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제성은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인승민이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고 긴장하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용혈과 맞아.”용혈과를 얻으면 그들은 보운산을 떠나 고양시로 돌아갈 수 있었다.그때가 되면 한씨 가문은 분명히 인승민에게 보수를 톡톡히 챙겨줄 것이다.“빨리, 빨리 용혈과를 따서 상자 안에 넣어.”그러자 한 무인이 용혈과 앞으로 달려가 미리 준비한 상자를 꺼내서 용혈과를 넣으려고 했다.바로 그때 대지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모두가 앞을 향해 바라보니 2미터에 가까운 그림자가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저... 저게 뭐야?”한제성은 살짝 놀랐고 눈에는 두려움이 스쳤다.“조심해!”인승민도 약간 두려웠기에 정신을 가다듬었다.그림자가 흰 안개 속에서 뛰어나오자,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2미터가 되는 사자 한 마리가 사람들을 향해 덮치자 그들은 마치 큰 산이 자신의 몸을 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사자는 흉폭한 맹수였기에 사람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사자는 원래 사나운 동물인데 사람보다도 더 큰 사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빨리 용혈과를 챙기고 도망쳐.”한제성은 맨 앞의 무인을 향해 소리쳤다.정신을 차린 무인은 재빨리 용혈과를 상자에 넣고 몸을 돌려 도망쳤다.맹수는 그들이 용혈과를 따가는 것을 보고 하늘을 찌를 듯한 소리로 울부짖었다.그러자 사람들의 마음이 뜨끔해졌다.‘설마 이 용혈과가 저 괴물의 것일까?’한제성도 그렇게 많은 것을 신경 쓸 새도 없이 필사적으로 도망갔다.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이 맹수의 속도를 과소평가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2미터가 되는 사자는 이미 무인 한 명을 따라잡았다.그리고 사자는 입을 크게 벌리고 무인을 통째로 삼켜버렸다.잠시 후 사자의 입이 다물어지자 비명이 울려 퍼졌다.“으악!”피가 사방으로 튕겼다.비명을 들은 한제성은 두려워서 몸이 떨렸고 혼신의 힘을 다해 밖으로 도망쳤다.하지만 얼마 안 지나서 또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한제성은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이 무인들은 모두
진서준도 멀리서 사람의 발소리를 들었다.“권해철 씨 사문의 사람일까요?”진서준이 물었다.보운산에는 권해철 사문의 사람 외에는 거의 다른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저도 모르겠어요. 사문 사람들은 보통 밤에 활동하죠.”권해철이 대답했다.“네? 왜 그러시는 거죠? 밤이 되면 산길은 더욱 걷기 힘들 텐데.”진서준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그러게 말이에요. 게다가 밤이면 여러 가지 독사와 맹수가 있어서 더욱 무섭지 않나요?”진서준의 등에 엎드리고 있던 허윤진도 맞장구를 쳤다.그런 간단한 이치는 허윤진도 다 알고 있는데 권해철 사문의 사람들은 모를 리가 더욱 없었다.“우리도 그걸 알고 있죠.”권해철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하지만 이 산속에는 아주 무서운 괴물이 있어요.”그 괴물을 떠올리자 권해철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이승재도 사부님이 이러는 모습을 처음 보았기에 마음속으로 몹시 놀랐다.“얼마나 무서운 거죠?”진서준이 궁금해서 물었다.“진 마스터님, 사자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권해철이 물었다.“사자라면 동물원에서 본 적이 있죠.”진서준은 웃으면서 대답했다.“혹시 그 괴물이라는 게 사자예요?”진서준은 단지 사자 한 마리 때문에 권해철 사문의 사람들이 대낮에 산에서 내려오지 못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꼭 그렇지도 않아요.”권해철은 한숨을 내쉬었다.“말하면 못 믿을 수도 있어요. 그 사자는 몸집이 2미터가 넘어요. 몸에 자란 털까지 합치면 거의 2층짜리 건물 정도죠.”“헐...”이승재와 허윤진은 무서워서 숨을 들이마셨다.사자와 같은 맹수는 아무리 튼튼하게 잘 자라도 팔다리를 합쳐도 겨우 1미터 정도였다.하지만 바로 1미터 정도 몸집의 사자를 동물원에서 본다 해도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이층집만 한 사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허윤진은 자신이 아마 사자를 만나면 도망갈 용기조차 없을 것 같았다.하지만 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환해졌다.2미터 높이의 사자가 있다는 건 이 산
