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어 우광식이 나타났다.범룡과 그는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성남시 조직에서 떠오르는 오정범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소문에 의하면 배후에 귀인이 있다고 했는데 성남시 조직의 거물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고 했다.이러한 조직 보스가 직접 찾아온다고 했으니 둘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면 만철 도련님께 여쭤볼까요?”우광식이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범룡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김만철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지라 그에게는 과정보다 늘 결과가 중요했다.고작 이런 일 때문에 연락한다는 건 결국 죽음을 자초하는 짓이다.게다가 범룡은 지금의 김만철이 과연 오정범을 상대할 수 있는 지도 문제였다.두 사람이 한창 고민에 빠져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오정범이 김예훈과 같이 나타났다.범룡이 김예훈에게 눈길을 돌렸다.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녀석이란 말이지? 감히 오정범의 곁에서 얼쩡거리다니? 설마 새로 뽑은 보디가드인가?“범이 형님, 여긴 어쩐 일로 찾아왔을까요?”범룡은 감히 따지지도 못한 채 허리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오정범은 싸늘한 시선으로 범룡을 바라보더니, 옆에 얌전히 서 있는 우광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우리 형수님한테 아무 짓도 안 했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까닥했다면 제대로 각오해!”형수님?!이 말을 듣는 순간 범룡은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오정범이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라니? 정민아는 대체 어떤 귀인의 여자란 말인가!원래는 그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정민아를 이미 납치하지 않았는가! 만약 오정범의 연락이 없었더라면 그는 손을 대고도 남았을 것이다.이런 생각에 범룡은 등에서 식은땀이 쫙 났다.그나마 섣불리 움직이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아니면 도망갈 구석조차 없었을 테니까.그는 오정범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 오정범이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을 포함한 무리를 쓸어버리는 건 식은 죽 먹기에 불과했다.“범이 형님, 형수님은 지하실에 계십니다. 저희는 아무 짓도 한 게 없
왜냐하면 그는 김예훈한테서 당시 김만철에게 무릎 꿇을 때처럼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 어찌 김만철 보다 더 강한 아우아를 뿜어낸단 말이지?“말해, 우광식이 우리 와이프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데?”김예훈이 서늘한 말투로 물었다.범룡은 흠칫하더니 이실직고했다.“김세자가 좋아한 여자가 어떤 맛인지 한번 느껴보고 싶다고 했어요. 게다가 배후에 일류 가문인 손씨 가문이 있기에 감히 아무도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고 큰소리쳤죠.”범룡의 말을 들은 우광식은 식은땀이 뚝뚝 흘러내렸다.비록 이 또한 계획의 일부이긴 하지만, 저도 모르게 잘못을 저지른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인지 몰랐다.“우광식 본인이 생각해낸 게 확실해?”오정범이 문득 입을 열었다.“당연하죠! 저한테 돈을 꽤 많이 쥐여줬거든요. 아니면 제가 간덩이가 부었다고 이놈이랑 작당 모의했겠습니까?”범룡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 채 말을 이어갔다.김예훈은 싸늘한 얼굴로 범룡을 바라보았다.“내 앞에서 거짓말하면 무슨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고 있겠지?”“제가 설마요!”자칫 들통이라도 나는 건 아닌지 두려웠던 범룡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어느 손으로 우리 와이프를 건드렸어?”김예훈은 이내 질문을 바꿨다.범룡은 화들짝 놀라더니 김예훈의 아우라 때문에 잽싸게 꼬리를 내리고 오른손을 슬며시 내밀었다.“이, 이거요.”“뭐 했는데?”김예훈이 무덤덤하게 말했다.“뺨 한 대 때렸습니다.”범룡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그렇다면 이제부터 왼손만 사용해.”김예훈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오정범은 싸늘한 표정을 지은 채 한 발 나서더니 바닥에 있는 벽돌을 범룡 앞으로 툭 걷어찼다.범룡의 몸은 걷잡을 수 없이 떨렸고, 목소리마저 맛이 갔다.“그렇다면 두 분을 귀찮게 해드릴 수는 없죠. 이 정도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룡은 왼손으로 벽돌을 집어 들고 있는 힘껏 오른손 손바닥을 내리찍었다.“윽!”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
