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가든, 김예훈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내일 반월만에 들를 거야.”“총사령관님, 영광입니다! 제가 마중하러 나갈까요?”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김예훈은 바로 거절했다.“아니야. 도착하면 전화할게.”“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송준이었다. 과거 당도 부대 경호팀의 일원이었지만 지금은 제대한 지 1년이 넘었다. 송준은 반월만에서 알아주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반월만에 갈 때마다 그한테 연락하는 게 먼저였다.다음날 이른 아침, 김예훈은 하은혜한테 콜택시를 부탁하지 않고 정민아의 차에 타 바로 반월만으로 향했다. 반월만은 성남의 항만으로 유람객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임은숙의 사촌 동생이 귀국한 후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반월만 호텔에 도착한 후 이들은 드디어 만났다.정민아의 사촌 이모의 이름은 장미순이었다. 비록 나이가 반백 살에 가까웠지만 패션이 젊은 사람에 못지않았다.그녀는 정민아를 보자마자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민아야, 진짜 오랜만이야! 부모님은 어디 계셔? 같이 오지 않았어?”“네, 잠시 볼일이 있어서 이틀 후에 올 거예요.”장미순은 미소를 지은 채 정민아를 보고 있었다.“볼일이 있는 게 아니라 부끄러워서 안 온 거 아니야? 뭐, 그럴 수도 있지. 우리 사위 유문석이 해외에서 박사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후 대기업 팀장 자리까지 올랐잖아. 네 남편보다 훨씬 낫지. 우리 사위랑 자기 사위랑 비교될까 봐 창피해서 못 온 거 아니야? 부모님한테 전화 드려, 절대 비교하지 않을 테니까 마음 놓고 와도 된다고.”비록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득의양양했다.정민아는 순식간에 기분이 상했지만 미소를 잃지 않았다.“이모, 전 제 부모 대신 마중하러 온 거지, 이모한테 비웃음당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이에 장미순이 가볍게 웃었다.“말 그렇게 하지 마. 난 그냥 솔직한 거지, 나쁜 사람은 아니야. 다 널 위해서 하는 말 아니냐. 자, 자, 여긴 네 사촌 동생 이아영,
“어?”유문석은 당황했다.이때, 장미순은 유문석의 표정을 보고 얼른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내가 제대로 소개해줄게. 유문석은 지금 경기도 CY그룹 팀장이야. CY그룹 알지? 전설의 김세자가 세운 회사잖아. 회사가 우리 사위의 재능을 알아보고 거금을 들여 귀국시켰잖아. 앞으로 회사에 어떤 공헌을 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라나 뭐라나. 앞으로 우리도 성남에 눌러앉을 계획이니까 자주 보자.”유문석은 장미순의 말을 들으며 겸손하게 미소를 지었다.“민아 씨, CY그룹 자회사에서 일한다면서요? 그럼 저희랑 가족이나 다름없으니까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세요.”정민아도 웃으며 답했다.“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 제가 CY그룹 고위 인사들이랑 다 아는 사이거든요. 예전에 하은혜 비서가 절 보러 직접 찾아왔는걸요.”유문석의 어깨가 으쓱했다.그러나 김예훈은 그의 말을 듣고 ‘풉’하고 웃었다.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쁜 하은혜가 회사 팀장 마중을 나간다고?“왜 웃어요?”유문석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회장님 비서인 하은혜와 한번 만나는 건 CY그룹 모든 직원의 꿈이었다.“아닙니다, 계속하세요.”김예훈이 손을 내저었다.“절 비웃은 거예요? 데릴사위인 당신보다 CY그룹에서 일하는 제가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유문석은 아까부터 김예훈이 아니꼬웠다.김예훈이 얼른 사과했다.“맞아요. 아주 큰 영광이고 가문을 빛내는 일이죠.”유문석의 표정이 더욱 보기 안 좋았다. 그는 김예훈이 일부러 조롱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언니, 이 사람 뭐야?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질투심만 가득하네. 도대체 어디가 좋아서 이런 사람한테 시집간 거야?”이아영은 불쾌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여보, 신경 쓰지 마. CY그룹에 오자마자 하은혜 비서의 대접을 받았잖아. 곧 있으면 김세자의 눈에 들어 그분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유문석은 김예훈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사실 그는 회사에 온 첫날 멀리에서 하은혜를 봤을 뿐이었다. 그는 김예훈이 CY그룹
