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에 유문석은 냉소를 짓더니 더 이상 김예훈 같은 사람과 말 섞기 싫은 듯 무시해버렸다.이내 진지한 얼굴로 정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누나,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줄 테니까 잘 들어. 누나 남편은 평생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할 운명이야! 만약 내가 누나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집에서 쫓아낼 테니까. 그래야만 누나도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겠어? 난 누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고, 다른 사람은 누나의 불행을 재미로 삼을 뿐이지!”유문석은 마치 정민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처럼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옆에 있던 나영수도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정민아 씨가 얼마나 훌륭한 여자인데요. 성공한 사업가에 젊고 예쁘기까지, 저런 남자가 어찌 가당키나 하겠어요? 인생의 반쪽으로 진짜로 괜찮은 남자를 선택해야죠. 자기 여자를 돌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업에도 도움이 되는 그런 남자 말입니다.”말을 마친 나영수는 가슴을 살짝 폈다. 사실 그의 말뜻은 간단했고, 즉 진짜로 괜찮은 남자는 본인이라는 것이다.이는 오늘 저녁의 만남은 두 사람이 사전 계획하에 이뤄졌고,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다.정민아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외부인이 제 사적인 일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게다가 전 김예훈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기분 좋게 밥 먹고 있는데, 이제 그만 방해해주시죠?”유문석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누나, 정신 차려! 저런 사람이 괜찮다고? 오늘 저녁 밥값만 해도 못 낼 것 같은데? 여기서 한 끼 사 먹는데 얼마 드는지 알아? 적어도 400만이라고! 오후에 소현한테 준 배상금을 펑펑 쓰면서 허세 부렸다고 해서 진짜 돈 있는 줄 알아? 잘 들어, 거지는 어디까지나 거지야. 빈털터리가 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우리가 뭘 먹고 계산을 어떻게 하든지 너랑 무슨 상관인데?”정민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제 그만 자리를 피해줄래?”유문석은 안색이 살짝 변했고, 나영수의 얼굴은 저절로 일그러졌다.김예훈은 시종일관 무심
“무슨 일이래?”정민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문석은 왜 갑자기 김예훈을 초대한단 말이지?“나한테 CY그룹 사람을 접할 기회라고 파티에 같이 가자고 하던데? 일단 가 볼게. 어쩌면 앞으로 네 사업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김예훈이 무심하게 말했다.“그럼 갔다가 일찍이 와.”정민아는 걱정이 들긴 했지만 김예훈이 사람을 만나고 인맥을 넓히고 싶다고 한 이상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반월만의 해변에 있는 프라이빗 클럽에 CY그룹 임원 십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그들 중 대부분은 원래 김씨 가문에 소속된 그룹사의 팀장이었다.당시 김예훈이 Q그룹을 설립했을 때, 이들은 그 그룹사에 취직하고 있었다.나중에 김씨 가문이 내분을 일으킨 바람에 김예훈의 충신들은 그룹사를 떠나거나 뿔뿔이 흩어졌다.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버티다가 제일 먼저 김병욱을 포함한 사람한테 빌붙었다. 게다가 본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나 데이터를 잽싸게 그들에게 바쳤다.따라서 김병욱을 포함한 사람들은 김예훈이 두 손으로 일군 Q 그룹을 아주 순조롭게 이어받았다.반면, 김예훈이 김씨 가문의 자산을 다시 회수한 이후로 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CY그룹에 기생했다.심지어 하은혜를 찾아가서 무릎 꿇고 애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는데, 물론 목적은 그동안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함이었다.한 마디로 이 사람들은 기회주의자였다.김예훈이 아직 임명하지 않은 탓에 이들이 담당했던 직위는 공석인 상태였다.하지만 이로 인해 그들은 3일 뒤에도 임원 자리가 다시 본인들에게 넘어올 거라는 커다란 착각에 빠졌다.김씨 가문과 김세자가 피 터지게 싸워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실속 차리는 사람들은 본인일 테니까!물론 이들은 당시 김예훈의 심복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그의 정체를 몰랐다.“유 팀장, 오늘 자네가 준비한 자리에서 진짜 마음 놓고 놀아도 돼?”“다들 정신적으로 초긴장 상태라서 자극이 필요하거든.”“노는 건 문제 없지만, 절대 사고를 치면 안 돼. 자네도