처참한 비명 속에서 우광식은 바닥에 털썩 꿇어앉으면서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다 얘기할게! 우리 배후에 있는 사람은 손씨 가문이 아니야. 손씨 가문이 어찌 그 정도로 능력 있겠어? 다름 아닌 김씨 가문의 김만철이 우리 뒤를 봐주고 있어.”“그래?”김예훈이 미소를 지었다.그동안 감히 정민아를 건드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설마 김만철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지난번에 너무 봐줬나 본데.”김예훈이 무심하게 말했다.“지금 당장 연락해서 10분 안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죽는 것보다 백 배는 더 고통스럽게 한다고 전해.”우광식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벌벌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눌렀다.10분도 채 되지 않아 현장에 휠체어 한 대가 나타났다.비록 김만철은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지만, 기세만큼은 보통 사람 못지 않았다.“김만철, 저번에 나한테 했던 말 아직도 기억해?”김예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덤덤하게 말했다.“당연하지.”김만철이 쓴웃음을 지었다.당시 이일매 무리가 낭패를 보고 나서 그는 프리미엄 가든에 사과하러 찾아갔었다.그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너도 알다시피 날 건드리든 말든 난 어차피 신경 안 써. 다만 우리랑 전혀 상관없는 여자한테 손을 댔다는 자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김예훈이 말했다.김만철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곧이어 권총을 꺼내더니 왼쪽 팔에 대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탕!”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총알이 김만철의 팔을 뚫고 지나갔지만,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범룡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의지하는 사람마저 김예훈을 거역하지 못하는데, 그나마 눈치 빠르게 처사한 덕분에 시체로 변할 처지는 면했다.끝까지 지켜보던 김예훈은 그제야 돌아서서 떠났다.한편, 우광식이 적어도 재앙은 면했다고 안도하던 찰나 오정범이 다가와 발로 그를 걷어찼다.“내일부터 백운 별장 프로젝트의 건축자재를 다시 공급해. 1kg이라도 빼돌린
침묵으로 일관하는 정민아를 보자 우광식은 그녀가 아직 심기 불편한 줄 알고 머뭇거리더니 잽싸게 말을 보탰다.“아직도 마음에 안 든다면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원자재를 전부 무료로 공급해줄게! 작은 성의에 불과하니 꼭 좀 받아줘.”우광식의 태도에 다른 공급업체 사장도 따라서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기 바빴다.다들 이 사건으로 인해 범룡이 어떤 처지가 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심지어 김씨 사걸 중 일원인 김만철마저 스스로 한쪽 팔을 희생하지 않았는가!그런데도 꼬리를 내리지 않는다면 죽음을 자초하는 꼴이랑 뭐가 다르냐는 말이다.현재 정민아의 머릿속에는 온통 이들이 정신 나간 것 같다는 생각뿐이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협박을 마다하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무릎을 꿇다니? 심지어 공급해주는 원자재를 거절이라도 한다면 끝까지 무릎 꿇을 기세였다.이때 김예훈이 찐빵을 입에 물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김예훈을 발견하는 순간 우광식 일행은 벌벌 떨기 시작하더니 땀에 옷이 흠뻑 젖을 정도였다.“이건 우리의 작은 성의니까 정 대표가 받아들이도록 설득 좀 부탁할게.”우광식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비록 김예훈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고작 데릴사위 따위가 아니라는 건 당연히 눈치챘다.김예훈은 그 말을 듣고 정민아를 향해 말했다.“민아야, 이 사람들이 진심으로 하는 얘기인 것 같은데 그냥 받아들이는 게 어때? 이제 와서 다른 거래처를 찾는 게 쉽지는 않잖아. 그리고 공사 일정도 영향 주기 마련이고.” 김예훈의 말에 정민아는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깜짝 놀란 눈으로 김예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설마 어젯밤에 네가...?”김예훈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정민아를 재벌로 만들려고 마음먹은 이상 어떤 사실은 너무 일찍 공개하지 않는 게 좋았다.입을 꾹 닫고 있는 김예훈을 보자 정민아의 얼굴에 의혹이 가득했다.“혹시 김세자...”“아마도 그렇겠지? 어쨌거나 백운 별장 프로젝트는 CY그룹 지분의 51%가 연루되어 있으니 제 분수도 모르고 공사를 망치려
