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떻게? 이번에는 또 누구한테 프로포즈 하려고? 설마 대표? 대표가 남자라던데.”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정지용을 향해 별의별 욕설을 다 퍼부었다.원래 정민아가 나서서 계약을 성사시키면 이익이 얼마가 되든 만족하려고 했다. 한데 하필이면 정지용 이 녀석이 나타나서 일을 그르치는 바람에 이익이고 나발이고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좀 더 심각한 상황이라면 집안이 망할 수도 있다.어르신이 아니라면 모두 달려들어 정지용의 목을 졸라 죽여버렸을 지도 모른다.“맞아! 정민아가 계약서를 가져가는 게 더 나았어!”“지만 대단한 척 우쭐대더니 어떻게 됐어? 쓸모 없는 놈!”“정지용! 너 설마 다른 가문이 우리 집에 심은 스파이 아니야?”정지용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전에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잖아요. 다 저를 지지해 줬잖아요. 게다가 저도 피해자라고요. 걱정 마세요. 내가 있는 한 이 일은 꼭 해결할 테니까!”“뭘로?”“그 기생오라비 같은 낯짝으로?”가족들은 모두 외면한 채 믿어주지 않았다. 말도 점점 격하게 하다 하마터면 손까지 댈 뻔했다.그때 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모두가 당황했다.“어르신, 큰일 났어요. 손씨 손영준 회장님이 오셨어요. 그리고 우리와 협력관계인 고객도 함께요.”기세가 당당한 모습을 봐도 비즈니스계의 큰 인물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앞장선 사람은 손씨 가문 손영준이다.“정 회장, 보아하니 엊저녁에 우리 두 집안이 맺은 계약은 취소해야 할 것 같네요.”손영준은 다가오면서 당당하게 말을 했다. 전혀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어르신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손 회장, 그 계약은 당신이 나한테 부탁한 거잖아요. 왜 갑자기 취소해요?”그때 백기철도 등장하더니 비소를 던졌다. “정 회장, 우리 모두 사업하는 사람들이라 솔직하게 말할게요. 어제 우리가 맺은 계약도 취소합시다.”“모르는 척하지 마세요. 우리가 정 회장과 계약한 것도 YE 투자 회사와 관련이 있어서 그런 거지. 방금 소식을 전해는데 정
”손 회장, 우리가 망하는 꼴을 보려고 그러십니까?”“맞아요.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죠!”“어제는 우리가 초청하지 않았는데 당신들이 제발로 걸어서 왔어요. 선물까지 내놓으면서 계약을 하자고 한 것도 당신들이라고요! 하루 멀다 하고 이렇게 변덕을 부리면 우리도 곤란해요!”정씨 가족들이 나서서 비난하자 손영준 회장 일행이 질세라 저마다 반박해 나섰다.어르신은 화가 치밀어 올라 뒷골이 뻐근했다. 그러다 갑자기 테이블을 치며 소리쳤다.“그만들 싸워!”쌍방이 흥분을 가라앉힌 후에야 어르신이 손영준을 보며 정중하게 말했다.“손 회장, 백 회장, 말이 이 정도로 나온 이상 나도 할 말이 없네요. 하지만 우리가 몇 년 동안 알고 지낸 정을 봐서라도 체면을 주세요. 3일, 3일 내에 꼭 YE 투자 회사의 계약을 받아낼 거예요. 그러니 계약은 취소하지 맙시다. 어때요?”손영준을 비록한 회장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그동안 정을 봐서라고 3일만 줄게요. 만약 3일 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그 땅을 내놔요!”“당신들…”어르신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눈앞의 사람들이 여기 온 이유가 그 땅 때문이다. 정지용이 일을 그르치는 바람에 3일 내에 투자금을 받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정씨 가문이 숨을 돌릴 시간 마저도 없을 테니까.그제야 화기애애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어르신 눈에 그 사람들은 웃는 가면을 쓴 호랑이 같았다.그때 축 늘어진 정지용이 갑자기 얼굴을 쳐들었다. “할아버지,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 있어요.”“누가?”어르신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정지용이 가장 뒤에 선 정민아를 쳐다보는 눈에 음흉한 빛이 스쳤다. 비록 자신이 계약을 받아내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도 실패하게 되면 자신의 책임이 다른 사람에게 돌릴 수 있다.“할아버지, 민아가 전에 두번이나 YE 투자 회사에 갔잖아요? 만약 누나가 허락하면 YE 투자 회사에서도 다시 계약에
어르신이 눈을 번뜩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민아, 할아버지한테 화 난 거 알아. 전에는 너를 진심으로 믿어주지 않았어. 지금 이 자리에서 사과할게. 정민택, 지용도 민아한테 사과해!”정민택과 정지용이 서로 쳐다보더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줄곧 강세를 부리던 사람들이 다들 보는 앞에서 정민아에게 사과를 하라니 절대 할 수 없었다.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정지용은 심호흡을 하더니 천천히 정민아를 향해 몸을 살짝 숙였다. “민아 누나, 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주세요.”고개를 숙인 정지용의 얼굴에 음흉한 기색이 스쳐갔다. 잘 감춘 덕에 누구도 그 눈빛을 보지 못했다.