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숙은 김예훈에게 사정하기 시작했다.방호철을 자기 사위로 만들 수 있게 김예훈이 가주기만 한다면 무릎 꿇고 사과할 준비까지 되어있었다.예전이라면 절대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발을 동동 구르면서 협박, 애원하는 임은숙의 모습에 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정민아를 쳐다보았다.한 달 안 본 사이 정민아의 모습은 전보다도 더 지적이었다.견씨 가문의 수장이 되어서인지 이 짧은 시간 내에 많이 성장한 것 같았다.변화가 너무 커서 한순간에 알아보지도 못했다.하지만 정민아가 김예훈을 바라보는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그녀는 그저 김예훈을 무시하고 아무 말 없이 차를 마실 뿐이다.김예훈은 어이가 없어 정소현을 힐끔 쳐다보았다.정소현의 쌤통이라는 표정에 김예훈은 더 말문이 막혔다.아마도 그동안 했던 짓이 들통났을지도 몰랐다.하지만 구체적으로 우현아 때문인지, 아니면 하은혜 때문인지는 몰랐다.정민아가 김예훈을 거들떠보지도 않자 육미선은 더욱 자신감이 넘쳐났다.그녀는 테이블을 퍽 치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예훈. 방 도련님은 진정한 도련님이셔. 서울 4대 도련님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봐. 민아를 점찍어두셨는데 네가 이 일을 망쳐버리면 죽게 된다는 거 몰라? 너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그러니까 당장 꺼져! 여기서 나가자마자 차에 치여 죽을까 봐서 그래!”육미선은 정소현을 쳐다보더니 나무랐다.“소현아, 말 좀 들어. 너만 핸드폰을 켜놓고 있잖아. 네가 김예훈한테 문자 보냈지? 네가 무슨 짓을 한 거 알아? 어떻게 이 병신같은 놈을 이곳까지 불러와서 일을 그르치게 할 수 있어! 방 도련님의 심기를 건드릴지는 몰라도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이 타임가든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창피해지는 거 몰라?”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육미선은 욕쟁이 아줌마와 다름없었다.“우리가 타임 가든을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방 도련님 덕분이라고. 우리가 도련님을 팔아서 김예훈까지 끌어들인 걸 알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정소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정민아는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괜찮더니 왜 화가 나 있는지 몰랐다.하지만 김예훈은 태도를 바로잡으려고 했다.어떻게든 오늘 이 소개팅 자리는 계속 진행시키면 안 되었다.상대방이 방호철이든, 누구든 절대 안 되었다.남편이 보는 앞에서 와이프가 다른 남자랑 소개팅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오직 임은숙만이 만들 수 있었다.“나보고 꺼지라는 말이야?”육미선이 코웃음 쳤다.“그런 말이나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세자님도 아니고, 도련님도 아닌 것이 내 앞에서 무슨 잘난 척이야! 내가 봤을 때, 네가 이러는 거 너만 창피했지, 아무런 도움도 안 돼. 우리가 아는 척하지 않았으면 너는 진작에 보디가드한테 쫓겨났어! 계속 난동 부릴 거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육미선이 팔짱을 끼고 김예훈을 깔보면서 말했다.그녀는 부산 현지인 이외의 돈 없는 촌놈을 제일 싫어했다.서울 사람인 방호철은 절대 촌놈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꺼지세요.”육미선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보고 꺼지라고? 지금 당장 보디가드를 불러야겠어. 언제까지 잘난 척하는지 두고보겠어. 김예훈, 너!”쨕!김예훈 뺨 한 대에 육미선은 저 멀리 날아가 테이블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김예훈이 정말 자기 뺨을 때릴 줄 몰랐는지 어안이 벙벙했다.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더니 씩씩거리면서 달려들었다.“김예훈, 감히 날 때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죽여버릴 거야!”쨕!김예훈은 또 차가운 표정으로 육미선의 뺨을 때렸다.“죽여? 날 어떻게 죽이려고? 나라고 당신을 죽이지 못할 것 같아? 여자라서 봐주는 거야. 한마디만 더 했다가 그 입을 찢어버릴 거니까. 밥 먹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김예훈의 싸늘한 표정에 육미선은 소름이 끼치고 말았다.강한 상대에게는 약하고, 약한 상대에게는 강한 그녀는 김예훈이 가만히 있을 때만 기승을 부렸지 정작 김예훈에게 뺨을 맞자
