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은 그 말을 한 사람이 자기를 향해 소리친 것이라고 직감했다.진서준은 그를 무시하고 목걸이를 꺼냈다.“사람 말 못 알아들어요?”조금 전 그 건방진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렸다.늘씬한 몸매에 예쁘장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자였다.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화가 가득 난 얼굴로 진서준을 향해 다가왔다.진서준은 그제야 몸을 돌려 조금 전 자신더러 멈추라고 한 여자를 바라보았다.“난 사람 말은 알아듣는데 그쪽 말은 못 알아듣겠네.”진서준은 상대방을 힐끗 본 뒤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 말은 곧 그 여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짙은 화장을 한 여자도 그 뜻을 이해했다. 그녀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진서준의 뺨을 때리려 했다.그러나 진서준이 고분고분 맞아줄 리가 없었다. 그는 상대방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비록 난 여자를 때리지는 않지만 선 넘는 사람들은 교육할 의향은 있어.”진서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손에 힘도 더 들어갔다.“아! 손목 아파요. 이거 얼른 놔요!”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진서준을 향해 화를 냈다.“서준아, 싸우지 말고 얼른 손 놔!”조희선은 아들이 다시 감옥에 들어가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서둘러 큰 목소리로 말했다.옆에 있던 진서라도 서둘러 그들을 말리며 진서준을 끌고 갔다.짙은 화장을 한 여자는 진서준에게 잡혔던 자기 손목에 붉은 손자국이 남은 걸 보았다.“빌어먹을, 우리 남편이 오면 아주 단단히 혼내줄 거예요!”짙은 화장을 한 여자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화가 난 얼굴로 진서준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진서라는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눈에 익었다. 그녀의 학창 시절 동창인 듯했다.“최가희?”진서라는 확신 없는 목소리로 상대방의 이름을 불렀다.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최가희는 고개를 돌려 진서라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서로를 자세히 살펴보았고, 최가희는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난 또 누군가 했네! 우리 학교 퀸카 진서라 아냐!”고등학교에 다닐 때 진서라는 청순하고 예쁜 외모로
진서라가 그 형제에게 납치당했을 때, 진서준은 그녀에게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서라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진서라가 말리자 진서준의 몸에서 살기가 사라졌다. 그러나 최가희를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최가희는 크게 숨을 내쉬더니 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두려운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미안해. 오빠 때문에 놀랐겠네.”진서라가 먼저 최가희에게 사과했다.최가희는 진서라가 자신을 모욕한다고 생각해 곧바로 화를 냈다.“뭔 소리야? 내가 언제 네 오빠 때문에 놀랐다고 그래? 난 그냥 갑자기 다른 일이 떠올랐을 뿐이야!”진서라는 멋쩍은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했다.최가희는 진서라의 겁 먹은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목걸이 나한테 넘겨. 그런 비싼 목걸이를 네가 살 수 있겠어?”최가희는 진서를 바라보면서 비아냥거렸다.“당신이 뭔데 당신한테 넘기라는 거야?”진서준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진서라는 몇 번이고 참아줬는데 최가희는 몇 번이고 선을 넘었다.만약 조금 전에 진서라가 막지 않았다면 진서준은 이미 그녀의 뺨을 때렸을 것이다.“당신은 또 뭔데요? 진서라가 만나는 남자 주제에!”최가희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진서라는 최가희가 자신과 진서준의 사이를 오해하자 곧바로 설명했다.“이쪽은 우리 오빠...”“됐어. 너 같은 여자를 내가 한두 번 본 줄 알아? 아무나 보고 오빠라고 하지. 밤이면 아빠라고 부르는 거 아냐?”최가희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목걸이 나한테 줘. 그러면 그냥 넘어가 줄게.”최가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진서준을 향해 손을 뻗었다.“당신이 사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줘야 하지? 당신이 뭐라고!”진서준은 최가희에게 목걸이를 넘길 생각이 없었다.“우습네요. 나한테 주지 않으면 그걸 사기라도 하게요? 그럴 형편은 돼요? 그건 신상이에요. 6,000만 원짜리죠. 나도 내 남자 친구를 아주 오래 설득해서 겨우 사주겠다고 약속받은 거라고요!”최가희가 같잖다는 표정으로 진서준
