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명령에 열댓 명의 경호원이 진서준을 둘러쌌다.덩치 큰 체구의 경호원들이 왜소한 체구의 진서준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주위를 둘러싼 하객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지켜볼 뿐 경찰에 신고하거나 앞장서서 말리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다들 진서준이란 젊은이가 조만간 죽을 거라고 여겼으니까.진서준이 한 걸음 내딛자 더킹 룸 전체가 뒤흔들렸다.그는 곧이어 경호원들에게 몸을 돌리고 가차 없이 돌진했다.퍼퍼퍽...고작 몇 개의 동작에 열댓 명의 덩치 큰 사나이들이 죽은 개처럼 바닥에 축 처졌다.이 광경을 본 모든 이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들 못 믿겠다는 눈길로 진서준을 쳐다봤다.바닥에 쓰러진 변우재는 발밑에 한기가 차오르고 떨리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이 자식 사람 맞아?’메인 석에 앉아있던 한 중년 남성이 이 장면을 지켜보더니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그가 바로 이지성의 아버지인 이혁진이자 이씨 일가의 세대주이다.그는 무인이라 진서준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적어도 그조차도 진서준의 상대가 될 수 없다.긴 단상 위에서 이지성은 부하들이 일격을 견디지 못하는 모습에 욕설을 퍼부었다.“이런 쓰레기 같은 것들, 감방 다녀온 새끼 하나 못 제압해?!”진서준은 이지성을 쳐다보며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뭐... 뭐 하려는 거야?”이지성은 발끝에서부터 한기가 차올랐고 두 눈에 공포가 휩싸였다.“네가 우리 엄마 두 다리를 부러뜨렸지? 오늘 너도 똑같이 해준다!”엄마의 처참한 모습을 떠올리니 진서준의 눈가에 스친 살의가 더 짙어졌다.그는 한걸음에 이지성의 앞으로 돌진해왔다.이지성이 미처 정신 차리기도 전에 진서준이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이혁진이 말리려고 했으나 진서준의 속도가 너무 빨라 두 눈 뜨고 아들이 두 다리가 잘리는 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철컥철컥!”뼈가 부러지는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지성이 순간 바닥에 주저앉았다. 두 다리는 마치 꼭두각시처럼 전혀 통제되지 않았다.“으악...”처참한
이혁진은 허사연을 보자 활짝 웃으며 재빨리 그녀를 마중 갔다.“허사연 씨,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허사연이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누군가가 여기서 소란을 피운다고 들어 직접 확인하려고 찾아왔어요.”“일개 건달일 뿐이에요. 저희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으니 사연 씨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요.”이혁진이 손을 비비며 웃었다.“오늘 밤 호텔 내의 모든 손실은 전부 저희 가문에서 배상하겠습니다.”이혁재가 이토록 겸손하게 말하니 허사연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배상은 필요 없고 우리 호텔에서 허술하게 관리한 탓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으니 다 우리 쪽 책임입니다. 소란을 피운 자가 누구인지 얼른 확인해야겠네요.”이혁진이 앞에서 길을 안내했다.“네,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주변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또다시 쉬쉬거렸다. 진서준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에 연민과 야유가 가득 담겨 있었다.이씨 일가와 허씨 일가는 아예 같은 레벨이 아니다. 허씨 일가에서 손을 한 번 휘두르면 서울시 전체에 감당할 자가 몇 가문이 안 된다.이지성은 이리로 걸어오는 허사연을 보자 냉큼 눈물로 호소했다.“사연 씨, 저 새끼가 제 다리를 분질렀어요!”허사연은 그의 말을 듣더니 미간을 확 찌푸렸다.그녀가 오늘 이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허씨 일가는 서울시에서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걱정 마세요. 우리 가문에서 오늘 반드시 지성 씨 일을 원만하게 해결해드리겠습니다!”허사연이 엄숙하게 말했다.이 말을 들은 이지성은 기분이 째질 것만 같았다.그녀는 곧바로 시선을 돌려 한 무리 사람들을 훑어봤다.“대체 누가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운 건지 똑똑히 지켜봐야겠어요...”그녀는 말을 채 잇지도 못한 채 문득 입을 다물었다. 마치 누군가가 손으로 자신의 목을 꽉 잡는 것만 같았다.허사연은 진서준에게 시선이 꽂히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이지성은 그녀의 표정을 관찰하지 못하고 허리를 곧게 펴며 진서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진서준, 이 세상 물정도 모르는 건
