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준섭 등 네 명이 화령문에 들어온 뒤 화령문의 제자들은 불청객인 그들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당신들은 누구죠? 누굴 찾으러 온 거예요?”한 제자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의 눈빛에서 경계가 보였다.화령문의 제자들은 네 사람에게서 살기를 느꼈다.“서울에서 온 진 마스터더러 나오라고 해.”함영식은 목소리가 크지 않았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심지어 대전 안에서 의논하고 있던 천경문 등 네 사람도 그 목소리를 들었다.네 사람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대전에서 나갔다.예준섭 등 네 명을 본 천경문은 미간을 구겼다.“당신들은 누구예요? 왜 우리 화령문에 온 거죠?”함영식 등 사람들은 대답하지 않고 상대방을 위아래로 훑어봤다.“술법 마스터네. 선영경에 도달하지도 못하다니, 화령문도 정말 몰락하긴 했어.”예준섭이 불쌍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상대방이 자신의 실력을 바로 알아보자 천경문 등 사람들은 안색이 달라졌다.그들은 분명 악의적이었다.“딱 한 번 더 말하죠. 지금 당장 우리 화령문을 떠나요.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요!”천경문이 총채를 꺼내면서 차갑게 그들을 보았다.“나도 한 번 더 말하지. 화령문 안에 숨어있는 진 마스터더러 나오라고 해!”마지막 몇 글자에서 변정선은 갑자기 목청을 돋우었다.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에 적지 않은 제자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심지어 천경문의 사형제들도 안색이 살짝 달라졌다.그는 무려 대성 종사였다.방 안에서 짐을 정리하던 권해철은 그 목소리를 듣고 곧바로 달려가서 대전 앞에 섰다.그동안 권해철은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면서 변정선 등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었다.그는 그 네 명이 혈운 조직의 종사라는 걸 곧바로 알아봤다.예전에 진서준이 만월호에서 유혁수를 죽였을 때, 권해철은 진서준이 분명 혈운 조직에 노려질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혈운 조직이 이때 복수하러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한 번에 네 명이나
조금 전 진서준이 목욕하러 갔을 때, 권해철이 그를 한 번 찾아갔었다.천경문이 권해철에게 진서준이 수련하고 있는 것 같으니 아무도 방해하게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이대 혈운 조직의 네 종사가 진서준의 위치를 찾았다면, 진서준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원래 당신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당신들이 너무 멋모르고 날뛰네.”함영식이 등 뒤에서 반짝이는 은빛 검 두 개를 꺼냈다.그것은 갈혈도였다.갈혈도에는 두 개의 긴 용이 새겨져 있었다.갈혈도는 피를 묻힌 뒤 며칠 지나면 그 위의 피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긴 용의 무늬를 전부 채워서야 서서히 사라진다고 한다.제자가 네 명에게 죽임당하자 천경문은 화가 나 미칠 것만 같았다.함영식이 먼저 검 두 개를 꺼내니 천경문도 더는 참고 있을 수 없었다.그래서 천경문은 자신의 총채를 꺼냈다. 그는 본인이 함영식의 상대가 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곧장 함영식에게로 달려들었다.“죽으려고!”다가온 천경문을 본 함영식은 차갑게 웃었다.함영식은 내력을 운용하였고 붉은색 강기가 그의 두 검을 감쌌다.그는 검 두 개를 휘두르면서 아주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공기까지 찢어버릴 듯했다.천경문은 감히 방심하지 못하고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지르며 체내의 진기를 미친 듯이 운용했다. 곧 그의 옆에 12개의 자줏빛 번개가 나타났다.번개는 순식간에 함영식을 공격했다.그와 동시에 천경문은 함영식의 두 검을 향해 들고 있던 총채를 휘둘렀다.천경문응 이를 악물었다. 이 순간 그는 사력을 다했다.맹렬한 공세를 퍼붓는 천경문의 모습에 함영식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검 두 개를 든 그는 한 검으로는 천경문의 육중한 총채를 막아냈고 다른 한 검으로는 12개의 자줏빛 번개를 베었다.쿠구궁...총채와 칼날이 부딪히자 두 사람의 발밑에서 바닥이 갈라지면서 거미줄 같은 균열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이와 동시에 12개의 번개 또한 코앞까지 왔다.