최가희가 진서라를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초대한 이유는 진서라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서였다.고등학교 때는 순진한 척하더니 이젠 돈을 위해 남자를 만나고 다니지 않는가?“싫어. 난 가족들이랑 쇼핑할 거야.”진서라는 거절했다.최가희는 포기하지 않았다.“가족들이랑 쇼핑하는 건 언제 해도 괜찮잖아. 동창 모임은 1년에 한 번뿐이야. 진서라, 설마 돈 많은 남자 찾았다고 우리 같은 가난한 친구들은 눈에 차지도 않는 거야? 그렇다면 내가 정말 사람을 잘못 봤네!”최가희는 몸을 돌리며 떠나는 척했다.진서라는 그 모습을 보고 잠깐 갈등했다.그녀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고 그중 일부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최가희와 함께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최가희의 인품을 생각했을 때 틀림없이 그녀의 험담을 할 것이다.그렇게 되면 그녀의 평판이 떨어질 것이다.진서준은 차갑게 웃었다. 그는 최가희가 일부러 진서라를 자극한다는 걸 알았다.진서준은 진서라와 함께 가서 막말을 내뱉는 최가희를 단단히 혼쭐내줄 생각이었다.“서라야,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이라잖아. 오빠가 같이 가줄게.”진서준은 절대 진서라 혼자 보낼 생각은 없었다. 그가 가지 않는다면 진서라는 틀림없이 최가희에게 엄청나게 괴롭힘당할 것이다.진서준이 진서라와 함께 가겠다고 하자 최가희는 잘됐다고 생각했다.진서준은 그녀가 찜해둔 목걸이를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망신을 줬다. 그래서 최가희는 반드시 그에게 복수할 셈이었다.“진서라, 네 오빠도 동의했잖아. 갈 거야, 안 갈 거야?”최가희는 오빠라는 말을 특별히 강조했다.진서준은 차갑게 웃었다.“모임 어디서 하는데? 잠시 뒤에 갈게.”“유일 호텔이라고 들어봤어요?”최가희는 진서준을 흘겨보면서 말했다.유일 호텔이라는 말에 진서준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어딘지 알아.”“그래요. 점심 12시 501번 룸으로 와요. 약속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뒤 최가희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자리를 떴다.“오빠, 나 혼자
사이좋은 두 남매의 모습에 조희선의 얼굴에 행복의 미소가 지어졌다.그러나 곧 조희선의 눈동자에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진서준 아버지의 비밀을 제외하고 아직 진서준에게 얘기하지 못한 비밀이 하나 더 있었다. 심지어 진서라도 몰랐다.이 비밀은 진서라와 관련된 비밀이었다....유일 호텔, 501번 룸.최가희는 옷차림이 범상치 않은 남자와 그곳에 일찍 도착했다.“자기야, 나 점심에 쇼핑할 때 백화점에서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났거든.”“친구를 만난 것뿐인데 뭐 얘기할 거 있어?”공수철은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로 말했다.“그 X이 고등학교 때 퀸카로 불렸었어. 걔를 좋아하던 남학생들이 수두룩했다고. 그런데 그때는 얼마나 순진한 척을 하던지. 남학생들이랑 전혀 친하게 지내지 않았거든. 그런데 지금은 돈 때문에 잘 사는 남자랑 만나더라고.”최가희가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얼마나 가증스럽던지. 속물이면서 말이야.”별로 신경 쓰지 않던 공수철은 진서라가 퀸카였다는 말에 곧바로 흥미가 생겼다.최가희는 외모와 몸매가 나쁘지 않았지만 자주 화장을 짙게 해서 오히려 못생겨 보였다.공수철은 최가희와 만난 지 꽤 되었는데 그녀와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여자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었다.그런데 돈을 밝히는 더 예쁜 여자가 있다는 말에 공수철은 구미가 당겼다.공수철은 꽤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의 아들이었다.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식약처로 들어갔다.현대 사회에서 월급이 200만 원이 넘는 직장인은 복지가 좋은 공무원보다 대우가 못했다.“그 여자 오면 나한테 소개 좀 해줘.”공수철이 웃으며 말했다.“좋아. 대신 잠시 뒤에 나 대신 화풀이 좀 해줘! 걔랑 만나는 남자가 내가 봐둔 목걸이를 빼앗았거든.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줬어!”최가희는 공수철의 몸에 바짝 붙어서 애교를 부렸다.“걱정하지 마. 네 심기를 건드린 사람들은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공수철은 최가희의 턱을 잡고 가볍게 말했다.“역시 자기가 최고야...”
