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진요한은 신농산을 빠져나올 기회가 있었댔다.진서준의 스승님이 신농산에 들어가서 진요한을 만난 적 있었다.하지만 진요한은 나 올 기회를 포기했다. 다만 창욱 어르신께 진서준을 잘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바로 이런 사실을 거쳐서 진서준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말하는 사이에, 어느덧 네 사람은 운대산을 내려와 별장에 도착했다.류재훈은 이미 떠났지만, 아직 금문에 남아 있기에, 진서준은 시간 나면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그들이 병장에 도착하니, 조희선이 이미 저녁밥을 지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어머니, 제가 휴식하시라고 했는데, 왜 밥까지 지었어요?”진서준은 무척 가슴 아파했다.어머니란 다 이런 법이다. 종래로 자신을 위해 생각해 본 적 없고 오로지 이 아들만 생각하고 있었다.이는 진서준의 가슴속에 끝없는 죄책감이 솟아나게 했다.“엄마는 괜찮다, 온종일 차에서 잤잖아. 난 너희들이 내려오면 배고플 것 같아서 미리 밥부터 챙겼어.”“사연아, 우리 준이 챙겨 주느라 고생 많았다.”조선희는 허사연 앞에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고 감격해서 말했다.그녀는 허사연을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진서준이 아직 중요한 일을 처리하러 가야만 하지 않는다면, 조희선은 내일이라도 당장 둘이 결혼시킬 생각이었다.“이모님, 제가 도리어 서준 씨한테 고맙죠.”허사연이 다급히 말했다.“됐어요, 같은 가족 사이 이럴 필요 없어요.”진서준이 말을 돌렸다.“그래, 그래, 준이 말이 맞아, 우린 가족이야.”조희선은 희색이 만면하여 연신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너네도 얼른 가서 손 씻고 밥 먹자, 밥은 이미 해 놓았어.”“안녕하세요, 이모님!”“안녕하세요, 이모님!”허윤진과 김연아도 다가와서 조희선에게 인사를 드렸다.“윤진 씨, 연아 씨도 그동안 고생 많았어.”조희선은 허윤진과 김연아도 진서준과 사이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이 두 여인도 진서준을 몰래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조희선이 알게 되면 아마도 깜짝
해리스는 아주 거만한 자태로 진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에는 약간 경멸의 빛을 띠고 있었다.그가 진서준에 대해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진서준은 여자만 믿고 사는 기생오라비 같은 사람이었다.게다가 감방에 갇혔다가 작년에 석방되었다고 들었다.진서준의 정체는 이미 국안부에서 꽁꽁 감추었기에, 호국장군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직급에 있는 몇 분만이 볼 수 있었다.그들이 이렇게 한 목적은 단지 진서준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관심 없어.”상대방이 건방지게 나오자, 진서준도 좋은 표정을 보이지 않고 문 닫을 준비를 했다.“거기 서! 너를 초대한 사람이 누군지 알기나 해?”해리스는 싸늘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두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해리스는 공주님이 진서준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초대하는 것만으로도 진서준에 대해 말하면 한없이 큰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런 진서준은 응당히 감지덕지하면서 따라나서야 마땅한 것이었다.“난 모르거니와 알고 싶지도 않아. 왜 네 주인이 날 초대하면 꼭 가야 하는데? 네 주인이 뭔데!”진서준이 싸늘하게 웃으면서 대꾸했다.그는 아버지가 해외 강적들한테 쫓겨 하마터면 살해될 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서방 사람들한테 전혀 호감이 없었다.지금 눈앞에서 건방지게 구는 이 서방 사람을 두들겨 패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억지로 참고 있는 중이었다.“나쁜 자식, 감히 우리 집주인을 모욕해?”해리스의 가슴에는 분노의 불길이 훨훨 타올랐다.두 눈에는 서리처럼 차가운 빛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당장 진서준을 삼킬 듯했다.“내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경고하는데, 빨리 여기서 꺼져! 오늘 내 기분이 괜찮으니 너랑 따지지 않을 테니.”진서준이 차분하게 내뱉었다.오늘의 단란한 모임 분위기만 아니었어도 진서준 성질로는 진작 이 눈앞의 서방 사람을 개 패듯이 팼을 것이었다.‘횡련 대종사면 어떻고, 안 죽여 본 것도 아닌데.’진서준은 이 서방 사람이 횡련 대종사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았다.‘횡련 대종사에게 주인님이라고 불
