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영은 좌우를 둘러보더니 손바닥만 한 바위를 찾아 줍고 그것으로 마이바흐를 내리쳤다.바위로 내리치자 새것이던 마이바흐 위에 흰색 스크래치가 났다.몇 번 반복하다 보니 마이바흐의 보닛에 흠집이 났다. 조해영은 매우 힘들었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플라잉 호텔의 경비원이 마침 그곳에 도착해서 조해영이 차를 바위로 내리치는 걸 막으려고 했다.“때마침 잘 왔어요. 이 차를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주면 내가 200만 원 줄게요!”조해영은 경비원을 보자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흥분했다.그곳에 도착한 경비원들은 조해영의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그들은 마이바흐 브랜드 로고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방금 뽑은 지 얼마 안 되는 새 차 같았다.그들이 이 차를 망가뜨린다면 분명 차주가 그들을 찾으러 올 것이다.마이바흐 같은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절대 그들 같은 평범한 경비원이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내가 하라고 하잖아요? 못 들었어요?”경비원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 걸 본 조해영은 정신 나간 사자처럼 막 소리를 질러댔다.“이 차는 마이바흐예요. 비싼 건 4억쯤 돼요.”경비원이 설득했다.“겨우 4억이잖아요. 내 차는 8억이에요. 이 차 두 배라고요!”조해영은 옆에 있는 마세라티를 가리키며 말했다.조해영도 있는 집 자식인 걸 본 경비원은 난감했다.마이바흐를 망가뜨린다면 마이바흐 차주가 화를 낼 것이다.하지만 마이바흐를 가만히 놔둔다면 눈앞의 호랑이처럼 사나운 여자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망가뜨려도 당신들 보고 배상하라고 하지는 않을게요!“조해영이 사납게 말했다.”우리 큰아버지는 서울시 자동차 대리점 사장이에요. 겨우 마이바흐 한 대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요!”조해영의 신분이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된 경비원들은 망설이지 않고 배트를 들어 진서준의 마이바흐를 부수기 시작했다.쨍그랑…마이바흐의 차창 유리가 전부 박살 났고 차 문도 너덜너덜해졌다. 조해영은 심지어 자신의 샤넬 립스틱을 꺼내 마이바흐 보닛 위에
“흥!”조해영은 차갑게 코웃음치더니 플라잉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팀장님, 이제 어떡해요!”“일단 이 일을 사장님께 알려야 해.”경비팀장이 어쩔 수 없다는 어조로 말했다.조해영이 룸에 도착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도착한 상태였다.비록 조해영은 진서준의 차를 박살 냈지만 진서준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지 못했다.“조해영, 왜 이렇게 늦은 거야?”“말도 마. 주차장에서 어떤 멍청한 놈이 내 차를 막아놨지 뭐야?”조해영은 자신의 명품 백을 소파 위로 던지며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뭐? 어떤 사람이 감히 네 차를 막은 거야?”“요즘엔 진짜 별별 사람이 다 있다니까.”조해영은 물을 마시면서 투덜댔다.진서준도 차가 막힌 적이 있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죠. 주차장에서 남의 차를 가로막는 사람은 확실히 머리에 문제가 있죠.”낯선 남자 한 명이 자신의 말에 동의하자 조해영은 조금 어리둥절했다.“저 사람 누구야? 난 본 적 없는데?”조해영의 예의 없는 태도에 하민규와 황은비의 안색이 달라졌다.“조해영, 이분은 진서준 선생님이야. 말조심해.”“진서준 선생님?”조해영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우리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조해영은 왜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저렇게 존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진서준은 덤덤히 웃었다.“그냥 편하게 불러요. 선생님이라고 부를 필요 없어요. 그렇게 부르면 오히려 제가 나이 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황보식과 명문가 가주들과 자주 만나다 보니 진서준은 자신에게 활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진서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인데.”조해영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조성우는 진서준의 용서를 얻은 뒤 곧바로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는 절대 진서준이라는 젊은이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었다.만약 진서준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가족이라고 해도 어림없다고 했다.조해영은 당시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힐끗 보기만 해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 뿐이었다.“우선 민규 형님
