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훈은 그제야 표정이 밝아지더니 말했다.“은혜 씨, 어려워하지 말고 얼마든지 말씀하세요.”하은혜는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말했다.“할아버지 친한 친구분이 손녀딸 병을 치료해 주려고 계속 방방곡곡 알아보고 있는데 아무런 소용도 없어서요. 어떤 분은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혼이 빠져나간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르신께서 처음에는 믿지 않으셨는데 임강호 씨 부부네 일을 듣고 시간 되면 혹시 봐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도움은 안 되어도 서로 알고 지내는 것이 좋을 거예요.”김예훈이 살짝 흔들렸다. 심현섭과 친한 친구라면 그 역시 신분이 심상치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심현섭이 임강호 일을 알게 된 것도 하은혜가 말해줘서였다.어떻게 보면 김예훈이 부산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일부러 소개해 주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자기를 생각해 주는 마음에 김예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러다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그래요? 그러면 내일 시간 내서 가볼게요. 아, 그 어르신은 어떤 분이세요?”하은혜는 상대방의 신분을 별로 숨길 생각이 없었다.“용연옥에 계시는 분이세요. 정확한 신분은 모르지만 용연옥에서 꽤 존경을 받고 계시는 분이에요. 할아버지께서 해결 못 하는 일이 있으면 그분을 찾아가거든요. 뭐, 용연옥 쪽에 자금상에 문제가 있으면 똑같이 할아버지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있고요. 서로 돕는 관계라고 볼 수 있죠.”김예훈이 흥미진진해하면서 말했다.“용연옥에 계시는 분이라고요? 외부인들과 연락하지 않는다고 소문난 곳 아니에요?”“김 대표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용연옥은 나라를 위해 일하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용연옥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할 수 있는 정도면 나라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거예요.”하은혜가 자세하게 설명했다.“대표님께서 별로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용연옥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 안 좋을 거 없잖아요.”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일 뿐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은혜와의 관계를 봤을 때 그런 고마움의 인사를 할 필요는 없었다.통화를 마친 김예
사실 하은혜도 마음대로 드나드는 곳이 아니었다.전화 몇 통 끝에 5분이 지난 뒤, 그제야 신분 확인 마친 보디가드들이 공손하게 이 둘을 안으로 모셨다.요양원 내부에도 경비가 삼엄했다.안전 문제로 환자마다 각자 개인 별장이 있었다.비교적 큰 별장에 도착했을 때, 하은혜가 안내한 안방으로 들어갔다.그 안에는 침대에 누워있는 한 여자아이를 둘러싸고 몇몇 남녀가 침대 주위에서 무언가 수군거리고 있었다.기껏 해 4, 5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의 예쁜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옆에 있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 김예훈의 시선을 끌었다.백발의 노인이었지만 키 180cm 정도의 건장한 체격이었다. 한 발짝이라도 내디디면 이곳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포스를 지니고 있었다.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김예훈은 그가 무신 급 실력자인 것을 느끼고 말았다.이런 사람이 폭발하기라도 한다면 오정범, 박인철은 전혀 상대도 안 되었다.이 사람이 바로 하은혜가 말했던 용연옥에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이런 실력에 심현섭과도 친한 것을 보면 용연옥에서 어느정도 위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하은혜가 김예훈의 귓가에 속삭였다.“장덕수 어르신이에요. 환자는 이분 손녀 장나은이고요.”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나지막하게 물었다.“전국 10대 가문인 중부 장씨 가문이요?”하은혜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예훈의 표정은 더욱 심각해졌다.이 장덕수라는 사람이 용연옥 고위층인 것 외에 중부 장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그러면 이분은...”김예훈은 의사 가운을 입고 금테 안경을 쓴 사람을 가리켰다.“나은이의 주치의 아마미야 씨예요.”점잖아 보이는 주치의를 바라보던 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일본 사람이에요?”하은혜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그냥 외국인인 척하는 거예요.”바로 이때, 장덕수도 하은혜를 발견하고 뒤돌아 웃으면서 인사했다.“은혜야, 왔어?”하은혜가 바쁘게 인사했다.“어르