함영식이 든 긴 검이 공중에서 움직이며 1초 사이에 12번 휘둘러졌다.공기 속의 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화령문의 네 장로와 혈운 조직의 네 종사가 싸울 때 전해진 여파를 화령문의 제자들은 감당할 수 없었다.적지 않은 제자들이 제때 뒤로 물러나지 못해서 멀리 날아가 입에서 피를 토했다.권해철도 다가가서 도와주고 싶었으나 호산대진 안으로 들어갔을 때 호산대진으로 인해 크게 다친 터라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은 상태였다.지금 도와준다고 나서봤자 오히려 천경문 등 사람들에게 짐이 될 것이다.누렁이는 호시탐탐 예준섭 등을 바라보았다. 누렁이의 눈동자에서 두려움이 보였다.맹수는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게다가 누렁이는 진서준의 검으로 인해 다친 적이 있었다. 비록 진서준이 치료해 주긴 했지만 아직 격렬한 운동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권해철 어르신,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 사람들은 다 누구예요?”허윤진이 달려왔다. 혈운 조직의 네 종사를 본 그녀는 의아한 얼굴이었다.“그들은 혈운 조직의 종사예요. 진 마스터님께 복수하러 온 사람들이죠.”권해철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뭐라고요? 혈운 종사라고요?”허윤진은 겁을 먹고 깜짝 놀라서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우리가 보운산에 있다는 걸 그 사람들이 어떻게 안 걸까요?”“아마도 줄곧 우리 뒤를 밟은 것 같아요.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고요.”권해철은 탄식하며 말했다.혈운 종사가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미행과 암살이었다.진서준 등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미행하는 것은 그들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진서준 씨는요? 어디 있어요?”허윤진은 불현듯 진서준이 그곳에 없다는 걸 발견했다.권해철은 서둘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진 마스터님은 지금 수련하고 계세요.”수련하고 있을 때가 방어력이 가장 약할 때였다.만약 혈운 조직 사람들이 진서준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게 되면 진서준은 분명 죽을 것이다.“뭐라고요? 왜 이럴 때 수련하고 있대요?”허윤진은 초조해 보였다.쿵!한 사람이 싸우는 와중에
그 제자들은 앞날이 창창했다.이렇게 이곳에서 죽게 된다면 장로들은 앞으로 무슨 면목으로 화령문의 역대 장문인을 마주한단 말인가?“너희들은 오늘 한 명도 떠날 수 없어!”변정선은 사장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차갑게 웃었다.“오늘은 화령문의 모든 이들의 목숨을 빼앗아 우리 혈운 조직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걸 세상 사람들에게 전부 알릴 것이다.”퍽퍽퍽!세 번의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천경문 등 세 사람도 공격받고 날아가서 바닥에 세게 쓰러졌다.세 사람 모두 크게 다쳤다. 그중에서도 천경문의 상처가 가장 심각했다. 그가 입고 있는 도포는 다 찢겨나갔고 온몸에 검에 베인 흔적과 피가 가득했다.반대로 예준섭 등 네 명은 상처 하나 없고 숨조차 헐떡이지 않았다.그 광경에 사람들은 마음이 가라앉았다.천경문 일행은 그들에게 상처 하나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러니 그들의 제자들은 더더욱 불가능했다.혈운 조직 앞에서 천경문 일행은 아무런 승산도 없었다.“우리 제자들은 보내줘. 대신 진서준 씨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천경문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천경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특히 권해철과 허윤진은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이때 진서준의 위치가 노출된다면 진서준은 틀림없이 죽을 것이다.“그럴 필요 없어. 당신들을 다 죽이면 천천히 찾아봐도 되니 말이야.”변정선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하나뿐이야. 그 자식이 날개라도 달리지 않은 이상 도망칠 수는 없어. 그리고 그 자식 여자 친구도 이곳에 있잖아?”허윤진이 그곳에 있으니 예준섭 등 사람들은 진서준이 나타나지 않고 몰래 도망치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다.“당신들...”천경문은 예준섭 일행이 화령문 사람들을 전부 죽일 정도로 이렇게 악랄할 줄은 몰랐다.“크억!”뒤에서 계속 관전했던 누렁이가 갑자기 으르렁거리면서 펄쩍 뛰었다.그리고 몸 전체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하면서 털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누렁이는 마치 운석처럼 하늘에서 추락하며 예준섭 일행을 덮