진서준은 서울 병원에서 20여 명의 독에 당해서 죽을 뻔했던 노인을 구했다. 일정한 정도에서 보면 반 처장의 감투를 구한 셈이었다.반 처장은 그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반재윤은 이제 바쁘지 않았기에 진서준에게 감사의 의미로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동시에 이 기회를 틈타서 젊고 유능한 신의와 좋은 관계가 되고 싶었다.스무여 명의 중독된 노인은 부영권도 치료할 수 없었다.“오빠, 누구 전화야?”진서라가 궁금한 듯 물었다.“서울 병원 원장.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장이 날 만나고 싶은가 봐.”진서준은 여동생에게 숨기는 것 없이 솔직히 말했다.식약처 처장이 진서준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하자 진서라는 매우 놀랐다.처장의 자리에 앉은 사람이라면 신분이 대단했다.“오빠, 중요한 일이니까 지체하지 말고 얼른 그 처장님 만나러 가.”진서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진서라는 그의 말을 듣고 혀를 찼다.다른 사람은 처장을 만나고 싶어서 사람을 찾아도 만나기 어려웠다.그런 처장이 먼저 진서준을 만나고 싶다는데 진서준은 처장에게 자신이 밥을 다 먹을때 까지 기다리라고 했다.다른 한편, 우성환은 절대 반재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반재윤이 언짢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반 처장님, 진 선생님께서는 점심에는 볼일이 있으시다고...”“급하지 않아요. 신의께서는 바쁘실 테니 이해합니다.”전화 건너편의 반재윤은 목소리가 아주 평화로웠다. 무게를 잡으려는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장님...”진서준은 차를 호텔 앞에 주차했고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환영합니다!”유일 호텔의 직원은 진서준을 보더니 90도로 허리를 숙였다.이것은 김명진이 특별히 지시한 것이었다. 그는 호텔 직원에게 진서준의 생김새를 기억하게 했다.그리고 진서준을 보면 아주 깍듯이 모시라고 했다.“오빠, 여기 호텔 직원들 너무 깍듯한 거 아냐?”진서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예전에 그녀도 알바를 해본 적이 있는데 고객을 봐
“안녕...”진서라가 뒤에서 나오며 친구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진서라를 보자 남자들의 눈이 반짝였다.고등학교 때 진서라는 소녀여서 몸매도 얼굴도 다 발육된 상태가 아니었다.여자는 크면서 많이 변한다고 하는데 진서라는 이제 연예인만큼 예쁜 여자로 성장했다.많은 미녀를 본 공수철도 흠칫할 정도였다. 그는 진서라가 이렇게 예쁠 줄은 생각지 못했다.그의 눈동자에서 욕망이 스쳐 지나갔다.“그렇게 서 있지 말고 어서 앉아서 밥 먹어요.”공수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적극적으로 진서라를 초대했다.진서준은 공수철을 무시한 뒤 진서라의 손을 잡고 빈자리에 앉았다.진서준이 자신을 무시하자 공수철의 안색이 살짝 달라졌다. 아주 불쾌한 듯했다.최가희는 그 모습을 보더니 화가 난 듯 진서라를 향해 소리쳤다.“진서라, 네 남자 친구가 예의 없어서 너도 예의 없는 거니? 우리 자기가 너한테 말 걸었잖아?”오전에 백화점에 조희선도 있어서 진서준은 최가희를 가만히 내버려뒀다.그런데 최가희가 계속해 선을 넘자 진서준도 더는 그녀를 봐줄 생각이 없었다.게다가 이곳은 진서준의 구역이었다. 이곳에서 사람을 때리더라도 호텔 사람들은 절대 최가희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진서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공수철이 최가희를 혼냈다.“진서라 씨는 내 말을 못 들어서 그런 건데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그 광경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최가희는 억울했다. 그러나 감히 공수철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기에 억울해도 참고 그 화를 진서라에게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진남준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그는 공수철이 진서라에게 딴마음을 품은 걸 눈치챘다.그러나 진서준은 공수철 같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진서라 씨, 전 공수철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식약처에서 일하고 있고 제 아버지는 식약처 차장이에요.”공수철이 우쭐한 얼굴로 말했다.진서라는 그 말을 듣더니 놀란 기색 하나 없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전 식약처 처장이 진서준을 만나고 싶다고 했고, 진서준은 자기가
수준 떨어지는 술은 마시지 않는다고?다들 진서준의 건방진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테이블 위에 놓인 건 한 병에 40만 원인 술로, 일반인들은 1년에도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술이다.다른 건 몰라도 진서라의 친구들은 최가희의 잘 사는 남자 친구 공수철을 제외하면 다들 평범한 직장인이고 한 달에 기껏해야 200만 원 정도 벌었기에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비싼 술을 사기는 어려웠다.공수철은 도발하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자존심을 부려? 그러면 오늘 한 번 어디까지 하나 지켜봐야겠어!’“그러면 어떤 술을 원하는 거죠? 이 호텔이 그리 좋은 호텔은 아니지만 그래도 5성급 호텔이라 당신이 원하는 술은 다 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이 살 형편이 될는지 모르겠네요.”공수철은 비싼 술을 사는 게 두렵지 않았다. 매년 많은 사람이 그의 아버지에게 전해달라며 그에게 뇌물을 줬기 때문이다.현재 공수철의 카드에는 1억 6천만 원이 있었다.