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이번이 살면서 두 번째로 겪는 큰 굴욕이었다.“범아, 우리 그냥 이렇게 가는 거야?”황현호는 은범을 노려보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따졌다.은범은 황현호를 무심하게 쳐다보며 냉랭하게 웃으며 되물었다.“왜? 더 맞아야 속이 후련하겠어? 아니면 아예 못 나가길 원해? 널 때린 건 저 남자잖아. 화가 나면 저 남자한테 풀어야지 왜 나한테 소리 지르고 난리야?”황현호는 은범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화을 식이지 못해 씩씩대던 황현호는 이를 악물며 중얼댔다.“난 저 남자가 날 죽일 거라고 믿지 않아. 이래 봬도 난 황경영의 아들이란 말이야!”“여기선 네가 누구 아들이든 상관없어. 저 남자가 널 죽인다 해도 네 집안이 어쩌겠어?”은범이 가소롭다는 듯 황현호를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저 남자를 찾아 보복할 거야? 아니면 어쩔 거야? 설령 복수를 한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어? 넌 이미 죽었을 거잖아. 저런 사람하고 목숨을 맞바꾸는 게 너한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이 말에 황현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목숨을 맞바꾸는 짓은 생명이 별 가치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돈 많은 사람들은 자기 목숨을 끔찍하게 아끼는 법이다.“네 말이 맞아. 저런 놈하고 목숨을 맞바꿀 필요는 없지.”황현호는 이내 침착해졌고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제기랄, 이제 기회만 있으면 저 녀석 뼈를 전부 박살 내고 말겠어. 참, 저 녀석 이름이 뭔지도 모르잖아. 잠깐 기다려 봐.”황현호는 말을 마치고 다시 호텔로 달려갔다.진서준과 조민영은 그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영감, 네 이름 감히 밝힐 수 있어?”황현호는 진서준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구경거리가 사라져 떠나려 하던 사람들도 그 소리에 다들 멈춰 섰다. 사람들은 황경영의 아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중년 남자가 누구인지 몹시 궁금했다.“김평안.”진서준이 조용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호텔 전체에 들리기에 충분했다.“김평안?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
진서준은 한 번도 직접적으로 조기강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조기강이 검존이라는 봉호를 얻을 정도라면 그 실력은 분명히 대단한 수준일 것이다.게다가 검도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편인 자기와 달리 조기강은 검술에 있어 확실히 뛰어났다.사실 진서준이 가장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는 도술과 체수였다.검을 쓰는 이유도 단지 사람을 처리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일 뿐이었다.이번에 김평안이라는 가명을 쓰기로 한 만큼 진서준은 단지 검만 사용하고 도술이나 체수는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아니에요, 아저씨는 절대 그냥 시골 사람 정도가 아니에요. 제 추측이 맞다면 아저씨는 우리 삼촌보다 훨씬 강할 거예요.”조민영은 사뭇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우리 삼촌은 단지 검의 통달 정도지만 아저씨는 이미 검세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잖아요.”진서준은 뜻밖의 단어를 듣고 깜짝 놀랐다.“민영 씨, 검세까지 알고 있는 거예요?”조민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삼촌께서 저에게 말씀해 주신 적 있거든요. 검수는 검광, 검의, 검세, 검진 그리고 검도까지 총 여섯 가지 경지가 있다고요.”일반적인 검수를 놓고 볼 때, 10년 넘게 수련해서 검광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하지만 검의를 익히는 것은 단지 노력뿐 아니라 천부적인 재능도 요구된다.대종사 경지에 이른 검수 중에서도 일부만이 기초적인 검의만 익혔을 뿐, 완벽한 검의를 익힌 자는 극히 드물었다.조기강처럼 검의 통달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대한민국 무도계 전체를 통틀어도 겨우 열 명 남짓이었다.게다가 검세를 터득한 이는 더더욱 드물어 용과 봉황처럼 희귀해서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였다.검진과 검도는 더욱 전설적인 경지라 심지어 창욱 어르신조차도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들었다.하지만 예전에 창욱 어르신은 진서준에게 검도에 대한 타고난 재능이 있으니 피나는 노력만 퍼붓는다면 검도의 일부를 깨우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생각보다 민영 씨가 알고 있는 게 많네요.”진서준이 미
