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사연은 서지은을 소파에 앉혔다.“일단 진정하고 천천히 얘기해 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서지은이 진서준을 힐끔 쳐다보더니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며칠 전 서준 씨가 나를 데려가니까 화가 났던 작은 삼촌이 서울시에 연아 씨를 잡으러 갔어.”“김연아 씨를 억지로 조카와 결혼시키고 싶어 했어. 성대한 결혼식도 없이.”“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김형섭이 사람을 데려가서 김연아 씨를 구해냈대.”“약이 잔뜩 오른 작은 삼촌이 아빠를 속이고 르벨에 가서 대사님을 찾아내 김연아 씨를 김씨 저택에서 억지로 데려가려 했나 봐.”허사연의 동생이 멈칫했다.김씨 가문에는 여러 명의 종사가 있는데 이번에 데려온 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진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지은이 나머지 얘기를 다 털어놓기를 기다렸다.“르벨에 있는 대사는 지의방 일위였어. 경성 인씨 가문에서 거의 보살을 모시다시피 모셨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는지 경성을 떠나 르벨로 갔더라고.”서지은이 얼른 설명했다.이 소식은 서광문이 서지은에게 알려준 것이었다.상대가 지의방 일위라는 말에 허사연 자매의 마음이 무거워졌다.서씨 가문의 왕안석도 대단하긴 했지만 결국 지의방 21위까지가 끝이었다.그렇다면 르벨 대사의 실력은 더 어마무시할 것 같았다.“작은삼촌이 그 대사를 데리고 바로 김씨 가문에 쳐들어갔지.”“김씨 가문의 대종사들이 연합해도 그 대사의 실력을 뛰어넘지는 못했대.”“김형섭은 더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니까 자기 목숨으로 김연아 씨의 자유를 바꾸겠다고 했대...”이렇게 생각한 서가은이 말을 멈췄다. 그 뒤로 있은 일은 진서준도 대략 알 것 같았다.김형섭은 김연아를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한 것이다.김연아가 아까 왜 김형섭이 그녀를 구하다 죽었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진서준은 전에 김형섭을 가문의 이익만 따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을 것이다.어쩌면 김형섭은 김연아에게 늘 죄책감을 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가문과 김연아 사이에
하지만 허사연 등 사람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그녀들은 모두 진서준이 지나친 행동을 할까 봐 두려웠다.그러자 진서준은 그녀들을 한 번 쳐다보고는 미소를 지었다.“너희들의 눈에는 내가 그렇게 경솔한 사람으로 보여?”허사연은 진서준의 옆에 앉아 그의 팔을 꼭 껴안았다.“아니에요. 그냥 같이 있어 주고 싶을 뿐이죠. 저도 서준 씨가 마음이 아파하는 걸 알고 있어요.”허사연은 진서준의 마음속에는 자신을 빼고 김연아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김연아가 이렇게 슬픈 일을 겪었으니 진서준의 마음도 분명 많이 아플 것이다.허사연은 어떻게 사람을 위로할지 몰랐고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진서준의 곁을 지키는 것뿐이었다.“괜찮아. 난 여기서 좀만 앉아 쉬고 있으면 되니 너희들은 빨리 위층으로 올라가 쉬어. 오늘 하루 종일 차를 탔으니 피곤하겠어.”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어 허사연의 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잠시 진서준을 지켜보고 있던 허사연이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러면 먼저 올라가서 쉴게요.”허사연은 진서준의 얼굴에 가볍게 키스하고 일어나서 계단을 올라갔다.“형부, 내일 아침에 별장에 없으면 다시는 형부를 아는 척도 하지 않을 거예요!”허윤진이 진서준을 향해 말했다.허윤진은 여전히 진서준이 화를 못 참고 서씨 가문으로 쳐들어가거나 직접 르벨로 갈까 봐 걱정했다.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난 너처럼 그렇게 대담하지 않아.”“그러니까 가만히 이곳에 있겠다고 약속하면 먼저 보상을 드리죠.”허윤진은 허사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재빨리 진서준의 얼굴에 뽀뽀한 후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그러자 서지은도 재빨리 진서준에게 뽀뽀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진서준은 눈을 지그시 감고 조용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다.복수는 반드시 해야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혹은 김연아가 직접 복수하게 하고 싶었다.아버지를 죽인 원수는 직접 갚아야 그 한을 풀 수 있었다.진서준은 천천히 일어나서 대문 앞에 가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았다.먹구
