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은 한 번도 직접적으로 조기강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조기강이 검존이라는 봉호를 얻을 정도라면 그 실력은 분명히 대단한 수준일 것이다.게다가 검도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편인 자기와 달리 조기강은 검술에 있어 확실히 뛰어났다.사실 진서준이 가장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는 도술과 체수였다.검을 쓰는 이유도 단지 사람을 처리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일 뿐이었다.이번에 김평안이라는 가명을 쓰기로 한 만큼 진서준은 단지 검만 사용하고 도술이나 체수는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아니에요, 아저씨는 절대 그냥 시골 사람 정도가 아니에요. 제 추측이 맞다면 아저씨는 우리 삼촌보다 훨씬 강할 거예요.”조민영은 사뭇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우리 삼촌은 단지 검의 통달 정도지만 아저씨는 이미 검세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잖아요.”진서준은 뜻밖의 단어를 듣고 깜짝 놀랐다.“민영 씨, 검세까지 알고 있는 거예요?”조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삼촌께서 저에게 말씀해 주신 적 있거든요. 검수는 검광, 검의, 검세, 검진 그리고 검도까지 총 여섯 가지 경지가 있다고요.”일반적인 검수를 놓고 볼 때, 10년 넘게 수련해서 검광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하지만 검의를 익히는 것은 단지 노력뿐 아니라 천부적인 재능도 요구된다.대종사 경지에 이른 검수 중에서도 일부만이 기초적인 검의만 익혔을 뿐, 완벽한 검의를 익힌 자는 극히 드물었다.조기강처럼 검의 통달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대한민국 무도계 전체를 통틀어도 겨우 열 명 남짓이었다.게다가 검세를 터득한 이는 더더욱 드물어 용과 봉황처럼 희귀해서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였다.검진과 검도는 더욱 전설적인 경지라 심지어 창욱 어르신조차도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들었다.하지만 예전에 창욱 어르신은 진서준에게 검도에 대한 타고난 재능이 있으니 피나는 노력만 퍼붓는다면 검도의 일부를 깨우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생각보다 민영 씨가 알고 있는 게 많네요.”진서준이 미
신농산은 한없이 넓었고 관광 개발 정도는 5%도 채 되지 않았다.나머지 20만 제곱킬로미터는 전부 원시림이라 길이 없어서 일반인들은 탐험할 엄두도 못 냈다.진서준과 조민영은 이 무인 무리 뒤를 따라 신농산 깊숙이 들어갔다.가끔 호랑이의 울음소리와 늑대가 짖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보기 흔하지 않은 귀중한 약초도 발견할 수 있었다.약 두 시간 정도의 행진 끝에 두 사람은 탁 트인 넓은 평지에 도착했다.이 평지 앞에는 거의 10미터에 이르는 돌기둥 두 개가 우뚝 서 있었다.“여기가 목적지인 것 같아요.”진서준이 눈앞의 돌기둥을 보며 말했다.“끝내 도착했네요.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아요.”조민영은 숨을 크게 내쉬며 큰 바위에 앉아 다리를 가볍게 두드렸다.제아무리 내공 무인이라고 해도 두 시간의 산길을 걷고 나면 몸이 힘들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진서준은 사실 조민영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영기를 쓰고 싶었지만 자기 정체가 드러날 것 같아 참았다.진서준이 주변을 살펴보니 점점 더 짙어지는 영기를 느낄 수 있었다.‘신농산 안에도 영맥이 있구나. 여기 영맥은 운대산 영맥보다도 강력하네.’진서준은 속으로 운대산 영맥과 비교해 봤다.그 후, 거의 천 명에 이르는 무인들이 여기에서 신농 종문의 사람들을 기다리기 시작했다.하지만 해가 지고 하루가 다 지나가는데도 신농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무슨 일이지? 온종일 기다렸는데도 신농 사람들은 왜 안 오는 거야?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조급해하지 마, 이제 막 저녁이 시작된 거잖아. 지난번 신농에 갔던 무인들한테 들었는데, 그 무인들은 거의 사흘이나 기다렸대.”“뭐라고? 사흘이나 기다렸다고? 신농 사람들은 정말 거만하기 짝이 없구나.”“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네 개 은세 종문 중 하나잖아. 심지어 국안부도 신농과 충돌하기 꺼린다는 소문도 있어.”대다수 무인은 마음속으로 불만이 넘쳐나긴 했지만 신농의 세력과 실력을 고려해 조용히 투덜대며 불만을 토로할 뿐이었다.“일단 식사부터 하죠.
