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이지성이 돌아와서 진서준을 만났다고 했을 때부터 이혁진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그래서 어제저녁 미리 문자를 작성해서 예약 발송했다.만약 이튿날 살아남는다면 그 문자를 취소할 생각이었고, 살아남지 못한다면 앞으로 이지성은 혼자 살아가야 했다.이것이 이혁진이 보낸 문자 내용이었다.[혁진아, 네가 이 문자를 보고 있을 때면 난 이미 세상에 없을 거야. 복수할 생각은 하지 말고 셋째 삼촌을 찾으러 가. 가서 평온하게 여생을 살아.]이혁진은 이지성에게 대신 복수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종사마저 진서준을 죽일 수 없다면 진서준의 실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할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이런 상황에서 이지성의 유일한 살길은 셋째 삼촌을 찾아가서 그가 계획해 준 대로 여생을 사는 것이었다.“아버지, 제가 꼭 복수할게요!”이지성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원한 때문에 두 눈이 멀었다.지금 이지성의 머릿속에는 진서준을 죽여 아버지를 위해 복수를 할 생각뿐이었다.이지성이 기차를 타고 고양시에 도착했을 때 이상범은 호텔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네 아버지는? 왜 너 혼자 돌아왔어?”이지성이 혼자 돌아오자 이상범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이지성은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눈물을 떨구지 않으려고 악을 썼다.이상범은 이혁진이 죽었다는 말에 심장이 조여들었다.이혁진은 그의 친형이었다. 예전에 이상범이 안산에서 창업했을 때 이혁진은 여러 차례 그를 도와줬었다.그게 아니었다면 이상범이 그들 가족을 위해 경기도에서 남주성으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죽었다고? 설마 네 아버지 원수가 한 짓이야?”이상범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거예요. 진서준을 제외하면 우리 아버지를 죽일 사람이 없어요.”진서준의 얘기가 나오자 이지성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진서준을 산채로 찢어 죽이고 싶었다.“가자. 일단 여기서 떠나서 어떻게 복수를 해야 할지 더 생각해 보자.”이
탁현수의 제자는 총 5명이었고 우소영은 그중 한 명이었다.우소영의 실력은 5명의 제자 중 중간 수준이었다.“네... 제가 사부님 얼굴에 먹칠을 했습니다.”우소영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상대는 누구였니?”탁현수가 물었다.“일전에 권해철을 이긴 진 마스터입니다. 청년이에요.”우소영은 망설이다가 진서준과 구창욱의 관계를 얘기했다.“사부님, 그 진서준이라는 사람 구창욱 씨 제자입니다...”우소영과 탁현수 모두 구창욱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다. 구창욱이 없었다면 두 사람 모두 지금 같은 성과를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다.“그게 뭐? 내 은인은 구창욱 어르신이지 그 진 마스터가 아니야.”탁현수의 혼탁한 눈동자가 매우 날카로워졌다.“이제 난 한 번만 더 폐관하면 선천 대종사 경지에 이를 수 있어. 폐관을 마치고 나온 뒤에 그 진 마스터를 죽여서 네 복수를 해주마.”탁현수가 대종사 경지에 이를 거라는 말에 우소영은 서둘러 허리를 숙였다.“미리 축하드립니다, 사부님!”“이만 가봐.”탁현수는 눈을 감으며 덤덤히 말했다.“네.”...진서준은 허사연을 위로한 뒤 그녀를 회사로 데려다줬다.차에서 내릴 때 허사연은 진서준의 손을 잡고 말했다.“참, 오늘 아빠가 서준 씨랑 같이 밥 먹고 싶대요. 오늘은 꼭 와야 해요!”장인어른이 같이 밥을 먹자는데 어떻게 거절하겠는가?“문제없어요! 저녁에 시간 맞춰 도착할게요.”진서준이 웃는 얼굴로 장담했다.허사연과 웃는 얼굴로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진서준은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강성철과 도진수에게 이지성의 행방을 알아보라고 했다.진서준이 보기에 이혁진이 혼자서 우소영과 함께 온 이유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이지성은 아직 이혁진의 소식을 모를 것이다. 어쩌면 이지성이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그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강성철과 도진수는 진서준이 내린 임무를 하달받은 뒤 곧바로 그 일을 처리하러 갔다.수천 명의 부하들이 서울의 모든 호텔과 모텔을 뒤져서 이지성을 찾았다. 그렇게 그들은 결
