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의 사람들은 진서준이 범죄자였다는 소문을 듣고는 이 수표가 손버릇이 나쁜 진서준이 훔친 것이라고 생각했다.전과가 있기 때문에 누구도 진서준의 말을 믿지 않았다.몇몇 여직원은 입꼬리를 치켜들고는 경멸에 찬 표정을 지었다.‘3년 동안이나 감옥에 있었으면서도 결국 물건을 훔치는 본성은 고쳐지지 않았구나. 정말 쓰레기네.’이내 형사 두 명이 은행에 도착하였다.“형사님, 이 사람이 20억짜리 수표를 훔쳤어요. 절대 여기서 빠져나가게 하지 마세요.”장혜윤이 진서준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그중 사각형 얼굴의 한 형사가 진서준을 쳐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이 수표 당신이 훔친 겁니까?”“당연히 아니죠. 이 수표는 주인께서 저한테 주신 겁니다.”진서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바로 이때, 정장 차림을 한 중년 남자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무슨 일인가요?”그 사람을 발견한 장혜윤은 이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지점장님, 이 사람이 훔친 수표로 돈을 꺼내려 합니다.”최우식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장혜윤의 말이 좀 석연치 않다는 걸 느꼈다.수표라는 건 막 함부로 훔칠 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최우식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장혜윤은 이내 진서준이 전과가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가 전과자였다는 얘기를 듣고 최우식과 두 명의 형사는 장혜윤의 말을 반쯤 믿기 시작했다.장혜윤은 진서준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진서준, 빨리 죄를 인정하는 게 어때? 안 그럼 또 감방에 갈지도 몰라.”“넌 2년 동안이나 옥살이를 한 경험이 있으니 그곳이 얼마나 복잡한 곳인지는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한편, 최우식은 장혜윤을 향해 입을 열었다.“수표 한번 줘봐요.”그녀는 냉큼 최우식에게 수표를 건네주었고 수표를 건네받은 최우식은 수표 위의 사인을 확인하고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간이 부었군요. 감히 허성태 씨의 수표를 훔치다니.”허성태는 서울시 몇몇 은행의 VIP 고객이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은행의 지점장들은 허성태의 사인을 알고 있었다.
20억짜리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 은행 카드에 입금한 후 진서준은 현금 40만 원을 꺼내 집으로 향했다.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과일 가게에 들러 과일을 많이 샀다. 거의 집에 도착했을 때, 진서라가 길가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오빠.”눈치가 빠른 진서라는 진서준을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이렇게 더운 날씨에 왜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땀으로 범벅이 된 진서라를 보며 진서준은 가슴이 아팠다. “안 더워.”진서라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진서준의 손에 든 과일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오빠, 무슨 과일을 이렇게 많이 샀어?”“얼마 안 돼. 집에 가서 밥 먹자.”진서준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 과일은 모두 합쳐도 2만 원밖에 되지 않았지만 진서라와 조희선한테는 명절에도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지난 3년 동안 두 사람은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응.”진서라가 주머니를 들어주려고 손을 뻗자 진서준은 그녀를 막아서고는 계속해서 집으로 걸어갔다. 양철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뜨거운 폭풍이 몰아치는 느낌이 들었다. 양철집에는 단열재가 전혀 없었고 태양이 오전 내내 내리쬐고 있어 방 안의 온도는 거의 50도에 도달하여 찜질방보다 더 뜨거웠다. 아까 만든 음식이 이미 다 상해 버린 탓에 조희선은 더위를 무릅쓰고 다시 음식을 하고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진서준은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어머니, 요리 그만하세요. 지금 당장 이사해요. 이사하고 나서 서라랑 목욕하러 갔다 오시면 우리 큰 호텔에 밥 먹으러 가요.”“오빠, 이사라니? 우리가 어디로 이사 간다는 거야?”“글라리아 별장. 내가... 아니, 우리 사장님께서 잠시 빌려주셨어.”진서라는 조희선에 비해 아는 것이 많았다. 글라리아 별장이라는 말을 듣고 그녀는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그곳은 서울시에서 가장 호화로운 별장 단지였고 재벌이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살 수 있는 곳이었다.“왜? 오빠 못 믿겠어?”진서라의 놀란 표정을 보며 진
