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은 서울 병원에서 20여 명의 독에 당해서 죽을 뻔했던 노인을 구했다. 일정한 정도에서 보면 반 처장의 감투를 구한 셈이었다.반 처장은 그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반재윤은 이제 바쁘지 않았기에 진서준에게 감사의 의미로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동시에 이 기회를 틈타서 젊고 유능한 신의와 좋은 관계가 되고 싶었다.스무여 명의 중독된 노인은 부영권도 치료할 수 없었다.“오빠, 누구 전화야?”진서라가 궁금한 듯 물었다.“서울 병원 원장.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장이 날 만나고 싶은가 봐.”진서준은 여동생에게 숨기는 것 없이 솔직히 말했다.식약처 처장이 진서준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하자 진서라는 매우 놀랐다.처장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면 신분이 대단했다.“오빠, 중요한 일이니까 지체하지 말고 얼른 그 처장님 만나러 가.”진서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진서라는 그의 말을 듣고 혀를 찼다.다른 사람은 처장을 만나고 싶어서 사람을 찾아도 만나기 어려웠다.그런 처장이 먼저 진서준을 만나고 싶다는데 진서준은 처장에게 자신이 밥을 다 먹을때 까지 기다리라고 했다.다른 한편, 우성환은 절대 반재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반재윤이 언짢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반 처장님, 진 선생님께서는 점심에는 볼일이 있으시다고...”“급하지 않아요. 신의께서는 바쁘실 테니 이해합니다.”전화 건너편의 반재윤은 목소리가 아주 평화로웠다. 무게를 잡으려는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장님...”진서준은 차를 호텔 앞에 주차했고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환영합니다!”유일 호텔의 직원은 진서준을 보더니 90도로 허리를 숙였다.이것은 김명진이 특별히 지시한 것이었다. 그는 호텔 직원에게 진서준의 생김새를 기억하게 했다.그리고 진서준을 보면 아주 깍듯이 모시라고 했다.“오빠, 여기 호텔 직원들 너무 깍듯한 거 아냐?”진서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예전에 그녀도 알바를 해본 적이 있는데 고객을 봐
“안녕...”진서라가 뒤에서 나오며 친구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진서라를 보자 남자들의 눈이 반짝였다.고등학교 때 진서라는 소녀여서 몸매도 얼굴도 다 발육된 상태가 아니었다.여자는 크면서 많이 변한다고 하는데 진서라는 이제 연예인만큼 예쁜 여자로 성장했다.많은 미녀를 본 공수철도 흠칫할 정도였다. 그는 진서라가 이렇게 예쁠 줄은 생각지 못했다.그의 눈동자에서 욕망이 스쳐 지나갔다.“그렇게 서 있지 말고 어서 앉아서 밥 먹어요.”공수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적극적으로 진서라를 초대했다.진서준은 공수철을 무시한 뒤 진서라의 손을 잡고 빈자리에 앉았다.진서준이 자신을 무시하자 공수철의 안색이 살짝 달라졌다. 아주 불쾌한 듯했다.최가희는 그 모습을 보더니 화가 난 듯 진서라를 향해 소리쳤다.“진서라, 네 남자 친구가 예의 없어서 너도 예의 없는 거니? 우리 자기가 너한테 말 걸었잖아?”오전에 백화점에 조희선도 있어서 진서준은 최가희를 가만히 내버려뒀다.그런데 최가희가 계속해 선을 넘자 진서준도 더는 그녀를 봐줄 생각이 없었다.게다가 이곳은 진서준의 구역이었다. 이곳에서 사람을 때리더라도 호텔 사람들은 절대 최가희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진서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공수철이 최가희를 혼냈다.“진서라 씨는 내 말을 못 들어서 그런 건데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그 광경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최가희는 억울했다. 그러나 감히 공수철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기에 억울해도 참고 그 화를 진서라에게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진남준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그는 공수철이 진서라에게 딴마음을 품은 걸 눈치챘다.그러나 진서준은 공수철 같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진서라 씨, 전 공수철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식약처에서 일하고 있고 제 아버지는 식약처 차장이에요.”공수철이 우쭐한 얼굴로 말했다.진서라는 그 말을 듣더니 놀란 기색 하나 없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전 식약처 처장이 진서준을 만나고 싶다고 했고, 진서준은 자기가