조희선은 비록 싫다고 했지만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아들딸과 함께 놀러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조희선을 안아서 뒷좌석에 앉힌 뒤 그녀의 휠체어를 마이바흐 트렁크에 넣었다. 진서라는 조희선의 곁에 앉았다. 혹시라도 뜻밖의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잘 앉았죠? 저 운전할게요.”진서준이 말했다.차는 평온하게 달렸다. 진서준은 전처럼 빨리 운전하지 않고 아주 천천히 달렸다.조희선은 창문을 통해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봤다.그녀는 비록 매일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가지만 활동 범위가 아파트 안이었다. 아파트를 벗어난 적은 아주 드물었다.진서준은 거울을 통해 조희선의 눈동자에 기쁨과 흥분이 가득 차 있는 걸 보았다. 그는 반드시 어머니의 다리를 치료하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그러려면 권해철 사문에 있는 영골을 반드시 얻어야 했다.30분 뒤, 진서준 가족은 레미안 쇼핑센터에 도착했다.레미안 쇼핑센터는 서울에서 가장 큰 곳은 아니지만 없는 게 없었다.진서준이 굳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조희선이 가격을 보고 너무 비싸서 아무도 사지 못할까 봐 걱정돼서였다.그래서 레미안 쇼핑센터로 온 것이었다. 그럼에도 조희선은 조금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서준아, 여기 아주 호화로운데 물건도 아주 비싸겠지?”“아뇨, 엄마. 저 지금 돈 많아요. 원하시는 거 있으면 말만 하세요.”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이제 돈이 좀 생겼다고 해서 돈을 펑펑 쓰면 안 돼.”조희선이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조희선은 예전에 형편이 어려웠었기에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알고 있었다.“어머니, 그런 생각은 바꿔야 해요. 저는 어머니랑 서라를 위해서 돈을 버는 건데요. 돈이 없으면 벌면 되지만 이런 기쁨과 즐거움을 놓쳐서는 안 돼요!”진서준은 어머니의 생각을 바꿀 셈이었다.돈이란 건 써도 다시 벌면 됐다.지금 진서준은 돈이 부족하지도 않았고, 서울시와 주변 지역의 세가들은 진서준에게 돈을 주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그저 진서준이 받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다.“
“이건 별로예요. 은은 안 좋아요. 오래 끼면 색이 변하잖아요. 이걸로 해요.”진서준은 순금으로 된 팔지를 가리키며 말했다.조희선은 그 팔찌를 힐끗 보았다. 너무 눈이 부셨다.곧이어 가격표를 확인한 그녀는 심장이 철렁했다.무려 5,600만 원이었다.이렇게 많은 돈이라면 혼자서 여생을 살기에 충분했다.“서준아, 이건 너무 비싸. 이렇게 비싼 건 사지 마.”조희선이 다급히 말했다.“우리 엄마 말은 듣지 마시고 저 팔찌 가져다주세요.”진서준은 조희선의 말에 따르지 않고 확고한 태도로 직원에게 부탁했다.직원은 잠깐 망설이다가 한마디 했다.“고객님, 흠집 나지 않게 조심하셔야 해요. 흠집 나면 배상하셔야 해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말 한마디 없이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카드 안에 돈이 얼마 들어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몇십억은 있었다.“흠집 나면 살게요.”진서준이 흔쾌히 말하자 직원도 더는 아무 말 하지 못하고 곧바로 팔찌를 꺼내 진서준에게 건넸다.진서준은 몸을 돌려 그것을 어머니에게 끼워줬다.팔에 5,600만 원짜리 금팔찌를 끼고 있어서 조희선은 손이 떨렸다.그녀는 손을 떨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혹시라도 실수로 팔찌를 떨어뜨린다면 얼마나 배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꽤 예쁘네요!”진서준이 말했다.“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엄마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진서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거로 할게요. 결제 부탁드려요.”진서준은 조금 전 꺼냈던 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직원은 당황했다.“고객님, 더 둘러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진서준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뭘 더 둘러봐야 하나요?”“이벤트 같은 거요. 낡은 거로 새것을 바꾼다든지...”직원은 자신이 티 나지 않는 엄청난 갑부를 만난 건지, 아니면 정신 이상자를 만난 건지 알지 못했다.진서준의 분위기를 봤을 때 직원은 그가 갑부일 거라고 짐작했다.“괜찮아요. 카드 긁으시면 돼요.”진서준은 그런 이벤트를 알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비
