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철의 명성은 너무 큰지라 허씨 집안마저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진서준은 사연의 고려를 눈치챈 후 말했다.“허사연 씨, 사람을 데리고 돌아가세요. 이 일은 제가 처리하면 됩니다.”“당신이 직접 처리한다고?”이혁진은 비웃었다.“강성철 어르신께서 오시기만 하면 그쪽은 죽은 거나 다름없어!”사연은 어금니를 꼭 깨물고는 서준을 보며 말했는데 그녀의 시선은 아주 굳건했다.“진서준 씨, 당신은 저희 허씨 집안의 은인이세요. 그러니 저희는 절대 서준 씨를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사연의 이런 단호한 태도는 서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래. 당신이 정 허씨 집안을 이 구렁텅이에 빠뜨리게 하고 싶다면 내가 힘을 보태주지!”혁진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이를 갈았다. 그는 직접 성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래 성철이 그에게 진 신세를 써버리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소중한 기횐데 이런 작은 일에 사용하기엔 너무 아까웠다.그런데 만약 이씨 집안이 사연이 서준을 데려가는 것을 눈 뜨고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분명 상류사회의 비웃음을 자아낼 것이다.이후, 또 누가 이 씨네 와 비즈니스 합작을 하려 할 것인가!전화를 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호텔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오면서 뒤이어 소란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사람들은 호기심에 유리창 너머로 밖을 보았는데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래에는 사람들로 뒤덮여 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칼을 들었다. 호텔은 삽시에 이들에 의해 막혔다. 대략 세어보니 적어서 백 명이나 되었다.사연은 이 장면을 보자 간신히 갖고 있던 희망이 재가 되는 것을 느꼈다.그녀도 비록 경호원을 데리고 오긴 했지만 이십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십 명이 백명과 싸운다면 질 게 뻔했다. 더욱이 상대방은 무기도 들고 있었다.비록 강성철이 그녀를 어떻게 하진 못하지만 진서준은 분명 죽을 것이다.끼익...연회장의 문이 열리면서 스무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두 줄로 들어와서 일자로 늘어섰다. 그들은 전부 키가 백구십 정도였고 검은색 양복을 입고
성철의 부하가 움직인 것을 보자 겁이 많은 사람들은 눈을 막으면서 이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감히 보지 못했다.성철은 부하를 막지 않았다. 자신이 죽을 거라고 계속 말하던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보고 싶었다.하지만 시퍼런 칼이 서준의 팔에 닿으려 할 때 그는 움직였다.서준은 손을 내밀어 두 손가락으로 칼을 잡았는데 아주 안정적이었다.성철의 부하는 덩치도 컸고 키도 190이 넘었다. 몸엔 근육이 단단히 잡혀있었는데 마치 큰 돌덩이 같았다. 그러니 그의 힘은 비리비리한 서준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하지만 지금 서준은 두 손가락으로 그의 목숨을 앗아갈 뻔한 칼을 허공에 멈추게 했다.다들 입을 크게 벌렸고 성철도 제법 놀란 듯했다.젊었을 적 성철이라 해도 두 손가락으로 칼을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감히 나한테 칼을 휘두르다니, 죽지 못해서 안달이네요.”서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가락을 세게 튕겼다.펑!큰 소리 후 칼은 절반으로 갈라졌다.성철의 그 부하는 연이어 뒤로 물러서면서 탁자에 부딪혔다. 그때야 간신히 힘을 빼고 제대로 섰다.그때 그는 자신의 손이 찢기면서 선홍색 피가 용솟는 것을 발견했다.성철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서늘하게 말했다.“좀 배운 놈이구나. 그러니까 이렇게 날뛰는군.”“하지만 넌 상대를 잘 못 골랐어!”성철이 손을 쓸 거라고 생각한 찰나, 그의 머리 위에 달려 있던 샹들리에가 예고 없이 떨어졌다.이 위기의 순간에 성철의 부하 한 명이 힘껏 그를 밀어냈다.결국 이 부하는 성철 대신 떨어지는 샹들리에에 맞아 핏덩이로 되었다.서준도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순간 아직 경악 속에서 헤매고 있던 사연을 안고 새처럼 뒤로 몸을 날렸다.성철은 이 장면을 보자 심장이 미세하게 떨렸고 눈동자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만약 부하가 목숨으로 그를 구하지 않는다면 죽는 건 아마 그였을 거다.원래 성철은 이게 단순히 우연일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금 있다가 벌어지는 일은 그로 하여금 아까 서준이 했던 말을 믿게 하였다.
