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밖에 도착해 보니 심해윤은 역시나 서정훈의 침대 곁에 앉아 있었다. 부부 두 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뭔가 의논하고 있었다.진서준은 바로 들어가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누군가 문을 두드리자 심해윤은 고개를 돌려 보았다. 진서준이 문밖에 서 있는 걸 본 그녀는 곧바로 문을 열러 갔다.“진 선생님, 오셨네요!”심해윤은 기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봤다. 그녀는 진서준이 서정훈을 검사해 주러 온 건 줄 알았다.“진 선생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전 죽었을 거예요.”서정훈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감격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어제 서정훈의 상태가 안정된 뒤 심해윤은 사건 경과를 자세히 설명했다.서정훈은 공수철과 최문혁이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한 걸 알고는 무척 화가 났고, 곧바로 감사팀에 공윤석을 감사하라고 했다.“사양할 필요 없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건 의사의 본분이죠.”진서준은 덤덤히 웃었다. 그는 서정훈이 안타깝게 느껴졌다.이렇게 훌륭한 아버지에게서 서현욱 같은 망나니가 태어나다니.서현욱이 서정훈의 반만 따라갔어도 분명 꽤 큰 성과를 냈을 것이다.“일단 맥부터 짚어보고 얼마나 회복했는지 볼게요.”진서준은 침대 옆 의자에 앉으며 서정훈의 맥을 짚었다.잠시 뒤 진서준은 손에 힘을 풀면서 천천히 눈을 떴다.“진 선생님, 저희 남편 어떤가요? 괜찮은 거 맞나요?”심해윤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서정훈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분명 괜찮을 거야. 진 선생님 의술에 자신을 가지라고!”진서준은 싱긋 웃었다.“확실히 괜찮네요. 2, 3일 정도 더 쉬면 계속 시민들을 위해서 일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그 말을 들은 심해윤과 서정훈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감사합니다, 선생님. 제 몸이 다 나으면 꼭 제 아내가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게 할게요!”서정훈은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감사 인사를 할 때 상대방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비록 심해윤의 요리 실력이 호텔 주방장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그는 속으로 강백산을 쓸모없는 놈이라고, 진서준마저 처리하지 못한다고 욕했다.“아버지, 어머니, 저는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서현욱은 부모님의 표정을 보고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이 자식, 네가 무슨 낯짝으로 묻는 거야? 평소에 내가 일 때문에 바빠서 널 가르치는 데 소홀했더니 이렇게 멋대로 날뛸 줄은 몰랐다. 감히 고양의 사람을 찾아와서 진 선생님을 상대하려고 해?”서정훈은 무척 화가 나서 서현욱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조금 전 서현욱이 오는 길에 진서준은 오늘 있었던 일을 서정훈에게 대략 얘기해줬다.서정훈은 그 말을 듣자 복장이 터졌다. 그는 서현욱을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다.훌륭한 아버지 밑에서는 훌륭한 아들이 태어난다는데, 서현욱은 훌륭하기는커녕 형편없는 아들이었다.서현욱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겁을 먹고 몸을 떨었다.“여보, 저 자식을 때려!”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는 점만 아니었어도 서정훈은 직접 손을 썼을 것이다.심해윤은 단단히 화가 나서 준비해 뒀던 자로 서현욱을 때렸다.착착착...서현욱은 비명을 지르면서 서둘러 애원했다.“어머니, 그만 때리세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네가 다시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누가 네 아버지를 구했는지 알고나 있어? 진 선생님이 혹시라도 잘못됐으면 어쩔 뻔했어?”서정훈은 침대맡의 유리잔을 들어 서현욱의 머리를 향해 집어 던졌다.서현욱은 미처 피하지 못해서 유리잔에 맞았다.순간 핏물이 튀었다.“아!”서현욱은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롭게 바닥에 주저앉았다.심해윤은 흠칫하더니 마음이 약해져서 외쳤다.“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의사 부르지 마. 그냥 죽게 놔둬.”서정훈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서준은 서현욱을 단단히 혼쭐낼 생각이었지만 서정훈의 모습을 보니 화가 조금 풀렸다.서현욱은 좋은 부모를 뒀다.“서정훈 씨, 이 일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앞으로는 잘 가르치도록 하세요.”진서준은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서현욱을 바라보며 서정훈에게 말했다.이때 의사도 병실