진서준은 그 말을 한 사람이 자기를 향해 소리친 것이라고 직감했다.진서준은 그를 무시하고 목걸이를 꺼냈다.“사람 말 못 알아들어요?”조금 전 그 건방진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다.늘씬한 몸매에 예쁘장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자였다.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화가 가득 난 얼굴로 진서준을 향해 다가왔다.진서준은 그제야 몸을 돌려 조금 전 자신더러 멈추라고 한 여자를 바라보았다.“난 사람 말은 알아듣는데 그쪽 말은 못 알아듣겠네.”진서준은 상대방을 힐끗 본 뒤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 말은 곧 그 여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짙은 화장을 한 여자도 그 뜻을 이해했다. 그녀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진서준의 뺨을 때리려 했다.그러나 진서준이 고분고분 맞아줄 리가 없었다. 그는 상대방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비록 난 여자를 때리지는 않지만 선 넘는 사람들은 교육할 의향은 있어.”진서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손에 힘도 더 들어갔다.“아! 손목 아파요. 이거 얼른 놔요!”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진서준을 향해 화를 냈다.“서준아, 싸우지 말고 얼른 손 놔!”조희선은 아들이 다시 감옥에 들어가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서둘러 큰 목소리로 말했다.옆에 있던 진서라도 서둘러 그들을 말리며 진서준을 끌고 갔다.짙은 화장을 한 여자는 진서준에게 잡혔던 자기 손목에 붉은 손자국이 남은 걸 보았다.“빌어먹을, 우리 남편이 오면 아주 단단히 혼내줄 거예요!”짙은 화장을 한 여자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화가 난 얼굴로 진서준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진서라는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눈에 익었다. 그녀의 학창 시절 동창인 듯했다.“최가희?”진서라는 확신 없는 목소리로 상대방의 이름을 불렀다.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최가희는 고개를 돌려 진서라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서로를 자세히 살펴보았고, 최가희는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난 또 누군가 했네! 우리 학교 퀸카 진서라 아냐!”고등학교에 다닐 때 진서라는 청순하고 예쁜 외모로
진서라가 그 형제에게 납치당했을 때, 진서준은 그녀에게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서라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진서라가 말리자 진서준의 몸에서 살기가 사라졌다. 그러나 최가희를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최가희는 크게 숨을 내쉬더니 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두려운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미안해. 오빠 때문에 놀랐겠네.”진서라가 먼저 최가희에게 사과했다.최가희는 진서라가 자신을 모욕한다고 생각해 곧바로 화를 냈다.“뭔 소리야? 내가 언제 네 오빠 때문에 놀랐다고 그래? 난 그냥 갑자기 다른 일이 떠올랐을 뿐이야!”진서라는 멋쩍은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했다.최가희는 진서라의 겁 먹은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목걸이 나한테 넘겨. 그런 비싼 목걸이를 네가 살 수 있겠어?”최가희는 진서를 바라보면서 비아냥거렸다.“당신이 뭔데 당신한테 넘기라는 거야?”진서준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진서라는 몇 번이고 참아줬는데 최가희는 몇 번이고 선을 넘었다.만약 조금 전에 진서라가 막지 않았다면 진서준은 이미 그녀의 뺨을 때렸을 것이다.“당신은 또 뭔데요? 진서라가 만나는 남자 주제에!”최가희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진서라는 최가희가 자신과 진서준의 사이를 오해하자 곧바로 설명했다.“이쪽은 우리 오빠...”“됐어. 너 같은 여자를 내가 한두 번 본 줄 알아? 아무나 보고 오빠라고 하지. 밤이면 아빠라고 부르는 거 아냐?”최가희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목걸이 나한테 줘. 그러면 그냥 넘어가 줄게.”최가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진서준을 향해 손을 뻗었다.“당신이 사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줘야 하지? 당신이 뭐라고!”진서준은 최가희에게 목걸이를 넘길 생각이 없었다.“우습네요. 나한테 주지 않으면 그걸 사기라도 하게요? 그럴 형편은 돼요? 그건 신상이에요. 6,000만 원짜리죠. 나도 내 남자 친구를 아주 오래 설득해서 겨우 사주겠다고 약속받은 거라고요!”최가희가 같잖다는 표정으로 진서준
