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분 전, 명성 호텔 매니저 사무실 안.“황 매니저님, 절 찾으셨어요?”서라는 긴장된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는 중년 남자를 보았다.중년 남자는 황고석, 바로 명성 호텔의 매니저였다.비록 마흔 살 초반이었지만 탈모가 너무 심한 나머지 머리카락이 얼마 붙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신장에 좋다는 보약을 많이 먹어서 평소에 몇 걸음 걷지 않아도 숨을 헐떡인다.하지만 그런 몸 상태를 갖고 있어도 그는 저질적인 눈빛으로 호텔 안의 여직원을 훑고 다녔다.소문에 의하면 호텔 안 얼굴이 반반하게 생긴 여직원들과 다 잤다고 한다.서라는 전부터 황고석의 암시를 받았지만 엄숙하게 거절했다.그 후, 고석은 서라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월급을 깎았다.만약 집에 진 빚만 아니었어도 일찍이 사직하고 그만뒀을 것이다.오늘 퇴근하기 전, 그는 서라를 사무실에 불렀다.“서라 씨, 최근 서라 씨에 대한 컴플레인이 들어왔어요.”고석은 음탕한 눈빛으로 서라를 훑으며 시도 때도 없이 입술을 핥았다. 서라는 이 장면을 보자 구역질이 났다.“컴플레인이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저는 호텔 룰에 따라 일했을 뿐이에요.”서라는 불쾌한 듯 말했다.“그건 전 모르죠. 아무튼 전 컴플레인을 받았어요.”고석은 시선을 거두고 한 쪽 다리를 탁자에 올려놓았다.“손님 한 분이 서라 씨를 곧 사퇴하라고 하던데, 어떡할까요?”서라는 순간 당황했다. 그녀는 얼른 고석에게 빌었다.“매니저님, 제발 절 사퇴하지 말아주세요. 집에 진 빚을 다 갚지 못했단 말이에요.”돈을 갚기 위해 서라는 하루에 알바 세 개를 뛰었다.아침에 일찍 일어나 국밥집에서 일했고 점심 때엔 명성 호텔에 갔다. 저녁에 퇴근한 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노래방에서 일하면서 하루에 6시간도 되지 않는 수면시간을 가졌다.그녀도 좋은 일자리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고졸이어서 웨이터 외 다른 직업은 그녀를 원하지 않았다.명성 호텔에서 잘린다면 단시간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건 괜찮지만 빚을 갚는 시간을 넘어서는 안 됐다.서라가 이
아까 서준에게 맞은 두 여직원도 위층에 올라왔다. 그들은 땅바닥에 널브러져있는 매니저를 보자 재빨리 달아갔다.“어머, 매니저님, 괜찮으세요?”“너희 둘은 눈깔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니? 이 꼴에 되도록 처맞았는데 괜찮을 리가 있어?”황고석은 두 여직원에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여직원은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억울함을 서라에게 퍼부었다.“진서라 씨, 당신 남매는 이제 끝이에요! 경비를 쳤을 뿐만 아니라 매니저님도 쳤으니 오늘 반드시 신고해서 당신들 감방에 처넣을 거예요!”여직원의 말을 듣자, 서라도 서준과 재회한 기쁨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서준이 다시 감방에 들어갈 것을 원하지 않아 연이어 사과했다.“죄송해요, 매니저님께서 제 몸에 손을 대려고 했어요. 그래서 오빠가 때린 거예요.”“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어떻게 너 같은 천한 년 몸에 손댈 수 있어? 분명 네년이 날 꼬신 거잖아!”고석은 큰 소리로 외쳤다.“그러니까요. 저희 매니저님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데요. 어떻게 서라 씨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지금 당장 신고해요. 절대 이 남매를 봐줘선 안 돼요!”서준은 서늘한 시선을 하며 고석을 향해 걸어갔다.“당... 당신 뭐 하려는 거야?”몸에서 전해지는 통증은 여전히 고석의 대뇌를 자극하고 있었다. 서준을 바라보는 눈길엔 두려움이 가득했다.“내 동생에게 사과해요. 그리고 사실대로 말해요.”서준은 서늘하게 말했다.“사실 같은 소리 하네요. 이 호텔 전부가...”여직원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쳤다. 순간 그녀는 멀리 날아갔다.“계속 내 동생을 모욕하면 영원히 그 입 닥치게 해줄 거예요!”서준의 몸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는데 사무실 공기마저 얼어붙을 정도였다.아까 서라와 안을 때 그녀의 맥을 짚어보았다. 서라의 신체 내 여러 기관의 기능이 극도로 약해진 것을 발견했다.이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고강도로 일하느라 초래된 증상이었다.이 집을 위해 서라가 너무 많이 희생했다.서
