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고 꺼지라고?”김예훈이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떠난다면 당신들이 인사하고 환영할 사람이 없어질 텐데 말이야.”박서진이 잠깐 멈칫하더니 벌컥 역정을 냈다.“김예훈, 너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방금 우리는 새로운 대표님께서 오시면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연습하고 있었을 뿐이야. 우리 인사를 받았다고 정말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이유빈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김예훈, 차라리 개그맨을 지원하지, 왜 이렇게 웃기는 소리만 하는 거야? 네가 어떤 놈인지 우리가 몰라? 왜 아무도 믿지 않을 말을 하는 거야? 이젠 웃기지도 않아, 그냥 네가 병신처럼 보일 뿐이지!”박서진은 귀찮은 얼굴로 경호원을 불러오며 말했다.“빨리 저 사람 쫓아내! 그리고 두 다리 모두 부러뜨려. 그래야 앞으로 또 사고를 치지 않고 가만히 있지!”박서진은 더는 김예훈과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며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그의 머릿속에는 지금 온통 새로운 대표님에게 잘 보일 생각뿐이었다. 만약 데릴사위 따위인 김예훈이 새로운 대표님에게 시비라도 건다면 그의 앞날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니 말이다.많은 임원과 팀장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들은 나서지 않았지만 몰래 김예훈을 비웃고 있었다.김예훈은 겨우 몇만 원짜리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자기가 새로운 대표님이라고 하는 건가?정말 웃기는 소리네!곧 새로운 대표님이 도착하지 않는다면 그들도 김예훈을 비꼬았을 것이다.바로 이때, 차들이 이어서 천천히 대문 앞에 멈춰 섰다.맨 앞에 있는 차는 렉서스 LS였는데 화려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전체 성남, 나아가 경기도에서 예나 지금이나 렉서스를 애용한 차로 삼는 사람은 김세자뿐이었다. 다른 명문 가문들은 모두 벤틀리나 마이바흐, 또는 롤스로이스 같은 차들을 좋아했다.렉서스를 보자 이유빈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정말 김세자 님이 오셨나 보네! CY그룹에 있을 때도 김세자 님께서 애용하시는 차가 렉
“쓰읍!”사람들은 모두 깊은숨을 들이마셨다.몸매 좋고 예쁘장하게 생긴 임원들은 모두 입을 틀어막고서야 겨우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있었다.하은혜와 송준이 이런 큰일로 장난을 치진 않을 것이다.그럼 트레이닝복을 입은 데릴사위가 바로 전설 속의 김세자란 말인가?박서진의 얼굴색은 순간 어두워졌다.“뭐라고요? 저, 저, 저 사람이 정말 김세자 님이라고요?”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이유빈과 곽연록도 어안이 벙벙했다.그녀들이 온갖 파티에 참석하며 얼굴을 알린 것은 오직 큰 인물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김세자 같이 정말 높은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들을 그의 눈에 들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그 생각에 이유빈과 곽연록은 후회가 몰려왔다!돈 많은 부자라면 티를 낼 것이지! 왜 트레이닝복만 입고 다니냐고?“그, 그럴 리가 없어...”한참 지나서도 이유빈은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얼굴을 보였다.“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저 사람은 데릴사위 따위잖아. 어젯밤까지만 해도 선우 도련님 때문에 잔뜩 겁을 먹더니! 매니저님이 도와서 나서지 않았다면 이미 한 구의 시체가 되었을 저 사람이 어떻게 전설 속의 김세자 님이야?”이유빈은 믿을 수도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그녀가 생각한 데릴사위는 아무 쓸모도 없는 병신이었다. 능력 있는 데릴사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게다가 김세자가 정민아의 남편이었다니? 정민아가 뭔데? 왜 남편을 김세자로 둘 수 있는 건데?“당신들이 믿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당신들은 그저 청별 그룹 경기도 지사 사업 부문 직원들이잖아. 오늘 청별 그룹 경기도 지사는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산을 우리한테 넘겨야 해.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은 협조하는 것뿐이라고. 지금부터 의견 있는 사람들은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두 번 다시 말하지 않을 테니까 명심해!”하은혜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감히 대표님을 의심해? 죽으려고 작정했군!하은혜의 말을 들은 박서진을 비롯한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그