최가희가 진서라를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초대한 이유는 진서라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서였다.고등학교 때는 순진한 척하더니 이젠 돈을 위해 남자를 만나고 다니지 않는가?“싫어. 난 가족들이랑 쇼핑할 거야.”진서라는 거절했다.최가희는 포기하지 않았다.“가족들이랑 쇼핑하는 건 언제 해도 괜찮잖아. 동창 모임은 1년에 한 번뿐이야. 진서라, 설마 돈 많은 남자 찾았다고 우리 같은 가난한 친구들은 눈에 차지도 않는 거야? 그렇다면 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봤네!”최가희는 몸을 돌리며 떠나는 척했다.진서라는 그 모습을 보고 잠깐 갈등했다.그녀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고 그중 일부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최가희와 함께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최가희의 인품을 생각했을 때 틀림없이 그녀의 험담을 할 것이다.그렇게 되면 그녀의 평판이 떨어질 것이다.진서준은 차갑게 웃었다. 그는 최가희가 일부러 진서라를 자극한다는 걸 알았다.진서준은 진서라와 함께 가서 막말을 내뱉는 최가희를 단단히 혼쭐내줄 생각이었다.“서라야,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이라잖아. 오빠가 같이 가줄게.”진서준은 절대 진서라 혼자 보낼 생각은 없었다. 그가 가지 않는다면 진서라는 틀림없이 최가희에게 엄청나게 괴롭힘당할 것이다.진서준이 진서라와 함께 가겠다고 하자 최가희는 잘됐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은 그녀가 찜해둔 목걸이를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망신을 줬다. 그래서 최가희는 반드시 그에게 복수할 셈이었다.“진서라, 네 오빠도 동의했잖아. 갈 거야, 안 갈 거야?”최가희는 오빠라는 말을 특별히 강조했다.진서준은 차갑게 웃었다.“모임 어디서 하는데? 잠시 뒤에 갈게.”“유일 호텔이라고 들어봤어요?”최가희는 진서준을 흘겨보면서 말했다.유일 호텔이라는 말에 진서준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어딘지 알아.”“그래요. 점심 12시 501번 룸으로 와요. 약속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뒤 최가희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자리를 떴다.“오빠, 나 혼자
사이좋은 두 남매의 모습에 조희선의 얼굴에 행복의 미소가 지어졌다.그러나 곧 조희선의 눈동자에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진서준 아버지의 비밀을 제외하고 아직 진서준에게 얘기하지 못한 비밀이 하나 더 있었다. 심지어 진서라도 몰랐다.이 비밀은 진서라와 관련된 비밀이었다....유일 호텔, 501번 룸.최가희는 옷차림이 범상치 않은 남자와 그곳에 일찍 도착했다.“자기야, 나 점심에 쇼핑할 때 백화점에서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났거든.”“친구를 만난 것뿐인데 뭐 얘기할 거 있어?”공수철은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로 말했다.“그 X이 고등학교 때 퀸카로 불렸었어. 걔를 좋아하던 남학생들이 수두룩했다고. 그런데 그때는 얼마나 순진한 척을 하던지. 남학생들이랑 전혀 친하게 지내지 않았거든. 그런데 지금은 돈 때문에 잘 사는 남자랑 만나더라고.”최가희가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얼마나 가증스럽던지. 속물이면서 말이야.”별로 신경 쓰지 않던 공수철은 진서라가 퀸카였다는 말에 곧바로 흥미가 생겼다.최가희는 외모와 몸매가 나쁘지 않았지만 자주 화장을 짙게 해서 오히려 못생겨 보였다.공수철은 최가희와 만난 지 꽤 되었는데 그녀와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여자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었다.그런데 돈을 밝히는 더 예쁜 여자가 있다는 말에 공수철은 구미가 당겼다.공수철은 꽤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의 아들이었다.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식약처로 들어갔다.현대 사회에서 월급이 200만 원이 넘는 직장인은 복지가 좋은 공무원보다 대우가 못했다.“그 여자 오면 나한테 소개 좀 해줘.”공수철이 웃으며 말했다.“좋아. 대신 잠시 뒤에 나 대신 화풀이 좀 해줘! 걔랑 만나는 남자가 내가 봐둔 목걸이를 빼앗았거든.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줬어!”최가희는 공수철의 몸에 바짝 붙어서 애교를 부렸다.“걱정하지 마. 네 심기를 건드린 사람들은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공수철은 최가희의 턱을 잡고 가볍게 말했다.“역시 자기가 최고야...”
