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안에서 인기척을 들은 주지훈은 고개를 들어 노기등등한 임경준을 얼핏 보고는 담담하게 마지막 문서에 사인했다.주지훈의 평온한 얼굴을 본 임경준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주먹으로 그의 책상을 내리쳤는데 책상 위의 물건들이 모두 흔들렸다.“주지훈, 수단이 대단하네. 감히 내 신분을 도용해서 성연에게 접근한 것도 부족해서 이젠 회사로 끌어들였어? 너 무슨 속셈이야?”노발대발하며 한바탕 말했어도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주지훈을 보며 임경준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성연을 돌려줘! 이 도둑놈아!”‘주지훈이 성연을 훔쳤고 나에 대한 사랑도 훔쳤어.’“미안해, 난 그렇게 할 수 없어.”주지훈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빛은 독수리처럼 날카로웠다.임경준은 화가나 웃어버리며 그의 목덜미를 잡았다.“성연은 내 거야! 지금 너를 나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니 계속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성연은 누구의 물건이 아니니 내가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야.”주지훈은 손을 쓰지 않았지만 눈빛은 꿋꿋했다. 이 말을 들은 임경준은 주지훈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선생님은 성연이 이번 달이면 기억을 되찾을 거라고 했어. 기억을 되찾으면 내 곁에 돌아올 거야! 성연은 나를 사랑해!”임경준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도도하게 말하자 주지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주지훈도 선생님에게 물어봤는데 이번이 마지막 달이었다.“임경준! 미친놈아. 저리 가.”주지훈 비서의 손에서 사무실 열쇠를 가진 나는 문을 열고 뛰어 들어오자마자 주지훈의 입가에 피가 흘리는 것을 보고 바로 달려가 임경준을 세게 밀쳤다.나는 주지훈의 곁으로 달려가 그의 얼굴을 만지며 애틋하게 물었다.“지훈아, 아파?”주지훈은 말없이 내가 곧 사라질 것만 같은 애잔한 눈빛으로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성연아, 끼어들지 마. 내가 오늘 이 파렴치한 놈을 제대로 혼내줄게!”임경준이 주지훈을 때리려고 하자 나는 과일칼을 꺼내 그를 겨누었다.“나쁜 놈, 감히 손을 대기만 해봐!”내가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자
임경준은 주현 그룹을 떠나 곧장 조정아의 학교로 향했다.조정아는 임경준의 팔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차 밖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의 기분이 안정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차에 올랐다.“성연이 멍청한 거 아니야? 왜 하필 나를 기억하지 못하지? 지금 나한테 칼을 겨누고 있다니!”임경준은 방금 장면을 떠올리며 억울한 마음에 핸들을 몇 번 두드렸다.임경준의 말을 듣고 조정아는 자초지종을 알아차렸다.“성연 언니가 오빠를 그렇게 사랑한 게 아닐지도 모르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잊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조정아는 그의 허벅지에 가볍게 손을 얹으며 말했는데 임경준을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나 같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않을 거고 때리지도 않았을 거예요.”임경준은 그 말을 듣고 감동해 마지않았다.조정아는 젊고 예쁜 데다 단순하기까지 하니 성연보다 천 배 만 배나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가 천천히 다가갔지만 조정아는 이번에 피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으로 임경준을 달랬고 임경준도 곧 그녀의 부드러움에 도취하였다.두 사람이 한바탕 뒤엉킨 후 임경준은 자신도 젊어지는 것을 느끼며 조정아에게 미친 듯이 돈을 부었다. 옷이 적다며 옷, 신발, 가방을 사줬는데 심지어 별장까지 사줬다.나는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누군가 이런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지만 그마저도 그냥 잠시 주춤하는 것에 그쳤다.오늘 나는 주현 그룹을 대표해서 모교 강사로 돌아왔는데 먼저 설비를 익혀야 했다. 일찍 교실에 갔다가 중간에 화장실에 다녀온 나는 돌아올 때 안에서 몇몇 여학생들이 웅성거리는 것을 들었다.“정아야, 그 임경준이 별장 한 채 사줬다고 하던데 정말이야?”“당연히 정말이지. 온갖 사치품을 다 쓸 수도 없어.”조정아는 아첨하는 룸메이트 몇 명을 힐끗 쳐다보고는 글로벌 한정판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소식이 빠르네.”몇 사람이 한창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끼어들었다.“하지만 정아야, 임경준은 약혼녀