신농산은 한없이 넓었고 관광 개발 정도는 5%도 채 되지 않았다.나머지 20만 제곱킬로미터는 전부 원시림이라 길이 없어서 일반인들은 탐험할 엄두도 못 냈다.진서준과 조민영은 이 무인 무리 뒤를 따라 신농산 깊숙이 들어갔다.가끔 호랑이의 울음소리와 늑대가 짖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보기 흔하지 않은 귀중한 약초도 발견할 수 있었다.약 두 시간 정도의 행진 끝에 두 사람은 탁 트인 넓은 평지에 도착했다.이 평지 앞에는 거의 10미터에 이르는 돌기둥 두 개가 우뚝 서 있었다.“여기가 목적지인 것 같아요.”진서준이 눈앞의 돌기둥을 보며 말했다.“끝내 도착했네요.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아요.”조민영은 숨을 크게 내쉬며 큰 바위에 앉아 다리를 가볍게 두드렸다.제아무리 내공 무인이라고 해도 두 시간의 산길을 걷고 나면 몸이 힘들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진서준은 사실 조민영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영기를 쓰고 싶었지만 자기 정체가 드러날 것 같아 참았다.진서준이 주변을 살펴보니 점점 더 짙어지는 영기를 느낄 수 있었다.‘신농산 안에도 영맥이 있구나. 여기 영맥은 운대산 영맥보다도 강력하네.’진서준은 속으로 운대산 영맥과 비교해 봤다.그 후, 거의 천 명에 이르는 무인들이 여기에서 신농 종문의 사람들을 기다리기 시작했다.하지만 해가 지고 하루가 다 지나가는데도 신농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무슨 일이지? 온종일 기다렸는데도 신농 사람들은 왜 안 오는 거야?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지?”“조급해하지 마, 이제 막 저녁이 시작된 거잖아. 지난번 신농에 갔던 무인들한테 들었는데, 그 무인들은 거의 사흘이나 기다렸대.”“뭐라고? 사흘이나 기다렸다고? 신농 사람들은 정말 거만하기 짝이 없구나.”“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네 개 은세 종문 중 하나잖아. 심지어 국안부도 신농과 충돌하기 꺼린다는 소문도 있어.”대다수 무인은 마음속으로 불만이 넘쳐나긴 했지만 신농의 세력과 실력을 고려해 조용히 투덜대며 불만을 토로할 뿐이었다.“일단 식사부터 하죠.
나무 위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고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홀로 있는 사람도 있었으며 심지어 나무를 베어 임시 침대를 만든 사람도 있었다.황현호와 은범 역시 이 무인들 사이에 있었다.두 사람은 밀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해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고 언제든 잠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범... 범아, 우리 그냥 돌아가자. 신농 사람들이 코빼기도 내밀지 않잖아.”황현호는 두꺼운 외투를 몸에 꼭 붙이며 극심한 추위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이미 겨울을 지나 3월에 들어섰지만 북쪽 지역은 여전히 쌀쌀했다.특히 산속은 낮과 밤의 온도는 무려 10도 이상 차이가 났다.현재 신농산의 온도는 영하 10도 정도였다.아침에 은범이 외투를 입으라고 귀띔하지 않았더라면 황현호는 지금쯤 벌써 얼어 기절했을 것이다.“돌아간다고? 이 늦은 시간에 너 혼자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은범은 황현호를 냉랭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사람들과 같이 가지 않으면 너 혼자 돌아가다 길에서 얼어 죽을 수도 있어.”신농산은 굉장히 넓고 대부분이 원시림으로 되어 있어 길을 모르는 사람이 무작정 들어가면 금세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신농 사람들은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거야? 우리를 여기서 얼어 죽게 하려는 거 아니야?”황현호는 거의 울먹이듯이 말하며 은범을 따라온 걸 죽도록 후회하고 있었다.그냥 명주로 돌아가 집안의 대종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진서준에게 복수하면 이런 고생도 할 필요가 없었다.“그만 투덜대고 얼른 자자. 내일 아침이면 신농 사람들이 올 수도 있어.”은범은 황현호에 비해 꽤 차분한 편이었다.비록 그는 신농 제자 선발에 처음 참가했지만 신농의 선발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는 소문을 예전부터 쭉 들어왔다.은범은 이 정도의 작은 시련쯤은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밤이 지나고 해가 떠오르자 진서준은 조민영을 깨웠다.“어머. 벌써 아침이네요. 아저씨, 왜 밤중에 저를 안 깨우셨어요? 아저씨도 쉬셔야죠.”조민영은 진서준을
