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습을 지켜보던 최산하가 멈칫하더니 말했다.“회장님, 정범이 형님이 대단하다는 건 알겠는데 상대방은 몇백 명이나 되잖아요! 소수는 다수에 대적하기 어렵다는 말도 있는데 정범이 형님이 아무리 강해봤자 상대방이 동시에 덮쳐들면 속수무책이잖아요!”최산하는 오정범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떵떵거리는 마루야마 타이치라고 해도 오정범과 1:1로 붙는다면 상대도 안 될 것이다.열몇 명이 동시에 덮친다고 해도 오정범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하지만 지금은 몇백 명이 한곳에 모여있으니 죽는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이 많은 사람들과 붙는다는 건 목숨을 바치는 거나 다름없었다.6대 파벌이 광명산을 포위했던 그해, 아무리 강한 강무열이라고 해도 집중 공격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더욱이 이 일본인들은 매너 같은 거 신경 쓰지 않고 다함께 덮칠 것이 뻔했다.“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범이도 내 곁에 있은 지 오래됐는데 지금은 한계를 넘어설 때야. 오늘 밤 물러서지 않고 저 사람들과 제대로 붙어보면 그 한계를 넘어설 수도 있어. 그러면 장병급 레벨에 도달해 장병급 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거지.”김예훈의 뜻깊은 말에 오정범은 더욱더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오점범만은 김예훈의 진짜 신분을 잘 알고 있었다.총사령관님이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고 하면 정말 벗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오늘 대결에서 이기면 장병급으로 거듭나 숙원을 이룰 수 있었고, 패한다고 해도 그까짓거 죽으면 되는 일이었다.오정범이 태연하게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최산하는 어안이 벙벙했다.“회장님, 밖에 있는 몇백 명의 사람들 모두 야마자키파 고수들이에요. 무도관을 몇 년씩이나 다닌 만만찮은 사람들이라고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검도를 십몇 년이나 배웠는데 정범이 형님 혼자서 되겠어요?”김예훈이 피식 웃더니 최산하의 어깨를 토닥거렸다.“비록 네가 무술을 배우기 좋은 시기를 놓쳤지만 성과를 얻고 싶다면 직접 가서 봐. 무술을 배우
아무도 이 두 사람의 대화를 끊지 못했다.입구에서 한참 동안 멍때리면서 쳐다보던 최산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믿기 어려운 듯한 표정으로 오정범을 쳐다보았다.“회장님, 아예 야마자키파를 향해 선전포고할까요? 이렇게나 많은 고수를 무너뜨렸는데 이 기회에 아예 뿌리를 뽑아버립시다.”오정범이 고개를 숙이더니 말했다.“김 대표님 말씀 한마디면 제가 사쿠라의 멱을 따오겠습니다.”김예훈은 오정범에게 차를 따라주면서 말했다.“오늘 이 일은 이대로 끝내면 안 돼. 그렇다고 해서 급히 사람을 죽일 필요도 없어. 먼저 이 세 가지부터 해결해. 먼저 이 사람들부터 정리하고 야마구치 유코한테서 뭐 더 알아낼 거 없는지 더 추궁해 봐. 그리고 나카노 타로우한테 연락해서 부산 내에서의 야마자키파의 모든 행적을 알고 싶다고 전해. 사쿠라만 죽이는 거 너무 별로지 않아? 야마자키파가 다시는 대한민국에 발을 내딛지 못하게 뿌리를 뽑아야지.”김예훈은 치고받는 일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지금 해야 하는 일은 바로 사쿠라부터 시작해 야마자키파가 대한민국에 뻗은 모든 뿌리를 잘라내는 것이다.오정범, 최산하는 일제히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말했다.“알겠습니다!”...이 시각 부산에서 멀지 않은 종명도의 가장 핵심적 위치에 있는 별장 구역.이 구역에는 백몇 채의 별장이 있었고 휴양하기 좋은 곳이었다.그중 한 일본 스타일의 별장 입구, 정장을 입은 수많은 장정들이 경계심을 품고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이곳은 사쿠라가 부산에서 지내는 곳 중의 하나였다.별장 뒷마당에는 일본 스타일의 정원이 있었고, 목재로 만든 건물은 움직일 때마다 새소리가 들려 엄청 기괴했다.가장 깊숙한 곳, 일본 스타일의 온천에는 사쿠라가 알몸을 한 채 발그레한 표정으로 암석에 기대어 있었다.샤워가운을 입은 두 명의 시녀가 그녀를 위해 몸을 닦아주었기 때문에 사쿠라는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온천 밖, 누군가 무릎 꿇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부산 제1 경찰서 팀장 변장우였다
