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식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었다.“우리 사이에 그런 예의를 갖출 필요는 없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진서준이 서울시에서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황보식의 공헌이 컸다.진서준이 흔쾌히 승낙하자 황보식은 매우 기뻤다.그전에 진서준이 검으로 원혼을 죽이는 것을 보았을 때 황보식은 이미 그의 신선 같은 술법에 완전히 굴복했다.“서준 씨, 무도를 수련하는 친구가 있는데 일찍이 다른 사람들과 싸우다가 경맥을 다쳤어요. 얼마 전 종사경을 돌파할 때 이를 발견했어요...”진서준은 술법 마스터일 뿐만 아니라 무도 종사급이었고 또 신의였다.그는 진서준이 끊어진 경맥을 쉽게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알겠어요. 별로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지금 바로 그 친구를 서울로 오라고 할게요.”황보식은 흥분에 찬 어조로 말했다.“어르신의 친구분께서 여기 계시지 않아요?”진서준이 이마를 찌푸리며 묻자, 황보식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 친구는 지금 인천에 있어요. 지금 바로 출발하면 빨리 올 수 있을 거예요.”인천은 서울 바로 옆에 있고 빠르면 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아니면 내일 아침에 내가 가서 그 친구분을 치료해 줄까요? 오늘 밤에 저는 좀 일찍 자고 싶어요.”“내일 아침에 만월호로 가시지 않으세요?”그러자 진서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끊어진 경맥을 치료하는 건 금방이면 돼요. 하지만 오늘 밤에 약재를 미리 준비해야 해요. 조금 있다가 제가 어르신께 약재들을 적어드릴게요.”“정말 고마워요! 서준 씨.”황보식은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이젠 밥 좀 먹죠. 음식이 다 식어요...”허윤진은 말하며 젓가락으로 큰 닭다리 하나를 집었다.“이 계집애야. 넌 그냥 먹기만 해.”허성태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허윤진을 쳐다보았다.‘윤진이가 사연이처럼 예절 밝고 철이 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밥을 먹은 후, 허사연은 차키를 꺼냈다.“언니, 술 마셨으니
이튿날 아침 6시.진서준은 일어나서 장청결을 한번 수련하고 시원하게 샤워했다. 그리고 황보식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했다.10여 분 후, 조철용은 벤틀리를 몰고 진서준의 별장 입구에 도착했다.“서준 씨, 차에 타십시오. 어르신 일행이 이미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어요.”“알겠어요.”진서준이 차에 타자 물었다.“약재는 이미 다 준비되었어요?”“네!”조철용이 고개를 끄덕였다.어젯밤 황보식은 집으로 돌아온 후에 모든 사람을 동원하여 진서준이 사용할 약재를 찾으러 갔다. 끊어진 경맥을 치료하는 데는 그리 희귀한 약재가 필요 없었다....황보식의 별장 정원 안.두 어르신은 큰 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바로 황보식과 그의 오랜 친구인 오윤산이었다.오윤산의 뒤에는 늘씬한 몸매의 예쁜 여자가 서 있었다.어젯밤, 오윤산은 황보식의 전화를 받고 즉시 그의 집으로 달려왔다.원래 세 시간 정도의 거리였는데 오윤산은 두 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경맥이 끊어진 일은 오랜 시간 동안 그를 괴롭혔다. 경맥이 끊기지 않았더라면 그는 벌써 종사급이었을 것이다.끊어진 경맥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자 그는 당연히 매우 흥분했다.한밤중에 오윤산은 심지어 황보식을 보고 당장 자신을 데리고 신의님께 가달라고 했다.황보식은 한참 동안 그를 설득해서 먼저 하룻밤 자게 했다.“식아, 네가 말한 그 신의님은 아직도 안 왔어?”“그만 좀 물어봐, 철용이가 이미 가서 모셔 오는 중이야,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야!”오윤산이 재촉하면서 계속 이것저것 물으니, 황보식은 짜증이 난 듯한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황보식은 오윤산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어르신,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대단해요?”오윤산 뒤에 서 있던 늘씬한 미녀가 물었다.“그럼 당연하지. 그 사람도 네 할아버지의 경맥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아무도 치료할 수 없을 거야!”황보식은 말하며 허허 웃었다.“세정아, 물 한 잔 따라줘.”오윤산이 말했다.“네.”그러자