갑작스럽게 방해를 받게 되자 하민규는 불쾌한 어조로 물었다.“누구예요?”“호텔 매니접니다. 안에 있는 한 고객님께서 나와주셔야 할 것 같아서요.”플라잉 호텔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는 안에 있는 사람이 전부 돈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이름을 예약한 사람은 그가 건드릴 수 없는 재벌가 자제였다.조금 전 자기 부하가 마이바흐를 망가뜨린 걸 알게 된 호텔 매니저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룸 문이 열리자 호텔 매니저는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안녕하세요, 하민규 고객님.”“누구를 찾아온 거예요?”하민규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매니저는 고개를 들어 쓱 훑어보더니 진서준을 보고 다급히 말했다.“저분을 찾아왔습니다.”진서준은 권해철 등 사람들이 도착해 매니저를 시켜 자신을 데리러 온 줄 알아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먼저 드세요. 제가 나가볼게요.”진서준이 매니저를 따라 룸에서 나왔을 때 매니저는 진서준을 데리고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그가 자신을 룸이 아니라 사무실로 데려가자 진서준은 조금 의아했다.“왜 여기로 온 거죠?”“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 차가 박살 났어요.”호텔 매니저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네? 무슨 뜻이에요?”진서준은 눈빛이 달라지더니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그의 차는 주차장에 있는데 왜 갑자기 박살 났단 말인가?“저희 호텔 경비원이 고객님 차를 망가뜨렸습니다.”호텔 매니저가 대답했다.그 순간 진서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여기 호텔 경비원은 고객의 차를 부수나요? 호텔이 좀 크다고 이렇게 사람을 괴롭혀도 돼요?”진서준이 화를 내며 호통을 쳤다.꽤 오래 살았지만 진서준은 이렇게 이상한 호텔은 처음이었다.“아닙니다, 고객님. 한 여자 고객님께서 시킨 일이라고 합니다. 차를 부수면 두당 200만 원을 주겠다면서요.”진서준의 엄청난 기세에 호텔 매니저는 겁을 먹고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진서준은 매니저의 말에 화가 나다 못해 헛웃음이 났다. 겨우
진서준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오늘은 하민규의 생일이고 이렇게 중도에 자리를 뜬다면 불만스러운 티를 내지는 않겠지만 분명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다.“자, 그러면 두 분 잠깐만 기다려주세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하민규가 있는 룸으로 돌아왔다.“서준 형님, 괜찮은 거예요?”하민규는 진서준이 돌아오자 한 마디 물었다.“별거 아니에요. 그냥 누군가 내 차를 부쉈더라고요.”진서준은 손을 저었다.사람들은 그 말을 듣더니 마치 큰 적이라도 만난 듯 순식간에 벌떡 일어났다.“젠장, 죽고 싶은가 보네요. 감히 서준 형님의 차를 때려 부수다뇨!”하민규는 식탁을 내리치면서 화를 냈다.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화를 내자 조해영도 따라서 욕했다.“그런 사람은 두 손을 부러뜨려야 해요.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말이죠!”다른 사람들도 진서준의 차를 부순 사람을 욕했다.“됐어요. 이런 사소한 일로 우리의 기분을 망쳐서는 안 되죠. 계속 술 마시자고요.”진서준은 웃으면서 앉으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이내 룸 안의 분위기는 다시 좋아졌다.다른 한편, 권해철과 넋이 나간 우소영은 다른 룸으로 들어갔다.우소영은 한참을 넋 놓고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권해철, 날 속이는 건 아니지? 저 젊은이가 정말로 진 마스터라고?”우소영의 말에 권해철의 안색이 달라졌다.“말조심해. 진서준 씨가 그 말을 들었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권해철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나무랐다.권해철의 진지한 모습에 우소영은 서둘러 자신의 입을 막았다.“권해철, 나한테 솔직히 얘기해 봐. 저 청년 대체 나이가 몇이야?”권해철은 손가락 두 개를 내밀더니 또 손가락 다섯 개를 내밀었다.“52?”우소영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25!”“뭐라고?”우소영은 다시 한번 얼이 빠졌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했다.25살에 선천 대종사급의 실력을 갖추다니, 인간이 맞을까?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수련할 수는 없을 것이다.우소영
플라잉 호텔에 도착한 뒤 허사연은 만신창이가 된 마이바흐를 보았다.진서준이 새로 바꾼 차라 허사연은 차 번호판을 봐도 그것이 진서준의 차임을 알지 못했다.“참나, 어이가 없네요. 어떻게 저런 사람을 채용할 수가 있어요? 저렇게 무식한 경비원을 왜 뽑은 거예요?”허사연은 매니저의 사무실에 도착해 그를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사장이 화를 내도 매니저는 그저 듣고 있어야만 했다.허사연은 1분 내내 욕하다가 멈췄다.“그 사람이 내가 직접 사과하기를 바란다고 한 거예요?”허사연이 미간을 구기고 물었다.“네, 사건과 연루된 경비원들을 자르는 것 외에 요구는 이것 하나뿐이라고 했습니다.”매니저가 서둘러 대답했다.허사연은 조금 망설였다. 지금 그녀는 예전과 신분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예전이었다면 차가 망가진 차주에게 사과를 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진서준이 공개한 여친이었다.그녀가 사과를 한다면 진서준이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닌단 말인가?