김예훈은 이들을 외면하고는 사람들한테 조용히 하라고 한 뒤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이따가 이형택이 인수인계 절차를 밟으러 올 것입니다. 수속이 끝나기 전에 몇 가지만 말할게요. 첫째, 경기도 사업 부문의 재산은 모두 CY그룹 산하 자선 자금으로 사용될 거고요, 수익도 모두 자선 자금으로 사용될 거예요. 둘째, 임원이나 팀장, 부장 직책을 맡으셨던 분들이 계속 남으려고 한다면 월급을 30% 올려줄게요. 다만 이것 하나만은 기억해요. CY그룹에서 일하는 이상, 전처럼 사람을 무시하고, 인도 사람 특유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여준다면 죄송하지만 모두 이 자리를 떠나주세요!”김예훈이 차가운 얼굴로 경고했다.원래 그는 이 인도 사람들을 모두 해고하고 싶었으나 하은혜가 이를 반대했다.인도 사람들은 이 자금을 오랫동안 운영해 왔기에 자산 운용 규칙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섣불리 모든 인도 사람들을 해고한다면 자산의 가치가 어쩌면 떨어질 수도 있었다.이 점을 고려했기에 김예훈은 그들을 남기려고 했다.하지만 인도 사람들이 결코 그의 한계를 건드린다면, 그는 가차 없이 그들을 해고할 것이다.임원과 직원들은 그저 서로 마주 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한참 지나서도 먼저 일을 그만두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월급 30% 인상은 그들에게 너무나도 큰 유혹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인도 사람 특유의 태도를 삼가는 게 무슨 어려운 일이겠는가?돈만 두둑이 받을 수 있다면 나라라도 팔 사람들이었다.그리고 김예훈의 차가운 시선은 박서진에게로 향했다.박서진은 김예훈이 자신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식은땀을 흘렸다.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김예훈은 틀림없이 자기를 찾아 결판을 낼 것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비굴하게 구는 대신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서 있었다.그는 다른 인도 임원들과 달랐다. 인도 명문 가문 출신인 그는 청별 그룹 내부에서도 큰 힘을 쥐고 있었기에 김예훈이 자기를 함부로 하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김예훈은 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내 다리를 부러뜨린다고? 네가 감히 내 다리를 부러뜨린다고?”박서진은 잠깐 흠칫하더니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말했다.“너 이 새끼, 내가 어젯밤에 구해줬는데 은혜를 이렇게 갚아? 날 해고하는 것도 모자라 내 두 다리를 부러뜨리겠다고? 너 기다려,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나 조폭 쪽에도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넌 죽었어! 딱 기다려!”박서진은 자기가 정말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듯이 김예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그는 이미 청별 그룹 한국 지사 대표인 이대정에게 이 모든 걸 다 알리고, 김예훈을 죽일 작정이었다.이때, 몇 대의 흰색 레인지로버가 회사 문 앞에 멈춰 섰다.곧이어 문이 열리더니 거즈로 이마를 둘러싼 선우재현이 빠르게 차에서 걸어 내려왔다.인파 속에 있던 이유빈과 곽연록이 그를 보더니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선우 도련님?”“선우 도련님, 마침 잘 오셨어요!”선우재현을 보더니 바닥에서 뒹굴던 박서진은 마치 구세주를 본 듯이 선우재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선우 도련님, 어젯밤에 제가 이형택 도련님에게 부탁드려 선우 도련님께 연락을 드린 겁니다. 이 새끼가 내가 도와준 줄도 모르고 나대네요! 어제 그 부탁 철회할 거니까 선우 도련님 마음대로 이 새끼 처리하세요! 죽일 수 있으면 당연히 죽이는 게 좋고요! 제 부탁은 이제 잊으셔도 됩니다!”박서진이 말하고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김예훈을 바라봤다.“병신아, 너 회사 대표라고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것 같은데, 어젯밤에 내가 없었으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었어. 인과응보는 자연법칙이고 불변의 진리야. 넌 이제 죽었어!”이유빈과 곽연록은 모두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이렇게 빨리 반전이 일어날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그녀들에게 있어서 CY그룹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결국 한 개의 비즈니스 회사뿐이었다.하지만 선우재현은 달랐다. 