고석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맞은 건 그인데 왜 잘렸는지 말이다.“사장님, 뭔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이년이 먼저 절 꼬셨어요. 그리고 맞은 것도 전데 왜 절 자르세요?”고석은 억울한 표정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사장을 보며 말했다.“당신을 꼬셨다고요?”연아의 시선은 매우 차갑고 날카로웠다. 이 한눈에 고석은 마치 얼음으로 가득한 구렁텅이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거울 좀 봐요. 당신 꼴이 어떤지.”다른 직원들은 이 말을 듣자 입을 막으면서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아까 고석의 편을 들던 두 여직원은 서로를 바라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고석은 마흔 살이 넘었고 머리카락도 몇 가닥 붙어있지 않았으며 얼굴에 잡힌 살은 반사될 지경이었다.호텔 매니저만 아니었어도 직원들이 그와 말을 섞는 일은 없었을 거다.“사장님, 그 말은 좀 아니라고 생각해요.”고석은 살짝 내키지 않았다.“제가 생긴 건 이래도 적어도 호텔 매니저예요! 저에게서 뭔가 얻으려고 꼬신 게 분명하다니까요! 하지만 전 매우 정직한 사람이니 이런 규율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어요.”고석은 정의가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는데 연기 실력은 현재 젊은 배우를 뛰어넘을 정도였다.하지만 현장에 있는 직원은 잘 알고 있었다. 고석은 직원의 월급을 착취하고 호텔 공금을 빼돌린 뱀파이어라는 것을.해가 서쪽에서 떴다는 것을 믿을지언정 고석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본분을 지킨다는 개소리를 믿지 않을 것이다.연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이 년 동안 비록 호텔에 와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당신이 한 짓을 모를 줄 알았어요?”강한 아우라에 고석의 이마엔 식은땀이 났다.“사장님, 잘못 생각하신 거 아니에요? 전 절대 사장님에게 미안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이 년 동안 고석은 확실히 호텔의 공금을 많이 탐냈고 만약 연아가 정말 그를 고소한다면 후반생은 족히 감방에서 보낼 수 있었다.“황고석 씨, 당신 동생이 내 아래에서 일을 착실하게 하지만 않았어도 당신은 이미 감방에 들어갔어요.
연아의 비서는 더는 참지 못하고 뒤에 있던 경호원에게 말했다.“어서 이 막말하는 경호원을 내던져요!”경호원이 손을 쓸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때 연아가 입을 열었다.“내 몸에 질병이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이 말이 끝나자마자 비서 이지연과 서라는 깜짝 놀랐다.연아에게 정말 질병이 있다고? 그럴 리가!“당연히 눈으로 보아낸 거죠.”서준은 담담하게 웃었다.“한의학엔 네 가지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바로 환자의 병세를 보고, 듣고, 묻고, 맥을 짚어 보는 것입니다. 당신의 병은 실력 있는 한의사라면 한눈에 보아낼 수 있어요.”서준이 자화자찬하는 것이 아니었다. 연아의 한기는 너무 심했다. 삼 미터 밖에 있는 서준도 선명히 느낄 정도였다.이건 그녀의 차가운 아우라에서 나오는 기운이 아니라 그녀의 몸 내부였다.이 점에 대해 다른 사람은 잘 느껴지지 않겠지만 에너지가 있는 서준은 선명히 느껴졌다.“잘난 척 좀 그만해요.”잠시 멈칫한 후 지연이 화를 내며 말했다.“그쪽 모양새를 보니 대학을 금방 졸업한 것 같은데 학교에서 몇 년 공부 좀 했다고 정말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보죠?”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의술의 높고 낮음은 나이를 본다.만약 상대방이 60살이 넘는 어르신이었다면 믿음이 가지만 상대방이 금방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라면 감히 그에게 자신의 병을 맡길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나이가 의술이라는 생각은 이미 사람들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었다.그래서 지연이 깔볼 때 서준은 신경 쓰지 않았다.연아도 서준의 의술을 의심했다.그는 연아에게 웃으며 말했다.“사장님은 찬 음식과 찬 맥주를 마시지 못해요, 매번 이런 음식을 먹을 때마다 심장과 위에 통증을 느끼죠. 그리고 내분비가 그렇게 균형되지 못하고 매달 월경 기간 많은 양의 피를 흘리죠.”서준의 말을 듣자 연아의 표정은 급변했다.다 맞는 말이었다.“당신의 체온은 점점 낮아져요. 비록 당신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가까이 오는 사람들은 한기를 느끼곤 해요.”이번엔 지연이 놀