“그 사람에게 사과 안 해도 되냐고 물어봐. 우리 호텔이 마이바흐를 새로 구해서 드릴 거라고 해.”허사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새 마이바흐를 구하려면 호텔 반년간의 수익이 들었다.호텔 매니저는 비록 마음이 아팠지만 대표가 지시한 일이라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네, 지금 바로 가서 물어보겠습니다!”매니저는 빠르게 진서준이 있는 룸에 도착했다.“고객님, 저희 사장님께서 도착하셨는데 따로 얘기 드려도 될까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향했다.“고객님, 사실은 이렇습니다. 저희 사장님께서 직접 사과를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고, 대신 마이바흐 한 대를 사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될까요?”매니저가 조심스럽게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안 돼요. 제 차를 부순 사람에게 제 찻값을 보상하라고 할 겁니다. 그리고 호텔 측의 사과도 꼭 받아야겠어요!”진서준이 강경한 어조로 거절했다.진서준은 겨우 4억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이 호텔 대표의 성의였다.만약 상대방의 태도
하지만 이렇게 마음의 빚을 지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빚진 돈을 갚기는 쉽지만 신세를 갚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됐어요. 하민규 씨를 귀찮게 할 필요는 없죠. 마이바흐 타고 다니는 사람을 내가 처리하지 못할까 봐 그래요?”허사연은 하민규에게 전화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그 사람에게 얘기하세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양보는 2억을 더 배상하는 것뿐이라고. 동의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내 호텔 문 닫게 하는 걸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하세요.”허사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 지금 갈게요.”호텔 매니저는 얼마 쉬지 못하고 다시 달렸다.“또 무슨 일이에요?”다시금 호텔 매니저를 보게 되자 룸 안의 사람들은 짜증이 났다.진서준이 차갑게 말했다.“그냥 여기서 말해요.”“저희 사장님께서 2억을 더 배상해 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최대라고 했습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냉소했다.“지금 내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건가요?”하민규는 진서준이 한 말을 통해 누군가 진서준의 차를 부쉈다는 걸 알게 되었다.그런데 호텔 사장이 겨우 2억을 더 배상해 준다는 말을 듣고 버럭 화를 냈다.“2억이요? 누굴 거지로 아는 건가요? 우리 서준 형님이 돈이 부족해 보여요?”“그러니까요. 서준 형님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이 호텔 더는 운영하지 못할 거예요!”가문의 사업에 별로 관여하지 않는 하민규는 이 호텔이 허씨 일가의 것이라는 걸 몰랐다.하민규는 테이블을 내리치면서 거만하게 말했다.“지금 그쪽 사장 보고 당장 내려와서 우리 서준 형님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라고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오늘 점심에 문을 닫게 될 거니까!”호텔 매니저는 그 말을 듣고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사무실에 도착한 매니저는 곧바로 하민규 등이 한 말을 그대로 허사연에게 전했다.“하민규 그 사람은 이 호텔이 우리 허씨 집안 것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요? 아니면 이 틈을 타서 괜히 시비를 거는 건가요?”허사연은 미간을 구겼다.“내가 직접 가봐야겠어요
조해영은 긴장한 얼굴로 호텔 매니저에게 물었다.“경비팀장을 지시한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요?”호텔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여자랬어요. 마세라티 차준데 성격이 아주 불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아주 쪼잔하대요! 차를 부수면 두당 200만 원씩 주기로 했는데 다 합쳐서 겨우 50만 원 정도 줬다고 하더라고요.”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경비원을 지시해 차를 부수게 한 여자를 욕했다.“정말 경위 없는 여자네요! 마세라티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자기가 아주 잘난 줄 아나 보죠?”“오늘 반드시 그 경위 없는 여자를 잡아서 서준 형님을 위해 정의를 실현해야 해요!”“가요. 가서 그 여자의 마세라티를 부수자고요!”누군가 그 의견을 내자 다른 사람들도 동조했다.다들 재벌가 자제들이라 평소에도 막무가내였다. 게다가 지금은 술도 마셨고, 진서준과 하민규도 있어서 그들은 더 날뛰었다.조해영은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만약 차를 부순 사람이 그녀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끝장이었다.진서준은 조해영을 의심하지 않았다. 전화를 했을 때 조해영의 목소리는 아주 날카롭고 또 화가 난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지금 조해영은 목소리가 사근사근하고 말투가 부드러웠기에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절대 그 두 목소리를 헷갈리지 않을 것이었다.“됐어요. 다들 앉아요. 호텔 측에서 그 여자를 잡은 뒤에 다시 얘기하죠.”진서준은 분개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하민규가 먼저 자리에 앉았고 다른 이들도 다시 원위치로 돌아갔다.“얼른 형수님에게 자리를 내줘야지!”자리에 앉은 하민규는 허사연이 여전히 서 있자 진서준의 곁에 앉아있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그 남자는 그 말을 듣더니 서둘러 일어나 허사연에게 자리를 내줬다.허사연은 그들의 호칭을 신경 쓰지 않았다.그런데 냉정을 되찾고 보니 그들이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조금 쑥스러웠다.“그렇게 막 부르지 마요. 난 형수님이 아니에요...”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허사연은 결국 자리