진서준의 차림새를 봤을 때 공수철은 그에게 기껏해야 1,600만 원 정도 있을 거로 생각했다.공수철은 진서준의 생각대로 움직여줬다.진서준에게 어떤 술을 원하냐 물어보다니, 진서준은 당연히 가장 비싼 술을 원했다.“이 호텔에서 가장 비싼 술이 뭐죠?”진서준이 직원을 불러서 물었다.밖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던 직원은 안으로 들어와서 정중하게 대답했다.“고객님, 저희 호텔에서 가장 비싼 술은 한 병에 8,000만 원인 위스키입니다. 현재 호텔에는 단 3병뿐입니다.”직원이 말한 금액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술 한 병에 8,000만 원이라니, 집 반 채는 살 수 있을 듯했다.공수철도 놀랐지만 그는 진서준이 그걸 살 형편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오늘 식사 비용은 공평하게 나눠서 지불하는 것이었기에 십여 명의 사람이 이 술 한 병을 시킨다면 인당 800만 원을 내야 했다.800만 원은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큰돈이었다.“그러면 세 병 다 시킬게요.”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이 세 병 다 달라
“2억 4천만 원짜리 술이니까 수철 씨가 반을 낸다고 해도 나머지를 내려면 이 호텔에서 평생 일해야 할 거야!”다들 조롱 가득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진서준이 대체 어떻게 할 건지 지켜볼 생각이었다.진서라는 진서준이 돈을 내지 못할까 걱정되지는 않았다. 다만 돈이 아까울 뿐이었다.만약 조희선이 이 일을 알게 된다면 돈을 펑펑 쓴다고 진서준을 나무랄 것이다.“진서라, 네 남자 돈도 많고 성격도 있네.”최가희가 싸늘한 시선으로 진서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하지만 행동하기 전에는 생각이란 걸 해야지. 2억 4천만 원이야. 우리 자기가 반을 낸다고 해도 나머지 1억 2천만 원을 어떻게 낼 거야?”공수철이 이때 입을 열었다.“난 이 호텔 사장이랑 아는 사이야. 호텔 사장은 내가 여기서 밥 먹는 걸 알면 나한테 1억 2천을 내라고 하지는 않을 거야.”이렇게 말한 이유는 사실 체면 때문이었다.그는 이 호텔이 김씨 집안 호텔이라는 것만 알지 김명진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공수철의 아버지도 김씨 일가와는 잘 모르는 사이였다.김씨 일가는 예전에 요식업계에 종사한 적이 없었고 유일 호텔이 김씨 집안의 첫 호텔 사업이었다.만약 수익이 높다면 호텔을 몇 개 더 운영할 것이고 수익이 별로라면 1년 뒤 양도할 것이다.“역시 수철 씨는 다르네요. 1억 2천짜리 술을 공짜로 마실 수 있다니!”“우리도 수철 씨처럼 집안이 좋았으면...”“수철 씨, 우리도 한 모금씩 마셔봐도 될까요?”사람들은 곧바로 아부를 떨면서 기대 가득한 얼굴로 공수철을 바라보았다.“좋아요. 여러분 술값은 내가 낼게요!”공수철은 그렇게 말하면서 일부러 진서준과 진서라를 보았다.그는 이렇게 하면 진서라의 이목을 끌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진서라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수철 씨, 정말 대단하네요. 마음이 아주 넓어요. 누구처럼 돈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지 않잖아요!”“하하, 그런 사람은 쓰레기죠. 잠시 뒤에 그도 수철 씨 앞에서 꼬리를 내릴 거예요.”최가희는 코웃음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
별장에서 황예은은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다만 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옷이 거의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상반신에는 레이스가 달린 검은 속옷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이 속옷은 서지은이 가져온 속옷이었고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이었다.그리고 하반신에는 아까 진서준이 마사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두 여자는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를 보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황예은의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지금 심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황예은은 자기 알몸을 보고 있는 이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사실 이번이 진서준에게 두 번째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순간이란 걸 몰랐다.“서준아, 왜 노크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어...”서지은이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서지은은 진서준이 약왕 이용진과 저녁 식사를 오래 하고 밤늦게나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진서준이 너무 일찍 돌아온 것이다.“언제까지 더 볼 생각이야?”황예은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코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린 뒤 말했다.“먼저 나가 있을게. 옷을 다 갈아입었으면 날 불러.”진서준이 나간 뒤, 황예은은 서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누구야?”“진서준이에요. 제 남자친구거든요.”서지은이 솔직하게 대답하며 한마디 보탰다.“예은 언니, 사실 언니 목숨도 진서준이 구한 거예요.”그 말을 듣자 황예은의 눈에서 뿜어나오던 냉기가 다소 누그러졌다.어쨌든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너무 차가운 태도로 대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황예은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내 옷은 네가 벗긴 거야?”서지은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서준이 언니를 치료할 때 상황이 너무 위급해서 먼저 언니를 여기 데려온 거예요. 나도 여기 들어와 치료 과정을 볼 때 서준이 언니를 추행하는 줄 알았어