허윤진이 그렇게 상세히 물은 이유는 몰래 차 트렁크에 숨어서 진서준 일행과 함께 떠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이번에 진서준은 권해철의 사문으로 가면서 허사연도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다.그것은 허윤진에게 아주 좋은 기회였다.허윤진은 언니가 진서준이 없는 틈을 타서 진서준의 마음을 얻을 생각이었다.비록 허사연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냥 이렇게 진서준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진서준은 허윤진의 생각을 몰랐다. 그저 허윤진이 따로 배웅해 주려고 하는 줄 알았다.만약 진서준이 허윤진의 생각을 알았다면 너무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조재찬은 스무 명 넘은 조씨 일가 고수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그중 네 명은 내공 절정의 무인이었다.스무 명쯤 되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옷이 터질 것 같았다. 병상 위에 누워있는 아들을 본 조재찬은 안색이 한없이 어두웠다.그는 서울 같은 곳에 자신의 아들을 다치게 하고, 심지어 조씨 일가 무인을 때려죽일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복수를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남주성에서 그들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아버지, 드디어 오셨네요. 저 두 다리가 부러졌는데 다시는 이어 붙일 수 없대요.”조재찬이 온 걸 본 조규범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그를 향해 호소했다.“똑똑히 말해 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네 다리는 누가 부러뜨린 거고?”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조재찬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조규범은 눈물을 닦으면서 요 며칠 있었던 일을 숨김없이 얘기했다.조규범이 허윤진을 납치했다는 말에 조재찬은 화가 나서 그의 머리를 두 대 때렸다.“내 아들이면 뭐든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줄 알았어? 허윤진은 허성태 딸이야. 감히 허성태의 딸을 납치해? 만약 허성태가 신고라도 하면 나라도 널 구하기는 힘들어!”조재찬은 씩씩거렸다. 그는 멍청한 아들 때문에 복장이 터졌다.아들이 한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조재찬은 그를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그
“때린 걸로 끝나서 다행인 줄 알아. 내가 누군지 알아?”조재찬이 차갑게 말했다.“당신이 누구든 사람을 때리는 건 안 되죠. 지금 당장 신고할 겁니다.”우성환은 너무 화가 나서 곧바로 전화를 꺼내 신고하려 했다.그러나 조재찬의 부하가 더 빨랐다. 그는 우성환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앗았다.“난 고양의 조씨 일가 조재찬이야. 조씨 일가 가주 들어봤어?”조재찬이 바닥에 주저앉은 우성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우성환은 무척 화가 난 상태였지만 조재찬이라는 이름을 듣자 완전히 넋이 나갔다.너무도 익숙한 이름이었기 때문이다.우성환은 조재찬이 왜 갑자기 서울로 왔는지 알지 못했다.“얼른 주치의 불러와!”조재찬이 넋을 놓고 있는 우성환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정신을 차린 우성환은 서둘러 병실에서 나가 조규범의 주치의를 불러왔다.주치의는 그곳에 도착해서 조심스럽게 설명했다.“조재찬 씨, 조재찬 씨 아들은 다른 사람에게 맞아서 분쇄성 골절이 되어 이어 붙일 수가 없고, 강선 고정만 할 수 있어요. 앞으로 걸을 때는 지팡이에 의지해야 합니다.”“젠장!”조재찬은 순간 분노하여 주치의의 뺨을 힘껏 때렸다.“난 내 아들이 정상인처럼 걷기를 바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 집안 사람들 모두 장애인이 될 줄 알아!”조재찬에게 겁을 먹은 주치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애원했다.“조재찬 씨, 제게는 정말 방법이 없습니다. 아드님 데리고 전라도 대병원으로 가보세요. 아니면 경성으로 가보시든가요. 그런 곳의 의사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원장 우성환이 서둘러 말했다.“조재찬 씨, 주치의는 정말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아드님 다리를 치료했을 거예요.”우성환은 갑자기 진서준이 떠올랐다.“참, 우리 병원에 신의님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이라면 아드님 다리를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그러면 얼른 연락하지 않고 뭐 해?”조재찬이 우성환을 사납게 노려봤다.“지금, 지금 당장 전화 걸겠습니다...”우성환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돌려받은 뒤 곧바로