정민아의 성격을 잘 알고있는 김예훈은 설명하려다 방호철이 전화를 끊고 뒷짐 쥐고 걸어들어오는 것을 보았다.두 눈이 마주치고, 공기 속에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훤칠하고 잘생긴 외모에 상류 인사의 분위기를 풍기는 방호철을 임은숙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겉으로만 봤을 때, 방호철한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김예훈한테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많아 보였다.“세상이 참 좁아.”방호철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더니 피식 웃었다.“경매장에서 보고 한 번도 못 봤네. 잘 지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럼요. 부산 버뮤다 H 번지 곧 시공 들어갈 예정이에요. 모두 다 방 도련님 덕분이죠.”김예훈의 도발에 방호철은 눈을 파르르 떨었다.하지만 그래도 곧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마침 오늘 정민아 씨랑 소개팅하는 자리인데 별일 없으면 같이 밥 한 끼 하는 거 어때?”김예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설마 민아가 제 와이프인 거 몰랐어요?”방호철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네가 몰랐나 본데, 내 취미가 바로 다른 사람의 와이프를 뺏는 거야. 오늘도 네가 많이 도와줘야겠는데?”쨕!김예훈은 바로 방호철의 뺨을 때렸다.“이런 요구는 정말 처음 들어보네. 어때, 마음에 들어? 마음에 안 들면 더 때려줄까?”“뭐 하는 짓이야!”“네가 감히?”“죽고 싶어?”김예훈이 방호철의 뺨을 때리는 순간, 사람들이 사면팔방에서 벌떡 일어나 김예훈에게 총을 겨냥했다.방호철 한마디면 바로 방아쇠를 당길 것만 같았다.임은숙 등이 제자리에 얼어붙어 있을 때, 정소현이 외쳤다.“형부!”정민아 역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의 손짓하나면 밖에서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뛰어 들어와 대격전이 벌어질지도 몰랐다.바로 이때, 방호철이 자기 뺨을 어루만지더니 웃으면서 말했다.“뭐 하는 거야! 어떻게 감히 김 도련님한테 총을 내밀 수 있어! 뺨 맞아 죽고 싶어?”보디가드들은 방호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결국 이곳에는 김예훈, 정민아와 정소현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김예훈은 표정 관리를 하면서 정민아를 향해 웃었다.“민아야, 날 걱정했어?”김예훈은 정민아의 손을 덥석 잡았다.부부 사이에 이런 스킨십은 지극히 정상이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소현은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이 사람을 떼어놓으려고 했다.“왜 이러는 거예요! 형부! 제대로 설명하기 전까지 우리 언니 터치하지도 말아요! 언니가 용서한다고 해도 저는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요.”정소현은 한 웅큼의 자료를 테이블에 던졌다.김예훈은 눈가를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어디서 온 사진인지는 몰라도 차 안에서 우현아가 김예훈의 품에 안겨있는 모습이었다.비록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김예훈과 우현아가 연인 사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었다.이 외에도 김예훈과 우현아가 손을 잡고있는 모습, 함께 링 대결을 구경하던 모습...얼마나 묘한지 누가 일부러 각도를 맞춰 찍은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민아야, 이 사람은 우현아라고 해. 부산에 있는 친구. 이 사진들은 누가 일부러 날 모함하려고 찍은 거라고. 우린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야. 결백해.”“그래? 확실해?”정민아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좋을 거야. 아니면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김예훈이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해.”“그래. 그러면 이것도 설명해 봐.”정민아는 녹음기 하나를 꺼내 재생 버튼을 눌렀다.“현아는 제 여자예요. 아무도 강제로 결혼시킬 수 없어요...”자기 목소리에 김예훈은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았다.정민아가 코웃음을 쳤다.“네 여자라고 직접 인정했잖아. 시집도 못 가게 하고! 김예훈, 네가 쓰레기인 거 우현아 씨도 알아? 내가 직접 전화해서 알려줄까? 내가 너 와이프라고?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차로 너를 박아버리지 않을까? 안 그래?”김예훈은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민아야, 넌 똑똑한 사람이잖아. 모르겠어? 이 모든 것이 누군가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부산 타임 가든 밖, 김예훈의 안색이 어두워져 있을 때, 토요타 센추리 한대가 방호철 앞에 멈추더니 왼쪽 뒷좌석 문이 서서히 열렸다.