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정민아는 마음이 약해진 나머지 고개를 끄덕였다.정민아의 허락을 받은 우광식 일행은 연신 감사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떴다.얼마 지나지 않아 공사장에서 연락이 왔는데 여러 원자재가 한꺼번에 현장에 도착하면서 며칠 동안 중단되었던 프로젝트가 마침내 다시 시작되었다고 했다.정민아는 비록 속으로 여전히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찌 됐든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CY그룹.김예훈은 회장 의자에 앉아 앞에 놓인 두 장의 사진을 바라보았다.첫 번째 사진은 꽤 선명한데 김만철과 김만태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바닷가에 서 있었다.자세히 보면 김만철의 왼팔은 이미 잘려나갔는데, 아마 오늘에 있었던 일일 가능성이 컸다.반면, 두 번째 사진은 좀 흐릿했다. 언뜻 보면 공항에서 찍은 사진이었고, 김예훈이 모르는 남자였다.김예훈은 두 번째 사진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무덤덤하게 물었다.“오늘 아침에 누가 내 책상에 이 사진을 뒀단 말이죠?”“네.”하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CCTV를 확인했는데 마침 어젯밤이 고장이 나서 녹화된 영상이 아무것도 없었어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그쪽이 작정하고 나한테 선물을 보내려고 했으니 CCTV쯤이야 망가뜨릴 수단 정도는 있지 않겠어요? 상대방의 정체에 대해 짚이는 구석이 있어요?”하은혜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대답했다.“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대표님께 이 3명을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듯싶네요.”“김만태와 김만철 쌍둥이는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에요. 어젯밤에 김만철을 살려둔 이유도 김만태가 현장에 없었기 때문이죠. 사실 나도 김만철을 죽였을 때 김만태가 대체 무슨 짓을 벌일지 상상이 안 가요. 하지만 우선은 상대방의 정체를 알아보는 게 좋겠어요.”하은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재빨리 자리를 떴다.사무실에 덩그러니 남은 김예훈은 사진을 꼭 쥐고 한참을 바라보았다.“이건 진주 국제공항이잖아. 그렇다면 이씨 가문 사람이 왔다는 뜻인가?”...성남 국제공항.
김만태가 미소를 지었다.“형님, 이왕 온 김에 며칠 푹 쉬는 게 어때요? 어떤 일은 급하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이장우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만태야, 너도 내가 여기 온 목적을 알고 있잖아. 만약 실패하면 우리 둘 다 곤란하게 될 거야.”“당연하죠.”김만태가 웃으면서 말했다.“그렇다면 오늘 하씨 가문에 청첩장을 보내도록 할게요.”“그래.”“제가 만반의 준비를 마칠 테니 나중에 직접 나서기만 하면 돼요.”김만태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이장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그가 진주의 거물급 인사인 건 사실이지만, 이번 임무를 망치는 순간 좋은 결말은 없으리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성남 그린베이는 하씨 가문이 머무는 곳이다.하씨 가문은 성남시 토박이가 아니라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다.나중에 하정민이 경기도 일인자로 거듭난 뒤 가족들이 속속 서울에서 이주하기 시작했다.다만 하정민은 늘 겸손한 편이라 경기도에서 하씨 가문 또한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그런데 오늘 내내 한산하기만 했던 하씨 가문 정원에 친척들이 한데 모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안색이 어두웠다.하정민은 눈에 띄게 화려한 청첩장을 들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번 달만 해도 벌써 5번째야. 오늘은 진주 이씨 가문 이장우네.”이 말을 듣는 순간 하씨 가문 사람들이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하정민의 큰아들이자 하은혜의 큰아버지인 하준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그동안 청첩장을 보냈던 네 사람은 급이 안 돼서 자격 미달이라는 이유로 거절할 명분은 있었지만, 이장우는 이세자로 알려진 사람이지 않습니까? 무려 진주 이씨 가문의 차세대 후계자라고요. 만약 이런 분마저 거절했다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가문이 점점 많아질까 봐 두렵네요.”하정민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그렇다면 젊은이들끼리 한번 만나보라고 해. 나중에 인연이 이어질지는 본인들의 몫이잖아.”지난 며칠 동안 경기도 하씨 가문은 청첩장을 여러 장이나 받