정민택도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민아, 지용이 사과했으니 큰아버지도 사과하마. 앞으로 더는 일을 만들지 않을게. 그러니 큰아버지 체면을 봐서라도 다시 한번 YE 투자 회사에 갈 수 있겠니?”“체면? 당신 부자에게도 체면이 있었어요? 일이 생기면 정민아고 일이 없으면 옆으로 툭 차버리고 대체 자기가 뭐라고 된 줄 알아? 하고 싶은 대로 막 부려먹어?”그때 임은숙이 벌떡 일어서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원래 기 센 임은숙은 딸이 가져온 투자금이 뺏겼을 때 화를 참느라 힘들었다. 그런데 또 정민아를 찾으니 자연스럽게 폭발했다.“제수씨, 다 정씨 가문을 위해서야. 그까짓 일로 정씨 가문이 파산하면 좋겠어?”정민택이 싸늘하게 내뱉었다.파산이라는 말에 임은숙은 생각만해도 싫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았는데 어떻게 돈 없이 구질구질하게 살 수 있지? 진짜 그렇게 되면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것이다.임은숙이 갑자기 태도를 바뀌었다.“민아, 아니면 네가 마지못해 승낙하면 안 되겠어?”“엄마, 내가 승낙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할 수 없으니까 그래.”정민아는 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굴렀다. 원래 귀찮은 일인데 만약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또 자기 탓이 되어버린다. 정지용은 그렇게 좋은 마음으로 시킨 게 아니다. 틀림없이 책임을 전가할 사람을
”대표님, 사모님께서 또 회사에 오셨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송문영은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만약 정지용이 왔다면 욕을 하고 쫓아내면 그만인데 정민아의 신분이 특별해서 무례하게 대하지 못한다.“어? 민아가 또 왔다고?”김예훈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르신도 여우처럼 영리해 분명 이 방법을 생각해냈을 것이다. 투자금이 없다면 강씨 가문은 진짜 망하게 되니까.김예훈은 정민아 얼굴이 떠오르면서 또 마음이 약해졌다.“이번에도 550억 줘.”“네?” 송문영이 놀랐다.“계약서는 저번과 똑같게 작성하고. 만약 또 행패를 부리면 그 자산을 바로 손에 넣어.”김예훈은 그 말만 했다.송문영은 이제야 알았다. ‘역시 대표님야. 한 손에 사탕 들고 다른 손엔 몽둥이를 들면서 정씨 가문을 갖고 놀고 있어.’“대표님, 그럼 계약서 작성하러 가보겠습니다.”송문영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김예훈이 담담하게 한마디 붙였다.“아직도 내가 가르쳐야 돼? 잠시 거절하는 척 하다가 미룬 뒤 마지막 날에 계약서를 어쩔 수 없이 하는 척 하라고. 나가봐.”“네, 한수 배웠습니다.”송문영이 인사를 하고 재빨리 사무실에서 나갔다. 정민아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었다.“정민아 씨 오셨네요. 이번엔 무슨 일로?”송문영은 활짝 웃으며 회의실로 들어갔다.생각보다 빨리 나타난 송문영을 보고 정민아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송 부장님, 투자금 말인데요. 전에 제가 정씨 사업부에 대한 계약 건에 대해 말씀드렸죠? 그게…”송문영이 바로 말을 잘랐다. “정민아 씨, 도와주기 싫다는 게 아니라 당신 가문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는 나보다 더 잘 알 거예요. 우리 회사 프런트 직원에 이어 감히 하 비서까지 희롱을 하다니 무슨 말로 형용해야 되는지 모르겠네요. 그냥 생각이라는 게 없는 거 같아요.”정민아가 탄식했다. “송 부장님, 그냥 재벌 도련님들 코스프레 한다고 생각하고 무시하세요.”송문영이 담담하게 말했다. “무시? 솔직히 나도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사람이에요. 감히
대표 사무실에서 김예훈은 뒷짐을 지고 창밖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송문영 일 처리 잘 하네. 시기가 되면 총지배인 자리에 앉혀야겠네.”김예훈 뒤에 서 있던 하은혜가 어깨에 드린 머릿결을 쓸어 넘겼다. 오늘은 묶지 않고 긴 머리를 드리웠다.“알겠습니다. 송 부장 대신해 미리 감사하다는 말 드려요.”김예훈이 피식 웃었다. “송문영에게 전달해. 연기할 때 리얼하게 하라고. 내 아내라고 해서 봐주거나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 부부 사이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말을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정민아에게 진심이었지만…하은혜가 앞에 한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대표님, 혹시…이혼해요?”“내가 이혼하면 이상하나?”김예훈이 창 밖을 보면서 탄식했다.“인정해. 나 3년 동안 진짜 진심으로 좋아했어. 하지만 민아는…”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정민아가 자신에게 어느 정도 호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민아는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가족애 같은 혹은 강아지를 오래 키우면 정드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정말로 그걸 확실히 알게 되는 날이 온다면 이런 결심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김예훈이 탄식하며 씁쓸해하는 모습을 본 하은혜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표님, 사람을 불러서 거실 가구를 들였어요. 