김예훈의 겸손함에 장덕수가 피식 웃고 말았다.‘요즘 젊은이들은 잘난 척하지 못해서 안달이더니. 조그마한 자랑거리가 생기면 SNS에 올려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하던데. 다른 사람이었다면 임강호 부부를 도와준 것을 진작에 소문내고 다녔을 거야.’그런데 겸손한 김예훈의 태도에 장덕수는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제 손녀딸 상황을 은혜가 이미 알려줬을 거라고 믿어요. 자신 있으세요?”김예훈이 진지하게 말했다.“어르신, 100퍼센트 자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죠. 한가지 말씀드릴 것은 저는 의사가 아닙니다. 만약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면 전남산 어르신을 모셔 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장덕수가 피식 웃었다.“전남산 어르신과 아는 사이에요? 그분도 이미 와서 보셨지만 병은 아니라고 했어요.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설명하지도 못하더라고요.”김예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전남산 어르신께서 병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김예훈이 앞으로 다가가 장나은의 상태를 확인했다.귀여운 얼굴에 생기를 잃은 채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은 마치 인형과도 같았다.장덕수는 미소를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그러면 잘 부탁드릴게요.”김예훈이 맥을 짚으려고 하자 아마미야 주치의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말했다.“어르신, 이분은 누구신데요?”“내 친구가 추천해 준 나은이 상태를 확인하러 온 김예훈이라는 사람일세.”장덕수는 이 주치의에 대한 믿음이 강해 보였다.“김예훈 씨, 이분은 나은이 주치의 아마미야 씨에요. 니혼 의과대학 박사 출신이세요.”김예훈이 배시시 웃으면서 인사했다.“아마미야 씨, 안녕하세요.”김예훈이 장나은의 병 보러 왔다고 하자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죄송한데 김예훈 씨, 혹시 어느 의과대학에서 졸업하셨어요?”아마미야는 일본인 특유의 잘난 척하는 말투로 물었다.“옥스퍼드? 하버드? 아님. 서울의대?”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의사가 아니라서 의술에
아마미야는 한껏 잘난 척하는 표정이었다. 김예훈은 물론 전남산마저도 무시하는 말투였다.이 큰 대한민국에서 장나은의 병을 고칠만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했다.이에 장덕수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아마미야 씨, 제가 모셔 온 분입니다. 무슨 일이 발생하면 제가 책임질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김예훈 씨, 시작하시죠.”아마미야의 표정은 말이 아니었다.그는 또다시 김예훈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뭘 어떻게 책임진다고 그러세요? 어르신, 어차피 뒷수습은 제가 해야 하는 거잖아요. 이 사기꾼한테 나은이를 맡겼다가 무슨 일이 발생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더 이상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닌 것 같네요.”김예훈이 나서기만 한다면 아예 손을 뺄 작정이었다.김예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아마미야를 힐끔 보더니 별말 없이 앞으로 나섰다.그는 전남산 의술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병이 아니라면 병이 아닌 것이었다.김예훈은 장나은의 맥을 한참 동안 짚더니 손을 거두었다.장덕수는 김예훈마저도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에 결국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아마미야가 이 모습을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비아냥거렸다.“맥을 짚는다고 알 수 있겠어요? 저희 의사를 뭐로 보는 거예요. 저희 일본에 있는 대단한 의술 설비는 그냥 감상용인 줄 알아요? 사기꾼 주제에 잘난 척하긴. 정말 웃겨! 여기가 대한민국이길 다행인 줄 아세요. 일본이었다면 당신 같은 사기꾼은 진작에 감옥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을 거예요.”김예훈은 아마미야를 힐끔 보더니 냉랭하게 말했다.“맥을 짚는 건 한의술이라고 해요. 일본 의술도 한의술을 따라 배웠으면서, 그깟 의술을 좀 배웠다고 시조를 무시하면 안 되죠. 아마미야 씨는 안 되겠네요. 설마 나은이가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니죠?”김예훈이 장덕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확인해 보니 전남산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병에 걸린 것이 아니네요.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뭐라고요?”장덕수는
“책임이요? 어떻게 책임질 건데요?”아마미야가 피식 웃었다.“한국인들은 참 재미있네요. 병을 치료할 생각이나 하지 않고 사기꾼이나 찾고 말이에요. 설마 그림 몇 장을 그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할 건 아니죠? 정말 웃겨!”김예훈이 한참 동안 아마미야를 차갑게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어르신, 나은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어요?”장덕수가 멈칫하더니 대답했다.“반년은 되었을 거예요.”“그러면 이렇게 되기 전에 음기가 가득한 곳에 다녀온 적은 있을까요? 무덤이나 구석진 마을이나 폐허 같은 곳이요...”김예훈이 진지하게 묻자 장덕수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있어요. 이렇게 되기 전에 사당에 한 번 데려간 적 있어요.”장덕수가 계속해서 설명했다.“예전에 전쟁 났을 때 사당을 부산 법조계에 옮긴 적이 있어요. 나은이를 데리고 부산에 왔을 때 마침 추석이라 조상님 뵈러 갔는데 며칠 뒤...”김예훈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혹시 그 사당에 가볼 수 있을까요?”장덕수가 멈칫하고 말았다.