나는 표정을 잠시 멈칫하다가 입을 살짝 벌리고 뭔가 말하려 했지만 주지훈이 나를 말렸다.“쇼핑하다가 목걸이가 예쁜 걸 보고 사 왔어.”그는 내가 거절하든 말든 박스에서 꺼내서 조심스럽게 걸어주었는데 마치 내가 거절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동작이 느리고 조심스러웠다.회사에서 그가 매우 활기찬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평소에는 거의 웃지 않다가 갑자기 이렇게 소심하니 나는 조금 적응이 안 되었다.하지만 그는 겸사겸사 많은 일을 했다.병원에 날 보러 가고 밥도 사주고 꽃도 사주고 목걸이도 사 주고 있다.“예쁘네. 마음에 들어.”나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다가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그의 얼굴이 여전히 굳은 것을 본 나는 그에게 벤치에 앉자고 했다. 앉자마자 그는 내 손을 잡았고 어두운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내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나는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들어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을 쳐다보며 눈빛도 차츰 어두워졌다.“지훈아, 나도 생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잠시 후, 나는 그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려서 달래며 말했다.“부탁이 있어.”주지훈이 엄숙하게 대답했다.“말해.”“앞으로 목걸이를 버리지 말아 줄래? 뭐가 떠오르든 절대 버리지 마.”주지훈의 말투는 애원을 조금 띠고 있었다.“이렇게 예쁜데 내가 왜 버려?”나는 서둘러 목걸이를 가리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주지훈을 바라보며 웃었다.“밥을 먹든, 잠을 자든, 샤워하든, 어디로 가든지 착용할 거야.”주지훈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안색이 조금 좋아졌다.“자, 사진 찍자.”나는 그의 팔을 껴안고 그와 함께 많은 사진을 찍고 예쁜 사진을 몇 장 골라 카카오 스토리에 올렸다.밤이 되자 임경준이 직접 찾아왔는데 사진 얘기가 아니라 조정아를 위해서였다.“성연아, 너 왜 이렇게 악랄해? 조용히 있다가 학교에 찾아가서 모욕주다니! 바다에 한 번 빠졌을 뿐인데 머리도 나빠진 거야? 나를 잊으면 그만이지 조정아처럼 이렇게 순수한 여자를 왜 괴롭혀? 늘 씩씩하던
“성연아, 후회할 짓을 하면 안 돼.”임경준이 문밖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나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임경준도 오래 머물지 않고 별장으로 돌아갔다. 그는 집에 들어서자 분노에 찬 얼굴로 책상을 걷어차 넘어뜨리는 등 인기척이 심해 집 안에서 팩을 하고 있던 조정아를 놀라게 했다.그녀는 급히 뛰어나와 임경준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왜 그래요?”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성연이 주지훈이랑 결혼한다고 했어. 하지만 성연은 나랑 결혼해야 해. 성연이가 영원히 나를 기억하지 못하지 않을까?”임경준은 성연이의 혐오스러운 눈빛을 떠올리자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다.성연은 전에 그에게 이렇게 한 적이 없다.조정아는 이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불쾌함을 감추고 말했다.“그럴 리가 있겠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생각날 수 있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성연이 언니는 주지훈 씨랑 아주 즐겁게 지내는 것 같아요. 친구 중에 누군가 놀이공원에 간 걸 봤는데 진짜 커플 같았다고 했어요.”그러자 임경준은 갑자기 그녀가 방금 카카오 스토리에 사진을 올린 것이 생각났다.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녀의 카카오 스토리를 뒤적여 보았는데 그 안에는 주지훈에 관한 내용과 함께 두 사람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빼곡히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실제 커플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임경준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그동안 조정아를 쫓아다니느라 성연이 주지훈과 이 지경이 된 줄 전혀 몰랐다.둘이 처음 만났을 때도 성연은 지금처럼 매일 사진을 찍어 카카오 스토리에 올렸고 매일 그에게 전화를 걸었으며 전화를 걸지 않아도 문자를 보냈다.하지만 지금은...그의 휴대전화는 오랫동안 성연의 전화를 받지 못했고 그녀의 문자도 없었다.그는 마치 성연의 세계에서 사라진 것 같았는데 실망한 듯 실의에 빠진 느낌이 그의 심장을 강타했다.이튿날 아침, 그는 주현 그룹 건물 아래층으로 달려가 나를 기다렸다.나는 주지훈의 차에서 내려 그를 보았다. 주지훈도 그를 보았지만 나는 그를 거들떠