“똑바로 말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사쿠라는 표정이 차갑기만 했다.“전체 과정을 말해보라고.”변장우는 눈가를 파르르 떨면서 재빨리 말했다.“김예훈이 경찰서를 나선 순간부터 미행하다 교외에 있는 별장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김예훈을 포함해서 열 명도 안 되어 보였습니다. 이 소식을 마루야마 타이치한테 알려줬더니 2시간 내로 달려와 별장 문을 걷어차고 300명이서 별장을 포위해 버렸습니다. 마루야마 타이치는 김예훈한테 1분 내로 야마구치 유코를 내놓으라고 했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누군가 칼을 들고나오는 모습을 보았고, 뒤이어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신분이 알려질까 봐 가까이할 수 없었습니다. 잠잠해지자 가까이 가서 확인하려고 했는데 한 무리의 용문당 제자들이 오는 바람에... 그리고 부산 경찰서 서장 유홍기도 왔습니다. 저는 알려지면 안 되는 사람이라 바로 사쿠라 씨한테 달려와 보고드리는 바입니다. 제가 보기엔 마루야마 타이치 부대원들이 목숨을 구제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변장우는 지금까지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다.어떻게 300명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 있는 거지?그는 들어가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하지만 들어가는 순간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꺼져! 지금까지 키워줬는데 어떻게 아무런 소용도 없어!”사쿠라는 변장우를 발로 걷어차 버리고는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시녀에게 말했다.“김예훈을 죽이지 못할 바에 하은혜부터 처리해. 죽여버려. 다시는 보고싶지 않아.”두 명의 시녀는 멈칫하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사쿠라의 표정은 말이 아니었다.이 순간 그녀는 자신이 방호철의 노리개일 뿐 그의 진정한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방호철의 신경은 온통 하은혜한테 향해 있었다.방호철이 하은혜를 손에 넣는 순간 방호철에게 필요 없는 사람이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야마자키파의 이익을 위해서든 자신의 사회적지위를 위해서든 절대 하은혜를 얻게 할 수 없었다.전에는
김예훈은 이미연과 조효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집안을 들어가지 않고 웃을 뿐이다.“아주머니, 효임아, 은혜 씨 좀 불러주세요. 할 말이 있는데 도통 연락이 안 되길래요.”“왜, 후지와라 미유 씨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은혜 씨한테도 손대려고?”이미연이 비꼬면서 말했다.“내가 말해주는데, 꿈 깨! 너같이 재수 없는 놈은 절대 우리 집안에 발들여놓을 수 없어! 네가 올 때마다 좋은 일이 없었어!”김예훈은 억지 미소를 지을 뿐이다.“아주머니, 손해 보신 부분은 제가 배상해 드릴게요...”“배상? 어떻게 배상할 건데? 포레스트 1호 별장을 우리한테 주기라도 할 건가?”이미연이 펄쩍 뛰면서 말하자 김예훈이 잠깐 멈칫했다.“1호 별장은 임 어르신께서 선물해 주신 거라 드리긴 힘들지만 아주머니께서 원하신다면 장기적으로 빌려드릴게요.”“고작 장기적으로 빌려주는 것이 네가 말한 보상이야? 우리 조씨 가문을 뭐로 보는 거야? 우리가 거지 같아 보여?”이미연은 차가운 표정으로 문을 힘껏 닫아버렸다.“꺼져! 다시는 보고싶지 않으니까!”조효임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고 있었다. 평생 모은 돈으로 산 별장인데 김예훈 때문에 가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조효임은 김예훈을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이제는 안 오는 것이 좋겠어. 그리고 은혜 씨 오늘 아침 댓바람부터 청현 사찰에 달려갔어. 어머님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간 걸 거야. 그쪽에 신호가 안 좋아서 연락이 안 되겠지.”“청현 사찰?”김예훈은 표정이 확 변했다. 교외인 그곳에서 보호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지금 상황에서위험해지기 일쑤였다.조효임은 그의 표정을 보고 그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렸는지 짜증 내면서 말했다.“김예훈, 우리가 알고 지낸 지 오래된 걸 봐서라도 마지막으로 충고해 줄게. 절대 은혜 씨를 넘보지 마. 은혜 씨는 너한테 과분한 사람이야. 네가 1호 별장에 입주하게 된 것도 운이 좋아서야. 사람은 평생 운이 좋을 수