“왔어요!”이때 유문석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곧이어 뒷짐을 쥐고 프라이빗 클럽 입구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여유롭게 걸어 들어오는 김예훈이 나타났다.그가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겨왔다.다만 그런 느낌은 금세 사라졌고, 현장에 있던 소위 임원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의혹을 감추지 못했다.“유문석, 네가 말한 못난 놈이 쟤야?”그중 한 사람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눈앞의 남자는 어딘가 눈에 익었지만, 정확히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사실 그저 평범한 직원에 불과한 이들은 김예훈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 적이 없기 마련이다.다만 당시 여러 행사장에서 아무리 직원이라고 해도 멀리서나마 김예훈을 봤을지도 모르기에 낯익은 느낌이 들 수 있었다.물론 어디까지나 느낌에 불과했다.“맞아요! 이따가 여러분에게 맡길게요.”유문석이 미소를 지었다.이내 김예훈한테 가까이 다가가 입을 열었다.“자자, 여러분, 이 사람을 소개해 드리자면 이름은 김예훈이고, 정 씨 일가의 데릴사위이자 정민아의 못난 남편이죠. 임원 여러분도 아마 들어본 적 있을 텐데, 앞으로 CY그룹에 좋은 프로젝트거나 업무가 생기면 제 체면 세워주는 셈 치고 추천 좀 부탁드립니다.”비록 유문석은 말을 번지르르하게 했지만, 잘 들어보면 김예훈의 신분을 콕 집어 언급했는데 누가 봐도 김예훈을 데리고 와서 웃음거리로 만들 작정이지, 그를 소개해주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아니나 다를까 순간 클럽에 참석한 모든 임원이 폭소를 터뜨렸다.유문석은 마치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의 미소를 보지 못한 듯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자, 김예훈, 소개해줄게. 이분은 CY그룹 인사팀장 이유정이고, 이분은 CY그룹 주임 장소훈이야. 그리고 이분은...”유문석이 한 명씩 소개하자 소위 임원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만한 표정을 지었는데, 딱 봐도 김예훈에게 그들을 아는 척하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뻔했다.김예훈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들을 훑어보았다.유문
유문석의 말을 들은 임원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곧바로 너나 할 것 없이 배를 끌어안고 폭소를 터뜨렸다. 허풍 떠는 건 봤어도 이렇게 터무니없이 큰소리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이유정이 제일 먼저 말했다.“김세자가 어떤 분인지 알고 있어? 무려 현재 경기도의 원톱이라고, 경기도 1인자마저 김세자 앞에서는 고분고분하기 마련이야. 그런 사람이 어찌 데릴사위가 되겠어? 그리고 이런 곳에는 왜 와? 제발 웃기지 좀 마!”장소훈도 한껏 비아냥거렸다.“우리는 무려 그 당시 Q 그룹이 김씨 가문에 속해 있었을 때부터 근무한 사람들이야. 나중에 김씨 사걸이 경영권을 인계받아서도 여전히 임원 자리에 올랐는데, 아무리 김세자라고 해도 우리를 중요한 자리에 임용하지 않겠어? 우리처럼 식견이 넓고 경력이 풍부한 수준 높은 사람이 고작 너처럼 못난 놈한테 속아 넘어갈 것 같다고 생각해? 요즘은 덜떨어진 놈도 감히 대표인 척하는 건가? 우리 김세자는 너무 얌전해서 탈이야. 공식 석상에서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사진도 공개한 적이 없으니까 이렇게 뻔뻔스럽게 신분을 사칭하는 인간말종이 나타나는 거야! 이런 파렴치한 놈은 머리를 식히게 경찰서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봐!”“괜히 형사님만 힘들게 경찰서에는 왜 집어넣어요? 차라리 정신병원에 처넣어요! 거기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심지어 장소훈은 휴대폰을 꺼내면서 피식 웃었다.“김예훈, 마침 내가 아는 원장님이 있는데, 방 하나 빼달라고 연락해줘? 최대 할인율 적용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다들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김예훈은 오히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은 전부 자기 탓이었다. 인사 업무를 빨리 처리하지 못하고 질질 끌었던 탓에 이런 광대들이 활개 치게 놔두는 꼴이 되지 않았냐는 말이다.이때 이유정이 갑자기 젓가락을 집어 들고 김예훈의 턱을 추켜올리더니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어? 데릴사위라더니, 외모는 나름대로 반반하네? 어쩐지 여자한테 빌붙는다고 했어. 이건