“불효녀 김연아가 아버지 제사에 왔어요!”김연아는 온몸의 힘을 다 써서 이 짧은 한마디 말을 뱉었다.사람들은 김연아의 쉬어 들어가는 목소리를 들었다.그러자 김씨 저택 안의 김씨 가문 사람들이 김연아를 발견했다.“저 빌어먹을 년이 감히 이곳으로 오다니!”“다 저년 때문에 우리 가주님께서 목숨을 잃었어. 그런데 이곳이 어디라고 감히 오는 거야? 저런 년은 당장 죽여버려야 해.”김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씩씩거리며 김연아를 죽여야 한다고 소리쳤다.“강남의 다른 세가들 앞에서 다들 뭐 하는 거야? 김씨 가문이 또 망신당하는 꼴을 보고 싶어?”김형섭과 비슷한 말투를 가진 중년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 사람은 김형섭의 동생인 김형산이었다.“둘째 삼촌, 저 여자가 이곳으로 온 것이야말로 우리 김씨 가문에 대한 모욕이에요.”김씨 가문의 한 젊은이가 대꾸했다.그때 김혜민이 일어나서 아무런 표정도 없이 밖으로 걸어갔다.하지만 김형산은 김혜민을 말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둘러보더니 차갑게 말했다.“내가 언제 저 여자를 들여보내도 된다고 말했어?”김형산은 김연아를 들여보내지 않을 것이지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힘없는 여자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그렇지 않으면 김씨 가문은 다른 강남 세가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저택 입구.김형섭의 제사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한 눈빛으로 김연아를 바라보았다.어떤 사람은 김연아를 알아보았고 어떤 사람은 김형섭이 죽음에 대한 찌라시를 듣고 수군거리고 있었다.“들어가죠.”진서준은 김연아의 손을 잡고 앞을 가로막는 경호원들을 무시하고 들어가려고 했다.“거기 서지 못해!”김씨 가문의 한 중년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김연아를 노려보았다.“김연아, 이곳이 어디라고 네가 감히 오는 거야? 네가 아니었다면 우리 가주님도 죽지 않았을 거야!”그 말을 듣자 떠돌고 있던 소문을 의심했던 사람들은 즉시 상황을 알아차렸다.‘김형섭이 사생 딸 때문에 죽은 거였어!’하지만 진서준과 김연아는 아무 말도 못 들은 척 발걸음을
진서준과 김연아가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김혜민을 발견했다.김혜민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차가운 빗줄기가 그녀의 몸에 떨어지고 있었다.김연아의 앞에 도착하자 김혜민은 아무런 말도 없이 바로 손을 들어 김연아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탁!김혜민의 손바닥이 김연아의 얼굴에 닿기도 전에 진서준이 막았다.“이거 놓지 못해!”김혜민은 화가 치밀어 올라서 이를 갈면서 눈시울을 붉혔다.“내가 말했지. 이제는 누구도 연아 씨를 다치게 하지 못할 거야.”진서준은 차갑게 말했다.김연아의 체면을 봐줄 필요가 없었다면 김혜민은 진작에 진서준에게 걷어차여 날아갔을 것이다.“그럼 이 년이 우리를 해치는 건 괜찮아?”김혜민도 쉬어가는 목소리로 진서준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우리 아빠는 이년 때문에 목숨을 잃었어! 이년만 아니었다면 우리 아빠도 살아계셨을 거고 김씨 가문도 이 꼴이 되지 않았을 거야!”죄책감, 분노, 고통, 슬픔...김혜민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가득했다.하지만 김연아 역시 마찬가지였다.“김형섭 씨는 너뿐만 아니라 연아 씨의 아버지이기도 하지.”진서준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연아 씨는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아?”“저 여자는 우리 아빠가 죽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어.”김혜민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진서준과 김혜민이 말다툼을 하고 있을 때 김형산이 김씨 가문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걸어왔다.“김연아, 네가 뭐라고 이곳에 오는 거야. 당장 꺼져. 김씨 가문은 널 환영하지 않아.”“가주님은 너 같은 딸이 없어. 빨리 꺼지라고!”“더 이상 가지 않으면 대종사님을 불러서 너희들을 내쫓을 거야.”김씨 가문 사람들은 너도나도 화가 난 표정으로 김연아를 노려보고 있었다.그러자 진서준은 그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저리 비켜.”“네가 뭔데 우리보고 비키라는 거야?”“진서준, 우리 김씨 가문이 널 두려워할 것 같아?”그때 김형산이 큰 소리로 말했다.“됐어. 다들 조용히 해!”