성철은 강인한 남자였다. 스스로 팔을 부러뜨리면서 아픈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손에 들고 있던 막대기를 버린 후 성철은 몸을 돌려 서준을 보았다.“선생님, 마음에 드십니까?”“음, 나쁘지 않군요.”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의 부하더러 붓, 주사 그리고 노란 종이를 가져오라고 해요.”곧 성철은 서준이 원하는 모든 물건들을 가져오게 했다.그는 종이를 탁자에 놓고 붓을 들어 주사를 먹으로 삼고 손을 휘저으며 재난을 막는 부적을 그렸다.“이걸 갖고 다니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성철은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얻는 것처럼 부적을 옷 주머니에 넣었다.예전엔 성철은 이런 풍수지리를 믿지 않았다. 미신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 그는 서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서준은 성철이 이 부적을 손에 넣은 후 그에게 해를 가하는 게 두렵지 않았다. 상대방을 살릴 수 있으면 당연히 그를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재난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선생님, 제가 뭘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말만 하시면 오늘 이씨 부자의 목숨을 끊을 수 있습니다.”이 말이 끝나자마자 이씨 부자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지면서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연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놀란 얼굴을 했다.“이렇게 죽이기엔 너무 아까워요. 가끔은 빈털터리로 사는 것도 죽음보다 잔인할 때가 있거든요.”홀의 기온은 서준이 이 말을 한 후 물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게 변했다.지수는 눈앞의 서준을 보았다. 정말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자신이 마음대로 괴롭히던 서준이 이렇게 변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녀는 서준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사람을 구하면서 세상을 어진 마음으로 대하는 의사,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악마.도대체 뭐가 진정한 너야?’“이지성, 얼마 남지 않은 즐거운 시간을 잘 보내길 바라.”말을 마친 후, 서준은 몸을 돌려 호텔 밖으로 나갔다.서준이 간 후, 성철은 혁진을 차갑게 쏘
희선의 말을 듣자, 서준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제가 전화해 볼게요.”서준은 핸드폰을 꺼내 서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두세 번이 지나도록 받는 사람이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점점 더 강해졌다.“어머니, 서라가 어디에서 출근해요? 제가 찾으러 갈게요.”“서라는 요즘 명성 호텔에서 출근해. 이 길 따라 남쪽으로 한 3킬로미터 정도 가면 돼.”희선은 창문 밖의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서라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서준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았다. 오분도 되지 않았을 때 그는 호텔 입구에 도착했다.이건 사성급 호텔이었는데 아까 서준이 갔던 오션 호텔과 비교할 수 없었다.그렇더라도 일반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서준은 빠른 걸음으로 호텔 안에 걸어갔다.호텔 로비에 서 있던 두 직원은 서준을 보자 얼굴에 경멸스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여기에서 일 년간 일하면서 서준처럼 두꺼운 낯짝으로 들어오는 가난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안녕하세요.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진서라가 여기서 일합니까?”서준은 직원 한 명 앞에서 예의 있게 물었다.하지만 직원은 불쾌하다는 듯 코를 막으면서 뒤로 반걸음 물러섰다.“조금 떨어져요. 본인 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는 줄도 몰라요?”오전 동안 바쁘게 다니다 보니까 몸에선 확실히 땀 냄새가 났다. 그러나 심하진 않았다.상대방이 자신을 깔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원하는 게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안합니다. 진서라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서준이 서라를 물어보는 것을 듣자 여직원의 두 눈엔 경멸로 가득했다.“진서라 취향도 참 독특하다니까. 이런 남자도 눈에 들어오나 보지?”다른 여직원이 이 말을 들은 후 함께 비웃었다.“전엔 그렇게 청순한 척하더니 지금은 자기를 갖고 논 남자가 이렇게 일하는 데까지 찾아오고 말이야.”두 사람이 자신의 동생을 모욕하는 것을 듣자 서준은 순간 화가 났다.가족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였다. 감히 함