수준 떨어지는 술은 마시지 않는다고?다들 진서준의 건방진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테이블 위에 놓인 건 한 병에 40만 원인 술로, 일반인들은 1년에도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술이다.다른 건 몰라도 진서라의 친구들은 최가희의 잘 사는 남자 친구 공수철을 제외하면 다들 평범한 직장인이고 한 달에 기껏해야 200만 원 정도 벌었기에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비싼 술을 사기는 어려웠다.공수철은 도발하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자존심을 부려? 그러면 오늘 한 번 어디까지 하나 지켜봐야겠어!’“그러면 어떤 술을 원하는 거죠? 이 호텔이 그리 좋은 호텔은 아니지만 그래도 5성급 호텔이라 당신이 원하는 술은 다 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살 형편이 될는지 모르겠네요.”공수철은 비싼 술을 사는 게 두렵지 않았다. 매년 많은 사람이 그의 아버지에게 전해달라며 그에게 뇌물을 줬기 때문이다.현재 공수철의 카드에는 1억 6천만 원이 있었다.진서준의 차림새를 봤을 때 공수철은 그에게 기껏해야 1,600만 원 정도 있을 거로 생각했다.공수철은 진서준의 생각대로 움직여줬다.진서준에게 어떤 술을 원하냐 물어보다니, 진서준은 당연히 가장 비싼 술을 원했다.“이 호텔에서 가장 비싼 술이 뭐죠?”진서준이 직원을 불러서 물었다.밖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던 직원은 안으로 들어와서 정중하게 대답했다.“고객님, 저희 호텔에서 가장 비싼 술은 한 병에 8,000만 원인 위스키입니다. 현재 호텔에는 단 3병뿐입니다.”직원이 말한 금액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술 한 병에 8,000만 원이라니, 집 반 채는 살 수 있을 듯했다.공수철도 놀랐지만 그는 진서준이 그걸 살 형편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오늘 식사 비용은 공평하게 나눠서 지불하는 것이었기에 십여 명의 사람이 이 술 한 병을 시킨다면 인당 800만 원을 내야 했다.800만 원은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큰돈이었다.“그러면 세 병 다 시킬게요.”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이 세 병 다 달라
“2억 4천만 원짜리 술이니까 수철 씨가 반을 낸다고 해도 나머지를 내려면 이 호텔에서 평생 일해야 할 거야!”다들 조롱 가득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진서준이 대체 어떻게 할 건지 지켜볼 생각이었다.진서라는 진서준이 돈을 내지 못할까 걱정되지는 않았다. 다만 돈이 아까울 뿐이었다.만약 조희선이 이 일을 알게 된다면 돈을 펑펑 쓴다고 진서준을 나무랄 것이다.“진서라, 네 남자 돈도 많고 성격도 있네.”최가희가 싸늘한 시선으로 진서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하지만 행동하기 전에는 생각이란 걸 해야지. 2억 4천만 원이야. 우리 자기가 반을 낸다고 해도 나머지 1억 2천만 원을 어떻게 낼 거야?”공수철이 이때 입을 열었다.“난 이 호텔 사장이랑 아는 사이야. 호텔 사장은 내가 여기서 밥 먹는 걸 알면 나한테 1억 2천을 내라고 하지는 않을 거야.”이렇게 말한 이유는 사실 체면 때문이었다.그는 이 호텔이 김씨 집안 호텔이라는 것만 알지 김명진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공수철의 아버지도 김씨 일가와는 잘 모르는 사이였다.김씨 일가는 예전에 요식업계에 종사한 적이 없었고 유일 호텔이 김씨 집안의 첫 호텔 사업이었다.만약 수익이 높다면 호텔을 몇 개 더 운영할 것이고 수익이 별로라면 1년 뒤 양도할 것이다.“역시 수철 씨는 다르네요. 1억 2천짜리 술을 공짜로 마실 수 있다니!”“우리도 수철 씨처럼 집안이 좋았으면...”“수철 씨, 우리도 한 모금씩 마셔봐도 될까요?”사람들은 곧바로 아부를 떨면서 기대 가득한 얼굴로 공수철을 바라보았다.“좋아요. 여러분 술값은 내가 낼게요!”공수철은 그렇게 말하면서 일부러 진서준과 진서라를 보았다.그는 이렇게 하면 진서라의 이목을 끌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진서라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수철 씨, 정말 대단하네요. 마음이 아주 넓어요. 누구처럼 돈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지 않잖아요!”“하하, 그런 사람은 쓰레기죠. 잠시 뒤에 그도 수철 씨 앞에서 꼬리를 내릴 거예요.”최가희는 코웃음
이런 5성급 호텔에서는 가장 싼 브랜디도 천만 원은 했다.그런데 진서준은 무려 5병을 달라고 했다. 정말 돈이 많은 걸까? 아니면 아예 미쳐버린 걸까?살짝 취기가 올랐던 사람들은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서 놀란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직원이 물었다.“고객님, 어떤 가격대의 브랜디를 원하시나요?”“가장 비싼 거요.”진서준은 평온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 가장 비싼 브랜디는 6천만 원입니다.”말을 마친 뒤 직원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가장 비싼 브랜디가 6천만 원이라는 말에 공수철은 패닉에 빠졌다.다섯 병이면 3억 원이다. 조금 전 마셨던 위스키까지 더하면 식사 한 끼에 4억 원 넘게 쓴 셈이다.“잠깐만요!”공수철이 황급히 직원을 불러세웠다.“왜 그러십니까?”직원이 물었다.공수철은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브랜디 다섯 병을 더 시키려고요? 경고하는데 이 호텔은 김씨 집안에서 운영하는 호텔이에요. 영운 그룹 산업이라고요. 만약 잠시 뒤에 돈을 내지 못한다면...”