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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무가
허사연은 재빨리 다가와 아빠가 깨신 걸 보더니 마음이 훨씬 놓였다.

“아빠, 좀 어때요?”

그녀가 물었다.

“많이 좋아졌어.”

허성태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그는 부영권을 보더니 그가 구해준 줄 알고 두 손을 맞잡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신의님, 구해주신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부영권은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아니라 우리 천기각 주인님께서 구해주셨어요!”

허사연은 난감한 표정으로 아빠에게 해명했다.

“아빠, 서준 씨가 구해드렸어요.”

“진서준 씨가?”

허성태는 의자에 앉아있는 진서준을 바라보며 감격과 흥분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 그는 진서준에게 두 번이나 구원받았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있을까?

“살려줘서 고맙네. 자네는 앞으로 우리 가문의 귀빈이야!”

진서준이 허씨 일가의 귀빈으로 거듭나자 병실 안에 있는 의사들은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허씨 일가는 서울시를 휘어잡는 존재이다!

그런 가문의 귀빈으로 된다는 것은 앞으로 평생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뜻이다!

게다가 진서준은 나이가 젊고 허성태의 두 딸도 아직 미혼이다.

어쩌면 허씨 일가의 따님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도 있다.

“다들 이만 물러가거라. 어르신 편히 쉬게 해드려.”

부영권이 병실의 의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감히 더는 머무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인파로 붐볐던 병실이 한순간 텅 비어버렸다.

“서준 씨, 저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저한테 연락 주세요.”

부영권은 개인 번호를 그에게 남겨주었다.

강남 명수 부영권의 개인 전화번호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10명을 초과하지 않는다.

허씨 일가라 해도 부영권 조수의 번호만 갖고 있다.

허성태는 부영권이 진서준에게 이토록 깍듯이 대하자 놀랍기도 하고 이해되지도 않았다.

번호를 받은 후 진서준도 몸이 거의 회복한 것 같아 자리를 떠나려 했다.

“저도 이만 가볼게요. 약재를 다 구하시거든 다시 연락 주세요.”

진서준이 말했다.

“잠깐만요, 서준 씨!”

허사연이 재빨리 그를 불러세웠다.

진서준은 눈썹을 살짝 치켰다.

“또 무슨 일이시죠?”

허사연은 두 볼이 살짝 빨개져서 나지막이 물었다.

“또 다른 분부하실 일은 없으세요?”

허사연의 수줍어하는 모습에 진서준은 그녀의 속셈을 바로 알아챘다.

“없어요.”

그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허사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눈가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부영권이 방금 진서준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그녀도 진서준의 의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바로 알아챘다.

이런 인물이라면 허씨 일가에서 반드시 쟁취해야 한다!

그리고 허사연은 사실 밝고 멋진 이 남자에게 나름 호감이 갔다.

“약재 다 구하시거든 연락 줘요.”

말을 마친 진서준은 곧게 문밖을 나섰다.

그가 떠난 후 허성태와 허윤진이 동시에 허사연을 쳐다봤다.

“아빠, 왜 그렇게 날 봐요?”

허사연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피했다.

딸을 아는 건 아빠밖에 없다고, 방금 그녀의 수줍어하는 모습에 허성태는 곧장 알아챘다. 그녀는 지금 진서준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고 있다!

“사연아, 아까 내가 기절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허성태가 웃으며 물었다.

허사연은 아빠가 용건을 묻자 얼른 방금 있은 일을 한 번 설명해 드렸다.

부영권 같은 큰 인물도 진서준에게 두 손 맞잡고 경례를 올렸다고 하니 허성태의 마음속에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역시 뛰어난 인재였어!”

허성태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어서 그는 허사연에게 말했다.

“너 얼른 진서준 씨 쫓아가서 글라리아 A급 별장을 선물해 드려.”

허윤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빠, 그 별장은 아빠가 무려 400억을 들여서 산 거예요!”

“단돈 400억이 뭘? 진서준 씨와 친하게 지낼 수만 있다면 2000억도 가치가 있어!”

허성태가 확고한 눈빛으로 말했다.

“강남의 은씨 일가라고 들어봤어?”

허성태가 화제를 돌렸다.