얼굴은 아름다웠고 몸은 옥처럼 희고 고왔는데 흠잡을 곳이 없었다.좋은 몸매에 걸쳐진 속옷은 남자의 신경을 자극했다.서준은 잠시 멈칫한 후, 정신을 바로잡고 속으로 장청결을 읊으며 욕구를 떨쳐버렸다.서준은 정상적인 남자였다. 장청결을 수련했지만 연아의 완벽한 몸을 보았을 때 조금의 욕구가 생겼다.하지만 그는 욕구가 활활 타오르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었다.지연은 서준이 이렇게 빨리 마음을 다잡은 것을 보자 조금 놀랐다.여자인 그녀도 연아의 완벽한 몸을 보았을 때 자신의 손을 통제할 수 없었는데 남자인 서준은 덜 할까.서준은 침대에 걸어가 연아의 곁에 섰다. 그는 연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가 아까보다 더 심한 것을 발견했다.연아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속으론 무척 긴장했다. 그래서 몸이 조금 떨렸다.서준은 연아의 허리 부근에서 숨겨진 청색 기운을 발견했다.그건 바로 한기가 모여있는 곳이었다.서준은 소독한 침을 꺼내 연아의 허리 부근에 놓았다.“긴장 풀어요.”서준이 위로해 주었다.경직되었던 그녀의 몸이 점점 풀렸을 때 서준은 계속 침을 놓았다.여섯 바늘이 떨어진 후, 서준은 체내의 에너지를 돌리며 바늘을 통해 연아의 복부에 밀어 넣었다.에너지가 들어가면서 청색 기운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따뜻한 기류를 느끼자 연아는 너무 편한 나머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냈다.“사장님, 왜 그러세요?”곁에 있던 지연이 이 소리를 들은 후 즉시 물었다.“괜... 괜찮아요.”연아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너무 편해서 낸 소리라고 말할 리가 없었다.곧이어 형용할 수 없는 편안한 느낌이 밀물처럼 한 번 또 한 번 밀려왔는데 점점 참기 힘들었다.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지연에게도 잘 들리는 소리를 냈다.사람의 마음을 간질간질 건드리는 그런 소리였다.아직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한 지연은 이 소리를 들은 후 얼굴이 달아올라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하지만 얼음 같은 사장님이 이렇게 낯 뜨거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걸 보니 도대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기도 했
은행을 지날 때, 서준은 사연에게서 받은 수표를 생각하며 고민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안에 들어갔다.이삼 년 동안, 희선과 서라는 많은 고생을 했다. 이젠 서준이 돈을 벌었으니 당연히 가족들에게 좋은 생활을 제공하고 싶다. 은행에서 업무를 처리하려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서준은 로비 직원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수표를 어디서 현금화할 수 있나요?" "진서준 아니야? 네가 감옥에서 나왔어?" 이 순간, 진한 향수 냄새가 몰려왔고, 그 후에 키가 크고 아름다운 여성이 서준의 앞에 나타났다. 서준은 상대를 보자 미간을 찌푸렸다.이 여자는 장혜윤, 서준의 대학 동기였다. 서준과 지수가 사귀기 전에 혜윤은 그를 쫓아다녔지만 서준에게 거절당했다. 그 후, 헤윤은 마음에 원한을 품고 서준에 대한 다양한 루머를 퍼뜨리며 다녔다. 삼 년 전, 서준이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후, 혜윤은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세계 모든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소식을 반급 채팅에 올리기까지 했다.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수표를 현금화하려고 하는 거야? 진짜 웃기다.”혜윤은 비꼬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출근해야 해서 지수 아들의 백일잔치에 참석하지 않았다. 지금 전에 자신이 좋다고 쫓아다녔던 남자가 이 꼴로 사는 것을 보자 혜윤은 더 비웃고 싶었다."모르지? 지수는 이씨 집안의 도련님과 결혼해서 이미 아들을 낳았어. 한때 너는 자수를 위해 희생해 줬지만, 네가 감방 생활할 때 이씨 집안 도련님과 결혼했어.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너무 웃겨." 혜윤의 목소리는 엄청 컸고, 업무를 처리하려고 온 사람들도 모두 주목했다. 서준에 대한 소식을 듣고 난 뒤, 사람들은 즉시 그를 가리키며 궁시렁거렸다. "장혜윤, 얘기할 때 좀 조심하는 게 좋겠어."서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은행 고객이야. 여기서 수표를 현금화하러 온 거지, 네 수모를 겪으려고 온 게 아니야!"혜윤은 팔짱을 끼며 무시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주위의 사람들은 진서준이 범죄자였다는 소문을 듣고는 이 수표가 손버릇이 나쁜 진서준이 훔친 것이라고 생각했다.전과가 있기 때문에 누구도 진서준의 말을 믿지 않았다.몇몇 여직원은 입꼬리를 치켜들고는 경멸에 찬 표정을 지었다.‘3년 동안이나 감옥에 있었으면서도 결국 물건을 훔치는 본성은 고쳐지지 않았구나. 정말 쓰레기네.’이내 형사 두 명이 은행에 도착하였다.“형사님, 이 사람이 20억짜리 수표를 훔쳤어요. 절대 여기서 빠져나가게 하지 마세요.”장혜윤이 진서준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그중 사각형 얼굴의 한 형사가 진서준을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이 수표 당신이 훔친 겁니까?”