“김예훈 씨, 설마 나은이가 사당에 가서 귀신에 씐 건 아니죠? 김예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아마미야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정말 웃기네요. 어르신, 설마 이 사기꾼 말을 믿는 거예요? 소아 치매를 사당이랑 연관 지으려는 거예요? 이봐! 지금 장난해? 당장 꺼지지 못해? 어디서 이곳에서 사기를 치고 있어! 안 가면 경찰에 신고해 버릴 거야!”아마미야는 김예훈을 밀쳐내려다 결국 참았다.하지만 표정을 보니 김예훈의 멱을 따서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이에 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아마미야 씨는 나은이랑 사이가 좋은가 봐요. 그런데 나은이를 끔찍이 생각하시면서 왜 제가 치료해 주는 것을 방해하려고 그러시죠? 설마 일본에 계시는 그 스승님이 치료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마미야 씨 조상님도 한국인인 거 잊으셨어요? 일본에 잠깐 있는 사이 성까지 바꿔서 조상님도 잊으신 거 아니죠? 설마 나은이 병이 당신이랑 연관 있는 건 아니죠?”김예훈의 웃을
김예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아마미야를 쳐다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나은이 상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심각해질 거예요. 제가 아무리 사기꾼이라고 해도 나은이한테 피해 가지 않을 텐데 시도해 보면 어때요? 아님, 제가 나은이를 살려내면 당신한테 불리한 상황이 일어나는 건가요?”아마미야는 표정이 확 변하더니 장덕수를 쳐다보았다.“어르신, 저는 나은이 주치의를 맡고 있으면서 누구보다 나은이 상태를 잘 알고 있다고 믿어요. 나은이한테 필요한 것은 휴식이에요. 제가 직접 일본에 가서 제 스승님을 모셔 올게요. 이상한 사람한테 맡겼다가 상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어요. 그때 되면 저의 스승님이 오셔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어르신께서 저를 믿어만 주신다면 나은이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저는 제 지금까지의 노력이 저 사람 손에 망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늘 무슨 사고가 발생하든 저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예요!”무조건 자기 뜻대로 해야 한다는 아마미야의 말투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지금까지 나은이를 돌보면서 장씨 가문에서 어느정도 입지를 굳힌 것 같았다.아니면 이렇게까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야를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니혼 의과대학을 졸업하셨으면 일본 왕실 주치의를 맡았었겠네요?”아마미야가 뒷짐을 쥐고 으쓱해 하면서 말했다.“그래. 내 신분을 알았으면 스승님이 어떤 분이신지 짐작이 가겠네?”“일본에서 신의라고 불리고 있는 야마모토 씨 맞죠?”김예훈이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아마미야는 멈칫하더니 자기 스승을 자랑했다.“맞아. 내 스승님은 신의라고 불리고 있는 야마모토야. 이쯤 되면 전 세계에서 우리 스승님 빼고 나은이를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겠는데?”김예훈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야마모토 씨는 일본 신의라고 불리고 있는 동시에 음양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으시죠? 야마모토 씨의 제자는 의술 외에도 음양술에도 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당신의 얼굴이 발그레하고 입술이 하얀 것이
“아님, 진짜 신분을 알아낼까 봐 일부러 잘난 척했던 거예요? 양심에 찔렸어요?”하은혜가 비웃으면서 말했다.장덕수는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았다. 그는 용연옥에서 일하면서 대부분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을 신경 쓰고 있었다.하지만 그래도 일본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아마미야의 반응을 보니 뻔히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김예훈이 뒷짐을 쥐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음양술을 익힌 사람은 등에 음양을 대표하는 해와 달 문신이 그려져 있다고 알고 있어요. 일본 음양술사끼리 이 문신으로 상대방 신분을 확인한다면서요? 음양술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셨죠? 그러면 옷을 벗어 저희한테 보여주시죠?”“이 사람이 진짜 너무하네!”아마미야는 김예훈에게 삿대질하면서 욕설을 퍼붓더니 씩씩거리면서 장덕수를 쳐다보았다.“어르신, 저는 장씨 가문을 존경하는 사람이라 성심성의껏 나은이를 돌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사기꾼 새끼가 저를 모함하는데 어떻게 한마디도 안 하실 수 있으세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을 것 같네요. 이제부터 다른 분을 모시세요!”아마미야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문밖에 발을 내딛자마자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변하고 말았다.퍽!뒤에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아예 그를 발로 걷어차서 다시 안으로 들여보냈다.장덕수는 방금 그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듯이 뒷짐을 쥐고 담담하게 말했다.“가란 말도 안 했는데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이때,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정장을 입은 8명의 장정이 밖에서 걸어들어오더니 아마미야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아마미야는 표정이 확 변하더니 소리를 질렀다.“어르신, 오해에요! 제가 화가 나 떠나려던 것이 아니라 일본에 가서 스승님을 모셔오려고 그랬어요! 저는 이 사기꾼 새끼가 아무 말이나 하는 꼴을 못 보겠어요! 저를 보내주시면 3일 내로 스승님을 모셔 올게요.”“됐어.”장덕수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일본 신의라는 사람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네. 이봐, 옷을 벗겨서 등에 문