나무 위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고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홀로 있는 사람도 있었으며 심지어 나무를 베어 임시 침대를 만든 사람도 있었다.황현호와 은범 역시 이 무인들 사이에 있었다.두 사람은 밀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해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고 언제든 잠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범... 범아, 우리 그냥 돌아가자. 신농 사람들이 코빼기도 내밀지 않잖아.”황현호는 두꺼운 외투를 몸에 꼭 붙이며 극심한 추위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이미 겨울을 지나 3월에 들어섰지만 북쪽 지역은 여전히 쌀쌀했다.특히 산속은 낮과 밤의 온도는 무려 10도 이상 차이가 났다.현재 신농산의 온도는 영하 10도 정도였다.아침에 은범이 외투를 입으라고 귀띔하지 않았더라면 황현호는 지금쯤 벌써 얼어 기절했을 것이다.“돌아간다고? 이 늦은 시간에 너 혼자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은범은 황현호를 냉랭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사람들과 같이 가지 않으면 너 혼자 돌아가다 길에서 얼어 죽을 수도 있어.”신농산은 굉장히 넓고 대부분이 원시림으로 되어 있어 길을 모르는 사람이 무작정 들어가면 금세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신농 사람들은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거야? 우리를 여기서 얼어 죽게 하려는 거 아니야?”황현호는 거의 울먹이듯이 말하며 은범을 따라온 걸 죽도록 후회하고 있었다.그냥 명주로 돌아가 집안의 대종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진서준에게 복수하면 이런 고생도 할 필요가 없었다.“그만 투덜대고 얼른 자자. 내일 아침이면 신농 사람들이 올 수도 있어.”은범은 황현호에 비해 꽤 차분한 편이었다.비록 그는 신농 제자 선발에 처음 참가했지만 신농의 선발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는 소문을 예전부터 쭉 들어왔다.은범은 이 정도의 작은 시련쯤은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밤이 지나고 해가 떠오르자 진서준은 조민영을 깨웠다.“어머. 벌써 아침이네요. 아저씨, 왜 밤중에 저를 안 깨우셨어요? 아저씨도 쉬셔야죠.”조민영은 진서준을
태양보다 더 눈부신 한 줄기 빛이 갑자기 돌기둥에서 뿜어져 나오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 빛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어서 즉시 고개를 돌렸다.진서준마저도 손으로 눈을 가려야만 할 정도였다.곧이어 둔탁한 소리가 귓가에 울리더니 그와 동시에 강렬한 빛이 점차 사라졌다.진서준을 포함한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기세등등하던 유자성은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로 반 미터 깊이의 큰 구덩이에 누워있었다.유씨 가문의 천재로 불리던 유자성의 비참한 모습에 모두 놀라서 어리둥절했다.사실 그는 스물여섯 살에 횡련 종사의 정점에 오를 정도로 무서운 실력을 갖춘 데다가 현장에 있던 사람 중 그를 때려눕힐 수 있는 사람은 10명도 넘지 않았다.고개를 돌린 찰나에 유자성을 처참하게 만든 것이 대체 누구의 소행인지 궁금하던 무렵, 갑자기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대단한 배짱이군! 감히 우리 신농의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다니 살고 싶지 않은가 보네!”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얼굴빛이 변한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멀리서 작고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땅으로 내려오고 있었다.점점 가까워지는 검은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한 사람들은 전부 아연실색했다. 그것은 사람의 그림자였다.“어머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걸 보면 신선이 아닐까요?”“신농산에 특유의 선법이 있다더니 정말인가 보네요!”“이 신농산에 무조건 가봐야겠어요!”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내 신농에 대한 원한은 사라졌고 오히려 경배의 눈빛으로 신농산의 사자를 바라봤다.그도 그럴 것이, 선법을 배우는 것은 그들 모두의 목표였기 때문이었다.조민영은 입을 딱 벌린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마치 신농사자가 어떻게 했는지 아는 것처럼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서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아저씨는 놀랍지 않나 봐요.”진서준은 곧장 싱긋 웃으며 말했다.“놀랄 게 뭐가 있죠? 조금 전, 사람들이 신농산에 특유의 선법이 있다고 했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걸 보고 놀랄 필요가 있을까요?”조민영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곧이어 다들 황급히 몸을 숙여 용전에게 절을 올렸다.“용전님을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용전은 이들의 공손한 태도에 극도로 만족한 표정을 짓다가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내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그 두 사람은 다름 아닌 진서준과 조민영이었다.진서준은 용전이 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신농의 사람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가둔 것도 모자라 어머니까지 신농산으로 끌고 갔기에, 진서준은 그들에게 처음부터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조민영도 용전이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절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용전의 차가운 시선에 놀라 진서준의 뒤에 숨으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아저씨, 저 사람의 눈빛이 너무 무서워요...”사람들은 용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서로 눈치를 보며 슬쩍 진서준을 살폈다.그제서야 진서준이 절을 올리지 않은 것을 알아챘고 그에게 큰 불행이 닥칠 거라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용전의 위엄을 도발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곧이어 진서준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혹시라도 자기한테 불똥이 튈까 봐 두려워 황급히 사방으로 흩어졌다.