“어떻게 설명하지?”유문석의 표정이 진지했다.“김세자가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빛줄기가 마침 그의 몸을 비추고 있었어. 신처럼 보였었지. 명불허전이란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어. 게다가 세상에 단 한 대밖에 없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오셨어. 다이아몬드가 가득 박힌 차가 김세자랑 아주 잘 어울렸어. 그리고 보디가드 때문에 그분 근처는 얼씬도 할 수 없어!”“풉!”김예훈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유문석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또 웃어? 날 비웃는 거야? 아니면 김세자를 비웃는 거야?”모두들 눈살을 찌푸렸다. 경기도에서, 특히 성남에서 김세자를 모르면 간첩이나 다름없었다.그러니 다른 사람들 눈에 김예훈은 미친놈과 마찬가지였다.김예훈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거짓말하는 건 괜찮지만 제 아내를 오해하게 하면 안 되죠. 제가 팩트를 얘기할게요.”“팩트? 네가 뭔데?”유문석은 어이가 없었다.“첫 번째, 김세자는 보디가드를 고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죠. 차도 가장 저렴한 걸 타고 다니고요. 둘째, 김씨 가문 사람들은 렉서스만 타고 다니는 거 몰라요? 그게 김씨 가문의 철칙인데? 김세자 역시 김씨 가문 사람이었으니까 렉서스를 타고 다니죠.”그의 말에 사람들은 눈길만 주고받았다. 일리가 있었지만 믿어야 할지 몰랐다.유독 정민아만이 그를 믿었다. 남편이 하은혜와 친하니 김세자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유문석이 말한 김세자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았다.그러나 유문석은 김예훈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민아야, 네 남편은 어디서 버르장머리를 배운 거야? 감히 내 사위를 지적해? 우리 사위는 CY그룹의 팀장이야! 그런 사람이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어?”장미순이 앞으로 나서서 사위를 도와줬다.이아영 역시 남편 편이었다.“언니, 언니 남편 허언증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 오늘 보니까 그게 거짓말이 아니었네. 언니 남편이 김세자랑 어떻게 아는 사이겠어?”가족들의 지지에 유문석은 바로 자신감을 되찾았다.“넌
이에 모든 사람의 눈길이 그한테로 향했다.이아영은 피식 웃었다.“언니, 언니 남편 진짜 제정신이야?”장미순도 어이가 없었다.“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예전에 자기를 당도 부대 총사령관이라고 칭했다며? 이번에는 김세자야?”정민아는 김예훈을 노려보며 말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당신 같이 오는 게 아니었어. 사람들 앞에서 쪽팔리게 이게 뭐야?”김예훈은 어안이 벙벙했다.‘내가 프러포즈를 한다고? 누가 퍼뜨린 소식이지?’유문석은 김예훈을 얕잡아봤다.“김세자가 프러포즈할 거라고 확실히 들었습니다. 증거도 있는걸요. 이 때문에 CY그룹 내부에 라인이 생기기 시작했어요.”“그럼 김세자의 프러포즈를 받을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누군가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정민아도 궁금했다. 정씨 가문과 김씨 가문은 오랫동안 연락을 이어왔지만 그녀는 지금까지 김세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김세자의 프러포즈 상대도 궁금했다.유문석은 주위를 쓱 훑어보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모두 아시는 분일 거예요. 정씨 가문의 딸이라고 하던데...예전에 김세자가 정씨 가문에 예물을 보냈다고 했어요. 하지만 당시 김씨 가문이 합병되지 않아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못 했다고 했죠.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제대로 프러포즈를 할 거랍니다!”“정씨 가문이요?”정민아는 입이 떡 벌어졌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런 일이 있었던 듯싶었다.“설마 소현이?”정민아는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동생은 아직 학생이었다.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 예전에 예물을 보낸 건 김씨 가문이 그를 테스트하기 위해서였다.그는 곧바로 이곳을 벗어나 사람이 없는 곳으로 향한 후 하은혜한테 전화했다.“내가 프러포즈한다고 소문이 났던데, 어떻게 된 거야?”김예훈의 말투가 냉랭해졌다.“대표님, 제가 지금 보고드리려 했어요. 왜 그렇게 소문이 났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금 소문을 추적하고 있고 아직 누가 그랬는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누가 이 소문을 퍼뜨렸든 목적은 간