진서준은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설명했다.“이 열쇠는 허성태 씨의 딸이 저한테 준 겁니다.”“말도 안 되는 소리. 당신 같은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이 열쇠 가져요?”경비원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무전기에 대고 사람을 불렀고 이내 덩치 큰 경비원 여섯 명이 달려왔다. 글라리아 별장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몸이 건장한 전역한 군인들이었다. 진서준이 6명의 경비원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보고 진서라는 바로 차 문을 열고 조희선을 안고 내려왔다. “이 세 사람, 도망가지 못하게 잘 지키고 있어. 난 허성태 씨한테 전화하고 올게.”말을 마친 경비원은 즉시 경비실로 달려갔고 6명의 경비원을 남겨두어 진서준을 지키게 하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택시 기사는 바로 그들의 캐리어 두 개를 던져버리고는 차를 몰고 도망갔다.“오빠, 무슨 일이야?”진서라는 겁먹은 표정으로 경비원들을 쳐다보다가 진서준 뒤에 숨으며 물었다.“괜찮아, 그냥 일반적인 검사를 하고 있을 뿐이야. 글라리아 별장의 보안은 매우 엄격한 편이거든.”진서준은 엄마와 여동생이 걱정하지 않도록 거짓말을 하며 그들을 위로했다.“하지만...”진서라는 바보가 아니다. 그녀는 경비원들이 그들에게 적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내 눈치챘다. 조희선은 미간을 찌푸린 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진서준을 향해 소리쳤다.“서준아, 그만 돌아가자. 친구 귀찮게 하지 말고.”이곳의 수려한 풍경만 봐도 별장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 괜찮아요, 조금 있으면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진서준은 웃으며 그녀를 위로했다.바로 이때, 은색의 BMW 차량 한 대가 세 사람 옆에 천천히 멈춰 섰다.“진서준, 여기가 네가 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많은 물건까지 가지고. 설마 글라리아 별장으로 이사하려는 건 아니겠지?”차 문이 열리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장혜윤이 차에서 내렸다. 곧이어 배불뚝이 중년 남자가 차에서 내려왔다. “자기야, 당신 친구야?”중년 남자는
방금까지 막대기를 들고 진서준을 가리키던 경비원들은 바로 그의 비위를 맞추며 그들의 짐을 차에 실었다. 경비원의 차에 올라타자 진서라는 숭배하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쳐다보았다. 어릴 때부터 진서준은 항상 진서라를 지켜주었다. 어렸을 때 진서라가 동네 꼬마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적이 있었는데 진서준이 그 사실을 알고 바로 혼자 달려들어 그 꼬마들과 싸웠었다. 비록 진서준은 상처투성이가 될 때까지 맞았지만 진서라의 마음속에 진서준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히어로였다.“서준아, 앞으로 너희 사장님을 위해 일 열심히 일해야 해. 절대 실망시켜 드려서는 안 된다. 알겠지?”차 안에서, 조희선은 흥분한 얼굴로 길가의 경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온갖 꽃이 만발하고 버드나무의 향기가 차창을 통해 사람들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알겠습니다, 어머니.”조희선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진서준도 많이 기뻤다. “서준아, 나중에 시간 되면 사장님을 집에 초대하거라. 직접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네, 제가 기회를 봐서 사장님께 말씀드릴게요.”산 중턱에 있는 별장 앞에서 설경구의 BMW 차량이 멈춰 섰다.설경구는 장혜윤의 허리를 끌어안고 별장 입구에 서서 자신의 별장을 가리키며 말했다.“혜윤아, 이 별장은 내 거야. 앞으로 넌 여기서 살아.”장혜윤은 설렘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별장을 쳐다보았다. “자기야 고마워. 이렇게 럭셔리한 곳에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하하, 별거 아니야.”설경구는 싱긋 웃으며 맨 꼭대기에 있는 A급 별장을 가리켰다.“그 별장이야말로 최상급이었는데 아쉽게도 허성태 씨가 사버렸지 뭐야.”장혜윤은 그의 손가락을 따라 복숭아꽃으로 둘러싸인 A급 별장을 쳐다보았고 그녀의 눈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바로 이때, 차 한 대가 그들 앞을 지나갔다.차창이 반쯤 열리자 진서준의 얼굴이 드러났고 그는 길가에 서 있는 장혜윤을 차갑게 쳐다보았다.장혜윤은 설렘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별장을 쳐다보았다. “진서준?”장혜윤도 진서준을
설경구처럼 권세에 아부하는 사람들에 대해 진서준은 호감이 별로 없었다.지금은 자신을 공손하게 대하고 있지만 만약 자신이 초라한 처지가 된다면 가장 먼저 등에 칼을 꽂을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니까. 하여 진서준은 설경구와 거리를 둘 생각이다. 잠시 후, 진서준은 조희선과 진서라를 도와 방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별장은 지상 3층과 지하 1층으로 되어 있었고 지하 1층에는 주차장과 헬스장 그리고 3층 옥상으로 직행하는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위층에는 거실과 주방, 다이닝룸이 있었고 2층에는 서재와 침실, 침실마다 화장실과 욕실을 따로 갖추고 있었으며 3층에는 각종 오락실로 구성되어 있었다.위로 올라가면 천장이 있었고 옥상에는 야외 수영장도 있었다. 거기 서서 경치를 바라보면 서울시의 반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글라리아의 맨 꼭대기에는 안개가 피어올라 신비로워 보였다. 