오세정은 두 어르신이 모두 서 있는 것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궁금해서 물었다.“할아버지, 혹시 그 신의님이 오셨어요?”그러자 정신이 돌아온 오윤산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그 신의님이 나를 위해 지금 주방에서 한약을 달이는 중이야.”신의님이 약을 달이고 있다고 하자 오세정은 눈이 반짝거렸다.“제가 가볼게요.”“안돼. 가지 마. 신의님이 아무도 그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어!”황보식이 급히 말했다.지금 황보식은 진서준의 말이라 하면 무조건 복종했다.진서준이 방해하지 말라고 했으니 절대 다른 사람이 들어가면 안 되었다.“알겠어요.”오세정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오윤산의 곁으로 돌아갔다.주방 안.진서준은 황보식이 준비한 약재를 자기 앞에 놓았다.이어서 진서준은 체내의 장청결을 운행했다.지난번에 가마솥으로 단약을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진서준은 장청결로 약재를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그의 주문에 따라 약재들이 도자기 그릇에 떨어졌다.그러자 원래 있던 반 그릇 정도의 맑은 물이 약재 때문에 금세 청색으로 변했다.진서준은 모든 약재를 정제한 후, 한약 한 그릇을 들고 정원으로 나왔다.정원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오윤산은 진서준이 이렇게 빨리 나타난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서준 씨, 뭘 좀 도와드릴까요?”시간이 겨우 10분이 지나서 황보식은 진서준이 아직 한약을 전부 달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그러자 진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자. 이걸 드세요. 이 한약을 드신 후에 제가 직접 술법으로 이 약효를 흡수시켜 드리겠어요. 그러면 어르신 병이 다 나을 것입니다.”오윤산뿐만 아니라 황보식도 어리둥절했다.‘겨우 얼마나 지났는데 한약을 다 달였단 말인가? 단약을 만드는 고수들도 이렇게 쉽지는 않을 텐데?’오윤산은 한약을 받아 들고 의미심장한 얼굴로 그 약을 쳐다보았다.진서준이 그 모습을 보자 웃으며 말했다.“혹시 저를 못 믿으세요?”“못 믿는 게 아니에요. 서준 씨의 솜씨가 너무 놀라운 것뿐이에요.”오윤산은 쓴웃음을 지었다.
오세정은 진서준을 사람이 아닌 신명처럼 바라보았다.그의 손에 쥐어있는 천둥은 마치 죽음의 낫처럼 그녀의 목숨을 거두어들일 것만 같았다.천둥이 스치자, 오세정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녀는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진서준은 어느새 그녀 앞에 나타나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도 내가 사기꾼으로 보여요?”황보식과 오윤산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믿기 어려운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서준 씨, 실력이 또 강해졌네요.”황보식이 큰 소리로 말했다.오세정의 가슴에는 아주 선명한 탄 자국이 하나 생겼다.그들은 진서준이 그녀를 살려준 것임을 알고 있었다.그렇지 않으면 방금 공격은 충분히 오세정의 가슴을 꿰뚫었을 것이다!“서준 씨, 제 손녀를 살려줘서 고마워요.”오윤산은 정신을 차리고 진서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 그는 자신이 종사의 경지였어도 방금의 천둥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그제야 황보식이 이 청년에게 왜 이렇게 존경을 표하는지 알 수 있었다.종사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니 어느 집안이 감히 신처럼 모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오세정도 정신이 들었고 얼굴에는 민망함이 가득했다.방금 자신이 진서준에게 비아냥거렸던 말을 떠올리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만약 진서준이 봐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 이미 시체로 변했을 것이다.오세정은 이를 악물고 겨우 땅에서 일어났지만 두 다리는 여전히 부들부들 떨렸다.“죄송합니다. 당신은 진정한 고수예요. 아까는 제가 잘못했어요.”오세정은 진서준이 두렵고 존경스러웠다.나이는 그녀와 몇 살 차이가 안 났지만, 실력은 그녀의 몇 배나 될지 모를 정도였다.오세정은 천재 같은 진서준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러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오윤산에게 고개를 돌렸다.“이제 이 한약을 드실 수 있겠지요?”그러자 오윤산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였다.“서준 씨, 바로 마실게요. 제 끊어진 경맥은 잘 부탁드립니다.”그는 말을 마치고 진
진서준과 권해철 둘의 대결은 며칠 전부터 황보식에 의해 홍보되었고, 서울 상류 가문 전체에 알려졌다.서울뿐만 아니라 남주성의 가문들에서도 둘의 대전을 주시하고 있었다.권해철은 남주성에서 유명했고 남주성 대부분의 가문이 그를 두려워했다.반대로 진서준은 그들에게 생소했다.서울 현지의 가문들을 제외하고 그의 이름과 실력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심지어 적지 않은 이들이 진서준이 권해철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 한다고 생각했다.어찌 됐든 많은 강자가 그들의 대결을 보기 위해 서울로 찾아왔다.8시 15분쯤, 비싼 차들이 끊임없이 만월호 공원 입구에 멈춰 섰다.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서울의 거물들이었다.그들은 질서 정연하게 만월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이때 비싸 보이는 벤틀리 한 대가 도착했고 사람들은 번호판을 확인한 뒤 걸음을 멈췄다.차 문이 열리고 허씨 집안 부녀가 차에서 내렸다.