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과 허사연은 누렁이 등에 앉아서 보운산이 지어진 널따란 도관을 바라보았다.도관 입구에는 사람 네 명이 서 있었다. 화령문 사람 같았다.진서준은 고개를 돌려 권해철을 힐끗 본 뒤 말했다.“권해철 씨, 앞에 있는 곳이 바로 권해철 씨 사문이죠?”권해철은 빠르게 걸어서 누렁이 앞에 섰다.오랜만에 보는 도관 앞에 서자 기분이 씁쓸했다.“맞아요, 저곳이 바로 제 예전 사문이에요.”권해철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동시에 그는 문 앞에 서 있는 네 사람을 보았다.“저 사람들은 제 형제들이에요!”권해철은 네 사람을 짚으며 말했다.“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거였으면 좋겠네요.”권해철은 안색이 살짝 달라져서 황급히 진서준에게 말했다.“진서준 씨, 잠시 뒤에 제가 얘기 나눠볼 테니까 절대 손 쓰지 말아주세요.”권해철은 자신의 형제들이 진서준과 싸우기를 바라지 않았다.만약 진서준이 자칫해서 힘을 과하게 쓰면 그들 모두 죽을지도 몰랐다.“알아요. 전 멋대로 나서지 않을 거예요.”진서준은 덤덤히 웃었다.말을 마친 뒤 그는 허윤진을 바라보며 물었다.“제가 그렇게 무서운가요?”허윤진은 먼저 고개를 젓더니 이내 또 고개를 끄덕였다.“고개를 저었다가 끄덕였다가, 무슨 뜻이에요?”진서준은 허윤진을 보면서 어리둥절해졌다.“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무서울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귀여워요!”허윤진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귀엽다는 말에 진서준은 웃음이 터졌다.“잘생기고 멋진 거겠죠.”진서준이 웃으며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칭찬 좀 해줬더니 바로 거만해지네요?”허윤진은 진서준을 향해 눈을 흘기면서 아까 확실히 잘생겼었다고 생각했다.조금 전 검의 신과도 같았던 진서준의 모습을 허윤진은 항상 기억할 것이다.진서준과 허윤진이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권해철은 이미 사문 문 앞에 도착했다.“오랜만이에요, 다들.”과거 친형제와 다름없이 지내던 사람들을 보게 되자 권해철은 눈물을 글썽였다.“권해철, 네가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호산대진을 파괴한 거야?”천경
서울은 들어봤지만 진서준의 이름은 그들에게 아주 낯설었다.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진서준이 말한 영골은 그들 문파에 확실히 하나가 있었다.그러나 그 영골은 사문의 금지 구역에 있어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진서준 씨, 진서준 씨가 원하는 영골은 우리 사문의 금지 구역에 있습니다.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으니 이만 돌아가시죠.”천경문은 고개를 저으면서 진서준의 요구를 거절했다.진서준은 미간을 살짝 구기면서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전 반드시 이 영골을 챙겨야 합니다. 영골이 있어야만 제 어머니의 두 다리가 완전히 나을 수 있거든요.”이번에 진서준은 반드시 영골을 얻어야 했다.영골을 얻지 못한다면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었다.“진서준 씨, 사문의 금지 구역은 저희도 멋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진서준 씨를 들여보내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천경문의 태도도 아주 확고했다.진서준이 입을 떼기도 전에 뒤에 들던 누렁이가 갑자기 화를 내듯 으르렁거리면서 자신의 불만을 드러냈다.누렁이의 울부짖음을 들은 천경문 등 사람은 뒤늦게 반응했다.그들의 앞에 서 있는 청년은 맹수를 길들이고 그들의 호산대진을 파괴한 사람이었다.만약 그들이 계속해 고집을 부린다면, 화가 난 진서준이 그들을 죽이려고 했다가는 큰일이었다.천경문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고 말투도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누그러졌다.“진서준 씨, 우리 사부님은 지금 폐관 중이라서요. 사부님이 나오신 뒤에 얘기를 나눠보심이 어떨까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언제까지 폐관하신답니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면 기다릴 수가 없어요. 게다가 전 영골을 그냥 가져갈 생각이 없어요. 제가 공법 하나를 드릴게요. 수련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진서준이 공법을 주겠다고 하자 천경문 등 사람들의 눈이 빛났다.진서준의 실력은 무시무시했다.만약 진서준이 수련한 공법을 수련할 수 있다면 분명 실력이 급성장할 것이다.천경문 등 사람들은 순간 흔들렸다. 그러나 그들이 결정할