욕실은 아직 며칠 걸려야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다네요. 오늘 저녁 잠시 우리 집에 와서 묵으시겠어요?”“그러지.”김예훈이 휴대폰을 꺼내서 한 번 보았다. 지금은 휴대폰 2 대를 갖고 있다. 신형 휴드폰은 사업용으로 사용하고 폴더폰은 정민아가 사준 유일한 선물이다. 그 안엔 정민아 번호만 저장했다. 그러나 오래기다려도 정민아는 전화를 주거나 문자도 보내지 않았다.“시간 되면 은행 좀 데려다 줘. 블랙카드 이용한도를 올려야겠어. 또 한도 초과하면 곤란하니까.”김예훈은 문득 다른 일이 생각났다. 어제 휴드폰을 사면서 진짜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다. 그러니 은행에 가서 한도를 더 늘리려 했다.곧 하은혜가
블랙카드!이건 전설의 블랙카드다! 이 카드는 현재 남해시에 5장밖에 없다. 이 카드를 소유한 사람의 신분은 상상을 초월하는데.이주아가 겨우 냉정을 되찾았다. 블랙카드를 소유한 고객은 몇 사람밖에 안되니 본사에 모두 개인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텐데. ‘왜 이 고객은 전문 직원을 찾지 않고 한도 변경을 하기 위해 직접 찾아온 거지?’갑자기 이주아의 머리속에 무시무시한 생각이 스쳐지났다. ‘이 자식 블랙카드는 가짜이거나 훔친 거다!’퍼런 대낮에 사람이 어떻게 그런 양심 없는 짓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런 생각에 이주아가 과감히 경보 버튼을 눌렀다. 이내 경보음이 크게 울리며 총을 든 몇몇경비원이 비상입구에서 들어왔다.그 장면을 본 김예훈이 어리둥절했다.‘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설마 이 은행에서는 돈을 꺼내도 안 돼? 돈을 꺼내면 총으로 쏘는 건가?’김예훈의 표정을 본 이주아는 드디어 진실이 들어난 것에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김예훈을 내려다봤다.“느낌이 왔어! 너 도둑이지? 어디서 이 카드를 훔쳐왔는지 모르겠지만, 남해시에 이 카드가 5장밖에 없거든? 다 내노라 하는 큰 인물들이지 너 같은 거지는 아니야!”이주아는 득의양양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도둑을 잡는 날도 오다니. 블랙카드를 주인에서 돌려줄 때면 무조건 호감을 살 것이다. 그러면 내 인생이 꽃밭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그 생각에 이주아는 저도 모르게 흥분했다. 자신이 이렇게 운이 좋다니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그때 업무를 보던 고객들이 모두 뒤로 물러나면서 김예훈을 경계하듯이 보고 있었다.온 몸에 반짝이는 보석을 걸친 여자 한 명이 소리질렀다. “이 은행 뭐야? 남해시에서 가장 안전한 은행이라고 자부하지 않았어? 이런 곳에 왜 도둑이 와?”“맞아. 만약 손해라도 나면 어떻게 보상하려고? 그 책임을 질 수 있어?”“어서 파출소에 보내!!”주변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며 김예훈을 나쁜 도둑으로 몰았다. 어쨌든 도둑이라는 것은 모두가 싫
이주아는 말을 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하은혜가 자신보다 더 예뻐서 조금은 질투했다. 성격이 삐뚤어져 인정하는 걸 싫어하니 어쨌든 상당히 불쾌했다.이 도둑놈도 대단했다. 블랙카드로 자신이 대표라고 사기를 치고 다니다니 진짜 뻔뻔하기 짝이 없다.하은혜는 이주아를 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이봐요. 말을 가려서 하세요. 우리 회사 대표님한테 예의를 갖추지 않으면 우리도 다른 은행으로 갈아탈 거예요. 비록 상업은행이 잘 나간다고 하지만 남해시에 다른 은행도 많으니까요.”대표님은 200억도 눈 깜짝하지 않고 투자하는 사람인데 도둑이라고? 진짜 웃기고 자빠질 노릇이다.이주아가 하은혜를 위아래로 훑더니 비웃었다.“도둑이 아니라고? 그럼 이 블랙카드가 뭔지는 알아요? 우리 은행에서 유동자금 2000억 재테크 상품 2조 안 되면 이 블랙카드를 가질 자격도 없어! 거지 꼴을 해 갖고는 어디가 돈 있어 보이지? 블랙카드를 훔친 게 아니라면 어떻게 생겨났는데?”하은혜가 눈살을 찌푸렸다.“무례하게 굴지 말고 우리 대표님 카드 맞는지 아닌지는 비밀번호 확인하면 되잖아요.”그 말에 이주아는 더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며 반말을 해댔다.“비밀번호를 확인해? 이 카드는 휴대폰 번호로 인증하는 거 몰라? 카드를 긁으면 비밀번호가 맞든 틀리든 모두 카드 주인 휴대폰에 문자 뜰 텐데. 그때 카드 주인이 우리 은행을 고소하기라도 하면 어떡할 거야? 말이 쉽지 누구를 골탕 먹이려고 그래? 다 아는 척 잘난 척을 하지 마!”주변에서도 귓속말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이 여자는 얼굴만 예쁘지 머리는 텅 비었다고. ‘거지 꼴인 남자를 대표님이라고 부르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냐?’그때 술배가 튀어나온 중년 남자가 뒷짐을 쥐고 내부에서 걸어 나왔다. 시끌벅적한 장면을 보고 잔뜩 인상을 구겼다.“무슨 일이야?”이주아가 재빠르게 답했다. “행장님, 이 도둑이 우리 고객의 블랙카드를 훔치고 돈을 이체하려고 해요.”뭐? 블랙카드?그 말에 은행장이 갑자기 당황해 식은땀을 흘렸다. 블랙