황보식이 주최한 파티에 참석한 가문들 중에 허씨 집안의 허사연과 진서준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오늘의 이 대결은 허씨 집안과 진서준의 생사가 달린 대결이었다.만약 진서준이 승리한다면 허씨 집안의 지위는 높아질 것이고 실패한다면 진서준은 죽고 허씨 집안도 몰락할 것이다.“다 아는 얼굴들이네요.”낯익은 얼굴들을 바라본 허사연은 불안했다.“우리 집안과 진서준은 한배를 탄 거야. 오늘 우리들의 생사는 진서준에게 달렸어.”허성태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파티 때 허성태는 오늘 같은 날이 올 줄 예상했다.허윤진은 전혀 긴장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말했다.“언니, 아빠. 뭐가 그렇게 심각해요? 진서준 씨는 본인이 이길 거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작은딸의 말을 들은 허성태는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었다.“이만 들어가자.”이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세 사람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사연아, 아저씨!”그의 목소리에 허사연과 허성태는 미간을 좁혔고 허윤진의 눈동자에는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손승호는 휠체어에 앉아있었고 그의 사
사람들은 소리를 듣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서 백 미터 정도 떨어진 호수 중심에는 깨알만 한 크기의 사람이 서 있었다.그 사람은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갈수록 커졌다.그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을 때, 모두 아연실색했다.흰색의 긴 옷을 입은 권해철이 뒷짐을 진 채로 호수 위를 평지처럼 걷고 있었다.“세상에, 저분이 바로 권해철 씨인가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네요!”“맙소사, 호수 위를 걸을 수 있다니 인간 맞대요? 얼른 휴대전화로 찍어야겠어요!”“권해철 씨 그동안 실력이 더 늘었나 봐요. 진서준이라는 사람 틀림없이 지겠네요!”허사연 부녀는 그 모습을 보자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았다.눈앞의 권해철은 기운도, 실력도 그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진서준이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권해철과 비교하면 많이 부족했다.주변 사람들은 허씨 가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연민의 눈빛으로, 누군가는 업신여기는 눈빛으로, 또 누군가는 탐욕적인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그들은 진서준이 틀림없이 패배할 거라고 여겼다.권해철은 빠르게 호숫가에 도착해서 걸음을 멈추었다.그가 팔 하나를 뻗어 손을 살짝 움직이자 그의 앞에 있던 호숫물이 솟아오르며 의자로 변했다.뒤이어 그는 덤덤하게 호숫물로 된 의자에 앉아 눈을 살짝 감은 채 진서준이 오기를 기다렸다.권해철의 실력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다시금 놀랐다.“아버지, 저는 권해철 씨를 스승님으로 모실래요!”“잠시 뒤에 권해철 씨가 진서준이라는 놈을 혼쭐내준 뒤에 권해철 씨에게 완벽한 인상을 남겨야겠어요!”공규석의 눈동자에도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중년 남성에게 물었다.“유혁수 종사님, 종사님과 권해철 씨를 비교했을 때 누가 더 강한가요?”중년 남성은 숨기는 기색 없이 솔직히 말했다.“권해철 씨가 저보다 더 강합니다!”공규석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중년 남성의 말을 들으니 역시나 놀라웠다.유혁수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공규석은 그가 손으로 총알을 막는 걸 두 눈
진서준의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차에서 내린 진서준을 본 이들은 전부 멍해졌다.“이럴 수가. 무능력한 진서준이 이 대결의 주인공이라고?”휠체어에 앉아있던 손승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만약 진서준을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손승호는 자신이 얕잡아보던 진서준이 이 대결의 주인공이라는 걸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다른 지방의 권력가들과 무인들도 얼굴에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저 사람이 바로 진서준이라고요? 장난하는 거 아니겠죠?”“외모를 보니 서른도 되지 않은 듯한데요?”“서른이요? 제가 보기엔 기껏해야 스물다섯인 듯한데요?”“스물다섯에 종사라고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공규석 곁의 유혁수는 실눈을 뜨고 차가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저 사람이 바로 진서준인가요?”“맞습니다!”공규석은 원망스러운 눈길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는 재가 되어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진서준의 얼굴을 잊지 않을 것이다.