화령문의 제자 중 일부는 그 맹수를 애완동물로 키우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매번 누렁이를 마주칠 때면 황급히 도망갔고, 누렁이와 눈빛을 마주할 배짱도 없었다.그런데 젊은 청년 진서준이 누렁이를 애완동물이라고 하니 다들 깜짝 놀랐다.도관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진서준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내가 말하고 있잖아요. 안 들려요?”우레와도 같은 목소리에 도관 속 제자들은 깜짝 놀랐다.“들었어요, 들었어요...”제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겁에 질린 얼굴로 진서준과 누렁이를 바라보았다.진서준의 뒤를 따르던 천경문 등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현재 사부님이 없으니 아무도 감히 진서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었다. 그들은 진서준의 말에 따라야 했다.“진서준 씨, 여기 객방이 있으니 저희를 따라오시죠.”천경문은 서둘러 진서준을 객방으로 안내했다.진서준 등 네 사람에게 거처를 마련해준 뒤 천경문이 말했다.“진서준 씨, 또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희가 최대한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그쪽 사부님이 빨리 출관하기만 하면 됩니다.”진서준은 덤덤히 말했다.“네, 제가 지금 사람을 뒷산으로 보내겠습니다.”천경문은 정중하게 말했다.“다른 일 없으면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잠시만요!”진서준이 천경문을 불러세워서 물었다.“여기 목욕할 때 쓸 나무 욕조가 있나요?”천경문은 흠칫했다. 그는 진서준이 왜 갑자기 나무 욕조를 찾는 건지 알지 못했다.그러나 그는 솔직히 대답했다.“네, 저희 목욕실에 나무 욕조가 있습니다.”“지금 당장 그곳에로 안내해 주시죠.”진서준은 용혈과가 담긴 박스를 들고 천경문을 따라 목욕실로 향했다.목욕실 안에는 나무 욕조 십여 개가 있었다.화령문 사람들은 평소 이곳에서 샤워를 했다.“깨끗한 나무 욕조는 없습니까?”진서준은 미간을 구기면서 물었다.그는 잠시 뒤 용혈과로 몸을 씻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반드시 깨끗한 나무 욕조가 필요했다.“네, 그 나무 욕조는
액체는 마치 붉은색의 작은 뱀처럼 진서준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그 액체는 진서준의 체내로 흘러든 뒤 장철결의 궤적을 따라서 진서준의 온몸에 있는 경맥을 한 바퀴 돌았고, 마지막에는 혈액에 모여들었다.모든 과정에서 진서준의 몸에서 뚝딱거리는 소리가 뚜렷이 들렸다.진서준은 몸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마치 커다란 산이 그의 어깨 위를 짓눌러서 언제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욕조 안에 액체가 반쯤 남았을 때 진서준은 손을 뻗어 옆에 놓인 용혈과를 들어서 한입에 삼켰다.용혈과가 배에 들어가자 체내에서 불타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점점 더 강렬해졌다. 마치 누군가 그의 배 속에 불을 지른 것처럼, 오장육부가 뜨거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몸을 단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쉬웠다면 화진에는 무도 종사가 아니라 횡련 종사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몸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수련 과정에서 몸이 터져서 죽을 수도 있었다.진서준이 목욕하고 있을 때 밖에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보운산의 산허리 쪽에 네 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그 네 명은 줄곧 진서준의 뒤를 밟았던 혈운 조직의 네 명의 대성 종사였다.“이 산에 숨어 사는 화령문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예준섭은 고개를 들어 높은 산봉우리를 바라보면서 덤덤히 말했다.“그래요, 그런 문파가 있었던 거를 기억해요. 형님 말을 들어 보니 수백 년 전까지는 인재가 아주 많았는데 지금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았어요.”변정선이 말했다.“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이 길 하나뿐이니, 오늘 그 자식은 절대 도망치지 못하겠네.”대화하는 사이 하신우가 손을 움직이자 채찍 하나가 그의 손에 들렸다.팍 소리와 함께 하신우가 갑자기 채찍을 휘둘러 등 뒤에 있는 나무를 때렸다.채찍이 휘둘러지자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그를 공격하려던 독사의 머리가 굴러 떨어졌다.나머지 세 명은 보지 못한 것처럼 천천히 산 위로 걸음을 옮겼다.호산대진은 이미 파괴되었기에 네 사람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예준섭 등 네 명이 화령문에 들어온 뒤 화령문의 제자들은 불청객인 그들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당신들은 누구죠? 누굴 찾으러 온 거예요?”한 제자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의 눈빛에서 경계가 보였다.화령문의 제자들은 네 사람에게서 살기를 느꼈다.“서울에서 온 진 마스터더러 나오라고 해.”함영식은 목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심지어 대전 안에서 의논하고 있던 천경문 등 네 사람도 그 목소리를 들었다.네 사람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대전에서 나갔다.예준섭 등 네 명을 본 천경문은 미간을 구겼다.“당신들은 누구예요? 왜 우리 화령문에 온 거죠?”함영식 등 사람들은 대답하지 않고 상대방을 위아래로 훑어봤다.“술법 마스터네. 선영경에 도달하지도 못하다니, 화령문도 정말 몰락하긴 했어.”