“당연히 아니죠. 이 수표는 주인께서 저한테 주신 겁니다.”진서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바로 이때, 정장 차림을 한 중년 남자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무슨 일인가요?”그 사람을 발견한 장혜윤은 이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지점장님, 이 사람이 훔친 수표로 돈을 꺼내려 합니다.”최우식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장혜윤의 말이 좀 석연치 않다는 걸 느꼈다.수표라는 건 막 함부로 훔칠 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최우식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장혜윤은 이내 진서준이 전과가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가 전과자였다는 얘기를 듣고 최우식과 두 명의 형사는 장혜윤의 말을 반쯤 믿기 시작했다.장혜윤은 진서준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진서준, 빨리 죄를 인정하는 게 어때? 안 그럼 또 감방에 갈지도 몰라.”“넌 2년 동안이나 옥살이를 한 경험이 있으니 그곳이 얼마나 복잡한 곳인지는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한편, 최우식은 장혜윤을 향해 입을 열었다.“수표 한번 줘봐요.”그녀는 냉큼 최우식에게 수표를 건네주었고 수표를 건네받은 최우식은 수표 위의 사인을 확인하고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간이 부었군요. 감히 허성태 씨의 수표를 훔치다니.”허성태는 서울시 몇몇 은행의 VIP 고객이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은행의 지점장들은 허성태의 사인을 알고 있었다.
20억짜리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 은행 카드에 입금한 후 진서준은 현금 40만 원을 꺼내 집으로 향했다.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과일 가게에 들러 과일을 많이 샀다. 거의 집에 도착했을 때, 진서라가 길가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오빠.”눈치가 빠른 진서라는 진서준을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이렇게 더운 날씨에 왜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땀으로 범벅이 된 진서라를 보며 진서준은 가슴이 아팠다. “안 더워.”진서라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진서준의 손에 든 과일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오빠, 무슨 과일을 이렇게 많이 샀어?”“얼마 안 돼. 집에 가서 밥 먹자.”진서준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 과일은 모두 합쳐도 2만 원밖에 되지 않았지만 진서라와 조희선한테는 명절에도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지난 3년 동안 두 사람은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응.”진서라가 주머니를 들어주려고 손을 뻗자 진서준은 그녀를 막아서고는 계속해서 집으로 걸어갔다. 양철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뜨거운 폭풍이 몰아치는 느낌이 들었다. 양철집에는 단열재가 전혀 없었고 태양이 오전 내내 내리쬐고 있어 방 안의 온도는 거의 50도에 도달하여 찜질방보다 더 뜨거웠다. 아까 만든 음식이 이미 다 상해 버린 탓에 조희선은 더위를 무릅쓰고 다시 음식을 하고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진서준은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어머니, 요리 그만하세요. 지금 당장 이사해요. 이사하고 나서 서라랑 목욕하러 갔다 오시면 우리 큰 호텔에 밥 먹으러 가요.”“오빠, 이사라니? 우리가 어디로 이사 간다는 거야?”“글라리아 별장. 내가... 아니, 우리 사장님께서 잠시 빌려주셨어.”진서라는 조희선에 비해 아는 것이 많았다. 글라리아 별장이라는 말을 듣고 그녀는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그곳은 서울시에서 가장 호화로운 별장 단지였고 재벌이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살 수 있는 곳이었다.“왜? 오빠 못 믿겠어?”진서라의 놀란 표정을 보며 진