“어린 나이에 종사라니, 혹시 경성 어느 가문의 자제인가?”유혁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사색에 잠겼다.그러다 갑자기 뭔가 떠올린 건지 안색이 돌변했다.“경성 4대 가문 중 진씨 가문이 두 번째인데. 설마 진씨 일가의 자제인가?”유혁수는 여러 해 동안 이곳저곳을 다니며 많은 가문과 종사를 만났다.가장 젊은 종사는 강남의 첫째가는 가문의 자제였다.그는 겨우 서른의 나이에 종사가 되었고 같은 경지에 있는 10명의 종사들을 제쳤다.그런데 눈앞의 진서준은 겨우 25 정도 돼 보이는데 기세를 거두어들일 줄 알았다. 유혁수조차 그의 진짜 실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이런 무시무시한 괴물을 키울 수 있는 곳은 경성 4대 가문과 자취를 감춘 파벌을 제외하고 다른 세력은 떠오르지 않았다.“진서준 씨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나요?”유혁수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의 신분은 일찌감치 조사해 봤습니다. 얼마 전 출소했고 다리가 부러진 어머니와 여동생이 한 명 있어요. 허씨 집안과 황보식 씨가 없었
기운을 조종하여 천둥을 만든 것이다.엄청난 실력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헛숨을 들이켰다.진서준이 파티에서 만들어냈던 것보다도 더욱 무시무시했다.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속으로 결론을 냈다.진서준이 틀림없이 패배할 거라고 말이다.무시무시한 24개의 뇌검을 마주하게 된 진서준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재능이 별로 없네요. 다섯 수 안에 당신은 패배할 겁니다.”짧은 말이었지만 권해철은 큰 충격을 받았다.호숫가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미친놈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권해철 씨를 보고 재능이 없다고 하다니, 미친 거 아닐까요?”“자기한테 하는 말 아니었을까요? 본인이 재능이 없는 거겠죠!”“다섯 수라고요? 진서준이라는 사람 참 건방지네요. 그가 권해철 씨의 뇌검들을 상대할 수 있다면 실력을 인정해 주겠어요.”적지 않은 사람들이 진서준의 말을 듣고 그가 큰소리를 친다고 생각해 콧방귀를 뀌었다.허사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참, 사람이 좀 겸손해야 하는 법인데.”허윤진은 작게 중얼거리면서 두 손으로 자신의 옷깃을 꽉 잡았다. 조금 전처럼 여유롭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70세 고령인 권해철은 진서준의 말에 화가 나 가슴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그래요. 어디 한번 그 대단한 실력 좀 확인해 보자고요!”권해철의 안색이 흐려졌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서 진서준을 향해 식지를 튕겼다.다음 순간, 뇌검 하나가 공기를 가르면서 진서준을 향해 날아들었다.눈 깜짝할 사이, 뇌검은 이미 진서준의 앞에 나타났다.사람들은 그 순간 숨을 참고 긴장한 채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별 볼 일 없는 수작이군요. 당신의 도전장보다 살짝 더 나은 수준이네요.”진서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피식 웃었다.진서준은 권해철이 만월호를 선택한 이유를 깨달았다.만월호는 기운이 좋았고 호수 속의 영기는 아주 짙었다.권해철이 이곳에서 진서준과 싸우기를 선택한 이유는 지리적인 우세
“그럼 됐네요.”정장 남자는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흥, 우리 아버지한테 개기는 놈은 죽는 길밖에 없어.”하지만 정장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누군가가 공중을 가르며 정장 남자의 옆으로 날아가더니 벽에 거칠게 처박혔다.“뭐지?”조호 부자가 급히 뒤를 돌아보자 방금 날아간 게 귀도파 정예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지금 그 정예는 죽은 개처럼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뭐야, 이게?”조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조호가 반응하기도 전에 연이어 비명이 울려 퍼졌다.조금 전까지 우쭐대며 다가가던 정예들이 전부 바닥에 나뒹굴며 신음을 내고 있었다.반면, 진서준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이 광경을 본 조호의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몇 초 만에 자기 정예 부하들이 전부 나가떨어졌다.진서준이 설마 이렇게 강력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네 부하들, 영 쓸모가 없는데?”진서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네 차례인가?”조호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이곳 르벨의 고수들은 죄다 알고 있는 조호였지만 이 청년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설마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와 귀도파와 시비를 걸려는 놈인가?“대체 넌 누구야?”조호가 쌀쌀하게 물었다.“지금에서야 내 신분이 궁금해졌어? 늦어도 한참 늦었어.”