하준서는 하은혜를 보자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은혜야, 마침 잘 왔어. 방금 네 얘기하고 있었거든. 이제는 어엿한 숙녀로 자랐구나. 이번 달만 해도 벌써 다섯 번째로 우리 집안과 혼담이 오고 갔단다.”말을 마친 하준서가 사진 몇 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자, 봐봐. 이분은 이씨 가문의 세자 이장우, 이분은 손씨 가문의 세자 손지강, 이분은 나씨 가문의 세자 나현종, 이분은 윤 씨 가문의 세자 윤지성, 그리고 이분은 임씨 가문의 세자 임영운이야. 다들 하나같이 유능한 청년이라 누구를 선택하든 우리 가문한테 분명 좋은 점이 있을 거야.”하지만 하은혜는 사진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하정민 앞으로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제가 결혼하지 않을 거라는 걸 할아버지도 아시잖아요.”하정민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할아버지가 어찌 네 마음을 모를 수 있겠느냐? 다만 혼담이 오고 간 집안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이 할아버지도 차마 다 거절하기가 힘들구나. 내가 아무리 경기도 일인자라고 해도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명문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가는 앞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질 게 뻔하단다. 그래서 이번에는 절대로 거절하면 안 돼. 여기서 한 명을 고르든지 아예 다른 남자를 집으로 데려오든지 해.”하은혜는 하정민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새빨간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알겠어요. 절대로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보름 뒤에 이분들을 집으로 초대할 테니까 그전까지 남자친구를 데려온다면 인정해줄게.”하정민이 말했다.“안 됩니다! 어르신, 절대 안 됩니다!”하씨 가문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나씨 가문을 포함한 일류 가문의 눈 밖에 나는 건 그렇다 쳐도 진주 이씨 가문의 심기만큼은 절대로 건드릴 수는 없습니다.”“본가인 서울 하씨 가문마저 진주 이씨 가문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요.”“워낙 실력이 막강한 집안인 지라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우리 경기도 하씨 가문이 풍비박산할 수도 있어요.”“하은혜, 너한테 선택의 여지는 없어. 아니면 그냥 이세자와 결
“하지만 그게 뭐? 결국은 김세자의 눈에 들지도 못했잖아. 벌써 따라다닌 지 몇 년은 될 텐데 아직도 아무런 명분이 없어서야, 원!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 이세자가 바다 같은 넓은 마음으로 너를 품어줬으니 이런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겠어? 널 헌신짝 취급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판에 감히 결혼하기 싫다고? 어쩌면 그렇게도 뻔뻔스럽냐?”하지석의 말을 듣자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하은혜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마치 금은보화라도 발견한 듯싶었다.왜냐하면 하은혜와 이장우의 결혼이 정해지는 순간 하씨 가문이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니까.“은혜야, 형수님이 널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여자라면 무릇 자신을 아낄 줄 알아야 해. 네가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김세자만 하더라도 며칠 전에 공개 석상에서 어떤 년한테 프러포즈했다가 거절당했다며? 하지만 설령 파투가 났다고 해도 너한테 관심은 없잖아. 하씨 가문은 몰라도 너 자신을 위해 생각해야지 않겠어? 여자로서 평생 젊고 예쁘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이세자처럼 좋은 남자를 다시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내 말 듣고 지금 당장 가서 사직서 내. 일단 외모부터 열심히 가꾸고 보름 뒤에 하씨 가문이 주최하는 파티에서 이세자의 프러포즈를 받아줘. 그렇다면 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될 테니까.”하지석의 아내인 조연아가 다가와 노파심에 연신 충고했다.누가 부부 아니랄까 봐, 한 명은 북치고 한 명은 장구치고 진짜 천생연분이 따로 없었다.하씨 가문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은혜한테로 향했고, 그녀가 대답하기만을 기다렸다.하지만 입을 꾹 닫고 있는 하은혜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고집스러운 손녀딸의 모습을 보자 하정민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비록 그는 경기도 하씨 가문을 이끌고 있긴 하지만, 문제는 경기도 하씨 가문 자체가 고작 서울 하씨 가문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게다가 친척 중에서 서울 하씨 가문