방 정리를 마친 세 사람은 옥상으로 나와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며 빠져들었다. 한참을 지켜보던 진서라와 조희선은 눈시울을 붉혔다.그동안 그녀들의 삶을 생각하면 이런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제 현실이 되니 그저 꿈만 같았다.“어머니, 서라야. 이제부터 여기서 살 겁니다. 이곳은 공기도 아주 좋아서 두 사람이 요양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에요.”진서준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네 말대로 하자.”조희선은 눈을 비비며 감격스러워했다.“서라야, 당분간 일하지 말고 집에서 엄마도 돌보고 몸보신도 해. 너 지금 너무 말랐어.”진서준은 뼈가 앙상한 진서라를 보면 마음이 아팠다.“응.”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어머니 모시고 샤워하고 와. 갔다 오면 우리 밥 먹으러 가자.”진서라와 조희선은 샤워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와 진서준과 함께 밥을 먹으러 나가려고 했다.바로 그때, 문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일어나서 확인해 보니 허사연이 온 것이었다. “허사연 씨, 여긴 어쩐 일이에요?”진서준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허사연을 쳐다보았다.
“너무 고마워요.”거실을 나선 진서준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허사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허사연이 오지 않았다면 조희선은 한동안 잠을 푹 자지 못했을 것이다. “자꾸만 나한테 이렇게 예를 차리면 정말 화낼 거예요.”허사연은 괜히 진서준을 쏘아보며 화난 척 입을 열었다.“하하... 사연 씨. 주차장에 있는 차, 내가 타고 다녀도 될까요? 이따가 어머니와 여동생을 데리고 나가 밥을 먹고 싶어서요.”아까 별장을 둘러볼 때 그는 주차장 안에 스포츠카 두 대와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글라리아 별장 앞에서는 택시가 전혀 잡히지 않아 외출하려면 차를 운전해야 했다. 진서준은 대학 때 이미 운전면허를 땄고 3년 동안 차를 만져보지 못했지만 운전하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연하죠.”허사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이 별장에 있는 모든 것들은 서준 씨 마음대로 해도 돼요. 돌아가면 바로 사람을 시켜 명의 이전 해줄게요.”허사연을 보내고 진서준은 별장 거실로 돌아와 조희선과 진서라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서준아, 사장님 참 좋은 분인 것 같더구나. 꼭 열심히 일해야 한다.”조희선 다시 한번 그에게 신신당부했다. “어머니, 열심히 일할 테니까 안심하세요.”진서준은 웃으며 대답했다. 주차장 안에는 아우디, 빨간색 페라리, 그리고 은색의 람보르기니가 있었다.진서라는 스포츠카를 보고 눈빛을 반짝거렸다. 동생의 눈빛을 알아차린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서라야, 내일 당장 가서 학원에 등록해. 운전면허 따면 이 두 대 스포츠카 중에서 네가 마음 드는 걸로 하나 골라.”진서라는 고개를 저었다.“됐어, 오빠. 이 차들은 너무 사치스러워. 난 전동 스쿠터도 좋아.”“어떻게 그래.”진서준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 차들은 지금 모두 허씨 가문의 것들이지만 오빠가 약속할게. 네가 면허증을 따면 너한테 스포츠카를 선물할게.” 스포츠카 한 대는 기껏해야 수억 정도일
여종업원의 태도에 진서준은 약간 화가 났다. 그는 이 세상에 왜 이렇게 사람을 깔보는 자가 많은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약한 자에게는 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꼼짝도 하지 못한 인간들이 수없이 많다. 어떤 사람은 평생을 가난하게 사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서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여종업원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당신... 뭐 하자는 겁니까?”여종업원은 진서준의 차가운 시선에 온몸이 오싹해졌고 한기가 올라왔다.“경고하는데 함부로 굴지 말아요. 저희 가게의 경호원들은 다 군인 출신들이라고요.”“서준아, 싸우지 마!”조희선도 놀라서 진서준의 팔을 끌어당겼다. 진서준은 조희선을 쳐다보고 웃으며 달래듯 말했다.“어머니, 제가 왜 싸우겠어요? 계산하러 갈 생각이었어요.”이어 진서준은 여종업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지금 바로 계산할게요.”“좋아요!” 여종업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즉시 몸을 돌려 길을 안내했다. 진서준이 종업원을 따라 계산하러 가는 사이 명찰에 박수영이라고 적힌 여종업원이 진서라와 조희선에게로 다가왔다. 박수영은 이 레스토랑의 홀 매니저였다. 옅은 화장을 한 그녀는 몸매와 외모가 뛰어난 편이었지만 진서라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이건 윤 도련님께서 사신 술입니다.”박수영의 손에는 쟁반이 들려 있었고 그녀는 쟁반에 놓인 60만 원짜리 와인을 진서라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저한테요?”두 모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박수영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그쪽에는 아르마니 정장을 입은 남자가 그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젊고, 잘생기고, 돈도 많고, 딱 봐도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의 곁에는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들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진서라와 조희선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서라는 단번에 그의 탐욕스러운 눈빛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방의 호의를 단칼에 거절했다.“죄송합니다만 전 저 사람 모릅니다. 이 술은 받지 않을게요.”“