“형부, 가지 마세요. 혹시...”허윤진은 진서준이 사나운 짐승을 상대하다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났다.“걱정하지 마세요. 싸우지 않고 용혈과만 가지고 갈 거예요.”진서준이 웃으며 위로했다. 그리고 그와 일행은 계속 걸었고 앞쪽의 발소리도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소리만 들어도 진서준은 8.9 명일 거라고 짐작이 갔다.“혹시 한씨 집안 사람들일까요?”진서준이 묻자 권해철이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 그들이겠죠. 제 사제들은 3명 이상 함께 산을 내려가지는 않거든요.”잠시 후, 진서준은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정말 한제성이네요.”권해철이 말하자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진서준은 한제성 일행에게서 은은한 피비린내를 맡았다.인승민 종사도 없으니 분명 그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음을 알 수 있었다.“권 천사님!”한제성은 권해철을 보자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어떻게 된 일입니까? 인 종사님은요? 왜 같이 오지 않았어요?”권해철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인 종사님은 괴물과 싸우고 있습니다. 어서 구해주세요.”한제성은 간절한 눈빛으로 권해철을 바라보며 말했다.“제성 씨가 말한 괴물이 혹시 키카 2미터나 되는 수컷 사자입니까?”권해철의 표정은 순식간에 변했고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네! 바로 그 괴물입니다. 보신 적이 있어요?”한제성은 흠칫 놀라면서 되물었다.“얼른 도망가세요. 인 종사님은 아마 그 괴물의 손에 죽었을 것입니다.”권해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럴 리가요... 그래도 종사 실력인데...”말로는 못 믿겠다고 하지만 한제성도 자신이 없었다. 그 괴물 앞에서 선천 대사도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하니 말이다.“종사도 괴물 앞에서는 안 되죠. 우리 장문인도 그 괴물을 이길 수 없습니다.”권해철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진서준은 인승민의 생사를 관심하지 않았다. 그는 용혈과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이때 진서준은 갑자기 상자를 안고 있는 무인을 보고 물었다.“그 상자에는 무엇이
괴물은 서 있기만 했는데도 사람을 질식하게 만드는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마치 이 사자 앞에서 어떤 사람, 어떤 물건도 모두 보잘것없다는 경멸의 느낌을 받게 만든다.허윤진이 이 수컷 사지를 본 순간 예쁜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두 다리로 진서준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안 종사님!”한제성은 피투성이가 된 채 마치 시체 더미에서 기어 나오는듯한 인승민을 보더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인승민은 한씨 가문의 종사이다. 만약 그가 죽는다면 한씨 가문의 실력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비록 한씨 가문에는 종사가 한 명뿐이 아니지만 이렇게 큰 손실을 감수할 수 없었다.“진 마스터, 얼른 도망갑시다. 이 괴물이 떠나면 그때 다시 산으로 올라가죠.”권해철은 다리를 떨기 시작했다. 그는 이 괴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총알도 그의 가죽을 꿰뚫을 수 없었다.“도망가! 얼른!”인승민은 한제성을 향해 소리쳤다. 그가 보이게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손을 써도 승산이 없어 보였다.지금 뿔뿔이 흩어져야 어쩌면 한 명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권해철은 한제성을 바라보며 말했다.“용혈과를 여기에 두면 우리는 도망갈 수 있습니다. 아니면 다 죽을 거예요.”용혈과는 괴물의 물건인데 지금 한제성 일행이 가져갔으니 괴물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그들이 보운산에서 도망칠 수 있더라도 그들을 끝까지 찾아가 모조리 죽일 것이다.“안 됩니다. 이 용혈과는 제 누나의 목숨을 살려줄 물건입니다. 절대 여기에 두고 갈 수 없어요.”한제성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가 이번에 산을 오른 이유도 이 용혈과를 얻어 그의 누나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오늘 한제성이 여기서 죽더라도 그는 반드시 사람을 시켜 용혈과를 한씨 집안 사람에게 전달할 것이다.진서준은 한제성의 말을 듣자 담담하게 물었다.“용혈과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어요?”그러자 한제성은 어리둥절해하며 되물었다.“무슨 뜻이죠?”진서준은 용혈과의 효능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권해철은 영법을 쓰더니 구름과 안개 사이로 하얀색 뱀이 생겨났다. 