강성철의 명성은 너무 큰지라 허씨 집안마저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진서준은 사연의 고려를 눈치챈 후 말했다.“허사연 씨, 사람을 데리고 돌아가세요. 이 일은 제가 처리하면 됩니다.”“당신이 직접 처리한다고?”이혁진은 비웃었다.“강성철 어르신께서 오시기만 하면 그쪽은 죽은 거나 다름없어!”사연은 어금니를 꼭 깨물고는 서준을 보며 말했는데 그녀의 시선은 아주 굳건했다.“진서준 씨, 당신은 저희 허씨 집안의 은인이세요. 그러니 저희는 절대 서준 씨를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사연의 이런 단호한 태도는 서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래. 당신이 정 허씨 집안을 이 구렁텅이에 빠뜨리게 하고 싶다면 내가 힘을 보태주지!”혁진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이를 갈았다. 그는 직접 성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래 성철이 그에게 진 신세를 써버리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소중한 기횐데 이런 작은 일에 사용하기엔 너무 아까웠다.그런데 만약 이씨 집안이 사연이 서준을 데려가는 것을 눈 뜨고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분명 상류사회의 비웃음을 자아낼 것이다.이후, 또 누가 이 씨네 와 비즈니스 합작을 하려 할 것인가!전화를 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호텔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오면서 뒤이어 소란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사람들은 호기심에 유리창 너머로 밖을 보았는데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래에는 사람들로 뒤덮여 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칼을 들었다. 호텔은 삽시에 이들에 의해 막혔다. 대략 세어보니 적어서 백 명이나 되었다.사연은 이 장면을 보자 간신히 갖고 있던 희망이 재가 되는 것을 느꼈다.그녀도 비록 경호원을 데리고 오긴 했지만 이십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십 명이 백명과 싸운다면 질 게 뻔했다. 더욱이 상대방은 무기도 들고 있었다.비록 강성철이 그녀를 어떻게 하진 못하지만 진서준은 분명 죽을 것이다.끼익...연회장의 문이 열리면서 스무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두 줄로 들어와서 일자로 늘어섰다. 그들은 전부 키가 백구십 정도였고 검은색 양복을 입고
성철의 부하가 움직인 것을 보자 겁이 많은 사람들은 눈을 막으면서 이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감히 보지 못했다.성철은 부하를 막지 않았다. 자신이 죽을 거라고 계속 말하던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보고 싶었다.하지만 시퍼런 칼이 서준의 팔에 닿으려 할 때 그는 움직였다.서준은 손을 내밀어 두 손가락으로 칼을 잡았는데 아주 안정적이었다.성철의 부하는 덩치도 컸고 키도 190이 넘었다. 몸엔 근육이 단단히 잡혀있었는데 마치 큰 돌덩이 같았다. 그러니 그의 힘은 비리비리한 서준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하지만 지금 서준은 두 손가락으로 그의 목숨을 앗아갈 뻔한 칼을 허공에 멈추게 했다.다들 입을 크게 벌렸고 성철도 제법 놀란 듯했다.젊었을 적 성철이라 해도 두 손가락으로 칼을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감히 나한테 칼을 휘두르다니, 죽지 못해서 안달이네요.”서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손가락을 세게 튕겼다.펑!큰 소리 후 칼은 절반으로 갈라졌다.성철의 그 부하는 연이어 뒤로 물러서면서 탁자에 부딪혔다. 그때야 간신히 힘을 빼고 제대로 섰다.그때 그는 자신의 손이 찢기면서 선홍색 피가 용솟는 것을 발견했다.성철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서늘하게 말했다.“좀 배운 놈이구나. 그러니까 이렇게 날뛰는군.”“하지만 넌 상대를 잘 못 골랐어!”성철이 손을 쓸 거라고 생각한 찰나, 그의 머리 위에 달려 있던 샹들리에가 예고 없이 떨어졌다.이 위기의 순간에 성철의 부하 한 명이 힘껏 그를 밀어냈다.결국 이 부하는 성철 대신 떨어지는 샹들리에에 맞아 핏덩이로 되었다.서준도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순간 아직 경악 속에서 헤매고 있던 사연을 안고 새처럼 뒤로 몸을 날렸다.성철은 이 장면을 보자 심장이 미세하게 떨렸고 눈동자엔 두려움으로 가득했다.만약 부하가 목숨으로 그를 구하지 않는다면 죽는 건 아마 그였을 거다.원래 성철은 이게 단순히 우연일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조금 있다가 벌어지는 일은 그로 하여금 아까 서준이 했던 말을 믿게 하였다.