"대표님, 저는 괜찮은데 대표님은… '하은혜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자사의 대표님은 어떤신분인데 이런 작은 곳에서 이런 대우를 받을 수가 있는가?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괜찮아요. 이따가 여기 지점장님을 불러와요. 내 개인 계좌, 회사 계좌, 그리고 우리가 투자한 기업, 회사 계좌 모두 더 이상 이 은행에 맡길 수 없어요.”"알겠습니다!” 하은혜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고 김예훈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존경이 가득 찼다. 대표님은 역시 대표님이다. 간단한 한마디일 뿐인데 이미 이 은행의 생사를 결정해버렸고 총장이 와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잘난 척! 아직도 잘난 척하다니 당신들이 배우를 안 해서 정말 아깝네요.” 이주아는 욕을 퍼부었다. "저기요. 가서 은행 카드를 가져와요!"한 경호원이 대답하고 재빠르게 앞으로 나와 김예훈의 손에 들고 있는 블랙카드를 잡았다.김예훈은 냉소하면서도 반항할 뜻이 없었고, 그들이 블랙카드를 가져가도록 내버려 두었다.......은행 사무실에서 이주아는 공손한 표정으로 블랙카드를 지점장에게 건네드렸다.지점장은 술배를 두드리며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주아 씨, 이번에 잘했어. 이런 신중함, 세심함은 우리 상업 은행의 슬로건이거든. 네가 이렇게 우리 중요한 고객의 자산 안전을 보호하다니, 이 일은 내가 본점에 보고할 테니 분명 너에게 표창을 할 거야. 네가 승진할 날이 머지않았으니, 그때가 되면 나 이 늙은이를 잊지 말아.”"지점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이 안전의식은 모두 지점장님이 평소에 가르친 공로 아니세요? 본점에서 사람이 온다고 해도 그건 지점장님 덕분이에요.""하하하하, 그래, 그래. 다들 이주아 씨가 똑똑한 사람이라고 하던데, 과연 그렇구나…. 걱정할 거없어. 올해 지점 업적평가와 모범 근로자는 당연히 주아 씨를 우선 고려할 거야. 연말 보너스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내 것이 있다면 주아 씨 것도 있을 거야!"지점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알았어. 먼저 나가봐. 내가 본점에 보고해야겠
“쓰레기”라는 세 글자에 김서하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김예훈 씨, 당신 말 대로 우리 모두 사업하는 사람들끼리 당신이 반격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확실하게 현민이 잘못이 맞으니 제가 돌아가면 반드시 단단히 교육시켜서 직접 사과하게 할게요. 그러니 김예훈 씨도 성의를 보여주셨으면 해요. 그래야 우리 모두 오해를 풀고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요? 필경 현민이도 그렇고 김예훈 씨도 모두 큰 일을 할 사람인데 이렇게 싸우면 다른 경쟁자들에게만 좋은 일이 되는 거잖아요.”김예훈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성의를 보여달라고요? 그럼 먼저 멀리도 말고 바로 어제 용문도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야밤에 오륜 사찰의 선재 스님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와서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말로는 오해를 풀자고 하면서 매번 저를 죽이려고 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요? 심지어 저를 박연서 사모님 댁으로 가게 만든 것도 당신들이 꾸민 거잖아요.”김예훈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을 꺼내 낯선 전화번호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보여주었다.“삑!”메시지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김서하는 자기도 모르게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우고 김예훈을 노려보며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이 메시지는 누가 보낸 건가요?”김서하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김현민의 부하일 거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만약 정말로 그녀의 추측이 맞는다면 안동 김씨 내부에 김현민을 죽이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순간 김서하는 오늘 자기가 직접 김예훈을 찾아온 것은 뜻밖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김예훈은 비웃는 표정을 전혀 숨기지 않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사모님, 이쯤 되면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이 메시지는 당연히 김현민이 보낸 것이고 저를 임수민 구하러 가게 해서 박연서 사모님을 만나게 하려는 계획이었잖아요. 당신들이 박연서 사모님의 손을 빌려 저를 죽이려는 것인지, 아니면 저의 손을 빌려 박연서 사모님을 어떻게 하려는 건지는 잘 모르지만 어찌 됐든 당신들의 계
