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우소영은 호텔을 떠나 홀로 북쪽의 별장 구역으로 향했다.이내 그녀는 한 별장 앞에 도착했다.벨을 누르자 이승재가 안에서 달려 나왔다.“우소영 종사님, 오셨어요!”우소영을 본 이승재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우소영이 말한 오래된 친구는 바로 이승재의 스승인 권해철이었다.며칠 전, 우소영은 권해철이 서울로 와서 진 마스터라는 사람과 대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권해철이 패배했다는 소식도 들었다.당시 우소영은 아주 놀라워했다. 그녀가 알기로 남주성에 권해철을 이길만한 사람은 그녀의 스승님인 탁현수뿐이었기 때문이다.남주성에는 오직 탁현수만이 반보 선천이었다.우소영이 권해철을 보러온 첫 번째 이유는 오래된 친구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고 두 번째 이유는 그 진 마스터라는 사람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만약 진 마스터가 반보 선천이라면 우소영은 권해철에게 그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네 스승님은? 상처를 치료하는 중이시냐?”우소영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어제 새벽에 돌아왔을 때 스승님께서는 내상이 완전히 나으셨습니다. 지금 거실에서 종사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이승재가 대답했다.두 사람은 별장 거실로 들어갔고 편한 차림새의 권해철이 거실 소파에 앉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마시고 있는 걸 보았다.“너도 참, 내상이 다 나았으면서 직접 날 마중 나오지도 않고 말이야!”우소영이 원망스러운 어투로 말했다.권해철은 웃었다.“우리 사이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이승재는 그들의 대화를 듣지 못한 것처럼 우소영에게 차를 따라준 뒤 곧바로 거실을 나섰다.권해철과 우소영은 나이가 비슷했지만 한 명은 술법을 수련하고 다른 한 명은 무도를 수련했다.두 사람은 젊었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당시 두 사람은 수련에만 매진하여 연애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그리고 연애할 마음이 들었을 때 둘은 이미 나이가 들어 예전 같지 않았다.“너 진 마스터라는 사람 때문에 크게 다쳤었다면서?”우소영이 걱정스
탁현수는 전설 속 선천 대종사와 겨우 반보 차이였다.그러나 그 반보는 그를 거의 10년간 괴롭혔다.“해철아, 진 마스터님을 뵐 수 있게 힘 좀 써줄 수 있겠어?”우소영이 기대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그건 진 마스터님께 물어봐야 할 것 같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말이야.”권해철이 쓴웃음을 지었다.만약 진서준이 언짢아한다면 그는 평생 이 서울시에 누워있어야 할지도 몰랐다.“그래, 그러면 부탁 좀 할게.”권해철은 휴대폰을 꺼내 진서준에게 연락했다.이때 진서준은 방 안에서 수련하고 있었다.휴대전화가 울리자 진서준은 천천히 눈을 떠 침대맡에 놓였던 휴대전화를 들었다.“무슨 일이죠?”진서준이 물었다.“진서준 씨, 제 친구가 진서준 씨를 뵙고 싶어 하는데 혹시 시간 있으신가요?”권해철은 아주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그의 스승님을 대할 때처럼 말이다.권해철의 사문으로 가기 위해서는 권해철의 안내가 필요했고, 권해철의 부탁하는 태도도 무척 공손했기 때문에 진서준은 거절하기 어려웠다.“네! 언제 어디서 볼까요?”진서준이 물었다.진서준이 승낙하자 권해철은 웃으며 말했다.“오늘 점심에 플라잉 호텔에서 볼까요?”“좋아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진서준 씨.”전화를 끊은 뒤 권해철은 미소 띤 얼굴로 우소영을 바라보았다.“너도 들었지?”우소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아한 듯 물었다.“들었어. 그런데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주 젊은 것 같던데?”우소영이 이런 의문을 품는 것은 정상이었다.그녀가 만났던 사람들 중 종사 수준에 다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50대였다.40대에 종사 경지에 이르러도 천재라고 불릴만했다.그런데 진서준의 목소리는 40대도 되지 않은 듯했다.권해철은 피식 웃었다.“일단은 얘기해주지 않겠어. 진 마스터님을 뵙게 되면 넌 아주 깜짝 놀라게 될 거야!”다른 한편, 진서준은 권해철의 전화 때문에 수련을 방해받게 되자 계속해 수련할 마음이 사라졌다.“점심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 회사에 가서