십 분 전, 명성 호텔 매니저 사무실 안.“황 매니저님, 절 찾으셨어요?”서라는 긴장된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는 중년 남자를 보았다.중년 남자는 황고석, 바로 명성 호텔의 매니저였다.비록 마흔 살 초반이었지만 탈모가 너무 심한 나머지 머리카락이 얼마 붙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신장에 좋다는 보약을 많이 먹어서 평소에 몇 걸음 걷지 않아도 숨을 헐떡인다.하지만 그런 몸 상태를 갖고 있어도 그는 저질적인 눈빛으로 호텔 안의 여직원을 훑고 다녔다.소문에 의하면 호텔 안 얼굴이 반반하게 생긴 여직원들과 다 잤다고 한다.서라는 전부터 황고석의 암시를 받았지만 엄숙하게 거절했다.그 후, 고석은 서라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월급을 깎았다.만약 집에 진 빚만 아니었어도 일찍이 사직하고 그만뒀을 것이다.오늘 퇴근하기 전, 그는 서라를 사무실에 불렀다.“서라 씨, 최근 서라 씨에 대한 컴플레인이 들어왔어요.”고석은 음탕한 눈빛으로 서라를 훑으며 시도 때도 없이 입술을 핥았다. 서라는 이 장면을 보자 구역질이 났다.“컴플레인이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저는 호텔 룰에 따라 일했을 뿐이에요.”서라는 불쾌한 듯 말했다.“그건 전 모르죠. 아무튼 전 컴플레인을 받았어요.”고석은 시선을 거두고 한 쪽 다리를 탁자에 올려놓았다.“손님 한 분이 서라 씨를 곧 사퇴하라고 하던데, 어떡할까요?”서라는 순간 당황했다. 그녀는 얼른 고석에게 빌었다.“매니저님, 제발 절 사퇴하지 말아주세요. 집에 진 빚을 다 갚지 못했단 말이에요.”돈을 갚기 위해 서라는 하루에 알바 세 개를 뛰었다.아침에 일찍 일어나 국밥집에서 일했고 점심 때엔 명성 호텔에 갔다. 저녁에 퇴근한 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노래방에서 일하면서 하루에 6시간도 되지 않는 수면시간을 가졌다.그녀도 좋은 일자리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고졸이어서 웨이터 외 다른 직업은 그녀를 원하지 않았다.명성 호텔에서 잘린다면 단시간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건 괜찮지만 빚을 갚는 시간을 넘어서는 안 됐다.서라가 이
아까 서준에게 맞은 두 여직원도 위층에 올라왔다. 그들은 땅바닥에 널브러져있는 매니저를 보자 재빨리 달아갔다.“어머, 매니저님, 괜찮으세요?”“너희 둘은 눈깔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니? 이 꼴에 되도록 처맞았는데 괜찮을 리가 있어?”황고석은 두 여직원에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여직원은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억울함을 서라에게 퍼부었다.“진서라 씨, 당신 남매는 이제 끝이에요! 경비를 쳤을 뿐만 아니라 매니저님도 쳤으니 오늘 반드시 신고해서 당신들 감방에 처넣을 거예요!”여직원의 말을 듣자, 서라도 서준과 재회한 기쁨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서준이 다시 감방에 들어갈 것을 원하지 않아 연이어 사과했다.“죄송해요, 매니저님께서 제 몸에 손을 대려고 했어요. 그래서 오빠가 때린 거예요.”“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어떻게 너 같은 천한 년 몸에 손댈 수 있어? 분명 네년이 날 꼬신 거잖아!”고석은 큰 소리로 외쳤다.“그러니까요. 저희 매니저님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데요. 어떻게 서라 씨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지금 당장 신고해요. 절대 이 남매를 봐줘선 안 돼요!”서준은 서늘한 시선을 하며 고석을 향해 걸어갔다.“당... 당신 뭐 하려는 거야?”몸에서 전해지는 통증은 여전히 고석의 대뇌를 자극하고 있었다. 서준을 바라보는 눈길엔 두려움이 가득했다.“내 동생에게 사과해요. 그리고 사실대로 말해요.”서준은 서늘하게 말했다.“사실 같은 소리 하네요. 이 호텔 전부가...”여직원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쳤다. 순간 그녀는 멀리 날아갔다.“계속 내 동생을 모욕하면 영원히 그 입 닥치게 해줄 거예요!”서준의 몸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는데 사무실 공기마저 얼어붙을 정도였다.아까 서라와 안을 때 그녀의 맥을 짚어보았다. 서라의 신체 내 여러 기관의 기능이 극도로 약해진 것을 발견했다.이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고강도로 일하느라 초래된 증상이었다.이 집을 위해 서라가 너무 많이 희생했다.서
