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혜의 담담하고 차분한 모습에 오려원은 피식 웃고 말았다.“역시 서울 하씨 가문과 부산 심씨 가문의 후계자는 다르네. 10대 명문가는 상상력마저도 일반인들보다 뛰어난가? 그런데 똑똑히 말해주는데, 당신이 원하는 증거 따위는 없다고! 이 자료들이 쓸모 있다고 해도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재판장님 앞에 세우려면 일본에 보내야 할 텐데? 대한민국 법은 나한테 아무 소용이 없어. 이 사실이 공개되어 사람들이 날 비난한다고 해도 내가 신경 쓸 것 같아? 딸마저 죽은 상황에서 이런 걸 신경 쓸 것 같냐고! 내 딸을 죽인 범인을 죽일 수만 있다면 이미지 따위는 필요 없어.”하은혜가 담담하게 말했다.“오려원 씨, 말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죠. 부산 버뮤다 거리에 시위하라고 보낸 아줌마들은 이미 법을 어겼어요. 용연옥에서도 관심 가지고 보고 있다는데 이 사건의 배후가 밝혀지면 경찰이 가만둘 것 같아요?”오려원이 음흉하게 웃었다.“그렇구나. 누가 돈이 그렇게 많나 했네. 감히 거리에 돈을 뿌려가면서 내 일을 망쳐? 충청 갑부 심현섭의 손녀라면 말이 달라지지.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지금부터 법을 잘 지키고 일본에 가서 살면 되지. 왜, 날 죽이기라도 할 건가?”하은혜는 한숨을 내쉬더니 마지막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야마자키파에서 부산 버뮤다 H 번지를 그렇게 욕심내고 있던데 이 땅을 선물로 드리는 대가로 김 대표님의 결백을 증명해달라고 하면 들어주지 않을까요? 당신이 잘 협조해 주지 않으면 어렵게 얻은 영주권을 다시 잃을 수도 있겠죠? 영주권이 없어지만 그 은행 계좌가 어떻게 될까요?”오려원은 아까와는 다르게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그녀에게는 영주권이 인생의 전부이기도 했다.이것을 잃어버리면 죽기보다 못했다.“제 거래를 받아주면 200억 원을 더 드릴게요. 깨끗한 돈이니 걱정하지 말고요. 이 돈이면 충분히 남은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어때요? 대신, 부산에서의 모든 재산은 김 대표님의 소유로 들어가는 거예요.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저녁 무렵, 유홍기는 자료 하나를 들고 부산 제1 경찰서에 도착했다.심택연은 그런 그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도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뭐 하러 왔어? 김예훈을 풀어달라고 빌러 왔어? 내가 말해주는데, 난 오늘 임 어르신 전화를 10통이나 끊은 사람이야. 김예훈을 풀어달라고? 어림도 없어.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내가 권력을 남용했다간 부산 경찰서 이미지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고, 임 어르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야! 그러니까 나가!”심택연이 차가운 표정으로 출입문을 가리키자 유홍기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심 도련님, 저는 김 도련님을 풀어달라고 사정하러 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 익명으로 증거를 보내왔길래요. 심 도련님께서도 좋아하실 만한 증거죠. 자료에 의하면 후지와라 미유 씨는 에이즈 말기라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었습니다. 어머님이신 오려원 씨가 남은 평생 편하게 살라고 고의로 김 도련님을 모함했던 것입니다. 김 도련님한테 에이즈를 감염시키려고 우연한 만남을 가정해 김 도련님 욕실마저 빌렸던 것입니다. 이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하니 제 죽음으로 김 도련님을 궁지로 몰고 간 거죠. 그래서 모든 알리바이는 전부 거짓입니다. 김 도련님께서는 무죄로 석방되어야할 뿐만 아니라 저희 경찰서에서 사과해야할 정도입니다...”유홍기는 주머니에서 녹음기 하나를 꺼내 심택연에게 들려주었고, 또 사진 한 장과 친필서까지 보여주었다.심택연은 표정이 확 변하더니 서서히 말했다.“확실한 거 맞아? 원본이긴 하고? 다른 사람한테 공개한 적 있어?”유홍기가 담담하게 말했다.“이 증거들을 받자마자 임 어르신께 보고드렸습니다. 임 어르신께서는 심 도련님께 드리면 알아서 잘 처리해 주실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 도련님을 그 정도로 믿는다고 하셨습니다.”심택연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공과 사를 엄연히 구분하는 것이 맞긴 하지. 내일 아침 바로 석방해 드려. 그리고 언론에 사건의 진실도 알려드리고, 일
