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우광식은 계획대로 정민아가 이미 범룡의 손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다만 그는 모른 척 머리를 부여잡고 냉소를 지었다.“이 쓰레기 같은 놈아! 와이프가 몰래 바람피우다가 걸렸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게다가 납치당했으면 납치범을 찾아야지, 왜 나한테 찾아와서 따지는 건데?”이때, 늘씬한 여비서도 다가와서 앙칼진 모습으로 김예훈을 노려보았다.“당신 누구야? 감히 우리 대표님한테 손을 대다니, 대표님의 전화 한 통이면 형사들이 찾아와서 널 붙잡아 갈지도 모른다고!”“오늘 기분이 엿 같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고 싶지 않아. 마지막으로 묻는다. 네가 사람을 보내 우리 와이프를 납치한 거야?”김예훈의 얼굴이 싸늘해졌다.“김예훈, 단정 짓기 전에 증거부터 내놔. 성실하게 사업만 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 똑똑히 들어, 다시 한번 날 모독한다면 명예훼손으로 널 고소할 거야!”우광식은 김예훈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래도 찔리는 구석이 있으니 김예훈이 때렸다고 야단쳐야 하겠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렸다.“그래? 일단 두고 봐. 다만 너랑 관련된 사건이라는 게 나중에라도 밝혀지면 그땐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내 와이프한테 손을 댄 것도 아직 기억하고 있으니까 이 일을 먼저 해결하고 나서 결판낼 거야.”말을 마친 김예훈이 자리를 떠났다.김예훈이 떠나자 그제야 두려움이 몰려온 우광식이 문을 닫았다.“대표님, 저 사람은 누구예요? 대체 왜 저런대요? 맥주병으로 내리치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여비서는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그냥 사이코야, 신경 쓰지 마. 나중에 더 높은 자리에 오르면 쫄딱 망하게 만들어 버릴 테니까.”우광식이 이를 갈며 말했다.하지만 그는 바보가 아닌지라 섣부른 판단은 큰일을 망치게 된다는 도리쯤은 알고 있다.괜히 지금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가 김만철의 계획이라도 망친다면 그는 처참한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물론 우광식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데릴사위 김예훈은 기껏해야 어떤 거물
정민아의 말에 범룡 뒤에 있던 부하들이 폭소를 터트렸고, 하나같이 낄낄거리며 비아냥거렸다.“정민아, 네가 진짜 뭐라도 되는 줄 알아? 감히 우리 형님을 협박해?”“요즘 세상에도 이렇게 건방진 사람이 있다니?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군.”“우리 형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지? 아니면 지금쯤 무릎 꿇고 손발이 닳도록 빌었을 거야.”“형님, 저년을 너무 봐주시는 거 아닙니까? 제가 보기에 사지로 몰아넣고 반쯤 죽여줘야 정신을 차릴 것 같은데요?”양아치들은 마치 이런 짓이 일상인 듯 악랄하기 그지없었다.범룡은 손을 휙휙 젓더니, 정민아에게 다가가 오른손으로 그녀의 턱을 치켜들고 씩 웃었다.“이 봐, 내가 이 바닥에서 꽤 오래 굴러다녔거든. 그런데 협박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야. 사는 게 지겹나?”“며칠 전 김세자가 프러포즈했다는 거 알고 있지?”정민아는 어쩔 수 없이 김세자를 끄집어냈다.“설마 본인이 김세자의 프러포즈 상대였다고 하려는 거야?”범룡이 웃는 둥 마는 둥 했다.“맞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어서 날 풀어주지 않고 뭐 해?!”“하하하!”범룡은 포복절도했다. 이내 정민아의 머리카락을 잡아채더니 그대로 뺨을 내리쳤다.“썩을 년이 감히 김세자를 들먹이면서 나를 협박해? 내가 진짜 겁먹을 줄 알았어? 김세자가 너한테 프러포즈한 건 사실이지만 이미 거절하지 않았어? 그런 분이 자기 프러포즈를 거절한 여자를 위해 직접 나설 거로 생각해? 얼굴만 반반했지, 머리는 왜 텅텅 비었어? 잽싸게 무릎 꿇고 애원하면 내가 마음이 약해져 널 풀어줄지도 모르잖아. 이 와중에 협박이라니? 죽고 싶어 환장했어?”정민아는 절망에 빠졌다. 범룡이 이런 일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물론 조직에 몸담은 사람이니 법이 안중에도 없었다.그런 사람들의 손에 넘어갔으니 어쩌면 죽음보다 더 끔찍한 결말을 맞이할지 모른다.이때, 범룡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흘긋 바라보았고, 발신자를 확인하는 순간 금세 태도가 공손하게 변했다.“