고석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맞은 건 그인데 왜 잘렸는지 말이다.“사장님, 뭔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이년이 먼저 절 꼬셨어요. 그리고 맞은 것도 전데 왜 절 자르세요?”고석은 억울한 표정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사장을 보며 말했다.“당신을 꼬셨다고요?”연아의 시선은 매우 차갑고 날카로웠다. 이 한눈에 고석은 마치 얼음으로 가득한 구렁텅이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거울 좀 봐요. 당신 꼴이 어떤지.”다른 직원들은 이 말을 듣자 입을 막으면서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아까 고석의 편을 들던 두 여직원은 서로를 바라보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고석은 마흔 살이 넘었고 머리카락도 몇 가닥 붙어있지 않았으며 얼굴에 잡힌 살은 반사될 지경이었다.호텔 매니저만 아니었어도 직원들이 그와 말을 섞는 일은 없었을 거다.“사장님, 그 말은 좀 아니라고 생각해요.”고석은 살짝 내키지 않았다.“제가 생긴 건 이래도 적어도 호텔 매니저예요! 저에게서 뭔가 얻으려고 꼬신 게 분명하다니까요! 하지만 전 매우 정직한 사람이니 이런 규율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어요.”고석은 정의가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는데 연기 실력은 현재 젊은 배우를 뛰어넘을 정도였다.하지만 현장에 있는 직원은 잘 알고 있었다. 고석은 직원의 월급을 착취하고 호텔 공금을 빼돌린 뱀파이어라는 것을.해가 서쪽에서 떴다는 것을 믿을지언정 고석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본분을 지킨다는 개소리를 믿지 않을 것이다.연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이 년 동안 비록 호텔에 와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당신이 한 짓을 모를 줄 알았어요?”강한 아우라에 고석의 이마엔 식은땀이 났다.“사장님, 잘못 생각하신 거 아니에요? 전 절대 사장님에게 미안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이 년 동안 고석은 확실히 호텔의 공금을 많이 탐냈고 만약 연아가 정말 그를 고소한다면 후반생은 족히 감방에서 보낼 수 있었다.“황고석 씨, 당신 동생이 내 아래에서 일을 착실하게 하지만 않았어도 당신은 이미 감방에 들어갔어요.
연아의 비서는 더는 참지 못하고 뒤에 있던 경호원에게 말했다.“어서 이 막말하는 경호원을 내던져요!”경호원이 손을 쓸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때 연아가 입을 열었다.“내 몸에 질병이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이 말이 끝나자마자 비서 이지연과 서라는 깜짝 놀랐다.연아에게 정말 질병이 있다고? 그럴 리가!“당연히 눈으로 보아낸 거죠.”서준은 담담하게 웃었다.“한의학엔 네 가지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바로 환자의 병세를 보고, 듣고, 묻고, 맥을 짚어 보는 것입니다. 당신의 병은 실력 있는 한의사라면 한눈에 보아낼 수 있어요.”서준이 자화자찬하는 것이 아니었다. 연아의 한기는 너무 심했다. 삼 미터 밖에 있는 서준도 선명히 느낄 정도였다.이건 그녀의 차가운 아우라에서 나오는 기운이 아니라 그녀의 몸 내부였다.이 점에 대해 다른 사람은 잘 느껴지지 않겠지만 에너지가 있는 서준은 선명히 느껴졌다.“잘난 척 좀 그만해요.”잠시 멈칫한 후 지연이 화를 내며 말했다.“그쪽 모양새를 보니 대학을 금방 졸업한 것 같은데 학교에서 몇 년 공부 좀 했다고 정말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보죠?”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의술의 높고 낮음은 나이를 본다.만약 상대방이 60살이 넘는 어르신이었다면 믿음이 가지만 상대방이 금방 대학을 졸업한 학생이라면 감히 그에게 자신의 병을 맡길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나이가 의술이라는 생각은 이미 사람들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었다.그래서 지연이 깔볼 때 서준은 신경 쓰지 않았다.연아도 서준의 의술을 의심했다.그는 연아에게 웃으며 말했다.“사장님은 찬 음식과 찬 맥주를 마시지 못해요, 매번 이런 음식을 먹을 때마다 심장과 위에 통증을 느끼죠. 그리고 내분비가 그렇게 균형되지 못하고 매달 월경 기간 많은 양의 피를 흘리죠.”서준의 말을 듣자 연아의 표정은 급변했다.다 맞는 말이었다.“당신의 체온은 점점 낮아져요. 비록 당신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가까이 오는 사람들은 한기를 느끼곤 해요.”이번엔 지연이 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진서준은 어디선가 버들가지 하나를 꺼내 들고 유연비의 몸에 세게 내리쳤다.찰싹!한 대 맞자 유연비의 피부는 찢어지고 살점이 갈라졌다.유연비는 바로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아악! 진서준, 너 미쳤어?”유연비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유연비는 자기가 드디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서준이 살려준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자기를 고문하려고 시도하는 것이었다.진서준은 무표정을 유지한 채 가시가 달린 버들가지로 유연비를 마구 때렸다.몇 대 맞고 나자 유연비의 몸은 살점과 피로 뒤덮였고 상처투성이가 되었다.폭우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유연비 주변의 바닥은 이미 진한 붉은색으로 물들었다.“제발 놔줘... 네 여자 몸의 상처는 내가 남긴 게 아니야.”유연비는 울면서 애원했다.“넌 죽어야 해. 유지수도 물론 죽어야 하고.”