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님, 진짜 신분을 알아낼까 봐 일부러 잘난 척했던 거예요? 양심에 찔렸어요?”하은혜가 비웃으면서 말했다.장덕수는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았다. 그는 용연옥에서 일하면서 대부분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을 신경 쓰고 있었다.하지만 그래도 일본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아마미야의 반응을 보니 뻔히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김예훈이 뒷짐을 쥐면서 담담하게 말했다.“음양술을 익힌 사람은 등에 음양을 대표하는 해와 달 문신이 그려져 있다고 알고 있어요. 일본 음양술사끼리 이 문신으로 상대방 신분을 확인한다면서요? 음양술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셨죠? 그러면 옷을 벗어 저희한테 보여주시죠?”“이 사람이 진짜 너무하네!”아마미야는 김예훈에게 삿대질하면서 욕설을 퍼붓더니 씩씩거리면서 장덕수를 쳐다보았다.“어르신, 저는 장씨 가문을 존경하는 사람이라 성심성의껏 나은이를 돌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사기꾼 새끼가 저를 모함하는데 어떻게 한마디도 안 하실 수 있으세요?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을 것 같네요. 이제부터 다른 분을 모시세요!”아마미야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문밖에 발을 내딛자마자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변하고 말았다.퍽!뒤에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아예 그를 발로 걷어차서 다시 안으로 들여보냈다.장덕수는 방금 그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듯이 뒷짐을 쥐고 담담하게 말했다.“가란 말도 안 했는데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이때,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정장을 입은 8명의 장정이 밖에서 걸어들어오더니 아마미야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아마미야는 표정이 확 변하더니 소리를 질렀다.“어르신, 오해에요! 제가 화가 나 떠나려던 것이 아니라 일본에 가서 스승님을 모셔오려고 그랬어요! 저는 이 사기꾼 새끼가 아무 말이나 하는 꼴을 못 보겠어요! 저를 보내주시면 3일 내로 스승님을 모셔 올게요.”“됐어.”장덕수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일본 신의라는 사람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네. 이봐, 옷을 벗겨서 등에 문
아마미야의 움직임이 빨랐지만 장덕수의 움직임은 더욱 빨랐다.그가 손끝으로 공기를 튕기자 비수가 절반으로 쪼개져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이어 장덕수는 아마미야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퍽!밖으로 도망치려던 아마미야는 장덕수의 주먹에 맞아 바닥에 널브러져 피를 토해내고 말았다.아마미야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장덕수는 또 그의 이빨이 다 빠질 정도로 뺨을 때렸다.이빨 중에 유난히 검은 이빨이 보였다. 독이 들어있는 이 이빨이 없으면 아마미야는 자살도 하지 못했다.장덕수는 또 그의 사지를 걷어찼다.빠직!아마미야는 결국 사지가 끊어져 움직이지도 못했다.현장에서 지켜보던 몇몇 의사와 간호사들은 무서워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장덕수가 나이가 있긴 했지만 그 실력은 어마어마했다.아무도 2, 3초 만에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아마미야가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 몰랐다.아마미야의 등을 확인하자 역시나 해와 달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누군가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자 바로 전화가 왔다.잠시 후 장덕수가 담담하게 말했다.“용전을 통해 확인했는데 일본 음양술사 전용 문신이 맞다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 모끄 가문의 사람 맞지? 한국인이 일본에서 몇 년 동안 배운 음양술을 한국인한테 써먹을 줄 몰랐네? 이봐. 이놈을 용전으로 끌고 가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싶은지 끝까지 심문해 봐.”두 장정에게 끌려가는 아마미야는 얼굴에 절망이 가득했다. 자살 시도도 못 하는 상황에서 용전으로 끌려갈 생각을 하니 공포가 앞섰다.용전은 용연옥, 용문당, 용부대와 달랐다.용전이 존재하는 목적은 해외 세력과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간단히 말하자면 용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대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신분 높은 용전 집권자는 애국심이 대단했다.용전에 잡힌다는 것은 용연옥에 잡히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었다.용전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원하는 대답을 듣는 곳이었다.아마미야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김예훈을 악독스러운 눈빛으로 째려보았다.정말 김예훈을 갈기갈기 찢어
