희가 착각했어요. 마음에 두지 마세요.”“사모님, 저희 때문에 교관님과 다투지 마세요.”“진 교관님, 정말 죄송합니다...”진서준의 얼굴이 잔뜩 굳어지더니 병사들에게 소리쳤다.“다들 한가한 모양이지? 어서 가서 권법 연습이나 해.”백여 명의 병사들은 재빨리 진서준이 개량한 열풍권을 연습하러 뛰어갔다.“진서준, 방금 내 실력 어땠어?”허윤진은 깡충깡충 뛰어 진서준 앞으로 오더니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그러자 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칭찬했다.“정말 강하던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실력이 훨씬 늘었어.”“당연하지. 내가 누군데.”허윤진은 한껏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좋아, 너희는 알아서 구경하고 있어. 난 소정태의 상태를 좀 보고 올게.”소정태에게 중상을 입혔으니 진서준은 당연히 확인하러 가야 했다.진서준이 군구 병원에 도착했을 때, 간호사가 소정태에게 붕대를 감고 있었다.“진 교관님!”진서준이 오자마자 소정태는 벌떡 일어나 경례를 올렸다.“크게 다쳤는데 얼른 앉으세요.”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한쪽에 있던 간호사는 놀라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소정태가 어떤 사람인지 군구 전체가 다 알고 있었다.심지어 군구 최고 책임자를 마주해도 소정태는 항상 당당했다.그런 소정태가 이제 겨우 스무 살 넘은 청년에게 먼저 경례를
고소연은 설표 특전대에서 유일한 여성 종사였고 그 실력은 압도적이었다.장서안 같은 일반 대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부사령관인 박준명조차 고소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허윤진과 고소연의 대결 전, 사실 대다수 병사는 허윤진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여겼다.진서준이 강하다고 해서 그의 여자친구도 강할 거란 보장은 없었다.병사들은 두 사람을 위해 넓은 공터를 마련했다.“허윤진 씨, 실례하겠습니다.”고소연은 허윤진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저를 봐주지 말고 모든 실력을 보여주세요.”허윤진도 똑같이 예를 갖추어 답했다.그 말이 끝나자 고소연은 미세하게 다리를 굽힌 후 치타처럼 순식간에 허윤진을 향해 돌진했다.고소연의 속도는 너무 빨라서 주변에서 지켜보던 병사들의 시선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고소연이 자기 실력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허윤진의 눈빛에도 투지가 활활 불타올랐다.고소연은 허리를 낮춘 채 양손을 날카로운 발톱처럼 치켜들고 허윤진의 팔을 향해 덤벼들었다.고소연의 의도는 단순했다.허윤진을 다치게 하지 않고 제압하려고 했던 것이다.“마침 잘 왔네요.”허윤진은 체내의 영기를 모으더니 불꽃처럼 타오르는 기운이 그녀의 양손에 뿜어져 나왔다.이 광경을 본 병사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맙소사, 진 교관님의 여자친구도 종사였어?.”“세상에, 그래서 사모님이 고소연 부사령관님에게 대련을 신청했구나. 이제야 이해할 것 같네.”“사모님이라고? 야, 너 진짜 표현 잘한다.”곧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병사들 사이에서 퍼졌다.진서준은 그 단어를 듣자 얼굴이 어두워졌다.‘윤진은 내 처제가 아니야. 내 여자친구는 옆에 있는 사연이라고.’고소연은 허윤진도 종사라는 사실을 깨닫자 단전의 강기를 모아 기세를 더욱 끌어 올렸다.쾅...두 사람의 팔이 부딪히며 둔탁한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지면 위의 눈이 순간적으로 튕겨 나가며 사방으로 흩날렸다.허윤진은 제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고소연은 일곱 발짝 이상 뒤로 물러나며 겨우 몸을 가눴다.