아마미야의 움직임이 빨랐지만 장덕수의 움직임은 더욱 빨랐다.그가 손끝으로 공기를 튕기자 비수가 절반으로 쪼개져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이어 장덕수는 아마미야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퍽!밖으로 도망치려던 아마미야는 장덕수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널브러져 피를 토해내고 말았다.아마미야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장덕수는 또 그의 이빨이 다 빠질 정도로 뺨을 때렸다.이빨 중에 유난히 검은 이빨이 보였다. 독이 들어있는 이 이빨이 없으면 아마미야는 자살도 하지 못했다.장덕수는 또 그의 사지를 걷어찼다.빠직!아마미야는 결국 사지가 끊어져 움직이지도 못했다.현장에서 지켜보던 몇몇 의사와 간호사들은 무서워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장덕수가 나이가 있긴 했지만 그 실력은 어마어마했다.아무도 2, 3초 만에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아마미야가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 몰랐다.아마미야의 등을 확인하자 역시나 해와 달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누군가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자 바로 전화가 왔다.잠시 후 장덕수가 담담하게 말했다.“용전을 통해 확인했는데 일본 음양술사 전용 문신이 맞다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 모끄 가문의 사람 맞지? 한국인이 일본에서 몇 년 동안 배운 음양술을 한국인한테 써먹을 줄 몰랐네? 이봐. 이놈을 용전으로 끌고 가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싶은지 끝까지 심문해 봐.”두 장정에게 끌려가는 아마미야는 얼굴에 절망이 가득했다. 자살 시도도 못 하는 상황에서 용전으로 끌려갈 생각을 하니 공포가 앞섰다.용전은 용연옥, 용문당, 용부대와 달랐다.용전이 존재하는 목적은 해외 세력과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간단히 말하자면 용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대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신분 높은 용전 집권자는 애국심이 대단했다.용전에 잡힌다는 것은 용연옥에 잡히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었다.용전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원하는 대답을 듣는 곳이었다.아마미야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김예훈을 악독스러운 눈빛으로 째려보았다.정말 김예훈을 갈기갈기 찢어
외국 여자의 말을 들은 장무준은 역겨움과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바라보았다.그는 동하임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김예훈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어쩐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서 악취가 진동하더라니, 네 몸에서 나는 냄새였구나!”“동하임, 마리아 씨가 너한테서 어떤 악취가 난다고 했는지 알아?”“궁상맞은 냄새가 난다고 했어!”“동씨 가문은 어떻게 보면 별 보잘것없는 가문인데 자기네가 무슨 상류층 가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히 진주 상류층에 끼려고 해?”“너희 동씨 가문의 그런 염치없는 모습이 참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특히 동하임 넌 영국 제국의 황녀에 비하면 길가의 개에 불과해!”장무준의 눈에는 거리낌 없는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당장 이 기생오라비를 데리고 꺼져!”“앞으로 절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참, 혼약은 할아버지한테 취소하라고 할 거야.”“그전에 조건이 하나 있어.”“바로 너랑 이 기생오라비가 장씨 가문 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비는 거야!”“3일 채우면 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어!”장무준의 빈정거림에 매서운 기운이 동하임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그녀는 장무준을 차갑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장무준, 고작 며칠 동안 외국인 행세를 했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영국 제국의 개라도 된 줄 아나 봐?”“잘 들어!”“파혼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장무준 네놈이 3일 밤낮으로 우리 가문 문 앞에서 무릎 꿇고 빌면 파혼을 동의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이 내연녀랑 부부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내연녀?”장무준은 동하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더러운 년, 말조심해!”“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영국 제국의 황녀고 영국 제국 황위의 49번째 계승자야!”“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공주고 네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야. 너랑 너희 동씨 가문이 평생 떠받들고 모셔야 하는 존재라고!”“감히 누구한테 내연녀라고 하는 거야?”“미친 거 아니야?”“마리아 씨가 나