진서준이 여유롭게 대답했다.“경고하지. 르벨 동부 구역은 내 구역이야. 설령 네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해도 내 구역에서 깽판 치면 살아 나가지 못할 거야.”조호가 굳은 얼굴로 위협했다.“그래? 그럼 네가 어떻게 날 못 나가게 하는지 한번 보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었다.조호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네가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총알은 못 피하겠지?”옆에서 정장 남자도 한숨을 돌리며 비웃었다.“방금까지 그렇게 까불더니 총 앞에서도 한번 까불어 봐.”지금 시대에서 총을 손에 쥔 자가 곧 생사를 결정하는 법이다.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일반인은 총알 한 방이면 끝장
“문 닫아, 전원 퇴장시켜.”조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즉시 움직였다.순식간에 유흥업소에서 즐기던 사람들이 전부 나갔고 유흥업소 전체가 텅 비었다.감시 카메라는 전부 끊겼고 유흥업소의 모든 출입구가 봉쇄됐다.이유도 모른 채 쫓겨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웅성거렸다.“대체 누가 호랑이 구역에서 깽판 친 거야?”“호랑이가 모든 사람을 내쫓으면 그건 누군가 죽는다는 뜻인데?”“조용히 살면 안 돼? 왜 하필 호랑이를 잘못 건드려서...”사람들은 몇 마디 수군거리고 이내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이봐 청년, 생각보다 꽤 침착해 보이네.”조호가 진서준을 보며 의외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바지에 지렸을 텐데 이 녀석은 소파에 편하게 앉아 꼼짝도 안 했다.“하지만 오늘이 네 제삿날이라는 건 변하지 않아.”조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제삿날이라고? 나한테 하는 소리 맞아?”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우리 아버지가 자기한테 하는 소리라도 된다는 거야?”정장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아까 그렇게 잘난 척했잖아. 지금도 그렇게 까불어 봐.”진서준은 정장 남자를 한번 쓱 보더니 진지하게 경고했다.“입단속 잘해. 안 그러면 조금 있다가 평생 말할 수 없게 될 거니까.”그 말에 조호의 눈이 가늘어졌다.“이 자식이 정말 건방지네. 좋아, 네 오만함을 봐서 특별히 기회를 주지. 스스로 팔 하나 자르고 무릎 꿇고 사과해. 그럼 네 숨통을 끊어놓지 않을게.”조호가 칼을 꺼내 진서준 앞에 던졌다.그런데 진서준은 가볍게 웃더니 주머니에서 천기각 각주의 옥패를 꺼냈다.“이거 본 적 있어?”“그냥 싸구려 옥패 아니야? 뭐야, 돈으로 해결하려는 거야? 늦었다, 이 자식아.”정장 남자가 실소를 터뜨렸다.조호 역시 아무런 반응도 없자 진서준은 옥패를 집어넣었다.이 무리는 천기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그렇겠지. 애초에 그 노인네가 지하 세계를 누빈 것도 아닌데 이런 조폭들을 천기각에 끌어들이진
“됐어, 다들 그만 좀 해.”이때 엄승현이 나서서 중재하기 시작했다.“다들 아까 일 때문에 민감해진 것 같은데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대처하자.”“엄승현, 너 인맥 넓잖아? 아까 그 사람 구해낼 수 있어?”도민수가 갑자기 물었다.“뭐? 무슨 소리야? 나보고 호랑이 손아귀에서 사람을 빼내라고?”엄승현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이 녀석이 호랑이의 아들을 때려놓고 이제 와서 엄승현에게 사람을 구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사실 방금 엄승현이 자기 목숨 건진 것도 기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민수야, 그럴 필요 없어. 진서준은 괜찮을 거야.”도지아가 조용히 말했다.“헛소리 마. 상대는 호랑이라고. 동부 구역에서 호랑이는 그야말로 지하의 황제야.”도민수는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분한테 찍히면 대단한 사람이 나서지 않는 이상 무조건 죽는다고.”자기 동생이 아직도 착한 사람이란 사실을 알아채자 도지아는 가슴이 뭉클했다.“내가 왜 나서야 하는데? 나랑 아무 상관도 없잖아.”엄승현이 싸늘하게 말했다.사실 도와주고 싶어도 도무지 도울 수 없었다.호랑이가 마음만 먹으면 엄씨 가문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적어도 저 사람은 우리를 구해줬어.”도민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팩트를 말했다.“내가 구해달라고 했어? 애초에 저놈이 괜히 주먹을 휘둘러서 일이 이렇게 커진 거잖아. 저놈이 흥분하지만 않았다면 우린 진작에 저기서 나왔어.”엄승현이 뻔뻔하게 말했다.“맞아, 자기가 영웅이라도 된 줄 아나 봐? 이제 곧 처맞을 텐데 아주 꼴좋네.”단발머리 여자가 대놓고 비웃었다.그들의 차가운 태도에 도민수는 분노가 치밀었다.“민수야, 넌 나를 못 믿는 거야? 내가 진서준이 무사할 거라고 분명히 말했잖아.”도지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누나를 믿으라고?”도민수가 코웃음을 쳤다.“내가 어떻게 누나를 믿어? 며칠 전 일은 벌써 잊었어?”도지아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당연히 잊지 않았어. 근데 결국 다들 무사히 돌아왔잖아.”“무사히 돌아왔다고?”
