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준과 김연아가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김혜민을 발견했다.김혜민은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차가운 빗줄기가 그녀의 몸에 떨어지고 있었다.김연아의 앞에 도착하자 김혜민은 아무런 말도 없이 바로 손을 들어 김연아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탁!김혜민의 손바닥이 김연아의 얼굴에 닿기도 전에 진서준이 막았다.“이거 놓지 못해!”김혜민은 화가 치밀어 올라서 이를 갈면서 눈시울을 붉혔다.“내가 말했지. 이제는 누구도 연아 씨를 다치게 하지 못할 거야.”진서준은 차갑게 말했다.김연아의 체면을 봐줄 필요가 없었다면 김혜민은 진작에 진서준에게 걷어차여 날아갔을 것이다.“그럼 이 년이 우리를 해치는 건 괜찮아?”김혜민도 쉬어가는 목소리로 진서준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우리 아빠는 이년 때문에 목숨을 잃었어! 이년만 아니었다면 우리 아빠도 살아계셨을 거고 김씨 가문도 이 꼴이 되지 않았을 거야!”죄책감, 분노, 고통, 슬픔...김혜민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가득했다.하지만 김연아 역시 마찬가지였다.“김형섭 씨는 너뿐만 아니라 연아 씨의 아버지이기도 하지.”진서준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연아 씨는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아?”“저 여자는 우리 아빠가 죽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어.”김혜민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진서준과 김혜민이 말다툼을 하고 있을 때 김형산이 김씨 가문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걸어왔다.“김연아, 네가 뭐라고 이곳에 오는 거야. 당장 꺼져. 김씨 가문은 널 환영하지 않아.”“가주님은 너 같은 딸이 없어. 빨리 꺼지라고!”“더 이상 가지 않으면 대종사님을 불러서 너희들을 내쫓을 거야.”김씨 가문 사람들은 너도나도 화가 난 표정으로 김연아를 노려보고 있었다.그러자 진서준은 그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저리 비켜.”“네가 뭔데 우리보고 비키라는 거야?”“진서준, 우리 김씨 가문이 널 두려워할 것 같아?”그때 김형산이 큰 소리로 말했다.“됐어. 다들 조용히 해!”
비는 점점 더 세게 내리고 있었다.김씨 가문 사람들은 빗속에 서서 진서준을 노려보고 있었다.“어르신께서 오셨어!”누군가가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은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김씨 가문 어르신이 기세등등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이미 백세가 넘은 김씨 가문 어르신이었지만 기세는 여전히 옛날 못지않았다.일부 젊은이들은 그를 보자 즉시 입을 다물었다.“할아버지!”김형산은 즉시 김씨 가문 어르신 앞에 다가가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제가 김연아를 막지 못했어요!”김씨 가문 어르신 김조한은 보통 남 앞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지난번에 김씨 가문과 서씨 가문의 결혼식 날에도 김조한은 나타나지 않았다.김형섭의 장례식에도 김조한은 잠깐 얼굴만 비추고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그가 이번에 나타난 건 진서준과 김연아가 장례식장에 쳐들어왔기 때문이었다.“네가 바로 진서준이야?”김조한은 마음속의 화를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그의 눈동자에서 무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노려보았다.진서준은 김조한을 힐끗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네.”김조한 앞에서도 진서준은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진서준은 이미 마음속으로 김씨 가문의 모든 사람과 맞서 싸울 준비를 했다.어찌 되었든 간에 진서준은 아버지의 제사에 참석하는 김연아를 지켜줘야 했다.“넌 죽을죄를 지었어.”김조한이 차갑게 말했다.그러자 진서준은 여전히 담담한 말투였다.“고작 김씨 가문의 실력으로는 저를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제 목숨은 더더욱 다치지 못할 겁니다. 김씨 가문 사람들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다면 언제든지 한번 덤벼봐요.”진서준의 말투는 정말 패기가 넘쳤다.김씨 가문도 여태까지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경시당한 적이 없었다.게다가 진서준은 아직 20대 청년이었다.김조한은 화가 나서 터질 것 같았다.김씨 가문은 지난번에 이미 한 번 망신을 당했다.오늘 만약 진서준과 김연아를 무사히 이곳에서 떠나게 한다면 김씨 가문은 반드시 전체 강남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