성철은 강인한 남자였다. 스스로 팔을 부러뜨리면서 아픈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손에 들고 있던 막대기를 버린 후 성철은 몸을 돌려 서준을 보았다.“선생님, 마음에 드십니까?”“음, 나쁘지 않군요.”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의 부하더러 붓, 주사 그리고 노란 종이를 가져오라고 해요.”곧 성철은 서준이 원하는 모든 물건들을 가져오게 했다.그는 종이를 탁자에 놓고 붓을 들어 주사를 먹으로 삼고 손을 휘저으며 재난을 막는 부적을 그렸다.“이걸 갖고 다니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성철은 마치 소중한 보물이라도 얻는 것처럼 부적을 옷 주머니에 넣었다.예전엔 성철은 이런 풍수지리를 믿지 않았다. 미신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 그는 서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서준은 성철이 이 부적을 손에 넣은 후 그에게 해를 가하는 게 두렵지 않았다. 상대방을 살릴 수 있으면 당연히 그를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재난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선생님, 제가 뭘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말만 하시면 오늘 이씨 부자의 목숨을 끊을 수 있습니다.”이 말이 끝나자마자 이씨 부자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지면서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연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놀란 얼굴을 했다.“이렇게 죽이기엔 너무 아까워요. 가끔은 빈털터리로 사는 것도 죽음보다 잔인할 때가 있거든요.”홀의 기온은 서준이 이 말을 한 후 물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게 변했다.지수는 눈앞의 서준을 보았다. 정말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자신이 마음대로 괴롭히던 서준이 이렇게 변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녀는 서준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사람을 구하면서 세상을 어진 마음으로 대하는 의사,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악마.도대체 뭐가 진정한 너야?’“이지성, 얼마 남지 않은 즐거운 시간을 잘 보내길 바라.”말을 마친 후, 서준은 몸을 돌려 호텔 밖으로 나갔다.서준이 간 후, 성철은 혁진을 차갑게 쏘
희선의 말을 듣자, 서준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제가 전화해 볼게요.”서준은 핸드폰을 꺼내 서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두세 번이 지나도록 받는 사람이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점점 더 강해졌다.“어머니, 서라가 어디에서 출근해요? 제가 찾으러 갈게요.”“서라는 요즘 명성 호텔에서 출근해. 이 길 따라 남쪽으로 한 3킬로미터 정도 가면 돼.”희선은 창문 밖의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서라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서준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았다. 오분도 되지 않았을 때 그는 호텔 입구에 도착했다.이건 사성급 호텔이었는데 아까 서준이 갔던 오션 호텔과 비교할 수 없었다.그렇더라도 일반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서준은 빠른 걸음으로 호텔 안에 걸어갔다.호텔 로비에 서 있던 두 직원은 서준을 보자 얼굴에 경멸스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여기에서 일 년간 일하면서 서준처럼 두꺼운 낯짝으로 들어오는 가난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안녕하세요.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진서라가 여기서 일합니까?”서준은 직원 한 명 앞에서 예의 있게 물었다.하지만 직원은 불쾌하다는 듯 코를 막으면서 뒤로 반걸음 물러섰다.“조금 떨어져요. 본인 몸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는 줄도 몰라요?”오전 동안 바쁘게 다니다 보니까 몸에선 확실히 땀 냄새가 났다. 그러나 심하진 않았다.상대방이 자신을 깔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원하는 게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미안합니다. 진서라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서준이 서라를 물어보는 것을 듣자 여직원의 두 눈엔 경멸로 가득했다.“진서라 취향도 참 독특하다니까. 이런 남자도 눈에 들어오나 보지?”다른 여직원이 이 말을 들은 후 함께 비웃었다.“전엔 그렇게 청순한 척하더니 지금은 자기를 갖고 논 남자가 이렇게 일하는 데까지 찾아오고 말이야.”두 사람이 자신의 동생을 모욕하는 것을 듣자 서준은 순간 화가 났다.가족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거였다. 감히 함