비는 점점 더 세게 내리고 있었다.김씨 가문 사람들은 빗속에 서서 진서준을 노려보고 있었다.“어르신께서 오셨어!”누군가가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은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김씨 가문 어르신이 기세등등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이미 백세가 넘은 김씨 가문 어르신이었지만 기세는 여전히 옛날 못지않았다.일부 젊은이들은 그를 보자 즉시 입을 다물었다.“할아버지!”김형산은 즉시 김씨 가문 어르신 앞에 다가가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제가 김연아를 막지 못했어요!”김씨 가문 어르신 김조한은 보통 남 앞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지난번에 김씨 가문과 서씨 가문의 결혼식 날에도 김조한은 나타나지 않았다.김형섭의 장례식에도 김조한은 잠깐 얼굴만 비추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그가 이번에 나타난 건 진서준과 김연아가 장례식장에 쳐들어왔기 때문이었다.“네가 바로 진서준이야?”김조한은 마음속의 화를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그의 눈동자에서 무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진서준은 김조한을 힐끗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네.”김조한 앞에서도 진서준은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진서준은 이미 마음속으로 김씨 가문의 모든 사람과 맞서 싸울 준비를 했다.어찌 되었든 간에 진서준은 아버지의 제사에 참석하는 김연아를 지켜줘야 했다.“넌 죽을죄를 지었어.”김조한이 차갑게 말했다.그러자 진서준은 여전히 담담한 말투였다.“고작 김씨 가문의 실력으로는 저를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제 목숨은 더더욱 다치지 못할 겁니다. 김씨 가문 사람들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다면 언제든지 한번 덤벼봐요.”진서준의 말투는 정말 패기가 넘쳤다.김씨 가문도 여태까지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경시당한 적이 없었다.게다가 진서준은 아직 20대 청년이었다.김조한은 화가 나서 터질 것 같았다.김씨 가문은 지난번에 이미 한 번 망신을 당했다.오늘 만약 진서준과 김연아를 무사히 이곳에서 떠나게 한다면 김씨 가문은 반드시 전체 강남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
다섯 줄기의 굉장한 강기가 거친 파도처럼 진서준에게 밀려갔다.진서준의 몸에 거의 닿으려 할 때 청색의 보호막이 나타나서 다섯 줄기의 강기를 막았다.쿵! 쿵! 쿵!강기와 청색의 보호막이 부딪히자 귀가 터질 듯한 굉음이 터졌다.그러자 온 대지가 뒤흔드는 것 같았다.진서준이 서 있던 곳에는 심지어 십여 미터 넘게 되는 구멍이 생겨 사방으로 퍼졌다.김씨 가문의 젊은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저... 저 자식이 이걸 막아내다니!”김조한마저 약간 놀랐다.다섯 명의 대종사가 힘을 합쳐 공격했는데 뜻밖에도 진서준이 막아냈다.‘이 자식이 설마 육급 대종사야? 설마... 그보다 더 대단할까? 하지만 나이는 얼마 되어 보이지 않은데.’바로 그때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자세히 보니 진서준의 몸에 둘러싸인 청색 보호막에 금이 났다.하지만 그래도 진서준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난 너희들을 죽이고 싶지 않아.”진서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고 그와 동시에 그의 두 팔은 청색과 붉은색으로 뒤덮였다.“그런데 너희들이 자기 주제를 모르고 있으니 날 탓하지 마.”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청색 보호막이 부서졌고 진서준도 그 순간 손을 썼다.진서준는 다섯 명의 공격을 무시하고 두 주먹이 두 사람의 몸에 닿았다.그 순간 진서준의 주먹에는 청색과 붉은색이 뒤얽힌 용수가 나타났다.용수에서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고 그 순간 두 대종사의 보호막은 산산조각이 났다.쾅!두 명의 대종사는 순식간에 수백 미터나 날아갔고 큰 나무 10여 그루와 연속으로 부딪혔다. 그러자 큰 나무들이 모두 부러졌고 나중에 담벼락마저 부딪혀 무너졌다.다른 대종사 3명도 주먹을 들고 진서준의 몸을 치려고 했다.그들 세 명은 온몸의 힘을 모두 끌어올려 진서준을 공격했다.진서준의 안색은 약간 붉어졌고 목에서 피 냄새가 났다.하지만 진서준은 자신의 부상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주먹을 휘둘러 다른 두 명의 대종사를 공격했다.“이 새끼가
사람들은 진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만 볼 뿐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스물다섯 살의 청년이 혼자의 힘으로 김씨 가문 사람들을 정복했다.어쩌면 오직 진서준만이 이런 실력이 있을 것이다.경성의 4대 가문의 젊은 세대들도 이런 실력이 없었다.육급 대종사의 실력은 오랜 수련을 거쳐야 도달할 수 있었다.김씨 가문 사람들은 심지어 이건 선인 환생의 기적이라고 했다.특히 진서준의 팔에 용수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김씨 가문의 육급 대종사는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젊은 세대가 무섭군!”비록 부상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대종사 다섯 명이 손을 잡아서 겨우 지금 진서준 한 사람과 승패를 가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만약 일대일로 붙는다면 몹시 위험한 상황일 것이다.