반 시간 뒤, 김예훈과 조효임은 청현 사찰에 도착했다.김예훈은 심각한 표정으로 조효임을 차에 내버려 둔 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이에 조효임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어떻게 이렇게 매너가 없을 수가? 주차도 내가 직접 해야 해?’하지만 이 핑크 롤스로이스 차량은 대출받아서 산 거라 긁힐까 봐 두려워서라도 주차를 잘해야 했다.이 시각, 하은혜는 이미 청현 사찰에 도착해 있었다.이곳에는 금박에 쌓여있는 도교 신선 세 명이 빛나기 그지없었다.최근 몇 년 동안 도교는 불교와 비교할 바가 못 되었지만 청현 도장의 영향으로 청현 사찰이 부산에서 유명했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이었다.하은혜는 공손하게 향을 올리면서 점괘를 뽑았다.그러자 “중평 중평 중평”의 점괘가 나왔다.‘모든 일이 형통하나 은총이 있다고 자랑하지 말고, 없다고 근심하지 말라.’하은혜는 점괘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초조해 났다.이때, 누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서른 살 남짓한 도사 한 명이 하은혜에게 인사했다.“혹시 하은혜 씨 맞으신가요?”하은혜는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엄마의 문자를 받고 이곳에 오게 되었지만 도착해서 아무리 연락해 봐도 부재중이었다.그래서 어떤 단서라도 찾아보려고 여느 참배자처럼 향을 피워가며 예배했던 것이다.하지만 이 도사의 등장에 하은혜는 표정이 심각해지고 말았다.이때 도사가 웃으면서 말했다.“당황하지 마세요. 혹시 이곳에서 약속이 있으시지 않으세요?”하은혜는 부정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도사가 이어서 웃으면서 말했다.“그러면 맞네요. 그분이 사찰 뒷마당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하은혜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입구에서 뒷짐을 쥔 채 서 있는 변우진을 쳐다보았다.“그러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도장을 따라 사찰 뒷마당에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 결국 외진 마당에 도착하게 되었다.고색이 창연한 이 마당은 평온한 분위기였다.평소에 참배자와 신도들이 잠깐 쉬어가는 곳
하은혜가 고개를 흔들었다.“아스카라고 하셨나요? 아직 설명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누가 보낸 거예요? 방호철 씨? 아니면 사쿠라 씨?”아스카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질문이 너무 많네요. 똑같은 여자로서 한 가지만 알려드릴게요. 은혜 씨는 예뻐서 남자들이 어쩌지도 못할 거예요.”하은혜는 동공이 흔들렸다.“그런데 똑같은 여자로서 봐 드릴 것도 없죠. 은혜 씨, 저희를 탓하지 마세요. 은혜 씨가 운이 나빴던 거예요. 그러게 왜 방 도련님 마음에 쏙 드셨어요!”아스카는 검 손잡이를 쥐었다.바로 이때, 마당에서 똑같이 샤워가운을 입은 일본 여자 네 명이 나타났다. 이들은 검을 쥔 채 하은혜가 도망가지 못하게 포위했다.하은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방금 길을 안내했던 도장을 쳐다보았다.“도장님, 도는 자연을 법으로 삼는 법이죠. 제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왜 일본인들과 한편이 되어 저를 이곳으로 유인했던 거예요?”도장이 피식 웃었다.“은혜 씨, 저희도 먹고살아야죠. 도를 지키되 돈도 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일리가 있네요.”하은혜는 한숨을 내쉬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누군가에게 전화했다.맞은편에 있던 아스카가 웃으면서 말했다.“은혜 씨, 통화하고 싶으시면 그냥 당당하게 핸드폰을 꺼내서 하세요. 그런데 제가 좋은 마음에 알려드리는데, 이곳은 신호가 안 터져서 통화도 안 될 거예요.”표정이 확 바뀐 하은혜는 핸드폰 화면을 확인해 보았지만 역시나 신호가 없었다.하은혜는 도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앞으로 다가갔다.“신호마저 없애버린 걸 보니 저를 죽이려고 작정했나 봐요. 정말 궁금하네요. 방호철 씨도 저를 건드리지 못하는데 왜 야마자키파에서 저를 죽이려고 하는지. 이 일이 알려지면 방호철 씨와 관계가 나빠질까 봐 두렵지도 않아요?”아스카는 서서히 검을 빼 들고 수건으로 칼날을 닦았다.“은혜 씨, 너무 잘난 척하지 마세요. 방 도련님께서 은혜 씨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건 맞지만 당신이 죽었다고 해서 방 도련님이 저희랑 멀어질 것 같아요?