결국 정민아는 마음이 약해진 나머지 고개를 끄덕였다.정민아의 허락을 받은 우광식 일행은 연신 감사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떴다.얼마 지나지 않아 공사장에서 연락이 왔는데 여러 원자재가 한꺼번에 현장에 도착하면서 며칠 동안 중단되었던 프로젝트가 마침내 다시 시작되었다고 했다.정민아는 비록 속으로 여전히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찌 됐든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CY그룹.김예훈은 회장 의자에 앉아 앞에 놓인 두 장의 사진을 바라보았다.첫 번째 사진은 꽤 선명한데 김만철과 김만태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바닷가에 서 있었다.자세히 보면 김만철의 왼팔은 이미 잘려나갔는데, 아마 오늘에 있었던 일일 가능성이 컸다.반면, 두 번째 사진은 좀 흐릿했다. 언뜻 보면 공항에서 찍은 사진이었고, 김예훈이 모르는 남자였다.김예훈은 두 번째 사진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무덤덤하게 물었다.“오늘 아침에 누가 내 책상에 이 사진을 뒀단 말이죠?”“네.”하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CCTV를 확인했는데 마침 어젯밤이 고장이 나서 녹화된 영상이 아무것도 없었어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그쪽이 작정하고 나한테 선물을 보내려고 했으니 CCTV쯤이야 망가뜨릴 수단 정도는 있지 않겠어요? 상대방의 정체에 대해 짚이는 구석이 있어요?”하은혜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대답했다.“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대표님께 이 3명을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듯싶네요.”“김만태와 김만철 쌍둥이는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에요. 어젯밤에 김만철을 살려둔 이유도 김만태가 현장에 없었기 때문이죠. 사실 나도 김만철을 죽였을 때 김만태가 대체 무슨 짓을 벌일지 상상이 안 가요. 하지만 우선은 상대방의 정체를 알아보는 게 좋겠어요.”하은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재빨리 자리를 떴다.사무실에 덩그러니 남은 김예훈은 사진을 꼭 쥐고 한참을 바라보았다.“이건 진주 국제공항이잖아. 그렇다면 이씨 가문 사람이 왔다는 뜻인가?”...성남 국제공항.
김만태가 미소를 지었다.“형님, 이왕 온 김에 며칠 푹 쉬는 게 어때요? 어떤 일은 급하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이장우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만태야, 너도 내가 여기 온 목적을 알고 있잖아. 만약 실패하면 우리 둘 다 곤란하게 될 거야.”“당연하죠.”김만태가 웃으면서 말했다.“그렇다면 오늘 하씨 가문에 청첩장을 보내도록 할게요.”“그래.”“제가 만반의 준비를 마칠 테니 나중에 직접 나서기만 하면 돼요.”김만태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이장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그가 진주의 거물급 인사인 건 사실이지만, 이번 임무를 망치는 순간 좋은 결말은 없으리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성남 그린베이는 하씨 가문이 머무는 곳이다.하씨 가문은 성남시 토박이가 아니라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다.나중에 하정민이 경기도 일인자로 거듭난 뒤 가족들이 속속 서울에서 이주하기 시작했다.다만 하정민은 늘 겸손한 편이라 경기도에서 하씨 가문 또한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그런데 오늘 내내 한산하기만 했던 하씨 가문 정원에 친척들이 한데 모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안색이 어두웠다.하정민은 눈에 띄게 화려한 청첩장을 들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 달만 해도 벌써 5번째야. 오늘은 진주 이씨 가문 이장우네.”이 말을 듣는 순간 하씨 가문 사람들이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하정민의 큰아들이자 하은혜의 큰아버지인 하준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그동안 청첩장을 보냈던 네 사람은 급이 안 돼서 자격 미달이라는 이유로 거절할 명분은 있었지만, 이장우는 이세자로 알려진 사람이지 않습니까? 무려 진주 이씨 가문의 차세대 후계자라고요. 만약 이런 분마저 거절했다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가문이 점점 많아질까 봐 두렵네요.”하정민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그렇다면 젊은이들끼리 한번 만나보라고 해. 나중에 인연이 이어질지는 본인들의 몫이잖아.”지난 며칠 동안 경기도 하씨 가문은 청첩장을 여러 장이나 받
하준서는 하은혜를 보자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은혜야, 마침 잘 왔어. 방금 네 얘기하고 있었거든. 이제는 어엿한 숙녀로 자랐구나. 이번 달만 해도 벌써 다섯 번째로 우리 집안과 혼담이 오고 갔단다.”말을 마친 하준서가 사진 몇 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자, 봐봐. 이분은 이씨 가문의 세자 이장우, 이분은 손씨 가문의 세자 손지강, 이분은 나씨 가문의 세자 나현종, 이분은 윤 씨 가문의 세자 윤지성, 그리고 이분은 임씨 가문의 세자 임영운이야. 다들 하나같이 유능한 청년이라 누구를 선택하든 우리 가문한테 분명 좋은 점이 있을 거야.”하지만 하은혜는 사진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하정민 앞으로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제가 결혼하지 않을 거라는 걸 할아버지도 아시잖아요.”하정민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할아버지가 어찌 네 마음을 모를 수 있겠느냐? 다만 혼담이 오고 간 집안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이 할아버지도 차마 다 거절하기가 힘들구나. 