강남의 은씨 가문은 첫째가는 재벌 가문이라 권력과 자산이 하늘을 찌른다. 그들은 무려 경성의 4대 가문과 어깨를 견주는 수준이다.

허윤진이 머리를 끄덕였다.

“네, 알아요.”

“그해 은씨 일가는 부영권 신의의 도움을 빌려 부상할 수 있었던 거야. 부영권 신의의 라인을 통해 수많은 협력 파트너를 알게 됐지!”

허성태가 아득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윤진아, 너 그거 알아야 해. 신의란 의술만 대단하다고 되는 게 아니야. 신의는 다른 세가와의 협력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단다. 지금 우리가 진서준 씨와 가깝게 지낸다면 나중에 서준 씨가 성장했을 때 우리 가문도 서울시에서 일 순위로 꼽히는 가문으로 거듭날 수 있어!”

일 순위 가문? 허윤진은 입이 쩍 벌어졌다.

오직 한 사람으로 한 개 가문을 부상하여 일 순위 가문으로 거듭나게 해준다고?

...

오션 호텔 2층 더킹 룸에서 이지성이 한창 아들의 백일잔치로 분주히 보내고 있었다.

300평 되는 연회장에 하객들로 꽉 들어차 분위기가 들끓었다.

이씨 일가는 서울시 재벌 1위 가문은 아니지만 수천억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연회에 참석한 하객들도 모두 일반인이 아니었다.

조희선의 집에 찾아가 돈을 받아내려던 전갈남 변우재 일행이 씩씩거리며 이지성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귓가에 나지막이 구시렁댔다.

“도련님, 3년 전에 도련님께서 감방에 처넣은 그 병신 새X가 출소했습니다!”

“진서준이 출소했다고?”

이지성은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 새끼가 우릴 이렇게 만들었어요. 실력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변우재는 분노가 채 가시지 않은 듯싶었다.

이지성은 그를 힐긋 보더니 욕설을 퍼부었다.

“다섯이서 한 명도 못 감당해? 쓸모없는 것들, 이래서 무슨 일을 하겠어!”

변우재가 고개를 푹 떨구고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썩 꺼져! 연회 끝나거든 내가 직접 찾아갈 거야!”

더킹 룸 밖에서 진서준이 한창 문 앞의 경호원들에게 가로막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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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부에 잡혔어.”진서준의 말에 진서훈의 목소리가 다소 불쾌해졌다.“어느 군구야?”“너희는 어느 군구 소속이야?”진서준이 군관을 보며 물었다.“동부 임해 전구야.”“동부 임해 전구라고? 알았어. 지금 바로 사람을 보낼게.”진서훈은 여전히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전화를 끊은 후, 군관은 진서준의 휴대폰을 강제로 빼앗았다.하지만 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침묵만 지키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군부 사람들과 함께 차를 타고 두 시간 이상 간 후, 진서준 일행은 깊은 산속에 도착했다.마침내 차는 흑석영이라는 군사 기지에 도달했다.흑석영 군사 기지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죄수만이 갇히는 곳이다.일단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는 사람은 없다고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했다.차에서 내리자 진서준은 주변 환경을 천천히 살폈다.은은한 달빛과 반짝이는 별이 먹구름에 가려져 있었고 주변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었다.딱 봐도 곧 폭우가 쏟아질 것 같았다.그때 두 사람이 진서준과 황예은을 향해 다가왔다.“황예은 씨, 제 이름은 박신준입니다. 흑석영 군사 기지 총책임자입니다.”장군 훈장을 단 중년 남자가 차갑게 말했다.박씨 성을 듣자 진서준과 황예은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혹시 이 사람이 박씨 가문의 사람인가?하지만 황예은은 박씨 가문에 군부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왜 날 잡아들였죠?”황예은이 차가운 목소리로 따졌다.황예은은 장군급 군관을 상대하면서도 여전히 일말의 두려움도 없었다.“황예은 씨는 반역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박신준이 차갑게 말하자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간첩이냐 아니냐는 네가 잘 알지 않아?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까놓고 다 말하는 게 낫지 않겠어?”박신준의 얼굴을 보니 이전에 만났던 박진강과 조금 닮아있는 듯했다.이 사람은 박진강의 삼촌이나 큰아버지일 가능성도 있었다.박신준이 진서준을 힐끗 보더니 이내 부하들에게 지시했다.“이 두 사람 분리해서 구속해.”박신준이 두 사람을 따로 구속하려는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401화