남주성의 가문들은 진 마스터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 알 뿐, 진 마스터의 이름이 진서준이라는 건 몰랐다.조재찬은 상대방의 이름이 진서준이라는 걸 들어도 진 마스터를 떠올리지 못했다.조재찬이 보기에 그렇게 우연한 일이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진 마스터가 어떤 사람인가? 그가 한 여자를 위해 다른 남자와 갈등할 이유가 없었다.지금 조재찬이 가장 두려워하는 점은 바로 진서준이 종사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만약 진서준이 정말로 종사라면 까다로웠다. 그가 데려온 사람 중에는 종사가 한 명도 없고 전부 내공이나 암경 수준으로 종사와는 차이가 컸다.“됐어. 잠시 뒤에 허성태 그 늙은 여우부터 만나고 나서 그 자식에 대해 알아봐야겠어.”조재찬은 이미 생각을 해두었다. 만약 진서준이 정말로 종사라면 그는 허씨 일가로 진서준을 협박할 생각이었다.실력이 아무리 강해도 당장 눈앞의 위험을 해결하는 게 더 중요했다.허씨 일가 부녀 세 명을 전부 납치한다면 진서준이 손을 쓰지 못할 거라고 조재찬은 생각했다.진서준은 짐 정리를 마친 뒤 다시 운전해서 서울 병원으로 향했다.서울 병원 입구에 도착한 진서준은 우성환이 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걸 보았다.“우 원장님, 여기서 기다리지 말고 병실만 알려주시지.”진서준은 우성환의 앞에 차를 세우고 말했다.“진 선생님, 제가 이번에 진 선생님을 해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진서준을 보자 우성환은 무척 후회됐다.“왜 그래요?”진서준은 우성환의 안색이 좋지 않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차에서 내리시면 얘기해요.”우성환은 한숨을 쉬었다.진서준은 곧바로 차를 병원 주차장에 세워둔 뒤 차에서 내렸다.우성환은 진서준을 데리고 외진 곳으로 간 뒤 말했다.“진 선생님, 잠시 뒤에 진 선생님께서 봐야 할 환자는 보통 신분이 아니에요. 전라도 사람이에요.”“전라도 사람이 왜 여기 병원에 왔대요?”진서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일반적으로 돈 많은 사람은 큰 도시로 가서 병을 본다. 큰 도시에는
“그러네요, 부시장님이 계셨네요!”우성환은 눈앞이 환해졌다.“가요. 그 전라도에서 온 특별한 환자를 보러 가죠.”진서준이 덤덤히 말했다.우성환이 앞에서 길을 안내하여 진서준을 데리고 조규범이 있는 병실에 도착했다.“제가 문을 두드릴게요.”우성환은 노크했고 들어오라는 목소리를 들은 뒤에야 문을 열고 들어갔다.“조재찬 씨, 신의님께서 오셨습니다.”조재찬은 고개를 돌려 병실 문을 바라봤다. 청년이 온 건 본 그는 순간 화가 치밀어올랐다.“병원 원장 하기 싫어? 어디서 젊은이를 데려와서 날 속이려고 해?”진서준은 병실 입구에 서서 침대 위에 누워있던 조규범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전라도 사람이 서울 병원을 찾은 이유가 있었다. 그 환자는 다름 아닌 조규범이었다.조규범도 당황했다. 그는 자신의 다리를 치료해 주러 온 사람이 진서준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아버지, 제 다리를 부러뜨린 놈이 바로 저놈이에요. 경찬 아저씨도 저놈이 때려서 죽었어요!”정신을 차린 조규범은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조재찬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이게 무슨 상황일까? 제 발로 찾아온 것일까?“우 원장님, 일단 나가보세요. 남은 건 제게 맡기시면 돼요.”진서준은 우성환을 향해 싱긋 웃으면서 병실에서 나가보라고 했다.병실을 나선 우성환은 진서준의 안전이 걱정되어 서둘러 서정훈의 병실로 향했다.그는 서정훈에게 이 일을 처리해달라고 할 생각이었다.병실 안에서 조재찬이 입을 떼기도 전에 그의 부하들이 진서준을 둘러쌌다.원수를 보게 되자 조규범은 당장이라도 진서준의 피를 마시고 그의 살을 뜯어 먹고 싶었다.“진서준, 죽으려고 제 발로 찾아올 줄은 정말 몰랐어.”조규범이 차갑게 웃으며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죽으려고 제 발로 찾아왔다고?”진서준은 같잖다는 표정으로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같잖다는 듯 말했다.“겨우 이런 쓰레기들을 데려와서 그딴 말을 하는 거야?”진서준의 모욕을 무인들은 참기 힘들었다.무인으로서 다들 자부심이 있었기에 진서준처럼 젊은
조재찬의 내키지 않아 하는 모습에 진서준은 그가 복수를 원한다는 걸 알았다.그러나 조재찬은 참을성이 있었다. 그의 아들보다는 훨씬 나았다.“아버지, 왜 그렇게 두려워해요? 사람을 이렇게나 많이 데려왔는데 저 자식 한 명 못 해치우겠어요?”조규범은 진 마스터를 몰랐다. 그는 매일 술을 마시고 놀기만 했지, 무도계에 대해서, 남주성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조규범의 말을 들은 조재찬은 그의 뺨을 두 대 때리고 싶었다.어떻게 저런 망언을 하는 걸까?진서준은 조규범을 힐끗 보더니 번뜩이는 눈빛으로 말했다.“말이 너무 많네. 뺨을 때려.”조재찬은 이를 악물고 조규범의 곁으로 걸어가서 그의 뺨을 때렸다.짝...뺨 맞는 소리가 병실 안에 울려 퍼졌다. 엄청난 소리에 사람들은 겁을 먹어서 감히 숨조차 쉬지 못했다.진서준이 덤덤히 말했다.“멈추란 말은 안 했는데.”조재찬은 명령에 따라야만 했기에 계속해 조규범의 뺨을 때렸다.조규범이 뺨을 열 몇 대 맞은 뒤에야 진서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됐어.”조규범의 얼굴은 퉁퉁 부었다. 마치 붉게 부어오른 돼지머리처럼 아주 흉측했다.