허사연은 자신이 진서준에게 속았음을 곧 눈치챘다.“이 망할 놈!”진서준의 허벅지를 만지던 허사연의 손이 다시 한번 진서준을 힘껏 꼬집었다.“아이고!”진서준은 아파서 소리를 지르며 억울한 얼굴로 허사연을 바라봤다.“왜 또 꼬집는 거예요?”“내가 왜 꼬집는 것 같아요?”허사연은 이를 악물더니 진서준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양 뺨에 홍조가 피어올랐다.진서준은 뻔뻔하게 말했다.“자기 남자 친구 다리를 마사지해 주는 건 여자 친구로서 의무 아닌가요?”“누가 서준 씨 여자 친구예요? 조금 전에는 순수한 사이라고 하더니...”허사연은 팔짱을 두르며 고개를 홱 돌렸다.“우리는 순수한 사이가 맞죠. 하지만 사연 씨는 제 여자 친구기도 해요. 화내지 말아요. 내가 다리 주물러줄게요.”말하면서 진서준은 손을 뻗어 허사연의 허벅지를 주물렀다.허사연의 허벅지에는 군살이 없었다. 다리 전체가 부드럽고 매끈하여 손을 떼기가 아쉬웠다.진서준이 갑자기 허벅지를 만지자 허사연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마치 술을 한 병 마신 듯 얼굴 전체가 불긋불긋했다.하지만 허사연은 진서준의 얄궂은 손을 쳐내지는 않았다. 진서준이 만지고 있어 허사연은 다리가 찌릿찌릿하고 무척 편안했다.사람들은 진서준과 허사연의 애정행각을 견디기가 힘들었다.“민규 형, 형 다른 볼일 있지? 우린 먼저 가볼게. 서준 형님이랑 형수님 방해하지 말자...”하민규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우리는 먼저 가자.”허사연은 그제야 룸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떠올리고 서둘러 진서준의 손을 쳐냈다. 그녀는 감히 다른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서준 형님, 저희는 먼저 가볼게요. 형님이랑 형수님 얘기 나누시는데 방해하지 않을게요.”하민규는 웃으면서 그들을 데리고 떠났다.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가봐요.”조해영은 그들과 함께 갈 수 없었다. 혹시나 경비원을 시켜 진서준의 차를 박살 낸 것이 본인이라는 걸 그들이 알까 봐서 말이다.“다들 먼저 가요. 난 화장실 좀
황예은이 옷을 다 갈아입자 서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찾으러 갔다.“서준아, 예은 언니가 좀 화난 것 같으니까 이따가 해명할 때 되도록 조심해.”서지은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알았어.”진서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조심하라는 말을 다시 되새겼다.만약 상대가 너무 무례하게 굴면 진서준도 결코 양보하며 자세를 낮추지 않을 예정이었다.문제는 자기가 일부러 실수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들어간 게 아니었다.게다가 진서준은 황예은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다.“진서준 씨, 아까 지은한테서 들었는데, 진서준 씨가 저를 구했다고 하던데요.”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 눈빛과 태도는 마치 왕좌에 앉은 여왕처럼 고압적이었다.이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를 지키며 형성된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황경영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황예은은 회사 업무의 일부를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회사의 지도자, 그것도 여성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그러니 황예은의 성격도 강인하고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다.황예은이 이사장으로 올라간 후, 회사 내에서 황예은의 이름만 들어도 직원들이 벌벌 떨곤 했다.“맞아요. 제가 구했습니다.”진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황예은 맞은편에 앉았다.그런데 앉고 나서야 진서준은 후회했다.황예은이 입은 옷은 목선이 매우 낮았다.비록 황예은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앉아 있었지만 풍만한 가슴이 살짝 드러나 있었고 그 모습이 진서준의 시야에 그대로 들어왔다.당혹한 모습을 감추려고 진서준은 뒤로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이 자세는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황예은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와 대화할 때 이런 태도로 임하는 것은 큰 실례였다.진서준이 소파에 기대 누운 모습을 보자 황예은의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분노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진서준 씨는 다른 사람