공수철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진서준이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내가 돈을 낼 수 있든 말든 당신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아니면 당신이 돈이 없는 건가요?”진서준은 냉소했다.“돈이 없다면 그냥 솔직하게 말해요. 아니면 절 형님이라고 부르던가요. 제가 기분이 좋으면 밥을 사줄지도 모르잖아요?”조금 전 공수철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했다.그러나 이번에는 진서준이 똑같은 말을 했다.“왜 자꾸 큰소리를 치는 거죠? 우리 자기가 밥값도 계산하지 못할 것 같아요? 우리 자기를 형님이라고 부른다면 당신 밥값까지 계산해 줄지도 모르죠!”최가희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다른 사람들도 옆에서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그러니까요. 당신이 뭐라고. 수철 씨 아버지는 식약처 차장이라고요!”“수철 씨랑 당신 중에 누가 더 돈이 많겠어요? 수철 씨는 모든 술을 한 병씩 시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거예요!”“돈 없는 사람은 당신이겠죠. 이젠 될 대로 되라 이
진서준이 6천만 원짜리 브랜디를 물처럼 마시자 사람들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진서준은 조금 전 혼자 위스키 한 병을 다 마셨고 지금은 연달아 브랜디 두 병을 마셨다. 그런데도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멀쩡해 보였다.공수철은 이 식사를 진작에 끝내고 싶었다. 잠시 뒤 진서준이 또 몇천만 원짜리 술을 시킬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다들 배불렀죠?”공수철이 물었다.“그럼요. 오늘 위스키를 이렇게 많이 마실 줄은 몰랐어요.”“수철 씨가 아니었다면 난 평생 이렇게 비싼 술을 마셔보지 못했을 거예요.”“누구는 참 주제 파악도 못 하네요. 우리 수철 씨를 이기려 들다니, 사람이 자기 분수를 알아야죠.”진서준은 술을 다 마시고 추태를 부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냉소했다.그는 잠시 뒤 계산할 때가 되어서 그들이 웃을 수 있을지 지켜볼 생각이었다.“서라야, 이만 가자.”진서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쓰러질 뻔했다.다행히 진서준이 잽싸게 진서라의 허리를 안아서 그녀를 바로 세웠다.“내가 부축해 줄게.”진서준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진서라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았지만 정신은 멀쩡했다.그녀는 조금 쑥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미안해, 오빠. 나 때문에 창피했지...”“그게 무슨 말이야? 나 때문에 네가 술을 이렇게 많이 마신 거잖아.”진서준은 진서라를 부축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공수철 등 사람들은 친근해 보이는 진서준과 진서라의 모습을 보고 질투심이 불타올랐다.그들은 진서준을 걷어 차고 자신이 진서라를 부축하고 싶었다.아래층으로 내려와서 공수철이 가장 앞에 섰다.“얼마나 나왔어요?”공수철이 카운터 직원에게 물었다.“총 5억 4,120만 원인데 5억 4천 원만 내시면 됩니다.”직원이 빠르게 대답했다.그런데 진서준이 이렇게 말했다.“안 되죠. 120만 원도 호텔에서 마땅히 받아야 하는 돈이에요.”공수철은 화가 나서 이가 바득바득 가렸다. 그는 이렇게 제정신이 아닌 사람은 처음 봤다.공수철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공수철의 카드 잔액은 2억 원이 채 되지 않았기에 계산할 수가 없었다.그는 진서준이 망신당하는 꼴을 구경하고 호텔 매니저가 나오면 그때 자신의 아버지를 방패막이로 쓸 생각이었다.그런데 상황을 보니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 셈이었다.“수철 씨, 수철 씨...”공수철이 반응이 없자 다들 공수철을 불렀다.“왜 불러요? 내가 귀가 먹은 것도 아니고.”공수철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카드를 꺼냈다.“긁어요.”카운터 직원은 카드를 건네받은 뒤 곧바로 긁었다.삑 소리가 들리자 공수철은 가슴이 찢기는 것만 같았다.“고객님, 카드에 1억 5천만 원밖에 없습니다.”직원은 공수철에게 카드를 돌려주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공수철은 곧바로 자신의 모든 카드를 꺼냈다.그러나 직원이 모든 카드를 긁었음에도 여전히 1억 2천만 원이 부족했다.최가희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자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공수철을 바라봤다.식약처 차장의 아들이 2억 6천만 원도 없다니.진서준은 허둥지둥하는 공수철을 바라보면서 웃더니 진서라를 데리고 로비의 소파로 걸어가서 앉아 구경했다.호텔 경비원은 문을 지키고 있었다. 공수철 일행이 도망칠까 봐서 말이다.“자기야, 설마 돈이 없는 건 아니지?”최가희가 물었다.“뭔 헛소리야? 내가 돈이 없을 리가 있겠어? 기다려, 전화 한 통 할 테니까!”공수철은 휴대전화를 꺼내 옆으로 걸어가서 자기 친구들에게 전화했다.공수철이 돈을 빌려달라고 하기 전까지 다들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그를 대했다.그러나 그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자마자 다들 태도가 180도 달라져서 우물쭈물했다.어떤 이들은 돈을 빌려줄 수 있다고 했지만 겨우 10만 원 정도였다.“X발, 이 빌어먹을 놈들!”공수철은 화가 나서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특히 진서준의 조롱 가득한 눈빛을 마주했을 때, 그는 자신이 놀아났음을 깨달았다.진서준은 밥을 먹어도 돈을 내지 않아도 됐기에 일부러 가장 비싼 술을 시켜 그를 호구로 만든 것이다.공수철은 어