석벽에 파묻힌 누렁이를 본 허윤진은 두 손으로 자신의 옷깃을 꽉 쥐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걱정스러움이 가득했다.누렁이가 처음에는 허윤진에게 많은 공포를 가져다줬었지만, 진서준이 누렁이에게 어수인을 남긴 뒤로 누렁이는 마치 애완견처럼 온순해졌고, 그로 인해 허윤진은 누렁이를 자신의 애완동물로 여겼다.그런데 그런 누렁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으니 허윤진은 무척 초조해졌다.“그렇게 저 짐승이 걱정돼?”허윤진을 바라보는 변정선의 눈동자에서 음욕이 보였다.혈운 조직의 종사와 다른 무인들은 큰 차별점이 있었다.그들에게는 실력이 가장 주요했다. 그들은 약자들을 학살하면서 자신의 공허하고 무료한 생활을 채우려고 했다.살인, 강간, 악행이란 악행은 모두 저질렀다.네 종사의 나이를 다 더하면 200살이 넘지만, 다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썼다.“짐승이 아니에요. 이름 있어요. 제 애완동물이에요!”허윤진은 이를 악물고 반박했다.“애완동물?”변정선의 표정이 더욱 음흉해졌다.“그러면 너도 내 애완동물 해. 지금보다 훨씬 더 편하게 살 수 있을 거야.”변정선의 더러운 발언에 허윤진은 화가 나서 몸을 덜덜 떨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그녀는 많은 무인들을 만났었고 다들 하나같이 고상했다.그러나 변정선은 그저 나이만 먹은 양아치였고 종사로서의 기품은 전혀 없었다.권해철은 화를 내며 말했다.“변정선, 입 간수 좀 잘해. 진 마스터님께서 나오면 네 입을 찢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변정선은 그 말을 듣자 같잖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그러니까 진 마스터 보고 빨리 나오라고 해. 안 그러면 진 마스터 여자 친구를 가만두지 않을 테니 말이야.”권해철은 바짝 긴장해서 낮은 목소리로 허윤진에게 말했다.“허윤진 씨, 어서 가서 진 마스터님을 찾으세요. 제가 이 네 사람을 붙잡아둘게요!”“다들 조심해요. 지금 당장 진서준 씨를 불러올게요!”허윤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목욕실로 달려갔다.허윤진이 몸을 돌려 도망쳤
예준섭은 상황을 보고 천천히 말했다.“남주성의 권해철은 풍수살술에 능통하다는 말은 들어봤었는데, 이게 바로 당신의 비장의 무기죠?”권해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말할 힘도 없었다.조금 전의 뇌전비검으로 그는 많은 진기를 소모했다.만약 보운산의 영기가 짙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 풍수살술을 다시 쓰지 못했을 것이다.천경문 일행은 그때야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더니 곧이어 체내의 마지막 남은 진기를 사용하여 풍수살술을 설치했다.이 풍수살술은 화령문의 절학이었다.실력이 엇비슷한 상황에서 무도 종사가 풍수살술을 마주하게 된다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네 사람이 힘을 합쳐 포진하고 나니 곧 풍수살술의 진법이 나타났다.이 풍수살술은 기운을 물체처럼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감각을 매혹시키는 수단이 있었다.“방심해서는 안 돼.”예준섭이 나머지 세 명에게 당부했다.“알아요. 하지만 저자들은 이미 심하게 다친 상태예요. 이 풍수살술의 위력 또한 크게 줄어들 거예요.”변정선이 덤덤히 말했다.말하는 사이 네 사람 앞에 갑자기 안개가 피어올랐다. 하나는 뱀이고 하나는 호랑이였는데 거의 3미터는 될 법한 흰색의 맹수가 등장과 동시에 울부짖었다.뱀과 호랑이는 겉모습이 흉악하고 실력도 예사롭지 않았다. 발톱으로 살짝 긁었을 뿐인데 바닥 석판이 소리가 나면서 부서져 산산이 조각났다.“둘이 하나씩 없애.”예준섭 일행은 동시에 두 개의 안개로 된 맹수를 향해 달려들었다.흰 안개 속에서, 풍수살술을 포진한 권해철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보지 못했다.그저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은근히 들려올 뿐이었다. 적지 않은 제자들이 그 소리에 귀청이 째질 듯한 기분을 느껴 서둘러 손으로 귀를 막았다.“파괴되어라!”예준섭은 장검을 들고 조금은 흐릿하게 보이는 흰 뱀의 머리를 잘랐다.그 순간 흰 뱀은 울음소리를 냈고 머리 위 비늘이 산산이 조각났다. 검기가 뱀의 머리에서부터 시작해 그것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흰 뱀은 순식간