하은혜가 이상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일본인들이 원래 그런 거 아시잖아요. 총사령관님 혼자서도 전부 물리쳤는데 총사령관님께서 똑같은 실력자를 대량 배양해 내면 일본 왕실에서 불안해 어떻게 살겠어요. 이런 상황에서 찾아온 거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죠.”장덕수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우리 장씨 가문에서는 늘 일본과 친하게 지내면 안 된다고 했어. 그런데 나라 간의 일이라 우리 장씨 가문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더라고. 어떤 세력 집안에서는 이익충돌로 진작에 입지를 잃었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해 전쟁을 총사령관님이 세계평화를 깨뜨렸다고 탓하고 있더라고. 지금 일본, 리카 제국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서로 돕자고 그러는 거라면서. 그런데 어느 날 이익충돌이 생기면 당연히 깨질 관계지. 대한민국이 일어선 것만 해도 그들한테 불리한 상황이 닥친 거지.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무너뜨려서 발판으로 삼는 거지. 그런데 시대가 변했고, 백만 부대를 이끄는 총사령관님도 계시고, 애국심이 강한 국민도 많은데 일본인들이 어떻게 할 수 있겠어?”장덕수는 나이를 먹어도 애국심이 여전했다.김예훈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사람마다 정덕수와 같은 생각이었다면 그해 전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국제 형세의 영향 때문에 모든 일본 세력과 일본인을 내쫓을 수는 없겠지. 그러다보면 언제든지 대한민국에서 사고 칠 위험이 있을 것이고.”장덕수가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이런 일은 용전에서 책임지고 있어서 용연옥에서는 상관할 바가 못 돼. 일본인들이 나한테까지 손을 뻗었는데 무슨 짓을 하고 싶은 건지 똑똑히 알아내야겠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어르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목적은 뻔하잖아요. 일본 모끄 가문은 나카노 가문과 함께 5대 가문으로서 일본 왕실의 명령을 듣고 있잖아요. 어르신 옆에 잠복해 있다가 나은이를 이용해서 어르신의 믿음을 얻고 나중에 어르신마저 이용하려던 속셈이었겠죠. 어르신께서는 용연옥의 고위층이자 전국 1
장덕수가 박장대소를 지었다.“역시 김예훈 씨는 남다르네요. 이러시죠. 제가 뭐 드릴 것도 없는데 저희 용연옥에 들어오는 거 어때요? 마침 자리가 하나 비는데 괜찮다면...”장덕수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하은혜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어르신, 김 대표님은 이미 부산 용문당 회장님이십니다. 아마도 용연옥에는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데요...”“부산 용문당 회장?”장덕수가 멈칫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용문당에서 젊고 능렸 있는 회장을 찾았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김예훈 씨일 줄은 몰랐네요! 제가 몰라뵀네요! 그런데 부산 용문당 회장직은 쉽지 않을 거예요. 야마자키파가 부산에서 실력을 늘리면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던데... 무술 교류를 빌미로 온 거라 내쫓기도 뭐하고... 무조건 조심하셔야 해요. 야마자키파 종주라는 사람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에요. 소문에 의하면 곧 부산에 올 거라고 하던데 김예훈 씨를 타깃으로 삼고 올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꼭 조심해야 해요.”김예훈이 잠깐 멈칫했다.‘야마자키파도 그렇고 방호철도 그렇고 나한테 많이 당해서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을 꾸미고 있었다니. 그러면 내가 먼저 움직여야겠네. 부산에서의 야마자키파 세력을 전부 없애야겠어. 아님. 야마자키파 종주라는 사람이 부산에 와서 세력을 모으면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어.’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아, 김예훈 씨. 아까 나은이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에요?”아까까지만 해도 김예훈의 실력에 대해 반신반의했다면 지금은 백 퍼센트 믿고 있었다.부산 용문당 회장이라는 신분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었기 때문이다.김예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어르신, 저는 없는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혼이 사당에 남아있는지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만약 정말 그곳에 있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원래 장덕수는 이런 것을 믿지 않았지만 아마미야의 수작을 직접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그래요. 그러면 같이 사당으로 갑시다. 이봐.