예크스와 함께 온 청년들은 충격을 받아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예크스의 시신을 그대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진서준은 아무런 자비도 베풀지 않았고 손바닥을 한 번 뒤집는 순간, 또 몇 명이 죽어갔다.“진서준, 너 진짜 큰 문젯거리를 일으킨 거야.”이세아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 남자가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이세아도 인정하지만 그가 일으킨 이 문제는 만만치 않았다.서오런 교회는 올림푸스 신전, 멸용 조직과 대한민국 국안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였다.얼마 전 이세아는 길거리에서 떠도는 소문을 들었는데 혈수가 그 세 대형 조직에 의해 함께 몰살되었다는 소식이었다.그러니 이 세 조직의 실력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내 주변은 항상 문젯거리가 끊이지 않아.”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하자 이세아는 말문이 막혔다.“그래도 더 신중하게 움직이는 게 나쁠 게 없어.”그 후, 예크스 일행의 시신은 이씨 가문 사람들이 와서 정리했고 진서준은 허윤진과 서지은에게 말했다:“너희는 먼저 올라가서 쉬어.”유람선 10층에는 전용 휴식실이 있었고 문을 열자 문 앞에 네 명이 서 있었다.“진서준 씨.”박서명이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채 진서준을 보며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죠?”진서준이 차갑게 물었다.“네, 사실 얘기하고 싶은 게 좀 있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박서명은 자기 신분까지 낮춰가며 매우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박서명의 태도는 진서준 일행에게 다소 의외였다.이세아의 눈에도 놀라운 표정이 스쳤다.박씨 가문은 이씨 가문보다 실력이 더 강한 가문이었고 박서명은 바로 그 대단한 박씨 가문의 가주였다.대한민국 전역에서도 박서명의 신분은 최고급에 속하는 존재였다.그런 대단한 인물이 진서준에게 이런 겸손한 태도를 보일 이유가 없었다.혹시 방금 진서준이 황혼 기사를 죽인 사실이 박서명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 걸까?진서준도 머릿속에서 의문이 넘쳤다.“시간은 괜찮은 것 같네요. 여기 잠시 기다리세요.”진서준
하지만 오늘 손원순은 너무나 큰 실수를 저질렀다.진서준이 조금 전 링에 올라와 손원순을 돕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황혼 기사의 창에 맞아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다시 묻는다. 내 실력이 의심스러운 사람 있어?”진서준의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지며 지하 1층에 메아리쳤다.링 아래에서 적막만 흘렀다.천의방의 강자도 처치할 수 있는 사람을 누가 감히 건드릴 수 있겠는가?진서준은 그제야 빙그레 웃으며 몸을 돌려 링에서 내려갔다.“용존님!”손원순이 재빨리 진서준을 따라갔다.“방금 실례가 많았습니다. 용존님께서 부디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손원순은 진서준에게 고개를 숙여 진심으로 사과했다.그러자 진서준은 즉시 손원순을 손으로 붙잡고 웃으며 말했다.“의협심이 넘치시는 손 천사님은 우리 모두의 본보기입니다.”그 말에 손원순이 어색하게 웃어넘겼다.“용존님, 과찬입니다. 저는 그저 제 능력 범위내에서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용존님, 명주시에 돌아가신 후 시간이 되면 꼭 한 번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손원순이 이 기회를 빌려 진서준을 식사에 초대했다.“좋습니다, 시간이 되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손원순과 같은 선량한 사람과는 당연히 친구가 되어야 했다.진서준이 방으로 돌아가자 허윤진이 신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다가왔다.“진서준, 방금 진짜 멋있었어. 공격 두세 번 만에 그 사람을 처치할 줄은 몰랐어.”“그 해외 사람들 좀 잡아 와.”진서준의 말에 이세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정말 그렇게 할 거야?”“당연하지.”잠시 후, 이씨 가문의 사람들이 예크스 일행을 끌고 왔다.“너... 너 뭐 하려고 그래?”예크스의 얼굴에는 아까 보였던 거만하고 교만한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대신 두려움이 가득한 기색이 역력했다.예크스의 눈에선 원탁 십이 기사가 신의 사자와도 같은 존재였다.하지만 지금 진서준은 신의 사자를 죽였다.그러니 진서준은 분명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마일 것이다.“