‘펑’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해리스의 주먹은 진서준의 손바닥을 내리쳤다.따라서 진서준의 발밑의 바닥은 거미줄같은 가는 금이 갔다.이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은 가루로 돼버렸다.진서준이 자신의 주먹에 날려가지 않고, 도리어 손바닥으로 주먹을 받은 것을 본 해리스의 가슴속은 거칠고 사나운 파도가 술렁이는 것 같았다.이 녀석이 어떻게 다치지 않았지?해리스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며 얼굴은 무서움과 놀라움으로 일그러져있었다.그의 주먹은 탱크 한 대를 뚫기에도 충분했다.설사 영란 황실 친위대원이라 해도 그의 주먹을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한데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은 나이가 몇이나 될까?고작해서 스물여섯 살도 채 안 돼 보였다.이 나이에 이 실력은 그들의 영란제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네가 꺼지기 싫으면 내가 도와주지!”진서준은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발길을 날렸다.순간, 해리스의 무서움은 극치에 달했다.그는 피하려고 시도했지만, 이미 늦었다.허리가 진서준의 발길에 차여 몸뚱이가 거꾸로 날려서 별장 밖의 아스팔트 도로에 심하게 처박혔다.‘쿵!’해리스가 도로에 떨어지자, 주위의 지면마저 덜덜 떨렸다.“서준 씨, 무슨 일이에요? 누가 왔어요?”허사연이 달려 나와 진서준의 뒤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가로등 불빛을 빌어 허사연은 아스팔트 길에 대자로 엎어져 있는 해리스를 발견했다.“그냥 알지도 못하는 서방 사람이야.”진서준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그래요? 당신도 모르는 사람이라고요?”허사연은 약간 놀랐다.“근데 둘이 무슨 일로 싸웠어요?”허사연은 이해가 안 됐다.낯선 사람이 진서준을 찾아와서 손찌검까지 하다니, 참으로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저 사람이 찾아와서 집주인이 저녁밥을 같이 먹자고 나를 초청했대.”“근데 난 저 사람 집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승낙해?”진서준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진서준의 설명을 듣고 난 허사연은 그제야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때, 해라는 얼굴이 피투성이
“공주님!”해리스는 아주 낭패스러운 모습으로 별장에 돌아왔다. 몸에 묻은 핏자국도 아직 채마르지 않았다.해리스의 모습을 본 엘리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 그녀는 유리창 너머로 해리스와 진서준이 싸우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공주님, 그 녀석은 사리 분별조차 할 줄 모르는 나쁜 놈입니다.”“제가 주동적으로 주인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초청하러 갔는데, 그놈은 승낙은커녕 저한테 악담까지 했습니다.”해리스는 모든 책임을 서준에게 뒤집어씌웠다.진서준이 이 자리에 없는 한 뭐라고 꾸며도 다 된다는 생각이었다.하지만 엘리사는 바보가 아니다. 어제 처음으로 진서남을 봤을 때 해리스는 이미 그를 멸시하는 기미를 보였다.그런 해리스를 보내어 초청하게 했으니, 분명히 해리스의 태도에서 문제가 생겼을 것이었다.엘리사는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직접 가야겠네.”이에 해리스는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려서 말했다.“안 됩니다, 공주님은 천금의 옥체이신데 어찌 직접 초청하러 간단 말입니까?”“공주님이 저를 시켜 초청하라고 하신 것만 해도 체면을 봐 준 겁니다.”“서민인 주제에 공주님과 저녁을 함께 한다는 것은 그놈이 한평생 닦아서 바꿔온 복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해리스를 쳐다보는 옐리스의 눈에는 실망이 가득 차 있었다.“해리스, 당신은 그 사람한테 맞아 이 꼴이 되어서도 아직 그 사람이 보통 사람으로 보이냐?”“진짜 실망이야!”해리스는 육 품 횡력 대종사다. 전체 영란황실 친위대에서도 그와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진서준의 이 실력과 나이로 황실 친위대에 참가하는 것은 물론, 황실 친위대의 대장 직위도 가능했다.그런데 해리스는 아직도 진서준을 무시하고 있었다.해리스의 이런 성격은 어린 시절의 생활환경과 받은 교육과 갈라놓을 수 없었다.그는 어릴 적부터 영란의 귀족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교육도 또한 귀족식 교육을 받았다.이는 그로 하여금 오만하고 건방진 성격을 지니게 하였다.서민이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더라도 그의
“공주님, 이 녀석이 찾아온 목적은 단순하지 않을 겁니다...”진서준이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너희들이야말로 ‘찾아온’ 사람들이겠지.”“여기는 대한민국의 영토야!”해리스는 화가 나서 얼굴이 지지 벌게서 목에 핏대를 세워 진서준을 향해 외쳐댔다.“이 별장은 오늘 우리가 돈 주고 산 거야! 네가 지금 서 있는 곳은 이미 우리의 사적 재산이란 말이다!”설사 해리스 그들이 이 별장을 샀다 하더라도, 진서준의 눈에는 이곳 역시 대한민국의 영토인 것이었다.“너 말대로 한다면, 내가 돈을 줘서 네 나라 토지를 산다면, 네 나라 이름을 내 이름으로 바꿀 수 있단 말이네?”진서준이 코웃음을 쳤다.“이건 완전히 억지 논리야!”해리스의 불끈 쥔 두 주먹에서 삐걱삐걱 뼈마디가 끊어진 듯한 소리가 났다.등 뒤에 있는 엘리사만 아니었다면, 해리스의 주먹은 벌써 진서준에게 날렸을 것이었다.“공주님, 저 녀석이 뭐라고 지껄이는지 들었지요?”“저 녀석은 무식한 오랑캐입니다!”‘공주님?’이 호칭을 들은 진서준의 눈빛에는 놀라움이 살짝 스쳤다.진서준은 이 여자가 해외 어떤 귀족의 따님인가 했었다.“해리스, 뒤로 물러가거라.”엘리사가 냉정하게 명령했다.이 멍청한 놈, 내 신분을 폭로하다니!“하지만...”“어서 물러나지 못해?”엘리사는 카리스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거실의 분위기는 빙점까지 내려갔다.엘리사의 싸늘한 얼굴은 본 해리스는 주눅이 든 채, 엘리사의 등 뒤로 물러섰지만, 두 눈은 뚫어지게 진서준을 노려보았다.해리스가 뒤로 물러서자 진서준은 그제야 엘리사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녀의 조각 미모에는 메이크업 흔적이 전혀 없었으며 피부도 눈부시게 하얗다. 그녀는마치 예쁜 도자기 인형과 같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귀티였다.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도도하고 고귀한 느낌을 주었다.이내 진서준의 표정은 고요한 물처럼 평온해졌다.이에 조용히 진서준을 지켜보던 엘리사는 약