그 뱀은 권해철과 그의 제자를 데리고 다른 고지로 올라갔다.한제성은 권해철이 정말 그들을 내버려두려고 하자 화가 치밀어올랐다.하지만 뭐라고 말하기도 애매해서 그저 계속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그들 뒤에 있던 수컷 사자는 인내심을 잃었다. 그는 더 이상 술래잡기 놀이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한제성 일행을 죽이고 용혈과를 가지고 돌아갈 것이다.인승민은 이 괴물이 방금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아!아악!아무런 예고도 없이 처량한 비명이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불과 5초도 채 지나지 않아 한씨 가문의 무인 두 명이 괴물의 거대한 발톱에 찍혀 죽었다. 그 괴물 사자의 발톱은 새빨간 피로 물들었다.이 거대한 짐승 앞에서 종사는 어쩔 수가 없었다. 종사가 아닌 무사들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순식간에 죽었다.허윤진은 비명을 듣고 손으로 귀를 막았고 두 눈도 꼭 감았다. 진서준에게 업혀 있던 허윤진은 다리로 진서준을 꽉 껴안고 부들부들 떨었다.진서준은 이 모습을 보자 한 손을 허윤진의 어깨에 올려놓고 몸 안의 영기를 움직여 그녀에게 전해줬다.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게 말이다.“형부, 좀 있다가 내려가면 안 돼요. 그 사자가 돌아가면 그때 내려갑시다...”허윤진이 몸을 떨며 말했다.“알았어요.”진서준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은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었다. 어렵게 용혈과를 찾았는데 이렇게 놓칠 리가 없었다. 이 수컷 사자는 매우 무서워 보이지만 진서준은 그를 이길 자신이 있었다.“늦었어. 그냥 한번 덤벼보자!”인승민은 더 도망쳐봤자 이 괴물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해철 씨, 도와주세요. 혼자 감당 못 할 것 같습니다.”인승민은 권해철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권해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저도 이 괴물의 상대가 안 됩니다. 부디 조심하세요.”권해철이 내려오려고 하지 않자 인승민은 욕설을 퍼부었다.무
허윤진이 머뭇거리는 사이 아래쪽에서 또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그녀도 차마 한제승 일행을 모두 죽게 내둘 수 없어 진서준의 등에서 뛰어내렸다.“형부, 꼭 안전하게 돌아와요.”그녀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걱정스레 말했다.“네.”진서준은 힘껏 고개를 끄덕인 후 훌쩍 뛰어내렸다. 권해철은 진서준이 뛰어내리는 것을 보자 이를 악물고 같이 뛰어내렸다.진서준이 죽으면 권해철은 여기서 탈출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지금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서준과 함께 손을 잡고 괴물을 쫓아내는 것이다.“진 마스터, 같이 갑시다.”권해철은 진서준 곁에 서있었지만 두 손은 계속 떨렸고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진 마스터, 권 마스터, 우리의 목숨은 이제 두 분 것입니다.”한제승은 두 사람을 향해 공손히 절을 했다.인승민은 이때 한제승에게 귓속말로 말했다.“만약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면 바로 도망가자. 저들더러 시간을 좀 끌게 하고.”그는 진서준과 권해철이 괴물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수컷 사자가 한 발을 내디딘다면 종사는 숨도 감히 못 쉴 것이다. 만약 선천 대종사가 오지 않으면 싸움조차 시작할 수 없을 정도였다.“하지만 그러면...”한제승은 머뭇거리더니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그게 뭐가 어때서. 아까 저 사람들도 우리 사람들이 죽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잖아.”바닥에 누워있는 시체를 바라보니 인승민의 마음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이 무인들 중 몇 명은 그가 직접 가르친 사람들이었고 제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하지만 그들 중 절반이 이 괴물 손에 죽었다니.이때 사자는 진서준과 권해철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보자 소리를 질렀다.이 소리는 천둥 번개처럼 주변 십 리 반경 내의 새들을 모두 도망가게 했다.이 사자는 보운산 구역의 패자이다.어떤 사나운 짐승도 그를 보면 피해야 한다.“자! 뇌검!”권해철은 두려움을 억누르고 공격하기 시작했다.번개가 번쩍이는 사이에 보라색 뇌검이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