공수철은 매니저가 자기 아버지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자 으름장을 놓았다.“그래요, 당신 후회할 거예요!”말을 마친 뒤 공수철은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유 팀장님, 사람 데리고 유일 호텔로 오세요. 여기 호텔에 문제가 있어요!”공수철이 거짓말하는 것 같지 않자 매니저는 잠깐 망설이다가 진서준에게로 다가갔다.“진서준 씨, 저 사람이 자기가 식약처 차장 아들이라고 하네요. 조금 전에 식약처에 연락한 것 같은데...”“괜찮아요. 나도 식약처에 인맥이 있거든요.”진서준은 웃었다.그의 태연한 모습에 매니저도 조급해하지 않았다.김명진은 매니저에게 진서준이 김씨 일가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라고 했었다.“자기야, 어때?”공수철이 전화를 들고 돌아오자 최가희가 서둘러 물었다.다른 사람들도 초조한 얼굴로 공수철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자기들이 돈을 내게 될까 봐서 말이다.“문제없어. 내가 방금 식약처 사람에게 연락했거든. 잠시 뒤에 여기 조사 나올 거야.”공수철은 차갑게 웃으며 도발하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힐끗 보았다.공수철의 도발에도 진서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곧 식약처에서 조사 나온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여기 책임자가 누구죠?”선두에 선 중년 남성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매니저는 곧바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그 남자가 공수철이 부른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제가 호텔 매니저입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여기 호텔 위상 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그리고 가격도 시장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중년 남ㅅ자가 차갑게 말했다.공수철이 웃는 얼굴로 다가갔다.“유 팀장님, 제가 제보한 겁니다. 여기는 술값이 천정부지로 비싼 데다가 몇 병은 가짜 술인 듯했어요.”유지혁은 공수철을 보자 그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공수철이 정말로 식약처 사람을 알고 있자 다들 한숨 돌렸다.“말도 안 됩니다. 저희 호텔의 음식과 술값은 일반 5성급 호텔 수준이에요. 그리고 가짜 술이
이런 상황은 처음인지라 성동석도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그때, 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성 신의님의 귀문 13침은 확실히 대단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단지 표면적인 것만 해결한 겁니다.”진서준의 말에 가뜩이나 화가 난 사람들의 불만이 전부 터져 나왔다.“무슨 개소리야! 네가 성 신의님께 훈수 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진짜 주제 파악이 안 되네. 그렇게 재간 있으면 얼른 나와 치료해 봐. 뒤에 비겁하게 숨어 훈수나 두지 말고.”“성 신의님은 한의계에서 거물로 불리는 사람이야. 네가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자격이 있을 것 같아?”사람들의 공격 폭탄을 받았지만 진서준은 변함없는 표정을 유지했다.“안 믿으면 나도 어쩔 수 없어.”진서준은 더 이상 말을 아꼈다.그때, 신수란이 갑자기 놀라며 외쳤다.“안 돼! 아가씨 맥박이 사라졌어!”모두가 다시 조슬기를 보며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성 신의님, 서둘러 응급조치를 해 주세요. 우리 슬기를 살려내야죠.”이장로도 초조한 마음에 급히 부탁했다.성동석은 곧바로 침을 놓으며 조슬기의 체내 한기를 끌어내 맥박을 안정시키려고 했다.하지만 침을 놓으면 놓을수록 점점 상태가 악화했다.아까 성동석의 침이 조슬기의 체내에 쌓여있던 한기를 완전히 폭발시켰기 때문이었다.지금 조슬기는 남극의 빙산처럼 차가워졌고 그녀의 체내에서 나오는 한기를 막을 방법은 전혀 없었다.“죄송한데 이 병은 내가 치료할 수 없네요.”그 말을 듣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누구도 이 신의가 치료를 포기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성 신의마저 치료할 수 없는 이 병을 과연 치료할 수 있는 신의가 존재할까?“성 신의님. 제발 더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우리 슬기는 이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슬기는 우리 종주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따님입니다.”이장로는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성동석은 한숨을 쉬고는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하지만 저는 한 사람을 알고