부산 제1 경찰서.김예훈은 변장우가 준비해 준 푸짐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바로 풀려났다.변장우 이들은 이상한 표정으로 경찰서 앞까지 배웅했다.아무도 김예훈이 잡힌 지 48시간도 안 되어 모든 알리바이가 뒤집힐 줄은 몰랐다.어쩌면 내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 사건을 다시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고, 심지어 이 사건이 더 복잡해질지도 몰랐다.하지만 김예훈이 무죄로 풀려난 것은 사실이었다.변장우 이들은 김예훈에게 너무 지나치게 무례하지 않았던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포르쉐 918 한대가 김예훈 앞에 세워지고, 차창이 내려지자 하은혜의 아리따운 얼굴이 보였다. 변장우 이들은 질투 나고 부럽기 그지없었다.하은혜는 차에서 내려 김예훈을 위해 직접 차 문을 열어주면서 웃으면서 말했다.“김 대표님, 수고 많으셨습니다.”김예훈은 변장우 이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수석에 올라탔다.“어떻게 해결하셨어요?”하은혜는 운전대를 돌리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후지와라 미유 씨 쪽에서 크게 발견된 점은 없었지만 방향만 잘 잡으면 사건을 파헤치기 어렵지 않을 거예요. 오려원 씨한테 며칠만 더 줬다면 진작에 도망쳤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저희한테 아무런 희망도 없었을 텐데 배후자가 성급한 나머지 저희에게 틈을 보여준 거죠. 그리고 저희 외삼촌을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했어요. 저희 외삼촌은 피도 눈물도 없으신 분이신데, 외삼촌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김 대표님을 궁지로 몰고 갔을 거예요. 아무튼 계획이 치밀해 보여도 빈틈이 있어서 김 대표님을 빼내는데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어요.”김예훈은 창문을 닫더니 말했다.“배후자가 방호철 씨라는 거 저희가 모두 아는 사실이잖아요. 제가 경매장에서 방호철 씨를 자극하는 바람에 완벽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해도 믿을 거예요?”하은혜가 미간만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김예훈이 계속해서 말했다.“방호철 씨는 서울 4대 도련님인 것만큼 철저하게 계획하여 빈틈이 없을 거예요. 처음부터 목적이 저랑 임 어르신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김 대표님의 뜻은...”하은혜는 잠깐 생각에 잠긴 듯했다.“일본인도, 방호철 씨도 해결해버리면 심씨 가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거예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런데 저희가 생각하고 있는 거, 상대방도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방호철 씨든 사쿠라 씨든 제가 살아서 이곳을 떠나는 거 지켜보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에요.”이때 김예훈과 하은혜의 표정이 동시에 변했다.김예훈이 왼손으로 하은혜의 다리를 터치하자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던 포르쉐 차량이 쏜살같이 앞으로 달렸다.피융!이때 총알 하나가 뒷좌석 유리를 뚫고 뒷좌석에 떨어졌다. 반응이 일 분이라도 늦었다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저격수예요!”김예훈은 방호철이 저격수를 보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는지 표정이 심각해졌다.이미 대한민국의 법을 어기려는 작정이었다.하은혜도 표정이 일그러지긴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핸들을 꺾어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피융!바로 이때, 또 총알 하나가 맞은편에 있던 화물차 트럭에 꽂혔다.트럭 기사는 비명을 지르더니 아예 신호등에 차를 박고 말았다.사면팔방에서 오는 차들이 멈춰버리자, 차 주인들은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밟긴 했지만 도통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이때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차가 도착했다.김예훈과 하은혜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했다. 김예훈은 저 멀리 있는 폐기된 건물에서 빨간 점이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이쪽을 노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저격수는 가면에 기다란 코트를 입고 있어 얼굴도, 성별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심지어 전체 부산을 사냥장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똑바로 서서 특이하게 총을 잡고 거침없이 김예훈을 노리고 있었다.“엎드려요!”“차를 버려요!”김예훈은 한순간에 판단이 섰는지 하은혜더러 핸들을 돌리라면서 비좁은 골목으로 안내했다.이때, 또 총알 하나가 앞바퀴를 관통했다.반응이 빨랐던 덕분에 차량은 비틀거리면서 골목에 들어서게 되었다.김예훈은 두 사람의 안전벨트를 풀어 하은혜를 안은 채 차 밖으로 뛰어내렸다.퍽!