“장무준 저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영국 제국에서 자라서 결국 영국 제국 황실 방계의 여자 친구를 찾은 듯해요.”“저런 친밀한 모습이 해외에서 일어난 거라면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심지어 저 자식이 우리 가문이랑 진작에 파혼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저희 동씨 가문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근데 지금 우리 동씨 가문이랑 파혼도 하지 않고 내가 마중 나올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외국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내 뒤통수를 치잖아요.”“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죠!”동하임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저 남자한테 관심이 없지만 자신과 동씨 가문에 먹칠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일이 일단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퍼지게 되면 동씨 가문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김예훈은 동하임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는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그럼 이제 어쩌려고요?”“저 남자한테 가서 당신을 좋아하는지, 결혼은 할 것인지 물어볼 건가요?”“죽어도 싫어요!”동하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간단하네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서 분명히 말해줘요.”“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는 거면 장씨 가문 쪽에서 자발적으로 파혼하게끔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에요?”김예훈은 장무준이 장현준의 손자란 걸 알고 있었지만 동하임이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다.어찌 됐든 동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이 지경에 이른데에는 자신한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 동씨 가문을 도와 이 일을 최대한 조용히 해결해야 했다.자신이야 나중에 진주·밀양을 떠날 거라서 상관이 없지만 동씨 가문은 여기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다.동하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혼하고 싶은 건 맞아요.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아서 그래요.”“장무준이 지금 이 관건적인 시기에 돌아왔는데 순순히 파혼할까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순순히 파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그 남자 교육
다음 날 시즌 호텔 로얄 스위트 룸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김예훈은 다시 한번 끊임없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김예훈은 시계를 보고 나서 힘없이 문 열러 갔고 문 앞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동하임을 보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동하임 씨, 지금 아침 9시예요. 나 조금만 더 자게 해줘요!”“좀 푹 쉬게 내버려둬요!”화장한 동하임의 안색이 안 좋았고 그녀는 김예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나랑 같이 공항에 누구 좀 데리러 가요!”김예훈은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동하임의 안색이 좋지 않을 걸 보자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임의 포로쉐 911은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다 진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동씨 가문의 사람은 이미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동하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급히 달려가 주차를 도와주고 한 레스토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안색이 좋지 않은 동하임은 에르메스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김예훈은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꾹 다문 채 따라나섰다.그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평소에 냉담한 동하임을 이토록 화나게 하는지 궁금했다.