태양보다 더 눈부신 한 줄기 빛이 갑자기 돌기둥에서 뿜어져 나오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 빛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어서 즉시 고개를 돌렸다.진서준마저도 손으로 눈을 가려야만 할 정도였다.곧이어 둔탁한 소리가 귓가에 울리더니 그와 동시에 강렬한 빛이 점차 사라졌다.진서준을 포함한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기세등등하던 유자성은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로 반 미터 깊이의 큰 구덩이에 누워있었다.유씨 가문의 천재로 불리던 유자성의 비참한 모습에 모두 놀라서 어리둥절했다.사실 그는 스물여섯 살에 횡련 종사의 정점에 오를 정도로 무서운 실력을 갖춘 데다가 현장에 있던 사람 중 그를 때려눕힐 수 있는 사람은 10명도 넘지 않았다.고개를 돌린 찰나에 유자성을 처참하게 만든 것이 대체 누구의 소행인지 궁금하던 무렵, 갑자기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대단한 배짱이군! 감히 우리 신농의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다니 살고 싶지 않은가 보네!”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사람들은 얼굴빛이 변한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멀리서 작고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땅으로 내려오고 있었다.점점 가까워지는 검은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한 사람들은 전부 아연실색했다. 그것은 사람의 그림자였다.“어머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걸 보면 신선이 아닐까요?”“신농산에 특유의 선법이 있다더니 정말인가 보네요!”“이 신농산에 무조건 가봐야겠어요!”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내 신농에 대한 원한은 사라졌고 오히려 경배의 눈빛으로 신농산의 사자를 바라봤다.그도 그럴 것이, 선법을 배우는 것은 그들 모두의 목표였기 때문이었다.조민영은 입을 딱 벌린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마치 신농사자가 어떻게 했는지 아는 것처럼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서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아저씨는 놀랍지 않나 봐요.”진서준은 곧장 싱긋 웃으며 말했다.“놀랄 게 뭐가 있죠? 조금 전, 사람들이 신농산에 특유의 선법이 있다고 했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걸 보고 놀랄 필요가 있을까요?”조민영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곧이어 다들 황급히 몸을 숙여 용전에게 절을 올렸다.“용전님을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용전은 이들의 공손한 태도에 극도로 만족한 표정을 짓다가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내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그 두 사람은 다름 아닌 진서준과 조민영이었다.진서준은 용전이 절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신농의 사람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가둔 것도 모자라 어머니까지 신농산으로 끌고 갔기에, 진서준은 그들에게 처음부터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조민영도 용전이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절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용전의 차가운 시선에 놀라 진서준의 뒤에 숨으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아저씨, 저 사람의 눈빛이 너무 무서워요...”사람들은 용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서로 눈치를 보며 슬쩍 진서준을 살폈다.그제서야 진서준이 절을 올리지 않은 것을 알아챘고 그에게 큰 불행이 닥칠 거라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용전의 위엄을 도발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곧이어 진서준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혹시라도 자기한테 불똥이 튈까 봐 두려워 황급히 사방으로 흩어졌다.이때 용전이 진서준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이름이 뭐지?”진서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담담한 말투로 답했다.“김평안입니다.”뭇사람들은 머릿속에서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대한민국에서 처음 듣는 이름이 분명했다.용전은 이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희롱하는 눈빛으로 말했다.“당신을 기억하지, 시험에 무사히 합격하길 바랄게.”“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조건 합격할 겁니다.”진서준의 담담한 말투 속에 내비친 자신감에 용전은 더욱 차가운 냉소를 지었다.진정한 괴롭힘의 시작은 이번 심사를 통과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신농에 갓 입문한 무인들은 처음 일 년 동안 수련하는 대신 성격을 단련하기 위해 장작을 패거나 물을 끓이는 등 막노동해야만 했다.그렇게 일 년이 지나면, 신농의 천교들이 이들과 대결을 펼치면서 목숨만 붙어 있을 정도까