십 분 전, 명성 호텔 매니저 사무실 안.“황 매니저님, 절 찾으셨어요?”서라는 긴장된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는 중년 남자를 보았다.중년 남자는 황고석, 바로 명성 호텔의 매니저였다.비록 마흔 살 초반이었지만 탈모가 너무 심한 나머지 머리카락이 얼마 붙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신장에 좋다는 보약을 많이 먹어서 평소에 몇 걸음 걷지 않아도 숨을 헐떡인다.하지만 그런 몸 상태를 갖고 있어도 그는 저질적인 눈빛으로 호텔 안의 여직원을 훑고 다녔다.소문에 의하면 호텔 안 얼굴이 반반하게 생긴 여직원들과 다 잤다고 한다.서라는 전부터 황고석의 암시를 받았지만 엄숙하게 거절했다.그 후, 고석은 서라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월급을 깎았다.만약 집에 진 빚만 아니었어도 일찍이 사직하고 그만뒀을 것이다.오늘 퇴근하기 전, 그는 서라를 사무실에 불렀다.“서라 씨, 최근 서라 씨에 대한 컴플레인이 들어왔어요.”고석은 음탕한 눈빛으로 서라를 훑으며 시도 때도 없이 입술을 핥았다. 서라는 이 장면을 보자 구역질이 났다.“컴플레인이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저는 호텔 룰에 따라 일했을 뿐이에요.”서라는 불쾌한 듯 말했다.“그건 전 모르죠. 아무튼 전 컴플레인을 받았어요.”고석은 시선을 거두고 한 쪽 다리를 탁자에 올려놓았다.“손님 한 분이 서라 씨를 곧 사퇴하라고 하던데, 어떡할까요?”서라는 순간 당황했다. 그녀는 얼른 고석에게 빌었다.“매니저님, 제발 절 사퇴하지 말아주세요. 집에 진 빚을 다 갚지 못했단 말이에요.”돈을 갚기 위해 서라는 하루에 알바 세 개를 뛰었다.아침에 일찍 일어나 국밥집에서 일했고 점심 때엔 명성 호텔에 갔다. 저녁에 퇴근한 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노래방에서 일하면서 하루에 6시간도 되지 않는 수면시간을 가졌다.그녀도 좋은 일자리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고졸이어서 웨이터 외 다른 직업은 그녀를 원하지 않았다.명성 호텔에서 잘린다면 단시간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건 괜찮지만 빚을 갚는 시간을 넘어서는 안 됐다.서라가 이
아까 서준에게 맞은 두 여직원도 위층에 올라왔다. 그들은 땅바닥에 널브러져있는 매니저를 보자 재빨리 달아갔다.“어머, 매니저님, 괜찮으세요?”“너희 둘은 눈깔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니? 이 꼴에 되도록 처맞았는데 괜찮을 리가 있어?”황고석은 두 여직원에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여직원은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억울함을 서라에게 퍼부었다.“진서라 씨, 당신 남매는 이제 끝이에요! 경비를 쳤을 뿐만 아니라 매니저님도 쳤으니 오늘 반드시 신고해서 당신들 감방에 처넣을 거예요!”여직원의 말을 듣자, 서라도 서준과 재회한 기쁨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서준이 다시 감방에 들어갈 것을 원하지 않아 연이어 사과했다.“죄송해요, 매니저님께서 제 몸에 손을 대려고 했어요. 그래서 오빠가 때린 거예요.”“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어떻게 너 같은 천한 년 몸에 손댈 수 있어? 분명 네년이 날 꼬신 거잖아!”고석은 큰 소리로 외쳤다.“그러니까요. 저희 매니저님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데요. 어떻게 서라 씨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지금 당장 신고해요. 절대 이 남매를 봐줘선 안 돼요!”서준은 서늘한 시선을 하며 고석을 향해 걸어갔다.“당... 당신 뭐 하려는 거야?”몸에서 전해지는 통증은 여전히 고석의 대뇌를 자극하고 있었다. 서준을 바라보는 눈길엔 두려움이 가득했다.“내 동생에게 사과해요. 그리고 사실대로 말해요.”서준은 서늘하게 말했다.“사실 같은 소리 하네요. 이 호텔 전부가...”여직원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쳤다. 순간 그녀는 멀리 날아갔다.“계속 내 동생을 모욕하면 영원히 그 입 닥치게 해줄 거예요!”서준의 몸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는데 사무실 공기마저 얼어붙을 정도였다.아까 서라와 안을 때 그녀의 맥을 짚어보았다. 서라의 신체 내 여러 기관의 기능이 극도로 약해진 것을 발견했다.이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고강도로 일하느라 초래된 증상이었다.이 집을 위해 서라가 너무 많이 희생했다.서
소하비는 경호원들에게 물러나라고 지시한 후, 한 걸음 앞으로 나가 고인권과 악수했다.“고 사령관님, 이렇게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 동생과 제 안전을 걱정해 주신 상부에도 감사드립니다.”소하비는 흑기린의 보호를 거절할 수 없었다.대놓고 거절한다면 대한민국 고위층에게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불만이 있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소하비 왕자님, 다른 일이 없으시면 병원에서 떠나지 마세요. 저는 잠시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러 가야 합니다.”고인권의 부탁에 소하비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럴게요. 