별장에서 황예은은 이미 깨어난 상태였다.다만 지금 황예은의 몸에는 옷이 거의 없었다.정확히 말하면 상반신에는 레이스가 달린 검은 속옷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이 속옷은 서지은이 가져온 속옷이었고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이었다.그리고 하반신에는 아까 진서준이 마사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었다.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두 여자는 동시에 문 쪽을 바라보았다.황예은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낯선 남자를 보고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황예은의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지금 심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었다.황예은은 자기 알몸을 보고 있는 이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황예은은 사실 이번이 진서준에게 두 번째로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순간이란 걸 몰랐다.“서준아, 왜 노크하지 않고 그냥 들어왔어...”서지은이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서지은은 진서준이 약왕 이용진과 저녁 식사를 오래 하고 밤늦게나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진서준이 너무 일찍 돌아온 것이다.“언제까지 더 볼 생각이야?”황예은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은 정신을 차리고 코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린 뒤 말했다.“먼저 나가 있을게. 옷을 다 갈아입었으면 날 불러.”진서준이 나간 뒤, 황예은은 서지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 누구야?”“진서준이에요. 제 남자친구거든요.”서지은이 솔직하게 대답하며 한마디 보탰다.“예은 언니, 사실 언니 목숨도 진서준이 구한 거예요.”그 말을 듣자 황예은의 눈에서 뿜어나오던 냉기가 다소 누그러졌다.어쨌든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데 너무 차가운 태도로 대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황예은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내 옷은 네가 벗긴 거야?”서지은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서준이 언니를 치료할 때 상황이 너무 위급해서 먼저 언니를 여기 데려온 거예요. 나도 여기 들어와 치료 과정을 볼 때 서준이 언니를 추행하는 줄 알았어
지금까지도 진서준은 박씨 가문의 의도가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박씨 가문의 일은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지금 진서준의 우선순위는 약재를 구하고 모든 정력을 간첩을 잡는 데 쏟아부어야 했다.호텔을 떠난 진서준은 이용진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30여 분을 달린 끝에 진서준 일행은 마침내 이용진의 장원에 도착했다.이용진의 장원 면적은 서씨 가문 것만큼 크지 않았지만 화려함만큼은 서씨 가문을 능가할 기세였다.각종 명인의 고화와 진귀한 보물들이 온 사방에 진열되어 있었다.이 모든 보물은 하나하나가 최소 10억 이상의 진품이었고 적어도 진서준이 자세히 살펴본 결과 위조품은 하나도 없었다.이 보물들만 해도 자산 가치가 조 단위를 뛰어넘을 될 터였다.“용존님,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말만 하세요.”이용진이 호탕한 어조로 말했다.“난 이런 것들에는 관심 없습니다.”진서준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렇군요...”이용진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돈을 통해 진서준과의 관계를 더 가까이 만들고자 했던 이용진의 계획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진서준과 친분이 두터워지면 나중에 치료를 부탁하기도 훨씬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진서준은 이용진의 속셈을 꿰뚫어 본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약왕님 체내 내상이 다 나으면 매주 두 번씩 무도를 연마하고 한 달에 다른 사람과 한 번 실력을 겨루는 수준으로 수련하면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약왕님 무도 실력도 늘어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앞으로 꼭 용존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이용진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수많은 별장을 지나 진서준은 이용진을 따라 규모가 어마어마한 냉장실로 들어갔다.냉장실 안에는 사람 키 절반 정도 되는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각 기둥 위에는 희귀한 약재들이 놓여 있었고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었다.진서준이 자세히 둘러보니 여기에 진열된 약재는 성약당의 것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희귀성만큼은 성약당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 사람은 바로 어제 서울시에서 체포되었던 박운기였다.