지금까지도 진서준은 박씨 가문의 의도가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박씨 가문의 일은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진서준의 우선순위는 약재를 구하고 모든 정력을 간첩을 잡는 데 쏟아부어야 했다.호텔을 떠난 진서준은 이용진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30여 분을 달린 끝에 진서준 일행은 마침내 이용진의 장원에 도착했다.이용진의 장원 면적은 서씨 가문 것만큼 크지 않았지만 화려함만큼은 서씨 가문을 능가할 기세였다.각종 명인의 고화와 진귀한 보물들이 온 사방에 진열되어 있었다.이 모든 보물은 하나하나가 최소 10억 이상의 진품이었고 적어도 진서준이 자세히 살펴본 결과 위조품은 하나도 없었다.이 보물들만 해도 자산 가치가 조 단위를 뛰어넘을 될 터였다.“용존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만 하세요.”이용진이 호탕한 어조로 말했다.“난 이런 것들에는 관심 없습니다.”진서준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군요...”이용진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돈을 통해 진서준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 만들고자 했던 이용진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진서준과 친분이 두터워지면 나중에 치료를 부탁하기도 훨씬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이용진의 속셈을 꿰뚫어 본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약왕님 체내 내상이 다 나으면 매주 두 번씩 무도를 연마하고 한 달에 다른 사람과 한 번 실력을 겨루는 수준으로 수련하면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약왕님 무도 실력도 늘어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앞으로 꼭 용존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이용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수많은 별장을 지나 진서준은 이용진을 따라 규모가 어마어마한 냉장실로 들어갔다.냉장실 안에는 사람 키 절반 정도 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각 기둥 위에는 희귀한 약재들이 놓여 있었고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었다.진서준이 자세히 둘러보니 여기에 진열된 약재는 성약당의 것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희귀성만큼은 성약당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 사람은 바로 어제 서울시에서 체포되었던 박운기였다.진서준 역시 이렇게 빨리 박운기를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다.“운기야, 저 사람 알아?”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박운기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바로 저놈이 사람들을 이끌고 내 계획을 망쳤습니다.”박운기가 이를 갈며 말했다.만약 진서준이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박운기의 계획은 이미 성공했을 것이다.그랬다면 박씨 가문으로 돌아갈 때는 차가운 시선 대신 온갖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이번에 서울시에서의 임무를 맡기 위해 박운기는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경쟁했다.모두가 보기에 이 임무는 그야말로 공을 세우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쉬운 임무를 박운기가 망쳐버렸다.망친 것도 모자라 박씨 가문은 관계를 동원해 박운기를 구출해야만 했다.공을 세워야 할 장사가 완전히 손해만 본 장사로 탈바꿈한 것이다.박씨 가문의 계획을 망친 장본인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자 중년 남자는 진서준을 쓱 훑어보고는 냉랭하게 비웃었다.“전설 속의 용존님,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하시는군요.”진서준은 그 남자를 힐끗 보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중년 남자의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잠깐 스쳤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약왕님은 언제부터 용존님과 친구가 되셨습니까?”중년 남자는 이용진을 발견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박재명, 분명히 말해두지. 용존님 일은 바로 내 일이야. 감히 용존님에게 시비를 걸려고 한다면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용진이 싸늘하게 대응했다.박재명은 박씨 가문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아니었다.그는 단지 박서명의 넷째 동생일 뿐이었다.그래서 이용진은 굳이 박재명을 깍듯하게 모시며 아부할 필요가 없었다.이용진의 말에 박재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약왕님, 굳이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박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이용진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