김예훈은 상대방의 선제공격에 화를 내는 대신 침착하게 피해 다닐 뿐이었다. 결국 지름길을 통해 폐기된 그 건물에 도착하게 되었다.“하하, 재밌군!”코트를 입고있는 저격수가 중얼거렸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여자인 것 같았다.그녀는 아예 가면을 벗어던지고 사악한 미소를 짓더니 이곳을 벗어나는 대신 총알을 장전하고 김예훈이 무조건 지나칠 길을 폭파시키려고 했다.몇 초 뒤, 저격수는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퍽!김예훈이 피하는 바람에 총알은 머리 위에 있던 기둥에 꽂혔다.필사의 일격이 실패하자 저격수는 표정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그녀는 일본에서 유명한 저격수로서 쏘는 총마다 치명적이었다.김예훈이 연속적으로 리듬을 파괴하긴 했지만 오히려 흥미가 생겼다.그녀는 다시 평정심을 되찾고 방아쇠를 당겨 반대 방향을 사격했다.퍽!또 한 번 거대한 소리가 들려오자, 이번에는 무조건 김예훈의 머리를 적중 시켰을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나타난 것은 김예훈의 머리 대신 그의 외투였다.긴박하던 발걸음 소리마저 사라지고, 김예훈은 어느샌가 모습을 감추었다.“젠장!”김예훈의 실력이 이 정도일지 몰랐는지 저격수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지고 말았다.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의 총알을 피하는 사람은 없었다.김예훈이 이 정도로 상대하기 어려운 놈일 줄 몰랐다.저격수는 여러 번의 실패에도 상심하지 않고 수류탄 하나를 꺼내 김예훈이 있는 곳에 던졌다.퍽!거대한 폭발 소리와 함께 건물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말았다.이와 동시에 김예훈은 건물에서 몸을 피해 땅바닥을 굴렀다.저격수는 또다시 방아쇠를 당겼다.퍽! 퍽! 퍽!매번 김예훈이 착지한 곳을 적중하게 되었지만 김예훈은 그녀의 다음 행동을 먼저 예상했다는 듯이 깔끔하게 앞구르기 해서 벽 뒤에 몸을 숨겼다.저격수의 표정은 점점 더 사악해졌다.이 바닥에서 킬러를 해오면서 이렇게까지 상대하기 어려운 놈은 처음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김예훈이 끝까지 총알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끊임없는 사격에 벽에 구멍
김예훈은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세 발짝만 움직였지만 저격수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단 세 걸음으로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확 줄어들어 저격수에게는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당신 졌어.”김예훈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목표물이 가까워졌다는 건 죽음이 다가왔다는 뜻이다. 내가 너라면 총을 내려놓고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을 거야. 그러면 죽여주는 대신 군사법원에 보내줄게. 목숨만은 구제할 수 있을 거야.”김예훈의 미소를 지켜보던 저격수는 멈칫도 잠시, 손에 쥐고 있던 총을 바닥에 내던졌다.총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오른손에 비수 하나가 나타나면서 김예훈을 향해 덮쳤다.쨍!김예훈은 뒤로 물러나는 대신 방금 길가에서 주운 쇠 방망이 하나를 들었다.비수와 쇠 방망이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저격수는 휘청거리면서 뒤로 몇 보 물러서더니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김예훈은 그저 쇠 방망이를 만지작거릴 뿐 별로 표정 변화가 없었다.“저격수인 주제에 나랑 한판 붙어보자고?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저격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겠군.”김예훈은 미소를 거두고 앞으로 걸어갔다.저격수는 표정이 확 바뀌면서 뒤로 물러섰다. 뒤로 물러서면서 코트를 펼치는 순간, 열몇 자루의 비수가 날아왔다.김예훈은 쇠 방망이로 순식간에 이 비수들을 바닥에 떨어뜨렸다.이 장면을 지켜보던 저격수는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욕설을 퍼부었다.“바까야루!”“일본인이네...”김예훈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사쿠라 씨 사람이군. 그런데 내가 경찰서를 나서자마자 습격한 거, 방호철 씨한테 보고는 했나? 또 방호철 씨 일을 그르칠까 봐 두렵지도 않아?”김예훈의 차가운 말투에 저격수는 표정이 확 어두워지더니 여전히 아무 말도 못하고 공격을 가했다.비수, 다트, 화살, 독가스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김예훈이 있는 곳을 향해서 뿌렸다.하지만 이것마저도 김예훈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샤샥!또
뺨 한 대로 저격수는 아예 십몇 미터 밖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풉!”저격수는 피를 토해내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이때, 찢어진 옷 틈 사이로 하체에 그려져 있는 문신이 드러났다.김예훈은 표정이 이상해지면서 미간을 찌푸렸다.야마자키파?...두 시간 뒤, 부산 교외에 있는 한 별장 내.이곳은 오정범 이들의 은둔지였다. 비록 낡았지만 외딴곳에 있어 조용하기만 했다.김예훈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최산하가 뒷마당에서 손을 툭툭 털면서 걸어들어왔다.“회장님, 저 일본년이 실토했습니다. 이름은 야마구치 유코, 일본 야마자키파의 킬러 중의 한 명으로 저격용 총을 잘 다루고 있고, 사격 실력이 전 세계에서 톱10에 든다고 합니다. 최근에 다른 야마자키파 고수들과 함께 부산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로 신분을 알지 못해 어떤 사람이 왔는지도 모른답니다. 사쿠라 씨의 명을 받아 회장님을 죽이려고 했답니다. 