다섯 줄기의 굉장한 강기가 거친 파도처럼 진서준에게 밀려갔다.진서준의 몸에 거의 닿으려 할 때 청색의 보호막이 나타나서 다섯 줄기의 강기를 막았다.쿵! 쿵! 쿵!강기와 청색의 보호막이 부딪히자 귀가 터질 듯한 굉음이 터졌다.그러자 온 대지가 뒤흔드는 것 같았다.진서준이 서 있던 곳에는 심지어 십여 미터 넘게 되는 구멍이 생겨 사방으로 퍼졌다.김씨 가문의 젊은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저... 저 자식이 이걸 막아내다니!”김조한마저 약간 놀랐다.다섯 명의 대종사가 힘을 합쳐 공격했는데 뜻밖에도 진서준이 막아냈다.‘이 자식이 설마 육급 대종사야? 설마... 그보다 더 대단할까? 하지만 나이는 얼마 되어 보이지 않은데.’바로 그때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자세히 보니 진서준의 몸에 둘러싸인 청색 보호막에 금이 났다.하지만 그래도 진서준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난 너희들을 죽이고 싶지 않아.”진서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고 그와 동시에 그의 두 팔은 청색과 붉은색으로 뒤덮였다.“그런데 너희들이 자기 주제를 모르고 있으니 날 탓하지 마.”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청색 보호막이 부서졌고 진서준도 그 순간 손을 썼다.진서준는 다섯 명의 공격을 무시하고 두 주먹이 두 사람의 몸에 닿았다.그 순간 진서준의 주먹에는 청색과 붉은색이 뒤얽힌 용수가 나타났다.용수에서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고 그 순간 두 대종사의 보호막은 산산조각이 났다.쾅!두 명의 대종사는 순식간에 수백 미터나 날아갔고 큰 나무 10여 그루와 연속으로 부딪혔다. 그러자 큰 나무들이 모두 부러졌고 나중에 담벼락마저 부딪혀 무너졌다.다른 대종사 3명도 주먹을 들고 진서준의 몸을 치려고 했다.그들 세 명은 온몸의 힘을 모두 끌어올려 진서준을 공격했다.진서준의 안색은 약간 붉어졌고 목에서 피 냄새가 났다.하지만 진서준은 자신의 부상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주먹을 휘둘러 다른 두 명의 대종사를 공격했다.“이 새끼가
사람들은 진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만 볼 뿐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스물다섯 살의 청년이 혼자의 힘으로 김씨 가문 사람들을 정복했다.어쩌면 오직 진서준만이 이런 실력이 있을 것이다.경성의 4대 가문의 젊은 세대들도 이런 실력이 없었다.육급 대종사의 실력은 오랜 수련을 거쳐야 도달할 수 있었다.김씨 가문 사람들은 심지어 이건 선인 환생의 기적이라고 했다.특히 진서준의 팔에 용수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김씨 가문의 육급 대종사는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젊은 세대가 무섭군!”비록 부상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대종사 다섯 명이 손을 잡아서 겨우 지금 진서준 한 사람과 승패를 가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만약 일대일로 붙는다면 몹시 위험한 상황일 것이다.김형산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대한민국에 언제 이런 실력이 막강한 젊은이가 나타났는지 궁금했다.진서준의 성장 속도는 모든 사람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굉장했다.김형산이 알고 있는 진서준의 정보에 의하면 진서준은 완전히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진서준은 감옥에서 나온 후부터 무섭게 변했다.‘설마 진서준이 감옥에서 대단한 인물을 만났던 걸까?’“김형산 씨, 이런 실력의 젊은이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우리는 먼저 돌아가서 상처를 치료할게요.”육급 대종사는 김형산에게 당부하고 돌아섰다.진서준은 아직 어린 나이에 이 실력이면 앞으로는 엄청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김씨 가문이 진서준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앞으로 강남의 제일 가문의 자리는 아마도 김씨 가문이 차지할 것이다.이런 생각을 하던 김형산은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았다.‘만약 김연아를 다시 김씨 가문으로 들어오게 한다면... 그리고 진서준과 김연아의 친분을 잘 이용하기만 하면 앞으로 진서준이 우리 가문을 도와줄지도 몰라!’그때 김혜민이 걸어 들어갔다.“비켜. 난 안으로 들어가야 해.”김혜민이 차갑게 말했다.진서준은 김혜민을 바라보다가 담담하게 말했다.“연아 씨가 안에 있어.”“나도 우리