예준섭이 불쌍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상대방이 자신의 실력을 바로 알아보자 천경문 등 사람들은 안색이 달라졌다.그들은 분명 악의적이었다.“딱 한 번 더 말하죠. 지금 당장 우리 화령문을 떠나요.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요!”천경문이 총채를 꺼내면서 차갑게 그들을 보았다.“나도 한 번 더 말하지. 화령문 안에 숨어있는 진 마스터더러 나오라고 해!”마지막 몇 글자에서 변정선은 갑자기 목청을 돋우었다.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에 적지 않은 제자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심지어 천경문의 사형제들도 안색이 살짝 달라졌다.그는 무려 대성 종사였다.방 안에서 짐을 정리하던 권해철은 그 목소리를 듣고 곧바로 달려가서 대전 앞에 섰다.그동안 권해철은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면서 변정선 등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었다.그는 그 네 명이 혈운 조직의 종사라는 걸 곧바로 알아봤다.예전에 진서준이 만월호에서 유혁수를 죽였을 때, 권해철은 진서준이 분명 혈운 조직에 노려질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혈운 조직이 이때 복수하러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한 번에 네 명이나
조금 전 진서준이 목욕하러 갔을 때, 권해철이 그를 한 번 찾아갔었다.천경문이 권해철에게 진서준이 수련하고 있는 것 같으니 아무도 방해하게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이대 혈운 조직의 네 종사가 진서준의 위치를 찾았다면, 진서준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원래 당신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당신들이 너무 멋모르고 날뛰네.”함영식이 등 뒤에서 반짝이는 은빛 검 두 개를 꺼냈다.그것은 갈혈도였다.갈혈도에는 두 개의 긴 용이 새겨져 있었다.갈혈도는 피를 묻힌 뒤 며칠 지나면 그 위의 피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긴 용의 무늬를 전부 채워서야 서서히 사라진다고 한다.제자가 네 명에게 죽임당하자 천경문은 화가 나 미칠 것만 같았다.함영식이 먼저 검 두 개를 꺼내니 천경문도 더는 참고 있을 수 없었다.그래서 천경문은 자신의 총채를 꺼냈다. 그는 본인이 함영식의 상대가 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곧장 함영식에게로 달려들었다.“죽으려고!”다가온 천경문을 본 함영식은 차갑게 웃었다.함영식은 내력을 운용하였고 붉은색 강기가 그의 두 검을 감쌌다.그는 검 두 개를 휘두르면서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공기까지 찢어버릴 듯했다.천경문은 감히 방심하지 못하고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지르며 체내의 진기를 미친 듯이 운용했다. 곧 그의 옆에 12개의 자줏빛 번개가 나타났다.번개는 순식간에 함영식을 공격했다.그와 동시에 천경문은 함영식의 두 검을 향해 들고 있던 총채를 휘둘렀다.천경문응 이를 악물었다. 이 순간 그는 사력을 다했다.맹렬한 공세를 퍼붓는 천경문의 모습에 함영식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검 두 개를 든 그는 한 검으로는 천경문의 육중한 총채를 막아냈고 다른 한 검으로는 12개의 자줏빛 번개를 베었다.쿠구궁...총채와 칼날이 부딪히자 두 사람의 발밑에서 바닥이 갈라지면서 거미줄 같은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이와 동시에 12개의 번개 또한 코앞까지 왔다.함영식이 든 긴 검이 공중에서 움직이며 1초 사이에 12번 휘둘러졌다.공기 속의 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화령문의 네 장로와 혈운 조직의 네 종사가 싸울 때 전해진 여파를 화령문의 제자들은 감당할 수 없었다.적지 않은 제자들이 제때 뒤로 물러나지 못해서 멀리 날아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권해철도 다가가서 도와주고 싶었으나 호산대진 안으로 들어갔을 때 호산대진으로 인해 크게 다친 터라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은 상태였다.지금 도와준다고 나서봤자 오히려 천경문 등 사람들에게 짐이 될 것이다.누렁이는 호시탐탐 예준섭 등을 바라보았다. 누렁이의 눈동자에서 두려움이 보였다.맹수는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게다가 누렁이는 진서준의 검으로 인해 다친 적이 있었다. 비록 진서준이 치료해 주긴 했지만 아직 격렬한 운동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권해철 어르신,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 사람들은 다 누구예요?”허윤진이 달려왔다. 혈운 조직의 네 종사를 본 그녀는 의아한 얼굴이었다.“그들은 혈운 조직의 종사예요. 진 마스터님께 복수하러 온 사람들이죠.”권해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뭐라고요? 혈운 종사라고요?”허윤진은 겁을 먹고 깜짝 놀라서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우리가 보운산에 있다는 걸 그 사람들이 어떻게 안 걸까요?”“아마도 줄곧 우리 뒤를 밟은 것 같아요.