곧 두 사람은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거대한 레스토랑은 이미 통째로 예약된 상태라 다른 손님은 없었고 모든 웨이터가 한 테이블 귀빈들한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테이블 중앙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서울 사람으로 잘생긴 외모에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듯했고 금색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점잖고 우아한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영국 제국의 외국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와 몸매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관건적인 것은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김예훈은 그것이 영국 제국 황족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녀의 외모는 영국 제국의 장공주과는 조금 차이가 났지만 특유의 기질은 숨길 수 없었다.그러한 사람이 진주 국제 공항에 나타났다는 자체만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다.몇몇 젊은이들이 레스토랑 바깥 구석에 몰래
“제 기억이 맞다면 전에 손자분이 동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었죠?”“명목상으로는 동하임의 약혼자 맞죠?”김현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그 당시 동씨 가문이 아직 집권하지 않았을 때 장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던 게 떠올랐다.하지만 그의 손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해서 서울 사람들을 경멸했고 오직 영국 제국 황실의 사위가 되기만을 원했다.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으로 유학 갔고 황실 방계인 여친을 찾은 후에는 진주로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김현민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장현준은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을 거다.김현민은 이어서 말했다.“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제가 제대로 기억한 것 같네요.”“오늘 동하임이 현장에서 김예훈을 건드리려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는 둥,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그 말이 퍼지게 되면 장씨 가문의 체면이 구겨질 게 뻔해요.”“어쨌든 동하임은 어르신의 손자며느리이고 아직 파혼하지 않았잖아요.”“제가 보기에는 손자분이 돌아와서 동하임을 교육 좀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진주에서 누가 더 권력이 있는지 동씨 가문에 단단히 알려야죠!”“고작 동씨 가문 주제에 집권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장씨 가문의 은혜는 싹 다 잊은 거잖아요.”“게다가 동씨 가문을 망가뜨리면 김예훈이 계속해서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그 사람이 평성에서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주에서는 뿌리 없는 초목일 뿐이에요.”“동씨 가문과의 인연만 끊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밟고 올라설 수 있지 않겠어요?”“게다가 그 사람이 이번에 영국 제국을 거듭해서 모욕했는데 어르신 손자분과 황실 여자 친구가 같이 돌아와서 김예훈의 낯짝을 세게 후려갈겨 버리면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장현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김 수장님 역시 명성대로 인재시네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대신 전략과 배치를 아주 완벽하게 짜놓으셨네요.”“어떻게 체면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급한 마
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물었다.“용현성이 김예훈을 제압하지 못할 거란 걸 진작에 예상했던 거예요?”“용현성은 용문당 집법부대의 부당주고 용문당 36개 지회를 총괄하는 사람이에요.”“그런데 김예훈이 어떻게 감히 용현성의 체면을 구길 수 있어요?”김현민은 직접 장현준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간단해요. 김예훈이 부산 용문당 회장 신분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회장이라는 신분은 그 사람한테 단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덤일 뿐이에요.”“그 사람의 진짜 정체는 아마 어르신도 들어봤을 거예요.”“경기도 김세자요!”“진주 이씨 가문의 이일메 큰 어르신도 그 사람을 건드렸다가 패배의 쓴맛만 봤어요.”“심지어 경기도 제일의 명문가의 모든 자원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어요.”“그런 사람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죠.”“게다가 용 어르신과 어르신께서 아무런 준비 없이 공격해서 큰 코만 다치게 된거예요.”김현민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장현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김현민을 응시하며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그럼 왜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제가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제 말을 안 들으셨잖아요.”