“좋아요, 번거롭게 해드려 미안하네요.”밤이 완전히 내려앉은 후, 소정태는 곧바로 사람을 시켜 진서준과 허사연 일행에게 방 세 개를 준비했다.방은 별로 화려하지 않고 심플하고 깔끔했고 필요한 물건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저녁 식사를 마친 뒤, 진서준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조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벨이 오래 울렸음에도 아무도 받지 않자 진서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진서준이 전화를 몇 번 더 걸어봤지만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조민영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지난번 양씨 가문에서 조민영은 자기 목숨을 걸고 진서준 앞을 막아섰다.그 용기 하나만으로도 진서준은 조민영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다.진서준의 마음속에서 조민영은 이미 친동생과도 같은 존재였다.“모레쯤 조씨 가문에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봐야겠어...”봉천시.조씨 가문 저택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조씨 가문의 개인 병원 병실 내 조민영이 조용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조민영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숨결이 미약했으며 기운은 극도로 쇠약했다.조민영 곁에는 조태희와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의 대머리 남성이 서 있었다.“장 의사님, 제 딸 상태가 어떻습니까?”조태희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장 의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가주님, 따님께서 단순히 병에 걸린 것이면 다행이었겠지만 문제는 병이 아니라 중독된 겁니다.”딸이 중독되었다는 말을 듣자 조태희의 얼굴이 굳어졌다.‘중독이라고? 언제 중독된 거지? 내가 왜 몰랐지?’“무슨 독에 중독된 겁니까?”지금 범인을 찾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선은 딸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였다.딸을 살린 후에 범인을 찾아도 늦지 않았다.“민영 아가씨 상태를 보아하니 칠채지독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이 독은 오독의 독액에 빙정과 천산설련을 섞어 만든 무색무취의 독입니다.”장 의사가 자세하게 독에 관해 설명했다.설명을 들은 조태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빙정과 천산설련은 매우 희귀한 약재로 천지산 근처에서만 발견될 수
뜨거운 김이 피어나는 욕조를 보며 소정태는 머리를 돌려 진서준에게 물었다.“진 교관님, 이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그래요, 근데 처음에는 좀 아플 거니까 꾹 참아야 해요.”진서준이 한마디 일러두었다.소정태는 이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소정태가 횡련 대종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여러 전장에서 생존한 덕분이었다.몸에는 칼자국과 총상투성이였고 아무리 강렬한 고통이라도 소정태는 견뎌낼 자신이 있었다.소정태는 옷을 단숨에 벗어 던지고 욕조로 뛰어들었다.그 순간, 소정태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고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강렬한 약효가 소정태의 근육과 뼈대를 자극하며 우두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결국 소정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괴로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진서준이 작성한 처방전은 단번에 효과를 발휘했다.잠깐 사이에 소정태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소정태의 고통스러운 비명은 무려 30분간 이어졌다.30분 후, 욕조 안의 약효는 완전히 사라졌고 피처럼 붉었던 욕조 물은 다시 맑고 투명해졌다.소정태를 다시 보니 온몸에서 이전보다 더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고 난 소정태는 드디어 경지를 돌파하게 된 것이었다.소정태는 일급 대종사의 절정 단계에서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다.평생 이급 대종사에 이르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진서준이 작성한 처방전 덕분에 단숨에 이급으로 돌파한 것이다.가슴 속에서 밀려오는 기쁨과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욕조에서 나온 소정태는 급히 옷을 입고 무릎을 꿇어 진서준에게 머리를 숙였다.“진 교관님, 당신은 제게 새 생명을 주신 분이나 다름없습니다.”진서준이 없었다면 소정태는 평생 이급 대종사라는 경지의 문턱에도 오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진서준 덕분에 소정태는 단 30분 만에 평생 넘지 못할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진서준은 소정태를 일으키며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사령관님이 돌파할 수 있었던 건 사령관님이 이전부터 쌓아온