“임경준 씨, 제가 보기에 성연 씨의 상황은 임성준 씨가 성연 씨와 자주 함께해야 할 것 같아요. 예전에 갔던 곳으로 데려가시면 성연 씨가 임경준 씨를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의사가 말했다.“쓸모없는 놈! 전국 최고의 신경과 의사라더니. 성연이가 날 떠오르지 못한다면 의사 그만둬!”임경준은 의사를 밀치며 한마디 쏘아붙이고 떠났다.하지만 그가 계획을 실행할 때까지 기다리기 전에 그의 아버지는 그와 조정아가 사는 별장을 찾았다.임경준은 조정아를 껴안고 홧술을 마시다가 아버지를 보자 깜짝 놀라 일어나 몸을 떨며 말했다.“아빠가 어떻게...”짝.임정호아 뺨을 한 대 때리자 임경준은 말을 하지 못했다.“성연이가 왜 회사를 그만두고 주현 그룹으로 갔나 했더니 네놈이 밖에 다른 여자가 생겼구나. 이 나쁜 놈아, 날 죽이려고 작정했어? 성연이 우리 회사에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임정호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났다.“아버지, 제 탓이 아니에요. 성연이가 저를 주지훈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임경준은 무기력하게 말했다.“알아. 네가 성연이를 바다로 밀어 넣어서 그런 거잖아!”임정호가 분노하며 말하자 임경준은 놀라서 어리둥절해졌다.“경고하는데, 너 성연이 아버지가 이 일을 모르기를 기도해. 그분이 알게 된다면 분명히 투자를 철회할 거야. 그때 가서 내가 부모 자식 관계를 끊었다고 탓하지 마라. 네 자리는 네 동생도 앉을 수 있어!”임정호가 최후통첩을 내렸다.“아빠, 뭐라고요?”임경준은 믿을 수 없었다.임정호는 그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조정아를 흘겨보고는 그대로 떠났다.임정호가 가자 조정아가 황급히 다가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경준 오빠, 오빠 아버지 무슨 뜻이에요? 오빠에게 농담을 하는 거죠?”임경준은 넋을 잃고 소파에 앉은 채 조정아의 말은 한마디도 듣지 않았다.성연이 사라진 후 모든 것이 엉망이 될 줄은 몰랐던 그는 마음과 머리가 어지러웠다.밤에 나는 휴대전화에 있는 십여 개의 부
임경준은 눈을 번쩍 떴다.“성연아, 정말이야? 너 내가 떠올랐어?”그는 달려들어 내 어깨를 움켜쥐고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붉혔다.반대편.이 말을 들은 주지훈은 태블릿을 내려놓고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응시했다.‘황량한 꿈이니 결국 깨어날 거야.’“내가 네 남자친구라는 게 떠올랐어?:임경준은 내가 말을 하지 않자 손에 힘을 더 주고 목소리도 다급해졌다.“기억나.”나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임경준은 그 말을 듣고 격앙된 채 나를 안아주려 했지만 고개를 들어 그를 밀쳤다.“네가 나에게 3년 동안 계속 고백해서 동의한 것을 기억해. 내가 너의 고백을 받아주던 날 감격해서 울던 네 모습을 기억해. 네가 나에게 평생 함께하자고 약속하던 모습을 기억해.”말하다 보니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하지만 이것들, 넌 기억해?”내가 갑자기 되묻는 말에 임경준은 말문이 막혔다.“대학 다닐 때 밥 사주고 우산 갖다 줬다고 했는데 그건 갓 사귈 때의 잠깐이었어. 그 후 내가 널 위해 뭘 해줬는지 기억나?”나는 계속 물었다.임경준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나지막이 돌아가라고 설득했다.“너의 모습을 보니 기억하는구나. 네가 아플 때 난 밤새 네 곁을 지켰어. 술자리에서는 내가 대신 술을 마셔줬어. 회사에서는 최선을 다해 회사 일을 처리했고, 네가 저지른 사고도 처리해야 했어. 네가 맞을 때 내가 널 구하려다 갈비뼈가 부러진 적 있는데 이 모든 걸 넌 기억할 수 있어?”나는 눈시울을 붉히며 소리쳤다.임경준을 위해 나는 모든 힘을 다 써버렸다.“성연아, 나 기억나.”임경준이 황급히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기억나?”나는 눈을 붉히며 손을 들었다.스크린에는 임경준과 다른 여자의 자는 모습이 반쯤 비쳤는데 여자는 다소곳이 임경준의 품에 안겨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목에는 키스 자국이 가득했다.하지만 그 여자는 분명히 내가 아니었다.임경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성연아, 너 왜 이렇게 뻔뻔해? CCTV를 설치한 거야?”임경준은 화가 나 소리 질렀