이때 용전이 진서준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이름이 뭐지?”진서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담담한 말투로 답했다.“김평안입니다.”뭇사람들은 머릿속에서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대한민국에서 처음 듣는 이름이 분명했다.용전은 이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희롱하는 눈빛으로 말했다.“당신을 기억하지, 시험에 무사히 합격하길 바랄게.”“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조건 합격할 겁니다.”진서준의 담담한 말투 속에 내비친 자신감에 용전은 더욱 차가운 냉소를 지었다.진정한 괴롭힘의 시작은 이번 심사를 통과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신농에 갓 입문한 무인들은 처음 일 년 동안 수련하는 대신 성격을 단련하기 위해 장작을 패거나 물을 끓이는 등 막노동해야만 했다.그렇게 일 년이 지나면, 신농의 천교들이 이들과 대결을 펼치면서 목숨만 붙어 있을 정도까
결국 그 누구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기에 서로 피 터지게 싸우는 건 필연적이었다.용전은 진서준을 보고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다른 사람과 싸우는 게 싫다면 떠나도 좋아. 우리도 비겁한 쓰레기와 혈기가 없는 사람은 필요 없어.”진서준의 입에서 탈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용전은 즉시 무례한 태도를 보인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용전은 사부님이 이 일을 아신다고 해도 자기를 탓하지 않을 거로 굳게 믿었다.신농은 문파 종주부터 장로 제자까지 세상에 지지 않을 법한 오만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을 얕보는 경향이 있었다.그 순간, 다들 진서준을 쳐다보면서 비아냥거렸다.“당신 같은 멍청이는 꺼지는 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목숨도 건지지 못할 거야.”“이 정도 배짱으로 감히 신농 제자 선발에 응모했다고? 정말 웃긴 녀석이네!”“이런 자리에 여동생까지 끌고 오다니, 이놈 좀 즐길 줄 아는데!”사람을 죽여본 적 없는 사람들도 신농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앞뒤를 가리지 않았다.조민영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진서준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아저씨, 이 사람들 너무 무서워요. 우리 이만 가요...”그녀는 사실 신농에 합류해 더욱 강인해지고 싶었지만, 오만하기 그지없는 용전을 보니 제자를 가르친 사부의 인품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에 차라리 집에 돌아가서 넷째 삼촌을 따라 검술이 배우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그러나 진서준은 신농에 들어가서 부모님을 구출해야 했기에 확고한 태도로 말했다.“민영 씨는 가봐요, 난 안 갈 거예요.”조민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아저씨가 안 가면 나도 안 갈래요...”이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용전은 또다시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신농 제자 선발을 시작하도록 하지!”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하나같이 동쪽으로 돌진했고 암기로 몰래 다른 무사들을 공격하는 이들도 있었다.퍽퍽퍽...음해가 계속되었고, 바닥에 누워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이를 본 진서준의 안색이 매우
황현호는 멀지 않은 앞에 진서준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즉시 목소리를 낮췄다.“어젯밤 김평안을 건드렸는데 설마 기회를 타서 우리를 죽이지는 않겠지?”은범이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답했다.“네가 건드린 거지, 난 안 건드렸어.”황현호는 곧장 눈이 휘둥그레져서 은범이를 노려봤다.“너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는 의형제를 맺은 사이잖아! 같은 날 태어난 걸 바라지 않아도 같이 죽기로 약속했으니까, 너도 날 두고 혼자 살아남을 생각하지 마!”그동안 함께 지내던 두 사람은 결국 어느 하루는 머리를 맞대면서 의형제를 맺기로 했다.그 이후로 은범이는 술에 취해 소란을 피웠을 뿐이라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황현호는 계속 그를 제일 좋은 형제로 생각했다.곧이어 은범이는 어린애처럼 의형제를 거론하는 황현호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화를 풀어주려고 애썼다.“나 농담한 거니까 화내지 마!”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황현호가 팔려 가도 다른 사람에게 돈을 쥐여줄 정도로 지능이 떨어진 재벌 2세일 뿐이라면서 무시했다.사실 은범이도 황현호와 마찬가지로 재벌 2세였지만, 그보다 조금 더 똑똑하고 상황 판단을 잘할 뿐이었다.두 사람이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종사 경지의 무인이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그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곧이어 황현호가 벌벌 떨면서 말을 건넸다.“당신... 왜 우리를 막아요? 우리는 종사도 아닌데...”그 종사는 자기의 앞에서 반격할 용기조차 없는 두 사람을 보고 담담하게 웃었다.“당신들이 종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은범이도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런데 왜 우리 앞을 막아서는 거죠?”“난 두 사람의 정체를 알고 있지. 갑부의 아들과 은씨 일가의 직계 혈통이잖아.”중년 종사가 두 사람의 정체를 아는 것이 대단한 것처럼 말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놀랄 일이 아니었다.사실 황현호는 텔레비전에 얼굴을 자주 드러냈기에 그를 아는 사람이 많았고, 은범이도 경성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인물이었다.곧이어