경매장에서 방호철 도련님의 체면을 깎아내린 것도 모자라 아무렇지 않게 경찰서에서 풀려나니 열받았나 봅니다. 사쿠가 씨가 쓸데없는 짓을 했네요. 방호철 도련님을 도와준답시고 경찰서에서 풀려나자마자 죽이려고 했다뇨. 정말 실패한 작전이네요.”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직접 최산하에게 차를 따라주었다.“짧은 시간 내에 이 모든 것을 알아내느라 수고했어.”사건이 발생한 지 2시간도 안 되어 이 많은 비밀을 알아냈으니 최선을 다한 모양이었다.최산하는 조심스레 차를 받아 마셨다. 마치 김예훈이 건넨 찻잔이 20억 원은 되는 듯싶었다.“야마자키파 고수라...”김예훈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서로 존재를 모른다고? 그러면 야마자키파에서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사쿠라한테 사람을 많이 붙여준 모양이네. 그런데 야마자키파, 혹은 사쿠라가 원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방호철의 편을 들어주는 거? 별로 자기한테 도움이 안 될 텐데?”최산하가 잠깐 생각하더니 공손하게 말했다.“회장님, 사실 그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
김예훈이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진윤하한테 부산 내에서 협조 좀 해달라고 부탁해 봐. 그리고 더 많은 증거를 알아낼 수 있도록 저 저격수 년을 더 추궁해 봐. 단, 빨리 움직여야 할 거야.”“네!”최산하는 한껏 엄숙한 표정이었다.총사령관님이 무엇을 하려는지 몰랐지만 명령대로 움직이면 되었다.김예훈은 일본인에 대한 경계심이 더욱 커졌다.임강호가 겪었던 일이든, 용문당이 겪었던 일이든, 심씨 가문이 겪었던 일이든 일본 야마자키파의 흔적이 보였다.야마자키파의 목적을 더 알아내지 못한다면 큰 봉변을 당할지도 몰랐다.퍽!김예훈이 다른 부탁을 더 하려고 할 때, 거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토요타 알파드 차량으로 별장 문을 부숴버렸다.뒤이어 수십 대의 토요타 알파드 차량에서 몇백 명의 검은 정장을 입은 남성들이 검을 쥔 채 하나둘씩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그렇게 이들은 순식간에 별장을 포위해 버리고 말았다.이 중에서 앞장서던 키 큰 남성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김예훈, 난 야마자키파 마루야마 타이치라고 해. 네가 내 동생 야마구치 유코를 납치했다며! 1분을 줄 테니 당장 풀어줘! 아니면 이곳을 밀어버리고 너를 산산조각 내줄 것이야!”교외라 그런지 야마자키파는 더욱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이 몇백 명의 일본인들은 아마도 각종 수단을 통해 밀입국했을 것이다.말로만 듣던 야마자키파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포스가 엄청나게 무시무시했다.부산 용문당 제자라고 해도 빠른 시일 내에 이렇게 많이 모이기 어려웠다.분위기는 한순간에 긴장감의 극치에 달했다.이때 최산하가 눈가를 파르르 떨면서 말했다.“회장님, 제가 사람을 불러올까요?”최산하는 이 바닥에서 오래 지내본 사람이라 상대방이 죽을 각오로 덤벼든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김예훈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우리가 잡고 있는 야마구치 유코라는 사람이 이용 가치가 있나 보네. 이따 다시 거칠게 심문해 봐. 일본 야마자키파 고수들과 관련된 자료 정도는 얻어야 하지 않겠어?”김예훈은 야마구치
“바깥 세상?”김예훈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다른 건 더 이상 말하지 않겠어. 듣자 하니 요즘 리카 제국 쪽에서 독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약탈을 해서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하더라?”“그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니?”“그리고 영국 제국은 크리스마스 금지령을 무시하고 밤새도록 파티를 벌여 독감 감염률이 치솟았다던데 이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아니면 유라시아 전쟁에서 영국 제국이 세탁 세제 몇 봉지를 갖다가 유라시아 일부 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모독하고 이를 빌미로 사람들한테 군사적, 재정적 제재를 가한 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장무준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차갑게 말했다.“어디서 주워들은 근거 없는 말들이지? 이 나라 사람들이 함부로 퍼뜨린 루머 아니야?”“난 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지? 증거 있어?”“증거 없으면 말 함부로 하지 마. 비방죄로 널 고소할 수도 있어!”장무준이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김예훈은 귀찮아서 더 이상 논쟁할 생각이 없었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래,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으면 다른 얘기 좀 해보자.”“내 기억이 맞다면 며칠 전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영국 제국의 기자가 한국의 독감 백신이 효과가 있느냐고 물었었지?”“맞아. 물을 만하잖아. 무슨 문제제라도 있어?”장무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한국이 어떻게 독감 백신을 생산할 수 있겠어? 자기기만 하는 거잖아.”“자기기만?”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영국 제국의 기자가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알아?”“그 사람이 백신 접종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온갖 노력을 다했고 결국은 백신을 맞았어.”“그러고 나서 기자회견에서 그런 질문을 내뱉은 거야.”“이런 이중 잣대와 뻔뻔함이 네가 말하는 문명이라고?”“너!”