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훈은 그제야 표정이 밝아지더니 말했다.“은혜 씨, 어려워하지 말고 얼마든지 말씀하세요.”하은혜는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말했다.“할아버지 친한 친구분이 손녀딸 병을 치료해 주려고 계속 방방곡곡 알아보고 있는데 아무런 소용도 없어서요. 어떤 분은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혼이 빠져나간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르신께서 처음에는 믿지 않으셨는데 임강호 씨 부부네 일을 듣고 시간 되면 혹시 봐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도움은 안 되어도 서로 알고 지내는 것이 좋을 거예요.”김예훈이 살짝 흔들렸다. 심현섭과 친한 친구라면 그 역시 신분이 심상치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심현섭이 임강호 일을 알게 된 것도 하은혜가 말해줘서였다.어떻게 보면 김예훈이 부산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일부러 소개해 주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자기를 생각해 주는 마음에 김예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러다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그래요? 그러면 내일 시간 내서 가볼게요. 아, 그 어르신은 어떤 분이세요?”하은혜는 상대방의 신분을 별로 숨길 생각이 없었다.“용연옥에 계시는 분이세요. 정확한 신분은 모르지만 용연옥에서 꽤 존경을 받고 계시는 분이에요. 할아버지께서 해결 못 하는 일이 있으면 그분을 찾아가거든요. 뭐, 용연옥 쪽에 자금상에 문제가 있으면 똑같이 할아버지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있고요. 서로 돕는 관계라고 볼 수 있죠.”김예훈이 흥미진진해하면서 말했다.“용연옥에 계시는 분이라고요? 외부인들과 연락하지 않는다고 소문난 곳 아니에요?”“김 대표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용연옥은 나라를 위해 일하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용연옥에 있는 사람들과 연락할 수 있는 정도면 나라의 인정을 받고 있다는 거예요.”하은혜가 자세하게 설명했다.“대표님께서 별로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용연옥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 안 좋을 거 없잖아요.”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일 뿐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은혜와의 관계를 봤을 때 그런 고마움의 인사를 할 필요는 없었다.통화를 마친 김예
사실 하은혜도 마음대로 드나드는 곳이 아니었다.전화 몇 통 끝에 5분이 지난 뒤, 그제야 신분 확인 마친 보디가드들이 공손하게 이 둘을 안으로 모셨다.요양원 내부에도 경비가 삼엄했다.안전 문제로 환자마다 각자 개인 별장이 있었다.비교적 큰 별장에 도착했을 때, 하은혜가 안내한 안방으로 들어갔다.그 안에는 침대에 누워있는 한 여자아이를 둘러싸고 몇몇 남녀가 침대 주위에서 무언가 수군거리고 있었다.기껏 해 4, 5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의 예쁜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옆에 있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 김예훈의 시선을 끌었다.백발의 노인이었지만 키 180cm 정도의 건장한 체격이었다. 한 발짝이라도 내디디면 이곳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포스를 지니고 있었다.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김예훈은 그가 무신 급 실력자인 것을 느끼고 말았다.이런 사람이 폭발하기라도 한다면 오정범, 박인철은 전혀 상대도 안 되었다.이 사람이 바로 하은혜가 말했던 용연옥에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이런 실력에 심현섭과도 친한 것을 보면 용연옥에서 어느정도 위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하은혜가 김예훈의 귓가에 속삭였다.“장덕수 어르신이에요. 환자는 이분 손녀 장나은이고요.”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나지막하게 물었다.“전국 10대 가문인 중부 장씨 가문이요?”하은혜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예훈의 표정은 더욱 심각해졌다.이 장덕수라는 사람이 용연옥 고위층인 것 외에 중부 장씨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그러면 이분은...”김예훈은 의사 가운을 입고 금테 안경을 쓴 사람을 가리켰다.“나은이의 주치의 아마미야 씨예요.”점잖아 보이는 주치의를 바라보던 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일본 사람이에요?”하은혜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그냥 외국인인 척하는 거예요.”바로 이때, 장덕수도 하은혜를 발견하고 뒤돌아 웃으면서 인사했다.“은혜야, 왔어?”하은혜가 바쁘게 인사했다.“어르
