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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작가: 소정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사람들이 흩어지고 마지막으로 나타난 건 내가 가장 존경했던 스승, 오태건이었다.

“아버지! 오셨어요?”

그를 보는 순간, 백윤아의 눈이 반짝였다.

오태건은 그녀에게 두툼한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귀염둥이야, 결혼 축하한다!”

귀염둥이? 예전에 스승님도 나를 이렇게 불렀었다.

“진혁아, 우리 윤아 잘 부탁해!”

오태건은 구진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하준의 말이 맞아. 강해월이 떠나줘서 참 다행이었어. 그녀가 너희 사이를 가로막았으면 너희 둘은 하마터면 서로를 놓칠 뻔했잖아!”

“가끔 나는 해월이가 남극에서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평생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길 말이야.”

나는 공중에 떠서 그들의 어이없는 말들을 듣고 있었다.

참 기가 막혔다.

한때는 나도 과학 탐사대에서 촉망받던 신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던 사람 중, 나를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구진혁은 오태건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이젠 그만 잊으세요. 강해월은 이미 벌을 받았어요.”

“기억 안 나세요? 제가 그때 그녀의 모든 직위와 명예를 취소했잖아요.”

오태건은 잠시 멍해 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때 너 정말 잘했어!”

“그런 배신자는 백번 죽어도 아깝지 않지!”

“직위 박탈만으로는 너무 약했어!”

내 마음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래서 내가 너희 결혼 선물로 이걸 준비했지!”

오태건은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전에 진혁이 너 나한테 부탁했잖아. 내가 처리했어!”

오태건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부로 강해월은 과학 탐사대에서 완전히 제명됐어!”

“우리 탐사대엔 이런 배신자는 없었던 거야!”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내 약혼자가 제안하고, 내 스승님이 그걸 실행하다니.

두 사람은 마치 처형인처럼 세상에 남은 나의 마지막 희망마저 단칼에 잘라버렸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나는 오태건을 아버지처럼 존경해왔다.

나는 그가 백윤아의 말만 듣지 말고 내 억울함을 풀어주기를 수없이 바랐었다.

하지만 다 내 착각이었다.

그들 눈에는 내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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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진혁은 모든 사람을 내보내고 혼자 집 안의 잡동사니 방에 숨어들었다.그 방은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는 구석에서 상자를 하나 꺼냈다.상자 안에는 물건이 많지 않았는데 모두 내가 구진혁에게 준 것들이었다.맨 위에는 옥 팔찌가 있었다.이 팔찌는 구진혁의 어머니가 임종 전에 내 손목에 직접 끼워주신 것이었다.“해월아. 나는 이제 가야겠구나. 앞으로 우리 진혁이랑 잘 살아야 한다!”그때 나는 뭐라고 했더라?“아주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저 진혁이랑 오래오래 함께 잘 살 테니 안심하세요!”나는 이렇게 대답한 것 같다.그러나 나는 결국 구진혁과 함께하지 못했고 아주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팔찌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구진혁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 팔찌를 집으려 했지만, 손이 갈수록 더 심하게 떨렸다.결국, 팔찌는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그 금 간 자국은 마치 내 몸에 얼기설기 남은 상처들처럼 보였다.“해월아...”구진혁은 오랫동안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리듯 무릎을 꿇고 울기 시작했다.나는 차갑게 그 옆에 앉아 나 때문에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하지만 진혁아, 너야말로 나를 죽인 진짜 범인이었어. 네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 백윤아를 탐사대에 보냈지 않았다면, 네가 백윤아 때문에 우리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았다면, 네가 그때 단호하게 결단을 내렸다면, 우리는 이런 결말을 맞지 않았을 거야.’상자 안에는 내 사진도 한 장 있었는데 그것은 나와 구진혁이 찍은 몇 안 되는 사진 중 하나였다.구진혁은 그 사진을 집어 들고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해월아, 내가 잘못했어... 해월아.”‘진혁아, 너도 아프냐? 하지만 네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해도 난 이제 돌아갈 수 없어. 그 차가운 설원에서, 난 진작에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어. 너의 이런 모습, 도대체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거니?’구진혁은 온종일 잡동사니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마치 자