이때 낙엽 한 장이 바람에 따라 흩날려 방호철 앞에 떨어졌다.방호철은 낙엽을 주워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는 바람에 흩날려 보냈다.이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바람이 멈췄으니 김예훈 죽을 때가 됐네.”...부산 타임 가든 내, 직원들은 어느샌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정민아는 무슨 말을 하려다 움찔하고 말았다.정소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 어지러운 느낌에 테이블 위에 엎드려 쓰러지고 말았다.깜짝 놀란 정민아 역시 정소현을 부축하려다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씌워져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중독?”김예훈은 당황도 잠시, 전에 전남산한테서 받았던 해독제와 진통제를 꺼냈다.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민아와 정소현에게 먹였다.정민아와 정소현은 오바이트를 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숨소리마저 긴박해졌다.김예훈은 맥을 짚어보고는 표정이 순간 어두워지고 말았다.비록 의사는 아니었지만 살인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정민아와 정소현에게 먹인 해독제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고, 오히려 독이 더 빨리 퍼지기 시작했다.누군가 김예훈이 이 해독제를 먹일 줄 알고 일부러 더 강한 독을 퍼뜨린 것이 틀림없었다.그렇다면 김예훈을 노리고 있는 자는 그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아니면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독이 퍼지는 걸 내버려 둔다면 정민아와 정소현이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었다.김예훈은 급하게 아까 먹였던 해독제를 토해내게 만들었다.하지만 이마저도 독이 퍼지는 것을 늦출 뿐, 아무런 작용도 없었다.김예훈은 독이 빨리 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혈관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알맞은 해독제를 구하지 못하거나, 제때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하지 못한다면 기껏 해 2시간밖에 살지 못했다.김예훈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전남산에게 전화했다.
따르릉.김예훈이 겨우 한숨 돌리는 사이, 누군가한테서 전화가 왔다.전화를 받자 진윤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방금 들은 소식인데 반 시간 전에 우현아 씨를 보호하던 보디가드들이 전부 다 암살당했다고 합니다.”김예훈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뭐라고? 용문당 제자들이 보호해 주고 있었잖아.”진윤하가 씁쓸하게 말했다.“용문당 제자들도 희생당했습니다. 죽은 모습들을 보면 상대방이 강적이라 손댈 기회조차 없었나 봅니다. 회장님, 저의 잘못입니다. 제가 우현아 씨를 잘 보호하지 못했습니다.”김예훈은 한숨을 내쉬더니 평정심을 되찾았다.“오정범한테 은혜 씨 안전을 책임지라고 해! 그리고 용문당 제자들은 우리 장인, 장모님을 보호하고, 나머지는 부산 타임 가든으로 오도록 해.”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김예훈은 명령을 마치고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늘 언제 어디서나 갑자기 적이 나타나긴 했지만 처음으로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다 곧 문제 하나를 발견했다.전체 부산에서 임강호, 심현섭, 최산하, 진윤하를 포함해서 김예훈의 진짜 신분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그들이라면 절대 김예훈이 몸에 지니고 있었던 해독제를 목표로 이런 함정을 만들 리는 없었다.그렇다면 김예훈의 진짜 신분을 알고있는 유일한 사람은 부산 야마자키파 제1 검객 나카노 타로우일 수밖에 없었다...전에 김예훈의 실력에 놀란 척 굽신거렸던 것은 이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만약 사실이라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진짜 목적이 아니라 김예훈을죽이는 것이었다.김예훈은 본능적으로 정민아와 정소현을 안전지대에 옮기고는 뒤로 물러섰다.샤샥!김예훈이 뒤로 물러선 순간, 은밀한 곳에 숨어있던 누군가가 두 손에 검을 들고 김예훈을 향해 덮쳤다.검을 휘두르는 솜씨는 야마자키파에서 다년간 유실된 검술이었다.만약 김예훈이 제때 피하지 않았다면 두 동강이 났을 수도 있었다.뒤로 물러선다고 물러섰지만 워낙 테이블과 의자가 많아 손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퍽!