이용진은 평생 실력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청년을 본 적이 없었다.자기를 지키는 두 호위가 반응할 틈조차 없이, 아니, 심지어 방어할 기회도 없이 한순간에 당하다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곽윤상 역시 진서준이 갑자기 공격을 시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해명할 기회가 생겼다.“약왕님, 이분은 바로 국안부 용존님이십니다.”곽윤상이 재빨리 이 틈을 이용해 설명했다.“뭐라고? 네가 바로 그 용존이라고?”이용진은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용존이라는 이름은 이미 명주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대다수 명주시 명문대가는 이 절세 천재를 돈으로라도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진서준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서준이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용존이라는 봉호를 받은 인물이니 앞으로 거의 30년이 지나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진서준과 겨뤄볼 만한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심지어 4대 은거 문파조차도 진서준에게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보시다시피 용존이 틀림없습니다.”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이 처음부터 용존이라는 신분을 밝혔다면 이용진은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나이에 육급 절정의 대종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진서준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이용진은 이제야 이 청년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용존님, 방금 제가 무례했던 점은 널리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약왕 이용진은 몸을 약간 숙이며 진서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조금 전의 거만했던 태도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용진은 곽윤상이 명주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질책했었다.그런데 3분도 안 돼 본인이 직접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었다.이용진은 지금 누군가가 그에게 귀싸대기라도 날린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약왕님, 앉으세요.”진서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용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운 기색이 담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당신이 한 얘기는 전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 체내에 숨은 질병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 오는 날씨에 수련을 하다 보면 체내 강기를 돌릴 때 복부 아래쪽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통증은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설령 신경이 쓰여 의사를 보인다고 해도 보통 의사라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정밀한 장비로도 알아내기 어렵겠죠.”진서준의 이 말에 이용진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진서준은 정확히 이용진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지난 2년 동안, 비만 오면 이용진은 온몸이 불편해졌다.특히 강기를 돌릴 때면 복부 아래쪽에서 은은하게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이용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점점 이상하다고 느껴져 성약당의 장로까지 불러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런데 진서준이 오늘 초면에 단번에 이 문제를 짚어내자 이용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이용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묻자 진서준은 태연히 대답했다.“당연히 당신 얼굴을 보고 알았죠.”“얼굴을 본다고 어떻게 알 수 있어?”이용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고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터무니없군. 성약당의 장로조차 알아내지 못한 문제를 네가 단번에 알아냈다고?”이용진은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진서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봐 청년, 솔직하게 말해. 내 곁에 내통자를 심어 놓은 게 아니야?”명주시에서 이용진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은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했다.다시 말해 억울한 사람 천 명을 죽이더라도 내통자 한 명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생존의 비결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명주시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이용진 곁의 두 대종사도 이