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고요.”권해철은 탄식하며 말했다.혈운 종사가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미행과 암살이었다.진서준 등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미행하는 것은 그들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진서준 씨는요? 어디 있어요?”허윤진은 불현듯 진서준이 그곳에 없다는 걸 발견했다.권해철은 서둘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진 마스터님은 지금 수련하고 계세요.”수련하고 있을 때가 방어력이 가장 약할 때였다.만약 혈운 조직 사람들이 진서준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게 되면 진서준은 분명 죽을 것이다.“뭐라고요? 왜 이럴 때 수련하고 있대요?”허윤진은 초조해 보였다.쿵!한 사람이 싸우는 와중에
그 제자들은 앞날이 창창했다.이렇게 이곳에서 죽게 된다면 장로들은 앞으로 무슨 면목으로 화령문의 역대 장문인을 마주한단 말인가?“너희들은 오늘 한 명도 떠날 수 없어!”변정선은 사장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차갑게 웃었다.“오늘은 화령문의 모든 이들의 목숨을 빼앗아 우리 혈운 조직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걸 세상 사람들에게 전부 알릴 것이다.”퍽퍽퍽!세 번의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천경문 등 세 사람도 공격받고 날아가서 바닥에 세게 쓰러졌다.세 사람 모두 크게 다쳤다. 그중에서도 천경문의 상처가 가장 심각했다. 그가 입고 있는 도포는 다 찢겨나갔고 온몸에 검에 베인 흔적과 피가 가득했다.반대로 예준섭 등 네 명은 상처 하나 없고 숨조차 헐떡이지 않았다.그 광경에 사람들은 마음이 가라앉았다.천경문 일행은 그들에게 상처 하나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러니 그들의 제자들은 더더욱 불가능했다.혈운 조직 앞에서 천경문 일행은 아무런 승산도 없었다.“우리 제자들은 보내줘. 대신 진서준 씨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천경문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천경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특히 권해철과 허윤진은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이때 진서준의 위치가 노출된다면 진서준은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그럴 필요 없어. 당신들을 다 죽이면 천천히 찾아봐도 되니 말이야.”변정선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하나뿐이야. 그 자식이 날개라도 달리지 않은 이상 도망칠 수는 없어. 그리고 그 자식 여자 친구도 이곳에 있잖아?”허윤진이 그곳에 있으니 예준섭 등 사람들은 진서준이 나타나지 않고 몰래 도망치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다.“당신들...”천경문은 예준섭 일행이 화령문 사람들을 전부 죽일 정도로 이렇게 악랄할 줄은 몰랐다.“크억!”뒤에서 계속 관전했던 누렁이가 갑자기 으르렁거리면서 펄쩍 뛰었다.그리고 몸 전체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하면서 털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누렁이는 마치 운석처럼 하늘에서 추락하며 예준섭 일행을 덮
“이장로님, 부탁은 했지만 이놈이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방금 내가 이놈을 존중하지 않았다며 트집을 잡더군요.”은청준은 여전히 진서준에게 책임을 떠넘겼다.하지만 이장로는 은청준을 잘 알고 있었다.이장로는 은청준이 거만한 태도로 행패를 부려서 진서준이 대답하지 않은 거라고 추측했다.“은청준,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장로는 살기가 섞인 표정으로 최종 통보를 내렸다.그 말을 듣자 은청준은 순간 멈칫하며 마음속에서 불만이 피어올랐다.“제가 방금 말투가 좀 거칠긴 했지만 이놈의 태도도 별로였습니다. 심지어 주동적으로 나가서 나랑 한 판 붙자고 하더군요.”은청준은 여전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일부 책임을 진서준에게 떠넘기고 있었다.“은청준, 이젠 하다 하다 장로인 나까지 속일 거야?”이장로는 분노를 터뜨렸다.“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지금 당장 김평안 씨에게 사과해!”은청준은 얼굴이 굳어졌고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사과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우리 후배를 치료할 수 없다면 어떡하죠? 그럼 내가 당한 망신을 이 사람에게 그대로 돌려줘도 됩니까?”잠자코 지켜보던 진서준이 손을 들어 올리며 끼어들었다.“부탁이고 나발이고 그냥 없던 일로 해. 내가 뭐 하늘의 신이라도 돼? 난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만병을 고치는 능력도 없어.”이장로는 진서준이 은청준을 일부러 괴롭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은청준이 무슨 말을 하던 진서준은 반대로 대답하며 그를 괴롭히는 중이었다.물론 은청준을 괴롭히는 건 조금 전에 당했던 말도 안 되는 행패에 대한 복수였다.“김평안 씨, 걱정 마세요. 설령 슬기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더라도 이 자식이 김평안 씨와 따지지 않도록 약속하겠습니다.”이장로가 진심을 담아 진서준과 약속하자 진서준은 이장로를 흘끗 보고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말한 대로 하길 바랍니다.”“얼른 사과 안 해?