같은 시각, 정씨 가문의 어르신이 왕좌에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진짜 하늘이 돕는구나! 우리한테도 이런 날이 있다니!”이에 정씨 가족들이 모두 모여들었다.“할아버지,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는 거예요?”정지용의 표정이 기대에 가득 찼다.정동철은 바로 소식을 가족한테 보여줬다. CY그룹의 김세자가 3일 후에 정씨 가문의 여인한테 프러포즈한다는 소식이었다.이 소식에 정지용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할아버지, 이 정씨 가문이 우리를 가리키는 거죠?”“그래! 지금 우리가 사는 별장도 김씨 가문이 예물로 준 거잖아! 그러니까 이걸 준 사람이 바로 김세자라고! 이렇게 김세자랑 다시 인연이 닿게 될 줄 몰랐어!”정지용은 목소리가 떨렸다.“할아버지, 김세자가 프러포즈 대상이 누군지 말하지 않았어요?”그는 그 여자가 정소현 혹은 정민아가 아니길 바랐다.정동철의 표정이 진지해졌다.“곧 답이 있을 거야.”이윽고 누군가가 정동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통화를 마친 정동철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김세자가 말한 여자가 23살이래!”“뭐요? 23살이요?”정씨 가문에 23살인 여성은 정민아와 정가을밖에 없었다. 정민아는 이미 데릴사위와 결혼한 몸이었지만 김세자가 그녀를 좋아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만약 정민아를 배제한다면 남은 사람은 정가을밖에 없다! 정가을은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얼굴이 빨개졌다.“예전에 김씨 가문의 예물이 정민아를 위한 거라고 했는데 이제 누굴 위한 건지 알겠네요. 민아가 여기 없는 게 아쉽네요.”정민아가 함께 있었다면 제대로 비웃었을 것이다.가족들은 정가을한테 갑자기 잘해주기 시작했다.“가을아, 이제 네가 우리 가문의 미래고 희망이야.”“그래, 나중에 우리 잊으면 안 돼.”정가을이 웃으며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어딜 가든 우리 가족은 잊지 않을 겁니다. 지용 오빠, 행사가 끝나면 우리 가문 회사 대표도 바꿀 거예요. 정민아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요.”정지용은 그녀의 뜻을 바로 알아챘다.“가을아, 좋
반월만, 김예훈이 통화를 마치고 돌아올 때 정민아는 이미 체크인 수속을 끝냈다.김예훈은 그녀를 지그시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3일 후에 있을 일은 비밀로 해야 했다....호텔 방으로 돌아온 장미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아영아, 문석아. 예전에 은숙 언니가 이 임무를 줬을 때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저 사람 진짜 병신인 것 같아. 민아가 행복하려면 저 아이 남편을 집에서 쫓아내야 해. 문석아, 계획대로 움직여. 저놈이 이성을 잃게 만들어 선 넘는 행동을 해야 해.”유문석이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장모님. 이건 임씨 큰어르신이 직접 준 임무니까 어떻게든 완성할 거예요. 이 기회에 임씨 가문에 제대로 눈도장을 찍어야죠. 민아 씨는 뭐가 좋아서 저런 놈한테 시집갔는지 모르겠네요.”그의 말투에 어쩐지 질투가 섞여 있는 듯했다. 슈퍼스타에 버금가는 미모와 모델 같은 몸매를 지닌 정민아가 왜 김예훈 같은 놈한테 시집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이아영도 한마디 거들었다.“그래도 그놈 덕분에 오늘 마음껏 뽐냈잖아.”장미순이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문석아, 이 일이 순조롭게 끝나면 임씨 큰어르신이 널 중히 여길 거야. 여생을 네 덕분에 편하게 살 수 있게 됐어.”“장모님, 앞으로 저희 유씨 가문도 큰 가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이건 유문석의 야심이었다. 비록 지금 임씨 가문의 힘을 빌려 김세자를 위해 일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기회만 있다면 유씨 가문이 궐기할 거라 믿고 있었다.“우리 사위 같은 아들 하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장미순이 기쁘게 웃으며 말했다. 내일 임은숙 부부가 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가 되었다. 비록 이번 임무의 목표는 김예훈을 쫓아내는 것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그녀와 앞을 다투던 사촌 언니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싶었다....다음날 이른 아침, 롤스로이스 한 대가 반월만 호텔 앞에 멈춰 섰다.송씨 가문의 차였다. 송씨 가문은 기껏해야 2류 가문이