현대 사회에서 개인 기업 중 사장이 직원을 사람처럼 대우해 주는 곳은 드물었다.화진에서는 90% 이상이 개인 기업인데 대부분이 일주일에 겨우 하루 쉬었다. 그리고 4대 보험도 없고 야근해도 야근 수당이 없었다.유정과 고한영 두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그들도 착취당해 본 적이 있었다.그래서 유정은 회사 총괄 매니저가 된 뒤로 곧바로 회사 규칙을 노동법에 부합되게 수정하고 그것을 그대로 실시했다.이로 인해 회사 직원들의 업무 열정이 치솟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직장을 옮기기를 원했다.회사 업무 성적도 전보다 훨씬 더 좋았다.“그쪽은 어느 학교 졸업했어요?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길래 이력서도 가지고 오지 않은 거예요?”진서준의 앞에 있던 청년이 물었다.“저요? 그냥 평범한 대학 나왔는데요.”진서준이 대답했다.“그러면 가망이 없겠네요.”그 청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저기 앞에 치마 입은 여자 보이죠? 그리고 저 앞에 안경 낀 남자 봤어요? 둘 다 명문대 졸업생이래요!”두 사람이 명문대 출신이라고 말할 때 청년의 얼굴에는 부러운 기색이 역력했다.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학교로 한 사람의 능력을 판단한다.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때 정장을 입은 여자가 걸어와서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이력서는 저한테 주시면 돼요. 잠시 뒤에 제가 순서에 따라 호명하면 안으로 들어가서 면접 보시면 됩니다.”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곧바로 자기 이력서를 순서대로 바쳤다.“안녕하세요, 이력서를 준비하지 않으신 건가요?”진서준이 가만히 있자 여자가 물었다.“전 이력서 없습니다. 잠시 뒤에 그냥 제 이름 불러주시면 돼요. 전 진서준이라고 합니다.”진서준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여자는 면접 보러 오는데 이력서를 챙기지 않은 사람은 처음 봤다.그녀는 잠깐 의아해하더니 이내 몸을 돌려 떠났다.“시간 낭비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이력서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어떤 회사가 뽑겠어요?”진서준은
“알겠어요. 돌려줄게요.”진서준은 껌을 청년에게 돌려준 뒤 곧장 회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줄 서서 면접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의아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안내데스크 직원이 진서준을 알아봤다.“대표님, 오셨어요?”“유정 씨는 어디 있어요?”진서준이 물었다.“사무실에 계세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안내데스크 직원이 앞에서 진서준을 안내하여 그를 유정의 사무실로 이끌었다.“유 매니저님, 진 대표님께서 오셨어요!”진서준이 왔다는 말에 유정은 기쁜 얼굴로 곧바로 그를 맞이했다.“서준 씨, 여긴 어쩐 일이세요?”“회사 어떤지 보러 왔어요.”진서준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저랑 고한영 씨는 아직 연구 계단에 있긴 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둘 꼭 회사를 망칠게요!”유정이 장담하며 말했다.“두 사람 회사를 망친 게 아니라 오히려 회사를 아주 잘 관리했어요.“진서준이 칭찬했다.좋은 회사인지 나쁜 회사인지는 채용할 때 사람이 얼마나 왔는지를 보면 알 수 있었다.쓰레기 같은 회사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좋은 회사는 사람이 차 넘치는 법이다.“별일 없으면 난 먼저 가볼게요. 앞으로 업무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 나한테 연락해요.”진서준은 유정에게 당부했다.“특히 저번 같은 일은 절대 다시 발생해서는 안 돼요!”저번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 유정은 두려움이 들었다.만약 진서준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그녀와 고한영은 틀림없이 짐승 같은 그 자식에게 능욕당했을 것이다.“내가 배웅할게요!”유정은 진서준의 곁을 따르며 그를 회사 밖까지 배웅했다.회사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면접 예정자들은 의아했다.“참, 유정 씨. 우리 회사는 인재를 채용할 때 과하게 능력 있는 사람은 채용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인성만 바르면 돼요. 바람에 따라 돛을 다는 사람은 절대 채용하지 말아요!”진서준이 갑자기 말했다.진서준은 유정과 고한영 두 사람이 회사를 이렇게 크게 키우게 할 생각이 없었다. 회사가 그저
진서준은 경비원과 함께 주차장에 도착했고 경비원은 진서준의 마이바흐가 갇혀 있는 걸 발견했다.진서준의 차를 막은 차도 비싼 차인 걸 발견한 경비원은 난처해했다.“혹시 조금만 기다리시겠어요? 어쩌면 금방 나올지도 모르잖아요.”진서준은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제 시간은 귀합니다. 당장 이 차 차주 불러오세요.”경비원은 자신이 진서준처럼 돈 많은 사람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잠시만요, 지금 당장 가서 조회해 보겠습니다.”곧 경비원은 마세라티 차주를 알아냈다.“선생님, 이건 차주분 전화번호입니다. 직접 연락해 보시겠어요?”진서준은 휴대전화를 꺼내 상대에게 연락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전화 건너편 여자의 말투는 굉장히 거칠었다. 마치 진서준이 그녀의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진서준은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차 번호 021 차주 맞죠?”“네, 전데요. 왜요?”“그쪽 차가 제 차를 막고 있어요. 내려와서 차 좀 빼주세요.”“기다려요!”