그 점만 봐도 조재찬이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조재찬은 이렇게 세게 때릴 생각은 없었지만, 세게 때리지 않아서 진서준이 언짢아한다면 절대 뺨을 때리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알아. 내게 복수하고 싶겠지. 난 언제든 환영해. 하지만 내 가족에게 손대지는 마. 허씨 일가에도 손대서는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조씨 일가를 역사로 만들어줄 줄 알아.”진서준이 조재찬을 바라보면서 차갑게 경고했다.“내가 어떻게 감히 그러겠어. 내 아들이 이렇게 된 건 전부 얘가 자초한 일인데...”조재찬은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자신의 증오를 진서준에게 들킬까 봐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진서준은 차갑게 웃었다.“못 그런다고? 내일 난 서울을 떠날 거야. 복수하고 싶다면 사람을 시켜서 날 죽여보든
서정훈은 말을 마친 뒤 진서준과 함께 병실을 나섰다.조재찬은 진서준이 서정훈과 아는 사이일 줄은 몰랐다. 그는 정부 쪽 사람을 이용해 진서준의 성질을 긁을 생각이었지만 지금 보니 그것도 녹록지 않을 듯했다.“당장 규범이를 데리고 서울을 떠나야겠어. 전라도로 돌아가서 더욱 대단한 의사를 찾아 네 다리를 치료해야겠어!”조재찬의 부하는 곧바로 조규범을 들어서 차에 태웠다.차 안, 조재찬은 마음 아픈 얼굴로 잔뜩 부은 아들의 얼굴을 보았다. “내가 아까 널 때려서 나한테 화가 난 거냐?”조재찬이 물었다.조규범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원망스러운 눈빛이 모든 걸 말해줬다.조재찬은 한숨을 쉬었다.“나도 널 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널 때리지 않으면 네가 오늘 살아남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어. 진서준이라는 놈, 전에 남주성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진 마스터야. 권해철도 그의 상대가 안 돼. 심지어 권해철을 이긴 뒤에는 혈운 조직 종사 한 명을 죽였어. 그렇게 무시무시한 사람은 네 외할아버지 집안의 무인을 불러와 상대해야 해.”진서준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사람인지 말해주자 조규범은 화가 많이 풀렸다.“아버지, 꼭 절 위해 복수해 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평생 괴로울 것 같아요.”조규범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알겠어.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조재찬이 한숨을 쉬었다.지금 그의 목숨은 진서준의 손에 달려 있다.비록 조금 전 진서준은 그의 가족에게만 손을 쓰지 않으면 조재찬을 죽이지 않겠다고 했다.조재찬도 죽는 건 두려웠다. 그는 겨우 40대 중년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진 선생님, 조씨 일가와는 어쩌다가 원한이 생긴 겁니까?”서정훈이 궁금한 듯 물었다.조금 전 우성환은 서정훈을 찾아가서 진서준과 조재찬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사실을 얘기했고, 서정훈은 곧바로 진서준을 찾아갔다.조씨 일가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서정훈은 잘 알고 있었다.만약 조씨 일가가 진서준에게 복수하려 한다면 서정훈 혼자 힘으로는 진서준을 지킬
“이장로님, 부탁은 했지만 이놈이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방금 내가 이놈을 존중하지 않았다며 트집을 잡더군요.”은청준은 여전히 진서준에게 책임을 떠넘겼다.하지만 이장로는 은청준을 잘 알고 있었다.이장로는 은청준이 거만한 태도로 행패를 부려서 진서준이 대답하지 않은 거라고 추측했다.“은청준,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장로는 살기가 섞인 표정으로 최종 통보를 내렸다.그 말을 듣자 은청준은 순간 멈칫하며 마음속에서 불만이 피어올랐다.“제가 방금 말투가 좀 거칠긴 했지만 이놈의 태도도 별로였습니다. 심지어 주동적으로 나가서 나랑 한 판 붙자고 하더군요.”은청준은 여전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일부 책임을 진서준에게 떠넘기고 있었다.“은청준, 이젠 하다 하다 장로인 나까지 속일 거야?”이장로는 분노를 터뜨렸다.“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지금 당장 김평안 씨에게 사과해!”은청준은 얼굴이 굳어졌고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사과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우리 후배를 치료할 수 없다면 어떡하죠? 그럼 내가 당한 망신을 이 사람에게 그대로 돌려줘도 됩니까?”잠자코 지켜보던 진서준이 손을 들어 올리며 끼어들었다.“부탁이고 나발이고 그냥 없던 일로 해. 내가 뭐 하늘의 신이라도 돼? 난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만병을 고치는 능력도 없어.”이장로는 진서준이 은청준을 일부러 괴롭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은청준이 무슨 말을 하던 진서준은 반대로 대답하며 그를 괴롭히는 중이었다.물론 은청준을 괴롭히는 건 조금 전에 당했던 말도 안 되는 행패에 대한 복수였다.“김평안 씨, 걱정 마세요. 설령 슬기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더라도 이 자식이 김평안 씨와 따지지 않도록 약속하겠습니다.”이장로가 진심을 담아 진서준과 약속하자 진서준은 이장로를 흘끗 보고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말한 대로 하길 바랍니다.”“얼른 사과 안 해?