이때 병사들이 몰려와 허윤진에게 칭찬과 존경을 연신 쏟아냈다.“사모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젊으신데 벌써 종사라뇨.”“이런 대단한 사모님이 계시니 저희도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주변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사모님이라 부르자 허윤진은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허윤진은 허사연을 힐끗 쳐다보고는 서둘러 사람들을 정정했다.“저는 사모님이 아니에요. 저분이 사모님이고 저는 저분 동생이에요.”처제를 사모님으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다들 아부하려다 큰 실수를 한 셈이었다.사람들은 급히 허사연 곁으로 가서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사모님. 저희가 착각했어요. 마음에 두지 마세요.”“사모님, 저희 때문에 교관님과 다투지 마세요.”“진 교관님, 정말 죄송합니다...”진서준의 얼굴이 잔뜩 굳어지더니 병사들에게 소리쳤다.“다들 한가한 모양이지? 어서 가서 권법 연습이나 해.”백여 명의 병사들은 재빨리 진서준이 개량한 열풍권을 연습하러 뛰어갔다.“진서준, 방금 내 실력 어땠어?”허윤진은 깡충깡충 뛰어 진서준 앞으로 오더니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그러자 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칭찬했다.“정말 강하던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실력이 훨씬 늘었어.”“당연하지. 내가 누군데.”허윤진은 한껏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좋아, 너희는 알아서 구경하고 있어. 난 소정태의 상태를 좀 보고 올게.”소정태에게 중상을 입혔으니 진서준은 당연히 확인하러 가야 했다.진서준이 군구 병원에 도착했을 때, 간호사가 소정태에게 붕대를 감고 있었다.“진 교관님!”진서준이 오자마자 소정태는 벌떡 일어나 경례를 올렸다.“크게 다쳤는데 얼른 앉으세요.”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한쪽에 있던 간호사는 놀라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소정태가 어떤 사람인지 군구 전체가 다 알고 있었다.심지어 군구 최고 책임자를 마주해도 소정태는 항상 당당했다.그런 소정태가 이제 겨우 스무 살 넘은 청년에게 먼저 경례를
고소연은 설표 특전대에서 유일한 여성 종사였고 그 실력은 압도적이었다.장서안 같은 일반 대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부사령관인 박준명조차 고소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허윤진과 고소연의 대결 전, 사실 대다수 병사는 허윤진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여겼다.진서준이 강하다고 해서 그의 여자친구도 강할 거란 보장은 없었다.병사들은 두 사람을 위해 넓은 공터를 마련했다.“허윤진 씨, 실례하겠습니다.”고소연은 허윤진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저를 봐주지 말고 모든 실력을 보여주세요.”허윤진도 똑같이 예를 갖추어 답했다.그 말이 끝나자 고소연은 미세하게 다리를 굽힌 후 치타처럼 순식간에 허윤진을 향해 돌진했다.고소연의 속도는 너무 빨라서 주변에서 지켜보던 병사들의 시선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고소연이 자기 실력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허윤진의 눈빛에도 투지가 활활 불타올랐다.고소연은 허리를 낮춘 채 양손을 날카로운 발톱처럼 치켜들고 허윤진의 팔을 향해 덤벼들었다.고소연의 의도는 단순했다.허윤진을 다치게 하지 않고 제압하려고 했던 것이다.“마침 잘 왔네요.”허윤진은 체내의 영기를 모으더니 불꽃처럼 타오르는 기운이 그녀의 양손에 뿜어져 나왔다.이 광경을 본 병사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맙소사, 진 교관님의 여자친구도 종사였어?.”“세상에, 그래서 사모님이 고소연 부사령관님에게 대련을 신청했구나. 이제야 이해할 것 같네.”“사모님이라고? 야, 너 진짜 표현 잘한다.”곧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병사들 사이에서 퍼졌다.진서준은 그 단어를 듣자 얼굴이 어두워졌다.‘윤진은 내 처제가 아니야. 내 여자친구는 옆에 있는 사연이라고.’고소연은 허윤진도 종사라는 사실을 깨닫자 단전의 강기를 모아 기세를 더욱 끌어 올렸다.쾅...두 사람의 팔이 부딪히며 둔탁한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지면 위의 눈이 순간적으로 튕겨 나가며 사방으로 흩날렸다.허윤진은 제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고소연은 일곱 발짝 이상 뒤로 물러나며 겨우 몸을 가눴다.