김형산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대한민국에 언제 이런 실력이 막강한 젊은이가 나타났는지 궁금했다.진서준의 성장 속도는 모든 사람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굉장했다.김형산이 알고 있는 진서준의 정보에 의하면 진서준은 완전히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진서준은 감옥에서 나온 후부터 무섭게 변했다.‘설마 진서준이 감옥에서 대단한 인물을 만났던 걸까?’“김형산 씨, 이런 실력의 젊은이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우리는 먼저 돌아가서 상처를 치료할게요.”육급 대종사는 김형산에게 당부하고 돌아섰다.진서준은 아직 어린 나이에 이 실력이면 앞으로는 엄청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김씨 가문이 진서준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앞으로 강남의 제일 가문의 자리는 아마도 김씨 가문이 차지할 것이다.이런 생각을 하던 김형산은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았다.‘만약 김연아를 다시 김씨 가문으로 들어오게 한다면... 그리고 진서준과 김연아의 친분을 잘 이용하기만 하면 앞으로 진서준이 우리 가문을 도와줄지도 몰라!’그때 김혜민이 걸어 들어갔다.“비켜. 난 안으로 들어가야 해.”김혜민이 차갑게 말했다.진서준은 김혜민을 바라보다가 담담하게 말했다.“연아 씨가 안에 있어.”“나도 우리
김혜민은 김형섭의 영정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안타깝게도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김연아는 여전히 아런 대답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떠나려는 거야? 아버지의 가장 큰 소원이 바로 네가 남아서 김씨 가문을 거느리는 것이었어.”김혜민은 김연아를 바라보면서 물었다.“그럴 필요 없어. 아버지가 없으니 나도 이제 김씨 가문에 남아있을 필요도 없어.”김연아는 고개를 저었다.지금의 김씨 가문에 대해 김연아는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김형섭이 죽었으니 김연아가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모두 낯선 가족들뿐이었다.“내가 있잖아. 우린 언니 동생 사이야.”김혜민이 김연아를 막아 나서며 진지하게 말했다.김혜민의 입에서 언니 동생 말이 나오자 김연아는 살짝 놀랐다.김형섭의 죽음 때문에 김혜민은 큰 변화가 생겼다.김형섭이 살아있었다면 지금의 김혜민을 보면 정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기뻐하실 것이다.김연아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날 찾거나 아니면 진서준 씨를 찾으면 돼. 서준 씨는 절대 네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거야.”김연아는 말을 마치고 김혜민을 스쳐 지나갔다.김연아가 나오자 진서준은 그녀를 데리고 보슬비를 맞으며 김씨 가문을 떠났다.비록 김형산도 김연아가 김씨 가문에 남길 원했지만 그는 김혜민과 좀 달랐다.그는 진서준 몰래 김연아에게 남아달라는 요구를 제기하려고 했다.“다들 잘 들어. 앞으로 누구든지 연아를 사생 딸이라고 욕하지 마. 누가 다시 그런 말을 하면 당장 김씨 가문에서 내쫓을 거야!”김형산은 김씨 가문 사람들에게 호통쳤다.그러자 사람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대략 김형산이 뭘 하려는지 짐작이 갔다....“서준 씨, 저도 서준 씨와 함께 수련하고 싶어요.”돌아가는 길에 김연아가 진서준에게 말했다.“좋아요.”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는 김연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김연아는 스스로 원수를 갚고 싶었고 그러자면
결연한 표정을 지은 조슬기를 본 장강훈은 순간 당황했다.“뭐든 다 협상할 수 있어. 제발 흥분하지 말자.”장강훈이 받은 임무는 조슬기를 데려가는 것이었고 그녀를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만약 조슬기가 다친다면 그야말로 큰일 날 상황이었다.“다시 물을게, 내 조건 받아들일 거야, 말 거야?”조슬기가 단호하게 묻자 결국 선택지가 없었던 장강훈은 마지못해 동의했다.“좋아, 저 여자는 보내주겠어.”“안 돼요, 아가씨. 절대 저 녀석들과 함께 가면 안 돼요.”신수란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만류했다.“란 언니, 걱정 마세요. 이 사람들은 절대 저를 함부로 다치진 않을 거예요. 언니는 먼저 몸부터 챙기세요.”조슬기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대체 누가 자기를 잡으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신중히 행동하는 걸 보니 이 사람들이 자기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건 확신했다.“조 아가씨, 시간이 얼마 없어. 서둘러 나가자.”장강훈이 손짓하며 재촉하자 조슬기는 말없이 단검을 쥐고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방 안에 있던 킬러들은 신수란을 힐끔힐끔 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조슬기가 문턱에 거의 다다른 순간, 장강훈이 갑자기 신속하게 움직였다.쨍그랑!단검이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얼른 이 여자를 잡아!”장강훈이 명령하자마자 양쪽에 대기하던 킬러들이 조슬기를 단단히 제압했다.“왜 이렇게 비겁해? 약속을 지켜야지!”조슬기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조 아가씨, 내가 아까 한 자기소개를 잊었나 보네?”장강훈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여자는 생포해. 저 남자는 어디 보자, 그냥 죽여버려.”장강훈은 진서준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오빠,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이런 일이...”조슬기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과했다.“이봐,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려. 내가 시간을 끌게.”신수란이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지금의 신수란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시간을 끄는 일