“그럼 그 여자를 구하고 싶은 사람에게 맡겨.”진서준은 이 말을 끝으로 바로 문을 닫았다.그 행동에 은청준 일행은 분노가 치솟았다.“당장 문 열어! 안 열면 후회할 줄 알아!”은청준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은청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문이 다시 열렸다.진서준은 팔짱을 끼고 차가운 눈빛으로 은청준을 바라봤다.“너희가 어떤 불손한 짓을 하는지 한번 보자. 여기는 유씨 가문이지 너희 곤륜이 아니야. 너희가 멋대로 막 날뛸 수 있을 것 같아?”“유씨 가문이 뭐 어때? 사람 구하라고 하면 고분고분 구하기나 해. 이제 우리 종주님이 책임을 묻는다면 유씨 가문 가주라도 감당 못 할 거야.”은청준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진서준과 눈을 맞추었다.은청준의 배후에는 곤륜이 있었기에 하찮은 서남 유씨 가문을 은청준이 공손한 태도로 대할 수 없었다.게다가 은청준은 경성 은씨 가문의 사람이기도 했다.어느 쪽 신분이든 모두 유씨 가문보다는 훨씬 더 고귀했기에 당연히 유씨 가문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반면, 진서준의 신분은 단지 유씨 가문의 하찮은 경호원일 뿐이었다.은청준의 고함에 유기명이 놀라 달려왔다.“무슨 일이죠?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유기명이 급하게 소리 지르며 다가왔다.유기명은 진서준과 곤륜 사람들이 싸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왜냐하면 두 쪽 다 유기명이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가주님, 저는 이 집의 경호원에게 후배의 병을 부탁하려고 왔는데 이놈이 자존심을 세우며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네요.”방귀 낀 놈이 화낸다고 은청준은 먼저 이번 소란의 모든 책임을 진서준에게 떠넘겼다.그 말에 진서준은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곤륜에서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는 이렇게 고함을 지르라고 배웠어?”은청준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처음에는 좋게 좋게 말했잖아? 네가 괜한 자존심을 세우며 자초한 일이지.”“됐어요, 다들 그만합시다.”유기명이 끼어들며 중재했다.“은청준 씨가 직접 와서 모시는 걸 보면 조 아가씨가
이장로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참지 못하고 욕을 날렸다.“젠장!”가장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상황이 결국 발생했다.“이장로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신수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내공을 써서 슬기 체내 차가운 기운을 빨아낼 수밖에 없어.”이장로가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이 방법은 전에 곤륜산에서도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내공을 많이 소모하는 방식이었다.다행히도 그들 곤륜의 장로들과 종주는 내공이 꽤 깊었다.그렇지 않으면 슬기 목에 걸린 그 옥패 하나만으로는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저택에 이장로 하나만 있는지라 이 방법을 쓰는 게 별로 자신이 없었다.“이제 운에 맡길 수밖에 없어.”이장로는 이를 악물고 바닥에 앉아 두 손을 펼쳐 선천강기를 모은 후, 조슬기의 옆에 놓고 조슬기 체내 한독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그러나 막 시작하자마자 이장로의 얼굴은 빨려 나온 한독에 얼어붙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이 차가운 기운은 곤륜산이 내뿜는 기운보다 몇 배나 더 차가워 깊은 내공을 자랑하는 이장로조차 견디기 힘들어했다.그러니 지금 조슬기 같은 연약한 여자가 겪는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1분이 지나자마자 이장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즉시 한독 제거를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안 되겠어.”이장로는 바로 일어나서 강기로 흡입된 한독을 체외로 밀어냈고 작은 얼음 조각 몇 개가 이내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차가운 기운이 얼음처럼 결빙된 것이다.조슬기의 상태는 이제 조금도 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한 상태였다.“이장로님, 그 건방진 경호원을 한번 써보는 건 어떨까요?”은청준의 제안에 신수란은 순간 당황했다.“너 그 경호원이 치료하는 걸 결사코 반대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냐?”그러자 은청준은 천천히 자기 계획을 밝혔다.“우리 후배가 지금 위독한 상태인데 이제는 그놈에게 맡길 수밖에 없잖아. 그놈이 우리 후배를 기적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아무 문제 없이 이