김혜민은 김형섭의 영정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안타깝게도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김연아는 여전히 아런 대답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떠나려는 거야? 아버지의 가장 큰 소원이 바로 네가 남아서 김씨 가문을 거느리는 것이었어.”김혜민은 김연아를 바라보면서 물었다.“그럴 필요 없어. 아버지가 없으니 나도 이제 김씨 가문에 남아있을 필요도 없어.”김연아는 고개를 저었다.지금의 김씨 가문에 대해 김연아는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김형섭이 죽었으니 김연아가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모두 낯선 가족들뿐이었다.“내가 있잖아. 우린 언니 동생 사이야.”김혜민이 김연아를 막아 나서며 진지하게 말했다.김혜민의 입에서 언니 동생 말이 나오자 김연아는 살짝 놀랐다.김형섭의 죽음 때문에 김혜민은 큰 변화가 생겼다.김형섭이 살아있었다면 지금의 김혜민을 보면 정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기뻐하실 것이다.김연아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날 찾거나 아니면 진서준 씨를 찾으면 돼. 서준 씨는 절대 네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거야.”김연아는 말을 마치고 김혜민을 스쳐 지나갔다.김연아가 나오자 진서준은 그녀를 데리고 보슬비를 맞으며 김씨 가문을 떠났다.비록 김형산도 김연아가 김씨 가문에 남길 원했지만 그는 김혜민과 좀 달랐다.그는 진서준 몰래 김연아에게 남아달라는 요구를 제기하려고 했다.“다들 잘 들어. 앞으로 누구든지 연아를 사생 딸이라고 욕하지 마. 누가 다시 그런 말을 하면 당장 김씨 가문에서 내쫓을 거야!”김형산은 김씨 가문 사람들에게 호통쳤다.그러자 사람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대략 김형산이 뭘 하려는지 짐작이 갔다....“서준 씨, 저도 서준 씨와 함께 수련하고 싶어요.”돌아가는 길에 김연아가 진서준에게 말했다.“좋아요.”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는 김연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김연아는 스스로 원수를 갚고 싶었고 그러자면
진서준이 폐관하고 있을 때 국안부에서 소식이 전해졌다.봉호전이 끝났다.그날 저녁 8시에 국안부의 공식 포럼에서 이번에 봉호를 받은 사람들의 명단을 발표할 것이다.봉호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의심할 여지 없이 대한민국의 절대적인 자존심이었다.많은 가문에서도 이번 봉호 명단이 발표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어떤 가문들은 봉호 명단에 오른 고수들에게 가문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까지 세웠다.그리고 심지어 어떤 가문들은 봉호를 얻은 사람들에게 자기 자손을 맡기려고 했다.그와 동시에 해외의 강자들도 명단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은 이미 4월 용의 안식 계획을 다 준비했다.지난 10년 동안 해외의 사람들은 줄곧 이 계획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호국 장군 같은 늙은 세대 중의 천재는 해외 강자들도 상대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들이 젊은 세대들을 죽이기에는 충분했다.명단에 있는 젊은 무술 천재들을 죽이면 대한민국의 무도를 완전히 망하게 할 수 있었다.이게 바로 그들의 목적이었다.또 다른 목적은 바로 전설 속의 수선 공법을 찾는 것이었다.8시 15분, 명단이 발표되었다.이번에 봉호를 받은 사람은 모두 24명이었다.그중에 20대인 사람은 오직 진서준 한 명뿐이었다.이제 겨우 25세의 진서준이 용존이라는 봉호를 받자 온 포럼이 발칵 뒤집혔다.“겨우 스물다섯 살에 봉호를 받은 거야? 믿을 수 없어.”“국안부의 호국 장군 8명도 40대가 되어서야 봉호를 받았어. 진서준이라는 젊은이가 호국 장군들보다 더 재능이 뛰어나단 말이야?”많은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진서준이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게다가 봉호전쟁 첫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았다.진서준이 문호동과 원현성을 이긴 것을 본 사람은 수백 명에 불과했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서준의 실력을 의심했다.“진서준이 6연승을 했어. 인의방 1위였던 원현성과 은씨 일가의 문호동 이 두 사람도 모두 진서준에게 졌어. 그러니 진서준도 이 봉호를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지.”진서준의 편을 들어주