“사모님이 초대하시는데 제가 왜 거절하겠어요?”김예훈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김서하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는 김서하가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고 싶었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에 올라타고 안전벨트를 했다.김예훈이 차에 타자 김서하는 가볍게 웃으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페라리 488은 자신의 존재를 뽐내며 맹수와 같이 순환고속도로를 향해 질주했다.차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김예훈이 고개를 돌려 김서하에게 물었다.“사모님, 정말로 저와 함께 비를 구경하면서 드라이브하려고 오신 건 아니죠? 저는 사모님과 함께 비 구경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요. 그러니 이제 솔직하게 말씀하시죠.”김서하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김예훈 씨가 우리 넷째 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서요. 그리고 그 대가로 조건을 걸었다고 들었어요.”김예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사모님, 역시 소식이 빠르시네요. 저의 조건이 무엇인지 아시는 것 같은데요. 그건 바로 김현민을 양자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거였어요.”김예훈의 말에 들은 김서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아주 간단한 한마디였지만 실제로 그 조건 때문에 김현민은 정정당당하게 안동 김씨 가문의 당주가 될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그야말로 사람을 죽이고 마음마저 짓밟는 격이다.“김예훈 씨, 잘 모르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요. 당신이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안동 김씨 가문의 일에 간섭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김서하가 계속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현재 권력 교체의 중요한 시기예요. 외부 사람들에게는 평온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내부적으로 엄청 치열하거든요. 아무리 진주·밀양 두 도시의 거물이라 할지언정 안동 김씨 가문의 싸움에 끼어들면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그런데 당신이 혼자서 거기에 끼어들겠다는 건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거예요.”김서하는 말하면서 액셀러레이터를 더 밟았다.그녀의 오른쪽 다리의 치맛자락이 살짝 흩날리더니 보는 사람이 섬뜩할 정도로 새하얀 속살이 드러났다.김서하의 적나라한 유혹
“내가 김예훈을 설득해 볼게. 그런데 계속해서 제멋대로 행동하면 죽여버릴 수밖에.”김서하는 어떻게든 김현민을 수장 자리에 앉히고 싶었다.비록 큰 피해를 준 김예훈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그가 양보하기만 한다면 진주·밀양 용전을 내놓을 마음도 있었다....시즌 호텔.하늘에서는 가랑비가 쏟아졌고, 호텔 전체가 안개에 휩싸이고 말았다.토요타 프라도에서 내려 호텔 로비로 들어가려던 김예훈 뒤로 갑자기 자동차 경적소리가 울려 퍼졌다.곧이어 그의 앞에 페라리 488 한대가 멈춰 섰다.창문이 내려가면서 백옥과도 같은 아름다운 얼굴에 샤넬 드레스를 입고 구찌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는 요정 같은 얼굴이 보이자 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상대는 바로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김서하였다.갑작스러운 등장이 놀랍긴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다.김병욱이 이 큰일을 꾸민 걸 보면 무조건 박연서가 10년 전 사건을 재조사하려는 것을 김현민에게 알려줬을 것이고, 이 타이밍에 김서하가 찾아온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그런데 예상치 못한 것은 싸우러 총이나 칼을 들고 온 것이 아니라 홀몸으로 찾아왔다는 것이다.김예훈은 이 상황이 너무나도 의외였다.김서하도 의문스러운 그의 표정을 감지했는지 핸들을 잡고 창가에 기대어 김예훈을 향해 피식 웃었다.“김예훈 씨, 저랑 대화 좀 나눌까요? 비 오는 날 고속도로 풍경이 꽤 볼만한데 한번 보실래요?”침착하고 여유로운 표정, 무심하면서도 약간의 유혹이 담겨있는 말투였다.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이 둘이 꽤 괜찮은 사이라고 오해할 만도 했다.이순간 김예훈은 두 손을 창문에 갖다 대면서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사모님, 제 기억이 맞는다면 저희 둘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가요? 그것도 깊은 원한이 있는 그런 관계 말이에요. 언제부터 저희가 비 오는 날 같이 드라이브하는 사이가 된 거죠? 말도 안 되잖아요.”김예훈은 그녀의 손에서 진주·밀양 용전을 빼앗아 왔는데 자신을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