곧이어 우광식이 나타났다.범룡과 그는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성남시 조직에서 떠오르는 오정범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소문에 의하면 배후에 귀인이 있다고 했는데 성남시 조직의 거물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고 했다.이러한 조직 보스가 직접 찾아온다고 했으니 둘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면 만철 도련님께 여쭤볼까요?”우광식이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범룡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김만철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지라 그에게는 과정보다 늘 결과가 중요했다.고작 이런 일 때문에 연락한다는 건 결국 죽음을 자초하는 짓이다.게다가 범룡은 지금의 김만철이 과연 오정범을 상대할 수 있는 지도 문제였다.두 사람이 한창 고민에 빠져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오정범이 김예훈과 같이 나타났다.범룡이 김예훈에게 눈길을 돌렸다.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녀석이란 말이지? 감히 오정범의 곁에서 얼쩡거리다니? 설마 새로 뽑은 보디가드인가?“범이 형님, 여긴 어쩐 일로 찾아왔을까요?”범룡은 감히 따지지도 못한 채 허리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오정범은 싸늘한 시선으로 범룡을 바라보더니, 옆에 얌전히 서 있는 우광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우리 형수님한테 아무 짓도 안 했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까닥했다면 제대로 각오해!”형수님?!이 말을 듣는 순간 범룡은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오정범이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라니? 정민아는 대체 어떤 귀인의 여자란 말인가!원래는 그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정민아를 이미 납치하지 않았는가! 만약 오정범의 연락이 없었더라면 그는 손을 대고도 남았을 것이다.이런 생각에 범룡은 등에서 식은땀이 쫙 났다.그나마 섣불리 움직이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아니면 도망갈 구석조차 없었을 테니까.그는 오정범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 오정범이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을 포함한 무리를 쓸어버리는 건 식은 죽 먹기에 불과했다.“범이 형님, 형수님은 지하실에 계십니다. 저희는 아무 짓도 한 게 없
왜냐하면 그는 김예훈한테서 당시 김만철에게 무릎 꿇을 때처럼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 어찌 김만철 보다 더 강한 아우아를 뿜어낸단 말이지?“말해, 우광식이 우리 와이프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데?”김예훈이 서늘한 말투로 물었다.범룡은 흠칫하더니 이실직고했다.“김세자가 좋아한 여자가 어떤 맛인지 한번 느껴보고 싶다고 했어요. 게다가 배후에 일류 가문인 손씨 가문이 있기에 감히 아무도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고 큰소리쳤죠.”범룡의 말을 들은 우광식은 식은땀이 뚝뚝 흘러내렸다.비록 이 또한 계획의 일부이긴 하지만, 저도 모르게 잘못을 저지른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인지 몰랐다.“우광식 본인이 생각해낸 게 확실해?”오정범이 문득 입을 열었다.“당연하죠! 저한테 돈을 꽤 많이 쥐여줬거든요. 아니면 제가 간덩이가 부었다고 이놈이랑 작당 모의했겠습니까?”범룡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 채 말을 이어갔다.김예훈은 싸늘한 얼굴로 범룡을 바라보았다.“내 앞에서 거짓말하면 무슨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고 있겠지?”“제가 설마요!”자칫 들통이라도 나는 건 아닌지 두려웠던 범룡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어느 손으로 우리 와이프를 건드렸어?”김예훈은 이내 질문을 바꿨다.범룡은 화들짝 놀라더니 김예훈의 아우라 때문에 잽싸게 꼬리를 내리고 오른손을 슬며시 내밀었다.“이, 이거요.”“뭐 했는데?”김예훈이 무덤덤하게 말했다.“뺨 한 대 때렸습니다.”범룡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그렇다면 이제부터 왼손만 사용해.”김예훈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오정범은 싸늘한 표정을 지은 채 한 발 나서더니 바닥에 있는 벽돌을 범룡 앞으로 툭 걷어찼다.범룡의 몸은 걷잡을 수 없이 떨렸고, 목소리마저 맛이 갔다.“그렇다면 두 분을 귀찮게 해드릴 수는 없죠. 이 정도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룡은 왼손으로 벽돌을 집어 들고 있는 힘껏 오른손 손바닥을 내리찍었다.“윽!”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