현장은 말 그대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링 위의 그 인물을 쳐다보았다.원탁 십이 기사는 말 그대로 천의방에 오르는 슈퍼 강자였다.천의방은 비록 대한민국 국안부가 만든 목록이지만 국내외 모든 권력자와 강자가 그 권위성을 인정하는 목록이기도 했다.전 세계를 둘러보면 강자가 수없이 많지만 70억 가까운 인구 중에서 단 100명만이 천의방에 기록된다.이 100명은 어느 나라에 가든 각국의 권력자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쓰는 존재였다.수많은 강자가 천의방에 올라가려고 발버둥 칠 때 놀랍게도 천의방 78위에 위치한 황혼 기사가 지금 20살 남짓한 청년의 공격 세 번으로 죽음을 맞이했다.용존 진서준.이 이름은 해외 강자에게는 무척이나 낯선 이름이었고 갑자기 떠오른 인물일 뿐이었다.진서준이 대한민국에서 벌인 가장 유명한 전투는 봉호전과 강남에서 육급 대종사 두 명을 단 일격으로 처치한 일이었고 그 외에는 특별한 전과가 없었다.천의방의 다른 강자와 비교했을 때, 이 정도의 전과는 너무나 미미해 보였다.만약 국안부가 보해 전투의 결과를 공개했다면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질 것이다.하지만 진서준의 안전을 고려해 진서훈 일행은 그 사실을 숨겼다.지금 진서준은 각국 강자들 앞에서 교회의 기사를 단번에 처치했다.이번 결투 이후로 진서준의 명성은 앞으로 더욱 널리 퍼질 것이다.가장 중요한 점은 진서준이 겨우 26살이라는 것이다.실력도 무시무시했지만 이토록 어린 나이는 더 공포스러운 사실이었다.VIP룸안에서 이세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얼음처럼 차가운 황예은이 저 녀석을 따랐구나.”“세 분, 여러분이 힘을 합친다면 저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요?”박서명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박서명은 진서준이 기껏해야 지의방 정도의 실력밖에 없을 거라 여겼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당황하기 시작했다.진서준이 천의방의 강자를 처치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실력을 갖춘 것이다.게다가 진서준은 너무 쉽
사실, 눈앞의 이 청년은 기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해서 살짝 놀랐다.하지만 황혼 기사는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황혼 기사는 갑자기 뒤로 물러났고 긴 머리가 공중에서 휘날렸다.그러고는 두 손을 가슴에 교차시켜 놓고 경건한 신도처럼 거만한 고개를 살짝 숙였다.“신성한 빛이여, 이 세상 모든 악을 멸해 버리옵소서.”기사가 입으로 중얼거리자 손에 쥔 긴 창에서 눈부신 빛이 방출되었다.황혼 기사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기도 이 순간 전부 폭발했다.조금 어두운 지하 링은 지금 한낮의 밝은 햇살처럼 강렬한 빛을 발산했다.“저 녀석 드디어 숨통이 끊어지겠네. 황혼 기사가 성력을 사용했어.”예크스가 눈을 반짝이며 흥분한 말투로 말했다.성력은 오직 교회 원탁 십이 기사와 주교 세 명만이 소유한 특별한 힘이다.이 힘은 산을 하나 통째로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이세아도 그 눈 부신 빛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유람선이 과연 이 엄청난 힘을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이세아이 우려한 것처럼 유람선에서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유람선 위의 손님들은 저마다 불안해했다.그때, 링 위의 황혼 기사가 갑자기 움직였다.기사는 순간 이 세상에서 사라진 듯, 한순간에 모두의 눈앞에서 사라졌다.그리고 다시 나타났을 때, 이미 진서준의 앞에 서 있었다.진서준은 검을 쥔 손을 급하게 들어 올리며 청색의 검빛이 발산하는 일격을 날리자 눈앞의 눈 부신 빛을 찢어버렸다.우르릉!굳건한 링의 바닥이 진서준의 일격을 맞고 기다란 균열이 나타나며 부서진 돌멩이가 사방으로 튀었다.그 후, 진서준은 손에 쥔 참선검을 풀었고 이내 그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청색과 적색을 띤 거대한 용 두 마리가 진서준의 뒤에서 나타났다.두 용은 하나로 합쳐졌다가 다시 청색과 적색이 엇갈린 용 세 마리로 나뉘었다.진서준의 주먹 앞에서 거대한 용 한 마리가 거대한 입을 벌려 모든 것을 삼켜버리려 했다.콰지직!한 줄기의 갈라진 금이 황혼 기사의 창에
모든 사람은 입을 떡 벌린 채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이 청년은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선전포고하는 건가?구경꾼들만 놀란 게 아니었다. 진서준 뒤에 서 있던 손원순도 진서준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이 애송이가 대담해도 너무 대담한 것 같았다.이 유람선에 올라탄 사람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어쩌면 링 아래에 팔급, 심지어 구급 대종사 경지의 경호원이 있을지도 모른다.이런 강자가 지금 링에 올라간다면 진서준도 무척이나 난감해질 것이다.“너 과연 그렇게 오만하게 굴 실력이 있을까?”이세아가 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잠시 후, 사람들이 정신을 가다듬었고 그들의 눈에서 스치던 경악은 사라지고 그 대신 불타오르는 분노가 가득 찼다.“오만하고 무지한 애송이가 감히 큰소리를 쳐? 이따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를 거야.”“우리가 나설 필요 없어. 저 기사님이 알아서 널 처단해 버릴 거야.”“허세를 부리다가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군중의 분노가 폭발했지만 아무도 무대에 올라가지 않았다.다들 무대 위에 있는 황혼 기사가 진서준의 목을 쳐낼 것이라 믿고 있었다.황혼 기사는 차가운 살기를 눈에 띄게 드러내며 말했다.“이봐, 너 지금 대형 사고 친 건 알고 있어?”“몰라. 단지 네가 이제 곧 죽을 거라는 것만 알아.”진서준이 평온하게 답하자 손원순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외쳤다.“빨리 물러나. 