장덕수는 그만 멈칫하고 말았다.“저의 아버지십니다.”김예훈이 바로 말했다.“이 비석을 부숴야겠습니다.”장덕수는 물론 옆에 있던 보디가드들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장덕수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버지의 비석을 부수라고 말할 사람은 김예훈밖에 없었다.장덕수는 잠깐 멈칫하더니 직접 자기 손으로 비석을 들어 바닥에 떨어뜨렸다.와장창.그의 힘으로 박살 낼 것 같았는데 철제소리가 들리더니 사당 구석으로 굴러갔다.이때 비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김예훈은 재빨리 비석을 마당 쪽으로 걷어찼다.햇빛 아래, 비석에서는 검은 연기가 점점 더 많이 피어오르더니 그 연기가 사악하게 웃는 귀신 얼굴로 변하면서 서서히 사라졌다.김예훈이 이 비석을 장나은의 이마에 갖다 대자 하얀 불빛이 비석에서 새어 나오더니 장나은의 이마로 들어갔다.비석은 그대로 가루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이때, 바닥에 검은 종이 인형이 활활 타오르더니 재로 변해버렸다.“이런 젠장!”장덕수는 화가 나서 이를 갈았다.“망할 일본 놈들, 전부 다 죽었어.”“김예훈이 피식 웃었다.“어르신, 전부 극단적일 필요 없어요. 일본 사람이라고해서 전부 다 이런 것은 아니에요. 나쁜 심보를 가진 사람만이 이런 짓을 하는 거예요. 이 일은 제가 대신 분풀이를 해드리죠. 어차피 하는 김에...”...저녁쯤, 사쿠라가 머무르고 있는 별장 내.사쿠라는 옆에 있는 은백색의 거울을 보더니 표정이 일그러졌다.깨진 흔적을 보니 장덕수를 타깃으로 한 계획이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빨리 확인해 봐! 도대체 누가 이 계획을 망쳤는지! 그리고 아마미야도 불러와. 사건의 모든 과정을 알아야겠어!”화가 난 사쿠라는 씩씩거리더니 옆에 있는 물건을 집어 던졌다.원래 계획대로 잘 흘러갔다면 장덕수를 이용해 용연옥을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대량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용연옥 고위층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모든 것이 이대로 끝날
다음 날 점심, 운전해서 부산 국제공항에 도착한 김예훈은 VIP 통로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1시간이 지나도 상대방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다.김예훈은 그만 미간을 찌푸리더니 익숙하게 누군가에게 전화했다.“지금 거신 전화는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김예훈은 표정마저 일그러졌다.약속 시간을 칼같이 지키던 정민아는 약속 시간이 12시라면 무조건 12시에 제때 나타날 사람이었다.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정민아가 탑승한 비행기는 이미 1시간 전에 도착했다고 했다.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의아한 표정으로 정소현에게 전화했다.정소현은 전화를 바로 꺼버리고 문자로 한 주소를 보내왔다.부산 타임 가든.김예훈은 두 눈이 반짝거렸다. 부산 타임 가든의 소비는 일반인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그런 곳을 자주 드나들지 않는 정소현이 이 주소를 보내올 줄 몰랐다...김예훈은 액셀을 밟아 쏜살같이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반 시간 뒤, 김예훈은 부산 타임 가든 앞에 주차하고 3층으로 향했다.3층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임은숙, 정군, 정민아, 정소현 그 일가가 전부 다 있었다.그 외에도 이곳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하는 두 사람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육미선과 방호철이였다.육미선은 한껏 방호철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이와 반면, 방호철은 차가운 표정이었지만 두 눈은 반짝거리고 있었다.임은숙과 정군 역시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오직 정민아와 정소현만이 차가운 표정을 하고서 앉아있었다.김예훈은 멈칫하고 말았다. 비록 육미선이 임은숙을 도와 방호철과의 소개팅을 주선할 거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다급히 진행할 줄 말랐다.심지어 정민아의 핸드폰을 꺼버리고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이곳으로 끌고 올 줄 몰랐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서 이들에게 접근했다.이 소개팅 자리는 그의 자존심을 짓밟는 거나 다름없었다.아무리 그래도 부부 사이인데 서로 이혼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민아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왜 왔어?”