상대방은 그렇게 말한 뒤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진서준은 조금 화가 났다. 차를 막은 건 그녀인데 전혀 미안하지 않은 듯했다.그러나 진서준은 그 여자와 쓸데없이 다투고 싶지 않았다.약 5분을 기다린 진서준은 조금 짜증 났다.사람들이 붐비는 출퇴근 시간도 아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3분이면 충분했다.진서준은 곧 여자에게 또 전화를 걸었고 여자는 한참이 지나서야 전화를 받았다.“내려왔어요?”진서준의 말투가 조금 거칠어졌다.“뭐가 그렇게 급해요? 난 일을 아직 못 끝냈어요. 기다리지 못하겠으면 그냥 택시 타고 가요!”여자는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자 성질이 나서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를 끊은 뒤 진서준은 바로 조성우에게 연락했다.“진서준 씨, 무슨 일이세요?”조성우는 거의 1초 만에 전화를 받았다.“견인차 한 대 여기로 보내요. 그리고 허머 몇 대를 내가 보내준 위치로 보내요.”조성우는 원인조차 묻지 않고 곧장 동의했다.조성우의
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냉소했다.“조금 전에 내 차를 막았을 때 지금 같은 상황은 생각해 본 적 없죠? 그리고 전 기회를 준 적이 있어요. 기회를 아끼지 않은 건 그쪽이에요.”진서준은 조해영처럼 막무가내인 사람을 절대 봐주지 않았다.조해영은 그에게 알아서 하라고 했으니 그녀 또한 알아서 차를 빼야 했다.허머 세 대라서 견인차로도 차를 빼내기는 힘들었다.“빌어먹을, 딱 기다려요!”조해영은 화를 내며 욕하더니 전화를 끊고 곧바로 큰아버지에게 연락했다.“큰아버지, 누가 제 차를 나오지 못하게 막아놨어요. 지금 견인차 두 대 보내주세요!”조성우은 그 말을 듣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곧 견인차 두 대를 보냈다.견인차 두 대가 겨우겨우 허머 세 대를 빼내고 조해영의 마세라티를 위해 길을 내줬다.“더는 내 눈에 띄지 마. 그렇지 않으면 당신 차 완전히 박살 내버릴 테니까.”조해영은 스포츠카 안에서 이를 악물며 욕했다.이때 조해영의 전화가 울렸다.황은비에게서 걸려 온 전화인 걸 확인한 그녀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나 곧 플라잉 호텔에 도착해!”오늘은 하민규의 생일이었고 하민규는 전처럼 과하게 준비하고 싶지는 않아서 플라잉 호텔에서 생일 파티를 열기로 했다.사실 하민규는 진서준을 초대하고 싶었으나 혹시라도 그가 오지 않을까 걱정되어 그에게 얘기하지 않았다.한가하던 진서준은 플라잉 호텔에 도착하여 주차를 해놓은 뒤 로비에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진서준 씨!”누군가 자신을 부르자 진서준은 고개를 들어 그곳을 보았다. 황은비가 미소 띤 얼굴로 빠르게 그를 향해 오고 있었다.“황은비 씨.”진서준이 일어나서 인사를 건넸다.“하민규 씨 생일 파티에 참석하러 온 건가요?”황은비는 기쁜 얼굴로 물었다.진서준이 설명했다.“아뇨. 다른 분이랑 이곳에서 같이 식사하기로 했어요.”진서준의 설명을 들은 황은비는 눈알을 굴렸다.“저랑 먼저 같이 올라가실래요? 하민규 씨 진서준 씨가 자기 생일 파티에 온 걸 알면 틀림없이 기뻐할 거예요!”“
조해영은 좌우를 둘러보더니 손바닥만 한 바위를 찾아 줍고 그것으로 마이바흐를 내리쳤다.바위로 내리치자 새것이던 마이바흐 위에 흰색 스크래치가 났다.몇 번 반복하다 보니 마이바흐의 보닛에 흠집이 났다. 조해영은 매우 힘들었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플라잉 호텔의 경비원이 마침 그곳에 도착해서 조해영이 차를 바위로 내리치는 걸 막으려고 했다.“때마침 잘 왔어요. 이 차를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주면 내가 200만 원 줄게요!”조해영은 경비원을 보자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흥분했다.그곳에 도착한 경비원들은 조해영의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그들은 마이바흐 브랜드 로고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방금 뽑은 지 얼마 안 되는 새 차 같았다.그들이 이 차를 망가뜨린다면 분명 차주가 그들을 찾으러 올 것이다.마이바흐 같은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절대 그들 같은 평범한 경비원이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내가 하라고 하잖아요? 못 들었어요?”경비원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 걸 본 조해영은 정신 나간 사자처럼 막 소리를 질러댔다.“이 차는 마이바흐예요. 비싼 건 4억쯤 돼요.”경비원이 설득했다.“겨우 4억이잖아요. 내 차는 8억이에요. 이 차 두 배라고요!”조해영은 옆에 있는 마세라티를 가리키며 말했다.조해영도 있는 집 자식인 걸 본 경비원은 난감했다.마이바흐를 망가뜨린다면 마이바흐 차주가 화를 낼 것이다.하지만 마이바흐를 가만히 놔둔다면 눈앞의 호랑이처럼 사나운 여자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망가뜨려도 당신들 보고 배상하라고 하지는 않을게요!“조해영이 사납게 말했다.”우리 큰아버지는 서울시 자동차 대리점 사장이에요. 겨우 마이바흐 한 대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요!”조해영의 신분이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된 경비원들은 망설이지 않고 배트를 들어 진서준의 마이바흐를 부수기 시작했다.쨍그랑…마이바흐의 차창 유리가 전부 박살 났고 차 문도 너덜너덜해졌다. 조해영은 심지어 자신의 샤넬 립스틱을 꺼내 마이바흐 보닛 위에