진서준이 호랑이의 아들까지 후려치는 걸 보자 사람들은 완전히 얼어붙었다.“너 미쳤어? 조 도련님은 호랑이 아들이라고. 이분을 때린 건 곧 호랑이의 얼굴에 뺨을 때린 거랑 다름없다고.”엄승현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조 도련님, 복수할 대상을 잘못 찾으면 안 됩니다. 문제를 일으킨 건 저 사람들이지 우린 아무 상관 없습니다.”“맞아요, 조 도련님. 저희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정장 남자에게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이 쪽팔린 놈들아, 다 꺼져.”정장 남자가 침을 뱉으며 욕설을 내뱉었다.이렇게까지 비굴한 놈들은 정장 남자도 처음 봤다.“어서 가자, 다들 서둘러.”사람들은 구세주를 만난 듯 기쁨에 찬 얼굴로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너희도 가. 여긴 나 혼자로도 충분해.”진서준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그래도...”도지아는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여기 남아봐야 나한테 짐만 돼. 그냥 가.”진서준이 단호하게 다시 축객령을 내렸다.그 말에 은근히 기분이 상한 도지아는 진서준을 살짝 째려봤다.“알겠어. 조심해. 가자, 민수야. 여긴 진서준한테 맡기자.”도지아는 도민수의 팔을 끌며 방을 나섰다.같은 시각, 정장 남자도 전화를 마쳤다.정장 남자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진서준을 노려봤다.“어디 한번 보자. 네가 얼마나 배짱 좋은 놈인지. 우리 아버지가 오시면 그때도 지금처럼 잘난 척할 수 있길 바랄게.”진서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리고 조호가 오기를 기다렸다.한편, 엄승현 일행은 유흥업소 건너편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그들은 창문을 통해 건물 앞에 줄지어 선 승합차들을 확인했다.그 차에서 강철로 된 칼을 든 건장한 남자들이 쏟아져 나와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어휴, 빨리 도망쳐서 다행이야. 조금만 늦었다면 우린 꼼짝없이 죽었어.”그 광경을 보며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아까 정장 남자가 엄승현 일행을 놔주지 않았다면 저 방에서 영영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야, 도민수. 그냥 네 누나한테 조 도련님이랑 한 달만 있으라고 해. 그럼 우린 다 여기서 나갈 수 있잖아.”“그래, 네 누나가 조 도련님이랑 잘 되면 넌 조 도련님 처남이 되는 거야. 그건 일반 신분이 아니야.”“맞아, 너희 집안이 이 기회를 잡고 르벨에서 우뚝 서는 거야.”다들 자기 안전을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민수를 설득하려 했다.“너희들 인간 맞아? 우리 누나를 희생해서 너희 목숨을 구하겠다고?”도민수는 눈을 부릅뜨고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자기 친구들이 이 정도로 역겨운 사람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이 일 애초에 너 때문에 일어난 거잖아. 네가 조 도련님을 때리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 꼴 났겠어?”정장 남자가 엉덩이를 만졌던 여자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아까 저놈이 네 엉덩이 만졌을 때, 네가 먼저 성추행이라고 소리쳤잖아?”도민수는 어이가 없었다.아까 기껏 도와줬더니 지금 와서 오히려 자기를 원망하고 있었다.정말 배은망덕하긴 짝이 없었다.“그때 저 사람이 조 도련님인 줄 알았으면 난 절대 그런 말 안 했어.”여자가 당당하게 반박했다.“너희들 정말 대박이다.”도민수는 분통이 터져 미칠 것 같았다.“너희랑 같은 학교 다녔다는 게 진짜 내 인생 최대의 수치야.”“조 도련님, 우리 모두 도민수 누나가 조 도련님을 모시는 걸로 동의했어요. 그러니 제발 우리를 풀어주세요.”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도지아 역시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고 이 사람들이 역겨워 토할 것만 같았다.“진서준, 부탁할게.”도지아는 진서준을 바라봤다.“알았어. 넌 먼저 동생을 데리고 나가 있어.”진서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도민수의 병을 봐주는 거였는데 주먹을 또 휘두르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다른 놈들은 몰라도 이 여자는 못 건드려.”진서준은 무심한 말투로 정장 남자에게 경고했다.