뒤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해리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공주님이 이렇게 적극적인데 이 녀석이 감히 거절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이봐, 너 지금 내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거지? 한 번만 더 거절해 봐. 명령을 거역해서라도 널 죽여버리겠어!”해리스가 분노에 차서 외쳤다.엘리사도 사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얼굴은 둘째 치고, 공주라는 신분만으로도 무수한 남자들이 앞다투어 데이트 신청을 하며 줄 서서 그녀와의 만남을 갈망했었다.그런데 지금은 엘리사가 신분을 낮추어 이렇게 직접 찾아왔는데도 진서준은 거절에 거절을 거듭하고 있다.하지만 심기가 아무리 불편해도 엘리사는 황실 교육을 받고 자랐던 터라 그 불쾌함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그만해요, 해리스. 우리 용란과 대한민국은 문화가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요. 아무래도 우리가 조금 무례했던 것 같아요.”엘리사는 해리스를 제지하고 다시 진서준에게 질문을 던졌다.“실례지만, 이름이 뭐예요?”엘리사가 진서준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그러자 진서준이 눈썹을 찌푸리며 되물었다.“설마 몰라서 묻는 건가요?”이 두 사람이 자기 신분을 모른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그렇다면 자기를 찾아온 이유가 정말 그냥 밥이나 먹자는 건지 진서준은 의혹이 들기 시작했다.진서준은 요즘 누군가의 감시를 받아며 살아왔던지라 습관적으로 의심이 많아졌다.“진짜 몰라서 묻는 거예요.”엘리사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내 이름은... 김평안입니다.”진서준이 서슴없이 가짜 이름으로 답했다.진서준이 거짓말을 하는 걸 보고 엘리사는 진서준이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김! 평! 안!”엘리사가 또박또박 진서준의 이름을 되뇌었고 예쁜 두 눈은 반달처럼 휘어졌다.“안녕하세요, 저는 엘리사입니다.”엘리사가 손을 내밀며 꽤 전통적인 인사법을 했다.그런데 이 전통적인 인사법도 엘리사 공주가 하면 열에 아홉은 감격스러워 어쩔 바를 모를 것이었다.진서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거절하기도 미안해서 손끝으로 가볍게 터치
진서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해리스는 지금처럼 긴장하지 않았을 것이다.혈귀 백작 두 명이 따라온다 해도 자기 실력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제 실력이 자기와 비슷한 진서준이라는 변수가 생겼다.만약 그 혈귀 백작 두 명이 쫓아오고 진서준이 틈타 엘리사 공주를 해치려고 한다면 자기 실력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내일 아침에 돌아갈 수는 있지만 오늘 밤의 방문은 더 이상 간섭하지 마시죠.”엘리사도 해리스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 한발 물러섰다.원래는 강남에서 며칠 더 머무르며 천천히 구경하다가 무도 교류회가 시작될 때쯤에나 경성으로 돌아가려던 계획이었다.“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반드시 공주님 옆을 지키겠습니다.”해리스가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안 되죠. 해리스 씨는 분위기만 망칠 거예요. 게다가 진서준 씨는 나에게 아무런 악의도 없어요.”엘리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저 녀석이 악의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아시죠?”해리스는 혀를 차며 물었다.“눈은 마음의 창이잖아죠. 진서준 씨가 날 볼 때 눈빛은 아주 맑았어요. 여기까지만 해두죠. 나도 더 이상 얘기하려니 피곤해요. 나 가볼게요.”엘리사는 곧바로 진서준을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엘리사가 혼자 따라오는 것을 본 진서준은 조금 놀랐다.“경호원은 안 데리고 오는 건가요?”“해리스 씨가 오면 분위기만 망칠 테니까요. 난 당신의 가족들이 해리스 씨 때문에 기분 좋은 하루를 망치길 원하지 않아요.”엘리사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진서준은 그 말에 가볍게 웃었다.“그럼 내가 엘리사 씨에게 무례하게 굴면 어쩌려고요? 당신은 외국의 공주잖아요. 내가 당신을 납치하면 앞으로 평생 먹고사는 걱정은 없겠네요.”물론 그럴 용기가 있느냐가 문제겠지만 돈을 손에 넣는다고 해도 미처 쓰지도 못하고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용란은 국제적으로 강대한 국가였고 군사력과 경제력이 막강한 나라였다.지구에서 살 마음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감히 엘리사 공주를 납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진서준 씨