“흥!”조해영은 차갑게 코웃음치더니 플라잉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팀장님, 이제 어떡해요!”“일단 이 일을 사장님께 알려야 해.”경비팀장이 어쩔 수 없다는 어조로 말했다.조해영이 룸에 도착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도착한 상태였다.비록 조해영은 진서준의 차를 박살 냈지만 진서준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지 못했다.“조해영, 왜 이렇게 늦은 거야?”“말도 마. 주차장에서 어떤 멍청한 놈이 내 차를 막아놨지 뭐야?”조해영은 자신의 명품 백을 소파 위로 던지며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뭐? 어떤 사람이 감히 네 차를 막은 거야?”“요즘엔 진짜 별별 사람이 다 있다니까.”조해영은 물을 마시면서 투덜댔다.진서준도 차가 막힌 적이 있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죠. 주차장에서 남의 차를 가로막는 사람은 확실히 머리에 문제가 있죠.”낯선 남자 한 명이 자신의 말에 동의하자 조해영은 조금 어리둥절했다.“저 사람 누구야? 난 본 적 없는데?”조해영의 예의 없는 태도에 하민규와 황은비의 안색이 달라졌다.“조해영, 이분은 진서준 선생님이야. 말조심해.”“진서준 선생님?”조해영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우리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조해영은 왜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저렇게 존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진서준은 덤덤히 웃었다.“그냥 편하게 불러요. 선생님이라고 부를 필요 없어요. 그렇게 부르면 오히려 제가 나이 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황보식과 명문가 가주들과 자주 만나다 보니 진서준은 자신에게 활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진서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인데.”조해영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조성우는 진서준의 용서를 얻은 뒤 곧바로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는 절대 진서준이라는 젊은이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었다.만약 진서준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가족이라고 해도 어림없다고 했다.조해영은 당시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힐끗 보기만 해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 뿐이었다.“우선 민규 형님
도지아는 그 표정이 왠지 묘하게 신경 쓰였다.부모님이 나가자 집 안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우리 집에 손님이 온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부모님이 좀 들뜨셨나 봐.”도지아가 무심하게 해명했다.“괜찮아, 이해해. 우리 집도 손님 올 때마다 우리 엄마 엄청 챙기시거든.”진서준이 웃으며 대응했다.“맞다, 아까 우리 동생 봤을 때 뭔가 이상한 점 못 느꼈어?”도지아가 본론을 꺼냈다.“이상한 점? 글쎄, 딱히 못 느꼈는데?”진서준이 고개를 저었다.“애초에 네 동생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니까.”“아까 네가 유흥업소에 갇혔을 때, 걔가 엄승현 찾아가서 인맥을 동원해 널 구해달라고 부탁했어.”도지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우리 동생이 진짜 요즘 이상해. 말로는 독설을 퍼붓는데 속은 여전히 착해.”“혹시 일부러 너희를 멀리하는 거거나 너희를 보호하려는 거 아닐까?”진서준이 나름대로 추측했다.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뭔가 압박을 받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걸 수도 있었다.“설마 민수가 잡혀갔을 때 하경범 부하들이 협박이라도 한 걸까?”도지아도 진서준의 추측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날, 도지아의 부모와 도민수는 따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도민수가 정확히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전화해서 집에 오라고 해야겠어.”도지아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지만 몇 번을 걸어도 도민수가 받지 않았고 나중에는 아예 꺼버렸다.“이 자식이 정말...”도지아가 인상을 찌푸렸다.“설령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한테는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일단 그냥 내버려둬. 말하고 싶으면 알아서 말하겠지.”진서준이 위로하듯 말했다.한편, 노래방의 한 방에서 도민수는 테이블에 엎드려 하얀 가루를 탐욕스럽게 들이마시고 있었다.그러고는 완전히 취한 듯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어때? 기분 좋아?”노란 머리 청년이 민수의 머리채를 잡고 비열하게 웃었다.
