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성격상 이아영이 말을 내뱉은 이상 무조건 실현하게 할 것이다.하지만 정민아가 넘어가자고 했으니 이쯤에서 관두기로 했다. 어차피 별일도 아니니까.“쇼핑 그만하고 돌아갈래요!”이아영은 굳은 얼굴로 김예훈과 정민아를 쳐다보지도 않더니 화를 꾹꾹 눌러 담고 홱 돌아서서 걸어갔다.장미순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정민아, 네 남편은 어쩌면 예의가 일도 없니? 앞으로도 우리랑 친척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하루빨리 이혼해!”그녀도 말을 마치자 자리를 떠났다. 유문석은 한 마디 거들고 싶었지만, 태연하기 그지없는 김예훈을 보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오늘 김예훈이 보여준 다양한 모습에서 유추해보면 그가 결코 보통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지는 유문석 자신조차 가늠이 안 갔다.따라서 김예훈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한, 유문석은 그를 더욱 심기불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곧이어 유문석도 무리를 따라갔다.세 사람이 떠나고 나서 정민아는 허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대답해. 대체 어디서 돈이 났는데 이렇게 많은 물건을 사는 거야? 제발 빌렸다는 소리는 하지 마.”김예훈은 사흘 뒤 인수합병 행사에서 정민아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예정이었다.따라서 지금 굳이 먼저 공개할 필요는 없는지라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겼다.“지난번 골동품 가게에서 소현이 억울한 일을 당한 적이 있었잖아. 아직도 기억해?”“응,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정민아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정군과 임은숙도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도 이 사건을 알고 있었지만,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당최 이해가 안 갔다.“그때 상대방에 돈으로 배상해줬는데 며칠 전에 마침 내 계좌로 이체했거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무심하게 말했다. 완벽에 가까운 핑계라고 생각한 그는 정민아의 의심을 사지 않을 거로 확신했다.“뭐라고?! 소현한테 배상한 돈이라고? 무려 20억인데?”그의 말에 임은숙은 기절할 뻔했다.20억 배상금으로 가방 사는 데 다 썼다니? 그것도
“그럼 어떡해?”정군이 눈살을 찌푸렸다.“뭘 어떡해? 당연히 계획대로 진행해야지.”장미순은 쌀쌀맞은 얼굴로 말했다.“문석아, 그분은 초대했어? 오늘 저녁의 주인공은 너니까 잘 좀 해야지.”이아영도 입을 열었다.유문석은 원래 김예훈을 나름대로 견제했는데, 임은숙의 입을 통해 김예훈이 돈을 어디서 얻었는지 확인하는 순간 속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본인처럼 유능한 사람이 고작 데릴사위 따위한테 겁을 먹었다는 자체가 낯뜨거울 지경이었다.이에 유문석은 싸늘한 말투로 대답했다.“어머님, 아영아, 걱정하지 마. 다음은 나한테 맡겨! 허세 부리는 게 그렇게 좋다면 고급스러운 장소를 제대로 체험하게 해주지. 손님은 이미 초대했고, 준비도 완료했어. 내가 장담컨대 오늘 이후로 김예훈은 다시는 우리 앞에 얼굴 비출 일이 없을 거야!”이아영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아직 부족해! 바닥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게 할 테니까, 나중에 꼭 동영상 찍어줘.”...오늘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두 가족은 결국 저녁도 따로 먹기로 했다.김예훈은 어차피 상관없는지라 정민아를 데리고 반월만 호텔 1층 레스토랑으로 향했다.늦게 찾아간 탓에 룸은 전부 나갔고, 홀 자리만 남아 있었다.하지만 결혼한 지 꽤 된 김예훈과 정민아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둘은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하고 기분 좋게 식사를 이어갔다.김예훈도 오랜만에 정민아와 즐겁게 지내는 것 같다는 생각에 유난히 기분이 좋았다.특히 성남시에 온 이후로 둘만의 시간이 더 적어졌기에 그는 모처럼 얻은 기회를 소중히 여겼다.“누나, 웬일이야?”이때,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슈트 차림의 두 남자가 걸어왔다. 그중 한 사람은 누가 봐도 유문석이었다.유문석의 얼굴에는 어렴풋이 득의양양한 표정이 떠올랐고, 이내 정민아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자자, 누나한테 소개해줄게. 이분은 성남시 나씨 가문의 직계 친척 나영수야. 현재는 협력 사업 때문에 나랑 논의 중이셔.”유문석 옆에 서 있는