여론이 진씨 가문으로 몰리자 진씨 가문도 즉시 글을 올렸다.“진서준 씨는 우리 진씨 가문과 아무 상관이 없음을 알립니다. 그 당시 진요한 씨의 부인은 난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사망했습니다.”비록 진씨 가문에서 이렇게 해명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진씨 가문의 말을 믿지 않았다.하지만 사람들은 증거가 없었다.가장 중요한 건 진서준은 지금 아무런 흔적도 없이 인간에서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다.누구도 진서준이 어디로 간 걸 몰랐다.진서라는 임씨 가문에 숨어 있었다. 임준은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특별히 진서라에게 인피면구를 주었다.남매가 동시에 사라지자 다른 무인들은 더욱 궁금했다....한 달 반이 지났다. 진서준은 끼니도 대충 때우면서 수련에 열중했다.허사연과 그녀들은 진서준을 몹시 걱정했지만 또 진서준의 수련에 방해가 될까 봐 말할 수도 없었다.“며칠 있으면 설인데 아빠가 혼자 집에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모르겠어.”허사연은 허성태가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나도 가끔 집 생각이 나.”허윤진도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전에는 설날이면 허성태가 아무리 바빠도 그녀들과 함께 설날 저녁을 먹었다.지금은 오히려 그녀들이 바빠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김연아는 별로 슬퍼하지 않았다.설날이라도 줄곧 혼자 보냈기에 김연아는 이런 외로운 상황이 익숙했다.“언니, 아니면 그믐날에 함께 집에 갔다가 하루만 있다가 다시 돌아올까?”허윤진이 제안했다.허사연과 허윤진은 이미 몇 달 동안 허성태를 보지 못했다.허윤진이 그렇게 말하자 허사연은 사실 마음이 좀 움직였다.그러자 김연아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아니면 돌아가세요. 제가 이곳에 남아 있을게요. 서준 씨가 출관하면 두 분이 집으로 잠깐 돌아갔다고 말해줄게요.”허사연은 한참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었다.“연아 씨, 그러면 부탁할게요.”“별말씀을요.”그러자 허윤진은 즉시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섣달그믐날 아침에 허사연과 허윤진은 누렁이를 데리고 운
류재훈이 떠나자 진서준은 인피면구를 얼굴에 썼다.류재훈을 못 믿는 건 아니었지만 진서준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진서준은 더욱 안전했다.인피면구는 진서준의 얼굴뿐만 아니라 헤어스타일도 바꿔버렸다.“지금 저는 어떤 모습이죠?”거울이 없으니 진서준도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몰라서 김연아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진서준은 심지어 영기를 써서 원래 목소리가 아닌 나이가 있어 보이는 굵직한 목소리로 변하게 했다.김연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직접 진서준이 인피면구를 쓰는 걸 보지 않았다면 눈앞의 이 중년 남자가 바로 진서준이라는 걸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수염이 많은 아저씨 같네요.”김연아는 전화를 꺼내서 진서준에게 건네면서 스스로 보라고 했다.지금 진서준의 외모는 마흔 살이 넘고 약간 우울해 보이는 아저씨 같았다.‘3월에 신농산으로 가야 하니 나이는 그래도 꽤 비슷하네.’신농이 제자를 받아들이는 건 매우 엄격한 요구 사항이 있었다.나이는 45세를 초과할 수 없고 실력은 최소 이급 대종사 이상이어야 했다.진서준은 하도 어렸기에 지금 중년 남자로 변해버리면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너무 티 나지 않을 것이다.“역시 인피면구를 참 잘 만들었네요. 그냥 제 얼굴인 것 같아요. 이런 얼굴로 사연을 찾아간다면 그녀들은 절대 저를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진서준이 웃으면서 말했다.“서준 씨가 지금 입은 옷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네요. 바꿔 입어야 할 것 같아요.”김연아가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진서준은 운동복 차림이었고 요즘 운동복을 즐겨 입는 중년 남자는 거의 없었다.“그러니까요. 그러면 일단 옷 사러 가죠.”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연아를 데리고 쇼핑몰로 갔다.옷을 고르는데 많은 사람들은 부럽고 질투하는 눈빛으로 김연아를 바라보았다.그들은 김연아가 조건 만남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김연아도 다른 사람의 눈빛을 의식하고 일부러 진서준과 거리를 두었다.김연아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그녀는 사람들이 진서준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
노랑머리 청년의 말에 도민수는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너 너무한 거 아니야?”도민수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너무해? 그게 네가 할 소리야?”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고작 마약 좀 얻겠다고 친누나를 바친 건 누구야? 대체 누가 더 개같은 짓을 한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 같은 쓰레기 동생은 처음 봐.”주변에 있던 똘마니들도 박장대소했다.모두가 도민수를 한심한 광대 보듯이 쳐다봤다.“좋아. 영상 찍을게.”도민수는 이를 갈며 결국 받아들였다.“쯧쯧... 옛날에 많은 장군들이 여러 가지 수모를 견뎠다지만 넌 그 장군들보다 더 대단하네?”