은청준은 조금 짜증이 났다.유기명 딸이 이해 못 한다고 쳐도 유씨 가문 가주인 사람이 상황을 파악할 줄 모르다니, 너무나 어이없었다.경호원이 사람을 치료하게 허락하는 건 금시초문이었다.“가주님, 지금 하신 말, 설마 진심입니까?”은청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이장로도 미간을 찌푸리며 심기가 불편한 티를 냈다.“제 목숨은 바로 김평안 씨가 구해준 겁니다. 그러니 김평안 씨 의술을 믿지 않을 수 없죠.”유기명은 곤륜 사람들의 표정에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가주님이 믿지만 우리는 전혀 믿을 수 없습니다.”은청준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들은 절대 진서준이 나서서 치료하게 놔둘 수 없었다.조슬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장로도 엄중한 처벌을 받을 터였다.현재로서는 성약당 장로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정 못 믿겠다면 저도 방법이 없네요. 조 아가씨가 진짜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건 다 당신들 책임일 겁니다.”유기명은 말을 끝내고 손을 휘저으며 나갔다.이장로의 표정도 급격히 어두워졌다.“너희는 여기서 슬기를 지켜.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나에게 알려.”이장로도 말을 마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은청준은 유기명의 말에 냉소를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하룻밤뿐인데, 하룻밤 동안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있나?”“너희 남자들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얼른 다 나가!”신수란은 모두를 밖으로 내쫓았고 혼자서 조슬기 곁을 지켰다.진서준이 나오자 유기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동했고 유기명이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 조 아가씨 병을 치료할 방법이 있어?”“저 여자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체내에 찬 한독이 너무 많아서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하려면 하늘의 신이 내려와야 할 겁니다.”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그럼 넌 어떻게 생각해? 오늘 밤 조 아가씨 병이 악화할 확률이 높을 것 같아?”유기명이 다시 물었다.유기명은 조슬기에게 자기 집에서
그 말을 듣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곤륜 문주의 딸을 감히 죽이려고 하다니, 대체 어느 미친놈이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꾸민 거지?“두목은 장강훈이라는 놈인데 서남 지역에서 악명 높은 악당이에요.”신수란이 한마디 더 보탰다.“뭐라고요? 그놈을 만났다고요?”유기명이 깜짝 놀랐다.“아는 사람이에요?”신수란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유기명을 쳐다봤다.“들어본 적은 있죠. 얼마 전 내 동생 유기태가 국안부에서 그놈을 추적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근데 이놈이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행방이 오리무중이라 찾기가 어려웠죠.”유기명은 신수란을 보며 물었다.“그래서 아가씨들은 어떻게 그놈 손에서 빠져나온 거죠?”신수란은 순간 머뭇거리며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누군가 우리를 구해줬어요.”“네? 누가 아가씨를 구한 거죠? 내가 알기로 장강훈은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서남에서 그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유기명이 흥미를 보였다.서남 무도계의 강자들은 유기명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대다수가 유씨 가문에 초빙되어 가문의 귀빈으로 섬기고 있고 거절한 이들은 전부 세상과 연을 끊은 은둔 고수뿐이었다.설마 유기명이 모르는 강자가 더 있다는 건가?신수란이 곧 이름을 밝히려 하자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누가 됐든 간에 그 강도가 죽었다면 된 거죠.”갑작스러운 개입에 신수란은 기분이 언짢아졌다.유기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흘끗 쳐다보고는 진서준의 말투를 곱씹으며 속으로 추측했다.이 여자들을 구한 건 진서준이 틀림없을 것이다.“이장로님, 그놈들은 단순히 아가씨를 납치하려 했을 뿐,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어요.”신수란이 상황을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그렇다면 그놈들 뒤에 배후 세력이 있다는 거겠군.”이장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설상가상으로 슬기가 이번에 우리랑 함께 하산한 걸 아는 사람은 종문 내부 제자들뿐이야. 그런데 곤륜에서 내려오자마자 그 소식이 그놈들 귀에 들어갔다고? 그렇다면..