한편 정민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지점장님 맞으시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한데 우리 회사는 당분간 자금 문제는 없을 거예요. 나중에라도 필요하다면 당연히 찾아가지 않을까요?”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민아는 나영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나영수의 탐욕스러운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연히 눈치챘다.반면, 유문석이 이런 사람을 데리고 자신한테 소개해줬다는 사실 자체가 김예훈과 그녀의 사이를 훼방 놓으려는 게 너무 티가 나서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유문석은 정민아가 심기 불편하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듯 미소를 지었다.“누나, 지점장님은 나이도 젊으신데 능력까지 뛰어나서 엄청 잘 나가. 성남시에 지점장님을 만나고 싶어도 기회조차 없는 부잣집 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오늘 지점장님과 만난 걸 영광인 줄 알아. 아니면 내 체면을 세워주는 셈 치고 우리 테이블에 와서 한잔할래?”정민아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지금 남편이랑 밥 먹고 있는 게 안 보여?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두 분, 별일 없으면 이만 자리를 피해주시죠?”정민아의 말뜻은 누가 들어도 두 사람한테 돌아가라는 것이었다.유문석은 안색이 살짝 어두워지더니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정민아, 그렇다면 내 체면을 봐주지 않겠다는 뜻인가?”나영수가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끼어들었다.“유 팀장, 굳이 나랑 알고 지내지 않아도 괜찮다는데 그냥 내버려 둬. 다만, 우리의 협력도 여기까지가 끝이야.”“아닙니다! 제가 꼭 잘 설득해보겠습니다.”유문석은 일그러진 얼굴로 대답했다.그러고 나서 빠른 걸음으로 정민아 곁으로 다가가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오늘 누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점장님 눈에 든 이상 무조건 같이 한잔해야 해! 만약 내가 추진하는 협력 건이 물 건너간다면 너도 CY그룹에서 바람 잘 날 없을 거야!”이때, 옆에 있던 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유문석, 고작 CY그룹의 팀장에 불과한 너 같은 사람은 회사에 있으나 마나 해. 게다가 내일이면 해고당할
그의 말에 유문석은 냉소를 짓더니 더 이상 김예훈 같은 사람과 말 섞기 싫은 듯 무시해버렸다.이내 진지한 얼굴로 정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누나,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줄 테니까 잘 들어. 누나 남편은 평생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할 운명이야! 만약 내가 누나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집에서 쫓아낼 테니까. 그래야만 누나도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겠어? 난 누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고, 다른 사람은 누나의 불행을 재미로 삼을 뿐이지!”유문석은 마치 정민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처럼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옆에 있던 나영수도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정민아 씨가 얼마나 훌륭한 여자인데요. 성공한 사업가에 젊고 예쁘기까지, 저런 남자가 어찌 가당키나 하겠어요? 인생의 반쪽으로 진짜로 괜찮은 남자를 선택해야죠. 자기 여자를 돌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업에도 도움이 되는 그런 남자 말입니다.”말을 마친 나영수는 가슴을 살짝 폈다. 사실 그의 말뜻은 간단했고, 즉 진짜로 괜찮은 남자는 본인이라는 것이다.이는 오늘 저녁의 만남은 두 사람이 사전 계획하에 이뤄졌고,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다.정민아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외부인이 제 사적인 일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게다가 전 김예훈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기분 좋게 밥 먹고 있는데, 이제 그만 방해해주시죠?”유문석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누나, 정신 차려! 저런 사람이 괜찮다고? 오늘 저녁 밥값만 해도 못 낼 것 같은데? 여기서 한 끼 사 먹는데 얼마 드는지 알아? 적어도 400만이라고! 오후에 소현한테 준 배상금을 펑펑 쓰면서 허세 부렸다고 해서 진짜 돈 있는 줄 알아? 잘 들어, 거지는 어디까지나 거지야. 빈털터리가 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우리가 뭘 먹고 계산을 어떻게 하든지 너랑 무슨 상관인데?”정민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제 그만 자리를 피해줄래?”유문석은 안색이 살짝 변했고, 나영수의 얼굴은 저절로 일그러졌다.김예훈은 시종일관 무심