“넌 또 뭐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정장 남자는 진서준의 건방진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정장 남자의 정체가 밝혀지자 상황은 순식간에 뒤집혔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들먹거리던 엄승현은 정장 남자의 따귀를 맞고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그 이유는 단 하나, 정장 남자의 아버지가 바로 호랑이였기 때문이었다.호랑이는 르벨 동부 지역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인물이었다.엄승현의 집이 좀 잘사는 건 맞지만 호랑이 앞에서는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지금 이 순간, 이렇게 공개적으로 뺨을 맞았음에도 엄승현은 감히 화를 낼 수도 없고 그저 비굴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조 도련님, 방금은 제가 많이 실례했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하겠습니다.”엄승현은 황급히 와인 한 병을 따더니 단숨에 들이켰다.술이 모두 넘어가자 엄승현의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조 도련님, 우리 아버지와 도련님 아버지는 오랜 사업 파트너입니다. 제 아버지를 봐서라도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 주실 수 없겠습니까? 제가 나중에 호텔에서 성대한 연회를 열어 다시 한번 정식으로 사죄하겠습니다.”그러나 정장 남자는 엄승현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내가 네 술 한 잔 얻어먹자고 이러는 줄 알아?”엄승현은 그 말에 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조 도련님,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간단하지. 네 아버지랑 우리 아버지가 아는 사이니까 네가 와인 한 병 더 마시면 그냥 보내주지. 하지만 이놈들은 여기 남아야 해.”정장 남자는 도지아를 비롯한 일행을 가리키며 비열하게 웃었다.그 말을 듣자 모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여자들은 공포에 질려 몸을 벌벌 떨며 엄승현 뒤로 숨었다.“승현 오빠, 제발 구해주세요.”여자들은 울먹이며 엄승현에게 도움을 청했다.눈물 그렁그렁한 얼굴들이 엄승현의 동정을 자아냈다.엄승현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정장 남자에게 부탁했다.“조 도련님, 제발 이 애들은 봐주십시오. 다들 제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들이 한 잔씩 올리는 걸로 그냥 넘어가 주실 수 없겠습니까?”말이 끝나자마자 정장 남자는 다짜고짜 손을 들어 그
“나도 너 같은 외지인들 많이 봤거든. 기를 쓰고 우리 도시에 자리 잡으려 하는 놈들 말이야.”갑자기 김칫국을 마시기 시작하는 엄승현을 보며 진서준은 질린다는 듯이 눈을 부라렸다.‘이놈 정신 상태가 이상하네.'그때, 도민수가 나서서 말했다.“형, 우리 그냥 딴 데로 갈까요?”“왜 딴 데로 가려고 해?”조금 전 진서준에게 밀린 탓인지 엄승현의 말투가 사뭇 날카로웠다.“여긴 귀도파 구역인지라 싸움이 금지되어 있잖아요. 아까 그놈 패버렸는데 혹시 그놈이 귀도파에 일러바치면 우리도 곤란해질 수 있어요.”도민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귀띔했다.이 말을 들은 도민수 일행도 슬슬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르벨은 동서남북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중 동부 지역을 장악한 최대 조직이 바로 귀도파였다.귀도파 조직원은 수천 명이었고 하나같이 잔혹한 놈뿐이라 감히 건드릴 자가 없었다.게다가 여기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대학생 신분인지라 괜히 귀도파를 건드렸다가 진짜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하지만 엄승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걱정 마. 우리 아버지가 귀도파 두목 호랑이와 친구거든.”“대박, 승현 오빠 인맥이 대단하네요.”“역시 우리 학교를 대표하는 남자다워요. 귀도파 두목이랑 친분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우리 다 함께 승현 오빠를 위해 한잔하자.”모두가 잔을 들며 엄승현에게 한 잔을 권하자 엄승현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엄승현은 이때다 싶어 슬쩍 도지아를 바라봤다.자기를 보고 감탄하는 줄 알았는데 도지아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바로 이때, 누군가 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곧이어 아까 엄승현에게 얻어맞았던 정장 남자가 불같이 뛰어들었다.그리고 남자 뒤에는 칼을 든 건장한 사내들이 잔뜩 따라왔다.이 광경에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순식간에 엄승현 뒤로 숨어들었다.“너 진짜 지원군 데려왔네?”엄승현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겁먹은 기색은 없었다.“군자는 복수를 하루라도 미루지 않는 법이야. 네가 아까 날 때린