김예훈의 겸손함에 장덕수가 피식 웃고 말았다.‘요즘 젊은이들은 잘난 척하지 못해서 안달이더니. 조그마한 자랑거리가 생기면 SNS에 올려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하던데. 다른 사람이었다면 임강호 부부를 도와준 것을 진작에 소문내고 다녔을 거야.’그런데 겸손한 김예훈의 태도에 장덕수는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제 손녀딸 상황을 은혜가 이미 알려줬을 거라고 믿어요. 자신 있으세요?”김예훈이 진지하게 말했다.“어르신, 100퍼센트 자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죠. 한가지 말씀드릴 것은 저는 의사가 아닙니다. 만약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면 전남산 어르신을 모셔 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장덕수가 피식 웃었다.“전남산 어르신과 아는 사이에요? 그분도 이미 와서 보셨지만 병은 아니라고 했어요.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설명하지도 못하더라고요.”김예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전남산 어르신께서 병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김예훈이 앞으로 다가가 장나은의 상태를 확인했다.귀여운 얼굴에 생기를 잃은 채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은 마치 인형과도 같았다.장덕수는 미소를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그러면 잘 부탁드릴게요.”김예훈이 맥을 짚으려고 하자 아마미야 주치의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말했다.“어르신, 이분은 누구신데요?”“내 친구가 추천해 준 나은이 상태를 확인하러 온 김예훈이라는 사람일세.”장덕수는 이 주치의에 대한 믿음이 강해 보였다.“김예훈 씨, 이분은 나은이 주치의 아마미야 씨에요. 니혼 의과대학 박사 출신이세요.”김예훈이 배시시 웃으면서 인사했다.“아마미야 씨, 안녕하세요.”김예훈이 장나은의 병 보러 왔다고 하자 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죄송한데 김예훈 씨, 혹시 어느 의과대학에서 졸업하셨어요?”아마미야는 일본인 특유의 잘난 척하는 말투로 물었다.“옥스퍼드? 하버드? 아님. 서울의대?”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의사가 아니라서 의술에
아마미야는 한껏 잘난 척하는 표정이었다. 김예훈은 물론 전남산마저도 무시하는 말투였다.이 큰 대한민국에서 장나은의 병을 고칠만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했다.이에 장덕수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아마미야 씨, 제가 모셔 온 분입니다. 무슨 일이 발생하면 제가 책임질 것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김예훈 씨, 시작하시죠.”아마미야의 표정은 말이 아니었다.그는 또다시 김예훈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진지하게 말했다.“뭘 어떻게 책임진다고 그러세요? 어르신, 어차피 뒷수습은 제가 해야 하는 거잖아요. 이 사기꾼한테 나은이를 맡겼다가 무슨 일이 발생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더 이상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닌 것 같네요.”김예훈이 나서기만 한다면 아예 손을 뺄 작정이었다.김예훈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아마미야를 힐끔 보더니 별말 없이 앞으로 나섰다.그는 전남산 의술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병이 아니라면 병이 아닌 것이었다.김예훈은 장나은의 맥을 한참 동안 짚더니 손을 거두었다.장덕수는 김예훈마저도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에 결국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아마미야가 이 모습을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비아냥거렸다.“맥을 짚는다고 알 수 있겠어요? 저희 의사를 뭐로 보는 거예요. 저희 일본에 있는 대단한 의술 설비는 그냥 감상용인 줄 알아요? 사기꾼 주제에 잘난 척하긴. 정말 웃겨! 여기가 대한민국이길 다행인 줄 아세요. 일본이었다면 당신 같은 사기꾼은 진작에 감옥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을 거예요.”김예훈은 아마미야를 힐끔 보더니 냉랭하게 말했다.“맥을 짚는 건 한의술이라고 해요. 일본 의술도 한의술을 따라 배웠으면서, 그깟 의술을 좀 배웠다고 시조를 무시하면 안 되죠. 아마미야 씨는 안 되겠네요. 설마 나은이가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니죠?”김예훈이 장덕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확인해 보니 전남산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병에 걸린 것이 아니네요.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뭐라고요?”장덕수는