처참한 비명 속에서 우광식은 바닥에 털썩 꿇어앉으면서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다 얘기할게! 우리 배후에 있는 사람은 손씨 가문이 아니야. 손씨 가문이 어찌 그 정도로 능력 있겠어? 다름 아닌 김씨 가문의 김만철이 우리 뒤를 봐주고 있어.”“그래?”김예훈이 미소를 지었다.그동안 감히 정민아를 건드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설마 김만철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지난번에 너무 봐줬나 본데.”김예훈이 무심하게 말했다.“지금 당장 연락해서 10분 안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죽는 것보다 백 배는 더 고통스럽게 한다고 전해.”우광식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벌벌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눌렀다.10분도 채 되지 않아 현장에 휠체어 한 대가 나타났다.비록 김만철은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지만, 기세만큼은 보통 사람 못지 않았다.“김만철, 저번에 나한테 했던 말 아직도 기억해?”김예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덤덤하게 말했다.“당연하지.”김만철이 쓴웃음을 지었다.당시 이일매 무리가 낭패를 보고 나서 그는 프리미엄 가든에 사과하러 찾아갔었다.그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너도 알다시피 날 건드리든 말든 난 어차피 신경 안 써. 다만 우리랑 전혀 상관없는 여자한테 손을 댔다는 자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김예훈이 말했다.김만철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곧이어 권총을 꺼내더니 왼쪽 팔에 대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탕!”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총알이 김만철의 팔을 뚫고 지나갔지만,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범룡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의지하는 사람마저 김예훈을 거역하지 못하는데, 그나마 눈치 빠르게 처사한 덕분에 시체로 변할 처지는 면했다.끝까지 지켜보던 김예훈은 그제야 돌아서서 떠났다.한편, 우광식이 적어도 재앙은 면했다고 안도하던 찰나 오정범이 다가와 발로 그를 걷어찼다.“내일부터 백운 별장 프로젝트의 건축자재를 다시 공급해. 1kg이라도 빼돌린
침묵으로 일관하는 정민아를 보자 우광식은 그녀가 아직 심기 불편한 줄 알고 머뭇거리더니 잽싸게 말을 보탰다.“아직도 마음에 안 든다면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원자재를 전부 무료로 공급해줄게! 작은 성의에 불과하니 꼭 좀 받아줘.”우광식의 태도에 다른 공급업체 사장도 따라서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기 바빴다.다들 이 사건으로 인해 범룡이 어떤 처지가 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심지어 김씨 사걸 중 일원인 김만철마저 스스로 한쪽 팔을 희생하지 않았는가!그런데도 꼬리를 내리지 않는다면 죽음을 자초하는 꼴이랑 뭐가 다르냐는 말이다.현재 정민아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들이 정신 나간 것 같다는 생각뿐이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협박을 마다하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무릎을 꿇다니? 심지어 공급해주는 원자재를 거절이라도 한다면 끝까지 무릎 꿇을 기세였다.이때 김예훈이 찐빵을 입에 물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김예훈을 발견하는 순간 우광식 일행은 벌벌 떨기 시작하더니 땀에 옷이 흠뻑 젖을 정도였다.“이건 우리의 작은 성의니까 정 대표가 받아들이도록 설득 좀 부탁할게.”우광식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비록 김예훈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고작 데릴사위 따위가 아니라는 건 당연히 눈치챘다.김예훈은 그 말을 듣고 정민아를 향해 말했다.“민아야, 이 사람들이 진심으로 하는 얘기인 것 같은데 그냥 받아들이는 게 어때? 이제 와서 다른 거래처를 찾는 게 쉽지는 않잖아. 그리고 공사 일정도 영향 주기 마련이고.” 김예훈의 말에 정민아는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깜짝 놀란 눈으로 김예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설마 어젯밤에 네가...?”김예훈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정민아를 재벌로 만들려고 마음먹은 이상 어떤 사실은 너무 일찍 공개하지 않는 게 좋았다.입을 꾹 닫고 있는 김예훈을 보자 정민아의 얼굴에 의혹이 가득했다.“혹시 김세자...”“아마도 그렇겠지? 어쨌거나 백운 별장 프로젝트는 CY그룹 지분의 51%가 연루되어 있으니 제 분수도 모르고 공사를 망치려