레스토랑 안의 다른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한 모습이었다.“이제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기겠어!”박수영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도도하게 말했다.“윤 도련님이 직접 오셨는데 계속 시치미를 떼실지 두고 봐야지.”박수영은 윤준후와의 관계가 있기 전까진 윤준후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윤준후가 돈을 주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윤준후와 가까워졌다.“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윤준후입니다. 반갑습니다.”윤준후는 진서라 앞에 나서서 신사처럼 매우 우아하게 인사를 건넸다.“오늘 인연이 닿았으니 술 한잔하며 친구라도 사귀는 게 어때요?”여유, 자신감, 적지 않은 싱글 여성들은 그 모습에 살짝 긴장했다.옆에 있는 진서준은 그렇게 그녀들에게 무시당했다.진서라는 윤준후를 힐끗 쳐다보고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죄송합니다. 가족들이랑 식자 중이라서요.”“두 사람은 당신 가족이군요? 그럼 다 함께하면 되겠어요.”장애가 있는 조희선과 수수한 옷차림을 한 진서준을 보며 윤준후는 마음속으로 기뻐했다.자신이 조금만 호기를 부려도 그녀의 가족들 마음을 빼앗을 수 있지 않겠냐 생각했다.“머리에 문제가 있는 거야, 아니면 귀먹은 거야!”진서준은 차갑게 윤준후를 노려보았다.“어? 뭐라고?”윤준후는 자신의 귀를 후비며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박수영도 어리둥절해하더니 화난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맞고 싶어? 감히 윤 도련님을 욕하다니?”윤준후는 손을 내저으며 박수영을 뒤로 당기고 품에서 BMW 열쇠와 피커 별장 출입 카드를 꺼냈다.“난 개성 있는 사람이 좋아요!”윤준후가 웃으며 말했다.“예쁜 아가씨, 당신이 나와 함께 한다면 이 두 가지는 모두 아가씨 것이 될 거예요!”“1억4000만 원짜리 차에 4억짜리 빌라 한 채는 어때요?”뒤에 있는 그의 친구들이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박수영은 경멸의 눈빛을 보였고 다른 손님들도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난 듯 모두 이곳을 쳐다보며 진서준 가족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려고 했다
아침, 설표 특전대 기지.단잠에 빠져 있던 소정태와 고인권 등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군부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회의실에 집합했다.“어젯밤, 묘강에서 폭동이 발생했어. 그러나 배논국 군부가 폭동을 단숨에 진압하며 묘강은 다시 배논국의 영토로 돌아갔어.”상부의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여덟 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소정태 일행은 서남 국경에서 묘강의 사수들과 적지 않게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다들 묘강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미친놈일 뿐만 아니라 주술과 독충술까지 능숙히 다루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자기들만의 군대와 탱크와 같은 대형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배논국 군부가 강제로 공격했다간 양측 모두 피바다가 될 게 뻔했다.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묘강이 평정되다니 너무나 기묘한 일이었다.“혹시... 진 교관이 한 일이 아닐까?”고인권이 불쑥 입을 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여덟 사령관은 진서준이 묘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어마어마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설, 설마 그랬겠어? 진 교관님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묘강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잖아?”누군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그건 너무 황당한 얘기야. 게다가 진 교관이 대체 어떻게 묘강에 갔단 말이야? 그곳은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어서 전신전 병사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봐.”소정태가 갑자기 말했다.“너희들 기억하지? 예전에 너희가 설표 특전대가 최고 특전대로 올라설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근데 진 교관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어, 그것도 한 달도 안 걸려서 말이야. 