진서준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너희 유씨 가문 사람들 모두 오늘 유지수가 한 짓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할 거야.”“국안부는 네가 이렇게 막 나가는 걸 용납하지 않을 거야. 네가 폭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건 국안부와 적이 되겠다고 선전포고하는 거야.”유연비는 바로 국안부를 꺼내 들었다.유지수가 이제 진서준을 위협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유연비는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국안부를 내세워 진서준을 제압하는 것이었다.하지만 진서준은 여전히 냉랭하게 말했다.“날 감히 제지하는 놈이 있으면 그게 누가 됐든 죽는 길밖에 없어.”말투는 매우 평온했지만 유연비는 소름이 돋아 발밑에서 차가운 기운이 뇌까지 치솟았다.버들가지가 다시 휘둘러지며 유연비는 하늘을 찢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아침이 되어서야 비가 그쳤고 유연비는 그때까지 버들가지로 된 채찍을 계속해서 맞았다.유연비는 지금 목숨이 겨우 붙어있는 상태였고 그녀의 몸엔 온통 피와 살이 뒤엉켜 있었다.“날 죽여, 날 죽여줘!”진서준의 잔인한 고문을 견딜 수 없었던 유연비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유지수에게 전화해.”진서준이
구용소천!진서준의 체내에서 영기와 혈해가 거세게 뒤엉키더니 무시무시한 압박감이 몸 밖으로 폭발했다.펑! 펑!진서준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던 전투병 두 명이 바로 폭발하듯 뒤로 튕겨 나갔다.혈해 속에서 거대한 용 세 마리가 진서준의 뒤에 나타났고 이 혈용은 이내 진서준의 체내로 흡수되었다.이 장면을 본 유연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유연비는 진서준이 오직 검도에만 능한 줄 알았는데 진서준이 횡련도 능숙하게 다룬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다들 함께 달려들어 저 녀석 죽여버려!”이 순간, 유연비의 마음속에서 두려움이 서서히 피어올랐다.“꺼져!”개조된 전투병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진서준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진서준이 주먹을 휘두르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로 앞의 전투병을 순식간에 산산조각 냈다.전투병의 몸에서 분출한 피는 폭우에 씻겨 순식간에 사라졌다.다른 전투병이 반응하기도 전에 진서준은 다시 그중 한 명의 앞에 나타났고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러 그 전투병을 터뜨렸다.두 명을 연속으로 처치한 진서준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몸을 빨리 움직여 길을 막는 전투병을 모조리 해치웠다.절대적인 힘 앞에서 이 전투병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길 외엔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하지만 이 개조 약제를 칠급, 심지어 팔급 대종사에게 사용한다면 그 결과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눈 깜짝할 사이에 유연비가 데려온 20여 명의 개조된 전투병은 전부 진서준의 주먹을 맞고 산산조각 났다.바닥 위에는 부서진 뼈들 외에는 피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다.한 팔로 우산을 받쳐 들고 있던 유연비는 눈알이 거의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유연비는 이 전투병들이 진서준을 기진맥진하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지만 뜻밖에도 이 전투병들은 진서준의 주먹에 의해 전부 시체도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죽었다.사실 이 개조된 전투병들은 이급 횡련 대종사급 몸 상태를 자랑하는 자들이었다.전투병들은 피로나 두려움, 심지어 고통도 모르는데 사지를 잘라내지 않으면 절
허성태의 두 다리는 이미 부러진 상태였고 숨을 거두기 일보 직전이었다.부녀의 비참한 모습에 진서준은 미칠 듯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평범한 사람의 분노는 작은 범위 내에서 피를 튕기게 하지만 천재의 분노는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탁탁탁...사방에서 갑자기 빠른 발소리가 들려오자 진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진서준을 겹겹이 에워쌌다.“너희들 누구야?”이 사람들을 보자 진서준은 분노를 억지로 억제하며 급히 움직이지 않았다.진서준은 이 사람들이 명을 따르기만 하는 조무래기란 걸 알고 있었다.진짜 배후는 분명 이 사람들 뒤에 있을 것이다.그때, 화려한 우산을 받쳐 든 인물이 별장 안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자 전투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둘러 길을 터주었다.“너였구나.”진서준은 유연비를 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렸다.