“승현 오빠, 시원하게 잘 팼어요. 저 개자식 확실하게 밟아버리세요.”“우리 승현 오빠 앞에서 감히 까불어? 죽지 못해 안달이 났구나.”“흥, 승현 오빠는 우리 헬스팀 에이스야. 감히 이런 분을 건드려? 주제 파악이 안 돼?”도민수 일행은 정장 남자가 피범벅이 된 걸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이 분위기에 엄승현도 한껏 고무되었다.“지금 당장 꺼져. 안 그럼 넌 오늘 병원 중환자실 예약이야.”엄승현이 또 술병을 들어 정장 남자를 협박했다.“너 독한 건 인정하지.”정장 남자는 상황이 불리해지자 이를 악물고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말 똑바로 해. 그리고 우리 친구들한테 제대로 사과해.”엄승현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차기를 날렸고 정장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미안해.”정장 남자가 이를 갈며 억지로 사과했다.“성의가 없잖아, 다시 제대로 해.”엄승현이 또다시 발차기를 날렸다.“죄송합니다!”정장 남자가 억지로 분을 삭이며 다시 외쳤다.“그래, 그 정도는 돼야지.”엄승현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이제 꺼져. 다음에 또 마주치면 알아서 자리를 피해. 또 쓸데없이 까불다간 진짜 뼈를 바스러뜨릴 줄 알아.”정장 남자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더니 떠나기 전 엄승현을 빤히 쏘아봤다.“승현 오빠 최고예요!”“승현 오빠는 저놈 사과를 받아낼 정도로 대단하네요.”“승현 오빠 아직 여자친구 없다면서요? 혹시 우리한테도 기회가 있는 거 아닌가요?”몇몇 여학생은 얼굴을 붉히며 설레는 마음으로 엄승현을 바라봤다.팽팽한 분위기가 풀리자 도지아가 다가와 도민수를 설득했다.“민수야, 이제 누나랑 같이 집에 가자.”“나 안 가. 갈 거면 누나 혼자 가. 나 귀찮게 하지 마.”도민수가 짜증 섞인 말투로 도지아를 밀쳐냈다.“야, 너 누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엄승현이 곧바로 다가와 얼굴을 굳히며 도민수를 꾸짖었다.그러곤 다시 다정한 눈빛으로 도지아를 바라보았다.“지아 누나, 괜찮아요?”“응, 난 괜찮아.”도지아가 예의 바르게
“그만해!”도지아가 황급히 외치며 도민수의 앞을 막아섰다.“이봐요, 말로 해결합시다. 손찌검은 하지 말고요.”“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도민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누나를 전혀 반가워하지 않았다.“어이쿠, 여기 또 미녀 한 분이 오셨네? 이런 풍경은 흔치 않은데?”정장 남자가 도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도지아는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역겨움을 억누르며 말했다.“이봐요, 제 동생이 당신한테 어떤 짓을 했나요?”“이놈이 내 얼굴을 때렸거든. 이걸 어쩌면 좋을까?”양복남이 쌀쌀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네가 내 친구 엉덩이를 만졌잖아. 한 대 맞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도민수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반박했다.“내가 그년 엉덩이를 만진 건 영광인 줄 알아야지. 게다가 그년은 왜 그렇게 야하게 입고 다니는데? 남자 꼬시겠다는 거 아니야?”정장 남자가 억지 논리를 내세웠다.그 말을 듣자마자 도지아는 상황을 단번에 파악했다.이 인간이 도민수의 친구를 성추행했고 도민수가 그걸 못 참아 주먹을 날린 거였다.“이봐요, 당신이 먼저 잘못했으니까 제 동생이 참지 못한 거죠.”도지아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웃기고 자빠졌네. 내가 뭘 잘못했는데?”양복남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아가씨, 이놈 누나 맞지? 그럼 내가 화해할 방법을 알려 줄게. 오늘 밤 아가씨가 나랑 즐겁게 놀아주면 아가씨 동생이 날 때린 일은 없던 일로 해주지.”그 순간, 도민수의 눈에서 분노의 불꽃이 튀었다.“이 개자식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너 그 입 다시 놀려 봐? 진짜 네 머리 터지고 싶어?”정장 남자의 선을 넘는 말에 도지아의 얼굴도 차갑게 식었다.“지금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누가 옳고 그른지 경찰이 판단하게 하자.”“경찰? 여기가 누구 구역인지 알고 개소리하는 거야? 그놈들이 감히 날 잡아갈 수 있을 것 같아?”양복남은 코웃음을 치며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내 일은 내가 해결해. 넌 빠져.”도민수가 도지아를 옆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