지금도 난 똑같이 믿어. 진 교관님은 묘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소정태는 진서준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소정태는 그야말로 진서준의 열렬한 팬이었다.“그럼, 진 교관님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적기가 포착됐고 곧이어 포탄이 몇 발 날아왔다.조종사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다.쾅!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튕기며 대낮처럼 환해졌다.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오스프리 전투기 두 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문기는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유문기가 두려워하는 건 오스프리 전투기가 아니라 바로 그 괴물 같은 존재, 진서준이었다.묘왕은 자기 비장 카드인 오스프리 전투기가 파괴된 것을 보며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누가 한 짓이야? 어떤 미친놈이 감히 내 전투기를 부쉈어?”그 순간, 배논국 군대 로고가 새겨진 전투기 수십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이 광경에 묘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아까 상황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걸...’전투기 편대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대규모 부대가 들이닥쳤다.지도자를 잃은 묘강은 머리를 잃은 파리 떼처럼 혼란에 빠졌다.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진서준은 더 이상 이들과 놀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잡고 단 일격으로 묘왕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눈을 뜬 채 죽은 묘왕의 눈에는 끝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묘왕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을 수 없었다.“날 죽여.”이때의 유기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유기철이 본인이 아무리 애원해도 진서준이 살려주지 않을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넌 네 친조카까지 해쳤어. 널 만 번 죽여도 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야.”진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다.“난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널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게 해주지.”그 말과 함께 진서준은 손바닥으로 유기철의 가슴을 내리쳤다.유기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기철은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는 건 두렵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유문기 일행은 순간 얼어붙었다.유문기와 묘왕은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그들의 공동의 적이었다.진서준이 살아있다면 그들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유문기와 묘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묘왕과 유기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두 사람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너 폭탄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야?”유문기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방금 폭탄이 터진 후, 묘왕 혼자만 폭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유문기는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유문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문기의 예측은 현실을 완전히 빗나갔다.“네 생각에 그 포탄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네 눈엔 내가 저 늙은 영감탱이만도 못해 보이나?”영감탱이는 당연히 묘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진서준, 네가 묘왕을 죽여준다면 내가 묘강의 재산 절반을 네게 주마. 어때?”진서준과 맞설 수 없음을 깨달은 유문기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바로 진서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진서준을 자기편으로 영입하면 진서준이 자기를 건드릴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묘강의 재산은 거의 배논국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배논국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였기에 그 재산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하지만 진서준에게 이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진서준이 이번에 온 이유는 단 두 개, 유문기를 죽이고 묘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진서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더군다나 묘강의 돈은 대부분 불법적인 경로에서 온 더러운 돈이었다.그런 돈은 진서준이 원하지 않았다.유문기가 진서준을 설득하려는 걸 본 묘왕은 즉시 눈을 굴리며 외쳤다.“이봐 청년, 네가 저놈을 죽인다면 내가 묘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어. 사실 너와 나 사이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어. 유씨