이 한마디에 이장로의 눈이 번뜩였다.“성 신의님이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종주님과 우리 장로들도 사실상 수년간 슬기 체내의 한기를 흡수해 왔습니다.”성동석은 수염을 쓸어내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한기는 이미 환자의 몸에 쌓여 한독이 되었습니다. 이제 내가 귀문 13침을 사용해서 환자 체내에 쌓인 한독을 제거하면 환자는 무사히 깨어날 겁니다.”그 말을 듣자 곤륜의 모든 제자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역시 성 신의님입니다. 오자마자 바로 치료 방법을 제시하다뇨.”“맞아요, 누군가는 입만 살아서 나불대기만 했지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때는 아무것도 못 했잖아요.”누군가가 진서준을 흘끗 보며 비웃었다.이렇게 진서준을 깎아내리자 성동석의 의술이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성 신의님,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지금 바로 침을 놓아 우리 슬기를 구해주세요.”이장로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간곡히 부탁했다.“문제없습니다. 이제 내가 침을 놓아 환자의 한독을 깔끔하게 제거할 겁니다.”말을 마친 성동석은 은침을 꺼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조슬기의 발삼리와 명문 등 13곳의 주요 혈 자리에 침을 놓았다.그 동작은 유려하게 이어졌고 물 마시듯이 자연스러웠다.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전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귀문 13침은 이 세상 99%의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었고 성동석은 평생을 이 침 연구에 바쳤다.그러니 성동석의 귀문 13침에 대한 숙련도는 자연스레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13침이 꽂히는 순간, 다들 조슬기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빠져나오는 모습을 맨눈으로 확인 수 있었다.한기가 나오자 방 안의 온도도 급격히 내려갔고 맨눈으로 볼 수 있는 하얀 차가운 기운이 방 안을 떠다녔다.“성 신의님, 대답합니다. 침을 놓는 순간 신의의 풍모가 물씬 나네요.”“이제 우리 후배는 드디어 깨날 수 있겠어.”“후배가 완치되면 우리도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이장로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역시 신의님입니다. 이 침법은 세상 그 누구도 감히 따라 할 엄두도 못 내
“성 신의라는 세 글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말하는 거야? 개뿔도 모르는 녀석이 나대긴 뭘 나대?”“성 신의님이 구할 수 없으면 뭐 네가 구할 수 있다는 거야?”곤륜 종문 제자들이 즉시 반발하며 진서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뭐라고요? 당신 스승은 누구입니까? 말해 보세요, 혹시 내가 알지도 모르죠.”성동석은 진서준을 쳐다보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성동석은 수십 년 동안 이 바닥을 누볐지만 그동안 그의 의술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그런데 오늘 얼핏 봐도 40대인 남자가 자기 의술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이 나이대의 사람은 성동석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40대 사람은 이 바닥에 몸을 담근 지 10년이 넘었으니 다들 본인이 수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착각하며 의술에 대한 자부심이 넘칠 것이다.하지만 이 사람들은 아직 배워야 할 게 산처럼 많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저 녀석은 거만하기 짝이 없는 무지한 놈일 뿐입니다. 성 신의님, 신경 쓰지 마세요.”은청준은 진서준을 향해 눈을 부릅뜨며 경고했다.“죽고 싶지 않으면 썩 꺼져!”이장로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무슨 배짱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아까 우리가 내린 결정을 두고 그러는 거라면 지금 당장 나가세요.”유기명은 집사가 말한 성약당 장로가 왔다는 소식에 다시 방에서 나왔다.“내일 아침에나 온다고 하지 않았어?”유기명이 집사에게 물었다.“다 우연입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성약당 산 아래로 갔을 때, 마침 막 산에서 내려온 성 신의님을 만났습니다.”집사가 대답했다.성약당에 가려면 산을 오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큰 문제였다.하지만 비행기로 산 아래까지 가면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그렇군.”유기명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대화를 마치고 곧 방에 들어갔다.방에 들어가자마자 유기명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무슨 일이죠?”유기명은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졌다.“가주님, 가주님이 초빙한 이 경호원이 너무 건방지네요