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가 이런 정도의 수모도 참을 수 있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건 거의 전대미문의 인내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 데리고 들어가.”노랑머리 청년이 도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내 누나 건들지 마. 내가 직접 업고 갈 거야.”도민수는 치근덕거리는 건달들을 밀쳐내고 직접 도지아를 업었다.그렇게 도지아를 별장으로 데려오자 노랑머리 청년은 문을 잠그라고 지시했다.“잠깐, 너희 하 도련님은 안 오는 거야?”도민수가 서둘러 물었다.“그 녀석이 오면 우리가 이 짓을 할 수 있겠어?”노랑머리 청년은 도민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너 설마 아직도 우리가 하 도련님을 위해서 일하는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틀려도 한참 틀렸어. 우린 그냥 이 여자를 신나게 맛보고 싶을 뿐이야.”도민수는 순간 멍해졌다.“그럼 나한테 마약을 먹인 것도 너희 결정이었어?”“그래, 그게 아니면 뭐겠어?”노랑머리 청년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너희 같은 평범한 집안 놈들은 우리 하 도련님 기억 속에 남을 가치도 없어.”“이 벼락 맞아 뒈질 개자식들아!”도민수가 꽉 쥔 주먹에서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이 개자식이 누굴 욕하는 거야?”노랑머리 청년은 곧바로 발차기를 날려 도민수를 바닥에 나뒹굴게
“단순히 하경범의 동선을 조사하라는 것뿐이야. 너더러 그놈이랑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게 아니야.”진서준이 조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 나 혼자 여러 일을 대응하기 어려워 그런 거야. 다른 일이 없으면 내가 직접 그놈을 찾아갔을 거야.”조상규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호는 이를 악물고 임무를 받았다.“알겠습니다, 진서준 씨. 사흘 내로 하경범의 일정을 조사해 보고하겠습니다.”“좋아,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진서준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식사가 끝난 후, 조호 부자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오영수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였다.“저 자식 믿을 수 있는 겁니까? 하경범에게 달려가 밀고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저 녀석 앞에서 조상규를 죽인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죽인다는 걸 알게 됐으니 감히 딴생각은 못 할 겁니다.”오영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오영수도 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왔기에 진서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세요.”오영수가 입을 열었다.“저는 단 하나만 궁금합니다. 대장님 삼촌은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겁니까?”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궁금한 걸 말했다.진서준의 목표는 오영수의 삼촌에게서 자기 가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그것이 아버지의 행방을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늦어도 모레면 돌아올 겁니다.”오영수가 대답했다.“셋째 삼촌이 돌아오면 바로 연락할게요.”“부탁할게요.”진서준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저녁 무렵.한 식당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민수야, 오늘은 웬일이야? 왜 갑자기 밥을 사주려는 거야?”도지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도민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최근 도민수는 화약고처럼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기 일쑤였다.그런데 갑자기 자기를 불러 밥을 사준다고 하니 너무나도 이상했다.“