한제성과 인승민도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도망칠 준비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여기서 죽을 수 있으니까.”한제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권해철도 맹수를 상대하지 못하는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청년은 절대 맹수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진서준 씨, 진서준 씨가 나서주시겠어요? 전 저것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권해철은 진서준을 바라보면서 두려운 표정으로 말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뒤로 물러나세요.”조금 전 권해철은 천둥으로 맹수를 제압하려 했는데 그것은 꽤 좋은 방법이었다.그러나 문제는 권해철의 뇌검의 위력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사자는 권해철이 물러나자 의기양양하게 으르렁댔다.진서준은 앞으로 몇 걸음 나서서 사자와 5미터 정도 거리에서 멈춰 섰다.진서준이 사자와 가까워지자 허윤진은 불안해졌다.다른 사람들도 진서준이 뭘 하려는 건지 알지 못해 안색이 좋지 않았다.“이 산에서 백 년 동안 수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테니, 지금 당장 떠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진서준은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의 말에 다른 이들은 대경실색했다.이렇게 건방진 말을 하다니, 진서준은 미친 걸까?그 사자는 백 년간 수련한 사자였다. 비록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하는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경멸에 가득 차 있던 사자의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사자는 눈빛뿐만 아니라 표정에도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크르르!”사자의 울부짖음에 사람들은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아서 귀를 막았다.그러나 진서준은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사자를 바라보았다.“기회는 이번 한 번뿐이야. 가지 않겠다면 나도 봐주지 않을 거야.”인승민은 온몸이 벌벌 떨렸다.“죽고 싶은 거면 혼자 죽지, 왜 우리 발목까지 붙잡으려 하는 거지?”사람들은 사자가 진서준 때문에 화가 단단히 났음을 보아냈다.그들에게는 살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곧 이 숲속에서 목숨을 잃을 것이다.“진 마스터님을
인승민은 그 광경을 보더니 미간을 팍 찌푸리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는 종사가 된 지 10년이 되었지만 진서준이 시전한 강기 같은 것은 처음 보았다.형태도 없고 색깔도 없는 강기였다. 그것은 윤구주가 종사로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정말 20대 맞나?”인승민은 너무 놀라웠다.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그는 절대 진서준이 20대라는 것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허공에서 내려오던 사자는 그 광경을 보자 흉악한 눈동자에 얼핏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곧 사자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면서 으르렁댔고, 힘 있는 두 발이 진서준의 머리로 날아들었다.사자는 건방진 인간에게 자신을 화나게 하면 죽음밖에 없다는 걸 알려줄 생각이었다.쿵...사자가 내려오자 지면이 흔들리면서 먼지가 일어 진서준과 사자의 모습이 가려졌다.지면에는 20cm 정도 너비의 균열이 생겼다. 그것은 진서준이 있는 곳에서부터 거의 10m 가까이 쭉 뻗어져 나간 뒤에야 멈췄다.무시무시한 힘이었다. 미사일보다도 더 강한 수준이었다.“진 마스터님 죽은 건 아니겠죠?”한제성이 덜덜 떨면서 물었다. 그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가득했다.사자의 전력을 다한 공격이라면 선천 대종사라고 해도 살 수 없을 것이었다.“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조금 더 기다려보죠.”권해철은 진서준에게 아주 큰 희망을 품고 있었다.먼지 속에서 진서준의 두 손이 담청색으로 감싸여 있었다.그는 두 손으로 사자의 두 앞발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고, 그가 서 있는 곳에 30cm 정도 깊이의 구덩이가 생겼다.사자는 온몸에서 강렬한 맹수의 기운을 내뿜었다. 그 기운만으로도 평범한 사람은 기절할 수 있었다.진서준은 사자의 실력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힘만 봤을 때 선천 대종사는 사자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사자의 몸은 아주 단단했고 평범한 종사는 사자에게 상처조차 남길 수 없었다.그러나 사자는 동물이지 인간이 아니다.영성이 있다고 해도 절대 그 약점을 보완할 수는 없었다.