김서하는 김현민의 말을 듣고서야 조금씩 차분해지기 시작했다.“맞아. 그깟 임수민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없을거야. 그런데 이런 사람을 살려두는 건 위험 요소가 될 수밖에 없어. 기회를 봐서 일본인한테 처리해달라고 해.”김서하는 단 한마디로 임수민의 생을 마감시켜 버렸다.바로 이때, 김병욱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는 구석에 가서 전화를 받더니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지기 시작했다.이어 그는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김현민한테 말했다.“도련님, 큰일 났어요. 방금 별장에서 전해온 소식인데 박연서 사모님께서 10년 전 사건을 다시 조사하겠다고 하네요. 김예훈이 설득하기도 했고, 임수민의 증언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높아요.”쨍그랑.김서하는 표정이 다시 창백해지면서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김현민도 표정이 변하면서 앞으로 걸어가 무릎 꿇고 있는 김만태를 발로 걷어찼다.“이런 병신. 너 같은 병신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거잖아. 안 돼. 박연서가 10년 전 사건을 다시 조사하게 해서는 안 돼.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다 죽을 수도 있고 나까지 수장 자리에 앉지 못할 수 있어.”김서하는 어두워진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현민아, 흥분하지 마. 그때 그 사건 흔적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했어. 박연서가 아무리 대단해도 증거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할 거야. 어차피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다 죽었어.”김서하는 이어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곽영현 일행을 쳐다보았다.필요하다면 이 사람들도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김현민은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다 내가 신뢰하는 부하들인데 아쉽더라도 정말 죽여야 하는건가? 하지만 정말 그랬다간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수장 자리도 지킬 수 없을텐데?’다음 순간, 김현민은 억지로 냉정을 취하면서 말했다.“고모, 저희끼리 알고 있는 건 괜찮을 거예요. 기껏해 다 같이 잘되거나 다같이 망하는 거겠죠.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어차피 다 죽었는데 아무것도
“비록 10년이나 지난 사건이긴 하지만 밝히려고 하면 분명 단서가 보일 거예요. 굳이 증거가 필요할까요? 제가 증거를 보여주면 안동 김씨 가문 수장님이 과연 믿어줄까요?”박연서의 표정은 더욱더 어두워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김 도련님, 오늘은 이만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빨리 답변드릴게요. 만약에 진짜라면 그 조건이 아니더라도 김현민은 절대 수장 자리에 앉을 수 없어요.”김예훈은 일어나 연락처를 남긴 후에 추하린을 데리고 이곳을 떠났다.김윤후 등은 휘둥그레한 모습으로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이들은 김예훈이 뺨 몇 대와 말 몇 마디로 안동 김씨 가문, 심지어 진주·밀양의 판도를 뒤집어 놓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퍽.김예훈이 안동 김씨 가문 별장을 떠났을 때, 빅토리아 항구에 있는 한 건물에는 김서하가 일그러진 얼굴로 테이블을 내리쳤다.안동 김씨 가문에 심어놓은 스파이가 보내온 사진을 보면서 표정이 극도로 어두워졌다.“김현민, 네 부하들은 어쩜 다 병신들밖에 없어. 어떻게 임수민 그년한테 우리 대화 내용을 듣게 할수 있냐고. 심지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별장에 들어서게 하다니. 걔가 박연서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었다는 거 몰라? 그년이 살아있기만 하면 들은 거 전부 다 박연서한테 전할 거라고. 그때되면 네가 수장 자리에 앉는 것도 문제일 거야. 김현민, 요즘 너무 편해서 그래? 아랫사람도 잘 간수하지 못할 정도로?”김병욱, 곽영현, 남지훈은 맞은편에 서서 서로 눈치만 볼 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김만태는 무릎 꿇고 바닥에 머리까지 박으면서 말했다.“사모님, 제 잘못이에요. 제가 조금만 더 빨리 쫓아갔다면 그년을 죽였을 거예요. 그러면 김예훈과 추하린이 기회를 틈타 별장으로 몰래 들어갈 일도 없고요.”“고모, 그만 탓해요.”김현민은 김서하에게 차를 건네면서 웃으며 말했다.“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임수민 그년이 중요한 순간에 박연서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만태도 최선을 다했어요