엘리사는 공주라는 신분이 있지만, 그 또한 평범한 여성이었다.아까 진서준이 여러 번 핑계를 대며 엘리사의 방문을 거절했을 때, 엘리사의 마음속에는 자연스럽게 불만이 쌓였다.그래서 진서준의 친구가 이름을 잘못 부른 것을 빌미로 진서준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역시나 엘리사의 말을 들은 진서준의 얼굴에는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스쳤다.“그래요, 내 이름은 김평안이에요. 진서준은 어릴 때 불리던 별명이고요... 당신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니까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어릴 적 별명을 짓는 전통을 모를 수 있죠.”하지만 진서준은 짧은 순간에 머리를 굴려 재빨리 변명했다.“그래요? 그런데 당신 성씨가 좀 특이한 것 같은데요.”엘리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진서준을 조용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난 대한민국 문화에 대해 깊게 아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성씨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어요. 이 점은 우리 용란 국가와 비슷한 것 같네요.”엘리사의 쉬지 않고 들이대는 공격적인 태도에 허윤진이 재빨리 진서준을 변호했다.“당신이 뭔데 참견이죠? 이 사람이 진서준이든 김평안이든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에요?”“물론 상관있죠. 난 진서준 씨 친한 친구거든요.”엘리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난 형부한테 외국인 친구가 있다는 거 처음 듣는데요?”허윤진은 그 말에 즉시 머리를 돌려 진서준을 쳐다보며 따졌다.허윤진은 절대로 낯선 외국 여자가 진서준을 넘보게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이분은 옆집에 살아. 아까 그 중년 남자가 이분 경호원이야. 나도 이분을 방금 알게 됐어.”진서준은 옆집 별장을 가리키며 말했다.“무슨 일이야?”그때, 허사연과 다른 가족들도 별장에서 나왔고 마당에 서 있는 서양 여성을 보자 모두가 순간 멍해졌다.“이분들이 다 진서준 씨 가족인가요? 대한민국은 일부다처제가 금지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엘리사는 또다시 진서준을 난감한 처지에 놓일 질문을 던졌다.진서준의 얼굴은 순간 붉으락푸르락해졌다.‘이게 한 나라 공주라는
아침, 설표 특전대 기지.단잠에 빠져 있던 소정태와 고인권 등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군부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회의실에 집합했다.“어젯밤, 묘강에서 폭동이 발생했어. 그러나 배논국 군부가 폭동을 단숨에 진압하며 묘강은 다시 배논국의 영토로 돌아갔어.”상부의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여덟 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소정태 일행은 서남 국경에서 묘강의 사수들과 적지 않게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다들 묘강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미친놈일 뿐만 아니라 주술과 독충술까지 능숙히 다루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자기들만의 군대와 탱크와 같은 대형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배논국 군부가 강제로 공격했다간 양측 모두 피바다가 될 게 뻔했다.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묘강이 평정되다니 너무나 기묘한 일이었다.“혹시... 진 교관이 한 일이 아닐까?”고인권이 불쑥 입을 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여덟 사령관은 진서준이 묘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어마어마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설, 설마 그랬겠어? 진 교관님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묘강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잖아?”누군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그건 너무 황당한 얘기야. 게다가 진 교관이 대체 어떻게 묘강에 갔단 말이야? 그곳은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어서 전신전 병사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봐.”소정태가 갑자기 말했다.“너희들 기억하지? 예전에 너희가 설표 특전대가 최고 특전대로 올라설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근데 진 교관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어, 그것도 한 달도 안 걸려서 말이야. 지금도 난 똑같이 믿어. 진 교관님은 묘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소정태는 진서준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소정태는 그야말로 진서준의 열렬한 팬이었다.