“무슨 일이래?”정민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문석은 왜 갑자기 김예훈을 초대한단 말이지?“나한테 CY그룹 사람을 접할 기회라고 파티에 같이 가자고 하던데? 일단 가 볼게. 어쩌면 앞으로 네 사업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김예훈이 무심하게 말했다.“그럼 갔다가 일찍이 와.”정민아는 걱정이 들긴 했지만 김예훈이 사람을 만나고 인맥을 넓히고 싶다고 한 이상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30분 뒤, 반월만의 해변에 있는 프라이빗 클럽에 CY그룹 임원 십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그들 중 대부분은 원래 김씨 가문에 소속된 그룹사의 팀장이었다.당시 김예훈이 Q그룹을 설립했을 때, 이들은 그 그룹사에 취직하고 있었다.나중에 김씨 가문이 내분을 일으킨 바람에 김예훈의 충신들은 그룹사를 떠나거나 뿔뿔이 흩어졌다.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버티다가 제일 먼저 김병욱을 포함한 사람한테 빌붙었다. 게다가 본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나 데이터를 잽싸게 그들에게 바쳤다.따라서 김병욱을 포함한 사람들은 김예훈이 두 손으로 일군 Q 그룹을 아주 순조롭게 이어받았다.반면, 김예훈이 김씨 가문의 자산을 다시 회수한 이후로 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CY그룹에 기생했다.심지어 하은혜를 찾아가서 무릎 꿇고 애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는데, 물론 목적은 그동안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함이었다.한 마디로 이 사람들은 기회주의자였다.김예훈이 아직 임명하지 않은 탓에 이들이 담당했던 직위는 공석인 상태였다.하지만 이로 인해 그들은 3일 뒤에도 임원 자리가 다시 본인들에게 넘어올 거라는 커다란 착각에 빠졌다.김씨 가문과 김세자가 피 터지게 싸워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실속 차리는 사람들은 본인일 테니까!물론 이들은 당시 김예훈의 심복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그의 정체를 몰랐다.“유 팀장, 오늘 자네가 준비한 자리에서 진짜 마음 놓고 놀아도 돼?”“다들 정신적으로 초긴장 상태라서 자극이 필요하거든.”“노는 건 문제 없지만, 절대 사고를 치면 안 돼. 자네도
“왔어요!”이때 유문석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곧이어 뒷짐을 쥐고 프라이빗 클럽 입구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여유롭게 걸어 들어오는 김예훈이 나타났다.그가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겨왔다.다만 그런 느낌은 금세 사라졌고, 현장에 있던 소위 임원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의혹을 감추지 못했다.“유문석, 네가 말한 못난 놈이 쟤야?”그중 한 사람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눈앞의 남자는 어딘가 눈에 익었지만, 정확히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사실 그저 평범한 직원에 불과한 이들은 김예훈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 적이 없기 마련이다.다만 당시 여러 행사장에서 아무리 직원이라고 해도 멀리서나마 김예훈을 봤을지도 모르기에 낯익은 느낌이 들 수 있었다.물론 어디까지나 느낌에 불과했다.“맞아요! 이따가 여러분에게 맡길게요.”유문석이 미소를 지었다.이내 김예훈한테 가까이 다가가 입을 열었다.“자자, 여러분, 이 사람을 소개해 드리자면 이름은 김예훈이고, 정 씨 일가의 데릴사위이자 정민아의 못난 남편이죠. 임원 여러분도 아마 들어본 적 있을 텐데, 앞으로 CY그룹에 좋은 프로젝트거나 업무가 생기면 제 체면 세워주는 셈 치고 추천 좀 부탁드립니다.”비록 유문석은 말을 번지르르하게 했지만, 잘 들어보면 김예훈의 신분을 콕 집어 언급했는데 누가 봐도 김예훈을 데리고 와서 웃음거리로 만들 작정이지, 그를 소개해주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아니나 다를까 순간 클럽에 참석한 모든 임원이 폭소를 터뜨렸다.유문석은 마치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의 미소를 보지 못한 듯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자, 김예훈, 소개해줄게. 이분은 CY그룹 인사팀장 이유정이고, 이분은 CY그룹 주임 장소훈이야. 그리고 이분은...”유문석이 한 명씩 소개하자 소위 임원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거만한 표정을 지었는데, 딱 봐도 김예훈에게 그들을 아는 척하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뻔했다.김예훈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들을 훑어보았다.유문