장무준은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이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고 국제적으로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김예훈은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그만하고 우린 이제 시즌 호텔 경매장으로 가야 해.”“여기서 더 이상 역겹게 굴지 말고 이제 꺼져.”장무준은 조금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동하임의 매혹적인 몸을 힐끗 쳐다본 후 몸을 돌려 마리아와 함께 자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결국은 영국 제국의 황족이 되고 황위 계승권의 기회를 얻는 게 자신의 평생소원이었다.설사 그 황위 계승권이 실현하기 어려운 멀고 먼 꿈일지라도 장무준은 기꺼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다.김예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무준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장무준, 똥 먹었어? 입냄새가 왜 그렇게 심해?”김예훈의 말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동하임은 김예훈을 이 일에 끌어들이는 걸 원치 않아 급히 김예훈을 잡아당겼다.“김예훈 도련님, 그만해요. 저런 놈이랑 말 섞지 말아요.”“이 뻔뻔스러운 놈이 나한테 무릎 꿇고 빌 때가 곧 올 거예요.”동하임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 김예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동하임의 사적인 일이라 그가 너무 개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하지만 김예훈이라는 이름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네가 바로 그 버르장머리가 없고 노인을 존중할 줄도 모른 데다 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진주에서 온갖 허세를 부리는 물러터진 놈이구나.”“물러터진 놈?”김예훈은 장무준의 말이 도대체 어디서 굴러 나온 말인지 몰라 그저 담담하게 장무준을 바라보기만 했다.“물러터진 놈이 아니야?”장무준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일본의 귀빈들한테 손댄 것도 모자라 감히 진주 전임 총독한테도 손을 대다니!”“능력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어디서 허세야?”“완전 세상 물정을 모르는 놈이네.”“설마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아?”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왜? 내가 너희 집 어르신 뺨을 때린 게 불만인가 봐?”장무준은 차갑게 말했다.“불만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네 놈이 영국 제국의 황
외국 여자의 말을 들은 장무준은 역겨움과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바라보았다.그는 동하임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김예훈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어쩐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서 악취가 진동하더라니, 네 몸에서 나는 냄새였구나!”“동하임, 마리아 씨가 너한테서 어떤 악취가 난다고 했는지 알아?”“궁상맞은 냄새가 난다고 했어!”“동씨 가문은 어떻게 보면 별 보잘것없는 가문인데 자기네가 무슨 상류층 가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히 진주 상류층에 끼려고 해?”“너희 동씨 가문의 그런 염치없는 모습이 참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특히 동하임 넌 영국 제국의 황녀에 비하면 길가의 개에 불과해!”장무준의 눈에는 거리낌 없는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당장 이 기생오라비를 데리고 꺼져!”“앞으로 절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참, 혼약은 할아버지한테 취소하라고 할 거야.”“그전에 조건이 하나 있어.”“바로 너랑 이 기생오라비가 장씨 가문 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비는 거야!”“3일 채우면 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어!”장무준의 빈정거림에 매서운 기운이 동하임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그녀는 장무준을 차갑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장무준, 고작 며칠 동안 외국인 행세를 했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영국 제국의 개라도 된 줄 아나 봐?”“잘 들어!”“파혼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장무준 네놈이 3일 밤낮으로 우리 가문 문 앞에서 무릎 꿇고 빌면 파혼을 동의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이 내연녀랑 부부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내연녀?”장무준은 동하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더러운 년, 말조심해!”“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영국 제국의 황녀고 영국 제국 황위의 49번째 계승자야!”“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공주고 네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야. 너랑 너희 동씨 가문이 평생 떠받들고 모셔야 하는 존재라고!”“감히 누구한테 내연녀라고 하는 거야?”“미친 거 아니야?”“마리아 씨가 나