진서준의 말에 소정태는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진 교관님.”소정태는 감격해하며 한마디 더 보탰다.“진 교관님, 제 식구는 이제 진 교관님께 전적으로 맡기겠습니다. 부디 제대로 된 훈련 부탁드립니다.”소정태가 떠난 후, 진서준은 백여 명의 병사를 평온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아직도 날 못 믿겠다는 사람이 있나요?”“없습니다. 우리 모두 진 교관님을 믿고 따르겠습니다!”병사들이 일제히 외치는 모습을 보자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그렇다면 특훈을 지금 바로 시작합시다.”진서준은 설교 특전대에서 주목을 받는 장서안을 가리켰다.“이리 와 보세요.”장서안은 바로 앞으로 나와 공손히 물었다.“진 교관님, 무슨 지시가 있으십니까?.”“아까 여러분이 연습한 그 권법을 한 번 더 보여줘요.”진서준의 말을 듣자 장서안은 망설임 없이 설표 특전대 특유의 열풍권을 선보이기 시작했다.열풍권이란 권법은 이름 그대로였다.모든 주먹과 발차기가 굉장히 빠르고 맹렬했으며 거의 내지를 때마다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이 권법은 특전대 병사들의 직업 특성과도 관련이 있었다.특전대 병사들은 다들 국가를 지키고 전장에서 적을 처치해야 하는 군인이었다.한 방에 적을 죽이지 못하면 죽는 건 바로 병사들 자신일 것이다.이러한 절박함 때문에 열풍권은 빠르고 강렬하기는 했지만 방어 자세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그래서 상대가 자기와 동등한 실력이라면 열풍권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나 상대가 더 강하다면 한 번의 공격 이후에 쓰러지는 건 오히려 아무런 방어도 없는 본인일 가능성이 높았다.진서준은 열풍권을 유심히 본 후 연신 고개를 저었다.“그 권법은 참 허점투성이군요.”“네?”진서준의 평가에 병사들은 전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이제 내가 그 권법을 개량해 줄 거니까 다들 집중해서 보세요.”진서준은 창욱 어르신의 가르침을 받는 3년 동안 권법, 발차기, 검술, 도법 등 다양한 기술을 익혔다.이렇게 여러 분야의
진서준의 속도는 이미 음속을 훨씬 넘어설 정도로 빨라 아무도 그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지 못했다.심지어 눈 위에도 발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병사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진서준이 이미 소정태의 바로 앞에 있었다.진서준이 모래 주먹 크기만 한 주먹으로 살짝 튕기는 듯한 동작을 하자 순식간에 수만 톤의 강력한 힘이 소정태의 가슴에 작렬했다.쿵!소정태는 곧바로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처럼 공중으로 날아가며 고막을 때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소정태가 날아간 방향에 따라 새하얀 눈밭 위로 엄청나게 긴 구덩이가 생겼다.멀리서 보면 초음속 전투기가 눈 위를 스치듯 비행하며 생긴 자국 같았다.소정태가 날아가는 동안 훈련장에 있는 장비들과 눈으로 덮인 나무들은 연달아 부서져 갔다.소정태는 수백 미터나 날아간 후에야 땅에 사나운 기세로 떨어졌다.순간, 훈련장은 완전히 정적에 빠졌다.하늘에서 내리던 눈송이조차 그대로 멈춘 듯이 공중에 멍하니 떠 있는 느낌이었다.모든 사람은 입이 떡 벌어져 사과 두 개는 들어갈 듯한 모습이었다.다들 도대체 뭘 본 거지?설표 특전대의 최고 전투력을 자랑하는 횡련 대종사가 겨우 손가락 하나를 맞고 이 지경으로 된 것이다.거의 평지가 된 훈련장과 숲을 보며 병사들의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휘둥그레졌다.소정태가 방심한 것도 같지 않았다.소정태가 아무리 방심했다 하더라도 진서준이 충분한 실력이 없었다면 소정태를 저렇게 멀리 날려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그리고 사실 소정태를 날려 보낸 게 아니라 진서준은 가볍게 튕겨 버린 것이다.하지만 그 충격은 개미가 코끼리를 넘어뜨린 것처럼 너무나 공포스러웠다.이제 병사들은 자연스레 공포에 사로잡힌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게 되었다.고소연과 박준명조차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아무리 최강의 흑린군 사령관이라고 해도 소정태를 이 정도로 날려 보내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대박이야. 이 진 교관이라는 사람은 대체 무슨 사람이지?’“사람을 찾아서 병원에 보내. 이대로 두면 죽을 거야.