성약당의 장로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은청준은 얼굴에 음산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아가 진서준을 밀쳐냈다.“비켜! 이제 너 같은 쓸모없는 놈은 필요 없어.”진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다시 확인했다.“확실해? 잘 생각해. 나중에 다시 사람을 구해달라고 내게 빌면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것만큼 간단하진 않을 거야.”은청준은 콧방귀를 끼며 차갑게 웃었다.“성약당 장로가 여기 있는데 너 같은 쓰레기가 나설 필요가 있겠어?”성약당의 명성은 대한민국에서 자자했다.그 당시 은청준은 아직 은씨 가문에 있었고 그 후 진서준이 성약당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그 소란 때문에 성약당 장로들이 전부 바뀌었지만 그들의 의술은 여전히 뛰어났고 이전 장로들보다 훨씬 더 비범했다.곤륜의 이장로도 성약당 장로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바로 태도를 바꾸었다.“청준아, 얼른 장로님을 맞이하러 가.”“알겠습니다.”은청준은 서둘러 대답하고 바로 돌아서서 장로를 맞이하러 갔다.“정말 내가 치료할 필요 없겠습니까?”진서준이 이장로를 보며 묻자 이장로가 에둘러 대답했다.“하나는 누구도 모르는 작은 인물,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명성이 자자한 성약당 장로. 김평안 씨라면 어떻게 선택할 겁니까?”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웃어넘겼다.“적어도 난 이 무명의 인물한테 먼저 시도해 보라고 할 겁니다. 그게 적어도 말에 믿음이 없다고 떠들어대는 소리 듣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니까요.”이장로는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이봐요, 한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 어떻게 함부로 시도하게 하겠습니까? 만약 당신 가족이 저렇게 누워 있다면 당신도 아무나 함부로 시도하게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그럼 장로님은 어떻게 내가 사람을 살릴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겁니까?”진서준이 다시 되묻자 이장로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면박을 줬다.“그만하세요. 입 다물고 그냥 한쪽에 서서 구경만 하세요.”진서준은 이장로의 태도를 확인한 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한쪽에 서서 기다렸다.잠시 후, 은청준은 머리가 하얀 노
“이장로님, 부탁은 했지만 이놈이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방금 내가 이놈을 존중하지 않았다며 트집을 잡더군요.”은청준은 여전히 진서준에게 책임을 떠넘겼다.하지만 이장로는 은청준을 잘 알고 있었다.이장로는 은청준이 거만한 태도로 행패를 부려서 진서준이 대답하지 않은 거라고 추측했다.“은청준,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장로는 살기가 섞인 표정으로 최종 통보를 내렸다.그 말을 듣자 은청준은 순간 멈칫하며 마음속에서 불만이 피어올랐다.“제가 방금 말투가 좀 거칠긴 했지만 이놈의 태도도 별로였습니다. 심지어 주동적으로 나가서 나랑 한 판 붙자고 하더군요.”은청준은 여전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일부 책임을 진서준에게 떠넘기고 있었다.“은청준, 이젠 하다 하다 장로인 나까지 속일 거야?”이장로는 분노를 터뜨렸다.“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지금 당장 김평안 씨에게 사과해!”은청준은 얼굴이 굳어졌고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사과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우리 후배를 치료할 수 없다면 어떡하죠? 그럼 내가 당한 망신을 이 사람에게 그대로 돌려줘도 됩니까?”잠자코 지켜보던 진서준이 손을 들어 올리며 끼어들었다.“부탁이고 나발이고 그냥 없던 일로 해. 내가 뭐 하늘의 신이라도 돼? 난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만병을 고치는 능력도 없어.”이장로는 진서준이 은청준을 일부러 괴롭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은청준이 무슨 말을 하던 진서준은 반대로 대답하며 그를 괴롭히는 중이었다.물론 은청준을 괴롭히는 건 조금 전에 당했던 말도 안 되는 행패에 대한 복수였다.“김평안 씨, 걱정 마세요. 설령 슬기의 병을 치료하지 못하더라도 이 자식이 김평안 씨와 따지지 않도록 약속하겠습니다.”이장로가 진심을 담아 진서준과 약속하자 진서준은 이장로를 흘끗 보고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말한 대로 하길 바랍니다.”“얼른 사과 안 해?