나카노 타로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김예훈을 가소롭게 쳐다보고 있었다.“대한민국 국방부 전설, 살아있는 신화라고 해도 그저 그렇네요. 방 도련님도, 사쿠라 씨도 당신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네요. 지난 성과를 봐서 신이라고 불러드렸더니 인제 와서 보니 아무런 의미도 없네요. 오늘 당신을 죽여버리면 이제는 신도 존재하지 않는 거네요. 대한민국의 전설은 오늘부로 사라지겠네요.”“부산 야마자키파 제1 검객, 역시 소문대로 만만찮은 분이었네요. 제가 너무 과소평가했어요.”김예훈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그런데 정말 비겁하네요. 저를 상대하려고 저의 와이프와 처제를 인질로 삼다니.”“존경하는 총사령관님, 이건 몰랐죠? 이 두 분 외에도 다른 분을 모셔 왔는데.”바로 이때, 로비에 있던 빔프로젝터 스크린이 밝아지더니 화면에 사쿠라의 모습이 나타났다.공해에 있는 한 크루즈의 갑반 위에는 사쿠라, 미야모토 외에도 익숙한 모습의 우현아도 보였다.온몸이 젖은 그녀는 사지가 묶여 입에 무언가 물고 있는 채로 반쯤 혼절한 상태였다.김예훈은 표정이 확 변하고 말았다.“사쿠라! 할 말이 있으면 나한테 해! 여자를 잡아놓고 뭐 하는 짓이야! 매너는 좀 지키시지?”사쿠라가 피식 웃었다.“총사령관님, 이렇게 된 마당에 그깟 매너가 중요해? 깜짝 놀랐네. 무시만 당하던 데릴사위의 진짜 신분이 전설 속의 총사령관이었다니. 너의 신분을 아는 순간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그때부터 생각했지. 너를 죽이기만 한다면 우리 일본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보여줄 수 있겠다고! 그러면 우리나라는 다시 이 대한민국을 점령할 수 있겠지!”김예훈은 예리한 눈빛으로 사쿠라를 쳐다보더니 말했다.“이 여자들이 죽든 말든 내가 상관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나? 일본이 나중에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이라고 생각해? 야마자키파를 싹쓸이해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은데.”사쿠라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총사령관님, 당신이 정말 그렇게 독한 사람이라면 할 수 없지. 그런데
김예훈이 싸늘하게 말했다.“어디 털끝 하나 건드려 봐. 야마자키파에서 땅 치고 후회하게 해줄 거니까. 방호철도 이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사쿠라는 일부러 놀란 척하더니 어깨를 쫙 펴면서 말했다.“아이고, 무서워라. 어떡하지? 나의 이 놀란 가슴을 잠재울 수밖에.”그러더니 옆에 있던 우현아의 뺨을 때렸다.쨕!우현아의 예쁜 얼굴에 뺨 자국이 생겼다.정신을 잃었던 우현아는 아픈 나머지 다시 정신을 차리더니 입에 물고 있던 천을 뱉으면서 말했다.“김예훈, 나 신경 쓰지 마...”쨕!우현아는 또 뺨을 맞아 말도 하지 못했다.“어머머, 정말 감동스러워서 못 보겠네.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장면 아니야? 그런데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이란 말이지.”김예훈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사쿠라, 넌 이제 죽었어.”우현아가 힘겹게 말했다.“김예훈, 난 정말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니까 신경 쓰지 마. 나한테 무슨 짓하지 못할 거야.”우현아는 워낙 똑똑했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만 아니라면 사쿠라가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김예훈한테 계속 당황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우현아 쪽에서도 김예훈 쪽의 위급한 상황이 보이는 것 같았다.“우현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해. 김예훈 저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봐야지...”사쿠라는 우현아의 턱을 들어 그녀의 입가에 뽀뽀하더니 혀를 내밀어 그녀의 입술을 핥으면서 말했다.“나카노 타로우 씨, 속전속결 하시기를 바랄게요. 제가 대신 맛보았는데 괜찮네요. 그 두 년은 중독되어서 가지고 놀 수 없을텐데 한 명을 살려둘게요. 이따 맘껏 즐겨보세요! 김예훈의 무릎을 꿇리고 저놈이 보는 앞에서 가지고 노는 상상만 해도 짜릿하네요...”사쿠라의 옆에 있던 부하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나카노 타로우도 웃으면서 말했다.“괜찮은 아이디어네요. 역시 사쿠라 씨는 다르네요!”김예훈은 표정이 더욱 어두워지더니 냉랭하게 말했다.“사쿠라, 걱정하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