김평안이라니, 아무도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곧 이 이름이 대한민국 무도계에 널리 퍼질 것은 분명했다.남주성 진 마스터가 등장한 데 이어 이제는 검선 김평안이 나타나다니, 대한민국 무도계는 요즘 정말 떠오르는 샛별이 끊이지 않는 것 같았다.진서준과 김평안이 사실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현장 사람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혹시 김평안과 진 마스터가 만나게 된다면, 누가 이길까?”누군가가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두 사람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대단한 능력이 있잖아. 진 마스터는 강기와 술법에 능하고 김평안은 검도에 능하니 실제로 붙으면 막상막하일 거야.”한 종사가 잠시 생각한 후 천천히 답했다.“근데 이상하지 않나? 벌써 석 달이 넘었는데 진 마스터는 대한민국에서 증발한 것처럼 진 마스터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잖아.”“설마 김평안이 바로 진 마스터가 아닐까?”누군가 농담 삼아 말했다.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그 예상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진 마스터도 검을 쓴 적은 있지만 검도에 대한 이해는 그리 깊지 않다고 들었어.”“김평안의 검술은 섬나라 작은 검성을 순식간에 제압할 정도인데, 이는 대한민국 검존과 같은 수준일 거야. 진 마스터가 아무리 천재라 해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잖아.”주변 사람들의 찬사에도 진서준은 무심하게 지나쳤다.진서준이 조용히 돌아오자 엘리사가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김평안 씨, 대회에서 우승한 걸 축하해요.”진서준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벌레 같은 놈 하나 베었을 뿐인데, 축하할 일도 아니죠.”“김평안 씨, 고시후는 벌레로 불릴 만큼 무능한 무인이 아닙니다. 고시후는 섬나라 작은 검성이자 고필두 다음 가는 실력자예요.”호창정는 흥분한 얼굴로 고시후에 관해 설명했다.김평안이 고시후를 단 한 칼에 쓰러뜨렸으니 고필두도 마찬가지로 이길 수 있다는 말 아닌가?현천진군이 도대체 어디서 이 막강한 실력을 갖춘 무인을 데려온 건
이번 교류 대회는 결승전에서도 여전히 3판 2선승제였다.아까 고필두가 기권하면서 섬나라는 이미 한 판을 졌다.이제 진서준이 고시후를 이기기만 하면 대한민국 대표팀이 이번 교류 대회의 우승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그러나 이번 대회의 우승이 그렇게 쉽게 얻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고시후는 고필두만큼 명성이 높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섬나라의 작은 검성이라 불리는 막강한 존재였다.고시후의 실력은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이번엔 누가 대신 죽으러 나왔나?”자신감에 차 있는 고시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진서준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 차가웠다.“죽을 사람은 바로 너야. 고필두가 체력 부족으로 네 목숨을 잠시 연장해줘서 고맙게 생각해. 고필두의 체력이 저 정도로 고갈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넌 이미 고필두의 검 아래 시체로 되었을 거니까.”고시후가 쌀쌀하게 웃으며 받아쳤다.진서준은 고시후를 무시한 채 사회자를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시작해도 되나요?”“시작하세요!”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서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사실 진서준은 고필두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가 기권했기 때문에 이번엔 이 작은 검성이 고필두를 대신해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당연히 진서준이 질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진서준의 번개처럼 빠른 속도를 보고 모두 멍해졌다.“저 사람... 속도가 장난이 아닌데?”여러 겹의 잔상이 링 위에 차례로 나타났는데 이 속도는 아무리 봐도 육급 대종사와 맞먹는 수준이었다.심지어 조금 전의 해리스보다도 더 빠른 속도였다.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벌려진 입으로 감탄하기도 전에 찬란하고 푸른 검광이 링 위에 나타났다.하늘조차도 그 푸른 검광의 참격에 의해 두 갈래로 나뉜 듯했다.이 참격은 오직 검의 수준에 맞먹을 뿐, 검세급에는 이르지 않았다.참격의 강도를 낮춘 이유도 간단했다.눈앞의 작은 검성으로는 진서준이 검세까지 사용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진서준이 검의 대성 수준을 담은 검광을 휘두르는 걸 직접 목격
진서준이 고필두의 검을 쉽게 막아내자 관중들은 그제야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대충 이해했다.“고필두가 항복한 게 당연하지. 아까 해리스랑 싸우며 힘을 다 소진했나 보지.”“아마 검을 내려치기 직전에 체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미리 항복한 거겠지.”“어휴, 이기긴 했지만 불명예스러운 승리잖아. 진 거나 다름없네.”다들 고필두가 항복한 이유가 아까 해리스와의 대결에서 체력이 과도하게 소진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네 나약함이 네 목숨을 구했군.”진서준은 고필두의 요도를 집었던 두 손가락을 거두고 냉랭하게 말했다.고필두는 속에서 밀물처럼 몰려오는 두려움 때문에 더 이상 진서준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왜냐하면 고필두가 항복을 외쳤을 때조차 비겁한 그는 속도를 줄이지도 않았고 힘도 덜어내지 않았다.