진서준 역시 이렇게 빨리 박운기를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다.“운기야, 저 사람 알아?”무리의 선두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박운기를 힐끔 바라보며 물었다.“바로 저놈이 사람들을 이끌고 내 계획을 망쳤습니다.”박운기가 이를 갈며 말했다.만약 진서준이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박운기의 계획은 이미 성공했을 것이다.그랬다면 박씨 가문으로 돌아갈 때는 차가운 시선 대신 온갖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이번에 서울시에서의 임무를 맡기 위해 박운기는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경쟁했다.모두가 보기에 이 임무는 그야말로 공을 세우기 위한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쉬운 임무를 박운기가 망쳐버렸다.망친 것도 모자라 박씨 가문은 관계를 동원해 박운기를 구출해야만 했다.공을 세워야 할 장사가 완전히 손해만 본 장사로 탈바꿈한 것이다.박씨 가문의 계획을 망친 장본인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자 중년 남자는 진서준을 쓱 훑어보고는 냉랭하게 비웃었다.“전설 속의 용존님, 역시 이름값 제대로 하시는군요.”진서준은 그 남자를 힐끗 보고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진서준이 자기를 무시하자 중년 남자의 눈빛에 차가운 기운이 잠깐 스쳤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약왕님은 언제부터 용존님과 친구가 되셨습니까?”중년 남자는 이용진을 발견하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박재명, 분명히 말해두지. 용존님 일은 바로 내 일이야. 감히 용존님에게 시비를 걸려고 한다면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이용진이 싸늘하게 대응했다.박재명은 박씨 가문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아니었다.그는 단지 박서명의 넷째 동생일 뿐이었다.그래서 이용진은 굳이 박재명을 깍듯하게 모시며 아부할 필요가 없었다.이용진의 말에 박재명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약왕님, 굳이 한 사람 때문에 우리 박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이용진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당연히 가능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애초에 병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겠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용존님.”그러자 진서준이 손을 내저으며 진지하게 말했다.“아직은 섣불리 고마워하지 마세요. 제가 치료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 이용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기꺼이 돕겠습니다!”이용진이 자신 있게 가슴을 치며 말했다.“제가 약왕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다면 당연히 약재 때문이죠.”진서준은 차분하게 진서라의 체내 독소를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약재를 설명했다.이용진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용존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용존님이 언급하신 약재 중 혈령지는 제 약재 창고에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 약재는 아쉽게도 제 창고에 없습니다.”“그것 하나만 있어도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적어도 하나는 확보했으니 오늘 헛걸음을 한 게 아니었다.“얼마면 되겠습니까? 시세대로 구매하겠습니다.”이용진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용존님, 가격을 말하는 건 제게 따귀를 날리는 겁니다. 용존님이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제 약재 창고에 나머지 세 가지 약재가 있었다면 전부 무료로 드렸을 겁니다.”이용진이 이렇게 호탕하게 나오자 진서준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혈령지 하나를 받는 건 결코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용존님, 급하지 않으시다면 식사를 마친 후 제가 약재 창고로 가서 혈령지를 가져오겠습니다.”이용진의 제안에 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하죠.”“오늘 식사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곽 선생님, 어서 앉으시죠.”이용진은 웨이터를 불러 이곳의 대표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이 대표 요리들만 해도 가격이 2억을 넘겼다.일반인 한평생 월급을 한 끼 식사로 소비하는, 그야말로 호화로운 만찬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