“장무준 저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영국 제국에서 자라서 결국 영국 제국 황실 방계의 여자 친구를 찾은 듯해요.”“저런 친밀한 모습이 해외에서 일어난 거라면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심지어 저 자식이 우리 가문이랑 진작에 파혼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저희 동씨 가문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근데 지금 우리 동씨 가문이랑 파혼도 하지 않고 내가 마중 나올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외국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내 뒤통수를 치잖아요.”“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죠!”동하임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저 남자한테 관심이 없지만 자신과 동씨 가문에 먹칠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일이 일단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퍼지게 되면 동씨 가문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김예훈은 동하임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는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그럼 이제 어쩌려고요?”“저 남자한테 가서 당신을 좋아하는지, 결혼은 할 것인지 물어볼 건가요?”“죽어도 싫어요!”동하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간단하네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서 분명히 말해줘요.”“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는 거면 장씨 가문 쪽에서 자발적으로 파혼하게끔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에요?”김예훈은 장무준이 장현준의 손자란 걸 알고 있었지만 동하임이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다.어찌 됐든 동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이 지경에 이른데에는 자신한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 동씨 가문을 도와 이 일을 최대한 조용히 해결해야 했다.자신이야 나중에 진주·밀양을 떠날 거라서 상관이 없지만 동씨 가문은 여기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다.동하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혼하고 싶은 건 맞아요.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아서 그래요.”“장무준이 지금 이 관건적인 시기에 돌아왔는데 순순히 파혼할까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순순히 파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그 남자 교육
다음 날 시즌 호텔 로얄 스위트 룸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김예훈은 다시 한번 끊임없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김예훈은 시계를 보고 나서 힘없이 문 열러 갔고 문 앞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동하임을 보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동하임 씨, 지금 아침 9시예요. 나 조금만 더 자게 해줘요!”“좀 푹 쉬게 내버려둬요!”화장한 동하임의 안색이 안 좋았고 그녀는 김예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나랑 같이 공항에 누구 좀 데리러 가요!”김예훈은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동하임의 안색이 좋지 않을 걸 보자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임의 포로쉐 911은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다 진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동씨 가문의 사람은 이미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동하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급히 달려가 주차를 도와주고 한 레스토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안색이 좋지 않은 동하임은 에르메스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김예훈은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꾹 다문 채 따라나섰다.그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평소에 냉담한 동하임을 이토록 화나게 하는지 궁금했다.곧 두 사람은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거대한 레스토랑은 이미 통째로 예약된 상태라 다른 손님은 없었고 모든 웨이터가 한 테이블 귀빈들한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테이블 중앙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서울 사람으로 잘생긴 외모에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듯했고 금색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점잖고 우아한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영국 제국의 외국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와 몸매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관건적인 것은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김예훈은 그것이 영국 제국 황족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녀의 외모는 영국 제국의 장공주과는 조금 차이가 났지만 특유의 기질은 숨길 수 없었다.그러한 사람이 진주 국제 공항에 나타났다는 자체만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다.몇몇 젊은이들이 레스토랑 바깥 구석에 몰래