“도대체 누구지? 누구길래 송준이 직접 데리고 온 거지?”“어머, 엄청 젊어 보여. 20대인 것 같은데?”“성남의 귀인인가 봐, 진짜 대단한 인물일 거야!”...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호텔 입구라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핸드폰을 들고 촬영하기 시작했다....송준은 고개를 숙인 채 흥분의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살아있는 전설이 자기 차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었다. 운전기사도 긴장감에 사색이 되었다. 반월만에 온 손님들은 송준을 만나지 못해 안달이 났지만 송준은 이 사람 앞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운전기사는 젊은이의 신분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총...”송준이 말하려고 할 때 김예훈이 마른기침을 했다.“도련님!”송준은 눈치가 아주 빨랐다.“1년 만에 이렇게 다시 연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련님의 전화를 받은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이젠 롤스로이스도 타고, 출세했네.”김예훈이 웃으며 말했다.송준은 차 내부의 창문을 열고 헤헤 웃으며 말했다.“이게 모든 도련님 덕분입니다. 도련님이 아니었다면 지금 아마 뒹굴뒹굴 놀고 있는 놈팽이에 불과했을 겁니다. 도련님께서 저의 운명을 바꾸셨습니다.”“난 그냥 힘을 실어준 거야. 나중에 성공을 얻는지 마는지는 자기 자신한테 달렸지. 네가 출세한 모습을 보니까 나도 기뻐.”김예훈이 미소를 지었다.당시의 당도 부대는 금수저들이 놀고먹는 곳이었지만 김예훈이 총사령관이 된 이후로 금수저들은 참혹한 훈련을 받게 되었다. 덕분에 그들은 부대의 엘리트가 되었거나 전역한 후 사회의 엘리트가 되었다. 그러니 김예훈은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모두 도련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도련님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죠.”송준은 겸손하기까지 했다.“좋아. 요즘 성남에서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어. 박인철이랑 오정범이 날 대신 그 일을 책임지고 있어. 만약 반월만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너도 성남으로 넘어와.”김예훈은 송준의 실력을 믿고 있었다. 마침 주변에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터라 그
호텔 로비에 장미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두 가족이 이곳에서 저녁을 같이 먹게 된다.심심한 유문석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때, 핸드폰에 뜬 뉴스를 본 그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오늘 빅 뉴스를 놓쳤네요! 반월만의 송준이 이 호텔 앞까지 왔었네요. 이 호텔에 대단한 인물이 머물고 있었나 봐요. 그 사람과 만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송준이 직접 누군가를 데리러 왔다는 소식에 장미순과 이아영도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은 유문석 옆에 다가와 뉴스를 자세히 읽었다.“이게 바로 그 전설 속의 인물인가 봐요. 송준이 직접 문을 열어줬잖아요.”유문석이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거예요?”이때, 정군 가족이 마침 도착했다.장미순은 그들을 보자마자 뭔가가 번뜩 떠올랐다.“언니, 왔어? 소식 들었어? 송준이 여기 호텔로 왔대? 우리 문석이가 송준이랑 몇 번 만났거든. 아주 친한 사이래.”이에 유문석은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그의 직위로 송준 같은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정군 가족은 송준이 누군지를 몰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하여 유문석도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짓고만 있었다. 정군은 핸드폰을 받은 후 사진을 확대하며 자세히 살펴봤다. 정민아도 옆에서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송준한테 관심이 없었다. 단지 옆에 있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갸우뚱거렸다. 김예훈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진 속 인물이 차에 오른 시간이 김예훈이 외출한 시간과 비슷했다.넋이 나간 정민아의 표정에 장미순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송준이 성격이 아주 좋더라고. 우리한테 밥 한 끼 대접했지 뭐야. 기회가 있으면 자리 한 번 마련해볼게.”이에 침착함을 유지하던 유문석의 표정이 굳었다.“어머님,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송 대표님은 아주 바쁜 사람이에요!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요!”장미순을 그를 흘겨봤다. 이 기회에 김예훈과 정민아의 기를 죽이고 싶었는데 사위가 초를 치고 있었다.