내가 아무리 경기도 일인자라고 해도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명문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가는 앞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질 게 뻔하단다. 그래서 이번에는 절대로 거절하면 안 돼. 여기서 한 명을 고르든지 아예 다른 남자를 집으로 데려오든지 해.”하은혜는 하정민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새빨간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알겠어요. 절대로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보름 뒤에 이분들을 집으로 초대할 테니까 그전까지 남자친구를 데려온다면 인정해줄게.”하정민이 말했다.“안 됩니다! 어르신, 절대 안 됩니다!”하씨 가문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나씨 가문을 포함한 일류 가문의 눈 밖에 나는 건 그렇다 쳐도 진주 이씨 가문의 심기만큼은 절대로 건드릴 수는 없습니다.”“본가인 서울 하씨 가문마저 진주 이씨 가문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요.”“워낙 실력이 막강한 집안인 지라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우리 경기도 하씨 가문이 풍비박산할 수도 있어요.”“하은혜, 너한테 선택의 여지는 없어. 아니면 그냥 이세자와 결
“하지만 그게 뭐? 결국은 김세자의 눈에 들지도 못했잖아. 벌써 따라다닌 지 몇 년은 될 텐데 아직도 아무런 명분이 없어서야, 원!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 이세자가 바다 같은 넓은 마음으로 너를 품어줬으니 이런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겠어? 널 헌신짝 취급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판에 감히 결혼하기 싫다고? 어쩌면 그렇게도 뻔뻔스럽냐?”하지석의 말을 듣자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하은혜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마치 금은보화라도 발견한 듯싶었다.왜냐하면 하은혜와 이장우의 결혼이 정해지는 순간 하씨 가문이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니까.“은혜야, 형수님이 널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여자라면 무릇 자신을 아낄 줄 알아야 해. 네가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김세자만 하더라도 며칠 전에 공개 석상에서 어떤 년한테 프러포즈했다가 거절당했다며? 하지만 설령 파투가 났다고 해도 너한테 관심은 없잖아. 하씨 가문은 몰라도 너 자신을 위해 생각해야지 않겠어? 여자로서 평생 젊고 예쁘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이세자처럼 좋은 남자를 다시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내 말 듣고 지금 당장 가서 사직서 내. 일단 외모부터 열심히 가꾸고 보름 뒤에 하씨 가문이 주최하는 파티에서 이세자의 프러포즈를 받아줘. 그렇다면 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될 테니까.”하지석의 아내인 조연아가 다가와 노파심에 연신 충고했다.누가 부부 아니랄까 봐, 한 명은 북치고 한 명은 장구치고 진짜 천생연분이 따로 없었다.하씨 가문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은혜한테로 향했고, 그녀가 대답하기만을 기다렸다.하지만 입을 꾹 닫고 있는 하은혜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고집스러운 손녀딸의 모습을 보자 하정민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비록 그는 경기도 하씨 가문을 이끌고 있긴 하지만, 문제는 경기도 하씨 가문 자체가 고작 서울 하씨 가문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게다가 친척 중에서 서울 하씨 가문
툭.바닥에 떨어진 수류탄은 폭발하지 않고 계속 돌고 있었다.사람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부들부들 떨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어? 폭발하지 않는데?”“죄송해요. 불이 꺼졌네요?”김예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맹승현의 몸에서 다른 수류탄을 꺼내 또다시 안전핀을 뽑았다.“풀어줄게! 내가 사람을 풀어주겠다고!”맹승현이 반응할 틈도 없이 남윤지가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방금 죽을 고비를 넘긴 남윤지는 다른 사람들처럼 죽고싶지 않았다.탄탄대로인데 절대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았다.표정이 일그러진 맹승현은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다 자기 몸에서 나는 지린내를 맡았다.이순간 그는 땅에 머리를 박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맹승현은 살면서 이렇게 두려워하는 순간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곧이어 남윤지의 전화 한 통에 몇몇 보디가드들이 강서연을 데려왔다.그녀는 얼굴이 조금 창백했지만 큰 부상은 입지 않은 것 같았다.결국 서로 다 아는 사이이기에 남윤지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동하임과 추하린이 달려와서 강서연을 뒤로 보호하는 사이, 이상한 눈빛이 김예훈을 향했다.“오늘은 내가 졌어.”전세 역전에 지린내가 진동하는 맹승현은 표정이 극도로 어두워졌다.