  • 죽은지 3년   제9화

    그 말이 나오자마자 모든 사람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잠시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데려오다니... 누구를?”백윤아가 물었다.나는 백윤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손을 떨고 있었다.구진혁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다시 한번 말했다.“그들은 이번 임무에서 한 사람을 데려왔어. 죽은 사람 말이야.”“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강해월이었지.”“너는 강해월이 도망쳤다고 했는데 그녀의 시신은 왜 남극에 있었던 걸까?”백윤아는 더듬거리며 말했다.“어쩌면 그녀가 도망치다가...”“도망치다가 사고로 죽었다고?”구진혁이 냉소적으로 웃었다.“그런데 왜 그녀는 죽을 때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을까?”“얼굴, 목, 복부까지 모두 칼에 찔린 흔적이었어.”“그리고 그녀의 신원을 증명할 모든 것도 사라졌지….”구진혁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윤아야, 나더러 널 어떻게 믿으라는 거야?”“진혁아, 그게 정말이냐?”오태건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모두의 시선 속에서 구진혁은 비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여러분이 이번에 오면서 해월을 데려온 거예요...”오태건은 땅에 풀썩 주저앉았다.“설마, 설마... 이렇게 많은 세월 동안 우리가 계속 해월을 오해했던 거야?”“그때 우리 모든 사람은 나갔고 남은 사람이라면 해월과...”오태건의 시선이 백윤아에게로 향했다.“윤아야, 너 할 말 없어?”하지만 답안은 이미 눈앞에 있었다.이 실마리만 잡으면 모든 것이 결론이 날 것이다.“나는 아니에요!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요!”백윤아가 갑자기 외쳤다.“강해월이 스스로 도망친 거예요!”“제발 나 좀 믿어주세요!”백윤아는 조급하게 발을 동동 구르며, 마치 정말 억울한 피해자인 것처럼 말했다.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는데 마치 세상에서 가장 큰 억울함을 당한 사람 같았다.정말 훌륭한 연기였다. 만약 피해자가 내가 아니었다면, 나도 그녀에게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윤아야,

  • 죽은지 3년   제8화

    구진혁은 내 몸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나는 그가 계속 바라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갑자기 일어서더니 내 시신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원래대로 돌려놓았다.그러고는 열쇠를 집어 들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다.하지만 집 문을 열자마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주먹 한 방이었다.“구진혁, 너 사람 맞아? 결혼식에서 윤아 누나를 혼자 내버려 두다니!”“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누나를 비웃었는지 알아?”그를 때린 사람은 바로 하준이었다. 그의 얼굴엔 구진혁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다.하지만 구진혁은 못 들은 척하며 침묵한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구진혁, 내 양딸을 아내로 맞고 싶지 않다고 해도, 이렇게 모욕해서는 안 되지!”오태건은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쳤다.나는 이 모든 것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그들이 상처받은 백윤아를 위로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구진혁은 백윤아의 맞은편에 앉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괜찮아요, 아버지. 진혁이는 일 때문에 그런 거니까 이해할 수 있어요!”백윤아는 이해심 깊은 듯 웃으며 말했다.“윤아야, 네 상처 아직도 아파?”구진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해 넌 정말 많은 피를 흘렸지.”“너는 도망치려고 하는 강해월을 막으려다 다쳤다고 했지? 그런데 결국엔 그녀를 막지 못하고 놓쳤다 한 거 맞지?”백윤아의 목소리엔 이미 긴장감이 가득했다.“진혁아, 갑자기 왜 그걸 묻는 거야?”“구진혁, 너 제정신이야? 지금 강해월 얘기할 때야?”하준은 구진혁의 멱살을 잡았다.“우린 지금 네가 오늘 정신 나간 사람처럼 결혼식에서 사라진 일에 대해 말하고 있잖아. 오늘 모든 사람 앞에서 윤아 누나한테 설명해봐!”하지만 구진혁은 못 들은 척하며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네가 직접 강해월이 도망치는 걸 봤다는 거지?”“맞아! 내가 똑똑히 봤어!”백윤아는 단호하게 대답했다.나는 백윤아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면서도, 그 속에 그렇게 썩어 문드러진 영혼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그때 일은 이미 끝난 거잖아.”오태건이 나