그는 조직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손쉽게 김세자를 해결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이 생각을 한 건 이유빈과 곽연록뿐이 아니었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박서진을 제대로 손봐준 뒤 선우재현은 서둘러 김예훈 앞으로 다가가고는 무릎을 철썩 꿇으며 말했다.“김 대표님, 어제는 제가 경우 없었습니다. 감히 김 대표님도 못 알아보고 건방을 떨었죠! 부디 넓은 아량으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용서?현장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특히 이유빈과 곽연록은 모두 믿을 수 없는 얼굴을 보였다.폭력 조직 중의 한 명인 선우재현이 김예훈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다니?그만큼 김예훈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보여준다.선우재현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러 온 것이다.어젯밤에 그는 불만을 안고 선우 가문으로 돌아갔는데 선우건이가 그에게 김예훈의 정체를 밝혔다. 김예훈이 바로 김세자라고 했다!다른 얘기 필요 없이, 선우재현은 김세자의 신분만 알게 되었는데도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그는 폭력 조직 중의 한 명이었지만 김세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폭력 조직의 새로운 강자인 오정범도 김세자의 부하 중 한 명이었다. 이 일만으로도 김세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잘 알 수 있다.선우재현은 선우 가문의 가업을 이어받는 데 큰 관심이 없었지만 그동안 줄곧 폭력 조직에서 살아왔기에 전혀 멍청하지 않았다.선우 가문은 지금 CY그룹과 동맹관계를 맺었기에 많은 비즈니스도 CY그룹에 의존해야 했다.그래서 ‘김세자’의 신분만을 알았는데도 선우재현은 충분히 허리 굽혀 사과할만했다.김예훈의 친구, 심지어 하인으로도 될 수 있었다, 다만 절대 그와 적수로 지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으니 말이다.그래서 그는 아침 일찍 김예훈이 있는 곳을 알아내고는 선물을 가지고 와서 사죄했다.그런데 하필이면 눈치 없는 박서진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선우재현은 화가 난 나머지 그를 밟아 양쪽 다리를 부러뜨렸다. 김예훈에게 호의를 표한 셈이었다.공손한 모습의 선우재현을 보더니 이유빈을 비롯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김예훈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임원과 직원들도 모두 깊은숨을 들이마셨다.원래 김예훈에게 약간의 불
화려한 옷을 입은 남자가 몇 명의 경호원에게 둘러싸인 채 빠른 걸음으로 오고 있었다.그가 바로 문무를 겸비한, 인도에서도 천재라고 불리는 이형택이었다.“도련님! 이형택 도련님!”바닥에 있던 박서진이 이형택을 보더니 감격에 겨웠다.“도련님, 드디어 오셨어요! 꼭 저 대신 복수해 주셔야 해요! 데릴사위 따위인 김예훈이 아침부터 여기서 소란을 피우고 있어요. 그리고 경기도 사업부문 재산을 모두 자기한테 넘겨줘야 한대요, 이 무슨 황당한 소리죠? 김예훈이 거짓말을 하는 거 맞죠? 우리 청별 그룹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겨우 한국 사람에게 겁을 먹을 필요가 없잖아요? 도련님, 어서요! 당장 저 김예훈을 발밑에 밟아버리세요! 저놈의 다리를 부러뜨려요!”박서진이 김예훈을 가리키며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그는 지금까지도 김예훈에게 막강한 힘과 신분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자기의 상사인, 이씨 가문의 도련님인 이형택이 김예훈을 발로 힘껏 밟아주길 바랐다.빠르게 걸어오던 이형택은 비틀거리면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그는 박서진을 힐끔 보더니 당장이라도 그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이 새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만약 저분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오히려 나한테 피해를 줄 거잖아?’김예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형택은 빠르게 앞으로 걸어가더니 김예훈 앞에 무릎을 철썩 꿇었다.박서진, 이유빈, 그리고 곽연록은 모두 이 장면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그들은 물론,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청별 그룹 한국 지사 대표인 이대정의 아들이, 지위가 높고 권력을 쥐고 있는 이형택이 김예훈 앞에서 무릎을 꿇다니?