“너희 둘 다 도망갈 생각 말고 얌전하게 따라오기나 해!”말을 마친 남자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자는 한눈에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신수란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장강훈!”최근 서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악당인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은 물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였다.게다가 그 실력은 상당히 강력해서 범행은 그야말로 대담하기 그지없었다.국안부에서도 장강훈을 체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장강훈은 유령처럼 자취를 감췄고 한 달간 수색했음에도 잡히지 않았다.신수란은 설마 자신들을 습격한 자가 바로 악당 장강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국안부의 분석에 따르면 장강훈의 실력은 지의방에 오를 정도로 강력했다.“오호라? 너희 곤륜산 애송이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이거 참 영광스러운 일이군.”장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란 언니, 장강훈이 누구죠?”조슬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신수란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짐승 같은 놈이에요.”장강훈의 말을 듣자 진서준의 눈에도 흥미로운 기색이 스쳤다.이 두 여자가 곤륜 종문의 사람이란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곤륜은 대한민국 4대 최정상 은세 종문 하나인데 그 제자들은 대체로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이번에 내려온 건 아마 한 달 후에 있을 숭산 대회 때문일 것이다.“이봐, 아가씨. 말은 가려서 하는 게 좋을걸?”장강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우리가 잡으려는 건 이 여자야. 넌 그냥 덤으로 딸려 온 상품일 뿐이고. 내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너 따위는 내 노예로 삼아도 된다 이거야.”장강훈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최근에 장강훈은 살인과 약탈 중에 수많은 여자를 노예로 붙잡아 둔 상태였다.신수란처럼 보기 드문 미인은 장강훈이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더 개소리를 지껄여봐. 내가 네 입을 찢어버릴 테니까.”신수란의 얼굴이 분노로 시퍼
“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얼른 옷 입혀주세요. 깨어나면 괜히 또 뭐라고 할 테니까.”진서준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그림자 몇 개가 하나둘 진서준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모텔로 들어섰다.“귀찮게 됐군.”진서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겨우 잠깐 눈 붙였더니 이런 귀찮은 일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곧이어 조슬기는 신수란의 옷을 전부 갈아입혔다.“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괜찮으니까 얼른 떠나세요.”진서준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이건 그냥 지나가던 인연일 뿐, 두 사람을 구해준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었다.진서준은 낯선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지금 짊어진 문제만으로도 진서준은 이미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알겠어요.”조슬기도 쫓아오는 자들이 무서워 서둘러 신수란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바로 그때, 신수란이 눈을 떴다.“어라? 아가씨, 여기가 어디예요?”눈을 막 뜬 신수란은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였기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란 언니, 깨어나셨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조슬기는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신수란은 자기 상처를 만지며 말했다.놀랍게도 상처에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처치해도 피가 멈추지 않았었다.“오빠, 그럼 저희는 이제 가볼게요.”조슬기가 진서준에게 작별 인사하자 그제야 신수란도 진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신수란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표정이 살짝 변했다.“네가 날 구해준 거야?”“맞아.”진서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흥!”신수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 몸을 본 거, 네가 날 구해준 걸로 눈감아 줄게.”“란 언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죠. 오빠가 아니었으면 언니는 아마 지금쯤 사경을 헤맸을 거예요.”조슬기는 불쾌하다