“그럼, 진 교관님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적기가 포착됐고 곧이어 포탄이 몇 발 날아왔다.조종사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다.쾅!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튕기며 대낮처럼 환해졌다.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오스프리 전투기 두 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문기는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유문기가 두려워하는 건 오스프리 전투기가 아니라 바로 그 괴물 같은 존재, 진서준이었다.묘왕은 자기 비장 카드인 오스프리 전투기가 파괴된 것을 보며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누가 한 짓이야? 어떤 미친놈이 감히 내 전투기를 부쉈어?”그 순간, 배논국 군대 로고가 새겨진 전투기 수십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이 광경에 묘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아까 상황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걸...’전투기 편대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대규모 부대가 들이닥쳤다.지도자를 잃은 묘강은 머리를 잃은 파리 떼처럼 혼란에 빠졌다.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진서준은 더 이상 이들과 놀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잡고 단 일격으로 묘왕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눈을 뜬 채 죽은 묘왕의 눈에는 끝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묘왕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을 수 없었다.“날 죽여.”이때의 유기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유기철이 본인이 아무리 애원해도 진서준이 살려주지 않을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넌 네 친조카까지 해쳤어. 널 만 번 죽여도 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야.”진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다.“난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널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게 해주지.”그 말과 함께 진서준은 손바닥으로 유기철의 가슴을 내리쳤다.유기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기철은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는 건 두렵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유문기 일행은 순간 얼어붙었다.유문기와 묘왕은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그들의 공동의 적이었다.진서준이 살아있다면 그들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유문기와 묘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묘왕과 유기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두 사람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너 폭탄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야?”유문기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방금 폭탄이 터진 후, 묘왕 혼자만 폭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유문기는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유문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문기의 예측은 현실을 완전히 빗나갔다.“네 생각에 그 포탄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네 눈엔 내가 저 늙은 영감탱이만도 못해 보이나?”영감탱이는 당연히 묘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진서준, 네가 묘왕을 죽여준다면 내가 묘강의 재산 절반을 네게 주마. 어때?”진서준과 맞설 수 없음을 깨달은 유문기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바로 진서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진서준을 자기편으로 영입하면 진서준이 자기를 건드릴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묘강의 재산은 거의 배논국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배논국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였기에 그 재산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하지만 진서준에게 이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진서준이 이번에 온 이유는 단 두 개, 유문기를 죽이고 묘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진서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더군다나 묘강의 돈은 대부분 불법적인 경로에서 온 더러운 돈이었다.그런 돈은 진서준이 원하지 않았다.유문기가 진서준을 설득하려는 걸 본 묘왕은 즉시 눈을 굴리며 외쳤다.“이봐 청년, 네가 저놈을 죽인다면 내가 묘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어. 사실 너와 나 사이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어. 유씨