    군부 사람들이 자기를 찾으러 온 것을 본 황예은은 눈꺼풀이 저절로 뛰기 시작했다.그동안 박씨 가문 회사를 전적으로 맡고 있는 동안, 황예은은 군부 사람들과는 전혀 교류가 없었다.국민은 절대 공무원과 싸우지 말고 공무원은 절대 군부 사람과 싸우지 말라는 말이 있다.역사적으로 군부는 언제나 국가의 최고 권력이었다.군부의 고위층을 건드리면 그 후엔 끔찍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진서준도 바로 그 군부 군관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알아보고 설표 특전대에서 교관직을 맡기로 했다.“제가 바로 황예은이에요. 무슨 일이죠?”군부가 무서운 존재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황예은의 말투는 여전히 그 여느 때와 다름없이 냉랭하고 자존심 강했다.그 군관은 황예은의 말을 듣고 얼굴에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우리의 조사에 따르면 넌 반역죄를 지질렀어. 넌 해외에서 우리나라에 침투한 간첩이야.”군관이 거친 목소리로 꾸짖었다.반역죄를 저지른 간첩이라고?황예은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황씨 가문은 대대로 대한민국에 충성한 가문인데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죄를 지을 수 있을까?이건 명백히 누군가 고의로 자기를 음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심지어 상대방은 자기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군부까지 동원했다.황씨 가문은 군부에 아무런 인맥도 없었다.지금 이 상태로 군부로 끌려가면 그 처참한 결말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이에요. 저는 절대로 간첩이 아닙니다.”황예은은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간첩인지 아닌지는 네 주장 하나로 해결할 수 없어. 우리와 함께 가서 조사받자.”군관도 똑같이 차가운 말투로 대응했다.그때, 진서준이 앞으로 나서서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누가 너희를 보냈어?”황씨 가문에 부귀전승이 존재하는 마당에 반역죄를 저지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황예은과 며칠을 함께 지내면서 진서준은 황예은이란 사람에 대해 자세하게 잘 알게 되었다.황예은은 극도로 자존심 강한 여자였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400화

    비밀 문 안으로 들어가니 아래는 온통 까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10여 미터를 걸어 내려가니 대략 10평 정도 되는 지하실이 나타났다.지하실은 매우 간소했고 고작 탁자 하나, 의자 하나, 침대 하나만이 놓여 있었다.그 탁자 위에는 오래되어 누렇게 바랜 고서가 놓여 있었고 첫 장에는 큼지막하게 ‘부귀전승’ 네 글자가 쓰여 있었다.“누님, 이거 우리 아빠가 남긴 거예요?”황현호는 탁자로 뛰어가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5년 전, 아빠가 신비스러운 태도로 날 불러 여기로 데려왔었어.”황예은의 눈빛은 추억에 젖은 듯했다.“그땐 아빠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건 널 위해 준비해 둔 것 같아.”그때 황경영은 황예은에게 이렇게 말했다.“황씨 가문에 큰 위기가 닥치면 현호 혼자 이 비밀 공간으로 내려와 책에 적힌 전승을 배우게 해.”황예은은 이미 이 책을 읽고 따라 연습해 본 적이 있었는데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당시 황예은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자기처럼 똑똑한 사람도 장악하지 못한 걸 머리가 둔한 황현호가 배울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황현호는 부귀전승을 집어 들고 몇 장 넘겨보더니 곧 그 책에 푹 빠져들었다.“보아하니 이 책은 우리 동생을 위해 준비된 게 맞는 듯하군.”황현호의 몰입한 모습을 보며 황예은은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너 아까 왕권부귀라고 했잖아. 그럼 혹시 왕권전승 같은 것도 있는 거야?”황예은의 질문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당연하지. 다만, 왕권전승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나도 몰라.”국가급 지도자는 몇몇밖에 없었지만 진서준은 쉽게 추측할 수 없었다.과거 왕권과 부귀는 막상막하의 힘을 자랑했지만 과학 기술이 급속히 발전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부귀의 세력은 왕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뒤처졌다.황예은은 진서준을 향해 고개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진서준, 정말 고마워.”“내가 너희를 도운 건 단순히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들으려고 한 게 아니야.”진서준이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99화