고 사령관님, 편하게 가셔도 됩니다.”고인권은 측근 몇 명만 데리고 병원을 떠났다.고인권이 고우현이 말한 호텔에 도착하자 호텔 입구에서 고우현과 서현욱을 만났다.“큰아버지!”고우현은 고인권을 보자마자 기뻐하며 달려갔다.“우현아, 어젯밤에 서현욱과 함께 호텔에서 잤어?”고인권은 서현욱을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고씨 집안의 어른들은 대체로 보수적이기에 결혼하기 전에는 남녀가 함께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서현욱은 아침 일찍 절 찾으러 온 거예요.”고우현은 서둘러 해명했다.“맞아요, 아버님. 저는 어젯밤에 집에 돌아가서 쉬었어요. 사실, 우리 아버지는 제 교육에 아주 엄격하세요.”서현욱도 급히 해명에 나섰다.“방금 네 아버지를 만났어. 대단한 분인 것 같더라.”고인권은 그제야 표정이 부드러워졌다.“너도 아버지를 닮아 괜찮아 보이는 것 같아.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네.”“아버님, 과찬입니다.”고인권의 말에 서현욱은 내심 기뻤다.흑기린에 들어가려면 고인권에게 잘 보여야 했다.“자, 말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고인권은 고우현를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큰아버지, 사실 어제 우리는 약국에 가서 큰아버지 보양식을 사려고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백년영지를 사서 큰아버지께 드리려고 했죠. 근데 우리가 결제하려고 할 때, 진서준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맨 앞에서 달리는 군용 지프차에는 깃발이 하나 걸려 있었다.그 깃발에는 흑기린이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차 행렬은 무척이나 위풍당당했고 지나가는 곳마다 막힘없었고 어떤 차도 감히 끼어들지 못했다.모든 사람이 이 깃발이 대한민국의 가장 예리한 검인 흑기린이란 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국가를 대표하는 날카로운 검이 왜 갑자기 이 보잘것없는 작은 도시 서울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서정훈 역시 출근한 뒤에야 흑기린이 서울에 왔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서울시 최고 책임자로서, 서정훈은 직접 흑기린의 사령관 고인권을 맞이했다.“고 사령관님, 흑기린을 데리고 서울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서정훈의 질문에 고인권은 침착하게 대답했다.“서 시장님, 우리 군의 임무는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알겠습니다. 그럼 더 이상 묻지 않겠습니다.”서정훈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겁니다.”이번 임무는 샛터에서 온 왕자를 보호하는 일이었다.그 왕자는 늦어도 내일이면 떠날 것이고 왕자가 떠나면 흑기린의 임무도 끝나게 된다.샛터와 대한민국은 오래전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고 이번 임무는 샛터 왕자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알겠습니다. 관련 부서에 즉시 통보해 흑기린 임무를 전적으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서정훈은 즉시 서울을 대표해 입장을 밝혔다.두 사람이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고인권은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큰아버지, 서울에 도착하셨나요?”고인권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고우현의 전화를 받았다.“도착했어. 근데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을 만난 후에 네가 있는 곳으로 갈게.”무엇보다 흑기린의 임무가 가장 중요했다.고우현은 큰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알겠어요, 큰아버지. 호텔에서 기다릴게요.”고우현은 달콤하게 웃으며 전화를 끊고 서현욱에게 말했다
“아니, 우리 언니는 네 얼굴을 보지 않으면 잠이 안 온대.”그 말을 듣고 진서준은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허사연의 방으로 들어갔다.방으로 들어온 후에야 진서준은 자기가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이미 깊은 잠에 빠진 허사연의 호흡은 고르고 평온했다.허사연 곁에 잠시 앉아 있다가 진서준은 조심스럽게 자리를 떠났다.“허윤진, 너 또 날 속이었어?”밖으로 나가다가 마침 허윤진을 마주친 진서준은 눈을 부릅뜨며 화난 척했다.하지만 허윤진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손으로 눈을 찡그리며 장난스러운 얼굴을 했다.“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넌 우리 언니를 보지 않을 거잖아?”“무슨 소리야? 네가 안 그래도 당연히 볼 거야.”진서준은 못마땅한 말투로 대답했다.“그럼 난? 난 볼 거야?”허윤진이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진서준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며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네가 크게 다쳤다면 당연히 너도 보살필 거야.”