분명 이 여자의 목숨을 살려주었는데 이 여자는 반성하거나 고맙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진서준의 여자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다.“허사연과 허성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이 너야?”진서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유연비는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아니야, 범인은 네 전 여자친구야.”“뭐라고? 유지수는 이미 죽지 않았어?”진서준은 믿기 어려워하며 소리쳤다.“그때 네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유지수는 네 아버지에게 처형당했다고.”유연비는 그 말에 조롱이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비꼬았다.“네가 내 말을 진짜 믿을 줄은 몰랐어. 유지수는 죽지 않았어. 오히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지. 네 여자 몸에 있는 그 상처들은 다 유지수가 한 짓이야.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어.”진서준이 주먹을 꽉 쥐자 주먹에서 우두둑 소리가 들릴 정도로 분노가 넘쳐흘렀다.“그 여자는 어디 있어?”“이 사람들을 물리치면 알려줄게.”유연비가 뒤로 물러서자 수십 명의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앞으로 나섰다.이들은 전부 강력한 기운을 발산했고 감정도 없는 로봇처럼
전화가 걸렸을 때, 진서준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휴대폰 소리에 깨어난 진서준은 전화를 보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전화를 건 사람이 서정훈이란 걸 발견한 진서준은 직감적으로 뭔가 큰 일이 벌어졌음을 느꼈다.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서정훈이 굳이 전화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서 시장님, 무슨 일이에요?”진서준이 급히 물었다.“진서준, 허사연이 큰 사고를 당했어.”서정훈이 초조한 목소리로 급히 말했다.우르릉!순간 진서준의 머릿속에 천둥소리가 울리며 눈앞이 하얘졌다.“사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어요? 자세히 말해 주세요!”진서준은 급히 침대에서 일어났다.집에는 누렁이와 하얀이 두 마리의 이수가 지키고 있었다.칠급 대종사가 아닌 이상, 누렁이와 하얀이의 방어선을 넘을 수 없을 것이다.“허사연이 허씨 가문 대문에 매달려 있어. 네가 빨리 돌아와 구해줘야 해. 하루라도 지체하면 허사연이 버틸 수 없을지도 몰라.”허씨 가문 대문에 매달려 있다고?진서준의 가슴 속에서 폭발적인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자마자 진서준은 허윤진을 비롯한 여성들을 깨우기 시작했다.“사연에게 큰 일이 생겼어.”언니가 크게 다쳤다는 말을 들은 허윤진은 눈물을 글썽이며 급하게 물었다.“언니가 어떻게 된 거야?”“정확히 무슨 상황인지는 나도 잘 몰라. 서 시장이 방금 전화로 알려줬어.”상황을 대충 설명하면서 진서준은 또 다른 전화번호를 눌러 황예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두세 번 울리자 황예은이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황예은의 질문에 진서준은 바로 용건을 말했다.“비행기를 준비해. 지금 당장 서울로 가야 해.”“알았어, 지금 우리 집에 와.”황예은은 이유도 묻지 않고 바로 승낙했다.진서준은 차를 몰고 허윤진 일행을 데리고 황씨 가문으로 향했다.황씨 가문에 도착하니 헬리콥터 한 대가 정원에 정박해 있었고 황예은은 검은색 잠옷을 입고 진서준을 기다리고 있었다.“고마워.”진서준은 긴말하지 않고 감사
손바닥이 비처럼 쏟아지며 허사연의 얼굴에 거침없이 내리쳤다.“쌍년이 그때는 그렇게 오만하고 방자하더니 지금은 왜 이렇게 조용해? 입이 얼어붙었어? 재벌 딸이란 이유로 날 그렇게 괴롭히더니, 왜 지금은 가만히 있어? 오늘 진서준이 여기 없는 게 정말 아쉽구나. 진서준이 있었다면 내가 진서준에게 네가 남자에게 능욕당하며 죽는 꼴을 직접 보게 할 텐데 말이야.”유지수는 미친 사람처럼 허사연에게 끊임없이 욕설과 따귀를 날렸다.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차마 눈을 뜨고 지켜볼 수 없었다.도대체 어느 정도의 원한이 쌓여야 이토록 한 여자에게 잔인할 수 있을까?하지만 유지수는 여전히 분풀이하기엔 부족하다고 느껴 비어버린 술병을 들고 허사연의 머리를 향해 거침없이 내리쳤다.펑!순간 허사연의 머리에서 피와 술이 뒤섞여 허사연의 얼굴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허사연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유지수는 여전히 일말의 자비도 없이 발로 허사연의 손가락을 힘껏 밟았다.“아악!”허사연은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심장을 찌르는 극심한 고통이 밀려와 허사연은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었다.“아프지? 내가 지난 반년 동안 겪은 고통은 지금 그 고통보다 천 배는 더 심했어.”유지수는 악마처럼 웃으며 하이힐의 끝으로 허사연의 손가락을 더 세게 밟았다.말로만 듣던 열 손가락은 한 마음이라는 말이 사실이었다.허사연의 손가락은 모두 부러졌고 손바닥은 피와 살점으로 뒤덮여 끔찍한 모습이 되었다.유지수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냉정하게 허사연을 바라봤다.유지수는 사실 허사연에게 너무 큰 원한을 품고 있지 않았다.오직 진서준만이 유지수가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이었다.“죽고 싶어? 죽여줄까?”유지수는 자세를 낮춰 불쌍한 벌레라도 보는 듯한 눈빛으로 허사연을 바라봤다.“죽는 것도 네겐 사치야. 난 네게 생지옥이 어떤 곳인지 보여줄 거야. 이 여자를 허씨 가문에 끌고 가서 대문에 매달아 놔. 누구도 이 여자 근처에 얼씬대지 못하게 잘 지켜. 주위에 오는 놈이 있