  • 죽은지 3년   제7화

    또다시 익숙한 해부대와 익숙한 구진혁이었다.“어떻게 너일 수 있지? 어떻게...”구진혁의 손은 심하게 떨렸고 내 몸이 든 주머니를 여러 번 시도해서야 간신히 열었다.주머니를 열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확 퍼졌지만, 구진혁은 신경 쓰지 않고 내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하지만 내 얼굴은 깊게 팬 흉터로 가득해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문득 그는 뭔가 생각난 듯 시선을 빠르게 내 아랫배로 옮겼다.끔찍한 상처들이 내 아랫배를 차지하고 있었다.구진혁은 조금씩 그 흉터들을 살펴보다가 결국 눈에 띄지 않는 흉터에 시선을 고정했다.그 상처는 꽤 오래된 것으로 5cm 정도의 작은 흉터에 꿰맨 자국이 있었다.그건 4년 전, 나와 구진혁이 사귀던 시절 그를 위해 남긴 상처였다.4년 전, 구진혁은 한 사건의 부검을 맡았다.범인은 극악무도한 사람이었고 체포되기 전에 구진혁과 함께 죽으려고 했다.그가 칼을 구진혁에게 찌르려고 할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의 앞에 몸을 던졌다.바로 그날, 나는 우리의 첫 아이를 잃었고 아이를 갖기 어려울 거라는 말을 들었다.그날 병실에서 구진혁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고 그저 내 손을 잡고 약속했다.“해월아, 걱정하지 마. 우리 결혼하자. 내가 평생 잘해줄게.”“네가 회복해서 퇴원하면 바로 결혼해!”그때의 구진혁은 진심이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정말 나와 결혼하고 싶어 했다.하지만 그는 구씨 가문의 외동아들이었다. 나는 손자 손녀를 바라는 그의 어머니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구진혁, 우리 헤어지자!”그 말에 구진혁은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어린아이처럼 내 손을 꽉 잡았다.“괜찮아, 해월아. 우리 입양하면 되잖아!”“아니야, 아니야. 난 아이가 필요 없어. 너만 있으면 돼!”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그때의 구진혁은 정말 나를 사랑했다.날 위해 아이도 포기할 정도였으니까.‘하지만 진혁아, 네가 한 모든 말은 거짓말이었어.’구진혁은 떨리는 손으로

  • 죽은지 3년   제6화

    휴대폰을 들고 있는 구진혁의 몸은 조금씩 구부정해졌고 휴대폰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구진혁은 멍해진 눈으로 앞만 바라보았다.“진혁아, 무슨 일이야? 누구한테서 온 전화인데 그래?”옆에 있던 백윤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살폈다.구진혁은 말을 하려다 말고, 결국 다시 삼켰다.“아무 일도 아니야, 그냥 동료 전화야.”오태건은 웃으며 그를 가볍게 밀었다.“진혁아, 오늘은 네 결혼식이잖아. 일 생각할 때가 아니지.”“어서 들어가. 결혼식이 곧 시작할 거야!”백윤아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구진혁의 팔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하지만 나는 구진혁의 온몸이 흩어지지 않는 어둠에 휩싸인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그는 백윤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마치 그녀의 진실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듯한 눈빛이었다.나는 그의 눈빛이 낯설지 않았다. 예전에 백윤아가 나를 모함했을 때, 그는 나를 똑같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의심과 불신, 그리고 경계가 가득한 눈빛이었다.“왜 그래? 진혁아.”백윤아의 목소리에는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윤아야, 방금 수사대에서 전화가 왔는데 내가 이전에 검사했던 게 문제가 생겼대.”구진혁의 목소리에는 깊은 죄책감이 묻어 있었다.“오늘 결혼식은 아마도...”나는 순간 얼어버렸다. 구진혁이 나 때문에 백윤아와의 결혼식을 포기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백윤아 역시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란 표정으로 구진혁을 바라보았다.“뭐라는 거야? 오늘은 우리 결혼식이잖아.”하지만 구진혁은 이미 영혼을 잃은 사람처럼 굳어 있었다.그는 딱딱한 기계적인 말투로 백윤아에게 사과했다.“미안해. 윤아야. 나 정말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겠어.”“일 끝나고 나서 우리 다시 결혼식 올리자.”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게 바로 인과응보라는 건가.예전에 구진혁은 백윤아 때문에 우리의 결혼식을 미뤘었다.그런데 이제는 나 때문에 그는 결혼식 도중에 백윤아를 남겨두고 떠나버린 것이다.말을 마친 그는 백윤아의 손을 뿌리치고