묘왕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옷은 다 찢어졌으며 고약한 타는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묘왕의 옷 속에 숨어 있던 독충들이 조금 전의 고온에 의해 증발한 냄새였다.지금의 묘왕은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 같았고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소리쳤다.“아버지, 저놈을 죽여요! 저놈을 죽이면 우리는 묘강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유기철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내가 묘왕을 공격하라고?”유기철의 단전도 파괴되어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제 단전도 저 진서준이란 자에게 쥐어박혀서 망가졌어요. 제가 공격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버지를 시키겠어요?”유문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문기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묘왕을 죽이고 싶었다.그동안 유문기는 묘왕에게 개처럼 부려지며 살아왔다.때때로 독을 시험하는 일도 겪었는데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몇 년째 묘왕을 죽이고 싶었던 유문기는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방금 진서준에게 단전이 파괴되어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내 단전도 파괴된 거 잊었어?”유기철의 말에 유문기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이걸 드시면 일시적으로 예전의 힘을 조금 되찾을 수 있습니다.”유기철은 약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이거 부작용 없겠지?”부작용이 없다면 유문기는 자기가 먼저 먹었을 것이다.“부작용 있습니다. 먹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폐인이 됩니다.”유문기는 솔직하게 부작용을 실토했다.“아버지. 지금 이게 우리 유일한 기회예요. 저놈을 죽이고 제가 묘왕이 되면 뼈가 다 부서져도 제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놈 손에 죽을 겁니다.”유문기의 분석을 듣자 유미철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묘왕의 손에 죽거나 이 기회에 한 번 싸워보고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기철은 더 이상 망설이
묘왕의 허락을 받은 후, 두 명의 오스프리 전투기 조종사는 망설이지 않고 진서준을 조준 후 즉시 발포 버튼을 눌렀다.요란한 소리와 함께 끔찍한 불빛 두 개가 오스프리 전투기의 하단에서 솟아올랐고 미사일은 직선으로 진서준을 향해 날아갔다.“정말 목숨을 버리겠다는 거야?”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묘왕을 쳐다보았다.“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겠지!”묘왕은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마처럼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두 사람은 모두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이 시점에서 물러나면 상대방이 이 기회를 틈타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미사일에 맞아 죽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주먹에 죽게 될 것이다.미사일이 당장 떨어져 폭발할 것 같은 시점에서도 두 사람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스승님!”유문기는 당황한 표정으로 묘왕을 불렀다.“도망쳐! 멍하니 뭐 하고 있어?”유기철은 유문기를 끌고 급히 먼 곳으로 도망쳤다.쾅!미사일이 바닥에 떨어지자 그 무시무시한 힘이 주위 수백 미터를 순식간에 덮쳤다.유기철과 유문기는 이미 가장자리까지 도망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강력한 기폭에 휘말려 바닥에 사정없이 쓰러졌고 입과 코에서 피가 흐르며 처참한 모습을 보였다.유문기가 폭발 중심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퍼져 있는 걸 확인했다.유문기 부자가 가장자리에서 이렇게 심하게 다쳤으니 폭발 중심에 있던 진서준과 묘왕은 어땠을지 상상할 수 없었다.“저놈이 죽었어, 드디어 죽었어!”유문기는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유문기가 입에 담은 저놈은 묘왕을 가리키는 건지, 진서준을 가리키는 건지 유기철은 분간할 수 없었다.“문기야, 얼른 떠나자.”유기철은 정신을 차리고 유문기를 잡아끌며 떠나려고 했다.“안 돼요. 난 이날을 정말 오래 기다렸단 말이에요.”유문기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며 얼굴에 끔찍한 미소를 떠올렸다.“늙다리가 오늘에 와서야 끝내 죽었네! 내가 널 이렇게 오래 모신 이유가 바로 네가 죽는 오늘을 위해서였어!”유문기는 거리낌 없이 호탕하