묘왕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옷은 다 찢어졌으며 고약한 타는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묘왕의 옷 속에 숨어 있던 독충들이 조금 전의 고온에 의해 증발한 냄새였다.지금의 묘왕은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 같았고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소리쳤다.“아버지, 저놈을 죽여요! 저놈을 죽이면 우리는 묘강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유기철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내가 묘왕을 공격하라고?”유기철의 단전도 파괴되어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제 단전도 저 진서준이란 자에게 쥐어박혀서 망가졌어요. 제가 공격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버지를 시키겠어요?”유문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문기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묘왕을 죽이고 싶었다.그동안 유문기는 묘왕에게 개처럼 부려지며 살아왔다.때때로 독을 시험하는 일도 겪었는데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몇 년째 묘왕을 죽이고 싶었던 유문기는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방금 진서준에게 단전이 파괴되어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내 단전도 파괴된 거 잊었어?”유기철의 말에 유문기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이걸 드시면 일시적으로 예전의 힘을 조금 되찾을 수 있습니다.”유기철은 약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이거 부작용 없겠지?”부작용이 없다면 유문기는 자기가 먼저 먹었을 것이다.“부작용 있습니다. 먹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폐인이 됩니다.”유문기는 솔직하게 부작용을 실토했다.“아버지. 지금 이게 우리 유일한 기회예요. 저놈을 죽이고 제가 묘왕이 되면 뼈가 다 부서져도 제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놈 손에 죽을 겁니다.”유문기의 분석을 듣자 유미철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묘왕의 손에 죽거나 이 기회에 한 번 싸워보고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기철은 더 이상 망설이
묘왕의 허락을 받은 후, 두 명의 오스프리 전투기 조종사는 망설이지 않고 진서준을 조준 후 즉시 발포 버튼을 눌렀다.요란한 소리와 함께 끔찍한 불빛 두 개가 오스프리 전투기의 하단에서 솟아올랐고 미사일은 직선으로 진서준을 향해 날아갔다.“정말 목숨을 버리겠다는 거야?”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묘왕을 쳐다보았다.“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겠지!”묘왕은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마처럼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두 사람은 모두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이 시점에서 물러나면 상대방이 이 기회를 틈타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미사일에 맞아 죽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주먹에 죽게 될 것이다.미사일이 당장 떨어져 폭발할 것 같은 시점에서도 두 사람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스승님!”유문기는 당황한 표정으로 묘왕을 불렀다.“도망쳐! 멍하니 뭐 하고 있어?”유기철은 유문기를 끌고 급히 먼 곳으로 도망쳤다.쾅!미사일이 바닥에 떨어지자 그 무시무시한 힘이 주위 수백 미터를 순식간에 덮쳤다.유기철과 유문기는 이미 가장자리까지 도망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강력한 기폭에 휘말려 바닥에 사정없이 쓰러졌고 입과 코에서 피가 흐르며 처참한 모습을 보였다.유문기가 폭발 중심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퍼져 있는 걸 확인했다.유문기 부자가 가장자리에서 이렇게 심하게 다쳤으니 폭발 중심에 있던 진서준과 묘왕은 어땠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저놈이 죽었어, 드디어 죽었어!”유문기는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유문기가 입에 담은 저놈은 묘왕을 가리키는 건지, 진서준을 가리키는 건지 유기철은 분간할 수 없었다.“문기야, 얼른 떠나자.”유기철은 정신을 차리고 유문기를 잡아끌며 떠나려고 했다.“안 돼요. 난 이날을 정말 오래 기다렸단 말이에요.”유문기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며 얼굴에 끔찍한 미소를 떠올렸다.“늙다리가 오늘에 와서야 끝내 죽었네! 내가 널 이렇게 오래 모신 이유가 바로 네가 죽는 오늘을 위해서였어!”유문기는 거리낌 없이 호탕하