    왕권부귀!이건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무도 수련의 체질이었다.예전에 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에게 이 체질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부귀의 체질은 그 자체로 부귀의 기운을 지니고 있어 무도를 수련하지 않더라도 가문을 번영하게 할 수 있었다.반면, 왕권의 체질은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이 체질은 가문을 승승장구하게 하고 국가급 지도자 한 명은 반드시 배출해 낼 정도의 체질이었다.약 10분 뒤, 진서준은 황현호의 복부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끝났어.”황현호는 몸이 한결 가벼워졌음을 느꼈다.가장 놀라운 건, 황현호의 체내 에너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황현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손발을 움직여보더니 진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네가 날 살리면 내 단전이 없어질 거라고 했잖아. 근데 왜 멀쩡하지?”황예은 또한 의아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황예은은 특히 진서준이 언급했던 ‘부귀의 체질’이라는 말에 더 신경이 쓰였다.진서준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힐끔 바라보며 눈짓을 보냈고 황예은은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 말했다.“다들 일단 여기서 나가.”방에 진서준과 황예은, 황현호 세 사람만 남자 진서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왕권부귀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어?”“그게 뭔데?”황현호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황현호는 예전부터 먹고 놀고 즐기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반면 황예은은 어딘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내가 기억하기론 아빠가 그런 말을 언급한 적이 있어. 근데 그땐 나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진서준은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다.“황경영 씨가 너희에게 뭔가 남겨준 게 없냐?”대한민국의 최고 갑부 황경영이 장악한 정보는 적지 않을 게 분명했다.그러니 아마 황현호가 부귀의 체질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다만 황현호가 무도를 배울 생각이 없어 보이자 굳이 말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황현호의 태어난 부귀의 체질을 활용하지 않는 것은 진정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98화

    “어떻게 낮춰야 할지 모르겠어.”황예은은 솔직히 털어놓았다.“제발, 이 두 글자만 붙이면 돼요.”서지은의 조언을 들은 황예은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제발 내 동생을 구해줘.”“거 참 말투가 딱딱하네.”황예은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우리 동생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네가 동생을 살려준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뭐든 할게.”하지만 진서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봐...”황예은은 두 주먹을 꽉 쥐었고 손톱이 손바닥을 깊이 파고들었다.“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도 모르잖아. 그냥 돌아가.”진서준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존중을 원한다 이거지?”황예은은 이를 악물더니 다리를 굽혀 무릎을 꿇었다.이 장면에 서지은과 허윤진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심지어 진서준조차도 순간 표정이 굳었다.그렇게 자존심 강한 여자가 지금 이 순간 동생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이 사실이 소문으로 퍼지기라도 하면 명주시 상류층 사회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제발 우리 동생을 살려줘.”황예은은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그녀의 말투는 조금도 나약하지 않았다.“일어나.”“네가 허락하지 않는 한, 일어나지 않을 거야.”황예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내가 구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 없어.”진서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길 안내해.”황예은은 그 말에 눈빛을 반짝이며 곧장 일어나 진서준을 데리고 차에 올랐다.황씨 가문으로 가는 내내 진서준은 아무런 말이 없었고 황예은 역시 침묵을 지켰다.30분 남짓이 지나 병실에 도착했을 때, 황현호는 얼굴이 창백해 종잇장 같았고 근육은 다 풀어져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상태였다.그 모습은 꼭 열흘은 굶은 떠돌이와도 같았다.진서준은 황현호에게 다가가 손목을 잡았다.“조금만 더 늦었으면 진짜 죽었을 거야.”진서준이 의아해하며 말했다.다시 말해 지금은 아직 살릴 기회가 있다는 뜻이었다.황예은은 그 말을 듣고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진서준은 황현호를 바라보며 냉랭하게 말했다.“내가 널 살릴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97화