진서준의 두루뭉술한 대답에 허윤진은 눈을 부라렸다.“그래, 계속 그렇게 얼버무려. 더 이상 얼버무리지 못할 때 어떻게 대응하나 보자.”말을 마친 허윤진은 몸을 돌려 매끈한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를 흔들며 자기 방으로 향했다.진서준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두 여자를 품에 안고 복을 누리는 건 아마 모든 남자의 꿈일 것이다.하지만 진서준은 여자와의 관계에 너무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진서준은 진서라의 독을 치료할 약재를 찾아야 했고 또 아버지 진요한을 구해야 했다.이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진서준은 다른 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하룻밤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 진서준은 소하비의 전화를 받았다.“빨리 오세요.”소하비의 목소리는 큰 일이 일어난 것처럼 급박하게 들렸다.“무슨 일이 일어났죠?”진서준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밥도 먹지 않고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다.“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빨리 오세요.”그 말을 끝으로 소하비는 전화를 끊었다.진서준은 속도를 최대한으로 내며 병원으로
“우현아, 이렇게 늦은 시간에 내게 전화하는 걸 보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전화 너머에서 한 중년 남자의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그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위엄을 뿜어냈고 옆에 있던 서현욱의 얼굴이 순간 움찔했다.“큰아버지, 어떤 남자가 절 괴롭혔어요.”고우현은 이내 울먹이며 억울함을 토로했다.“큰아버지, 제발 저를 위해 정의를 구현해 주세요.”고인권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우현아, 큰아버지는 군인이지 지하 조직 킬러가 아니야.”흑기린 사령관은 법률과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었다.고인권은 군인이지 절대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큰아버지, 저는 큰아버지가 군인인 거 알아요. 근데 그 사람은 단지 저를 괴롭힌 것뿐만 아니라 큰아버지가 소속된 흑기린도 모욕했어요. 그 사람은 흑기린이 우습다면서 무시했어요. 큰아버지가 흑기린 대원을 데리고 오면 흑기린을 무너뜨릴 자신이 있다면 엄청 나댔어요.”어차피 고인권이 알 수 없었기에 고우현은 일부러 사실을 왜곡했다.고우현이 임의로 거짓말을 꾸며도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그 말을 들은 고인권의 미간 사이 주름이 더욱 짙어졌다.“우현아, 너 날 속은 건 아니겠지?”“큰아버지, 제가 그럴 사람이에요? 제가 왜 큰아버지를 속이겠어요?”고우현이 갑자기 서현욱을 꺼내 들었다.“그때 서현욱이 제 옆에 있었어요. 못 믿으시면 서현욱에게 물어보세요.”말을 마치고 고우현은 전화를 서현욱에게 넘겼다.“아버님, 안녕하세요.”서현욱은 존경스럽고 정중한 말투로 말했다.사실 서현욱은 자기 아버지 서정훈에게도 이렇게 진지한 말투로 말한 적이 없었다.“현욱아, 우리 조카가 말한 게 사실이야?”고인권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너도 내 성격을 잘 알 텐데, 날 속이지 마.”“아버님, 우현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괴롭힌 사람은 그냥 우현을 조롱한 것뿐만 아니라 흑기린도 대놓고 모욕했습니다. 제 실력으로 그 사람들과 상대할 수 없어서 좀 안타까웠어요. 상대할 수만 있었다면 그
흑기린 사령관이 아무리 강해도 이런 신분의 인물에게 대놓고 공격을 시도할 수는 없었다.병원에 돌아온 진서준은 즉시 약재를 제조하기 시작했다.소하비는 예린이 걱정스러워 곧바로 병실로 향했다.예린은 병실을 옮겼고 이제 방 안에 고약한 악취는 없었다.침대 옆에 다가선 소하비는 예린이 누워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현재 예린은 얼굴에 혈기가 돌았고 호흡이 고른 상태로 누워 있었고 이전보다 훨씬 정신이 맑아 보였다.“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여동생이 무사한 걸 확인한 소하비는 마음속에 고여 있던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소하비가 미처 기뻐할 틈도 없이, 휴대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전화를 건 상대를 확인한 소하비의 얼굴이 굳어졌고 썩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잠시 고민한 후, 소하비는 전화를 받았다.“소하비야, 예린을 어디로 데려간 거야?”전화 너머에서 한 남자의 잔뜩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버지, 예린을 대한민국으로 데려와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소하비는 이를 악물고 힘겹게 진실을 털어놨다.전화 너머의 사람은 바로 소하비의 아버지인 샛터 국왕이었다.아버지 앞에서는 소하비도 감히 불경하게 대할 수 없었다.“무슨 미친 짓이야? 베컨 닥터를 초청하지 않았어? 