유문석의 말을 들은 임원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곧바로 너나 할 것 없이 배를 끌어안고 폭소를 터뜨렸다. 허풍 떠는 건 봤어도 이렇게 터무니없이 큰소리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이유정이 제일 먼저 말했다.“김세자가 어떤 분인지 알고 있어? 무려 현재 경기도의 원톱이라고, 경기도 1인자마저 김세자 앞에서는 고분고분하기 마련이야. 그런 사람이 어찌 데릴사위가 되겠어? 그리고 이런 곳에는 왜 와? 제발 웃기지 좀 마!”장소훈도 한껏 비아냥거렸다.“우리는 무려 그 당시 Q 그룹이 김씨 가문에 속해 있었을 때부터 근무한 사람들이야. 나중에 김씨 사걸이 경영권을 인계받아서도 여전히 임원 자리에 올랐는데, 아무리 김세자라고 해도 우리를 중요한 자리에 임용하지 않겠어? 우리처럼 식견이 넓고 경력이 풍부한 수준 높은 사람이 고작 너처럼 못난 놈한테 속아 넘어갈 것 같다고 생각해? 요즘은 덜떨어진 놈도 감히 대표인 척하는 건가? 우리 김세자는 너무 얌전해서 탈이야. 공식 석상에서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사진도 공개한 적이 없으니까 이렇게 뻔뻔스럽게 신분을 사칭하는 인간말종이 나타나는 거야! 이런 파렴치한 놈은 머리를 식히게 경찰서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봐!”“괜히 형사님만 힘들게 경찰서에는 왜 집어넣어요? 차라리 정신병원에 처넣어요! 거기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심지어 장소훈은 휴대폰을 꺼내면서 피식 웃었다.“김예훈, 마침 내가 아는 원장님이 있는데, 방 하나 빼달라고 연락해줘? 최대 할인율 적용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다들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김예훈은 오히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은 전부 자기 탓이었다. 인사 업무를 빨리 처리하지 못하고 질질 끌었던 탓에 이런 광대들이 활개 치게 놔두는 꼴이 되지 않았냐는 말이다.이때 이유정이 갑자기 젓가락을 집어 들고 김예훈의 턱을 추켜올리더니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어? 데릴사위라더니, 외모는 나름대로 반반하네? 어쩐지 여자한테 빌붙는다고 했어. 이건
유문석은 손을 뻗어 김예훈의 어깨를 두드리며 피식 웃었다.“쓰레기야, 제대로 이해했니? 간단하게 말해서 너뿐만 아니라 정민아 그리고 정 씨 일가의 운명조차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는 뜻이야.”“맞아! 김예훈, 고분고분 말이나 듣지? 우리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야 해! 아니면 지금 이 순간부터 너랑 정민아는 성남시에 얼씬거리지도 못할 거야.”장소훈의 웃음소리는 거만하고 거침없었다.왜냐하면 정말 오래간만에 재미있는 장난감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다른 사람이라면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가만히 참고 있거나 아예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할 테지만, 김예훈처럼 반항하는 장난감은 극히 드물었기에 다들 끓어오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지금 협박하는 건가?”김예훈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원래 이런 하찮은 인간들은 언제나 관심 밖이었고, 아무리 기회주의자라고 해도 굳이 언쟁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어쨌거나 비슷한 부류의 사람은 차고 넘쳤다.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들이 떼거리로 모여들어 그에게 협박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바보는 많이 봤지만, 이 정도로 멍청한 사람들은 난생처음 본다.“너를 협박하는 게 아니라 사회라는 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여주려고 조언을 해주는 거지. 우리 말 한마디면 정 씨 일가는 풍비박산 당할 것이며, 정민아는 빈털터리 신세에 나앉는다는 걸 알아야 해. 그리고 넌, 빌붙을 상대조차 잃게 된다고!”이유정은 마치 다른 사람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여왕이라도 된 듯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다른 제안은 어때? 기생오라비 짓을 하는 건 불가능해.”김예훈이 무심하게 말했다. 그는 이 사람들이 대체 무슨 수작을 더 부릴 수 있는지 두고 볼 작정이었다.이유정은 천천히 다가가더니 김예훈을 한참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흥미롭군, 배짱은 있네? 기생오라비는 못 하겠다고? 그럼 이건 어때? 만약 우리를 즐겁게만 해준다면 정민아를 봐주는 건 일도 아니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유정은 테이블에서 와인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