결국 그 누구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기에 서로 피 터지게 싸우는 건 필연적이었다.용전은 진서준을 보고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다른 사람과 싸우는 게 싫다면 떠나도 좋아. 우리도 비겁한 쓰레기와 혈기가 없는 사람은 필요 없어.”진서준의 입에서 탈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용전은 즉시 무례한 태도를 보인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용전은 사부님이 이 일을 아신다고 해도 자기를 탓하지 않을 거로 굳게 믿었다.신농은 문파 종주부터 장로 제자까지 세상에 지지 않을 법한 오만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을 얕보는 경향이 있었다.그 순간, 다들 진서준을 쳐다보면서 비아냥거렸다.“당신 같은 멍청이는 꺼지는 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목숨도 건지지 못할 거야.”“이 정도 배짱으로 감히 신농 제자 선발에 응모했다고? 정말 웃긴 녀석이네!”“이런 자리에 여동생까지 끌고 오다니, 이놈 좀 즐길 줄 아는데!”사람을 죽여본 적 없는 사람들도 신농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앞뒤를 가리지 않았다.조민영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진서준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아저씨, 이 사람들 너무 무서워요. 우리 이만 가요...”그녀는 사실 신농에 합류해 더욱 강인해지고 싶었지만, 오만하기 그지없는 용전을 보니 제자를 가르친 사부의 인품이 얼마나 좋겠냐는 생각에 차라리 집에 돌아가서 넷째 삼촌을 따라 검술이 배우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그러나 진서준은 신농에 들어가서 부모님을 구출해야 했기에 확고한 태도로 말했다.“민영 씨는 가봐요, 난 안 갈 거예요.”조민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아저씨가 안 가면 나도 안 갈래요...”이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용전은 또다시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부터 신농 제자 선발을 시작하도록 하지!”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하나같이 동쪽으로 돌진했고 암기로 몰래 다른 무사들을 공격하는 이들도 있었다.퍽퍽퍽...음해가 계속되었고, 바닥에 누워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이를 본 진서준의 안색이 매우
황현호는 멀지 않은 앞에 진서준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즉시 목소리를 낮췄다.“어젯밤 김평안을 건드렸는데 설마 기회를 타서 우리를 죽이지는 않겠지?”은범이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답했다.“네가 건드린 거지, 난 안 건드렸어.”황현호는 곧장 눈이 휘둥그레져서 은범이를 노려봤다.“너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는 의형제를 맺은 사이잖아! 같은 날 태어난 걸 바라지 않아도 같이 죽기로 약속했으니까, 너도 날 두고 혼자 살아남을 생각하지 마!”그동안 함께 지내던 두 사람은 결국 어느 하루는 머리를 맞대면서 의형제를 맺기로 했다.그 이후로 은범이는 술에 취해 소란을 피웠을 뿐이라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황현호는 계속 그를 제일 좋은 형제로 생각했다.곧이어 은범이는 어린애처럼 의형제를 거론하는 황현호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화를 풀어주려고 애썼다.“나 농담한 거니까 화내지 마!”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황현호가 팔려 가도 다른 사람에게 돈을 쥐여줄 정도로 지능이 떨어진 재벌 2세일 뿐이라면서 무시했다.사실 은범이도 황현호와 마찬가지로 재벌 2세였지만, 그보다 조금 더 똑똑하고 상황 판단을 잘할 뿐이었다.두 사람이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종사 경지의 무인이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그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곧이어 황현호가 벌벌 떨면서 말을 건넸다.“당신... 왜 우리를 막아요? 우리는 종사도 아닌데...”그 종사는 자기의 앞에서 반격할 용기조차 없는 두 사람을 보고 담담하게 웃었다.“당신들이 종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은범이도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런데 왜 우리 앞을 막아서는 거죠?”“난 두 사람의 정체를 알고 있지. 갑부의 아들과 은씨 일가의 직계 혈통이잖아.”중년 종사가 두 사람의 정체를 아는 것이 대단한 것처럼 말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놀랄 일이 아니었다.사실 황현호는 텔레비전에 얼굴을 자주 드러냈기에 그를 아는 사람이 많았고, 은범이도 경성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인물이었다.곧이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