그런데 고필두의 요도는 진서준의 두 손가락에 꽉 잡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했다.고필두는 요도를 거두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허겁지겁 링을 내려갔다.“쓸모없는 놈, 사람 잘못 봤어!”고필두가 도망치듯 내려가는 모습을 본 황현호는 화가 나 이마에 핏대가 섰다.고필두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황현호가 상상할 수 없었다.“다행이네요. 저 섬나라 남자가 항복해서 정말 다행이네요.”조민영은 진서준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옆에 있던 조기강이 조민영을 보며 따졌다.“민영아, 김평안이 자기 실력에 대해 너한테 뭐라고 말한 적 있니?”조민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다만 장릉 마을에서 내가 사수에게 잡혔을 때, 그 악당을 공격 세 번 안에 제압했던 적이 있었어요.”사수를 단 세 번의 공격 만에 죽였고 또한 검세마저 대성이라니, 진서준의 실력은 조기강보다 한참 위일 가능성이 높았다.하지만 왜 여태껏 이렇게 대단한 사람에 관해 아무런 정보도 들은 적이 없는지 조기강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 김평안이라는 자가 봉호전에 참가했다면... 검존의 봉호가 바
사회자가 아직 시작을 외치기도 전에 고필두는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고필두의 속도는 이미 음속을 넘어섰고 손에 든 요도는 한 줄기 검광이 되어 진서준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이 장면을 본 모두의 마음이 순간 덜컹 내려앉았다.진서준의 머리가 날아가게 생겼다는 게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유일한 생각이었다. 물론 조기강도 이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이런 말 들어본 적 있나?”그 날카롭고 눈부신 검광을 마주하고도 진서준의 얼굴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시선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고 평온했다.“대한민국 무인 앞에서 칼을 휘두르겠다니, 어이가 없구나. 우리 조상들이 검을 다룰 때, 너희 섬나라 사람들은 나무 위에서 원숭이처럼 바나나나 먹었겠지. 오늘 내가 너희 섬나라 사람들에게 진정한 검술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마.”진서준의 목소리가 체육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이 녀석은 고필두의 심기를 완전히 건드릴 생각인 것 같았다.몇몇 관중들은 이미 눈을 감았다. 다들 곧 피범벅이 되어 피비린내를 풍길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필두의 눈에는 잔인한 살기가 맺혔고 시선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처음에는 한 방에 진서준의 목숨을 끝내려 했지만 지금 고필두의 생각이 180도로 변했다.고필두는 이 오만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 무인을 극심한 고통 속에서 허덕이다 죽게 하고 싶었다.고필두는 검의 방향을 바꿔 진서준의 왼팔을 겨냥했다.요도가 진서준의 몸에 닿기 직전, 진서준의 오른손이 앞으로 뻗었다.순간,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청색 검광이 공중에 번쩍였다.검광은 비록 얇았으나 그 순간 모든 이들의 마음에 거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짧은 순간 눈 부신 빛을 보이던 검광은 단순한 검광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천둥과도 같았다.아무런 방비도 없었던 고필두의 마음에 강렬한 위기감이 솟구쳤다.진서준의 오른손에는 눈부신 푸른빛을 발산하는 7척 길이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그 장검은 아무런 장식도 없었고 겉모습도 평범해 보였다.하지만 다음 순간, 청색 검신에서
아까 고필두가 보여준 실력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했다.조기강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진서준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삼촌, 아저씨랑 저 섬나라 검객 중 누가 이길 것 같아요?”조민영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물었다.“김평안은 신농에 들어가지 않았어? 어떻게 다시 나왔지?”갑자기 등장한 진서준을 보고 조기강도 순간 멍해졌다.당시 조기강은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전부 정리하고 진서준을 신농으로 들여보냈다.그런데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진서준이 다시 신농에서 바깥세상에 나온 것이다.“삼촌, 김 아저씨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나중에 물어봐요. 지금은 둘 중 누가 이길지 말해줘요.”조민영은 조기강의 팔을 잡고 흔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조르기 시작했다.“흔들지 마라. 네가 아무리 흔들어도 결과는 변하지 않아.”조기강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고필두는 지금 새 상대와 대결할 힘이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김평안을 이기기에는 충분해.”아까 고필두의 광자 참격은 조기강마저도 깜짝 놀라게 했다.조기강이 직접 저 링에 올라 대결한다면 고필두를 이길 수는 있겠지만 매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하지만 지금 링 위에 있는 김평안은 아예 승산이 없었다.조기강이 진서준에게는 승산이 없다고 하자 조민영은 초조해져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삼촌, 이따가 김 아저씨를 좀 도와줄 수 없어요?”