성남 고등학교.정소현은 고개를 숙인 채 마치 도망치는 사람처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다만 입구에 다다르자 여학생 몇몇이 그녀를 막아섰다.“정소현, 어딜 이렇게 바쁘게 가나? 혹시 돈 벌려고 어떤 아저씨랑 만나기로 한 건 아니지?”“의외네? 평소에는 순둥이처럼 그 누구의 고백도 받아주지 않으면서 매춘부나 할 법한 짓거리로 돈을 벌었던 거야?”“용돈이 부족하면 우리한테 얘기하지 그랬어. 우리가 도와줄 수도 있는데 왜 스스로 자기 인생을 망치는 건데?”그들은 평소 정소현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여학생들이다.특히 노래방 사건 이후로 정소현의 마음속에 오로지 형부뿐인지라 같은 반 남학생은 눈에 차지도 않았고, 그동안 고백하러 온 소위 잘난 남학생을 거절한 적이 꽤 되었다.바로 이런 이유로 다른 여학생들은 그녀를 질투하기 시작했다.다들 기회만 생겼다면 정소현을 학교에서 쫓아내지 못해 안달이었다.“내가 왜 돈이 부족해? 프리미엄 가든에 집도 있는데 돈이 없을 리가 있어? 물론 돈이랑 별개로 너희들이 상관할 바는 아니라고 보는데? 비켜!”정소현은 여학생들과 시간 낭비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정소현, 좋은 말 할 때 알아서 자퇴해라? 네가 성남시 출신이 아닌 시골에서 올라온 촌년이라는 걸 다 알고 있거든?”“그 주제에 감히 프리미엄 가든에 집이 있다고 큰소리쳐? 낯 뜨거운 줄 알아!”“얘들아, 어쩌면 진짜 프리미엄 가든에 살지도 모르잖아. 거기에 돈 많은 아저씨 한 명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여학생들은 까르르 웃으면서 비아냥거렸다. 이번이야말로 정소현을 쫓아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참, 최근에 왜 다들 네가 몸 팔러 다닌다고 쉬쉬거리는지 알아? 왜냐하면 내가 이걸 보여줬기 때문이지!”이때 한 여학생이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을 보여줬다.거리가 멀어도 정소현은 롤스로이스의 조수석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다만 운전석에 있는 남자의 얼굴은 확인이 불가했다. 이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는데, 아마도 지난번에 형부
정소현도 바보가 아닌 이상 무릎 꿇은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유출되는 순간 지금 떠도는 유언비어를 인정하는 꼴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우린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왜 일부러 날 괴롭히는 거야?”정소현이 의혹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천한 년은 누구나 싫어하기 마련이야. 당연히 혼 좀 내야 하지 않을까? 돈 많은 아저씨의 스폰을 받는 게 사실이라면 결국은 우리 학교를 망신시키는 건데, 교장 선생님을 대신해 처벌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어?”손영지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진정한 이유는 함구할 테지만 이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정소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이 딱히 없었기에 휴대폰을 빼앗고 싶어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그러나 손영지의 요구에 응한다면 새로운 약점이 잡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만에 하나라도 동영상을 공개한다면 정소현의 처지는 더 비참해질 것이다.대체 어떡해야 한단 말이지?정소현은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익숙한 번호로 전화를 걸려고 했다.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를 부르는 게 맞는 건가?“지금 뭐 하는 거야?”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고개를 번쩍 든 정소현은 그 사람을 발견하자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누구세요? 그쪽이랑 무슨 상관인데요?”손영지는 시큰둥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미인을 구하는 영웅이 되기 전에 제 분수부터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김예훈은 오늘 포르쉐를 끌고 왔는데,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이 담긴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하지만 문제는 손영지가 손씨 가문 출신이라서 포르쉐 정도는 일반 승용차와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김예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소현아, 무슨 상황이야?”김예훈은 손영지를 무시하고 뒤돌아서 물었다.“형부, 쟤 휴대폰 안에 제 동영상이 있어요. 저한테 무릎 꿇고 걸레 같은 년이라고 인정해야 지워주겠대요.”정소현은 이때다 싶어 재빨리 설명했다.김예훈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나마 처제를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일 뿐, 다른