허사연의 뇌는 온통 하얗게 변했다.유지수가 여기서 자기에게 대놓고 따귀를 날릴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이건 서울시 유명 인사들 앞에서 자기를 창피하게 하려는 의도였다.“유지수, 여긴 서울이야. 네가 마음대로 난동을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야!”허성태는 딸이 맞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지만 경호원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하지만 허성태가 유지수 앞에 다가갔을 때, 갑자기 허성태는 화물차에 부딪힌 것처럼 뒤로 날아가 바닥에 거칠게 쓰러지며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그 광경에 주변의 손님들은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섰다.“아빠!”허성태가 처참하게 당하는 모습을 본 허사연은 분노가 치솟았다.“너희 아빠 걱정할 시간에 차라리 너 자신이나 걱정해.”유지수는 말없이 다시 한번 손을 들려 했지만 이번에는 허사연이 방어할 준비를 했다.진서준과 함께 수련한 지 반년이 넘은 유지수는 현재 일급 대종사의 실력을 갖췄다.서울시에서는 이제 유지수가 누구도 두렵지 않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지만 유지수를 마주한 순간, 허사연은 도저히 막아낼 수 없었다.유지수의 손이 허사연의 손과 맞붙자 무시무시한 힘이 유지수의 팔을 타고 몸 전체로 퍼져갔다.그 충격에 허사연 몸의 뼈가 여러 군데 부러졌다.허사연이 물러서자 유지수는 바짝 따라가며 따귀를 또 두 대 날렸다.허사연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졌고 두 뺨은 붉게 부풀어 올랐다.“허사연, 작년에 네가 진서준과 함께 날 망신 주던 그때, 오늘 이 순간을 상상해 본 적 있어?”유지수가 조롱 섞인 눈빛을 보내자 허사연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진서준이 돌아오면 넌 끝장이야.”유지수는 그 말에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그 녀석이 돌아온다면 그 녀석을 지옥으로 보내 너와 함께 있게 해줄게. 내가 지난 반년 동안 겪은 모든 고통은 전부 너희 둘을 다시 찾을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야.”“그건 네가 예전부터 마땅히 겪어야 할 일이었어.”허사연이 유지수를 노려보며 말했다.“맞아, 내가 예전엔 약자였지.”유지
지금의 유지수는 몸짓 하나하나에 자신감이 넘쳤다.유지수의 얼굴이 변하지 않았다면 허사연은 눈앞의 이 사람이 바로 그 전에 아부에만 신경 쓰던 유지수일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변화였다.허사연은 마음속의 충격을 억누르며 유지수 앞에 앉았다.“근데 넌 왜 서울에 왔어? 진서준을 찾으러 온 거야?”허사연의 눈빛이 복잡해졌다.“맞아요, 근데 진서준이 서울에 없더라고요.”유지수가 약간 실망한 듯 말했다.“그래도 허사연 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아니었으면 정말 헛되이 왔을 거예요.”“나에게 뭔 볼일 있어?”허사연이 경계심을 나타내며 물었다.“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예요.”유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는 창문 앞에 서서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사람의 운명이란 참 신기하고 짖궂은 것 같아요. 예전에 여기 서울시는 내가 꿈에도 바랐지만 손에 넣을 수 없을 곳이었어요. 근데 누가 알았겠어요, 1년 후인 오늘, 내가 유씨 가문 아가씨라는 신분으로 여기 서 있게 되었죠. 허사연 씨, 예전에 난 당신을 정말 부러워했어요. 당신이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것이 너무나 부러웠어요. 입만 열고 손만 내밀면 모든 게 다 준비되어 있고 걱정할 게 없었죠.”유지수는 몸을 돌려 허사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유씨 가문에 가보니 사실 명문대가에 있다는 게 썩 좋은 일은 아니더라고요.”허사연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유씨 가문으로 돌아갔을 때, 아빠가 내게 두 가지 길을 줬어요. 하나는 죽어서 시체로 버려지는 거였고 또 하나는 과거의 치욕을 씻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 대가가 정말 컸어요.”유지수는 차분하게 과거를 털어놨다.“그래서 오늘 내게 복수하러 온 거구나.”허사연은 심호흡을 크게 하며 말했다.“복수는 아니에요.”유지수는 평온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저 진서준에게 작은 교훈을 주려는 것뿐이에요. 벌써 이 시간이네요. 이제 슬슬 나가야죠.”