“제 기억이 맞다면 전에 손자분이 동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었죠?”“명목상으로는 동하임의 약혼자 맞죠?”김현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그 당시 동씨 가문이 아직 집권하지 않았을 때 장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던 게 떠올랐다.하지만 그의 손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해서 서울 사람들을 경멸했고 오직 영국 제국 황실의 사위가 되기만을 원했다.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으로 유학 갔고 황실 방계인 여친을 찾은 후에는 진주로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김현민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장현준은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을 거다.김현민은 이어서 말했다.“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제가 제대로 기억한 것 같네요.”“오늘 동하임이 현장에서 김예훈을 건드리려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는 둥,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그 말이 퍼지게 되면 장씨 가문의 체면이 구겨질 게 뻔해요.”“어쨌든 동하임은 어르신의 손자며느리이고 아직 파혼하지 않았잖아요.”“제가 보기에는 손자분이 돌아와서 동하임을 교육 좀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진주에서 누가 더 권력이 있는지 동씨 가문에 단단히 알려야죠!”“고작 동씨 가문 주제에 집권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장씨 가문의 은혜는 싹 다 잊은 거잖아요.”“게다가 동씨 가문을 망가뜨리면 김예훈이 계속해서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그 사람이 평성에서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주에서는 뿌리 없는 초목일 뿐이에요.”“동씨 가문과의 인연만 끊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밟고 올라설 수 있지 않겠어요?”“게다가 그 사람이 이번에 영국 제국을 거듭해서 모욕했는데 어르신 손자분과 황실 여자 친구가 같이 돌아와서 김예훈의 낯짝을 세게 후려갈겨 버리면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장현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김 수장님 역시 명성대로 인재시네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대신 전략과 배치를 아주 완벽하게 짜놓으셨네요.”“어떻게 체면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급한 마
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물었다.“용현성이 김예훈을 제압하지 못할 거란 걸 진작에 예상했던 거예요?”“용현성은 용문당 집법부대의 부당주고 용문당 36개 지회를 총괄하는 사람이에요.”“그런데 김예훈이 어떻게 감히 용현성의 체면을 구길 수 있어요?”김현민은 직접 장현준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간단해요. 김예훈이 부산 용문당 회장 신분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회장이라는 신분은 그 사람한테 단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덤일 뿐이에요.”“그 사람의 진짜 정체는 아마 어르신도 들어봤을 거예요.”“경기도 김세자요!”“진주 이씨 가문의 이일메 큰 어르신도 그 사람을 건드렸다가 패배의 쓴맛만 봤어요.”“심지어 경기도 제일의 명문가의 모든 자원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어요.”“그런 사람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죠.”“게다가 용 어르신과 어르신께서 아무런 준비 없이 공격해서 큰 코만 다치게 된거예요.”김현민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장현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김현민을 응시하며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그럼 왜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제가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제 말을 안 들으셨잖아요.”“제가 어르신한테 그 사람의 진짜 정체를 미리 말해줬다고 해도 어르신의 성격과 용어르신의 독단성을 감안했을 때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줬을까요?”김현민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에게 차근차근 미끼를 던졌다.“어르신과 용 어르신께서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합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그놈을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분께서 미리 패배의 쓴맛을 맛보는 거예요.”“그래야 두 분께서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아예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쓴다면 바로 죽여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니깐요.”그 말을 들은 장현준의 표정이 바뀌었고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김 수장님은 날 위해서 나설