차에 오르자 김예훈은 시동을 거는 대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현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형부한테 얘기해 봐. 여학생들이 왜 널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야?”이 얘기를 언급하는 순간 정소현은 억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형부, 지난번 노래방 사건 아직 기억해요? 그 뒤로 일부러 다른 학생들이랑 어울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손학철이 계속 저한테 집적대는 거예요. 공개 석상에서 여러 번이나 고백했지만, 제가 다 거절했어요. 결국 이것 때문에 손영지의 미움을 사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손영지도 손학철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거든요.”이에 김예훈은 말문이 막힌 듯 미간을 문질렀다.그는 한참 동안 기억을 되짚어 보고 나서야 손학철이 누군지 떠올랐다. 당시 노래방에서 정소현을 데려왔을 때 마주쳤던 어린놈 같았는데...게다가 손영지는 또 뭐란 말인가?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의 막장 연애라니.“그런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김예훈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오늘 손영지가 한 짓만 놓고 보면 고작 막장 연애 때문에 그랬다고 보기는 어려웠다.정소현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손영지가 계속 자기는 일류 가문인 손씨 가문 출신이기에 나 같은 사람은 하인이 될 자격밖에 없다고 했죠. 그런데 어디서 감히 자기 남자를 탐하냐며, 영원히 학교에 못 나오게 하겠다고 으름장 놨거든요. 학교 이사회도 손씨 가문에서 관리한다는 소문이 있고, 오늘 저한테 무릎 꿇게 하기도 했지만 조만간 퇴학시킬 계획도 짰는걸요?”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김예훈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졌다.만약 여학생끼리 질투해서 이 지경까지 온 거라면 그나마 이해할 텐데, 손영지가 그 손씨 가문 사람일 줄이야!게다가 고작 사소한 일로 정소현을 퇴학시키려고 하다니?비록 김예훈의 말 한마디면 훨씬 더 좋은 학교를 찾을 수 있겠지만, 상대방이 정민아를 노리고 일부러 태클 건 게 뻔했다. 따라서 어찌 정소현이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마냥 지켜만 보고 있겠는가!이런 생각
담임 교사의 태도는 매우 단호했다. 비록 정소현은 전학생에 불과했지만 워낙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라 그녀를 퇴학시키는 데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다.“교장 선생님, 고작 학생들 사이에 생긴 작은 오해 때문에 훌륭한 학생 한 명을 퇴학시킨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담임 교사가 말하자 손학철의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서 씩씩거렸다.“작은 오해요? 어딜 봐서 작은 오해에요? 우리 학철이가 얼마나 똑똑한데, 얘를 키우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요? 손영지 양이 우리 아들을 좋아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영광이 따로 없죠. 물론 집안 경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두 사람이 사귄다고 해도 우린 반대할 의향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정소현 그 천한 년이 감히 우리 집 재력에 눈독 들이고 일획천금의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잖아요. 그래서 두 사람 사이를 망치려고 일부러 끼어든 게 분명해요. 이런 악질인 학생은 바로 퇴학시켜야 마땅하다고 봅니다.”이는 누가 봐도 억지였다.학생들 사이에서 생긴 사소한 일 때문에 이 지경까지 판을 끼우는 건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행패 부리는 것과 다름없었다.손학철의 아버지는 배불뚝이 중년 남성인데, 이내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고작 아이들끼리 다퉈서 작은 갈등이나 모순이 생겼다고 교장 선생님까지 찾아오지는 않겠죠. 하지만 정소현은 해도 해도 너무했어요. 우리 학철이한테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선물을 사주겠다고 집에서 무려 몇천만 원을 훔쳤다니까요? 선생님들, 이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우리 학철은 어려서부터 가정 교육을 잘 받았기에 옆에서 부추기는 나쁜 학생만 없었더라면 이런 짓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예요. 따라서 정소현을 퇴학시키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하잖아요?”손학철의 아버지는 마치 학교를 위해서 그런다는 듯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물론 그는 자기 와이프와 마찬가지로 결국은 정소현을 퇴학시키려는 목적이다.이렇게 해야만 아들이 권세 있는 집안에 빌붙을 테니까! 즉, 손영지와 사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