다들 그 말을 듣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진서준이 아무런 상처도 없이 깔끔한 상태로 나올 수 있는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지 않았다.엄승현은 눈을 굴리더니 이내 눈치 빠르게 잽싸게 뛰어가 아부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호랑이님, 아까 소란을 일으킨 그놈 찾으시는 거죠? 제가 어디 갔는지 압니다. 당장 안내해 드릴게요.”“뭐라고?”조호의 얼굴이 싹 어두워졌고 당장이라도 사람을 찢어버릴 눈빛이 번뜩였다.엄승현은 그 모습을 보고 자기 예상이 맞았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호랑이 씨, 그놈 진짜 제대로 혼내줘야 합니다. 원하시면 제가 지금 바로 길을 안내할게요.”“닥쳐, 이놈아.”철썩!조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엄승현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미친놈아, 죽고 싶으면 혼자 뒤져. 왜 애꿎은 사람까지 끌어들여? 꺼져!”힘들게 저 귀신 같은 무시무시한 녀석을 보내버렸는데 어디서 굴러온 개념 없는 놈이 다시 자기를 이끌고 저 녀석에게로 데려가겠다는 거지?조씨 가문 거물도 없는데 조호 본인이 감히 다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조호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씩씩대며 사람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엄승현은 싸늘한 밤공기 속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뭐, 뭐야? 호랑이가 지금 겁먹은 거야?”“이상하네, 저놈이 대단한 배경이라도 있나?”“말도 안 돼. 저놈 그냥 외지인이잖아. 배경은 개뿔.”하지만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엄승현은 씩씩거리며 이를 갈았다.“틀림없이 호랑이가 직접 손보려고 일부러 저러는 거야. 동부 구역은 호랑이 구역이잖아. 근데 내가 길을 안내하면 체면이 안 서잖아. 소문이 퍼지면 체면도 구겨질 거고.”“승현 오빠 말이 맞는 것 같아요.”다들 엄승현의 말에 공감하자 엄승현은 자신감을 되찾고 비웃었다.“두고 봐. 오늘 밤 도민수 그 녀석 가족이 다 뒤질 거야.”20분 후.진서준과 도지아는 차를 타고 한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건물에 들어선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도지아 집 문 앞에 섰다.“엄마
갑자기 누군가 봉쇄된 유흥업소에서 걸어 나오니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어라? 진짜 저 녀석이네? 근데 왜 멀쩡하지?”엄승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상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조호가 직접 나서서 판을 깔았다면 피를 안 보고 끝날 리가 없었다.진서준이 죽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만신창이가 됐어야 정상인데 지금 모습은 아무리 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깔끔했다.“어서 나랑 가서 진서준한테 감사하다고 하자.”도지아가 도민수를 잡아끌었다.“가고 싶으면 혼자 가. 난 안 가.”도민수의 말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뭐야, 너 왜 그래? 아까는 진서준을 누구보다 더 걱정했잖아?”동생의 앞뒤 다른 태도에 도지아는 눈살을 찌푸렸다.“닥치고 신경 꺼.”도민수는 누나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동생의 거친 행동에 도지아는 어쩔 수 없이 혼자 진서준을 찾아갔다.“이상하네, 저 녀석 진짜로 멀쩡하잖아?”엄승현 일행은 의아해하며 웅성거렸다.“승현 오빠, 혹시 어떻게 된 일인지 아세요?”“나도 몰라.”엄승현은 고개를 저었다.“혹시 저 녀석이 호랑이한테 뭔가 큰 보상을 약속한 거 아닐까요? 호랑이가 저 녀석을 저렇게 고분고분 풀어 줄 이유가 없잖아요?”단발머리 여자가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가능성 있어. 아니면 어떻게 호랑이의 구역에서 저렇게 멀쩡하게 나왔겠어?”“그래, 직접 물어보자.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떠나 진서준 쪽으로 걸어갔다.“진서준, 괜찮아?”도지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내가 다친 것처럼 보여?”진서준이 홀가분한 말투로 되물었다.“이깟 조무래기 건달도 못 이길 거면 내가 감히 하경범을 건드릴 수 있었겠어?”“그렇긴 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진서준이 어느 정도 실력자인지는 도지아도 잘 몰랐다.황예은에게 슬쩍 떠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무 황당했다.황예은의 입에서 나온 진서준은 거의 만능 인간이었다.세상에 정말 그런 남자가 존재할까?“야, 너 대체 어떻게 호랑