“란 언니!”신수란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조슬기는 깜짝 놀라 황급히 신수란을 침대에 눕혔다.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조슬기는 결국 간절한 눈빛으로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했다.“오빠, 제발 우리 란 언니를 좀 도와주세요. 얼마를 드리든 상관없으니 제발 란 언니를 살려주세요.”눈물범벅이 된 조슬기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마음이 아려올 정도였다.진서준은 여자 눈물에 약했지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하나만 묻죠, 왜 내 방에 온 거죠?”조슬기는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우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어요. 아까 여기 들어올 때, 프런트에서 이 방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숨어 있으려고 했어요.”진서준은 바닥의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숨어 있으려면 최소한 자국은 남기지 말아야죠. 이렇게 허술하게 움직이면 쫓아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이라도 준 격인데요?”조슬기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그녀는 금세 얼굴이 창백해지며 다급하게 외쳤다.“큰일이에요. 그럼 그 사람들이 곧 여길 찾아오겠네요.”어리바리한 조슬기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이 사람부터 치료할게요. 상처가 낫는 대로 빨리 떠나세요.”“고마워요, 오빠.”조슬기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진서준은 은침을 알코올로 소독한 후, 호주머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 있었다.“이 여자 옷 좀 벗겨주세요.”“아, 네.”조슬기는 진서준의 말을 따르며 재빠르게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겼다.단숨에 신수란의 옷을 전부 벗겨내자 그녀의 아름다운 몸매가 다시금 드러났다.물론 비밀의 숲을 포함한 그 신비로운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진서준은 갑자기 밀려온 충격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이 여자는 진짜 멍청한 걸까,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까? 상처는 복부에 있는데 왜 바지를 벗기는 거지?’“바지는 벗길 필요 없어요
“누가 이기고 질지는 아직 모르는 거잖습니까.”고인권이 끼어들었다.“맞아, 우리 8대 특전대도 호락호락한 부대가 아니야.”“전신전 놈들에게 우리 8대 특전대의 실력을 똑똑히 보여주자.”나머지 사령관들도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갑작스레 열정이 불타오르는 이들을 보며 상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좋아, 한 달 후에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마.”영상 통화가 끊기자 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각자의 기지로 돌아가 장병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모든 장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전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해. 절대 진 교관님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모두가 열기를 띠며 훈련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한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서남 국경.진서준은 올기를 타고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마을은 크지 않았고 진서준은 대충 모텔을 한 군데 찾아 방을 얻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진서준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곯아떨어졌다.진서준은 너무 피곤했다.어젯밤의 전투로 지금의 진서준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올기가 진서준을 등에 태우지 않았더라면 진서준은 아마 울창한 숲속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것이다.진서준이 잠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느닷없이 열렸고 이어 아름다운 두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그중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나이가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였다.다른 여자는 타이트한 검은색 옷차림에 글래머와 세련된 얼굴을 지닌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하지만 지금 그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고 배 부분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리고 있었다.딱 봐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사람이 있네요.”두 여자가 곤히 자는 진서준을 보자 살짝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아래층 투숙 기록을 확인했을 땐 이 방에 투숙객이 없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저 사람 자고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죠. 깨우지만 않으면 될 거예요.”젊은 여자가 말했다.“근데 자칫 중간에 깨어나면 어쩌죠...”성숙한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란 언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