“나보고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무릎은 꿇을 수 있지만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이 순간까지도 맹승현은 김예훈을 도발하고 있었다.강서연은 맹승현이 무릎을 꿇으려고 하자 순간 본능적으로 말했다.“김예훈 도련님, 이제 그만 해요...”다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 김예훈을 바라보며 자비를 베풀었으면 했다.김예훈 도련님이라는 호칭에 남윤지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김예훈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다음 순간 그녀는 온몸을 떨면서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너였어? 맹승현 도련님의 무릎을 꿇게 하는 순간 맹씨 가문, 남씨 가문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내가 사람을 놓아주라면 놓아주고, 무릎 꿇으라면 꿇고, 사과하라면 사과해야 하는 거야.”퍽!김예훈은 앞으로 다가가 맹승현을 발로
맹승현은 계속해서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김예훈을 마주한 순간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이 순간 그는 자존심을 내세우며 말했다.“이 자식이. 너 정말 죽는 게 두렵지 않아?”“무섭지. 죽는 게 왜 두렵지 않겠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난 아무것도 아니라 괜찮지만 너는 진주·밀양 4대 도련님 중의 한명이자 흑아프리카에서 천하무적이라 앞날이 창창하잖아. 우리 둘이 함께 죽으면 과연 누가 손해일까? 나는 이대로 잊히겠지만 맹승현 도련님이라는 사람이 체면을 위해 다른 사람과 함께 죽을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라고 기억되지 않을까?”아무렇지 않게 한 말에 임수민 등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미친 자는 한 명으로도 족한데 두명이 함께 모이니 정말 무서웠다.이들은 두려워서 곧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았다.맹승현은 김예훈한테서 어떤 두려움이라도 찾아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는 이미 생사에 익숙한 듯 무덤덤하기만 했다.맹승현은 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기백을 가졌는지 궁금했다.‘설마 전쟁터에 나가본 적 있는 걸까? 아니면 시체 더미에서 살아남은 걸까? 일반인은 절대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잖아.’이런 생각에 맹승현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네가 대단한 사람인 건 인정해. 내가 졌어. 사과할게. 아까는 내가 잘못했어. 모두에게 한마디 사과할게.”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맹승현 도련님, 사과는 이렇게 하는 거 아니지. 무릎 꿇고 사과하고 강서연 씨를 풀어줘. 셋 중에 하나도 빠짐없이 실행해야 할 거야. 아니면 다 함께 죽는 거야.”맹승현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냉랭하게 말했다.“이 자식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그래도 네가 뭐라도 되는 것 같아서 너의 체면을 봐서라도 추문성에게 사과할게. 그런데 강서연은 나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윤지 씨와의 원한을 내가 무슨 수로 간섭해. 그리고 내가 정말 너를 두려워하는 것 같아? 까짓거 총 쏘라고 명령을 내리면 누가 먼저 죽을지 해보자고.”맹승현의 경호원들은 하나같이 총알을 장
이 순간 맹승현의 표정은 변화무쌍했다.눈앞의 이 장면은 그에게 진정한 치욕이었다.흑아프리카를 종횡무진하면서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였지만 오늘날 이렇게 짓밟힐 줄 몰랐다.게다가 김예훈은 그보다 더 잔인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류탄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었다.맹승현은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죽음으로 모든 사람의 얼굴에 침 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오늘은 어디서 튀어나온 줄도 모르는 놈때문에 마음속 두려움을 깨닫게 되었다.과거에 거만하고 미친 짓을 했던 것은 죽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성립된 것이다.자신도 누군가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겁을 먹게 된다.맹승현의 얼굴은 극도로 어두워져 사람 전체가 우울해 보였다.“대단한데? 추씨 가문의 부하인 거야? 이름 대볼래? 내일이면 어떻게 너희 온 가족을 죽여버리고 조상님들의 무덤을 파내서 뼈를 부숴버릴지 두고봐.”맹승현은 분명 동반자살을 하지 못할 거면서 음흉한 표정으로 협박하고 있었다.쨕!김예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의 뺨을 때렸다.“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 같이 죽든가. 아니면 무릎 꿇고 사과하든가.”김예훈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전쟁터에서 수년을 보내면서 머리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애송이를 무서워할 리가 없었다.