“그럼 그 여자를 구하고 싶은 사람에게 맡겨.”진서준은 이 말을 끝으로 바로 문을 닫았다.그 행동에 은청준 일행은 분노가 치솟았다.“당장 문 열어! 안 열면 후회할 줄 알아!”은청준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은청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문이 다시 열렸다.진서준은 팔짱을 끼고 차가운 눈빛으로 은청준을 바라봤다.“너희가 어떤 불손한 짓을 하는지 한번 보자. 여기는 유씨 가문이지 너희 곤륜이 아니야. 너희가 멋대로 막 날뛸 수 있을 것 같아?”“유씨 가문이 뭐 어때? 사람 구하라고 하면 고분고분 구하기나 해. 이제 우리 종주님이 책임을 묻는다면 유씨 가문 가주라도 감당 못 할 거야.”은청준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진서준과 눈을 맞추었다.은청준의 배후에는 곤륜이 있었기에 하찮은 서남 유씨 가문을 은청준이 공손한 태도로 대할 수 없었다.게다가 은청준은 경성 은씨 가문의 사람이기도 했다.어느 쪽 신분이든 모두 유씨 가문보다는 훨씬 더 고귀했기에 당연히 유씨 가문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반면, 진서준의 신분은 단지 유씨 가문의 하찮은 경호원일 뿐이었다.은청준의 고함에 유기명이 놀라 달려왔다.“무슨 일이죠?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유기명이 급하게 소리 지르며 다가왔다.유기명은 진서준과 곤륜 사람들이 싸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왜냐하면 두 쪽 다 유기명이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가주님, 저는 이 집의 경호원에게 후배의 병을 부탁하려고 왔는데 이놈이 자존심을 세우며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네요.”방귀 낀 놈이 화낸다고 은청준은 먼저 이번 소란의 모든 책임을 진서준에게 떠넘겼다.그 말에 진서준은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곤륜에서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는 이렇게 고함을 지르라고 배웠어?”은청준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처음에는 좋게 좋게 말했잖아? 네가 괜한 자존심을 세우며 자초한 일이지.”“됐어요, 다들 그만합시다.”유기명이 끼어들며 중재했다.“은청준 씨가 직접 와서 모시는 걸 보면 조 아가씨가
이장로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참지 못하고 욕을 날렸다.“젠장!”가장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상황이 결국 발생했다.“이장로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신수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내공을 써서 슬기 체내 차가운 기운을 빨아낼 수밖에 없어.”이장로가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이 방법은 전에 곤륜산에서도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내공을 많이 소모하는 방식이었다.다행히도 그들 곤륜의 장로들과 종주는 내공이 꽤 깊었다.그렇지 않으면 슬기 목에 걸린 그 옥패 하나만으로는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저택에 이장로 하나만 있는지라 이 방법을 쓰는 게 별로 자신이 없었다.“이제 운에 맡길 수밖에 없어.”이장로는 이를 악물고 바닥에 앉아 두 손을 펼쳐 선천강기를 모은 후, 조슬기의 옆에 놓고 조슬기 체내 한독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그러나 막 시작하자마자 이장로의 얼굴은 빨려 나온 한독에 얼어붙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이 차가운 기운은 곤륜산이 내뿜는 기운보다 몇 배나 더 차가워 깊은 내공을 자랑하는 이장로조차 견디기 힘들어했다.그러니 지금 조슬기 같은 연약한 여자가 겪는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1분이 지나자마자 이장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즉시 한독 제거를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안 되겠어.”이장로는 바로 일어나서 강기로 흡입된 한독을 체외로 밀어냈고 작은 얼음 조각 몇 개가 이내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차가운 기운이 얼음처럼 결빙된 것이다.조슬기의 상태는 이제 조금도 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한 상태였다.“이장로님, 그 건방진 경호원을 한번 써보는 건 어떨까요?”은청준의 제안에 신수란은 순간 당황했다.“너 그 경호원이 치료하는 걸 결사코 반대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냐?”그러자 은청준은 천천히 자기 계획을 밝혔다.“우리 후배가 지금 위독한 상태인데 이제는 그놈에게 맡길 수밖에 없잖아. 그놈이 우리 후배를 기적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아무 문제 없이 이