퍽퍽퍽...둔탁한 타격 소리와 함께 권해철 등 사람들은 피 안개가 나타나는 걸 보았다.지면을 보니 수많은 제자가 바닥에 누워있었다. 어떤 이들은 칼에 맞아 죽었고, 어떤 이들은 검에 베여 죽었고, 또 어떤 이들은 목이 꺾여서 죽었다.겨우 3분 사이, 화령문 반 이상의 제자들이 혈운 조직 네 사람의 손에 죽었다.짙은 피비린내가 도관 안을 가득 메웠고, 도관 전체가 붉은색 살기로 뒤덮였다.예준섭이 들고 있는 장검에서 피가 끊임없이 뚝뚝 떨어졌다.권해철과 천경문 네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예준섭을 바라보는 네 사람의 눈빛에는 분노와 두려움이 가득했다.이때 권해철은 그제야 혈운 조직이 정말로 소문처럼 잔악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다른 살아있는 제자들은 이 순간 저항할 의욕을 잃었다. 그들은 벌벌 떨면서 멍한 얼굴로 지옥과도 같은 광경을 바라보았다....“진서준 씨, 얼른 나와요. 권해철 씨 사형제들이 전부 죽게 생겼어요!”허윤진은 목욕실 문 앞에 도착해서 문을 힘껏 두드렸다.그러나 허윤진이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허윤진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왼쪽에 창문 하나가 있는 걸 발견했다.그 창문은 나무판자와 샌드페이퍼로 만든 것인데 조금만 힘을 줘도 망가뜨릴 수 있었다.허윤진은 서둘러 나무 의자 하나를 가져와 창문 아래 내려놓고 창문을 뚫고 들어갔다.그런데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갈 때 발밑이 미끄러워 바닥에 넘어지게 되었고 옷에는 먼지가 잔뜩 묻게 되었다.허윤진은 아픈 걸 신경 쓸 새도 없이 서둘러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진서준이 눈을 감고 욕조 안에 있는 걸 본 그녀는 급하게 달려갔다.“진서준 씨, 수련은 그만하고 얼른 나가요. 권해철 씨랑 누렁이 모두 죽게 생겼어요!”허윤진은 너무 초조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주먹을 너무 힘줘서 꽉 쥐는 바람에 관절이 하얗게 변했다.그러나 진서준은 마치 석상처럼 꿈쩍하지 않았다.“진서준 씨, 왜 그래요? 왜 말을 안 해요?”허윤진은 상황을 살피다가 서둘러
진서준은 이 용혈과로 몸을 단련할 수만 있는 줄로 알아서 영해를 증진하는 효과가 있는 줄은 몰랐다.이때 진서준 체내의 영해는 조금 더 높아졌고 몸도 아주 단단해졌다.지금은 총알이라고 해도 진서준을 다치게 할 수는 없었다.“왜... 왜 옷을 안 입은 거예요?”진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허윤진은 갑자기 진서준이 나체라는 걸 발견했다.그녀는 부주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허윤진은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예쁘장한 얼굴은 붉어졌다. 마치 여름날 밤의 노을처럼 말이다/진서준은 서둘러 나무 욕조 안에서 뛰쳐나와 황급히 옷을 입었다.“윤진 씨,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진서준은 옷을 입은 뒤 서둘러 물었다.“혈운 조직의 네 명의 종사가 우리에게 복수하겠다고 찾아왔어요. 권해철 씨가 지금 그들과 싸우고 있는데 진서준 씨가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요.”허윤진은 진서준이 진지하게 얘기하자 서둘러 그의 손을 잡고 도관 쪽 대전으로 달려갔다....“너희는 분명 죗값을 치를 거야!”바닥에 즐비한 시체들을 본 천경문은 가슴이 짓이기듯 아팠다.그 제자들은 화령문의 근간이었고, 그들의 아이들이기도 했다.천경문 일행은 아이들이 자라는 걸 직접 봐왔었다.그래서 제자들을 일찌감치 자기 친아들로 생각하고 있었다.그런데 그런 제자들이 예준섭 등 사람들에 의해 도륙당한 걸 보니 가슴이 찢기듯 아팠다.“다음에는 당신들 차례야!”함영식은 칼 두 자루를 들고 천경문 일행을 향해 서서히 걸어갔다.그가 쥐고 있는 갈혈도는 이미 검붉은색이 되어 있었다. 위에는 두 개의 긴 용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주 흉포해 보였다. 그저 힐끗 보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들었다.천경문 일행을 바라본 권해철은 비분에 찼고, 미안했다.“죄송합니다. 사형. 모두 제 탓입니다!”“네 탓이 아니다. 이건 우리가 겪어야 했던 일이었어.”천경문은 슬픔에 찬 얼굴로 탄식했다.이 순간 그는 십 년은 늙은 듯했다.다른 세 명의 장로도 마음이 무거웠다. 그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지만 이미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