“만약 이분의 교관 자격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언제든 진 교관에게 도전해. 진 교관은 절대 거절하지 않을 거야.”소정태는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진서준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태연하게 말했다.“여러분 사령관 말대로 앞으로 며칠 동안 저는 여러분의 교관입니다. 저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언제든 도전하세요. 하지만 제 시간이 많지 않아 이런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우리 할아버지께 약속드렸거든요. 여러분이 이번 8대 특전대 대회에서 우승하도록 훈련하겠다고요.”진서준의 말에 훈련장은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알고 보니 이 청년이 자기 할아버지의 추천으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그러니 이 청년의 거만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하지만 뒤에 나온 8대 특전대 대회 우승 이야기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병사들은 이건 분명 집안 어른들이 진서준의 경험이나 늘려주려고 이곳에 보냈다는 걸 이미 알아챘다.문제는 이번에 저 청년 집안에서 틀린 장소에 청년을 보냈다는 것이다.설표 특전대은는실력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곳이었다.아무리 높은 신분이어도 실력이 없으면 이곳에서는 누구의 인정도 받을 수 없었다.“진 교관, 일단 저는 개인적으로 당신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설표 특전대의 인재 장서안이 앞으로 나섰다.진서준은 장서안을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다른 사람은 다 저를 인정하는 겁니까?”“우리는 전부 인정하지 못합니다.”백 명의 병사가 동시에 외쳤다.병사들의 목소리는 하늘을 울릴 만큼 강렬했고 먼 산까지 울려 퍼졌다.소정태는 얕은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그렇게 잘난 척하던 자식이 어떻게 해결하려나 보자.’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병사들을 보고도 진서준은 전혀 화내지 않았다.병사들이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오히려 처음부터 진서준을 인정했다면 이상한 일이었다.“저는 여러분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괜히 여러분을 다치게 하면 훈련에 지장이 생길 테니까요.”진서준이
소정태의 얼굴은 물을 짜낼 만큼 어두워졌다.호국장군 진서훈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소정태는 방금 진서준에게 손을 대고도 남았을 것이다.설표 특전대 병사들이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그들은 소정태의 자식들이었다.부모의 눈앞에서 누가 감히 아이가 무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그건 부모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방금 설표 특전대 병사들이 약하다고 말했어?”이 말은 소정태의 치아 사이에서 억지로 새어 나온 것 같았다.“맞아, 내가 그랬어.”진서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의 직설적인 태도에 소정태는 화가 나서 웃음을 터뜨렸다.고소연과 박준명은 어느새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이건 소정태가 엄청난 분노를 터뜨리기 직전의 신호였다.이 진서준이라는 녀석은 이제 끝장났다고 볼 수 있었다.“그 병사들 앞에서 직접 그 말을 할 수 있겠어?”소정태는 웃음을 거두고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당연하지.”진서준은 여전히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소정태는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고소연과 박준명도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보고는 따라나섰다.“서준아,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면 병사들의 자신감을 꺾을 수도 있잖아.”허사연이 우려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그 병사들에겐 약간의 충격이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성장할 수 없어.”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뒤를 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진서준은 소정태 일행을 따라 훈련장에 도착했다.“집합!”소정태의 우렁찬 외침이 하늘을 찔렀고 그 소리의 충격에 지면에 쌓인 눈이 떨리는 듯했다.훈련에 여념이 없던 백여 명의 병사들이 단 3초 만에 소정태 앞에 깔끔하게 정렬했다.모두의 표정은 비장했고 한 명 한 명이 마치 투창처럼 곧게 서 있었다.소정태는 자기 병사들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오늘 너희를 위해 특별한 교관을 초빙했어. 근데 이분이 내 사무실에서 너희 실력이 너무 약하다고 하더군.”소정태의 말에 병사들의
진서준은 훈련장을 대충 훑어본 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병사들의 수준이 너무 낮았다.훈련 중인 100명 중 절반은 무인이 아닌 일반인이었고 내공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게다가 병사들이 사용하는 권법은 허점투성이였다.심지어 진서준이 감옥에서 막 출소했을 때조차 이들 100명을 혼자 상대하는 것도 거뜬했을 것이다.훈련장을 지나 진서훈 일행은 세 층짜리 하얀 건물로 들어갔다.그 건물의 한 사무실 안에는 전투복을 입고 위엄 넘치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남자의 존재감은 호랑이와 같았고 몸에서 피가 끓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으며 체내에는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었다.딱 봐도 횡련 대종사가 분명한 인물이었다.남자는 바로 설표 특전대의 사령관 소정태였다.노크 소리가 울리자 소정태는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들어와!”박준명은 문을 열고 진서준 일행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소정태는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그리고 위엄이 가득한 눈으로 박준명을 노려보며 물었다.“진 어르신이 약속한 교관은 어디에 있어?”보이지 않는 압도적인 기세가 박준명에게로 쏟아졌다.박준명은 그 기세에 눌려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박준명은 억지로 심호흡을 한 뒤 경례하고 나서 말했다.“사령관님, 이분이 바로 진 어르신께서 찾아주신 교관 진서준 씨입니다.”소정태는 순간 멍해졌고 자기 귀를 의심했다.박준명이 자기를 속일 리 없다는 걸 모른다면 아마도 박준명에게 귀싸대기를 날렸을 것이다.스무 살 조금 넘은 젊은 청년을 설표 특전대 교관으로 데려오다니, 이보다 더 어이없는 농담은 없을 것이다.“이분이 진 어르신이 추천한 교관이라고?”소정태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거의 고함을 지르듯 물었다.“맞습니다. 바로 이분이 진 어르신이 추천하신 교관입니다.”박준명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소정태는 그 말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꼼꼼히 살펴보았다.반소매 차림인 걸로 보아 약간의 실력은 있는 듯했지만 진서준의 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