은청준은 조금 짜증이 났다.유기명 딸이 이해 못 한다고 쳐도 유씨 가문 가주인 사람이 상황을 파악할 줄 모르다니, 너무나 어이없었다.경호원이 사람을 치료하게 허락하는 건 금시초문이었다.“가주님, 지금 하신 말, 설마 진심입니까?”은청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이장로도 미간을 찌푸리며 심기가 불편한 티를 냈다.“제 목숨은 바로 김평안 씨가 구해준 겁니다. 그러니 김평안 씨 의술을 믿지 않을 수 없죠.”유기명은 곤륜 사람들의 표정에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가주님이 믿지만 우리는 전혀 믿을 수 없습니다.”은청준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들은 절대 진서준이 나서서 치료하게 놔둘 수 없었다.조슬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장로도 엄중한 처벌을 받을 터였다.현재로서는 성약당 장로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정 못 믿겠다면 저도 방법이 없네요. 조 아가씨가 진짜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건 다 당신들 책임일 겁니다.”유기명은 말을 끝내고 손을 휘저으며 나갔다.이장로의 표정도 급격히 어두워졌다.“너희는 여기서 슬기를 지켜.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나에게 알려.”이장로도 말을 마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은청준은 유기명의 말에 냉소를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하룻밤뿐인데, 하룻밤 동안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있나?”“너희 남자들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얼른 다 나가!”신수란은 모두를 밖으로 내쫓았고 혼자서 조슬기 곁을 지켰다.진서준이 나오자 유기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동했고 유기명이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 조 아가씨 병을 치료할 방법이 있어?”“저 여자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체내에 찬 한독이 너무 많아서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하려면 하늘의 신이 내려와야 할 겁니다.”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그럼 넌 어떻게 생각해? 오늘 밤 조 아가씨 병이 악화할 확률이 높을 것 같아?”유기명이 다시 물었다.유기명은 조슬기에게 자기 집에서
그 말을 듣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곤륜 문주의 딸을 감히 죽이려고 하다니, 대체 어느 미친놈이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꾸민 거지?“두목은 장강훈이라는 놈인데 서남 지역에서 악명 높은 악당이에요.”신수란이 한마디 더 보탰다.“뭐라고요? 그놈을 만났다고요?”유기명이 깜짝 놀랐다.“아는 사람이에요?”신수란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유기명을 쳐다봤다.“들어본 적은 있죠. 얼마 전 내 동생 유기태가 국안부에서 그놈을 추적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근데 이놈이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행방이 오리무중이라 찾기가 어려웠죠.”유기명은 신수란을 보며 물었다.“그래서 아가씨들은 어떻게 그놈 손에서 빠져나온 거죠?”신수란은 순간 머뭇거리며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누군가 우리를 구해줬어요.”“네? 누가 아가씨를 구한 거죠? 내가 알기로 장강훈은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서남에서 그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유기명이 흥미를 보였다.서남 무도계의 강자들은 유기명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대다수가 유씨 가문에 초빙되어 가문의 귀빈으로 섬기고 있고 거절한 이들은 전부 세상과 연을 끊은 은둔 고수뿐이었다.설마 유기명이 모르는 강자가 더 있다는 건가?신수란이 곧 이름을 밝히려 하자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누가 됐든 간에 그 강도가 죽었다면 된 거죠.”갑작스러운 개입에 신수란은 기분이 언짢아졌다.유기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흘끗 쳐다보고는 진서준의 말투를 곱씹으며 속으로 추측했다.이 여자들을 구한 건 진서준이 틀림없을 것이다.“이장로님, 그놈들은 단순히 아가씨를 납치하려 했을 뿐,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어요.”신수란이 상황을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그렇다면 그놈들 뒤에 배후 세력이 있다는 거겠군.”이장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설상가상으로 슬기가 이번에 우리랑 함께 하산한 걸 아는 사람은 종문 내부 제자들뿐이야. 그런데 곤륜에서 내려오자마자 그 소식이 그놈들 귀에 들어갔다고? 그렇다면..