진서준의 말에 소정태는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진 교관님.”소정태는 감격해하며 한마디 더 보탰다.“진 교관님, 제 식구는 이제 진 교관님께 전적으로 맡기겠습니다. 부디 제대로 된 훈련 부탁드립니다.”소정태가 떠난 후, 진서준은 백여 명의 병사를 평온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아직도 날 못 믿겠다는 사람이 있나요?”“없습니다. 우리 모두 진 교관님을 믿고 따르겠습니다!”병사들이 일제히 외치는 모습을 보자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그렇다면 특훈을 지금 바로 시작합시다.”진서준은 설교 특전대에서 주목을 받는 장서안을 가리켰다.“이리 와 보세요.”장서안은 바로 앞으로 나와 공손히 물었다.“진 교관님, 무슨 지시가 있으십니까?.”“아까 여러분이 연습한 그 권법을 한 번 더 보여줘요.”진서준의 말을 듣자 장서안은 망설임 없이 설표 특전대 특유의 열풍권을 선보이기 시작했다.열풍권이란 권법은 이름 그대로였다.모든 주먹과 발차기가 굉장히 빠르고 맹렬했으며 거의 내지를 때마다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이 권법은 특전대 병사들의 직업 특성과도 관련이 있었다.특전대 병사들은 다들 국가를 지키고 전장에서 적을 처치해야 하는 군인이었다.한 방에 적을 죽이지 못하면 죽는 건 바로 병사들 자신일 것이다.이러한 절박함 때문에 열풍권은 빠르고 강렬하기는 했지만 방어 자세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그래서 상대가 자기와 동등한 실력이라면 열풍권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나 상대가 더 강하다면 한 번의 공격 이후에 쓰러지는 건 오히려 아무런 방어도 없는 본인일 가능성이 높았다.진서준은 열풍권을 유심히 본 후 연신 고개를 저었다.“그 권법은 참 허점투성이군요.”“네?”진서준의 평가에 병사들은 전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이제 내가 그 권법을 개량해 줄 거니까 다들 집중해서 보세요.”진서준은 창욱 어르신의 가르침을 받는 3년 동안 권법, 발차기, 검술, 도법 등 다양한 기술을 익혔다.이렇게 여러 분야의
진서준의 속도는 이미 음속을 훨씬 넘어설 정도로 빨라 아무도 그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지 못했다.심지어 눈 위에도 발자국 하나 남지 않았다.병사들이 정신을 차렸을 땐, 진서준이 이미 소정태의 바로 앞에 있었다.진서준이 모래 주먹 크기만 한 주먹으로 살짝 튕기는 듯한 동작을 하자 순식간에 수만 톤의 강력한 힘이 소정태의 가슴에 작렬했다.쿵!소정태는 곧바로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처럼 공중으로 날아가며 고막을 때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소정태가 날아간 방향에 따라 새하얀 눈밭 위로 엄청나게 긴 구덩이가 생겼다.멀리서 보면 초음속 전투기가 눈 위를 스치듯 비행하며 생긴 자국 같았다.소정태가 날아가는 동안 훈련장에 있는 장비들과 눈으로 덮인 나무들은 연달아 부서져 갔다.소정태는 수백 미터나 날아간 후에야 땅에 사나운 기세로 떨어졌다.순간, 훈련장은 완전히 정적에 빠졌다.하늘에서 내리던 눈송이조차 그대로 멈춘 듯이 공중에 멍하니 떠 있는 느낌이었다.모든 사람은 입이 떡 벌어져 사과 두 개는 들어갈 듯한 모습이었다.다들 도대체 뭘 본 거지?설표 특전대의 최고 전투력을 자랑하는 횡련 대종사가 겨우 손가락 하나를 맞고 이 지경으로 된 것이다.거의 평지가 된 훈련장과 숲을 보며 병사들의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휘둥그레졌다.소정태가 방심한 것도 같지 않았다.소정태가 아무리 방심했다 하더라도 진서준이 충분한 실력이 없었다면 소정태를 저렇게 멀리 날려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그리고 사실 소정태를 날려 보낸 게 아니라 진서준은 가볍게 튕겨 버린 것이다.하지만 그 충격은 개미가 코끼리를 넘어뜨린 것처럼 너무나 공포스러웠다.이제 병사들은 자연스레 공포에 사로잡힌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게 되었다.고소연과 박준명조차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아무리 최강의 흑린군 사령관이라고 해도 소정태를 이 정도로 날려 보내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대박이야. 이 진 교관이라는 사람은 대체 무슨 사람이지?’“사람을 찾아서 병원에 보내. 이대로 두면 죽을 거야.