“유연비 씨?”두 사람 앞을 가로막은 건 유연비였다.한쪽 팔만 남은 유연비를 보며 허사연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유연비가 이렇게 된 것도 자업자득이었기 때문이다.유연비가 진서준을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면 진서준이 굳이 여자를 상대로 이렇게 잔인하게 손을 댈 수 없었을 것이다.“허사연 씨, 오랜만이에요.”유연비가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오랜만이에요.”허사연이 가볍게 인사했다.“유연비 씨, 오늘 만찬의 주인공이신데 왜 여기 계시죠?”허사연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허사연의 신분과 지위로 봤을 때 유연비가 굳이 그녀를 맞으러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었다.물론 진서준은 예외였다.하지만 진서준은 서울시에 없다는 사실을 유연비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저는 오늘 만찬의 주인공이 아니에요.”유연비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허사연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주인공이 아니라고요? 유씨 가문 아가씨는 유연비 씨 혼자잖아요.”“누가 그런 말을 했죠?”유연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유연비의 표정에 허사연은 소름이 돋았다.유씨 가문의 여자는 사실 유연비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유연비에게는 또 다른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는 바로 진서준의 전 여자친구 유지수였다.그러나 유연비는 지난해 유희연이 그녀의 친부에게 살해당했다고 말한 바 있었다.그 이유도 단순했다. 유지수가 유씨 가문 명예를 더럽혔기 때문에 죽어도 마땅했기 때문이다.진서준과 허사연은 유지수의 시체를 본 적은 없지만 두 사람은 유연비가 그들을 속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다.하지만 지금 유연비의 말은 허사연에게 극도의 불안감을 안겼다.“그 여자 아직 살아있어요?”허사연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곧 알게 될 거예요.”유연비가 차갑게 웃자 허사연의 발끝에서부터 차가운 기운이 밀려왔다.“허사연 씨, 일단 들어오세요.”유연비는 허사연을 잡아끌며 떠날 틈을 주지 않았다.그때 허사연은 호텔 입구의 경호원이 전부 무인이란 걸 비로소 깨달았다.경호원들은 지금 허사연과 그녀
그러고는 진서준은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잠깐만.”황예은이 갑자기 말하자 진서준이 눈썹을 추켜세웠다.“무슨 일이야?”“우리 다음에 언제 만날 수 있어?”황예은이 진서준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묻자 진서준은 깊이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멸용 조직이 네게 만남을 제안할 때야. 그 조직이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보이면 바로 나한테 전화해.”황예은이 대답하지 않자 진서준은 다시 물었다.“또 다른 일 있어?”황예은은 빨간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아니야, 없어.”“그럼 다음에 또 보자.”진서준은 몸을 돌렸다.막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향긋한 향기가 불현듯 코끝을 스쳤고 곧이어 두 팔이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다.그리고 옷 너머로도 느껴지는 부드러움이 진서준의 등 뒤에 바짝 밀착되었다.진서준은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져 그 자리에 멈춰 섰다.다행히 황예은은 더 이상의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잠시 후, 황예은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고마워.”“고맙긴, 몸조심해.”황예은이 팔을 풀고 난 뒤에야 진서준은 발걸음을 옮겼다.진서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던 황예은은 그제야 뒤돌아섰다.“이제부터는... 로봇이라는 소리는 안 듣겠지?”황씨 가문을 떠난 뒤, 진서준은 바이올렛과 함께 동호 근처에 있는 별장으로 돌아왔다.별장 안에는 허윤진과 서지은이 진서준을 기다리고 있었다.“진서준, 우리 내일 가는 게 어때? 오늘 밤 비행기는 이미 만석이야.”“그러자.”집에 돌아가는 게 급한 일이 아니니 내일 아침에 떠나도 문제는 없었다.하지만 진서준은 그날 밤, 평생 후회할 뻔한 일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평온했던 서울시는 그날 오후가 되자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모든 명문대가 권력자가 초대장을 받았기 때문이다.“서북 유씨 가문 아가씨? 그게 누구야?”“유씨 가문은 서북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가문이잖아. 재산과 권력을 겸비한 대가문이지.”“그런 거물이 왜 갑자기 우리 서울시 같은 작은 도시에 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