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맹승현은 평생 받아보지 못한 치욕감에 얼굴이 극도로 일그러졌다.“악!”아름다운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얼굴이 청백해지고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이들은 맹승현이 한 번의 충동으로 수류탄을 놓아버리면 한창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할까 봐 두려웠다.남윤지 역시 누군가가 이렇게 자신을 괴롭힐 줄 몰랐는지 표정이 극도로 안 좋아졌다.자기가 맹승현을 불러와 놓고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 몰랐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현장을 떠나고 싶었지만 용전 사람들이 죽어도 함께 죽겠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모든 입구를 막고 있어 도망칠 수가 없었다.이 순간, 남윤지는
“둘째, 죽고싶지 않으면 지금 바로 무릎 꿇고 스스로 자기 뺨을 열대 때리세요. 사과하라는 대로 하면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해드릴게요. 어떤 선택을 하든 제가 끝까지 함께해 드릴게요. 어때요?”김예훈은 무심한 말투로 맹승현을 죽일 듯한 표정을 지었다.맹승현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순간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넌 도대체 누구야?”그는 김예훈을 발로 차서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자기 손을 단단히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김예훈이 손에 힘을 주기만 하면 안전장치를 뺀 수류탄이 바닥에 떨어져 모두가 함께 죽을 수도 있었다.그래서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제가 누군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도대체 어떤 선택을 할 거냐예요.”김예훈은 말을 끝내자마자 손끝에 힘을 주었다.“선택 못 하겠다면 제가 도와줄까요?”김예훈이 손에 힘을 주는 순간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맹승현은 손의 힘이 점점 약해져 수류탄이 당장 떨어질 것만 같았다.“이런 미친놈!”아까까지만 해도 거만하던 맹승현은 뒤로 물러나고 싶었지만 김예훈이 그의 손목을 잡고 있어서 도저히 물러날 수가 없었다.그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져 매우 보기 흉했다.소파 뒤에서 머리를 내민 남윤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고, 거만하던 얼굴에는 온통 두려움이 가득했다.이순간 남윤지는 이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쳐다볼 용기조차 없었다.마음속에는 두려움만 가득했다. 맹승현의 손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수류탄이 바로 폭발할 것이다.그렇게 되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반신불수가 될수 있었다.“자! 그냥 같이 죽죠?”김예훈이 손에 힘을 더하는 순간 맹승현은 식은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수류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왜요? 못하겠어요? 아까까지만 해도 기세가 하늘을 찌르더니.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하신 거 아니었어요? 수류탄으로 협박하지 않았어요?”맹승현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죽음이 두렵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하하하하! 역시 병신이 맞았어!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이라고! 너희들 꼬락서니를 봐!”추문성 일행의 처참한 모습을 본 맹승현은 사악하게 미소를 지었다.“이러고도 내 앞에서 잘난 척했던 거야? 그것도 모자라 정의를 되찾고 싶어? 아직 수류탄을 던지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겁을 먹다니! 정말 던져버리면 무서워서 울겠네? 정말 안 되겠네. 추씨 가문? 동씨 가문? 제발 웃기지 마! 1인자 자리에 앉아있는 건 아무도 너희와 경쟁하지 않기 때문이야. 정말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나 같은 사람이랑 비교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거야? 그럴 자격이 있기나 해?”맹승현은 추문성의 얼굴을 때리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임수민 등 아름다운 여성들은 모두 입을 가리고 웃음을 터뜨렸다.오늘 이 일이 밖에 알려지면 동씨 가문이든 추씨 가문이든 진주·밀양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했다.추문성은 맹승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오늘 이 자리에 무고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면 맹승현과 함께 죽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됐어. 오늘은 충분히 기회를 많이 줬어. 앞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생각도 하지 마.”맹승현은 한껏 조롱과 비웃음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길에서 나를 만나든 윤지 씨를 만나든 멀리 썩 꺼져. 