“만약 이분의 교관 자격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언제든 진 교관에게 도전해. 진 교관은 절대 거절하지 않을 거야.”소정태는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진서준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태연하게 말했다.“여러분 사령관 말대로 앞으로 며칠 동안 저는 여러분의 교관입니다. 저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언제든 도전하세요. 하지만 제 시간이 많지 않아 이런 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우리 할아버지께 약속드렸거든요. 여러분이 이번 8대 특전대 대회에서 우승하도록 훈련하겠다고요.”진서준의 말에 훈련장은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알고 보니 이 청년이 자기 할아버지의 추천으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그러니 이 청년의 거만한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하지만 뒤에 나온 8대 특전대 대회 우승 이야기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병사들은 이건 분명 집안 어른들이 진서준의 경험이나 늘려주려고 이곳에 보냈다는 걸 이미 알아챘다.문제는 이번에 저 청년 집안에서 틀린 장소에 청년을 보냈다는 것이다.설표 특전대은는실력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곳이었다.아무리 높은 신분이어도 실력이 없으면 이곳에서는 누구의 인정도 받을 수 없었다.“진 교관, 일단 저는 개인적으로 당신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설표 특전대의 인재 장서안이 앞으로 나섰다.진서준은 장서안을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다른 사람은 다 저를 인정하는 겁니까?”“우리는 전부 인정하지 못합니다.”백 명의 병사가 동시에 외쳤다.병사들의 목소리는 하늘을 울릴 만큼 강렬했고 먼 산까지 울려 퍼졌다.소정태는 얕은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그렇게 잘난 척하던 자식이 어떻게 해결하려나 보자.’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병사들을 보고도 진서준은 전혀 화내지 않았다.병사들이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오히려 처음부터 진서준을 인정했다면 이상한 일이었다.“저는 여러분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괜히 여러분을 다치게 하면 훈련에 지장이 생길 테니까요.”진서준이
소정태의 얼굴은 물을 짜낼 만큼 어두워졌다.호국장군 진서훈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소정태는 방금 진서준에게 손을 대고도 남았을 것이다.설표 특전대 병사들이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그들은 소정태의 자식들이었다.부모의 눈앞에서 누가 감히 아이가 무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그건 부모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방금 설표 특전대 병사들이 약하다고 말했어?”이 말은 소정태의 치아 사이에서 억지로 새어 나온 것 같았다.“맞아, 내가 그랬어.”진서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의 직설적인 태도에 소정태는 화가 나서 웃음을 터뜨렸다.고소연과 박준명은 어느새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이건 소정태가 엄청난 분노를 터뜨리기 직전의 신호였다.이 진서준이라는 녀석은 이제 끝장났다고 볼 수 있었다.“그 병사들 앞에서 직접 그 말을 할 수 있겠어?”소정태는 웃음을 거두고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당연하지.”진서준은 여전히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소정태는 더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고소연과 박준명도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보고는 따라나섰다.“서준아,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면 병사들의 자신감을 꺾을 수도 있잖아.”허사연이 우려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그 병사들에겐 약간의 충격이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성장할 수 없어.”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뒤를 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진서준은 소정태 일행을 따라 훈련장에 도착했다.“집합!”소정태의 우렁찬 외침이 하늘을 찔렀고 그 소리의 충격에 지면에 쌓인 눈이 떨리는 듯했다.훈련에 여념이 없던 백여 명의 병사들이 단 3초 만에 소정태 앞에 깔끔하게 정렬했다.모두의 표정은 비장했고 한 명 한 명이 마치 투창처럼 곧게 서 있었다.소정태는 자기 병사들을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오늘 너희를 위해 특별한 교관을 초빙했어. 근데 이분이 내 사무실에서 너희 실력이 너무 약하다고 하더군.”소정태의 말에 병사들의
진서준은 훈련장을 대충 훑어본 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병사들의 수준이 너무 낮았다.훈련 중인 100명 중 절반은 무인이 아닌 일반인이었고 내공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게다가 병사들이 사용하는 권법은 허점투성이였다.심지어 진서준이 감옥에서 막 출소했을 때조차 이들 100명을 혼자 상대하는 것도 거뜬했을 것이다.훈련장을 지나 진서훈 일행은 세 층짜리 하얀 건물로 들어갔다.그 건물의 한 사무실 안에는 전투복을 입고 위엄 넘치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남자의 존재감은 호랑이와 같았고 몸에서 피가 끓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으며 체내에는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었다.딱 봐도 횡련 대종사가 분명한 인물이었다.남자는 바로 설표 특전대의 사령관 소정태였다.노크 소리가 울리자 소정태는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들어와!”박준명은 문을 열고 진서준 일행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소정태는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그리고 위엄이 가득한 눈으로 박준명을 노려보며 물었다.“진 어르신이 약속한 교관은 어디에 있어?”보이지 않는 압도적인 기세가 박준명에게로 쏟아졌다.박준명은 그 기세에 눌려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박준명은 억지로 심호흡을 한 뒤 경례하고 나서 말했다.“사령관님, 이분이 바로 진 어르신께서 찾아주신 교관 진서준 씨입니다.”소정태는 순간 멍해졌고 자기 귀를 의심했다.박준명이 자기를 속일 리 없다는 걸 모른다면 아마도 박준명에게 귀싸대기를 날렸을 것이다.스무 살 조금 넘은 젊은 청년을 설표 특전대 교관으로 데려오다니, 이보다 더 어이없는 농담은 없을 것이다.“이분이 진 어르신이 추천한 교관이라고?”소정태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거의 고함을 지르듯 물었다.“맞습니다. 바로 이분이 진 어르신이 추천하신 교관입니다.”박준명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소정태는 그 말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꼼꼼히 살펴보았다.반소매 차림인 걸로 보아 약간의 실력은 있는 듯했지만 진서준의 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