“안 돼. 이건 국제 대회야. 내가 개입하면 우리 팀이 이기더라도 우리 대한민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거야. 그때는 윗사람들도 우리 조씨 가문을 탓하게 될 거고.”조기강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고 이내 속으로 대한민국 교류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형편없다는 걸 알았으면 자기가 직접 나섰을 거라며 한탄했다.엘리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속으로 진서준을 걱정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은 김평안의 등장에 당혹해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저 중년 남자는 누구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몰라. 저 남자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어.”“쯧
이 순간, 하늘과 땅 사이 모든 흐름이 한순간에 멈춘 듯했다.피가 졸졸 흐르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눈을 휘둥그레 뜬 엘리사는 눈앞에서 벌어진 황당한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엘리사의 친위대 대장이 한낱 섬나라 검객에게 이렇게 처참하게 패하다니, 너무나 경악스러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눈이 휘둥그레졌고 말문이 막혔다.육급 대종사인 해리스도 고필두의 광자 참격 앞에서는 이토록 무력했다니, 이 고필두의 실력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지금 상황으로 봐선 칠급 이상의 대종사만이 고필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호창정은 하얗게 질린 창백한 얼굴을 돌려 진서준에게 말했다.“김평안 씨, 차라리 이 대결을 포기합시다. 산을 남겨두면 언젠가 땔감을 얻을 기회는 또 있어요.”해리스도 이렇게 깔끔하게 당했는데 사급 대종사 경지에 불과한 김평안은 상대가 되기엔 턱도 없이 부족했다.대표팀 사람들은 김평안이 링에 올라가 봤자 고필두의 참격을 한 방도 견뎌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하지만 진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걱정 마세요, 난 내 한계를 잘 알고 있어요.”고필두의 실력이 확실히 대단한 건 맞지만 지금 그는 온몸의 힘을 거의 다 고갈한 상태였다.아까 열세 번의 검광은 고필두 체내의 모든 강기를 거의 다 소모했다.지금 진서준이 이런 상태의 고필두를 이기는 건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였다.“서둘러 주세요. 해리스 씨를 구해야죠.”엘리사도 정신을 차리고 즉시 자기 황실 친위대에게 해리스를 구하라고 지시했다.고필두는 해리스를 죽이진 않았다. 해리스가 용란 황실의 친위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고필두가 진짜 해리스를 죽이기라도 했다면 용란의 적대감을 살 게 분명했다.누가 섬나라의 진정한 적인지 고필두는 구분할 줄 알았다.하지만 고필두는 자기가 이 필살기를 보이면 대한민국 대표팀이 기권할 것 같아서 내심 두려웠다.이런 밥맛 떨어지는 상황은 무조건 피하고 싶
“해리스도 만만치 않네. 강기를 사용해 고필두 요검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걸 보니 해리스도 대단한 실력이야.”“누가 이기든지 간에 다음 경기에서 우리가 질 게 뻔하구나.”누군가 한숨을 내쉬며 신세를 한탄했다.해리스와 고필두가 이렇게 강력한 모습을 보이자 아무도 자국 팀이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주로 대한민국 대표팀 안에는 눈에 익은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대표팀 팀원들의 실력을 보니 솔직히 대종사 경지에도 못 미칠 것 같았다.대종사도 아닌 무인이 링에 올라가 저 두 사람과 대결하면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엘리사는 해리스가 전혀 다치지 않은 것을 보자 드디어 안심하며 긴장하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긴장이 풀린 엘리사는 진서준을 바라보며 약간 자랑스럽게 말했다.“김평안 씨, 해리스 씨가 무조건 진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해리스 씨가 지금 이 섬나라 검객과 절대 밀리지 않는 상태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잖아요.”진서준은 그 말에 평온하게 대꾸했다.“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는 곧 알게 될 겁니다.”곧 알게 된다니, 엘리사는 진서준의 말을 믿지 않았다.엘리사의 눈에 지금 기세가 절정 상태인 해리스가 절대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쿵!엄청난 소리와 함께 고필두와 해리스가 각각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어느새 단단한 강철로 만든 링 위에는 검에 베인 자국이 수백 개 생겼다.이 검에 베인 자국들은 전부 고필두의 검기가 스쳐 지나간 후 생긴 것이었다.“애들 소꿉장난은 여기까지야.”말을 마친 고필두는 링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그 후 링 위에는 고필두의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났고 마치 수많은 고필두가 링 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이 장면을 본 해리스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자기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해리스의 근육이 갑자기 급격히 부풀어 오르며 매끈한 정장을 단번에 찢어버렸다.한 줄기 강기가 해리스의 상반신을 감싸고 있었고 햇빛 아래서 해리스는 금빛으로 보호받고 있는 듯했다.“고필두가 광자 참격을 쓸 것 같군.”