세이이치로의 말은 섬뜩하기만 했다.그는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있는 검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김예훈이라는 사람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든, 어떤 실력을 갖추고 있든 반드시 설명을 요구할 거예요. 김예훈은 반드시 죽어야겠어요! 타케이 가문이든 야마구치파든 절대로 목숨을 이대로 낭비할 수 없어요.”세이이치로한테는 타케이가 일본의 영웅인 것 같았다.영정 앞에 무릎 꿇고 있던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살기가 가득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복수라는 두 글자가 적혀있는 두건이 묶여있었다.김예훈을 찾아내 산산조각 내지 않고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만 같았다.김예훈을 증오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본 진세은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속으로 깨 고소했다.이번 사건으로 홍성파는 체면이 말이 아닌 데다 라이언 킹까지 죽게 되어 손실이 막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아직 내세울 만한 고수가 없어 겸손함을 유지하고 있었다.진세은은 사실 화를 꾹 참아보려 하기도 했다.그런데 일본인이 직접 나선다는데 김예훈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진세은은 직접 나서진 못해도 김예훈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보고 싶었다.이는 타케이 가문, 일본 야마구치파, 그리고 양국 외교와 관련된 문제였다.진세은은 김예훈이 어젯밤처럼 작은 수단을 이용해서 전화 몇 통으로 미디어의 힘을 빌려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로 믿지 않았다.‘김예훈, 곧 죽을 날이 올 거야!’진세은은 이런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깊게 한숨을 들이마시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온 진세은은 세이이치로를 쳐다보면서 말했다.“세이이치로 씨, 타케이 가문의 너그러움에 죄송할 따름이네요. 저희 아버지께서 그러시는데 타케이 도련님이 김예훈 그놈한테 살해당하긴 했지만, 저희 홍성파에서 보호해 드리지 못했던 것도 책임 있다고 하셨어요. 저희 성의를 보여드리기 위해 오늘부터 외곽에 있는 땅은 야마구치파에 드리려고 해요. 이 중에 여러분이 눈여겨본 땅도 포함되어 있고요. 앞으로 건설회사를 찾기
저녁 무렵 진주 호텔.이름은 호텔이라고 해도 사실 진주에서 유일한 숙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례식장이었다.독채 별장도 있어 전문 고위층들이 사용하고 있었다.타케이는 부검 결과가 나오자마자 이곳 어딘가 구석에 옮겨졌다.한적한 이곳 환경은 너무나도 쾌적했다.타케이 시신이 옮겨지고 나서 타케이 가문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나오키와 그의 아들딸 외에도 타케이 가문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찾아왔다.타케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면 절대 가만있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였다.저녁 7시.검은색 벤츠 마이바흐 차량이 소리 없이 이곳에 도착하게 되었다.차 문이 열리고, 홍성파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뒤이어 얼굴이 다소 수척해 보이는 젊은 여성이 따라서 차에서 내렸다.하루 종일 취조받긴 했지만, 진주에서 내로라하는 변호사들이 보증 서준 덕분에 바로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여전히 예쁜 그녀는 바로 홍성파 우두머리의 큰 따님인 진세은이였다.경찰서에서 풀려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바로 타케이에게 향을 올리는 것이다.전체 장례식장에 은은한 향이 퍼지고, 진세은은 영정 앞에 국화꽃을 내려놓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앞으로 다가가 90도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세이이치로 씨,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고개를 숙이는데 가슴골이 훤히 보였다.본능적으로 그녀를 힐끔 쳐다본 세이이치로는 눈빛이 흔들렸다.진세은의 신분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그저 가볍게 눈인사할 뿐이다.“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진세은은 이상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말했다.“세이이치로 씨, 저의 아버지께서 직접 타케이 도련님께 향을 올리려고 했는데 범인을 찾기 전까지는 차마 찾아뵐 수 없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진주 경찰서 서열 1위 님 찾으러 가셨어요. 어떻게든 제대로 된 설명을 해드릴 거예요. 저희 진주에도 법도가 있다는 것을 알려드려야죠. 그리고 저희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일본 손님을 잘 돌보지 못한 것은 저희 홍성파의 책