“제가 어르신한테 그 사람의 진짜 정체를 미리 말해줬다고 해도 어르신의 성격과 용어르신의 독단성을 감안했을 때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줬을까요?”김현민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에게 차근차근 미끼를 던졌다.“어르신과 용 어르신께서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합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그놈을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분께서 미리 패배의 쓴맛을 맛보는 거예요.”“그래야 두 분께서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아예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쓴다면 바로 죽여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니깐요.”그 말을 들은 장현준의 표정이 바뀌었고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김 수장님은 날 위해서 나설
남윤지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김현민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애초에 그 두 늙은이를 내보낸 건 단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잖아요.”“첫 번째 목적은 이 기회를 빌려 용문당이 김예훈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 그 한계를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그리고 두 번째는 일본이 김예훈 측과의 싸움에서 패배돼서 이번에는 영국 제국의 힘을 빌려서 그놈을 죽이려고 했잖아요.”“이제 그 두 늙은이는 도련님이 예상했던 대로 쓸모가 없어졌고 마침 저희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잘된 거 아니에요?”김현민은 담담하게 말했다.“계획은 그렇긴 한데 안타깝게도 변수가 생겼어.”“어떤 사람들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아직도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단 말이지.”김현민의 얼굴에 비웃음이 번졌다.“어떤 사람들이요?”남윤지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 문 앞에서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코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얼굴이 부어오른 장현준이 거실 문을 열고 김현민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의 얼굴은 끊임없이 일그러지면서 변화하는 동시에 원한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 수장님, 김예훈 그놈 뭐예요?”“고작 용문당 회장 주제에!”“어떻게 감히 내 얼굴에 손을 대요!”“게다가 날 서양 놈들의 개라고까지 했어요!”“그놈을 당장 죽여버려요! 김 수장님, 내 원한을 꼭 갚아줘요!”“별거 아닌 놈이 감히 전임 총독의 얼굴을 때리다니!”“그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진주·밀양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어요?”“또 어떻게 영국 제국 황실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겠어요?”장현준은 자신과 김현민의 신분 차이를 잊은 채 붉게 부어오른 얼굴에는 증오와 사나움만 가득했다.이어서 장현준은 그의 부하들 앞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얼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쓸모없는 것들! 이 쓸모없는 것들아!”“날 보호하지 않고 뭘 했던 거야?”“영국 제국의 퇴역 기사라면
김예훈은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그리고 김현민이 일본, 영국과 결탁한 의혹이 있는 것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큰 어르신의 생신날 김현민이 상속받으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세요.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퍼뜨려 주세요. 김현민이 밖에 나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긴장감을 줘야죠. 맨날 집에서 음모와 계략을 연구하는 것도 정신상태에 좋지 않거든요.”김현민이라는 사람은 너무 계산적이고, 자기 보호에 강했다. 그런 그에게 짜증 날 대로 짜증 난 김예훈은 이렇게라도 그를 압박하고 괴롭혀 보기로 했다.그가 미쳐 날뛰기 시작해야 자기가 짜놓은 판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알아볼게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동씨 가문은 그래도 진주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어서 이런 일은 쉽게 처리할 수 있거든요.”김예훈은 웃으면서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했다.김현민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너무 의도적으로 계획하면 안 되었다. 너무 티 나게 하면 그가 눈치챌 수 있었다.오히려 이런 무심한 계획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동하임은 갑자기 웃더니 그에게 다가가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도련님께서 저희 동씨 가문에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마땅히 내놓을 것도 없고 해서 제 몸을 바치는 거 어떨까요?”농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용기를 낸 것이다.김예훈만 원한다면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튈 것이 분명했다.“하하하.”김예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으로 동하임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하임 씨, 농담도 참. 아무리 그래도 저는 하임 씨 아버지의 친구이자 하임 씨의 삼촌이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농담으로 저를 화나게 하면 제가 어떤 벌을 내릴지도 몰라요.”동하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께서 이런 걸 좋아하셨어요? 그러면 삼촌, 저한테 어떤 벌을 주실 건데요?”김예훈은 갑자기 주제가 잘못된 것 같아 순