모든 사람은 숨을 죽이고 링 위에 서 있는 해리스와 고필두를 주시하고 있었다.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두 사람의 대결 중 하이라이트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김평안 씨, 해리스가 정말 고필두의 상대가 될 수 없는 건가요?”호창정은 여전히 믿기 힘들어했다.해리스는 육급 대종사였고 반면에 고필두는 사급 대종사에 불과했다.검수는 강기를 수련한 무인보다 강하긴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두 단계 대종사라는 큰 격차가 있었다.이 두 단계의 차이는 그렇게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그냥 조용히 지켜보면 알게 될 겁니다.”진서준은 추가 설명 없이 해리스와 고필두를 평온하게 바라보았다.사회자가 시작 신호를 알리자 두 사람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선공이 강하다는 말은 고수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수 사이의 대결에서 일반적으로 먼저 움직이는 자가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었고 일단 빈틈이 보이면 패배할 확률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관중들이 슬슬 지루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날카로운 검 소리가 울려 퍼졌다.주위의 몇몇 검을 지닌 무인들은 자기 검이 방금 그 검 소리에 맞춰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고필두가 쥐고 있는 장검은 매미 날개처럼 얇았고 차갑고 섬뜩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고필두는 단순히 검을 들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오싹하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풍겼다.“삼촌, 삼촌이 이 섬나라 사람과 대결한다면 누구 검술이 더 강할까요?”관중석에서 조민영이 궁금한 눈빛으로 조기강을 바라보며 물었다.조태희와 함께 동북으로 돌아가야 했던 조민영은 조기강에게 국제 무도 교류 대회를 보러 가자고 발을 동동 구르며 부탁했다.조태희는 결국 조민영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대신 대회가 끝난 후 조기강과 함께 동북으로 돌아가기로 약속했다.“고필두 실력은 내 아래야.”조기강은 고필두를 바라보며 천천히 한마디를 내뱉었다.조기강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조민영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왜냐하면
“대한민국, 섬나라, 그리고 용란의 대표팀 팀장들은 올라와서 마지막 추첨을 진행해 주세요.”나머지 세 팀 중 두 팀이 대결하니 나머지 한 팀은 부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할 판이었다.호창정은 마음속으로 공석에 걸리기를 조용히 기도했다.동시에 해리스가 고필두를 이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야 진서준이 살아남을 희망이 있었다.추첨을 받은 순간, 호창정의 손은 바르르 떨렸고 심장이 두근거렸다.“음? 또 부전승이네.”3번을 뽑았을 때, 호창정은 기쁨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섬나라의 그 팔자수염 남자가 호창정의 3번 추첨을 보고 비웃었다.“너희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런 더러운 짓밖에 못 하나 보구나. 하지만 괜찮아, 어차피 우리는 결승에서 만날 거니까. 너희가 결승전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팔자수염의 말에 호창정은 얼굴이 화끈해졌고 목이 바짝 말랐다.“당신들 대한민국 운이 참 좋군요.”해리스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한판 대결도 안 치르고 그대로 결승에 진출하다니, 하늘이 선택한 운명의 인물이거나, 아니면 암암리에 어떤 뒷거래가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어찌 됐든 해리스의 목표는 달성됐다.섬나라의 이 검존과 아무런 걱정도 없이 정식으로 대결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경성에는 10명 이상의 용란 황실 경호원이 지금 주둔하고 있다.해리스가 심하게 다치더라도 엘리사를 혈수사의 손에서 지킬 수 있었다.“김평안 씨, 또 부전승이에요, 대박이에요.”호창정이 자리로 돌아와 격앙된 어조로 외쳤다.진서준은 담담하게 미소 지을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해리스가 대결을 위해 링에 올라가려 할 때 진서준은 몸을 돌려 한마디 했다.“투항해야 할 때는 깔끔하게 투항해. 괜히 버티다가 목숨 잃는 짓 하지 마.”해리스는 그 말에 화를 내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건 무슨 말이야? 내가 고필두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똑똑히 잘 들어, 나 해리스 사전엔 투항이라는 두 글자는 존재하지 않아. 우리 용란 황실 경호대 명예에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