“그럼 그 여자를 구하고 싶은 사람에게 맡겨.”진서준은 이 말을 끝으로 바로 문을 닫았다.그 행동에 은청준 일행은 분노가 치솟았다.“당장 문 열어! 안 열면 후회할 줄 알아!”은청준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은청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문이 다시 열렸다.진서준은 팔짱을 끼고 차가운 눈빛으로 은청준을 바라봤다.“너희가 어떤 불손한 짓을 하는지 한번 보자. 여기는 유씨 가문이지 너희 곤륜이 아니야. 너희가 멋대로 막 날뛸 수 있을 것 같아?”“유씨 가문이 뭐 어때? 사람 구하라고 하면 고분고분 구하기나 해. 이제 우리 종주님이 책임을 묻는다면 유씨 가문 가주라도 감당 못 할 거야.”은청준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진서준과 눈을 맞추었다.은청준의 배후에는 곤륜이 있었기에 하찮은 서남 유씨 가문을 은청준이 공손한 태도로 대할 수 없었다.게다가 은청준은 경성 은씨 가문의 사람이기도 했다.어느 쪽 신분이든 모두 유씨 가문보다는 훨씬 더 고귀했기에 당연히 유씨 가문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반면, 진서준의 신분은 단지 유씨 가문의 하찮은 경호원일 뿐이었다.은청준의 고함에 유기명이 놀라 달려왔다.“무슨 일이죠?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유기명이 급하게 소리 지르며 다가왔다.유기명은 진서준과 곤륜 사람들이 싸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왜냐하면 두 쪽 다 유기명이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가주님, 저는 이 집의 경호원에게 후배의 병을 부탁하려고 왔는데 이놈이 자존심을 세우며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네요.”방귀 낀 놈이 화낸다고 은청준은 먼저 이번 소란의 모든 책임을 진서준에게 떠넘겼다.그 말에 진서준은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곤륜에서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는 이렇게 고함을 지르라고 배웠어?”은청준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처음에는 좋게 좋게 말했잖아? 네가 괜한 자존심을 세우며 자초한 일이지.”“됐어요, 다들 그만합시다.”유기명이 끼어들며 중재했다.“은청준 씨가 직접 와서 모시는 걸 보면 조 아가씨가
이장로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참지 못하고 욕을 날렸다.“젠장!”가장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상황이 결국 발생했다.“이장로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신수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내공을 써서 슬기 체내 차가운 기운을 빨아낼 수밖에 없어.”이장로가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이 방법은 전에 곤륜산에서도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내공을 많이 소모하는 방식이었다.다행히도 그들 곤륜의 장로들과 종주는 내공이 꽤 깊었다.그렇지 않으면 슬기 목에 걸린 그 옥패 하나만으로는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저택에 이장로 하나만 있는지라 이 방법을 쓰는 게 별로 자신이 없었다.“이제 운에 맡길 수밖에 없어.”이장로는 이를 악물고 바닥에 앉아 두 손을 펼쳐 선천강기를 모은 후, 조슬기의 옆에 놓고 조슬기 체내 한독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그러나 막 시작하자마자 이장로의 얼굴은 빨려 나온 한독에 얼어붙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이 차가운 기운은 곤륜산이 내뿜는 기운보다 몇 배나 더 차가워 깊은 내공을 자랑하는 이장로조차 견디기 힘들어했다.그러니 지금 조슬기 같은 연약한 여자가 겪는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1분이 지나자마자 이장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즉시 한독 제거를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안 되겠어.”이장로는 바로 일어나서 강기로 흡입된 한독을 체외로 밀어냈고 작은 얼음 조각 몇 개가 이내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차가운 기운이 얼음처럼 결빙된 것이다.조슬기의 상태는 이제 조금도 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한 상태였다.“이장로님, 그 건방진 경호원을 한번 써보는 건 어떨까요?”은청준의 제안에 신수란은 순간 당황했다.“너 그 경호원이 치료하는 걸 결사코 반대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냐?”그러자 은청준은 천천히 자기 계획을 밝혔다.“우리 후배가 지금 위독한 상태인데 이제는 그놈에게 맡길 수밖에 없잖아. 그놈이 우리 후배를 기적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아무 문제 없이 이