  • 죽은지 3년   제5화

    사람들이 흩어지고 마지막으로 나타난 건 내가 가장 존경했던 스승, 오태건이었다.“아버지! 오셨어요?”그를 보는 순간, 백윤아의 눈이 반짝였다.오태건은 그녀에게 두툼한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귀염둥이야, 결혼 축하한다!”귀염둥이? 예전에 스승님도 나를 이렇게 불렀었다.“진혁아, 우리 윤아 잘 부탁해!”오태건은 구진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하준의 말이 맞아. 강해월이 떠나줘서 참 다행이었어. 그녀가 너희 사이를 가로막았으면 너희 둘은 하마터면 서로를 놓칠 뻔했잖아!”“가끔 나는 해월이가 남극에서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평생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길 말이야.”나는 공중에 떠서 그들의 어이없는 말들을 듣고 있었다.참 기가 막혔다.한때는 나도 과학 탐사대에서 촉망받던 신인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던 사람 중, 나를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구진혁은 오태건을 바라보며 말했다.“선생님, 이젠 그만 잊으세요. 강해월은 이미 벌을 받았어요.”“기억 안 나세요? 제가 그때 그녀의 모든 직위와 명예를 취소했잖아요.”오태건은 잠시 멍해 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그때 너 정말 잘했어!”“그런 배신자는 백번 죽어도 아깝지 않지!”“직위 박탈만으로는 너무 약했어!”내 마음은 천천히 가라앉았다.“그래서 내가 너희 결혼 선물로 이걸 준비했지!”오태건은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전에 진혁이 너 나한테 부탁했잖아. 내가 처리했어!”오태건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오늘부로 강해월은 과학 탐사대에서 완전히 제명됐어!”“우리 탐사대엔 이런 배신자는 없었던 거야!”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내 약혼자가 제안하고, 내 스승님이 그걸 실행하다니.두 사람은 마치 처형인처럼 세상에 남은 나의 마지막 희망마저 단칼에 잘라버렸다.부모님을 일찍 여읜 나는 오태건을 아버지처럼 존경해왔다.나는 그가 백윤아의 말만 듣지 말고 내 억울함을 풀어주기를 수없이 바랐었다.하지만 다 내 착각이었다.그들 눈에는 내가 진짜