“책임이요? 어떻게 책임질 건데요?”아마미야가 피식 웃었다.“한국인들은 참 재미있네요. 병을 치료할 생각이나 하지 않고 사기꾼이나 찾고 말이에요. 설마 그림 몇 장을 그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할 건 아니죠? 정말 웃겨!”김예훈이 한참 동안 아마미야를 차갑게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어르신, 나은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어요?”장덕수가 멈칫하더니 대답했다.“반년은 되었을 거예요.”“그러면 이렇게 되기 전에 음기가 가득한 곳에 다녀온 적은 있을까요? 무덤이나 구석진 마을이나 폐허 같은 곳이요...”김예훈이 진지하게 묻자 장덕수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있어요. 이렇게 되기 전에 사당에 한 번 데려간 적 있어요.”장덕수가 계속해서 설명했다.“예전에 전쟁 났을 때 사당을 부산 법조계에 옮긴 적이 있어요. 나은이를 데리고 부산에 왔을 때 마침 추석이라 조상님 뵈러 갔는데 며칠 뒤...”김예훈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혹시 그 사당에 가볼 수 있을까요?”장덕수가 멈칫하고 말았다.“김예훈 씨, 설마 나은이가 사당에 가서 귀신에 씐 건 아니죠? 김예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아마미야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정말 웃기네요. 어르신, 설마 이 사기꾼 말을 믿는 거예요? 소아 치매를 사당이랑 연관 지으려는 거예요? 이봐! 지금 장난해? 당장 꺼지지 못해? 어디서 이곳에서 사기를 치고 있어! 안 가면 경찰에 신고해 버릴 거야!”아마미야는 김예훈을 밀쳐내려다 결국 참았다.하지만 표정을 보니 김예훈의 멱을 따서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이에 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아마미야 씨는 나은이랑 사이가 좋은가 봐요. 그런데 나은이를 끔찍이 생각하시면서 왜 제가 치료해 주는 것을 방해하려고 그러시죠? 설마 일본에 계시는 그 스승님이 치료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마미야 씨 조상님도 한국인인 거 잊으셨어요? 일본에 잠깐 있는 사이 성까지 바꿔서 조상님도 잊으신 거 아니죠? 설마 나은이 병이 당신이랑 연관 있는 건 아니죠?”김예훈의 웃을
김예훈은 차가운 눈빛으로 아마미야를 쳐다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나은이 상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심각해질 거예요. 제가 아무리 사기꾼이라고 해도 나은이한테 피해 가지 않을 텐데 시도해 보면 어때요? 아님, 제가 나은이를 살려내면 당신한테 불리한 상황이 일어나는 건가요?”아마미야는 표정이 확 변하더니 장덕수를 쳐다보았다.“어르신, 저는 나은이 주치의를 맡고 있으면서 누구보다 나은이 상태를 잘 알고 있다고 믿어요. 나은이한테 필요한 것은 휴식이에요. 제가 직접 일본에 가서 제 스승님을 모셔 올게요. 이상한 사람한테 맡겼다가 상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어요. 그때 되면 저의 스승님이 오셔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어르신께서 저를 믿어만 주신다면 나은이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저는 제 지금까지의 노력이 저 사람 손에 망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늘 무슨 사고가 발생하든 저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예요!”무조건 자기 뜻대로 해야 한다는 아마미야의 말투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지금까지 나은이를 돌보면서 장씨 가문에서 어느정도 입지를 굳힌 것 같았다.아니면 이렇게까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야를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니혼 의과대학을 졸업하셨으면 일본 왕실 주치의를 맡았었겠네요?”아마미야가 뒷짐을 쥐고 으쓱해 하면서 말했다.“그래. 내 신분을 알았으면 스승님이 어떤 분이신지 짐작이 가겠네?”“일본에서 신의라고 불리고 있는 야마모토 씨 맞죠?”김예훈이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아마미야는 멈칫하더니 자기 스승을 자랑했다.“맞아. 내 스승님은 신의라고 불리고 있는 야마모토야. 이쯤 되면 전 세계에서 우리 스승님 빼고 나은이를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겠는데?”김예훈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야마모토 씨는 일본 신의라고 불리고 있는 동시에 음양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으시죠? 야마모토 씨의 제자는 의술 외에도 음양술에도 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당신의 얼굴이 발그레하고 입술이 하얀 것이