아침, 설표 특전대 기지.단잠에 빠져 있던 소정태와 고인권 등 사령관은 갑작스러운 군부의 전화 소리에 깨어났다.8대 특전대 사령관들은 즉시 회의실에 집합했다.“어젯밤, 묘강에서 폭동이 발생했어. 그러나 배논국 군부가 폭동을 단숨에 진압하며 묘강은 다시 배논국의 영토로 돌아갔어.”상부의 이 한마디에 현장에 있던 여덟 명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소정태 일행은 서남 국경에서 묘강의 사수들과 적지 않게 맞닥뜨린 경험이 있었다.다들 묘강의 사람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미친놈일 뿐만 아니라 주술과 독충술까지 능숙히 다루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그들은 자기들만의 군대와 탱크와 같은 대형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배논국 군부가 강제로 공격했다간 양측 모두 피바다가 될 게 뻔했다.그런데, 단 하룻밤 만에 묘강이 평정되다니 너무나 기묘한 일이었다.“혹시... 진 교관이 한 일이 아닐까?”고인권이 불쑥 입을 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여덟 사령관은 진서준이 묘강으로 갈 가능성을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이렇게 어마어마한 소식이 터진 것이다.“설, 설마 그랬겠어? 진 교관님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묘강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잖아?”누군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맞아. 그건 너무 황당한 얘기야. 게다가 진 교관이 대체 어떻게 묘강에 갔단 말이야? 그곳은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어서 전신전 병사들조차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야.”“난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봐.”소정태가 갑자기 말했다.“너희들 기억하지? 예전에 너희가 설표 특전대가 최고 특전대로 올라설 거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지? 근데 진 교관님 덕분에 우리는 그 어려운 걸 해냈어, 그것도 한 달도 안 걸려서 말이야. 지금도 난 똑같이 믿어. 진 교관님은 묘강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소정태는 진서준에 대해 백 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소정태는 그야말로 진서준의 열렬한 팬이었다.“그럼, 진 교관님께 전화라도 걸어볼까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적기가 포착됐고 곧이어 포탄이 몇 발 날아왔다.조종사들은 반응할 틈도 없이 폭격을 정면으로 맞았다.쾅!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칠흑 같은 밤하늘에 거대한 불꽃이 튕기며 대낮처럼 환해졌다.지상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오스프리 전투기 두 대는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문기는 도망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유문기가 두려워하는 건 오스프리 전투기가 아니라 바로 그 괴물 같은 존재, 진서준이었다.묘왕은 자기 비장 카드인 오스프리 전투기가 파괴된 것을 보며 분노로 눈이 뒤집혔다.“누가 한 짓이야? 어떤 미친놈이 감히 내 전투기를 부쉈어?”그 순간, 배논국 군대 로고가 새겨진 전투기 수십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이 광경에 묘왕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아까 상황 좀 더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할 걸...’전투기 편대가 먼저 도착하고 이어 대규모 부대가 들이닥쳤다.지도자를 잃은 묘강은 머리를 잃은 파리 떼처럼 혼란에 빠졌다.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진서준은 더 이상 이들과 놀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잡고 단 일격으로 묘왕의 허리를 두 동강 냈다.눈을 뜬 채 죽은 묘왕의 눈에는 끝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분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억울해도 묘왕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을 수 없었다.“날 죽여.”이때의 유기철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은 마치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른 것 같았지만 사실은 유기철이 본인이 아무리 애원해도 진서준이 살려주지 않을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넌 네 친조카까지 해쳤어. 