이때의 조슬기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고 입술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조금만 가까이 가도 조슬기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다.신수란은 조슬기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바로 옆방으로 달려가 따뜻한 물로 자기 체온을 되찾으려 했다.조슬기를 업고 오는 내내 신수란 또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조슬기의 체온은 거의 0도에 가까웠고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고통에 신음하는 조슬기를 보며 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내가 일단 치료할게. 성약당 장로가 도착하려면 최소 내일 아침은 되어야 해.”“네가 치료한다고? 경호원 주제에 뭘 안다고 사람을 살린다고 지껄여? 여기서 방해하지 말고 썩 꺼져. 네가 뭔데 이렇게 나대?”은청준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누가 경호원이라고 해서 사람을 못 구한다고 했죠?”유정이 즉각 반박했다.은청준이 지속적으로 진서준을 물고 늘어지는 모습이 영 거슬렸는데 이제는 대놓고 모욕까지 하니 유정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유 아가씨, 경호원이 사람을 못 구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전 그냥 저 사람이 자격이 없다고 했을 뿐입니다.”은청준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억누르며 말했다.유정이 유 가주의 딸만 아니었다면 유정에게 욕설을 퍼부었을지도 모른다.아까 진서준과 대련하려고 할 때에도 유정 때문에 망신당했는데 지금은 또 저 하찮은 경호원 따위를 위해 유정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니, 이러다간 정말 곤륜 차세대 천재 일인자인 자기 체면이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다.유씨 가문의 경호원이 자기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라니 기막힌 일이었다.“김평안 오빠는 우리 유씨 가문을 여러 번 구한 의술이 뛰어난 분입니다. 우리 아버지 목숨도 이분이 살리셨죠. 그런 분이 왜 자격이 없다는 거죠?”유정은 전혀 기죽지 않고 은청준과 눈을 맞추며 쏘아붙였다.은청준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목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유 아가씨, 아가씨는 제 후배 신분을 아나요? 제 후배는 우리 종문 문주의 따님입니다.
하지만 두 검의 차이는 누가 봐도 너무나도 컸고 이건 진서준에게 손해 보는 장사였다.“이봐요, 은청준 씨, 곤륜 제자로서 이런 요구를 하는 건 곤륜 얼굴에 먹칠하는 게 아닌가요?”유정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놓고 면박을 줬다.은청준도 유정이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는지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유 아가씨, 그 말은 좀 심한 거 아닌가요? 제 검도 희귀한 명검 중 하나입니다.”은청준은 굳은 얼굴로 즉시 반박했다.“상관없어, 네가 원하는 대로 하지.”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좋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바로 시작하자.”은청준은 진서준의 말에 바로 반응하며 유정이 더 이상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이 참선검은 반드시 자기 손에 넣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규칙은 간단해. 검이 먼저 상대의 몸에 닿는 쪽이 승리야, 어때?”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가리는 대련이었다.“문제 없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막 대련이 시작되려던 그 순간, 갑자기 집사가 허겁지겁 뛰어왔다.“가주님! 조슬기 아가씨의 소식을 받았습니다!”“뭐라고? 아가씨가 어디 있어?”유기명이 즉시 반응하자 이장로가 손을 내저었다.“이 대련은 일단 여기까지 하고 먼저 슬기부터 찾자.”그 말을 듣자 은청준의 얼굴이 아쉬움으로 일그러졌지만 이장로의 명령을 어길 수도 없었다.“김평안, 그 검 잘 보관해 둬라. 내가 반드시 가져갈 거니까.”은청준은 검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리를 떠났다.“조슬기 아가씨가 이미 금도에 도착해서 우리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즉시 날 거기로 데려가 주세요.”이장로가 급히 말하자 유기명이 서둘러 제안했다.“이장로님, 제가 사람을 보내 아가씨를 모셔 오겠습니다. 여기서 쉬시는 게 어떠신지요?”“아닙니다,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하겠습니다.”이장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거절했다.조슬기가 과연 무사한지 이장로는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알겠습니다. 이봐, 즉시 이장로님을 모시고 출발해.”