현장에 있던 임원들과 직원들은 이형택이 어떤 사람인지 모두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은 한껏 어두워졌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박서진은 잠깐 멈칫하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일그러진 얼굴로 김예훈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형택 도련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형택은 눈가에 경련을 일으켰고 안색이 창백해졌다.하지만 김예훈의 명령이 없으니 그는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그날 밤, 김예훈에게 무릎을 꿇은 후로 그는 이미 기세가 꺾였고, 김예훈과 맞서 싸울 배짱이 전혀 없었다.그는 심지어 지금까지 이대정에게 감히 연락하지도 못했다. 가장 빠른 속도로 모든 수속을 마쳤고 자산을 김예훈에게 넘겼다.“됐어, 내가 허락하지 않은 이상 이형택은 입을 열지 않을 거야.”김예훈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당신은 어제 계약서를 핑계로 내 아내를 속여 술 마시게 했지. 원하지도 않는데 자꾸 술을 권했고. 당신이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는 사람들 모두 다 알 거야. 하지만 오늘 또 이유 없이 날 모욕했어. 당신을 해고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어, 일을 더 크게 만들지 않고. 하지만 왜 그렇게 나대는 걸 좋아할까? 이형택, 인도 사람들은 다 당신처럼 기고만장해? 아니면 당신만 이렇게 성격이 개 같이 더러운 거야? 박서진이 내 앞에서 저리 짖으니 내가 안 짜증 나겠어?”김예훈이 자기한테 말을 걸자 이형택은 몸을 흠칫 떨었고, 목소리까지 떨며 말했다.“다 제가 잘못 가르친 탓입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말을 마친 이형택은 박서진을 향해 큰소리를 질렀다.“잔말 말고, 당장 무릎 꿇고 김 대표님한테 사죄드려! 용서를 구하란 말이야!”이형택은 당장이라도 박서진의 뺨을 후려갈기고 싶었다.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날뛰는 거야?“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이형택, 설마 겨우 한국 사람한테 겁먹은 거 아니야? 그리고 네가 경기도 사업부문 자산을 모두 한국 사람에게 넘겼다니, 이 대표님은 이 일을 알고 있어? 알겠어. 너랑 김예훈은 한통속이지? 내가 기어서라도 반드시 대표님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릴 거야.”김예훈은 더는 박서진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티슈 한 장 꺼내더니 손을 닦고는 덤덤하게 말했다.“일을 처리하고 빨리 계약서에 사인해. 난 시간이 없어!”이형택은 몸을
선우재현은 부하한테서 고목으로 된 나무상자를 건네받고는 김예훈 앞에서 그 상자를 열었다.그 나무상자 안에는 혈옥이 하나 담겨 있었다. 옥은 붉은 색을 띠고 있었는데 가운데에 선명한 검은 선이 하나 보였기에 매우 독특해 보였다.“대표님, 이게 바로 장군님들만 가지고 다닌다는 혈옥입니다. 고대 장군들이 땅에 파묻힐 때 이 옥도 같이 묻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한테서 들었는데 대표님께서도 골동품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고 하시던데, 제가 특별히 이 혈옥을 찾아왔습니다. 제 작은 성의니 받아주시길 바랍니다.”김예훈을 건네받지 않고 그저 덤덤한 얼굴로 혈옥을 보며 물었다.“얼마 주고 샀어?”선우재현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비싸지 않아요. 겨우 20억짜리예요, 비싼 건 아니죠.”“20억?”김예훈이 덤덤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네가 폭력 조직에 몸을 담그고 있어 다행이지, 선우 가문의 가업을 이어받았으면 다 말아먹겠네. 내가 지금 널 당장 목 졸라 죽이지 않고, 또 선우 가문에 손대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선우재현이 깜짝 놀라더니 물었다.“대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 물건은 곽씨 골동품 가게에서 산 겁니다. 곽씨 골동품 가게는 진주 4대 명문가 중 하나인 곽씨 가문에서 연 것입니다. 몇 번을 부탁해서야 겨우 가게에서 가장 귀한 이 혈옥을 저에게 팔았습니다. 보기 드문 좋은 물건이라 대표님께 성의를 보이려고 했는데 어떻게...”선우재현의 얼굴색은 조금 어두워졌다.“설마 짝퉁인가요?”김예훈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만약 짝퉁뿐이었다면 선우 가문을 멸문시킬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말을 마친 김예훈은 나무상자를 건네받더니 바로 바닥에 세게 내리쳤다.‘쿵’ 소리와 함께 나무상자는 산산조각이 났고, 안에 들어있던 혈옥도 두 동강이 났다.빨간 옥 사이에 쌀알만 한 크기의 검은 돌이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역겨웠다.“대표님, 이게 뭔가요?”선우재현도 바보가 아닌 이상 바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이건 방사성 물질인데 추출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