이용진은 평생 실력이 이 정도로 무시무시한 청년을 본 적이 없었다.자기를 지키는 두 호위가 반응할 틈조차 없이, 아니, 심지어 방어할 기회도 없이 한순간에 당하다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곽윤상 역시 진서준이 갑자기 공격을 시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해명할 기회가 생겼다.“약왕님, 이분은 바로 국안부 용존님이십니다.”곽윤상이 재빨리 이 틈을 이용해 설명했다.“뭐라고? 네가 바로 그 용존이라고?”이용진은 입을 떡 벌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용존이라는 이름은 이미 명주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대다수 명주시 명문대가는 이 절세 천재를 돈으로라도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진서준을 끌어들이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진서준이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용존이라는 봉호를 받은 인물이니 앞으로 거의 30년이 지나면 대한민국 전역에서 진서준과 겨뤄볼 만한 상대가 있을 리 없었다.심지어 4대 은거 문파조차도 진서준에게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보시다시피 용존이 틀림없습니다.”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진서준이 처음부터 용존이라는 신분을 밝혔다면 이용진은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대한민국 전역에서 이 나이에 육급 절정의 대종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진서준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이용진은 이제야 이 청년이 이렇게 자신만만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용존님, 방금 제가 무례했던 점은 널리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약왕 이용진은 몸을 약간 숙이며 진서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조금 전의 거만했던 태도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용진은 곽윤상이 명주시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질책했었다.그런데 3분도 안 돼 본인이 직접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었다.이용진은 지금 누군가가 그에게 귀싸대기라도 날린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약왕님, 앉으세요.”진서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용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라운 기색이 담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방금 당신이 한 얘기는 전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 체내에 숨은 질병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 오는 날씨에 수련을 하다 보면 체내 강기를 돌릴 때 복부 아래쪽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 통증은 심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요. 설령 신경이 쓰여 의사를 보인다고 해도 보통 의사라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할 겁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정밀한 장비로도 알아내기 어렵겠죠.”진서준의 이 말에 이용진의 표정이 한순간 어두워졌다.진서준은 정확히 이용진의 몸 상태를 파악하고 있었다.지난 2년 동안, 비만 오면 이용진은 온몸이 불편해졌다.특히 강기를 돌릴 때면 복부 아래쪽에서 은은하게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처음에는 이용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점점 이상하다고 느껴져 성약당의 장로까지 불러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그런데 진서준이 오늘 초면에 단번에 이 문제를 짚어내자 이용진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그걸 어떻게 알았어?”이용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묻자 진서준은 태연히 대답했다.“당연히 당신 얼굴을 보고 알았죠.”“얼굴을 본다고 어떻게 알 수 있어?”이용진의 표정이 밝아졌다가 어두워졌고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터무니없군. 성약당의 장로조차 알아내지 못한 문제를 네가 단번에 알아냈다고?”이용진은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으로 진서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이봐 청년, 솔직하게 말해. 내 곁에 내통자를 심어 놓은 게 아니야?”명주시에서 이용진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은 항상 최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했다.다시 말해 억울한 사람 천 명을 죽이더라도 내통자 한 명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생존의 비결이었다.그렇지 않으면 명주시 같은 복잡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이용진 곁의 두 대종사도 이