“그래서 바로 총독님께 문자를 보냈죠. 총독님 같은 분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를 리가 없잖아요. 의사 선생님인 척 문을 두드릴 때부터 살인범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절대 경계를 늦추지 않았었죠. 그 뒤로 일어난 일은 다 아시잖아요.”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당신을 어떻게 해보려던 것이 아니라 당신이 너무 어리석어서 이렇게 된 거예요. 알았어요?”“너...”루미코는 직접 짠 계획이 처음부터 김예훈에게 간파당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아까 했던 모든 일은 그저 미친 광대나 다름없었다.“이런 제기랄!”하지만 그녀는 아무리 무시당해도 고개 숙일 생각이 없었다.이때 그녀가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김예훈, 내 동생을 죽인 것도 모자라 나까지 죽이려고? 우리 타케이 가문에서는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능력 있으면 나를 죽여보든가! 아니면 천군만마를 이끌고 너를 죽이러 다시 올 거야. 타케이 가문은 죽을지언정 절대 모욕당할 순 없어! 와봐! 나를 죽여보라고!”김예훈은 루미코를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나를 자극해서 너를 없애게 하려는 거야? 아쉽게도 난 너를 죽일 생각 없어. 타케이 가문에서 이유없이 나를 죽이겠다고 소리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한번 들어봐야 하지 않겠어?”이때 김예훈의 손짓 하나에 동하임이 수갑을 꺼내 루미코의 손발에 직접 채웠다.그러고는 루미코가 출혈 과다로 사망할까 봐 개인 의사를 불러 그녀의 상처를 봉합시켰다.“아무 이유없이 너를 죽이려고 한다고?”루미코는 얼굴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김예훈, 내 동생을 죽였으면서 왜 억울한 척이야.”“누가 그래? 타케이가 내 손을 더럽힐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김예훈은 한껏 싫증난 얼굴이었다.“그리고 난 진주의 ‘착한 시민’이라고. 모욕죄로 배상해야 한다는 거 몰라?”루미코는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이때 동하임이 담담하게 말했다.“부검 결과에 의하면 당신 동생은 아침 7시에 살해되었어요. 그 시각 김 도련님은 저랑 함께 동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난처하게 하지 않을거니까요. 김현민 도련님께서 이미 경고했거든요. 비록 김예훈이 동씨 가문과 손잡았다고 해도 김현민 도련님을 봐서라도 인질로만 삼았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따르는 것이 좋을 거예요. 아니면 그 아름다운 얼굴에 상처를 낼지도 모르겠거든요.”루미코는 검을 꺼내 동하임을 먼저 제압한 후 김예훈을 협박하려고 했다.슉!바로 이때, 갑자기 타케이 시체 밑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칼로 루미코 복부를 찔렀다.“풉!”미처 예상하지 못한 루미코는 피를 뿜어내며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영안실에 동하임 외로 또 다른 인물이 있을 줄 상상도 못했다.결국 그녀는 후회할 시간도, 질문할 시간도 없이 뒤돌아 영안실을 떠나려 했다.쨕!루미코가 영안실을 벗어난 순간, 누군가 나타나 그녀의 뺨을 때렸다.순간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루미코는 저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다시 일어나고 싶었지만, 몸속에 어마어마한 힘이 휘몰아쳐 힘없이 무너져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문밖에서 김예훈이 무표정으로 걸어들어와 루미코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루미코 씨? 쯧쯧. 타케이 가문에 그렇게 인력이 부족해요? 사람을 죽이려고 해도 직접 나서야 하는 거예요? 돈 없으면 말씀하시지. 제가 대신 돈을 들여서 킬러 몇 명을 고용해 드릴 수 있었는데. 타케이 가문이 돈이 아까워서 킬러도 고용하지 못한다고 하면 체면이 구겨지지 않을까요?”김예훈이 앞으로 다가가 상대방의 마스크를 벗겨내자, 타케이와 닮은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내가 하임 씨를 인질로 삼을 줄 어떻게 알았던 거야?”루미코는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루미코는 자신이 왜 노출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특히 아까 그 칼 한 방에 전투력을 잃어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김예훈은 그녀의 원망 가득한 표정을 보면서 말했다.“일할
동하임이 본능적으로 말했다.“의사 선생님, 이분은 제 친구인데 좀 양해해주시면 안 될까요?”“양해요? 양해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의사 선생님은 동하임의 명찰을 보고 깜짝 놀라더니 말했다.“동하임 씨였네요. 그런데 아무리 동하임 씨라고 해도 규칙을 어길 수는 없어요. 그런데 이분을 들이는 거 불가능한 것도 아니에요. 밖에 나가서 먼저 등록하고 기록을 남겨야 들어올 수 있는 거예요.”김예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요? 그러면 먼저 등록하러 다녀올게요. 등록실이 어디죠?”의사 선생님은 직접 밖으로 나가 등록실 방향으로 안내했다..“저쪽에 보시면 등록실이 있을 거예요. 송학민이라고 등록을 도와주시는 분이 계실 거예요.”“감사해요.”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텅 빈 복도를 걸어갔다.의사 선생님은 김예훈의 모습이 사라져서야 두 명의 경찰한테 시선을 돌렸다.“어머!”그녀는 갑자기 발목을 접질렸는지 비명을 질렀다.