식사도 아직 하지 않았는데 분위기는 이미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유정은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고 그녀의 시선은 쭉 진서준에게 머물렀다.진서준이 이따가 대련 중에 다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유씨 가문에 머무르는 동안, 유정은 이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예를 들면 곤륜을 비롯한 4대 은세 종문에 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가장 오래 유지되어 온 은세 세력이었다.심지어 경성의 4대 가문조차도 이 4대 종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게다가 종문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은 천재였다.은청준이 곤륜의 차세대 중에서도 뛰어난 인재로 손꼽힌다면 그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 대단한 실력을 갖췄을 가능성이 컸다.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만약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반면 진서준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고 전혀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한 모습이었다.진서준의 여유로운 태도에 은청준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흥, 대련이 시작되면 네놈이 나와의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깨닫게 될 거야.’은청준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저녁 식사 내내 유기명과 이장로만 가끔 대화를 나눴다.곧 식사가 끝나자 곤륜의 다른 제자들도 소식을 듣고 하나둘씩 몰려왔다.다들 유씨 가문 저택 뒤편의 넓은 공터에 모여 구경하기 시작했다.“저 녀석 미친 거 아냐? 감히 은 선배와 대련하겠다고? 살고 싶지 않은 건가?”“은 선배는 이미 사급 대종사야. 선배의 실력은 끔찍할 정도로 강해. 웬만한 사람은 상대도 안 되지.”“내기나 해볼까? 저 자식이 선배의 검을 몇 번이나 막아낼 수 있을지?”“난 한 방도 못 버틴다고 봐. 선배는 이미 검의를 깨우쳤잖아.”곤륜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진서준을 과소평가했다.다들 은청준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또래 중에서 아무도 은청준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었다.반면, 진서준은 겉보기에는 40대로 보였지만 전혀 강자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이런 사람이 실력자라고 한다
“김평안 씨는 내가 엄청난 공을 들여서 모셔 온 분입니다.”유기명이 급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진서준을 자랑하기 시작했다.“겉보기엔 40대 초반처럼 보이지만, 그 실력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어마어마하다고? 그럼 나랑 한번 붙어볼래?”은청준이 비웃으며 말했다.은청준은 스물여섯 살에 이미 사급 대종사가 되었는데 반면 이 경호원은 체내에 강기가 거의 없었다.아무래도 겨우 종사의 문턱을 밟은 무인인 것 같은데 이런 쓰레기가 세속에서는 강자로 불리는 건가?유기명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은청준 씨와는 비교할 수 없죠. 하지만 김평안 씨 검술은 누구나 다 알아주는 실력입니다.”“마침 나도 검술이 특기인데, 한 번 겨뤄볼까?”은청준이 도발적인 눈빛을 보냈다.“청준아,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무도는 남과 다투라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이장로가 차분하게 말하자 은청준은 곧바로 태도를 고쳐잡고 공손하게 말했다.“이장로님, 저는 그냥 세속 무인과 가볍게 한 수 겨뤄볼 생각이었습니다.”이장로는 은청준을 흘긋 보았으나 그의 속마음을 굳이 들춰내지는 않았다.은청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야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같은 종문 사람이니 체면은 세워줘야 했다.“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진서준이 다시 강조하자 은청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쏘아봤다.이 녀석 왜 이렇게 말이 많지? 혹시 정신 상태가 이상한 건가?“은범은 내 사촌 동생이야. 네가 그 못난 동생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은청준은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신농산에서 만난 적이 있어.”“뭐라고? 걔가 신농산에 갔다고?”이 말에 은청준은 흥미가 동했다.“그 녀석 실력으로는 신농산 테스트를 통과하기 힘들 텐데?”은청준은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은범이 어떤 인물인지 은청준은 잘 알고 있었다.애매한 실력과 어중간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은범이 은씨 가문에서 빛을 볼 일은 없었다.은청준과 은범의 격차는 눈에 보일 정도로 컸다.“그 녀석은 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