‘이 녀석 미쳤나?’방 안의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이용진이 누구인가? 바로 명주시에서 누구나 다 아는 약왕이었다.전국을 논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절반 이상의 귀한 약재는 약왕의 손을 거친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병에 걸릴 수 있을까?더군다나 매일 약재를 다루는 약왕에게 병이 있다면 명의들이 못 알아챘을 리가 없었다.그러니 진서준이 이용진에게 병에 걸렸다고 말한 건 미친 소리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소리였다.“이봐, 넌 지금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지 알고는 있나?”이용진의 얼굴은 어둠 그 자체였다.그는 이곳에서 꼬박 30분 넘게 기다렸다.그런데 자기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한 장본인이 고작 이런 애송이였고 오자마자 병이 있다며 모욕까지 했다.평소 인내심이 깊고 신사적이던 이용진도 이 순간만큼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용진의 분노를 눈치채자 곽윤상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겁에 질려 진서준의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하지만 진서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태연히 이용진 맞은편에 앉아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진서준의 이 태연한 모습에 이용진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아무래도 이 청년은 약왕인 이용진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난 똑같은 말을 두 번 하지 않아요.”진서준은 차 한 모금을 마신 뒤,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진서준의 말에 이용진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종사가 비웃으며 말했다.“약왕님은 무공을 수십 년간 연마하셨고 이미 종사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야. 병에 걸렸다면 네가 말하지 않아도 진작 발견되었을 거야. 허튼소리도 정도껏 해야지.”보통 종사 경지에 오른 무인은 병에 걸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무인의 근육, 뼈, 혈액은 이미 평범한 인간을 초월했기에 체내 바이러스조차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종사 무인이 병에 걸릴 경우라면 대개 다음 세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난치병이거나 중독이거나 아니면 심각한 내상이 있을 경우였다.하지만 이용진은 이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난치병은커녕, 누군가의 독에
“여기는 국제적인 대도시잖아요.”곽윤상도 감탄했다.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교내 미인 대회에 나가도 손색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손님, 저희 호텔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식사나 숙박을 원하시면 회원 자격이 필요합니다.”곽윤상은 군말 없이 금박으로 장식된 카드를 꺼냈다.여성 안내원은 카드를 꼼꼼히 확인한 뒤,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곽 선생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이미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꼭대기 층의 5번 방입니다.”곽윤상의 말에 여성 안내원이 대답했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확인해 보겠습니다.”여성 안내원은 프런트로 가서 예약 사항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꼭대기 층으로 가는 직행 엘리베이터는 총 네 대였고 속도는 어마어마했다.무려 300미터의 높이를 단 20초도 되지 않아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진서준은 눈앞의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멀리 보이는 구름층과 자기와 나란히 있는 듯한 달빛이 시야에 들어와 하늘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진 마스터님, 여긴 어떠십니까?”곽윤상의 질문에 진서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내가 가본 레스토랑 중 가장 호화로운 곳 중 하나로군요.”“그렇긴 하죠. 이 호텔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곽윤상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이 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회원이어야 하는데 꼭대기 층에 오고 싶다면 일반 회원으로는 부족하고 최소한 골드 회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골드 회원권을 발급받는 데만 200억이 필요합니다.”골드 회원권이 200억이나 한다는 말에 진서준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그럼 일반 회원은 얼마인가?”“10 억입니다.”곽윤상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말했다.“그리고 이 돈은 카드에 적립되는 게 아니라 그냥 회원권 발급 비용일 뿐입니다.”그 말을 듣고 진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전국을 통틀어도 이런 가격을 자신 있게 책정하는 곳은 명주시의 호텔들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