“그렇다면 덕망 높은 두 분의 끊임없는 호소 끝에 김현민은 반드시 전략을 바꿔야겠죠. 만약 도련님께서 상대가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멀리 놓고 봤을 때 저 두 사람은 김현민이 자신을 위해 분풀이를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겠죠. 그렇다면 저 두 사람이 김현민의 마음을 흔들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다 단단한 고리에 작은 균열이 생길 수도 있어요. 만약 김현민이 오늘 일때문에 참지 못하고 직접 나선다면 계획이 급하게 진행되면서 그중에서 부족한 점이 보이겠죠. 어쩌면 도련님께서 이 기회를 이용해 그를 뿌리째 뽑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무튼 도련님은 이 건물에 들어선 순간부터 함정에 빠진 것이 틀림없어요.”동하임은 손에 들고 있던 수표를 김예훈에게 건넸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예훈이 흥분한 나머지 일을 너무 크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까 아버지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조언을 듣고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김예훈의 행동이 막무가내로 보이지만 사실은 신중한 움직임이었고, 걸음마다 김현민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비록 김예훈과 김현민이 아직 정식으로 붙지 않았지만, 신경전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현재 파악된 상황을 봤을 때 적어도 김현민은 김예훈에게서 그 어떠한 이득도 본 적이 없었다.이로써 동하임은 왜 아버지가 진주·밀양에서 아무런 기반도 없는 김예훈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지만 안타깝게도...동하임은 김예훈이 미혼일 때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이때 김예훈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힐끔 쳐다보았다.비록 동태원의 조언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사람은 조금만 더 가르쳐주면 곧 큰 인물이 될 사람이었다.하지만 김예훈은 인정하지 않고 피식 웃을 뿐이다.“너무 과대평가하신 거 아니에요? 저는 그저 사람을 때렸을 뿐인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신 거 아니에요? 저를 너무 그렇게 과대평가하지 말아
잠시 후, 용현성과 장현준은 처참한 모습으로 이곳을 떠났다.동하임은 손에 든 2,000억 원의 수표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김 도련님, 이번 만남은 정말 실패네요. 아무쪼록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줄 알았는데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줬냬요. 이 2,000억 원, 더 두 분이 여기저기 연락해서 겨우 모은 거예요.”동하임은 여전히 한숨이 나왔다.‘그렇게 거들먹거리더니 돈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어. 2,000억 원을 울며불며 여기저기서 빌려야 한다니.’김예훈은 그들에게 2,000억 원을 내놓으라고 한 것은 그들의 뺨을 때리는 것보다도 더 심했다.그들의 노후 자금마저 탈탈 턴 것과도 같았다.이로써 쌍방은 지금, 이 순간부터 더 이상 평화롭게 지낼 수가 없었다.“괜찮아요. 저희가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고 해도 저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었을 거예요. 어차피 저들 눈에는 제가 죽어야 마땅한 존재니까요.”김예훈은 다시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공진해가 보내온 자료를 확인했다.“소식에 따르면 용현성은 특별한 능력 없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암암리에 일본 쪽과 연락하는 것 같더라고요. 류서우가 초대하지 않았더라도 일본인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기 위해 무조건 문제를 일으키러 왔을 거예요. 장현준은 원래부터 식민지 시대 때 영국에서 기르던 개였을 뿐이에요. 평생 무릎 꿇고 개처럼 살더니 외국인이 하느님인 줄 아나 봐요. 이런 사람은 아무리 체면을 세워주고, 또 기회를 줘봤자 절대 만족하지 않을 거예요. 아무튼 제가 회장 패쪽을 내놓지 않고, 또 그들의 요구에 따라 일본에 가서 사죄하지 않는 한 둘 중 하나는 죽는 운명이었다고요.”김예훈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계속해서 말했다.“어차피 죽고 못 살 판에 2,000억 원을 배상하라고 한 것도 많이 봐준 거예요. 오늘 이렇게 많은 눈이 지켜보지 않았다면 저 사람들 오늘 이곳을 벗어나지도 못했어요.”김예훈의 담담한 말투에는 살기가 가득했다.그에게는 외국과 은밀히 연락하고 국민을 해치려는 비겁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