근데 왜 예린을 데려간 거야?”“베컨 닥터는 예린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오직 진서준만이 예린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린의 상태는 이제 안정되었습니다. 진서준이 만든 약을 먹으면 병이 완치될 겁니다.”소하비가 즉시 설명했다.“어처구니없네. 어떻게 대한민국 주술을 믿을 수 있어? 지금 당장 예린을 데려와. 그렇지 않으면 네 형이 친위대와 함께 널 잡아 올 거야.”지금은 예린 치료의 중요한 시점이라 소하비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아버지, 저는 예린이 완치될 때까지 절대 데려가지 않습니다.”이건 소하비가 처음으로 샛터 국왕에게 반항한 순간이었다.“너 이 자식, 사춘기에 들어섰어? 내일 저녁, 형이 친위대를 데리고 갈 거야. 네가 돌아오면 난 네게 조용한 곳에서
흑기린의 명성은 널리 퍼져 있었고 심지어 일반인들도 그 이름을 알 정도였다.흑기린은 대한민국의 가장 예리한 검이었다.비록 백 명의 병력밖에 없지만 흑기린은 예전부터 여러 차례 대단한 공적을 세웠다.군부에서 전신전 외에는 흑기린과 비교할 만한 부대가 없었다.그리고 이 영지를 사려는 여자가 바로 흑기린 사령관의 조카라니, 그 신분의 고귀함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난 저 녀석이 혈령지를 순순히 여자에게 내줄 거라고 확신해.”“당연하지, 누가 감히 흑기린 사령관의 체면을 보지 않겠어?”“작은 도시 서울에서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 나타날 줄은 몰랐네.”주변 사람들은 진서준을 동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겨우 운 좋게 얻은 영지인데 이 여자의 특별한 신분 때문에 돌려줘야 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고우현은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걸 들으며 턱을 높게 치켜들고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물건은 내놓아. 넌 그만 가 봐.”고우현은 눈앞의 이 청년이 분명 영지를 내놓고 쭈뼛거리며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진서준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너 미친 건 아니야?”고우현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미친 건 너겠지. 방금 서현욱이 한 말을 못 들었어? 난 흑기린 사령관 조카란 말이야!”고우현은 차가운 표정으로 다시 한번 자기 신분을 강조했다.진서준이 자기 신분을 듣고도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한편, 서현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서현욱은 진서준과 고우현 사이에 큰 갈등이 발생하기를 기대했다.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면 고우현의 손을 빌려 진서준을 제대로 혼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서정훈은 겉보기엔 서울에서 상당한 권력을 가진 인물이지만 흑기린 사령관 앞에서는 한낱 평범한 사람이었다.“네가 그 사람 딸이라고 해도 난 전혀 신경 쓰지 않아.”진서준이 차갑게 말하자 고우현은 화가 치밀어 올라 가슴이 요동쳤다.“넌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나 해? 귀먹지 않은 이상 내 신분을 제대로 들었을 거야. 그런데도 이런 태도
“근데 넌 이게 쓰레기인 걸 번연히 알면서도 돈 주고 사? 미련하기 짝이 없구나!”약재를 사러 온 손님들도 진서준이 구제 불능이라 여겼다.“이 녀석 정말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5억이나 주고 이런 쓰레기를 사? 대체 무슨 의도일까? 그 돈으로 여자라도 꼬시면 얼마나 좋아?”“돈만 많고 머리가 텅텅 빈 바보 도련님 같아. 돈이 많으니까 멍청한 짓도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닐까?”사람들이 수군대며 조롱하는데도 진서준은 전혀 개의치 않고 영지 앞으로 다가가 입가에 미소를 살짝 띠었다.“다들 이렇게 거대한 영지가 왜 말라 죽었을까 궁금하지 않아?”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뭐라고?”다들 진서준의 말에 의아해하며 멈칫했다.진서준의 말대로 누구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 듯했다.가게 주인은 순간 큰 손해를 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왜 말라 죽었죠?”소하비도 무척 궁금했다.진서준은 영지에 손가락을 살짝 댔다.콰직!얼굴 크기만 한 영지가 순식간에 여러 조각으로 부서졌다.“씨X, 쓰지 않을 거면서 왜 굳이 날 사게 한 거야?”소하비는 저도 몰래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욕설을 터뜨렸다.5억이나 주고 산 물건이 이렇게 한순간에 깨져버리다니, 정신 상태가 이상하지 않고서야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일 수 없었다.서현욱은 그 모습을 보고 폭소를 터뜨렸다.“진서준, 너 진짜 또라이구나.”고우현도 서현욱을 흘겨보며 물었다.“이런 또라이를 넌 또 어떻게 알고 지낸 거야?”다들 지금 이 순간 진서준이 정신 상태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상자 속에서 손을 뻗어 영지를 한 번 더 찾았다.그리고 이내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지만 완벽한 혈색을 띤 영지를 꺼내 들었다.이 영지는 정교하고 아담한 크기였고 얼핏 봐도 일반적인 영지가 아닌 것 같았다.“이건 혈령지잖아요?”샛터 왕자답게 눈썰미가 있는 소하비의 눈이 번쩍였다.예전에 한 부자가 소하비에게 이 혈령지를 선물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때 소하비는