“멈춰. 아무도 움직이지 마.”바로 이때, 다시 평온을 되찾은 박연서가 갑자기 비틀거리며 일어났다.“김 도련님께서는 지금 내 병을 치료하는 중이야. 너무 무례하게 대하지 마.”김윤후가 멈칫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모님, 이 새끼가...”“괜찮아. 정말 내 병을 치료해 주는 중이니까.”박연서는 처음에는 김예훈이 건방지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검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이순간 그녀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표정이 훨씬 편안해 보였다.김윤후 등은 그녀의 표정을 보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맨날 우울하고 차갑기만 하던 사람이 이제야 되살아난 것 같네. 그래. 바로 이래야지.’김예훈이 뺨으로 박연서의 가슴 한쪽에 고여있던 묵은 피를 뚫어낸 것이다.이건 또 무슨 치료법이람?김윤후 등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진주 10대 명의, 유럽 의학 대가, 일본 왕실 어의도 속수무책이었는데 이 김예훈이라는 놈이 뺨으로 바로 해결했다고? 믿을 수가 없어.’“사모님, 제가 뺨으로 사모님 마음속에 오랫동안 쌓여있던 분노를 깨워드린 거예요. 10년 동안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것을 토해내게 한 거죠. 앞으로 한 달 동안은 편히 잠들 수 있을 거예요. 더 이상 악몽에 시달려 매일 밤 아들을 잃었던 그날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김예훈은 휴지를 꺼내 손가락을 닦았다.“그런데 이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에요.”박연서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훨씬 개운해진 느낌이었다.이순간 그녀는 더 이상 김예훈을 의심하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젊은 나이에 용문당 집법부대 당주님이 되고, 경기도 토박이인 이일매, 김병욱을 하룻밤 사이에 해결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네요. 전에는 의심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조건을 들어줄게요.”박연서의 말에 보디가드들은 표정이 확 변하고 말았다.김예훈의 조건을 들어주겠다고 한 것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에 곧 피바람이 불 것임을 의
얼굴이 창백해진 박연서는 잠시 후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김 도련님은 역시나 대단한 분이시네요. 김 도련님께서 알아차렸다면 굳이 저도 숨기지 않을게요. 10년 전 저한테 아들이 있었던 건 맞지만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이 세상을 떠났어요. 이것이 바로 저를 우울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죠. 그동안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에서 이 일을 언급한 적도 없는데 김 도련님께서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 물을게요. 제 병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지. 제 아들을 돌려주기라도 할 거예요?”박연서는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아들이 다시 살아나야만 이 병이 나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아니면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이때 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제 요구만 들어주시면 그 병을 치료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어요.”박연서는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천천히 말했다.“제가 요구를 들어줬는데도 해결하지 못하면요?”“사모님께서 동의하기만 하면 무조건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게다가 제가 무슨 능력으로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안주인인 사모님을 속이겠어요. 아무튼 아무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인데 한번 시도해 보는 게 어떨까요?”박연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김 도련님, 이 조건을 들어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나 해요? 제가 김현민, 심지어 전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사람들과 등을 돌리는 거나 다름없어요. 즉 이 세상과 등지는 거죠. 제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다고 해서 제가 이렇게 큰 대가를 치러야 할까요?”김예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분명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절대 후회하게 안 할 자신도 있고요.”박연서는 잠깐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요. 그 조건을 들어주긴 하겠지만 효과가 있는지부터 봐야겠어요. 제가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까요? 아니면 며칠동안 먼저 조용히 쉬고 있을까요?”“필요 없어요.”김예훈은 고개를 흔들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박연서의 뺨을 때렸다.쨕!뺨