결국 정민아는 마음이 약해진 나머지 고개를 끄덕였다.정민아의 허락을 받은 우광식 일행은 연신 감사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떴다.얼마 지나지 않아 공사장에서 연락이 왔는데 여러 원자재가 한꺼번에 현장에 도착하면서 며칠 동안 중단되었던 프로젝트가 마침내 다시 시작되었다고 했다.정민아는 비록 속으로 여전히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찌 됐든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CY그룹.김예훈은 회장 의자에 앉아 앞에 놓인 두 장의 사진을 바라보았다.첫 번째 사진은 꽤 선명한데 김만철과 김만태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바닷가에 서 있었다.자세히 보면 김만철의 왼팔은 이미 잘려나갔는데, 아마 오늘에 있었던 일일 가능성이 컸다.반면, 두 번째 사진은 좀 흐릿했다. 언뜻 보면 공항에서 찍은 사진이었고, 김예훈이 모르는 남자였다.김예훈은 두 번째 사진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무덤덤하게 물었다.“오늘 아침에 누가 내 책상에 이 사진을 뒀단 말이죠?”“네.”하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CCTV를 확인했는데 마침 어젯밤이 고장이 나서 녹화된 영상이 아무것도 없었어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그쪽이 작정하고 나한테 선물을 보내려고 했으니 CCTV쯤이야 망가뜨릴 수단 정도는 있지 않겠어요? 상대방의 정체에 대해 짚이는 구석이 있어요?”하은혜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대답했다.“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대표님께 이 3명을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듯싶네요.”“김만태와 김만철 쌍둥이는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에요. 어젯밤에 김만철을 살려둔 이유도 김만태가 현장에 없었기 때문이죠. 사실 나도 김만철을 죽였을 때 김만태가 대체 무슨 짓을 벌일지 상상이 안 가요. 하지만 우선은 상대방의 정체를 알아보는 게 좋겠어요.”하은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재빨리 자리를 떴다.사무실에 덩그러니 남은 김예훈은 사진을 꼭 쥐고 한참을 바라보았다.“이건 진주 국제공항이잖아. 그렇다면 이씨 가문 사람이 왔다는 뜻인가?”...성남 국제공항.
김만태가 미소를 지었다.“형님, 이왕 온 김에 며칠 푹 쉬는 게 어때요? 어떤 일은 급하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이장우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만태야, 너도 내가 여기 온 목적을 알고 있잖아. 만약 실패하면 우리 둘 다 곤란하게 될 거야.”“당연하죠.”김만태가 웃으면서 말했다.“그렇다면 오늘 하씨 가문에 청첩장을 보내도록 할게요.”“그래.”“제가 만반의 준비를 마칠 테니 나중에 직접 나서기만 하면 돼요.”김만태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이장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그가 진주의 거물급 인사인 건 사실이지만, 이번 임무를 망치는 순간 좋은 결말은 없으리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성남 그린베이는 하씨 가문이 머무는 곳이다.하씨 가문은 성남시 토박이가 아니라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다.나중에 하정민이 경기도 일인자로 거듭난 뒤 가족들이 속속 서울에서 이주하기 시작했다.다만 하정민은 늘 겸손한 편이라 경기도에서 하씨 가문 또한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그런데 오늘 내내 한산하기만 했던 하씨 가문 정원에 친척들이 한데 모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안색이 어두웠다.하정민은 눈에 띄게 화려한 청첩장을 들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 달만 해도 벌써 5번째야. 오늘은 진주 이씨 가문 이장우네.”이 말을 듣는 순간 하씨 가문 사람들이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하정민의 큰아들이자 하은혜의 큰아버지인 하준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그동안 청첩장을 보냈던 네 사람은 급이 안 돼서 자격 미달이라는 이유로 거절할 명분은 있었지만, 이장우는 이세자로 알려진 사람이지 않습니까? 무려 진주 이씨 가문의 차세대 후계자라고요. 만약 이런 분마저 거절했다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가문이 점점 많아질까 봐 두렵네요.”하정민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그렇다면 젊은이들끼리 한번 만나보라고 해. 나중에 인연이 이어질지는 본인들의 몫이잖아.”지난 며칠 동안 경기도 하씨 가문은 청첩장을 여러 장이나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