주선자 육미선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이 자리가 무슨 자리인 줄 알고 온 거야. 마음대로 오고 싶으면 오는 자리인 줄 알아? 너 자신의 처지를 알기나 해? 당장 꺼져!”육미선은 처음부터 김예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아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외제 차를 팔아 몇백억 원을 벌었으면서 이 둘 모자에게 한 푼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염치없는 자식! 지후가 차를 박지 않았다면 이렇게나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겠어?’육미선은 김예훈이 차를 팔아서 번 돈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우리한테 줄 생각도 하지 않고 사라져 버려? 이런 젠장!’바로 이때, 임은숙은 방호철이 있는 곳을 힐끔 보더니 일어나 김예훈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냉랭하게 말했다.“김예훈, 누가 오라고 했어? 내가 말해주는데, 네가 나한테서 4천억 원을 뜯어간 이후로 넌 내 사위가 아니야! 네가 양심이 있으면 그 4천억 원을 나한테 다시 돌려주고 꺼져! 내일 이혼합의서를 보내줄 테니까 얼른 사인해. 우리 민아의 앞길을 막지 말고! 방 도련님은 서울 4대 도련님 중의 한 명으로 너랑 비교도 안 돼.”김예훈이 임은숙을 쳐다보면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혼하든 말든 어머님께서 상관할 바가 아닌 것 같은데요? 저랑 민아 사이에 다른 사람은 절대 끼어들지 못해요.”“그래?”육미선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이번 소개팅에 성공하면 소개비로 6억 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성사되었으면 하는 사람이 바로 육미선이었다.그녀는 김예훈에게 삿대질하기 시작했다.“염치없는 자식. 그딴 소리할 거면 꺼져! 예전부터 자식 결혼은 부모가 결정하는 거라고 했어. 장모님이 너를 인정해 주지 않는데, 넌 아직도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빨리 꺼지지 않고 뭐해!”김예훈이 가지고 있는 몇백억 원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지만 6억 원의 소개비는 어떻게든 받아내려고 했다.임은숙은 조급한 마음에 방호철 쪽을 또 힐끔 쳐다보았다. 다행히 아직 전화하고 있어 작전을 바꿔보려고 했다.
임은숙은 김예훈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방호철을 자기 사위로 만들 수 있게 김예훈이 가주기만 한다면 무릎 꿇고 사과할 준비까지 되어있었다.예전이라면 절대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발을 동동 구르면서 협박, 애원하는 임은숙의 모습에 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정민아를 쳐다보았다.한 달 안 본 사이 정민아의 모습은 전보다도 더 지적이었다.견씨 가문의 수장이 되어서인지 이 짧은 시간 내에 많이 성장한 것 같았다.변화가 너무 커서 한순간에 알아보지도 못했다.하지만 정민아가 김예훈을 바라보는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그녀는 그저 김예훈을 무시하고 아무 말 없이 차를 마실 뿐이다.김예훈은 어이가 없어 정소현을 힐끔 쳐다보았다.정소현의 쌤통이라는 표정에 김예훈은 더 말문이 막혔다.아마도 그동안 했던 짓이 들통났을지도 몰랐다.하지만 구체적으로 우현아 때문인지, 아니면 하은혜 때문인지는 몰랐다.정민아가 김예훈을 거들떠보지도 않자 육미선은 더욱 자신감이 넘쳐났다.그녀는 테이블을 퍽 치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예훈. 방 도련님은 진정한 도련님이셔. 서울 4대 도련님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봐. 민아를 점찍어두셨는데 네가 이 일을 망쳐버리면 죽게 된다는 거 몰라?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당장 꺼져! 여기서 나가자마자 차에 치여 죽을까 봐서 그래!”육미선은 정소현을 쳐다보더니 나무랐다.“소현아, 말 좀 들어. 너만 핸드폰을 켜놓고 있잖아. 네가 김예훈한테 문자 보냈지? 네가 무슨 짓을 한 거 알아? 어떻게 이 병신같은 놈을 이곳까지 불러와서 일을 그르치게 할 수 있어! 방 도련님의 심기를 건드릴지는 몰라도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이 타임가든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창피해지는 거 몰라?”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육미선은 욕쟁이 아줌마와 다름없었다.“우리가 타임 가든을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방 도련님 덕분이라고. 우리가 도련님을 팔아서 김예훈까지 끌어들인 걸 알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정소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