‘이 녀석 미쳤나?’방 안의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이용진이 누구인가? 바로 명주시에서 누구나 다 아는 약왕이었다.전국을 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절반 이상의 귀한 약재는 약왕의 손을 거친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병에 걸릴 수 있을까?더군다나 매일 약재를 다루는 약왕에게 병이 있다면 명의들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그러니 진서준이 이용진에게 병에 걸렸다고 말한 건 미친 소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다.“이봐, 넌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지 알고는 있나?”이용진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그는 이곳에서 꼬박 30분 넘게 기다렸다.그런데 자기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 고작 이런 애송이였고 오자마자 병이 있다며 모욕까지 했다.평소 인내심이 깊고 신사적이던 이용진도 이 순간만큼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용진의 분노를 눈치채자 곽윤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겁에 질려 진서준의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이용진 맞은편에 앉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진서준의 이 태연한 모습에 이용진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아무래도 이 청년은 약왕인 이용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난 똑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진서준은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이용진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종사가 비웃으며 말했다.“약왕님은 무공을 수십 년간 연마하셨고 이미 종사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야. 병에 걸렸다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진작 발견되었을 거야. 허튼소리도 정도껏 해야지.”보통 종사 경지에 오른 무인은 병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무인의 근육, 뼈, 혈액은 이미 평범한 인간을 초월했기에 체내 바이러스조차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종사 무인이 병에 걸릴 경우라면 대개 다음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난치병이거나 중독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내상이 있을 경우였다.하지만 이용진은 이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난치병은커녕, 누군가의 독에
“여기는 국제적인 대도시잖아요.”곽윤상도 감탄했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교내 미인 대회에 나가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손님, 저희 호텔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사나 숙박을 원하시면 회원 자격이 필요합니다.”곽윤상은 군말 없이 금박으로 장식된 카드를 꺼냈다.여성 안내원은 카드를 꼼꼼히 확인한 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곽 선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미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꼭대기 층의 5번 방입니다.”곽윤상의 말에 여성 안내원이 대답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여성 안내원은 프런트로 가서 예약 사항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꼭대기 층으로 가는 직행 엘리베이터는 총 네 대였고 속도는 어마어마했다.무려 300미터의 높이를 단 20초도 되지 않아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멀리 보이는 구름층과 자기와 나란히 있는 듯한 달빛이 시야에 들어와 하늘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진 마스터님, 여긴 어떠십니까?”곽윤상의 질문에 진서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가본 레스토랑 중 가장 호화로운 곳 중 하나로군요.”“그렇긴 하죠. 이 호텔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곽윤상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이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회원이어야 하는데 꼭대기 층에 오고 싶다면 일반 회원으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골드 회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골드 회원권을 발급받는 데만 200억이 필요합니다.”골드 회원권이 200억이나 한다는 말에 진서준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그럼 일반 회원은 얼마인가?”“10 억입니다.”곽윤상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돈은 카드에 적립되는 게 아니라 그냥 회원권 발급 비용일 뿐입니다.”그 말을 듣고 진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전국을 통틀어도 이런 가격을 자신 있게 책정하는 곳은 명주시의 호텔들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