묘왕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체내의 선천강기를 돌려 방어 태세를 취했다.동시에 묘왕은 자기 몸에 숨겨둔 독충들을 풀어 진서준의 얼굴로 날려 보냈다.이 독충들이 가진 독은 전부 강력한 부식성을 지니고 있어 육급 이하의 선천 대종사 강기조차 이 독충들의 독성을 막아낼 수 없었다.독충과 진서준 사이의 거리가 반 미터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진서준의 눈에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곧이어 그 불꽃이 하늘로 솟구치며 독충 무리를 덮쳤다.치지직...순간 고기를 구울 때 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독충들은 진서준이 내보낸 영화에 의해 몰살당했다.순식간에 가루로 변한 독충들은 바닥에 닿기도 전에 빗물에 씻겨 사라졌다.이를 본 묘왕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그러나 묘왕은 지금 독충을 걱정할 여유조차 없었다.진서준의 양주먹이 이미 묘왕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오고 있기 때문이었다.묘왕 역시 자기 양 주먹을 내밀어 진서준의 주먹을 정면으로 받아들였다.펑!두 사람의 주먹이 맞부딪히며 산이 무너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발밑의 지면이 지진이라도 난 듯 사방으로 갈라져 퍼져 나갔다.무시무시한 충격파에 머리 위로 떨어지던 빗물조차 접근하지 못했다.이를 꽉 악물고 있는 묘왕의 얼굴이 철판처럼 굳어졌다.묘왕은 산을 뒤엎는 듯한 공포스러운 힘이 주먹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퍼지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게다가 묘왕의 주먹 끝 강기에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반면, 진서준의 상태도 묘왕보다 크게 나아 보이지 않았다.백 년 가까이 살아온 묘왕의 내공과 실력은 역시나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우르릉!하늘에서 갑작스러운 천둥소리가 울렸다.번개의 섬광이 칠흑 같은 밤하늘을 찢어 잠깐의 백광을 드러냈다.곧이어 하늘에서 헬리콥터의 로터 소리가 들려왔다.묘왕과 정면으로 겨루고 있던 진서준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헬리콥터 두 대가 빠르게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묘왕과 속
비는 점점 거세졌고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빗물로 흠뻑 젖은 바닥에 쓰러진 유문기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단 한 방에 자기가 완전히 폐인이 되다니, 이 녀석의 실력이 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진서준은 유문기를 멍청이를 보듯이 바라보며 말했다.“너 같은 비겁한 수작질이나 하는 녀석이 감히 나랑 정면으로 겨룬다고? 널 쉽게 죽이고 싶지 않아서 봐주는 거야. 그게 아니었으면 너도 방금 그 탱크처럼 새까만 시체로 변했을 거야.”탱크조차 진서준의 일격을 당해내지 못했는데 하물며 겨우 종사 경지에 불과한 유문기가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지금 진서준에게 유문기를 죽이는 건 손바닥 뒤집는 일과도 같았다.하지만 그냥 죽이는 건 유문기에게 너무 가벼운 벌을 내리는 것과 같았다.진서준은 유문기의 뼈를 하나하나 산산이 부수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사람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두고 왜 굳이 짐승이 되려고 해?”짐승이 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너... 너 대체 누구야?”유문기의 눈알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같은 20대 청년인데 왜 이 녀석의 실력은 자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있는 거지?“너희 집 큰 짐승이 안 알려줬어?”진서준이 유기철을 가리켰다.“누굴 짐승이라는 거야? 너야말로 짐승이야!”유기철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분노에 차 욕을 내뱉었다.“유기명 삼촌이 네 목숨을 살려줬을 때 고마워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사람을 시켜 유정을 독살하려고 시도해? 네가 짐승이 아니면 뭔데? 짐승조차도 은혜를 알고 갚을 줄 알아. 넌 인간의 뇌를 가진 고등 동물인 주제에 자각도 없는 거야?”진서준은 유기철을 바라보며 섬뜩한 살기를 내뿜었다.“그건 그 여자가 죽어 마땅했기 때문이야!”유기철은 일말의 자책도 없이 계속 헛소리를 지껄였다.“다들 입 다물어!”묘왕이 분노의 외침을 터뜨리더니 곧이어 원한에 가득 찬 시선으로 진서준을 노려봤다.“이봐, 오늘 네가 무슨 이