진서준의 앞을 가로막은 다섯 명을 쳐다보지도 않고 덤덤하게 한마디 했다.“꺼져!”그들은 당황한 나머지 멍해졌고 얼굴빛까지 어두워졌다.“뭐라고? 지금 우리한테 꺼지라고 한 거야? 정말 건방짐의 극치네!”“말로 끝내려고 했는데 너 스스로가 불행을 자초한 거야!”“저놈을 빨리 죽이고 이 여자는 우리가 데려가자!”그들의 말만 들으면 진서준은 마치 이미 저세상 사람인 것 같았다.진서준이 줄곧 자기의 실력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에 그가 종사인지, 대종사인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그들 또한 40대로 보이는 그의 외모에 종사일 거로 짐작하고는 다섯 명 중 세 명이 일품 대종사인 데다가 5대 1이니 어떻게든 질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진서준이 짜증 섞인 얼굴로 손바닥을 살짝 흔들자, 순식간에 천문검이 나타났고 그들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미친 듯이 기뻐하면서 말했다.“이놈한테 이렇게 좋은 검이 있을 줄은 몰랐네, 오늘 수확이 아주 크겠는걸!”“다른 보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따가 죽인 후, 몸수색이나 확실히 해봐야겠네.”이때 진서준은 그들을 상대하다가 혹시라도 조민영을 다치게 할까 봐 걱정되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민영 씨, 물러나 있어 줘요.”사실 그가 전력을 다한다면 다섯 명쯤은 단숨에 죽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2품 대종사인 김평안의 신분으로 그들을 단번에 죽인다면 다른 사람들의 집중 공격을 받을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게다가 4월에 해외 강자들이 연합해 대한민국 무도계를 포위할 거라는 걸 알아서 무인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었다.곧이어 조민영은 뒤로 물러나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저씨, 조심하세요...”진서준이 싸우려는 태세를 취하자, 흰 수염의 우두머리 종사가 냉소를 지었다.“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혼자서 우리 다섯 명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얌전히 죽음을 받아들이면 고통도 면할 수 있고 얼마나 좋아!”그러나 진서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
아침, 설표 특전대 기지.단잠에 빠져 있던 소정태와 고인권 등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군부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회의실에 집합했다.“어젯밤, 묘강에서 폭동이 발생했어. 그러나 배논국 군부가 폭동을 단숨에 진압하며 묘강은 다시 배논국의 영토로 돌아갔어.”상부의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여덟 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소정태 일행은 서남 국경에서 묘강의 사수들과 적지 않게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다들 묘강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미친놈일 뿐만 아니라 주술과 독충술까지 능숙히 다루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자기들만의 군대와 탱크와 같은 대형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배논국 군부가 강제로 공격했다간 양측 모두 피바다가 될 게 뻔했다.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묘강이 평정되다니 너무나 기묘한 일이었다.“혹시... 진 교관이 한 일이 아닐까?”고인권이 불쑥 입을 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여덟 사령관은 진서준이 묘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어마어마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설, 설마 그랬겠어? 진 교관님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묘강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잖아?”누군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그건 너무 황당한 얘기야. 게다가 진 교관이 대체 어떻게 묘강에 갔단 말이야? 그곳은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어서 전신전 병사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봐.”소정태가 갑자기 말했다.“너희들 기억하지? 예전에 너희가 설표 특전대가 최고 특전대로 올라설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근데 진 교관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어, 그것도 한 달도 안 걸려서 말이야. 지금도 난 똑같이 믿어. 진 교관님은 묘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소정태는 진서준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소정태는 그야말로 진서준의 열렬한 팬이었다.“그럼, 진 교관님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적기가 포착됐고 곧이어 포탄이 몇 발 날아왔다.조종사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다.쾅!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튕기며 대낮처럼 환해졌다.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오스프리 전투기 두 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문기는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유문기가 두려워하는 건 오스프리 전투기가 아니라 바로 그 괴물 같은 존재, 진서준이었다.묘왕은 자기 비장 카드인 오스프리 전투기가 파괴된 것을 보며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누가 한 짓이야? 어떤 미친놈이 감히 내 전투기를 부쉈어?”그 순간, 배논국 군대 로고가 새겨진 전투기 수십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이 광경에 묘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아까 상황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걸...’전투기 편대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대규모 부대가 들이닥쳤다.지도자를 잃은 묘강은 머리를 잃은 파리 떼처럼 혼란에 빠졌다.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진서준은 더 이상 이들과 놀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잡고 단 일격으로 묘왕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눈을 뜬 채 죽은 묘왕의 눈에는 끝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묘왕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을 수 없었다.