하은혜는 전혀 두려움 없이 피식 웃을 뿐이다.“정말 인정해야 할 건 사쿠라 씨가 정말 멍청하다는 거예요. 설마 남자들이 얻지 못하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건 아니겠죠? 제가 오늘 죽는 순간 방호철 씨가 영원히 잊지 못하는 사람이 될 거고 사쿠라 씨한테는 더욱 기회가 주어지지 않겠죠.”오스카가 기괴하게 웃었다.“저희 일본 여자들은 남자의 심리를 연구하기 좋아하는데 그렇게 될 때까지 내버려 둘 것 같아요? 은혜 씨, 걱정하지 마세요. 영원히 잊어버리게 할 거니까요.”하은혜는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뭐 하시게요?”오스카는 작은 도자기 병을 꺼내더니 흥미진진하게 말했다.“이거 흥분제인데 이걸 먹는 순간 성욕을 주체하지 못할 거예요. 이따 은혜 씨를 잘 모실 멋진 청년분들이 오실 거예요. 그러면 그 흉측한 모습을 찍어 인터넷에 퍼뜨릴 거예요. 당신의 보디가드인 변우진 씨가 발견하기도 전에 은혜 씨는 몰골이 말이 아닐걸요?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인터넷에 이런 동영상이 퍼지면 방 도련님이 그래도 좋아할 것 같아요?”오스카는 도자기 병을 옆에 있던 시녀한테 건넸다.시녀는 피식 웃더니 약을 하은혜의 입에 쑤셔 넣으려고 했다.하은혜는 철저히 당황하고 말았다. 그런 모욕을 당하는 건 죽기보다도 못한 짓이었다.“X발! 당신들은 정말 개보다도 못한 놈들이야!”“그러든가 말든가. 과연 어떤 치욕을 당할지 궁금하지 않아요?”오스카가 웃으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맘껏 즐기세요. 죽이지 않을 테니까. 끝나면 멱을 따서 기념품으로 일본에 가져갈 거예요.”이때, 오스카가 말했다.“도장님, 청년분들을 데려오세요.”오스카는 검을 거두고 촬영하려고 핸드폰을 꺼냈다.하지만 밖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명령을 듣지 못했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바로 이때,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걸어들어오면서 오스카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사쿠라 씨가 직접 나서실 줄 알았는데 고작 부하가 왔네?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샤샥!아스카의 명령 없이도 세 명의 검을 든 여자들이 김예훈을 향해 덮쳤다.그리고 한 명은 하은혜를 인질로 삼으려고 하은혜한테 달려갔다.퍽! 퍽! 퍽!김예훈이 나서기도 전에 도포를 입은 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이 여자들을 멀리 날려버렸다. 그녀들은 피까지 토해내면서 벌버둥 칠 힘조차 없었다.“웬 일본 놈들이 내 사찰안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어! 여기가 어떤 곳이라고!”청현 도장이 법채를 휘두르자 풀린 실들이 일본 여자들의 머리를 관통했다.피바다에 누워있는 사람 중에는 방금 하은혜한테 길 안내했던 도장도 있었다.청현 도장이 아무리 김예훈의 상대가 아니라고 해도 이런 실력도 없는 사람들을 처리하기엔 식은 죽 먹기였다.마지막으로 그는 하은혜를 보호하려고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청현 도장에게 수표 하나를 건넸다.청현 사찰의 내부구조를 잘 알려면 청현 도장의 도움이 필요했다.청현 도장한테 무력이 먹힐지 몰라도 돈만 챙겨주면 협조해 줄 사람이었다.김예훈과 청현 도장의 거래에 아스카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청현 도장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다른 도장한테 접근했던 것이다.하지만 그래도 청현 도장이 개입할 줄은 몰랐다.아스카는 잠깐 생각하더니 청현도장을 주시하면서 냉랭하게 말했다.“청현 도장님 되시죠? 저희 야마자키파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잘 협조해 주시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로 해드리죠. 그러면 나중에 김예훈 씨가 드리는 액수의 두 배로 드릴게요.”김예훈이 피식 웃으면서 쳐다보자 청현 도장을 움찔하고 말았다.“이봐, 내가 돈에 넘어가는 사람으로 보여? 난 정의, 법과 도를 지키는 사람이야. 내가 김 회장님의 은혜를 입지 않았어도 너희들 편이 될 수 없어.”청현 도장의 정의로운 모습에 아스카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그러더니 김예훈을 쳐다보면서 말했다.“김예훈, 청현 도장님이 편을 들어준다고 해서 우쭐대지 마!”김예훈이 피식 웃었다.“너희들 청현 도장님을 너무 쉽게 봤어!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