유문석은 손을 뻗어 김예훈의 어깨를 두드리며 피식 웃었다.“쓰레기야, 제대로 이해했니? 간단하게 말해서 너뿐만 아니라 정민아 그리고 정 씨 일가의 운명조차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는 뜻이야.”“맞아! 김예훈, 고분고분 말이나 듣지? 우리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야 해! 아니면 지금 이 순간부터 너랑 정민아는 성남시에 얼씬거리지도 못할 거야.”장소훈의 웃음소리는 거만하고 거침없었다.왜냐하면 정말 오래간만에 재미있는 장난감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다른 사람이라면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가만히 참고 있거나 아예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할 테지만, 김예훈처럼 반항하는 장난감은 극히 드물었기에 다들 끓어오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협박하는 건가?”김예훈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원래 이런 하찮은 인간들은 언제나 관심 밖이었고, 아무리 기회주의자라고 해도 굳이 언쟁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어쨌거나 비슷한 부류의 사람은 차고 넘쳤다.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들이 떼거리로 모여들어 그에게 협박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바보는 많이 봤지만, 이 정도로 멍청한 사람들은 난생처음 본다.“너를 협박하는 게 아니라 사회라는 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여주려고 조언을 해주는 거지. 우리 말 한마디면 정 씨 일가는 풍비박산 당할 것이며, 정민아는 빈털터리 신세에 나앉는다는 걸 알아야 해. 그리고 넌, 빌붙을 상대조차 잃게 된다고!”이유정은 마치 다른 사람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여왕이라도 된 듯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다른 제안은 어때? 기생오라비 짓을 하는 건 불가능해.”김예훈이 무심하게 말했다. 그는 이 사람들이 대체 무슨 수작을 더 부릴 수 있는지 두고 볼 작정이었다.이유정은 천천히 다가가더니 김예훈을 한참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흥미롭군, 배짱은 있네? 기생오라비는 못 하겠다고? 그럼 이건 어때? 만약 우리를 즐겁게만 해준다면 정민아를 봐주는 건 일도 아니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유정은 테이블에서 와인잔을
김예훈의 모습을 본 장소훈이 버럭 화를 냈다.“쓰레기야, 내 말 안 들려? 아니면 사람 말뜻을 이해 못 할 정도로 멍청한 거야?”“주임님, 됐어요. 신발 닦게 하는 게 무슨 대수라고, 차라리 무릎을 꿇고 개 흉내 내는 건 어때요?”이유정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아름다운 겉모습과 달리 입만 열면 살벌한 말뿐이라니!“김예훈, 유 팀장의 체면을 생각해서 네가 무릎 꿇고 개 짖는 소리를 얼추 비슷하게 흉내 낸다면, 앞으로 정민아와 정씨 일가를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어때?”이유정의 말에 다들 눈이 반짝 빛났다. 김예훈에게 신발 닦게 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지 않냐는 말이다.다들 잇달아 휴대폰을 꺼내더니 촬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얼른 무릎 꿇어!”“아랫사람이라면 우리 앞에서 개 흉내 내는 것도 당연할 일이지.”“우리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다만 우리가 눈에 안 차서 그렇지.”“김예훈, 영광인 줄 알아!”김예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정도로 밥맛이라니,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역시나 김병욱 무리가 키워낸 앞잡이답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다만, 김예훈의 표정은 이유정을 비롯한 사람의 눈에 고민하고 망설이는 모습으로 비쳤다.스스로 임원이라고 자처하는 인간들이 박장대소했다.“꿇어! 정민아가 고생하는 꼴 보고 싶어?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잖아. 개 짖는 소리만 흉내 낸다면 앞으로 잘 나가는 우리가 너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게. 김예훈, 현실을 직시하는 게 좋을 거야! 만약 유 팀장이 널 부르지 않았더라면 우리 앞에서 개 흉내 내는 자격도 없었을 테니까.”이유정은 와인병을 집어 들고 김예훈 앞에서 세게 내리치며 버럭댔다.“얼른 꿇으라고! 사람 말 못 알아듣겠어?”이유정은 매우 들뜬 상태였다. 과연 그녀에게 이보다 더 즐거운 상황이 있을까?김예훈이 반항할수록 무참히 발로 짓밟는 순간 짜릿한 느낌은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어쨌거나 임원이라 자칭하는 이들은 스스로 우월한 사람이라고 여겼을 뿐, 사실