이때의 조슬기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고 입술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조금만 가까이 가도 조슬기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신수란은 조슬기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바로 옆방으로 달려가 따뜻한 물로 자기 체온을 되찾으려 했다.조슬기를 업고 오는 내내 신수란 또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조슬기의 체온은 거의 0도에 가까웠고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고통에 신음하는 조슬기를 보며 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내가 일단 치료할게. 성약당 장로가 도착하려면 최소 내일 아침은 되어야 해.”“네가 치료한다고? 경호원 주제에 뭘 안다고 사람을 살린다고 지껄여? 여기서 방해하지 말고 썩 꺼져. 네가 뭔데 이렇게 나대?”은청준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누가 경호원이라고 해서 사람을 못 구한다고 했죠?”유정이 즉각 반박했다.은청준이 지속적으로 진서준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영 거슬렸는데 이제는 대놓고 모욕까지 하니 유정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유 아가씨, 경호원이 사람을 못 구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전 그냥 저 사람이 자격이 없다고 했을 뿐입니다.”은청준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억누르며 말했다.유정이 유 가주의 딸만 아니었다면 유정에게 욕설을 퍼부었을지도 모른다.아까 진서준과 대련하려고 할 때에도 유정 때문에 망신당했는데 지금은 또 저 하찮은 경호원 따위를 위해 유정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니, 이러다간 정말 곤륜 차세대 천재 일인자인 자기 체면이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다.유씨 가문의 경호원이 자기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니 기막힌 일이었다.“김평안 오빠는 우리 유씨 가문을 여러 번 구한 의술이 뛰어난 분입니다. 우리 아버지 목숨도 이분이 살리셨죠. 그런 분이 왜 자격이 없다는 거죠?”유정은 전혀 기죽지 않고 은청준과 눈을 맞추며 쏘아붙였다.은청준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목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유 아가씨, 아가씨는 제 후배 신분을 아나요? 제 후배는 우리 종문 문주의 따님입니다.
하지만 두 검의 차이는 누가 봐도 너무나도 컸고 이건 진서준에게 손해 보는 장사였다.“이봐요, 은청준 씨, 곤륜 제자로서 이런 요구를 하는 건 곤륜 얼굴에 먹칠하는 게 아닌가요?”유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놓고 면박을 줬다.은청준도 유정이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는지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유 아가씨, 그 말은 좀 심한 거 아닌가요? 제 검도 희귀한 명검 중 하나입니다.”은청준은 굳은 얼굴로 즉시 반박했다.“상관없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하지.”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좋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바로 시작하자.”은청준은 진서준의 말에 바로 반응하며 유정이 더 이상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이 참선검은 반드시 자기 손에 넣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규칙은 간단해. 검이 먼저 상대의 몸에 닿는 쪽이 승리야, 어때?”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가리는 대련이었다.“문제 없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막 대련이 시작되려던 그 순간, 갑자기 집사가 허겁지겁 뛰어왔다.“가주님! 조슬기 아가씨의 소식을 받았습니다!”“뭐라고? 아가씨가 어디 있어?”유기명이 즉시 반응하자 이장로가 손을 내저었다.“이 대련은 일단 여기까지 하고 먼저 슬기부터 찾자.”그 말을 듣자 은청준의 얼굴이 아쉬움으로 일그러졌지만 이장로의 명령을 어길 수도 없었다.“김평안, 그 검 잘 보관해 둬라. 내가 반드시 가져갈 거니까.”은청준은 검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리를 떠났다.“조슬기 아가씨가 이미 금도에 도착해서 우리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즉시 날 거기로 데려가 주세요.”이장로가 급히 말하자 유기명이 서둘러 제안했다.“이장로님, 제가 사람을 보내 아가씨를 모셔 오겠습니다. 여기서 쉬시는 게 어떠신지요?”“아닙니다,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하겠습니다.”이장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거절했다.조슬기가 과연 무사한지 이장로는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알겠습니다. 이봐, 즉시 이장로님을 모시고 출발해.”