이 사람은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명주시 최고의 술법 천사인 손원순도 황혼 기사를 이길 수 없었는데 어떻게 한낱 국안부 소속의 상경인 진서준이 상대할 수 있겠는가?진서준은 손원순을 힐끗 바라보더니 가볍게 그의 어깨에 손바닥을 얹었다.그러자 손원순의 얼굴이 급변했다.하지만 진서준이 손원순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기운이 손원순의 온몸에 편안한 흐름처럼 퍼져 나갔다.그러자 방금 황혼 기사의 공격에 심각하게 다쳤던 상처가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맙소사, 이게 바로 손 천사님의 실력인가?”“이 검을 과연 저 기사가 막을 수 있을까?”“막을 수 없을 거야. 손 천사님은 우리 명주시 최고 술법 강자잖아.”대다수 사람은 황혼 기사가 이 공격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황혼 기사도 눈앞의 광경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우리 스승님 시그니처 술법이네!”곽윤상이 흥분하며 소리쳤다.예전에 명주시에서 요괴들이 날뛰었을 때, 손원순은 바로 이 보라색 검으로 악귀 세 마리를 단번에 처치했다.그 사건을 계기로 손원순은 일약 명성을 떨쳤다.지금의 손원순은 그때보다 몇 배나 더 강해졌고 이 전설적인 기술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해졌다.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 보라색 뇌검에 집중되었다.하지만 황혼 기사도 물러서지 않았다.황혼 기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손원순 못지않았다.황혼 기사는 은색 창을 높이 들고 길게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전쟁의 신처럼 우뚝 섰다.그리고 황혼 기사가 갑자기 바닥에 발을 내딛자 강철처럼 단단한 바닥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황혼 기사의 모습은 빛처럼 빠르게 움직였고 순식간에 링 중앙에 도달했다.손원순 앞에 있던 뇌검도 같은 순간에 바닥을 쪼개듯 사나운 기세로 내려쳤다.창과 검이 공중에서 충돌하며 폭발적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펑!그 후, 뇌검은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부서져 날아갔다.그리고 공중에서 멈췄던 황혼 기사의 모습이 바로 손원순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술법이 깨져버리자 손원순은 원기가 크게 상하며 시뻘건 피를 왈칵 토해냈다.손원순의 강기는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격렬한 충격에 연신 뒤로 물러서며 발을 제대로 디딜 수도 없었다.“죽어!”황혼 기사는 손에 들었던 창을 힘껏 던졌고 그 창은 손원순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그 창에 맞으면 신선이라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이 순간, 두 사람의 결투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전부 경악을 금치 못했다.명주시에서 오랜 세월 명성을 떨친 술법
내기를 건 사람들은 전부 불만을 표했다.다들 진서준이 질 것에 내기를 걸었고 이건 확실한 이득이 보장된 거래였다.하지만 이제 손원순이 갑자기 진서준을 대신해 출전한다고 하니 그들의 돈줄이 끊긴 셈이었다.“손 천사님, 그 녀석과 무슨 관계인가요? 왜 그 녀석을 대신해 나서시는 거죠?”“맞아요, 손 천사님, 이건 경기 규칙에 맞지 않아요.”“손 천사님, 그냥 내려가세요. 우리 돈 벌게 놔두세요.”사람들이 하나둘씩 손원순에게 내려가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손원순은 차가운 눈빛으로 구경꾼들을 쏘아보며 답했다.“불만이 있으면 먼저 올라와서 날 이겨봐.”손원순의 말 한마디에 떠들썩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손원순을 이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칠급 영선 술사라면 누구나 다 인정하는 실력이었다.황혼 기사도 냉정하게 말했다.“좋아, 그럼 먼저 너부터 죽이고 저 녀석을 죽여야겠어.”VIP룸에 앉아 있던 예크스는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황혼, 저 녀석도 죽여버려! 저 늙다리에게 우리 교회 실력을 알려줘야 해.”심판이 마지막 확인을 마친 뒤 경기가 드디어 시작되었다.“난 밖에 나가 있을게. 손 천사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구할 수 있게.”진서준의 말에 이세아가 놀란 듯 물었다.“너 손원순이 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이세아가 놀란 듯 물었다.“아까 보니까 교회 기사들 강기는 호국장군과 비슷한 수준이야. 손 천사 실력도 약한 편은 아니지만 저 기사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좀 불안해.”진서준이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무인와 수선자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무인도 나이가 많으면 실력이 점점 더 강해지긴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도 문제였다.나이가 너무 많으면 예전처럼 정정하지 않아 작은 상처나 질병이 있을 경우, 고수와 결투할 때 그 사소한 문제가 점점 더 커져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 있었다.수선자는 한 단계씩 경지가 올라가면 수명이 늘어나지만 무인은 그렇지 않았다.무인은 지선 경지에