“뭐? 네 개가 되라고?”정장 남자는 이 말을 듣자마자 분노가 폭발했다.“네가 뭔데 우리 아버지를 개 취급해? 거울이나 보고 네 꼴부터 확인해.”조호도 눈살을 찌푸렸다.“그래, 네가 종사인 건 인정해. 하지만 우리 귀도파에도 종사가 없는 게 아니야. 종사라는 이유로 날 얕볼 생각은 하지 마. 그리고 우리 귀도파도 그냥 조직이 아니야. 뒤에 든든한 배경이 있다고.”진서준은 그 말에 흥미를 보였다.“그래? 그럼 너희 귀도파 주인은 누구야?”조호의 입술이 씰룩거렸다.이 청년이 하는 말이 참 기분이 나빴다.진짜 주인이라니, 자기를 개 취급하는 것 같았다.그런데 기분 나쁘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조호가 이렇게 거들먹거릴 수 있는 건 귀도파 뒤에 거물이 있기 때문이었다.“르벨 하씨 가문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조호가 음침한 얼굴로 물었다.익숙한 가문의 이름에 진서준의 눈빛이 가늘어졌다.“결국 하씨 가문에 빌붙은 거였군.”“빌붙다니? 우리 조씨 가문은 단순히 의지하는 게 아니야. 하씨 가문에서 우리 조씨 가문의 대단한 인물을 공양하고 있거든. 그분은 대종사야.”조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그래? 대종사였어? 하씨 가문에서 그 대종사를 공양하고 있어?”진서준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짙은 흥미를 보였다.“그럼 나도 한 번 보고 싶네. 네가 말하는 그 대단한 인물 말이야.”“좋게 말하는데 너 선 넘지 마. 얼른 여기서 나가. 네가 종사라 오늘은 특별히 봐주겠어.”조호는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근데 계속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우리 가문 거물을 보겠다고 떠들면 내가 장담하건대 넌 무조건 죽을 거야.”종사와 대종사는 하늘과 땅 차이처럼 격차가 컸다.이 애송이가 조씨 가문의 거물을 이길 수 있다는 건 조호가 보기엔 한낱 망상일 뿐이었다.“상관없어. 마침 요즘 할 일도 없는데 잘 됐어.”진서준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언제든 너희 집안 그 거물 불러내. 하씨 가문이 공양하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구경 좀 해보자고.”“죽고
“그럼 됐네요.”정장 남자는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흥, 우리 아버지한테 개기는 놈은 죽는 길밖에 없어.”하지만 정장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누군가가 공중을 가르며 정장 남자의 옆으로 날아가더니 벽에 거칠게 처박혔다.“뭐지?”조호 부자가 급히 뒤를 돌아보자 방금 날아간 게 귀도파 정예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지금 그 정예는 죽은 개처럼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뭐야, 이게?”조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조호가 반응하기도 전에 연이어 비명이 울려 퍼졌다.조금 전까지 우쭐대며 다가가던 정예들이 전부 바닥에 나뒹굴며 신음을 내고 있었다.반면, 진서준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이 광경을 본 조호의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몇 초 만에 자기 정예 부하들이 전부 나가떨어졌다.진서준이 설마 이렇게 강력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네 부하들, 영 쓸모가 없는데?”진서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네 차례인가?”조호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이곳 르벨의 고수들은 죄다 알고 있는 조호였지만 이 청년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설마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와 귀도파와 시비를 걸려는 놈인가?“대체 넌 누구야?”조호가 쌀쌀하게 물었다.“지금에서야 내 신분이 궁금해졌어? 늦어도 한참 늦었어.”진서준이 여유롭게 대답했다.“경고하지. 르벨 동부 구역은 내 구역이야. 설령 네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해도 내 구역에서 깽판 치면 살아 나가지 못할 거야.”조호가 굳은 얼굴로 위협했다.“그래? 그럼 네가 어떻게 날 못 나가게 하는지 한번 보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었다.조호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네가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총알은 못 피하겠지?”옆에서 정장 남자도 한숨을 돌리며 비웃었다.“방금까지 그렇게 까불더니 총 앞에서도 한번 까불어 봐.”지금 시대에서 총을 손에 쥔 자가 곧 생사를 결정하는 법이다.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일반인은 총알 한 방이면 끝장