    “세상에 누가 다른 사람한테 부탁할 때 그렇게 거만한 태도로 말해?”황예은은 평생을 높은 자리에 있었기에 어떻게 진심으로 부탁해야 하는지 깔끔하게 잊어 버렸다.지금 황씨 가문 남매가 죽는다면 진서준도 딱히 개의치 않을 터였다.설령 두 사람이 정말 죽는다 해도 곧 다른 누군가가 빈자리를 메울 것이다.국가가 황씨 그룹 같은 거대한 기업이 갑작스럽게 붕괴하는 걸 두고 보진 않을 것이다.이전까지 진서준은 자기가 큰 착각의 늪에 빠져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바로 황씨 가문이 절대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존재인 양 여겼던 것이다.이 세상에서 사람은 전부 자기만의 개성이 있고 특별한 존재이긴 하지만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 안에서는 누구든 대체될 수 있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우리 동생, 이제 정말 죽을 것 같아.”황예은은 성질을 억누르며 말했다.“네 동생 생사가 나랑 무슨 상관인데?”진서준이 즉각 되물었다.“어제 내가 분명 경고했지? 그 공법 그만두라고. 근데 내 말 안 듣고 내가 사기꾼이라느니 뭐라더라? 이제 와서 죽을 거 같으니까 뒤늦게 후회해? 모든 건 그 자식 자업자득이야.”황예은의 마음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너 정말 이렇게 매정하게 굴 거야?”진서준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우리가 서로 정이라도 있었던가? 설마 내가 네 몸을 보고 만졌다고 해서 그게 정이라도 되는 줄 알았어? 미안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야.”이틀간 진서준은 황씨 가문 일을 말없이 도왔다.그런데 황씨 가문 남매의 태도는 어땠는가?한쪽은 하늘의 선녀처럼 거만하기 이를 데 없었고 다른 쪽은 의심과 비난만 일삼았다.그때 진서준이 분을 꾹 참으며 황현호에게 손대지 않은 게 오히려 관대한 처사였다.“어떻게 하면 내 동생을 구할 수 있어?”황예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태도를 보여줘 봐.”진서준이 진지하게 대답했다.의사를 구하려면 일단 태도를 바르게 해야 했다.진서준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구걸하라는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예의는 갖춰야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96화

    황현호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그 공법은 이제 그만두는 게 좋겠어.”황예은이 말에 황현호는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왜 그만둬야 하죠? 누님, 설마 그 녀석 말을 믿은 건 아니죠? 말해두는데, 그놈은 누님을 속이는 거예요. 나 이거 배운 지 몇 달 됐는데 아무 문제 없었잖아요. 문제가 있었으면 진작에 생겼겠죠.”진서준이 죽도록 싫은 황현호는 진서준의 말을 믿을 리 없었다.진서준이 하지 말라고 할수록 황현호는 오히려 더 하고 싶었다.말을 마친 황현호는 쏜살같이 밖으로 나가버렸다.다음 날 아침.하인이 급히 황예은을 흔들어 깨웠다.“아가씨, 큰일 났습니다!”“무슨 일이야?”황예은은 잠옷도 갈아입을 겨를 없이 문을 열었다.“도련님 상태가 뭔가 이상합니다!”그 말을 듣자 황예은은 하인을 따라 급히 달려 나갔다.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활기차 보였던 황현호는 지금 장원 앞마당에 엎드려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간질 발작을 일으킨 환자처럼 보였다.“현호야, 왜 그래?”황예은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주변에는 이미 황씨 가문의 주치의들이 와 있었고 다들 한참을 진단했지만 아무 이상도 찾지 못했다.“아가씨, 도련님은 조금 전까지 멀쩡히 수련하는 중이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떻게 된 건지 이렇게 쓰러져 일어날 수 없게 됐습니다. 저희가 방금 도련님을 진단해 봤지만 몸에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의사가 상황을 설명했다.“당장 병실로 옮겨!”황예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혹시 진서준의 말이 맞았던 걸까?“아야야! 좀 살살 들지 못해?”황현호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온몸의 뼈가 부서질 것 같았고 근육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와 도무지 참기 어려웠다.“어제 내가 분명 경고했지? 그 공법 그만두라고. 왜 끝까지 내 말 안 들어?”황예은은 답답한 듯 한숨을 쉬며 황현호를 나무랐다.“절대 공법 때문이 아니에요!”황현호는 이런 상태에서도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분명 내가 어젯밤에 제대로 못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95화