식사도 아직 하지 않았는데 분위기는 이미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유정은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고 그녀의 시선은 쭉 진서준에게 머물렀다.진서준이 이따가 대련 중에 다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유씨 가문에 머무르는 동안, 유정은 이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예를 들면 곤륜을 비롯한 4대 은세 종문에 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가장 오래 유지되어 온 은세 세력이었다.심지어 경성의 4대 가문조차도 이 4대 종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게다가 종문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은 천재였다.은청준이 곤륜의 차세대 중에서도 뛰어난 인재로 손꼽힌다면 그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 대단한 실력을 갖췄을 가능성이 컸다.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만약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반면 진서준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고 전혀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한 모습이었다.진서준의 여유로운 태도에 은청준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흥, 대련이 시작되면 네놈이 나와의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깨닫게 될 거야.’은청준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저녁 식사 내내 유기명과 이장로만 가끔 대화를 나눴다.곧 식사가 끝나자 곤륜의 다른 제자들도 소식을 듣고 하나둘씩 몰려왔다.다들 유씨 가문 저택 뒤편의 넓은 공터에 모여 구경하기 시작했다.“저 녀석 미친 거 아냐? 감히 은 선배와 대련하겠다고? 살고 싶지 않은 건가?”“은 선배는 이미 사급 대종사야. 선배의 실력은 끔찍할 정도로 강해. 웬만한 사람은 상대도 안 되지.”“내기나 해볼까? 저 자식이 선배의 검을 몇 번이나 막아낼 수 있을지?”“난 한 방도 못 버틴다고 봐. 선배는 이미 검의를 깨우쳤잖아.”곤륜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진서준을 과소평가했다.다들 은청준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또래 중에서 아무도 은청준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었다.반면, 진서준은 겉보기에는 40대로 보였지만 전혀 강자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이런 사람이 실력자라고 한다
“김평안 씨는 내가 엄청난 공을 들여서 모셔 온 분입니다.”유기명이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진서준을 자랑하기 시작했다.“겉보기엔 40대 초반처럼 보이지만, 그 실력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어마어마하다고? 그럼 나랑 한번 붙어볼래?”은청준이 비웃으며 말했다.은청준은 스물여섯 살에 이미 사급 대종사가 되었는데 반면 이 경호원은 체내에 강기가 거의 없었다.아무래도 겨우 종사의 문턱을 밟은 무인인 것 같은데 이런 쓰레기가 세속에서는 강자로 불리는 건가?유기명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은청준 씨와는 비교할 수 없죠. 하지만 김평안 씨 검술은 누구나 다 알아주는 실력입니다.”“마침 나도 검술이 특기인데, 한 번 겨뤄볼까?”은청준이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청준아,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무도는 남과 다투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이장로가 차분하게 말하자 은청준은 곧바로 태도를 고쳐잡고 공손하게 말했다.“이장로님, 저는 그냥 세속 무인과 가볍게 한 수 겨뤄볼 생각이었습니다.”이장로는 은청준을 흘긋 보았으나 그의 속마음을 굳이 들춰내지는 않았다.은청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같은 종문 사람이니 체면은 세워줘야 했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진서준이 다시 강조하자 은청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쏘아봤다.이 녀석 왜 이렇게 말이 많지? 혹시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가?“은범은 내 사촌 동생이야. 네가 그 못난 동생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은청준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신농산에서 만난 적이 있어.”“뭐라고? 걔가 신농산에 갔다고?”이 말에 은청준은 흥미가 동했다.“그 녀석 실력으로는 신농산 테스트를 통과하기 힘들 텐데?”은청준은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은범이 어떤 인물인지 은청준은 잘 알고 있었다.애매한 실력과 어중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은범이 은씨 가문에서 빛을 볼 일은 없었다.은청준과 은범의 격차는 눈에 보일 정도로 컸다.“그 녀석은 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