“날 죽여.”이때의 유기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유기철이 본인이 아무리 애원해도 진서준이 살려주지 않을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넌 네 친조카까지 해쳤어. 널 만 번 죽여도 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야.”진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다.“난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널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게 해주지.”그 말과 함께 진서준은 손바닥으로 유기철의 가슴을 내리쳤다.유기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기철은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는 건 두렵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유문기 일행은 순간 얼어붙었다.유문기와 묘왕은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그들의 공동의 적이었다.진서준이 살아있다면 그들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유문기와 묘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묘왕과 유기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두 사람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너 폭탄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야?”유문기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방금 폭탄이 터진 후, 묘왕 혼자만 폭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유문기는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유문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문기의 예측은 현실을 완전히 빗나갔다.“네 생각에 그 포탄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네 눈엔 내가 저 늙은 영감탱이만도 못해 보이나?”영감탱이는 당연히 묘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진서준, 네가 묘왕을 죽여준다면 내가 묘강의 재산 절반을 네게 주마. 어때?”진서준과 맞설 수 없음을 깨달은 유문기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바로 진서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진서준을 자기편으로 영입하면 진서준이 자기를 건드릴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묘강의 재산은 거의 배논국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배논국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였기에 그 재산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하지만 진서준에게 이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진서준이 이번에 온 이유는 단 두 개, 유문기를 죽이고 묘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진서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더군다나 묘강의 돈은 대부분 불법적인 경로에서 온 더러운 돈이었다.그런 돈은 진서준이 원하지 않았다.유문기가 진서준을 설득하려는 걸 본 묘왕은 즉시 눈을 굴리며 외쳤다.“이봐 청년, 네가 저놈을 죽인다면 내가 묘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어. 사실 너와 나 사이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어. 유씨
묘왕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옷은 다 찢어졌으며 고약한 타는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묘왕의 옷 속에 숨어 있던 독충들이 조금 전의 고온에 의해 증발한 냄새였다.지금의 묘왕은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 같았고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소리쳤다.“아버지, 저놈을 죽여요! 저놈을 죽이면 우리는 묘강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유기철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내가 묘왕을 공격하라고?”유기철의 단전도 파괴되어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제 단전도 저 진서준이란 자에게 쥐어박혀서 망가졌어요. 제가 공격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버지를 시키겠어요?”유문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문기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묘왕을 죽이고 싶었다.그동안 유문기는 묘왕에게 개처럼 부려지며 살아왔다.때때로 독을 시험하는 일도 겪었는데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몇 년째 묘왕을 죽이고 싶었던 유문기는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방금 진서준에게 단전이 파괴되어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내 단전도 파괴된 거 잊었어?”유기철의 말에 유문기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이걸 드시면 일시적으로 예전의 힘을 조금 되찾을 수 있습니다.”유기철은 약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이거 부작용 없겠지?”부작용이 없다면 유문기는 자기가 먼저 먹었을 것이다.“부작용 있습니다. 먹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폐인이 됩니다.”유문기는 솔직하게 부작용을 실토했다.“아버지. 지금 이게 우리 유일한 기회예요. 저놈을 죽이고 제가 묘왕이 되면 뼈가 다 부서져도 제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놈 손에 죽을 겁니다.”유문기의 분석을 듣자 유미철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묘왕의 손에 죽거나 이 기회에 한 번 싸워보고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기철은 더 이상 망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