임경준은 할 말을 잃었다.“나는 조정아에게 진심이 아닌데 너는 주지훈에게 어땠어? 네가 뭔데 나를 그렇게 말해? 너도 주지훈이랑 잤지?”그는 구실을 찾아 나를 다그쳤다.“그렇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야?”나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예전의 나는 네가 나를 바다에 밀어 넣는 순간 죽었어. 그 후 나의 모든 것은 너와 상관없어.”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조금씩 어두워졌다.임경준은 나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다.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내 손을 잡았고 지금도 여전히 반박하고 있었다.“난 헤어지지 않을 거야. 조정아를 차버리면 되잖아. 나는 조정아를 전혀 사랑하지 않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3년 동안의 감정이 그의 마음속에 뿌리내렸고, 그는 줄곧 내가 그를 계속 사랑할 것이라고 믿었다.나는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그는 손에 더 힘을 줬다. 아빠가 이런 상황을 보고 걸어오셔서 나를 뒤로 숨기더니 임경준의 뺨을 세게 때렸다.“이 개자식! 징그럽지도 않아? 앞으로 감히 내 딸에게 한 발이라도 다가서면 내가 너의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아빠는 한마디 호통치고 나서 나를 끌고 나갔다.내가 떠나는 것을 본 임경준은 쫓아가려고 했지만 마침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이 바보 녀석! 이런 작은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다니. 앞으로 임정호에게 너 같은 아들이 없다. 너 알아서 죽든지 살든지 해.”임정호는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다가 임경준이 말을 잇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그는 찬물을 끼얹은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갑게 느껴졌다.그는 성연이를 잃었는데 아버지조차도 그를 버렸다.넋을 잃고 별장으로 돌아왔지만 조정아가 짐을 챙기고 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말렸다.“뭐 하는 거야? 어디 가는 거야?”임경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가는 게 아니라 경준 씨가 가는 거예요. 여긴 내 집이에요!”조정아는 평소 부드럽던 태도와 달리 차가운 얼굴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임경준이 고개를 숙이고 보니 조정아가 옷을
그는 두 눈이 시뻘겋게 되었지만 정말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이젠 친구도 없고 형제도 없고 애인도 없다.임경준은 갑자기 대학을 막 졸업했을 때 사고를 쳐서 상대방을 병원에 입원시켰다가 아버지에게 쫓겨났지만 성연이 도와서 그를 곤경에서 꺼낸 것이 생각났다.예전엔 전화 한 통, 문자 하나면 성연이 서슴없이 다가왔다.“성연아...”임경준은 우리 집 앞에 한참 앉아 있다가 내가 나오는 것을 보고 얼른 일어나 소리쳤다.나는 발걸음을 멈칫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임경준을 올려다보며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맞아서 코가 붓고 눈이 시퍼렇게 멍들었는데 두 눈은 예전의 빛을 잃었고, 옷에는 진흙이 묻어 있었다.“임경준 씨, 무슨 일 있어?”나는 무표정하게 말했다.‘임경준 씨'라는 한마디를 들은 임경준은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범벅이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그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성연아, 네가 기억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임경준이 울먹였다.나는 냉소를 지으며 그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을 비웃었다.“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사실 널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넌 내가 병원에서 퇴원할 때까지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지. 임경준, 내 마음은 이미 너로 인해 상처투성이야. 나는 지금 널 볼 때마다 역겹다는 생각만 들어! 진심을 저버린 사람은 바늘 만 개를 삼킨 것처럼 아파야 해!”내가 차갑게 뱉은 말에 임경준은 몸을 흠칫했다.“성연아, 너 왜... 왜 기억상실로 나를 속인 거야? 그것도 주지훈을 선택하면서 말이야.”임경준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아 두 눈이 충혈된 채 말했다.“네가 나를 밀치는 순간부터 나는 너에게 마음이 식었어. 너도 나의 고통을 경험해 봐야 하지 않겠어?”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그를 보는 내 두 눈에 미움만 가득했다.병원 응급실에 있을 때 나는 각종 의료기기 소리를 듣고 무력감과 분노를 느꼈고 머릿속은 온통 임경준과 조정아의 비웃음뿐만 맴돌았다.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던 나는 결국 살아났다.병원 병상에서 임경준을 보는 순간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