“스승님, 지금 어떡해야 하죠?”유문기가 긴장한 기색으로 묻자 묘왕은 곧 평정심을 되찾으며 말했다.“당황하지 마. 우리에게는 아직 숨겨둔 비장의 카드가 있어. 오늘 저 녀석이 설령 지선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여기서 끝장날 거야. 게다가 방금 그 일격으로 꽤 체력을 소모했을 게 분명해. 오늘은 묘강의 모든 주민을 동원해서라도 저놈을 기어이 지치게 만들어야 해.”묘강에는 무려 3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있었고 그중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남자만 10만 명이 넘었다.이런 어마어마한 전투력을 상대하려면 지선도 버거울 게 뻔했다.죽이지는 못해도 적어도 지쳐서 움직일 수 없게 할 수는 있었다.이게 바로 묘왕이 태연하게 있을 수 있는 이유였다.그러나 진서준은 묘왕 일행에게 비장의 카드를 꺼낼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방금 참선검을 휘두르며 진서준은 곁눈질로 유기철을 발견했다.진서준이 발끝에 힘을 주고 허공에 뛰어오르자 그의 모습이 귀신처럼 제자리에서 사라졌다.사람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진서준은 이미 묘왕 일행 앞에 나타나 있었다.“너였구나!”유기철은 진서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확 변했다.“저 녀석을 알아?”묘왕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묘왕님, 이 사람이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진서준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녀석이 예전에 우리의 계획을 망쳤습니다.”유기철이 서둘러 진서준을 소개했다.눈앞의 청년이 진서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묘왕은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네놈이 내 오랜 계획을 그렇게 망쳐놓고 감히 혼자서 우리 묘강에 쳐들어와? 우리 묘강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묘왕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진서준을 노려보며 버럭 화를 냈다.하지만 진서준은 묘왕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대신 유기철을 차갑게 바라보며 은은한 살기를 드러냈다.유기철은 그 시선에 수만 마리 개미가 자기 몸을 기어다니는 듯한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유기철, 자기 친조카에게 독을 퍼뜨리는 네놈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짐승이야.”진서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탱크는 현대 전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 중 하나였고 말 그대로 전쟁 기계라 불릴 만했다.완전히 무장한 병사들이 대전차 무기가 없이 탱크를 마주하면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한다.무도를 익힌 무인이라 해도 이런 존재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지금의 올기는 체내의 영기가 거의 소진된 상태였다.묘강에 들어왔을 때 탱크를 만났다면 한 번 싸워볼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모든 희망을 진서준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진서준은 아래를 쓱 훑어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이제 넌 그만 물러나.”“알겠습니다!”올기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곧바로 몸을 줄여 진서준의 어깨 위로 돌아왔다.진서준은 몸을 천천히 놀려 기러기처럼 부드럽게 지면에 내려왔다.지면에 있는 사람들이 진서준의 움직임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세상에, 저 용 머리 위에 사람이 서 있었어!”“어머나, 그럼 아까 그 괴수가 주인이 있었단 말이야? 그럼 그 주인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사람일까?”“아무리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쩌겠어? 우리에겐 탱크가 있잖아. 게다가 전투기들도 곧 도착할 거라고.”놀라 두려워하는 사람도, 오만하게 웃는 사람도 있었다.한편, 묘왕과 유문기 두 사람은 여전히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보아하니 저 녀석이 바로 그 짐승의 주인인가 보구나.”묘왕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저놈을 당장 죽여! 묘강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줘!”진서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손바닥을 살짝 떨었다.그러자 참선검이 허공에 떠올라 진서준의 손으로 들어왔다.낯선 대한민국 청년을 보자 탱크 안에 있던 병사들은 할 말을 잃었다.그들을 전멸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자가 겨우 스무 살 남짓의 청년이라고?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노인이라면 차라리 납득이라도 했을 것이다.“포격! 포격해!”지휘관의 목소리가 작전 통신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펑! 펑! 펑!포탄 세 발이 진서준이 서 있는 방향으로 동시에 발사되었다.포탄이 터지며 대지가 흔들리고 귀청이 찢어질 듯한 폭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