앞으로 우리가 참석하는 자리에는 동씨 가문도, 추씨 가문도 나타나지 말아야 할 거야. 아니면 만날 때마다 본때를 보여줄 거니까. 그리고 내 말대로 얼른 돈이랑 고서희 씨를 돌려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이기 전에. 알겠어?”맹승현은 테이블 위에서 샴페인 병을 집어 들고 추문성의 머리를 내리치더니 냉랭하게 말했다.“진주·밀양에서는 아무도 내 앞에서 뭐라 하지 못해. 너희들은 그럴 자격도 없어.”추문성은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얼굴은 일그러진 것이 맹승현이 수류탄만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직접 나섰을 것이다.추문성이 이토록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자 맹승현은 더욱더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나는 어때!”바로 이때, 인파를 뚫고 한 사람이 거만한 모습으로 맹승현 앞에
한계를 넘어선 맹승현의 행동에 추하린은 미간을 찌푸린 채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말았다.그녀는 진주·밀양 용전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김예훈의 이익도 대표하고 있는데 이렇게 쉽게 맞을 수가 있겠는가?다음 수난 추하린은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며 차갑게 말했다.“맹승현, 내가 괜히 진주·밀양 용전 전주가 된 줄 알아? 정말 너를 죽이지 못할 것 같아?”추하린의 명령과 함께 주위에 열몇 명의 부하들이 동시에 나타나 총알을 장전하고 맹승현을 겨냥했다.하지만 맹승현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지 그는 무표정으로 추하린을 바라보며 냉랭하게 말했다.“옥루 회관을 무단침입한 것도 모자라 윤지 씨 앞에서 위세를 부리는데 너를 건드리지 않으면 누굴 건드리겠어? 내가 말해주는데 추하린! 진주·밀양 용전 전주면 다른 사람에게 겁줄 수는 있겠지만 나한테는 안 먹혀. 네까짓 게 추문성을 위해 나서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거야.”추하린이 냉랭하게 말했다.“나랑 제대로 한번 붙어볼 생각인가 봐? 사람도 많고 총도 많은데 굳이 나를 건드리겠다고?”맹승현은 피식 웃기만 했다.“총으로 나를 쏴보든가! 나를 죽이지 못하면 추씨 가문의 남자는 대대로 노예가 되고 여자는 창녀가 될 것이야.”맹승현이 외투를 풀어 헤치는 순간 옷 속에서 또 몇 개의 검은 수류탄이 보였다.수류탄이 터지는 순간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죽을 운명이었다.너무나도 위험한 상황에 사람들은 소름이 끼치고 말았다.수십 명의 용전 부하들과 경호원들은 본능적으로 후퇴했고, 어떤 사람들은 은신처를 찾느라고 정신이 없었다.맹승현은 그야말로 진정한 미친놈이었다.남윤지조차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심지어 왜 이런 미치광이를 전쟁터에서 데려왔는지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맹승현의 스타일을 봤을 때 정말로 동반자살 하는 행동을 저지를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추문성은 피식 웃으며 앞으로 다가가려고 했지만 추하린이 꽉 잡았다.“왜. 아까는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나를 죽이겠다면서? 왜 이제는 하나둘 겁먹은 거야
“체면을 지켜주지 않으면 뭐 어쩔 건데? 뺨을 때리면 뭐 어쩔 거냐고.”남윤지는 천천히 소파로 돌아가 다리를 꼬고 앉았다.그러면서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추문성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참기만 하더니 드디어 폭발할 준비가 된 거야? 이제는 나를 때리려고? 자, 한 대 쳐봐. 어떻게 나를 건드릴 건지 지켜볼 거니까.”“너!”추문성이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뒤에서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수십 명의 제복을 입고 전신 무장한 사람들이 나타나 총을 빼 들고 전체 마당을 포위했다.이때 제복을 입고있는 추하린이 긴 다리를 뻗으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남윤지 씨, 저희 추씨 가문을 건드리기 전에 제 의견을 물어본 적 있어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고 있냐고요.”말하는 사이 추하린은 추문성 앞으로 다가가 그의 퉁퉁 부어오른 얼굴과 처참한 모습을 보고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어머, 이게 누구야. 진주·밀양 용전 전주 추하린이잖아. 왜? 전주를 며칠 해봤다고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감히 옥루 회관에 와서 소란을 피워? 그것도 모자라 지금 나에게 도전장을 내민 거야?”남윤지가 가소로운 표정으로 말했다.“김현민 도련님이 어르신 생신 때문에 너를 해결할 시간이 없었을 뿐인데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할 판에 여기서 허세를 부려? 이런 제기랄! 이따 네 뺨까지 때려줄까?”맹승현도 냉랭하게 말했다.“추하린, 창피하게 그깟 총을 꺼내지도 마. 하나같이 피를 본 적도 없는 초보들이 방아쇠를 당길 줄이나 알아? 그것도 모르면서 어디서 잘난 척하는 거야.”‘맹승현?’이때 추하린의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추문성이 여기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났다고 해서 바로 달려오느라 김예훈을 전혀 눈치채지도 못했다.추문성이 남윤지만 건드렸다면 그걸로 끝났겠지만 문제는 맹승현도 있다는 것이다.남윤지와 맹승현은 진주·밀양 4대 명문가 중 두 가문을 대표하고 있어 잘못했다간 용전도 이 상황을 수습하지 못할 수도 있었