널 만 번 죽여도 내 분노가 풀리지 않을 거야.”진서준의 얼굴은 여전히 냉랭했다.“난 널 죽이지 않겠어. 대신 널 평생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살게 해주지.”그 말과 함께 진서준은 손바닥으로 유기철의 가슴을 내리쳤다.유기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유기철은 진서준이 자기를 죽이는 건 두렵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진서준을 보자 유문기 일행은 순간 얼어붙었다.유문기와 묘왕은 내부 싸움을 벌이고 있었지만 진서준은 그들의 공동의 적이었다.진서준이 살아있다면 그들 모두 죽을 운명이었다.유문기와 묘왕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묘왕과 유기철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두 사람의 몸은 거의 한계에 다다랐고 더는 버틸 수 없을 정도였다.“너 폭탄에 맞아 죽은 줄 알았는데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야?”유문기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방금 폭탄이 터진 후, 묘왕 혼자만 폭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오는 걸 본 유문기는 진서준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은 유문기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유문기의 예측은 현실을 완전히 빗나갔다.“네 생각에 그 포탄 따위가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네 눈엔 내가 저 늙은 영감탱이만도 못해 보이나?”영감탱이는 당연히 묘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진서준, 네가 묘왕을 죽여준다면 내가 묘강의 재산 절반을 네게 주마. 어때?”진서준과 맞설 수 없음을 깨달은 유문기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했다.바로 진서준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었다.진서준을 자기편으로 영입하면 진서준이 자기를 건드릴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묘강의 재산은 거의 배논국의 절반과 맞먹는 수준이었다.배논국은 작은 나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였기에 그 재산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였다.하지만 진서준에게 이 돈은 전혀 필요 없었다.진서준이 이번에 온 이유는 단 두 개, 유문기를 죽이고 묘왕을 없애기 위해서였다.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진서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더군다나 묘강의 돈은 대부분 불법적인 경로에서 온 더러운 돈이었다.그런 돈은 진서준이 원하지 않았다.유문기가 진서준을 설득하려는 걸 본 묘왕은 즉시 눈을 굴리며 외쳤다.“이봐 청년, 네가 저놈을 죽인다면 내가 묘왕의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어. 사실 너와 나 사이엔 그렇게 큰 원한도 없어. 유씨
묘왕의 온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옷은 다 찢어졌으며 고약한 타는 냄새가 났다.그 냄새는 묘왕의 옷 속에 숨어 있던 독충들이 조금 전의 고온에 의해 증발한 냄새였다.지금의 묘왕은 바람에 꺼져가는 촛불 같았고 누구든지 쉽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유문기는 유기철에게 소리쳤다.“아버지, 저놈을 죽여요! 저놈을 죽이면 우리는 묘강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유기철은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내가 묘왕을 공격하라고?”유기철의 단전도 파괴되어 공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제 단전도 저 진서준이란 자에게 쥐어박혀서 망가졌어요. 제가 공격할 수 있다면 왜 굳이 아버지를 시키겠어요?”유문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문기도 직접 전장에 나서서 묘왕을 죽이고 싶었다.그동안 유문기는 묘왕에게 개처럼 부려지며 살아왔다.때때로 독을 시험하는 일도 겪었는데 그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몇 년째 묘왕을 죽이고 싶었던 유문기는 드디어 적절한 기회를 잡았지만 아쉽게도 방금 진서준에게 단전이 파괴되어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렸다.“내 단전도 파괴된 거 잊었어?”유기철의 말에 유문기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냈다.“이걸 드시면 일시적으로 예전의 힘을 조금 되찾을 수 있습니다.”유기철은 약을 받아 들고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이거 부작용 없겠지?”부작용이 없다면 유문기는 자기가 먼저 먹었을 것이다.“부작용 있습니다. 먹으면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폐인이 됩니다.”유문기는 솔직하게 부작용을 실토했다.“아버지. 지금 이게 우리 유일한 기회예요. 저놈을 죽이고 제가 묘왕이 되면 뼈가 다 부서져도 제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둘 다 저놈 손에 죽을 겁니다.”유문기의 분석을 듣자 유미철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묘왕의 손에 죽거나 이 기회에 한 번 싸워보고 나중에라도 누군가 그를 돌봐 줄 수 있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유기철은 더 이상 망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