묘왕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체내의 선천강기를 돌려 방어 태세를 취했다.동시에 묘왕은 자기 몸에 숨겨둔 독충들을 풀어 진서준의 얼굴로 날려 보냈다.이 독충들이 가진 독은 전부 강력한 부식성을 지니고 있어 육급 이하의 선천 대종사 강기조차 이 독충들의 독성을 막아낼 수 없었다.독충과 진서준 사이의 거리가 반 미터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진서준의 눈에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곧이어 그 불꽃이 하늘로 솟구치며 독충 무리를 덮쳤다.치지직...순간 고기를 구울 때 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독충들은 진서준이 내보낸 영화에 의해 몰살당했다.순식간에 가루로 변한 독충들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빗물에 씻겨 사라졌다.이를 본 묘왕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그러나 묘왕은 지금 독충을 걱정할 여유조차 없었다.진서준의 양주먹이 이미 묘왕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오고 있기 때문이었다.묘왕 역시 자기 양 주먹을 내밀어 진서준의 주먹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펑!두 사람의 주먹이 맞부딪히며 산이 무너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발밑의 지면이 지진이라도 난 듯 사방으로 갈라져 퍼져 나갔다.무시무시한 충격파에 머리 위로 떨어지던 빗물조차 접근하지 못했다.이를 꽉 악물고 있는 묘왕의 얼굴이 철판처럼 굳어졌다.묘왕은 산을 뒤엎는 듯한 공포스러운 힘이 주먹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퍼지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게다가 묘왕의 주먹 끝 강기에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반면, 진서준의 상태도 묘왕보다 크게 나아 보이지 않았다.백 년 가까이 살아온 묘왕의 내공과 실력은 역시나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우르릉!하늘에서 갑작스러운 천둥소리가 울렸다.번개의 섬광이 칠흑 같은 밤하늘을 찢어 잠깐의 백광을 드러냈다.곧이어 하늘에서 헬리콥터의 로터 소리가 들려왔다.묘왕과 정면으로 겨루고 있던 진서준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헬리콥터 두 대가 빠르게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묘왕과 속
비는 점점 거세졌고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빗물로 흠뻑 젖은 바닥에 쓰러진 유문기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단 한 방에 자기가 완전히 폐인이 되다니, 이 녀석의 실력이 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진서준은 유문기를 멍청이를 보듯이 바라보며 말했다.“너 같은 비겁한 수작질이나 하는 녀석이 감히 나랑 정면으로 겨룬다고? 널 쉽게 죽이고 싶지 않아서 봐주는 거야. 그게 아니었으면 너도 방금 그 탱크처럼 새까만 시체로 변했을 거야.”탱크조차 진서준의 일격을 당해내지 못했는데 하물며 겨우 종사 경지에 불과한 유문기가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지금 진서준에게 유문기를 죽이는 건 손바닥 뒤집는 일과도 같았다.하지만 그냥 죽이는 건 유문기에게 너무 가벼운 벌을 내리는 것과 같았다.진서준은 유문기의 뼈를 하나하나 산산이 부수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사람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두고 왜 굳이 짐승이 되려고 해?”짐승이 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너... 너 대체 누구야?”유문기의 눈알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같은 20대 청년인데 왜 이 녀석의 실력은 자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있는 거지?“너희 집 큰 짐승이 안 알려줬어?”진서준이 유기철을 가리켰다.“누굴 짐승이라는 거야? 너야말로 짐승이야!”유기철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분노에 차 욕을 내뱉었다.“유기명 삼촌이 네 목숨을 살려줬을 때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사람을 시켜 유정을 독살하려고 시도해? 네가 짐승이 아니면 뭔데? 짐승조차도 은혜를 알고 갚을 줄 알아. 넌 인간의 뇌를 가진 고등 동물인 주제에 자각도 없는 거야?”진서준은 유기철을 바라보며 섬뜩한 살기를 내뿜었다.“그건 그 여자가 죽어 마땅했기 때문이야!”유기철은 일말의 자책도 없이 계속 헛소리를 지껄였다.“다들 입 다물어!”묘왕이 분노의 외침을 터뜨리더니 곧이어 원한에 가득 찬 시선으로 진서준을 노려봤다.“이봐, 오늘 네가 무슨 이