남윤지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김현민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애초에 그 두 늙은이를 내보낸 건 단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잖아요.”“첫 번째 목적은 이 기회를 빌려 용문당이 김예훈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 그 한계를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그리고 두 번째는 일본이 김예훈 측과의 싸움에서 패배돼서 이번에는 영국 제국의 힘을 빌려서 그놈을 죽이려고 했잖아요.”“이제 그 두 늙은이는 도련님이 예상했던 대로 쓸모가 없어졌고 마침 저희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잘된 거 아니에요?”김현민은 담담하게 말했다.“계획은 그렇긴 한데 안타깝게도 변수가 생겼어.”“어떤 사람들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아직도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단 말이지.”김현민의 얼굴에 비웃음이 번졌다.“어떤 사람들이요?”남윤지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 문 앞에서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코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얼굴이 부어오른 장현준이 거실 문을 열고 김현민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의 얼굴은 끊임없이 일그러지면서 변화하는 동시에 원한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 수장님, 김예훈 그놈 뭐예요?”“고작 용문당 회장 주제에!”“어떻게 감히 내 얼굴에 손을 대요!”“게다가 날 서양 놈들의 개라고까지 했어요!”“그놈을 당장 죽여버려요! 김 수장님, 내 원한을 꼭 갚아줘요!”“별거 아닌 놈이 감히 전임 총독의 얼굴을 때리다니!”“그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진주·밀양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어요?”“또 어떻게 영국 제국 황실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겠어요?”장현준은 자신과 김현민의 신분 차이를 잊은 채 붉게 부어오른 얼굴에는 증오와 사나움만 가득했다.이어서 장현준은 그의 부하들 앞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얼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쓸모없는 것들! 이 쓸모없는 것들아!”“날 보호하지 않고 뭘 했던 거야?”“영국 제국의 퇴역 기사라면
김예훈은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그리고 김현민이 일본, 영국과 결탁한 의혹이 있는 것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큰 어르신의 생신날 김현민이 상속받으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세요.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퍼뜨려 주세요. 김현민이 밖에 나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긴장감을 줘야죠. 맨날 집에서 음모와 계략을 연구하는 것도 정신상태에 좋지 않거든요.”김현민이라는 사람은 너무 계산적이고, 자기 보호에 강했다. 그런 그에게 짜증 날 대로 짜증 난 김예훈은 이렇게라도 그를 압박하고 괴롭혀 보기로 했다.그가 미쳐 날뛰기 시작해야 자기가 짜놓은 판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알아볼게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동씨 가문은 그래도 진주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어서 이런 일은 쉽게 처리할 수 있거든요.”김예훈은 웃으면서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했다.김현민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너무 의도적으로 계획하면 안 되었다. 너무 티 나게 하면 그가 눈치챌 수 있었다.오히려 이런 무심한 계획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동하임은 갑자기 웃더니 그에게 다가가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도련님께서 저희 동씨 가문에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마땅히 내놓을 것도 없고 해서 제 몸을 바치는 거 어떨까요?”농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용기를 낸 것이다.김예훈만 원한다면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튈 것이 분명했다.“하하하.”김예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으로 동하임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하임 씨, 농담도 참. 아무리 그래도 저는 하임 씨 아버지의 친구이자 하임 씨의 삼촌이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농담으로 저를 화나게 하면 제가 어떤 벌을 내릴지도 몰라요.”동하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께서 이런 걸 좋아하셨어요? 그러면 삼촌, 저한테 어떤 벌을 주실 건데요?”김예훈은 갑자기 주제가 잘못된 것 같아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