“문 닫아, 전원 퇴장시켜.”조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즉시 움직였다.순식간에 유흥업소에서 즐기던 사람들이 전부 나갔고 유흥업소 전체가 텅 비었다.감시 카메라는 전부 끊겼고 유흥업소의 모든 출입구가 봉쇄됐다.이유도 모른 채 쫓겨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웅성거렸다.“대체 누가 호랑이 구역에서 깽판 친 거야?”“호랑이가 모든 사람을 내쫓으면 그건 누군가 죽는다는 뜻인데?”“조용히 살면 안 돼? 왜 하필 호랑이를 잘못 건드려서...”사람들은 몇 마디 수군거리고 이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이봐 청년, 생각보다 꽤 침착해 보이네.”조호가 진서준을 보며 의외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바지에 지렸을 텐데 이 녀석은 소파에 편하게 앉아 꼼짝도 안 했다.“하지만 오늘이 네 제삿날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조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제삿날이라고? 나한테 하는 소리 맞아?”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우리 아버지가 자기한테 하는 소리라도 된다는 거야?”정장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아까 그렇게 잘난 척했잖아. 지금도 그렇게 까불어 봐.”진서준은 정장 남자를 한번 쓱 보더니 진지하게 경고했다.“입단속 잘해. 안 그러면 조금 있다가 평생 말할 수 없게 될 거니까.”그 말에 조호의 눈이 가늘어졌다.“이 자식이 정말 건방지네. 좋아, 네 오만함을 봐서 특별히 기회를 주지. 스스로 팔 하나 자르고 무릎 꿇고 사과해. 그럼 네 숨통을 끊어놓지 않을게.”조호가 칼을 꺼내 진서준 앞에 던졌다.그런데 진서준은 가볍게 웃더니 주머니에서 천기각 각주의 옥패를 꺼냈다.“이거 본 적 있어?”“그냥 싸구려 옥패 아니야? 뭐야, 돈으로 해결하려는 거야? 늦었다, 이 자식아.”정장 남자가 실소를 터뜨렸다.조호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자 진서준은 옥패를 집어넣었다.이 무리는 천기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그렇겠지. 애초에 그 노인네가 지하 세계를 누빈 것도 아닌데 이런 조폭들을 천기각에 끌어들이진
“됐어, 다들 그만 좀 해.”이때 엄승현이 나서서 중재하기 시작했다.“다들 아까 일 때문에 민감해진 것 같은데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대처하자.”“엄승현, 너 인맥 넓잖아? 아까 그 사람 구해낼 수 있어?”도민수가 갑자기 물었다.“뭐? 무슨 소리야? 나보고 호랑이 손아귀에서 사람을 빼내라고?”엄승현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이 녀석이 호랑이의 아들을 때려놓고 이제 와서 엄승현에게 사람을 구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사실 방금 엄승현이 자기 목숨 건진 것도 기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민수야, 그럴 필요 없어. 진서준은 괜찮을 거야.”도지아가 조용히 말했다.“헛소리 마. 상대는 호랑이라고. 동부 구역에서 호랑이는 그야말로 지하의 황제야.”도민수는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분한테 찍히면 대단한 사람이 나서지 않는 이상 무조건 죽는다고.”자기 동생이 아직도 착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아채자 도지아는 가슴이 뭉클했다.“내가 왜 나서야 하는데? 나랑 아무 상관도 없잖아.”엄승현이 싸늘하게 말했다.사실 도와주고 싶어도 도무지 도울 수 없었다.호랑이가 마음만 먹으면 엄씨 가문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적어도 저 사람은 우리를 구해줬어.”도민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팩트를 말했다.“내가 구해달라고 했어? 애초에 저놈이 괜히 주먹을 휘둘러서 일이 이렇게 커진 거잖아. 저놈이 흥분하지만 않았다면 우린 진작에 저기서 나왔어.”엄승현이 뻔뻔하게 말했다.“맞아, 자기가 영웅이라도 된 줄 아나 봐? 이제 곧 처맞을 텐데 아주 꼴좋네.”단발머리 여자가 대놓고 비웃었다.그들의 차가운 태도에 도민수는 분노가 치밀었다.“민수야, 넌 나를 못 믿는 거야? 내가 진서준이 무사할 거라고 분명히 말했잖아.”도지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누나를 믿으라고?”도민수가 코웃음을 쳤다.“내가 어떻게 누나를 믿어? 며칠 전 일은 벌써 잊었어?”도지아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당연히 잊지 않았어. 근데 결국 다들 무사히 돌아왔잖아.”“무사히 돌아왔다고?”