조호는 진서준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앞으로 감히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상규 같은 대종사조차 가볍게 정리되었는데 하물며 조호 같은 평범한 인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일행은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진서준 씨... 잠시 후, 제가 모셔도 될까요?”치파오 여자는 일부러 허리를 숙이며 가슴골을 드러냈다.조상규가 죽으면서 여자는 기댈 곳을 잃었으니 이제는 새로운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했다.조호의 아들은 자기 밥만 쳐다보며 눈길을 감히 다른 데다 돌리지 못했다.괜히 이상한 시선을 줬다간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엔 일부러 조상규를 자극하려고 연기한 거야. 넌 가봐도 좋아.”진서준이 손을 휘저었다.치파오 여자는 매력적이었지만 진서준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진서준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이 말을 듣자, 치파오 여자는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저는 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 말씀 주세요.”여자가 나간 후,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대장님, 하씨 가문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죠?”“하씨 가문이요?”오영수는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다지 잘 알진 못합니다. 저는 군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집에 잘 안 들릅니다.”“그럼 너는?”진서준은 조호를 바라봤다.조호는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으며 대답했다.“저도 하씨 가문의 사업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입니다. 현재 르벨의 모든 카지노는 하씨 가문이 장악하고 있고 그 외의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다른 지역에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의식주가 가장 중요했지만 르벨에서는 도박이 가장 중요했다.80세 노인부터 3살짜리 아이까지 누구나 도박을 했다.르벨 경제의 중심은 도박이었다.덕분에 하씨 가문은 지역 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같은 명문대가도 하씨 가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을
“뭐가 무리야? 네 여자가 따라준 차를 마시면 앞으로 너희 둘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는 뜻에서 절교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진서준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 씨가 큰형님이잖아요. 첫 잔은 큰형님이 먼저 드셔야죠.”“얼른 마셔. 마시지 않으면 널 죽일 거야.”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냉랭하게 변했고 순식간에 분위기가 살벌해졌다.“진서준 씨, 농담이 심하시네요. 설마 차 한 잔 때문에 절 죽이겠습니까?”조상규가 여전히 억지로 웃었다.하지만 다음 순간, 조상규의 웃음은 영원히 얼굴에 굳어버렸다.진서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아무런 예고 없이 젓가락을 던졌다.그 젓가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조상규의 가슴을 관통했다.펑!심장이 터지는 끔찍한 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조상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 그대로 식탁 위에 쓰러졌다.조호 부자는 겁에 질려 다리가 풀렸고 슬금슬금 진서준과 거리를 벌렸다.‘이건 분명 미친놈이야. 자기 심기를 건드렸다고 사람을 마음대로 죽여?’처음부터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까 목숨을 내걸고 싸웠을 것이다.치파오 여자는 더욱 기겁하며 벌벌 떨면서 진서준을 쳐다봤다.“아가씨, 이제 네 남편은 죽었어. 그러니 이 차는 네가 대신 마시도록 해.”진서준이 치파오 여자를 바라봤다.“저, 저요?”치파오 여자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조상규는 차 한 잔을 마시지 않으려다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그럼 자기도 거부하면 그대로 죽을 게 아닌가?“왜? 설마 차 한 잔도 못 마시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치파오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차에 독이 들어 있어요. 조상규가 저를 협박해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아무 죄도 없어요.”“뭐? 차에 독이 있다고?”조호 부자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방 하나 더 잡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말했다.“네. 지금 당장 준비하겠습니다.”치파오 여자는 공포에 질린 채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치파오 여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