“아님, 진짜 신분을 알아낼까 봐 일부러 잘난 척했던 거예요? 양심에 찔렸어요?”하은혜가 비웃으면서 말했다.장덕수는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았다. 그는 용연옥에서 일하면서 대부분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을 신경 쓰고 있었다.하지만 그래도 일본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아마미야의 반응을 보니 뻔히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김예훈이 뒷짐을 쥐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음양술을 익힌 사람은 등에 음양을 대표하는 해와 달 문신이 그려져 있다고 알고 있어요. 일본 음양술사끼리 이 문신으로 상대방 신분을 확인한다면서요? 음양술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셨죠? 그러면 옷을 벗어 저희한테 보여주시죠?”“이 사람이 진짜 너무하네!”아마미야는 김예훈에게 삿대질하면서 욕설을 퍼붓더니 씩씩거리면서 장덕수를 쳐다보았다.“어르신, 저는 장씨 가문을 존경하는 사람이라 성심성의껏 나은이를 돌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사기꾼 새끼가 저를 모함하는데 어떻게 한마디도 안 하실 수 있으세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을 것 같네요. 이제부터 다른 분을 모시세요!”아마미야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문밖에 발을 내딛자마자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변하고 말았다.퍽!뒤에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아예 그를 발로 걷어차서 다시 안으로 들여보냈다.장덕수는 방금 그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듯이 뒷짐을 쥐고 담담하게 말했다.“가란 말도 안 했는데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이때,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정장을 입은 8명의 장정이 밖에서 걸어들어오더니 아마미야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아마미야는 표정이 확 변하더니 소리를 질렀다.“어르신, 오해에요! 제가 화가 나 떠나려던 것이 아니라 일본에 가서 스승님을 모셔오려고 그랬어요! 저는 이 사기꾼 새끼가 아무 말이나 하는 꼴을 못 보겠어요! 저를 보내주시면 3일 내로 스승님을 모셔 올게요.”“됐어.”장덕수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일본 신의라는 사람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네. 이봐, 옷을 벗겨서 등에 문
아마미야의 움직임이 빨랐지만 장덕수의 움직임은 더욱 빨랐다.그가 손끝으로 공기를 튕기자 비수가 절반으로 쪼개져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이어 장덕수는 아마미야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퍽!밖으로 도망치려던 아마미야는 장덕수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널브러져 피를 토해내고 말았다.아마미야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장덕수는 또 그의 이빨이 다 빠질 정도로 뺨을 때렸다.이빨 중에 유난히 검은 이빨이 보였다. 독이 들어있는 이 이빨이 없으면 아마미야는 자살도 하지 못했다.장덕수는 또 그의 사지를 걷어찼다.빠직!아마미야는 결국 사지가 끊어져 움직이지도 못했다.현장에서 지켜보던 몇몇 의사와 간호사들은 무서워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장덕수가 나이가 있긴 했지만 그 실력은 어마어마했다.아무도 2, 3초 만에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아마미야가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 몰랐다.아마미야의 등을 확인하자 역시나 해와 달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누군가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자 바로 전화가 왔다.잠시 후 장덕수가 담담하게 말했다.“용전을 통해 확인했는데 일본 음양술사 전용 문신이 맞다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 모끄 가문의 사람 맞지? 한국인이 일본에서 몇 년 동안 배운 음양술을 한국인한테 써먹을 줄 몰랐네? 이봐. 이놈을 용전으로 끌고 가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싶은지 끝까지 심문해 봐.”두 장정에게 끌려가는 아마미야는 얼굴에 절망이 가득했다. 자살 시도도 못 하는 상황에서 용전으로 끌려갈 생각을 하니 공포가 앞섰다.용전은 용연옥, 용문당, 용부대와 달랐다.용전이 존재하는 목적은 해외 세력과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간단히 말하자면 용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대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신분 높은 용전 집권자는 애국심이 대단했다.용전에 잡힌다는 것은 용연옥에 잡히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었다.용전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원하는 대답을 듣는 곳이었다.아마미야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김예훈을 악독스러운 눈빛으로 째려보았다.정말 김예훈을 갈기갈기 찢어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