은청준은 조금 짜증이 났다.유기명 딸이 이해 못 한다고 쳐도 유씨 가문 가주인 사람이 상황을 파악할 줄 모르다니, 너무나 어이없었다.경호원이 사람을 치료하게 허락하는 건 금시초문이었다.“가주님, 지금 하신 말, 설마 진심입니까?”은청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이장로도 미간을 찌푸리며 심기가 불편한 티를 냈다.“제 목숨은 바로 김평안 씨가 구해준 겁니다. 그러니 김평안 씨 의술을 믿지 않을 수 없죠.”유기명은 곤륜 사람들의 표정에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가주님이 믿지만 우리는 전혀 믿을 수 없습니다.”은청준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들은 절대 진서준이 나서서 치료하게 놔둘 수 없었다.조슬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장로도 엄중한 처벌을 받을 터였다.현재로서는 성약당 장로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만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정 못 믿겠다면 저도 방법이 없네요. 조 아가씨가 진짜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건 다 당신들 책임일 겁니다.”유기명은 말을 끝내고 손을 휘저으며 나갔다.이장로의 표정도 급격히 어두워졌다.“너희는 여기서 슬기를 지켜.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나에게 알려.”이장로도 말을 마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은청준은 유기명의 말에 냉소를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하룻밤뿐인데, 하룻밤 동안 무슨 일이 생길 리가 있나?”“너희 남자들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얼른 다 나가!”신수란은 모두를 밖으로 내쫓았고 혼자서 조슬기 곁을 지켰다.진서준이 나오자 유기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동했고 유기명이 이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 조 아가씨 병을 치료할 방법이 있어?”“저 여자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체내에 찬 한독이 너무 많아서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하려면 하늘의 신이 내려와야 할 겁니다.”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그럼 넌 어떻게 생각해? 오늘 밤 조 아가씨 병이 악화할 확률이 높을 것 같아?”유기명이 다시 물었다.유기명은 조슬기에게 자기 집에서
그 말을 듣자 방 안의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곤륜 문주의 딸을 감히 죽이려고 하다니, 대체 어느 미친놈이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꾸민 거지?“두목은 장강훈이라는 놈인데 서남 지역에서 악명 높은 악당이에요.”신수란이 한마디 더 보탰다.“뭐라고요? 그놈을 만났다고요?”유기명이 깜짝 놀랐다.“아는 사람이에요?”신수란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유기명을 쳐다봤다.“들어본 적은 있죠. 얼마 전 내 동생 유기태가 국안부에서 그놈을 추적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근데 이놈이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행방이 오리무중이라 찾기가 어려웠죠.”유기명은 신수란을 보며 물었다.“그래서 아가씨들은 어떻게 그놈 손에서 빠져나온 거죠?”신수란은 순간 머뭇거리며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누군가 우리를 구해줬어요.”“네? 누가 아가씨를 구한 거죠? 내가 알기로 장강훈은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서남에서 그놈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유기명이 흥미를 보였다.서남 무도계의 강자들은 유기명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대다수가 유씨 가문에 초빙되어 가문의 귀빈으로 섬기고 있고 거절한 이들은 전부 세상과 연을 끊은 은둔 고수뿐이었다.설마 유기명이 모르는 강자가 더 있다는 건가?신수란이 곧 이름을 밝히려 하자 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누가 됐든 간에 그 강도가 죽었다면 된 거죠.”갑작스러운 개입에 신수란은 기분이 언짢아졌다.유기명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흘끗 쳐다보고는 진서준의 말투를 곱씹으며 속으로 추측했다.이 여자들을 구한 건 진서준이 틀림없을 것이다.“이장로님, 그놈들은 단순히 아가씨를 납치하려 했을 뿐,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어요.”신수란이 상황을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그렇다면 그놈들 뒤에 배후 세력이 있다는 거겠군.”이장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설상가상으로 슬기가 이번에 우리랑 함께 하산한 걸 아는 사람은 종문 내부 제자들뿐이야. 그런데 곤륜에서 내려오자마자 그 소식이 그놈들 귀에 들어갔다고? 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