서현욱의 아버지를 부른다고 하자 서현욱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이 일이 서정훈에게 알려지면 흑기린에 입단하는 건 고사하고 서정훈에게 맞아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14억 원을 손해 보는 것이 눈앞에 다가오자 서현욱은 소하비에게 시선을 돌렸다.“선생님, 방금 이 영지를 원하셨죠?”서현욱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조금 전에 보인 교만하고 거만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아까는 원했지만 지금은 필요 없어.”소하비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난 돈이 넘쳐나긴 해도 억 단위를 들이며 이런 나무 덩어리를 사는 바보는 아니야.”소하비가 가장 부족하지 않은 게 돈이었지만 그렇다고 어리석은 바보는 아니었다.이 영지는 어떻게 봐도 그냥 쓸모없는 물건이었다.이걸 산다고 해도 그냥 돈 낭비일 뿐이었다.“오해입니다. 이건 나무가 아니라 진짜 영지예요. 믿기지 않으면 냄새라도 맡아보세요. 제가 필요하긴 하지만 선생님이 정 원하신다면 제가 후하게 팔아드릴게요. 10억이면 어때요?”서현욱은 흥정하면서도 속이 찌릿찌릿 아팠다.운 좋게 팔아도 4억을 손해 보게 될 터였고 팔지 못한다면 14억 원을 그대로 날리게 될 것이다.어느 선택이 더 현명한지 서현욱도 잘 알고 있었다.“안 사, 그냥 공짜로 줘도 안 받을 거야.”소하비는 돌아서서 진서준과 함께 떠날 준비를 했다.그때,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 영지, 내가 살게.”“뭐라고?”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놀라서 일제히 물었다.쓰레기가 분명한데 굳이 사겠다니, 진서준이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지 서정훈 시장 아들에게 대놓고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잘 보이고 싶어서 하는 짓이라면 그 대가가 너무 컸다.이건 14만도 아닌 14억이었다.대다수 사람이 평생 일해도 벌 수 없는 거액이었다.“확실한 거야? 장난치는 건 아니지?”서현욱은 혹여나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자기 귀를 의심했다.“물론 확실해.”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근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서둘러 서현욱에게 팔지 말아야 했다.서현욱은 즉시 지갑에 있는 모든 신용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몇 분 후, 신용카드 다섯 장을 전부 긁은 후, 1억 4천만을 겨우 모을 수 있었다.서현욱은 그제야 시름 놓고 진서준을 도발하기 시작했다.“진서준, 난 이내 흑기린에 입단할 거야. 그때가 되면 허사연이 날 다시 평가하게 될 거고 넌 내 상대가 되지 못할 거야.”진서준은 서현욱의 말이 너무 이상했다.소정태가 흑기린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흑기린은 대한민국 8대 특전대 중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특전대였다.“흑기린은 이제 쓰레기도 막 받아들이게 됐어?”진서준이 궁금해하며 물었다.“너야말로 쓰레기야.”서현욱은 즉시 반박했다.“내가 흑기린에서 새롭게 태어나면 예전의 모든 원한을 다 갚아줄 거야.”서현욱은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으름장을 놓았다.아무래도 예전에 진서준과 있었던 불쾌한 일을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하지만 진서준은 서현욱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난 선생님과 진서준 사이에 무슨 모순이 있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 백년 영지는 내게 꼭 필요한 약재입니다.”소하비가 둘의 대황에 끼어들었다.“내가 200억을 낼 게요. 내게 양보하세요.”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작 14억짜리 물건을 200억에 사겠다니, 이 사람의 부유한 정도가 진심으로 궁금해질 정도였다.서현욱은 그 말에 멈칫하더니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난 그따위 돈이 하나도 부럽지 않아요.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진서준과 친구가 아니었다면 팔았을지도 몰라요. 근데 당신이 진서준과 친분이 있다면 2조를 준다고 해도 팔지 않을 겁니다.”말을 마친 서현욱은 상자를 열었다.“자, 14억짜리 영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이나 해 봐.”서현욱은 일부러 진서준과 소하비를 자극하려는 의도였다.서현욱은 상자에서 얼굴 크기만 한 영지를 껴안고 내왔다.영지는 크지만 뜻밖에도 너무 마른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