경찰들은 본능적으로 하얗고 가느다란 발목을 쳐다보게 되었다.샤샤샥!두 명의 경찰이 시선을 돌린 순간, 그녀가 휘두른 소매에서 하얀 연기가 퍼져 나왔다.두 경찰은 그대로 휘청거리면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다시 시체를 확인하려던 동하임은 이 소리에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결국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미간을 찌푸렸다.“당신 누구야. 아무런 원한도 없는 모르는 사이인 것 같은데 뭐 하려는 거야. 누가 보냈어.”동하임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있는 총을 꺼내려 했지만 방호복을 입고있는 관계로 재빨리 빼낼 수 없었다.그러자 정체 모를 그녀가 문을 잠그고는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총독님 딸을 제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당신이 죽어버리면 저도 곤란할 수밖에 없어요. 그냥 잘 협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뿐이에요. 원망하려면 제 동생을 죽인 김예훈을 원망하세요.”“동생?”멈칫한 동하임은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시체를 한번 쳐다보았다.“타케이 누나라고?”상대방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맞아요. 타케이
뚜뚜뚜.김예훈은 걸어가면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복도 끝에 있는 영안실 입구에는 경찰 두명이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이들은 김예훈을 보자마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로 안으로 모셨다.동하임은 흰색 의료용 장갑을 끼고 짧은 머리를 묶어 이국적인 매력을 지닌 목을 드러냈다.김예훈이 서서히 다가갔을 때, 그녀는 타케이 목에 나 있는 상처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너무나도 집중한 나머지 하얀 가슴골이 드러난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의사 가운을 입고 있다고 해도 날씬한 몸매는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김예훈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가가 말했다.“하임 씨, 검시관 일까지 해버리면 그분들이 뭐 해 먹고 살겠어요?”동작을 멈춘 동하임은 눈빛 하나로 무한한 매력을 발산했다.“검시관 결과는 이미 나왔어요. 현장 증거도 모두 수집 완료한 상태고요. 그 증거들 모두 김 도련님이 살인자라고 말해주고 있어요.”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했다.“그런데 저는 살인을 저지를 시간이 없었잖아요. 어젯밤 내내 구룡성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었잖아요. CCTV가 증거로 될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동씨 가문 별장에 같이 있었잖아요. 하임 씨가 증인이 될수 있는 거잖아요. 범죄를 저지를 시간이 없는데 저를 살인자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거 아니에요?”말하는 사이, 김예훈은 타케이의 창백한 얼굴과 아직 가시지 않은 놀라운 표정을 발견했다.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아마도 타케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동하임은 경직된 어깨를 움켜잡으면서 김예훈의 생각을 읽었는지 말했다.“사실 누가 범인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증거가 위조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것으로 김 도련님을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문제는 이 쓸모없는 증거들이 일본인에게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사카모토 류이치마저 죽였잖아요. 여러 가지 관계로 경찰이 죄를 묻지 않았지만, 일본인에게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지위가 높다고 해도 배시시 웃으면서 일어나 말할 뿐이다.“김현민 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특별 경로를 통해 일본 야마구치파에 소식을 전했거든요. 야마구치파 장로님인 나오키가 오늘 저녁 진주에 도착한다고 해요. 아들딸 세이이치로와 루미코도 동행한다고 하네요. 가족인 타케이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김현민이 가식적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에요? 직접 진실을 파헤쳐야 하다뇨. 정말 일본인 친구들한테 미안하네요. 지훈 씨, 저를 대신해 일본 손님들을 잘 대접해 주세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드리고요. 물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거 아시죠?”남지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남씨 가문은 밀수로 일어난 가문이잖아요. 아무도 추적할 수 없을 거예요.”김현민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김병욱을 힐끔 쳐다보았다.“병욱아, 정말 김예훈이 타케이 도련님을 죽인 게 확실해?”김병욱이 피식 웃었다.“그럼요. 