“이 진서준이라는 사람, 이름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구경꾼들은 결투장에 오를 사람의 정보를 보고 수군대기 시작했다.토론이 끝나자 적지 않은 사람이 황혼 기사에게 돈을 걸었다.교회의 원탁 십이 기사의 명성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반면 진서준을 아는 사람들도 그의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다.“진서준, 너 왜 교회 기사와 결투하게 된 거야?”이세아가 진서준을 보며 물었다.“전부 내 탓이야...”허윤진의 얼굴에 자책과 후회가 가득했다.“윤진아, 이 일은 네 탓이 아니야. 저 사람들이 일부러 시비를 걸었잖아.”서지은은 허윤진을 위로하며 한편으로 진서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우리가 아까 3층에서 당구를 치고 있을 때, 저 무리가 음흉하게 웃으며 우리 쪽으로 걸어오더니 일부러 윤진과 부딪힌 거야. 당시 윤진도 상대가 일부러 건드리자 화를 참지 못하고 그만...”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윤진 앞에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네가 잘못을 깨달았다면 앞으로는 절대 도박에 손을 붙이지 마.”허윤진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진서준, 앞으로 절대 도박 같은 걸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도박은 사람의 인생을 망치기 쉬웠다.돈을 잃은 사람은 기분이 더러워지고 기분이 더러울 때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기면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규모가 커지기 마련이다.“조심해. 교회 기사는 그렇게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이세아가 진서준에게 경고하자 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황예은은 어디 있어? 왜 여기 없지?”“우리 둘이 한방에서 사이좋게 있을 것 같아?”이세아가 이내 진서준에게 되물었다.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심한데 한 방에 있을 리 없었다.두 사람 전부 훌륭한 교육을 받은 교양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미 싸움이 일어났을 것이다.“그럼 어디 갔어?”진서준의 질문에 이세아는 아니꼬운 눈길을 보냈다.“그렇게 걱정돼?”진서준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황예은이 경호원 없이 혼자 나갔으니까 사고라도
은발의 청년은 자기 목을 겨누는 장검을 보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눈앞의 청년은 아무래도 자기 뒤에 있는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그런데 자기 배후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우리 아버지는 서오런 교회의 계아 주교야. 이래도 날 죽이겠다고 헛소리 칠 거야?”어느새 흉측한 몰골이 된 은발의 청년은 벌겋게 충혈된 두 눈으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주변에서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는 사람들은 그 이름을 듣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유람선에 오를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거액의 자산과 막강한 권력을 손에 넣은 사람들이었다.이들은 각국의 세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은발 청년이 말한 계아 주교는 바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회의 3대 주교 중 한 사람이었고 그 명성 또한 자자했다.중요한 교회의 의식이 있을 때면 항상 계아 주교가 그 자리에 참석했다.계아 주교는 명성이 자자한 걸 떠나서 실력도 대단한 인물이었다.무려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전설 속의 지선 경지에 들어설 수 있는 놀라운 실력이었다.그때, 3층의 관리자가 급히 달려왔다.진서준이 검을 휘두른 것을 본 관리자는 서둘러 말렸다.“손님, 천하 유람선에서는 무력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원한이 있으시면 유람선 지하 1층에서 해결해 주세요.”관리자가 말한 곳은 바로 지하 1층에 있는 생사 결투장이었다.유람선에서 누군가와 사적인 원한이 있으면 전부 그 결투장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규칙이 있었다.하지만 보통 결투장에 가서 해결하려면 규모가 큰 소란이 일어나야 했다.소란이 그다지 크지 않으면 유람선의 사람들은 전부 보고도 모른 척하곤 했다.다들 괜히 끼어들어 소란의 규모를 부풀려고 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예크스 씨, 무슨 일이죠?”이때 한 서양의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이 남자는 거대한 체구와 여성들이 부러워할 만큼 찬란한 금발 머리를 자랑하는 잘생긴 남자였다.이 남자는 바로 원탁 십이 기사 중 하나인 황혼 기사였고 실력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