후련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은 감탄 어린 눈빛으로 유문석을 바라보았다. 수작이 보통 아닌 게 분명 앞날이 창창할 것이다.이내 그들은 기분 좋게 어깨동무하며 룸을 나섰다.결국 안에는 유문석만 남았고, 도도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에는 거만함이 가득했다.김예훈은 눈앞의 광경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들어 무표정한 얼굴로 유문석을 쳐다보았다.“오늘 밤 한 무리 사람을 데리고 와서 날 모욕하려고 부른 거냐?”유문석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 널 모욕하면 뭐해? 단지 실제 행동으로 네가 고작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뿐이야. 정민아는 너한테 과분한 여자야! 너의 존재 자체는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지. 그래서 너한테 기회를 주려고 해. 내일 정민아와 이혼하고 성남시를 떠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유문석은 말을 이어가다 은행 카드 한 장을 꺼내 김예훈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여기 2억 있어. 그나마 친척이라서 베푸는 마지막 자비야.”“내가 싫다면?”김예훈이 무덤덤하게 말했다.“싫다고?”유문석이 실소를 금치 못했다.“아까 그분들 봤지? 비록 지금은 CY그룹 임원이 아니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3일 뒤에 CY그룹 임원으로 임명받을 거야. 그리고 CY그룹은 김씨 가문 산하의 자산을 통합하고 나면 경기도를 통틀어 가장 막강한 회사가 될 거야. 간신히 경쟁할 수 있는 몇몇 일류 가문 동맹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CY그룹에 복종할 일밖에 더 있겠어? 나중이면 아까 그분들의 신분이 가히 짐작이 가지 않아? 심지어 나를 훨씬 뛰어넘는다고! 네가 기꺼이 장난감이나 노예가 되지 않은 이상 CY그룹 임원의 눈 밖에 나서 과연 좋은 결말이 있을 거로 생각해? 너뿐만 아니라 정민아까지 망하게 하고 싶어? 스스로 상관없다 쳐도 정민아를 위해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김예훈이 쌀쌀맞게 말했다.“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보는데? 저 사람들은 곧 사는 게 죽기보다 못
“총사령관님, 진짜 빌어먹을 놈들이네요!”그 사람은 바로 송준이었고, 프라이빗 클럽도 송준의 소유였다. 따라서 자초지종을 알고 있었지만, 김예훈의 명령 없이는 함부로 끼어들지 못했다.“괜찮아. 오늘 밤에 성남시로 돌아가 하은혜한테 찾아가. 회사 구조 조정에 대해 문자로 정리해서 보내줄 테니까 너도 도와서 처리해.”김예훈이 무심하게 말했다.어떤 일은 아직 처리할 계획이 없었는지라 그룹사 인수합병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늘 밤 일 때문에 박차를 가하기로 마음먹었다.“네!”송준은 감히 명령을 거스르지 못했다. 왜냐하면 김예훈은 항상 두말하지 않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실행에 옮기는 것뿐이다....김예훈이 굴욕을 당하는 동안 성남시 정 씨 일가는 불이 훤히 켜져 있었고, 집안에 사람들로 북적거렸다.성남시 이류 또는 삼류 가문, 그리고 기업 고위 임원들이 대거 참석했는데, 다른 이유는 없었다.왜냐하면 오늘 성남시 상류층에 한 가지 소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바로 CY그룹의 김세자가 인수합병 행사장에서 공개 프러포즈한다는 것이다.심지어 상대방은 정씨 일가 출신이었다!김세자는 경기도를 통틀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압도적인 권력은 물론 자산은 가히 짐작이 안 갔다.어떻게 보면 진정한 경기도의 원톱이라고 할 수 있다.무려 김세자와 결혼하는 여자가 정 씨 일가의 자제라니?이것이야말로 용이 될 운명이지 않냐는 말이다.어떻게든 잘 보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러움과 질투를 감추지 못했다.만약 자기 집 자제가 김세자와 결혼할 수만 있다면 신분 상승의 바람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텐데!쇠로 만든 왕좌에 앉은 정동철은 아래에 서 있는 사람을 내려다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가을아, 앞으로 우리 집은 성남시에서 자리를 잡은 셈이야. 3일 뒤, 네가 김세자와 결혼하면 정 씨 일가가 일류 가문이 될 날이 멀지 않았어! 지금은 우리한테 잘 보이려고 찾아온 사람이 고작 이류 또는 삼류 가문에 불과하지만, 나중에 김세자와 결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