  • 죽은지 3년   제4화

    며칠 동안 나는 강제로 구진혁과 백윤아와 함께 묶여있었다.그들은 내 앞에서 결혼식 준비에 대해 논의했고 웨딩드레스를 입어보았으며 메이크업을 해보았다.나는 구진혁이 결혼을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예전에 우리가 결혼할 때, 나는 몇 번이나 그와 함께 결혼식 세부 사항을 상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그의 간단한 한마디였다.“넌 내가 바쁜 거 몰라?”“결혼식 하나 올리는 데 나까지 신경 써야 해?”결국, 보면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처음에는 그들을 보며 숨 쉴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팠지만, 이제는 그저 무덤덤해졌다.그러다 그들의 결혼식 날이 왔다.구진혁은 몸에 딱 맞게 재단된 턱시도를 입고 있었고 백윤아는 구진혁이 그녀를 위해 맞춤 제작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마치 동화 속의 완벽한 공주님과 왕자님 같았다.반면 3년 전에 나는 40만 원짜리 대여 드레스로 대충 때웠는데 말이다.그들은 문 앞에서 손님들을 맞이했고 주변 사람들은 그들에게 가장 진심 어린 축복을 보냈다.나와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던 동료들도 모두 이 결혼식에 참석했다.내가 죽은 후 3년 동안, 그들은 구진혁과 백윤아를 받아들인 것이다.나의 제자였던 하준은 축의금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윤아 누나, 진혁 형, 결혼 축하해요!”“이렇게 좋은 날에 형, 우리랑 포근히 한잔해요!”백윤아는 구진혁의 품에 기대어 웃으면서 말했다.“우린 지금 임신 준비 중이라 술은 안 마실게!”이 말이 나오자, 홀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멈칫하더니, 모두 입을 열었다.“나 양엄마 할래요!”“그럼 난 양아빠 할 거야!”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그들이 아이를 가지기로 했다고?순간 분위기는 최고조로 달아올랐다.사람들은 모두 즐겁게 웃고 있었지만, 내 가슴은 누군가 심장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점점 조여 오면서 숨이 막혔다.“윤아 누나는 진혁 형을 너무 챙겨요!”하준은 불만스럽게 백윤아를 바라보며 투덜거렸지만 농담이었다.

  • 죽은지 3년   제3화

    내 영혼은 강제로 구진혁에게 끌려 집으로 돌아갔다.한때 내가 살던 집이었지만 이제 내 흔적은 없었고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백윤아와 구진혁이 함께 생활한 흔적들뿐이었다.“왔어?”백윤아는 구진혁이 돌아오자마자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구진혁은 그녀를 부드럽게 품에 안고,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눈을 감았다.참 따뜻한 장면이었다.이렇게 자연스럽고 친밀한 행동을 구진혁은 나에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손 아직도 아파?”구진혁이 물었다.백윤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이제 괜찮아!”구진혁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설마 또 나 몰래 진통제 먹은 거 아니지?”“그때 강해월에게 너무 많이 찔려서 지금도 후유증으로 앓고 있는 거잖아.”나는 허공에 떠서 변명하고 싶었다. 내가 아니라고,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백윤아의 거짓말 하나로 나를 그렇게 쉽게 단정 짓다니.구진혁은 나를 한 번도 믿은 적이 없었다.그를 만나기 전, 나는 그에게 백윤아라는 첫사랑이 있는 줄도 몰랐다.졸업하던 해에, 백윤아는 구진혁과 결별하고 재벌 2세와 함께 유학을 떠났기 때문이다.그리고 나는 구진혁을 일하면서 알게 되었다.함께한 후 그는 나를 정말 잘 챙겨주었고 내 친구들도 그를 완벽한 남자친구라고 칭찬했다.나조차도 우리는 쭉 이렇게 행복하게 지낼 줄 알았다.하지만 우리가 결혼을 준비하던 그해에 백윤아가 돌아왔다.그 후로 구진혁은 우리 관계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그는 백윤아 때문에 나를 몇 번이나 버렸는지 모른다. 심지어 그녀 때문에 우리의 결혼 날짜도 계속 미뤄졌다.“제발 미친 사람처럼 굴지 좀 마.”“나와 윤아는 그냥 친구야. 제발 그만 의심해.”하지만, 친구라면서 밸런타인데이에 서로 선물은 왜 주고받는 건데? 또 천둥이 무섭다고 걸려 온 그녀의 전화 한 통에 어떻게 침대에 있는 자기 짝을 버리고 그녀를 만나러 갈 수 있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자신의 새로운 여자 친구라고 말하는 걸 어떻게 그냥 듣고만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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