    “서준아, 황씨 가문으로 간다더니 웬일로 돌아왔어?”TV를 보던 서지은은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서지은은 아직 진서준과 황예은이 이미 틀어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황예은와 진서준, 두 사람 모두 성격이 워낙 강하다 보니 애인 관계는커녕 친구로 지내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었다.“그 여자는 새 경호원을 구했어.”진서준은 간단하게 대답했다.“서준아, 너희들 혹시 싸웠어?”서지은은 진서준의 표정에서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하지만 허윤진은 진서준과 황예은이 싸웠는지에 관해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진서준이 경호원 일을 그만둔 것이 잘된 일이라 여겼다.황예은은 명주시에서 소문이 자자한 으뜸가는 절세미인이었고 어마어마한 재산까지 겸비하고 있었다.진서준이 며칠이라도 황예은의 경호원를 하다 보면 혹시라도 그녀에게 홀려 넘어갈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그깟 경호원 그만두길 잘했어. 그 여자가 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도 돼?”허윤진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번엔 우리랑 시간 좀 보낼 수 있겠네.”“아니, 시간이 없어.”진서준은 손에 있던 자료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그건 뭐야?”허윤진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박씨 가문과 관련된 거야.”진서준이 간단하게 설명했다.“난 올라가서 이 자료부터 볼게. 너희들도 일찍 쉬어.”말을 마친 진서준은 자료를 들고 방으로 올라갔다.“이상하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허윤진은 진서준의 평소와 다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허윤진이 진서준을 알고 지낸 이래 이렇게 무겁고 침울한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말하기 싫으면 그냥 두자.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야.”서지은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 역시 눈에 걱정이 가득했다.사랑하는 사람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자기 기분도 좋을 리 없기 때문이었다.방으로 돌아온 진서준은 곧바로 황예은이 준 자료를 열어보았다.자료를 볼수록 진서준의 마음속 경악은 더 커졌다.박씨 가문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모든 자산을 해외로

  • 천기: 하늘의 뜻을 엿보는 자   제1394화

    황예은이 이때 깨어난 것이다.기절 상태에서 깨어난 황예은은 자기가 젖은 채로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상태라는 걸 깨닫고는 귀청이 터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우리 누님 왜 소리 지르는 거야?”황현호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네 누님은 괜찮아...”“헛소리하지 말고 얼른 누님 바꿔.”황현호가 단호하게 명령했다.툭!진서준은 가차 없이 전화를 끊고 곧바로 황예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소리는 왜 지르는 거야?”황예은의 체내에 있던 약물은 이미 다 제거된 상태였다.하지만 뽀얀 얼굴에는 여전히 옅은 홍조가 남아 있었다.그 모습만으로도 보는 사람을 취하게 할 정도였다.“여기가 어디야?”황예은은 몸을 이불로 감싸며 놀란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황예은은 기절하기 전의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누군가 자기에게 약을 먹이고 그 약기운에 눈앞의 이 남자를 강제로 키스했던 끔찍한 기억이 순간 떠올랐다.‘설마 이 남자가 이미 나를...’황예은은 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급히 머리를 이불 속으로 넣고 자기 몸을 확인했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하지만 온몸이 축축한 데다 속옷까지 젖어 있어 다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여기는 모텔이고 너와 대화하던 그 남자가 네게 약을 먹였어.”진서준은 덤덤하게 설명을 이어갔다.“체내 독소를 제거하려고 널 욕조에 넣은 거야.”“너... 혹시 나한테 무슨 짓 한 건 아니지?”황예은이 조심스럽게 묻자 진서준이 이내 되물었다.“무슨 짓 했다면 어쩔 건데?”황예은의 목숨을 구해줬는데 고맙다는 말은커녕 오히려 이런 소리를 듣다니. 진서준은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고 차갑게 말을 이었다.“별일 없으면 옷 입고 회사로 돌아가.”진서준이 화났다는 걸 눈치챈 황예은은 뭐라 해명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사실 황예은은 그냥 툭 던진 말일 뿐이었다.진서준이 정말 무슨 짓을 했더라도 황예은은 진서준을 탓할 자격조차 없었다.진서준이 아니었으면 황예은은 아까 그놈에게 이미 당했을 거였다.하지만 황예은의 도도하고 고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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