“스승님, 지금 어떡해야 하죠?”유문기가 긴장한 기색으로 묻자 묘왕은 곧 평정심을 되찾으며 말했다.“당황하지 마. 우리에게는 아직 숨겨둔 비장의 카드가 있어. 오늘 저 녀석이 설령 지선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여기서 끝장날 거야. 게다가 방금 그 일격으로 꽤 체력을 소모했을 게 분명해. 오늘은 묘강의 모든 주민을 동원해서라도 저놈을 기어이 지치게 만들어야 해.”묘강에는 무려 3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있었고 그중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남자만 10만 명이 넘었다.이런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상대하려면 지선도 버거울 게 뻔했다.죽이지는 못해도 적어도 지쳐서 움직일 수 없게 할 수는 있었다.이게 바로 묘왕이 태연하게 있을 수 있는 이유였다.그러나 진서준은 묘왕 일행에게 비장의 카드를 꺼낼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방금 참선검을 휘두르며 진서준은 곁눈질로 유기철을 발견했다.진서준이 발끝에 힘을 주고 허공에 뛰어오르자 그의 모습이 귀신처럼 제자리에서 사라졌다.사람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진서준은 이미 묘왕 일행 앞에 나타나 있었다.“너였구나!”유기철은 진서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확 변했다.“저 녀석을 알아?”묘왕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묘왕님, 이 사람이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진서준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녀석이 예전에 우리의 계획을 망쳤습니다.”유기철이 서둘러 진서준을 소개했다.눈앞의 청년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묘왕은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네놈이 내 오랜 계획을 그렇게 망쳐놓고 감히 혼자서 우리 묘강에 쳐들어와? 우리 묘강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묘왕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진서준을 노려보며 버럭 화를 냈다.하지만 진서준은 묘왕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대신 유기철을 차갑게 바라보며 은은한 살기를 드러냈다.유기철은 그 시선에 수만 마리 개미가 자기 몸을 기어다니는 듯한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유기철, 자기 친조카에게 독을 퍼뜨리는 네놈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짐승이야.”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탱크는 현대 전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 중 하나였고 말 그대로 전쟁 기계라 불릴 만했다.완전히 무장한 병사들이 대전차 무기가 없이 탱크를 마주하면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한다.무도를 익힌 무인이라 해도 이런 존재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지금의 올기는 체내의 영기가 거의 소진된 상태였다.묘강에 들어왔을 때 탱크를 만났다면 한 번 싸워볼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모든 희망을 진서준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진서준은 아래를 쓱 훑어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이제 넌 그만 물러나.”“알겠습니다!”올기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곧바로 몸을 줄여 진서준의 어깨 위로 돌아왔다.진서준은 몸을 천천히 놀려 기러기처럼 부드럽게 지면에 내려왔다.지면에 있는 사람들이 진서준의 움직임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세상에, 저 용 머리 위에 사람이 서 있었어!”“어머나, 그럼 아까 그 괴수가 주인이 있었단 말이야? 그럼 그 주인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사람일까?”“아무리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쩌겠어? 우리에겐 탱크가 있잖아. 게다가 전투기들도 곧 도착할 거라고.”놀라 두려워하는 사람도, 오만하게 웃는 사람도 있었다.한편, 묘왕과 유문기 두 사람은 여전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보아하니 저 녀석이 바로 그 짐승의 주인인가 보구나.”묘왕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저놈을 당장 죽여! 묘강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줘!”진서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손바닥을 살짝 떨었다.그러자 참선검이 허공에 떠올라 진서준의 손으로 들어왔다.낯선 대한민국 청년을 보자 탱크 안에 있던 병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그들을 전멸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자가 겨우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라고?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노인이라면 차라리 납득이라도 했을 것이다.“포격! 포격해!”지휘관의 목소리가 작전 통신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펑! 펑! 펑!포탄 세 발이 진서준이 서 있는 방향으로 동시에 발사되었다.포탄이 터지며 대지가 흔들리고 귀청이 찢어질 듯한 폭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