병원 CCTV에 김예훈 모습이 찍혔고, 현장에 남겨진 당도 위에 그의 반쪽 지문이 남아있거든요. 비록 확실한 증거가 아니라 평생 콩밥을 먹일 순 없겠지만 일본인이 복수할 만한 증거가 되지 않을까요?”김현민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증거는 증거야. 확실한 증거든 아니든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본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뿐이야. 그들이 어떻게 선택할지는 그들의 문제라고. 아, 또 한 가지 일이 있어.”김현민이 곽영현을 힐끔 쳐다보면서 말했다.“곽씨 가문에 믿을만한 변호사가 몇 명 있잖아요. 진세은 씨를 구해내죠? 일본 손님을 대접하는데 진세은 씨가 없어서 되겠어요?”곽영현은 반짝이는 두눈으로 말했다.“네.”김현민은 또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저희는 진주·밀양의 고위층을 대표하기도 하고 공평 공정을 대표하기도 하는 거예요. 기관에서 공평 공정하게 처리 못 하는데
동하임은 남윤지의 도발을 무시한 채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여유작작 차를 마시고 있는 김현민을 쳐다보았다.“김현민 도련님한테서 듣고 싶은 대답이 있어서 찾아왔어요.”“하임 씨, 저를 다시 경찰서에 데려가서 조사할 예정이에요? 어젯밤 이미 충분히 잘 답변해 드린 것 같은데요? 저는 그저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라고요. 그리고 저는 진주의 치안을 생각해서 쌍방의 모순을 중재했을 뿐인데 ‘착한 시민’ 상을 안 줄지언정 정한테 누명을 씌울 건 아니죠?”김현민은 의심할 여지 없이 확고한 말투였다.동하임은 평소였다면 이런 분노가 섞인 말투를 들었을 때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예전과는 다르다는 생각에 깊이 숨을 마시고는 천천히 말했다.“김현민 도련님,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왜 타케이를 죽이고 김예훈한테 누명을 씌웠느냐예요.”“타케이가 죽었어요?”놀란 표정을 보면 전혀 연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어젯밤 안동 김씨 가문의 명의를 에드워드 병원으로 보내드렸잖아요. 그런데 왜 죽어요?”동하임은 김현민을 자세히 쳐다보면서 잠시 후 입을 열었다.“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살해당했다고요. 죽은 사람은 그 어떤 의사도 살릴 수 없어요.”퍽!“이럴 수가!”김현민은 갑자기 일어나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던졌다.“내가 타케이 도련님을 구하려고 얼마나 힘들게 의사와 간호사를 동원했는데. 그런데 죽었다고요? 하임 씨,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서 일본대사관에 알려야 해요. 아니면 위에 항의해서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분노로 가득찬 김현민은 결코 연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법을 지키는 정의로운 사람처럼 보였다.동하임은 한참동안 그를 바라보다 뒤돌아 문을 열고 나가려던 순간,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김현민 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 사건은 제가 직접 범인을 찾아낼 것입니다. 나쁜 사람을 절대 놓치지 않겠지만 절대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지 않을 거예요. 결과가 나오자마자 알려드릴게요. 도련님께서는 결과를 기다리고 계시면 돼요.
동씨 가문 자제는 침을 꼴깍 삼키더니 말했다.“네. 살해된 것도 모자라 목구멍에 칼자국이 있었어요. 초보적으로는 당도로 인해 생긴 상처라고 보고요. 다른 단서는 추가적인 수색이 필요해요. 그런데 지금까지 모든 단서와 어젯밤 사건을 놓고 보면 알게모르게 김예훈 씨를 범인으로 몰고 있어요.”동태원은 표정이 미세하게 변했다.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이 나설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빨리 움직일 줄 몰랐다.이제 막 ‘착한 시민’ 상은 수여하려던 찰나에 안동 김씨 가문이 김예훈에게 살인죄를 뒤집어씌울 줄 몰랐다.안동 김씨 가문과 김현민에 대해 잘 알고있는 동태원은 이들이 나서는 순간 절대적인 치명타를 입게 될 거일 것도 잘 알고 있었다.타에이의 죽음은 김예훈이 진범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동태원이 직접 나서서 해명한다고 해도 범인임을 증명할 만한 증거가 충분할 것이 틀림없었다.동태원은 태양혈을 문지르며 동하임에게 시선을 돌렸다.“김현민한테 가봐.”“왜요?”동하임은 미간을 찌푸렸다.“우리 동씨 가문의 입장을 알려줘야지.”동태원은 한숨을 내쉬며 별장 밖에 있는 남태평양 바다를 쳐다보았다.지평선 끝에 먹구름이 가득한 것이 곧 폭풍우가 진주를 휘몰아칠 것만 같았다.그런데 이 폭풍우가 지나면 진주에 남게 될 자가 과연 누구일지 아무도 몰랐다....퍽!오후 3시. 동하임은 비를 뚫고 빅토리아 항구에 있는 고급 사무실 문을 열었다.동하림은 프론트 데스크 여직원을 무시한 채 성큼성큼 넓은 회의실로 향했다.이곳은 안동 김씨 가문의 건물이자 김현민의 사무실이기도 했다.이 순간 사무실 안에는 김현민 외에도 진주·밀양에서 내로라하는 젊은 층이 앉아있었다.진주 4대 도련님 중의 한 명인 김병욱, 진주 4대 도련님 중의 한 명인 곽영현 및 나머지 두 명, 진주 잡지사 아들, 일본의 귀족 등등...이들은 저마다 진주·밀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어느 누가 밖에 나가서 발을 구른다고 해도 진주가 휘청거릴 정도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