진서준이 호랑이의 아들까지 후려치는 걸 보자 사람들은 완전히 얼어붙었다.“너 미쳤어? 조 도련님은 호랑이 아들이라고. 이분을 때린 건 곧 호랑이의 얼굴에 뺨을 때린 거랑 다름없다고.”엄승현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조 도련님, 복수할 대상을 잘못 찾으면 안 됩니다. 문제를 일으킨 건 저 사람들이지 우린 아무 상관 없습니다.”“맞아요, 조 도련님. 저희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정장 남자에게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이 쪽팔린 놈들아, 다 꺼져.”정장 남자가 침을 뱉으며 욕설을 내뱉었다.이렇게까지 비굴한 놈들은 정장 남자도 처음 봤다.“어서 가자, 다들 서둘러.”사람들은 구세주를 만난 듯 기쁨에 찬 얼굴로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너희도 가. 여긴 나 혼자로도 충분해.”진서준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그래도...”도지아는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여기 남아봐야 나한테 짐만 돼. 그냥 가.”진서준이 단호하게 다시 축객령을 내렸다.그 말에 은근히 기분이 상한 도지아는 진서준을 살짝 째려봤다.“알겠어. 조심해. 가자, 민수야. 여긴 진서준한테 맡기자.”도지아는 도민수의 팔을 끌며 방을 나섰다.같은 시각, 정장 남자도 전화를 마쳤다.정장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진서준을 노려봤다.“어디 한번 보자. 네가 얼마나 배짱 좋은 놈인지. 우리 아버지가 오시면 그때도 지금처럼 잘난 척할 수 있길 바랄게.”진서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리고 조호가 오기를 기다렸다.한편, 엄승현 일행은 유흥업소 건너편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그들은 창문을 통해 건물 앞에 줄지어 선 승합차들을 확인했다.그 차에서 강철로 된 칼을 든 건장한 남자들이 쏟아져 나와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어휴, 빨리 도망쳐서 다행이야. 조금만 늦었다면 우린 꼼짝없이 죽었어.”그 광경을 보며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아까 정장 남자가 엄승현 일행을 놔주지 않았다면 저 방에서 영영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야, 도민수. 그냥 네 누나한테 조 도련님이랑 한 달만 있으라고 해. 그럼 우린 다 여기서 나갈 수 있잖아.”“그래, 네 누나가 조 도련님이랑 잘 되면 넌 조 도련님 처남이 되는 거야. 그건 일반 신분이 아니야.”“맞아, 너희 집안이 이 기회를 잡고 르벨에서 우뚝 서는 거야.”다들 자기 안전을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민수를 설득하려 했다.“너희들 인간 맞아? 우리 누나를 희생해서 너희 목숨을 구하겠다고?”도민수는 눈을 부릅뜨고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자기 친구들이 이 정도로 역겨운 사람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이 일 애초에 너 때문에 일어난 거잖아. 네가 조 도련님을 때리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 꼴 났겠어?”정장 남자가 엉덩이를 만졌던 여자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아까 저놈이 네 엉덩이 만졌을 때, 네가 먼저 성추행이라고 소리쳤잖아?”도민수는 어이가 없었다.아까 기껏 도와줬더니 지금 와서 오히려 자기를 원망하고 있었다.정말 배은망덕하긴 짝이 없었다.“그때 저 사람이 조 도련님인 줄 알았으면 난 절대 그런 말 안 했어.”여자가 당당하게 반박했다.“너희들 정말 대박이다.”도민수는 분통이 터져 미칠 것 같았다.“너희랑 같은 학교 다녔다는 게 진짜 내 인생 최대의 수치야.”“조 도련님, 우리 모두 도민수 누나가 조 도련님을 모시는 걸로 동의했어요. 그러니 제발 우리를 풀어주세요.”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도지아 역시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고 이 사람들이 역겨워 토할 것만 같았다.“진서준, 부탁할게.”도지아는 진서준을 바라봤다.“알았어. 넌 먼저 동생을 데리고 나가 있어.”진서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도민수의 병을 봐주는 거였는데 주먹을 또 휘두르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다른 놈들은 몰라도 이 여자는 못 건드려.”진서준은 무심한 말투로 정장 남자에게 경고했다.“넌 또 뭐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정장 남자는 진서준의 건방진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