“그리고 강씨 가문 지분이 추씨 가문의 것도 아닌데 대신 결정할 자격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면 당신 주인이 이미 두려워서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는 건가? 그래서 이런 굴욕적인 조건을 스스로 제안한 건가?”남윤지는 차가운 눈빛으로 추문성을 응시하며 다음 행동을 위해 그의 표정으로 뭔가를 읽어내려 했다.하지만 추문성이 무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남윤지 씨, 쓸데없는 말은 필요 없고 한 번만 더 물을게요. 저희랑 이 거래를 할 의향이 있는 거예요?”남윤지는 천천히 다가와서 추문성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이렇게 좋은 조건이라면 물론 거래할 의향이 있지만 아쉽게도 네가 강서연 씨를 납치한 게 아니거든. 설령 그렇다 해도 당신 주인이 이렇게 큰 힘을 들여 데려가겠다고 하는데 차라리 계속 붙잡아 두고 강씨 가문이 당신들이랑 연을 끊게 하는 것이 더 재밌지 않을까? 당신 주인이라는 사람은 그깟 똑똑한 척하는 머리와 기술로 진주·밀양에서 뭐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지? 정말 순진하긴. 나타나기조차 두려워서 너 같은 쓰레기를 보낸 것만 해도 병신인 것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까?”남윤지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오늘 이 모든 것은 김예훈을 위해 준비된 것인데 김예훈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른바 거래를 할수 없었다.게다가 추문성은 그녀와 거래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추문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남윤지 씨는 저의 체면을 지켜줄 생각이 없나 봐요?”“당연히 체면은 지켜줘야지.”남윤지는 샴페인을 들고 다가왔다.“당신 체면을 봐서 고서희를 납치한 일은 따지지 않을게. 돌아가서 사람을 풀어주고 옥루 회관에 2천억 원을 배상하면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을게. 내 조건을 들어줄 수 있겠어? 안 된다면 너까지 잡아둘 수밖에. 네가 먼저 옥루 회관 사람들을 건드렸으니 붙잡아도 너희 누나도 뭐라고 하지 못할 거야.”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걸어오던 임수민이 웃으면서 말했다.“추문성 도련님, 동의하는 것이 좋을 거예요. 아까 동영상이랑 사진을 많이 찍었
가까워진 남윤지의 얼굴을 보던 추문성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오른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추문성은 그녀를 때리지 않으려고 꾹 참고 있었다.쨕!추문성이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남윤지가 다시 한번 추문성의 다른 한쪽 뺨을 때렸다.“쓸모없는 자식. 여자한테 맞고도 반격할 용기도 없는 멍청한 자식. 이러고도 체면을 지켜달라고? 체면이라고 있는 거야?”이순간 남윤지는 추문성을 극도로 경멸했다.‘진주·밀양 도련님 중의 한 명으로서 나한테 손대지도 못하는데 잘나면 얼마나 잘났을까? 그냥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얼굴을 감싸고 있는 추문성의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얼마나 처참한지 이보다도 더 처참할 수가 없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모두 박장대소를 지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술잔을 부딪치며 좋은 구경을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이 장면을 기록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부잣집 도련님이 쩔쩔매는 모습이 온라인에 퍼진다면 절대 큰 화제가 될 수 있었다.동하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남윤지 씨,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동하임은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남윤지와 맹승현의 막무가내를 봤을 때 가끔은 능력과 인맥이 그렇게 유용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실력이야말로 진정으로 믿을 구석이었다.지금 이 순간 남윤지의 실력이 추문성보다 강하기 때문에 추문성이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심지어 말도 하지 못했다.“농담도 심하시네요. 남윤지 씨는 진주·밀양 4대 명문가 중의 하나인 남씨 가문의 따님이자 안동 김씨 가문의 안방마님이 될 사람인데 제가 아무리 겁 없는 사람이라도 남윤지 씨를 어떻게 모욕하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제 체면을 지켜주셨으면 바람이네요.”추문성의 눈빛은 차가웠고, 이 순간 그는 분노도 두려움도 없었으며 오히려 얼굴에 남은 손자국을 문질렀다.“저는 오늘 화해를 구하러 온 것이지 남윤지 씨가 두려워서 이러는 거 아니에요. 가끔 어떤 일은 크게 만들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문제가 커져봤자 모두에게 좋지 않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