박연서의 명령에 보디가드들은 잠시 망설이다 하나둘씩 주저하며 총을 내려놓았다.그들은 한편으로는 박연서의 안전을 지키고 싶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어 내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김 도련님이라고 하셨죠? 미안해요. 저희 윤후가 너무 충동적이었죠? 착한 아이예요. 저를 보호하려고 그랬던 거예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랄게요.”이때 박연서가 표정이 좋지 않은 김윤후를 쳐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김윤후, 얼른 김 도련님께 사과해.”김윤후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사모님, 저희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에서 외부인이 김 도련님으로 불릴 자격이 있을까요...”박연서는 얼굴이 약간 어두워지며 차갑게 말했다.“내가 있다면 있는 거야. 얼른 사과해!”김윤후는 눈가를 파르르 떨면서 어렵게 앞으로 걸어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김 도련님, 죄송해요.”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윤후 씨도 사모님을 보호하느라 그런거 알아요. 윤후 씨를 탓할 마음 없어요. 그런데 아랫사람으로서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좋을 거예요. 저는 성격이 좋아서 이대로 넘어가지만 다른 사람이었다면 윤후 씨는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요.”원래 불만이 많았던 김윤후는 김예훈이 방금 자신을 쉽게 제압한 장면이 떠올라 눈꺼풀이 떨렸다.아무리 김예훈의 나이가 어려 보이고 사기꾼처럼 보인다고 해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총격전에서 임수민을 구한 것도 모자라 박연서 앞에서 소신 있게 할 말을 다 하는 것만으로도 능력 있는 사람인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최소한 진주·밀양에서 김현민 외에는 박연서 앞에서 여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젊은이는 없었기 때문이다.“아랫사람을 잘 가르치지 못한 저의 잘못도 있죠.”박연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제가 대신 사과의 말씀을 드릴게요.”“괜찮습니다.”김예훈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의 잘못도 있죠. 의사도 아니면서 치료해 드릴 수 있다고 했으니까요. 믿지 못하는 것도 정상이죠.”박연서는 반짝이는 두 눈으로 쳐다보면서 김예훈에게 앉으라
두둥!김예훈이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모든 사람의 얼굴이 변하고 말았다.몇몇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보디가드들도 하나같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이들은 앞으로 걸어 나와 김예훈의 이마에 총을 갖다 대면서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이런 제기랄. 도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우리 사모님과 김현민 도련님 사이를 이간질하는 거야. 그리고 어떻게 사모님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서 치료해 주겠다고 할수 있어? 얼마나 많은 의사가 속수무책이었는지 알아? 머리털도 제대로 안 자란 놈이 우리 사모님을 치료해 주겠다고? 어디서 잘난 척이야.”그는 김예훈이 박연서의 심리 질환을 알아채서 놀라운 모양이다.하지만 그래도 김예훈이 이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그리고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누군가 시켜서 일부러 박연서와 김현민 사이를 이간질하는 거로 보였다.이곳이 피를 보면 안 되는 박연서의 휴양지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이 새끼가. 여기가 어떤 곳인 줄 알고. 여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별장이라고. 이곳에서 헛소리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이나 해봤어? 눈치 있는 사람이면 얼른 사모님께 사과하고 꺼져. 아니면 어떻게든 너를 죽여버릴 거니까.”이순간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보디가드는 탑 장병급 실력자로 보였다.김예훈은 박연서의 보디가드마저 탑 장병급 실력자일 줄은 몰랐다.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박연서의 신분으로 탑 장병급 실력자를 보디가드로 들이는 것도 정상이었다.계속 기운을 모으는 중이던 보디가드는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김예훈이 사과하지 않거나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총을 쏠 기세였다.이때 김예훈은 총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팅.탑 장병급 실력자인 보디가드는 반응할 틈도 없이 거대한 힘이 밀려오는 느낌을 받고 총을 제대로 잡지도 못했다.그는 깜짝 놀라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이 전부 천장을 향해 날아갔다.그리고 그가 다른 행동을 취하기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